14강-YouTube강의(제자와 신자)121220-이 근호 목사
14강-YouTube강의(제자와 신자)121220-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1.16)
14강-YouTube강의(제자와 신자)121220-이 근호 목사
오늘은 제14강인데 제목은 ‘제자와 신자’라는 주제로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12명 있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신자였겠습니까? 아니면 불신자였겠습니까? 제자니까 당연히 신자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예수님 빼놓고 다른 사람들 보기에 마치 신자처럼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제자들과 더불어 생활을 같이 했으니까 분명히 신자처럼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이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은 신자가 이러하다, 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게 아니고 불신자는 이러하다. 불신자는 이러한 자들이 불신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제자들을 뽑아 세웠던 것입니다.
흔히 우리들이 교회 올 때 ‘목사님, 어떻게 하면 신자가 됩니까?’라는 질문을 시작해서 교회생활을 하는데 그 질문이 잘못됐습니다. 이렇게 질문해야 돼요. ‘목사님, 불신자가 무엇입니까?’ 불신자가 무엇인가부터 분명히 알아야 성경에서 말하는 신자라는 개념이 수립되는 겁니다.
요한복음 14장 9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이렇게 돼 있습니다. 함께 있는데 함께 3년 동안 따라다녔는데 예수님으로부터 온갖 천국의 내용과 말씀을 그렇게 들었는데 그들은 여전히 옆에 붙어있어도 예수님을 알아보질 못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불신자입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데리고 그렇게 3년 동안 같이 동고동락(同苦同樂) 해도 그들의 불신앙은 계속 불신앙으로 남아있는 겁니다.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연구하고 같이 따라다니면서 이렇게 붙어있었다고 해서 불신자가 신자 되는 것 아니고, 불신앙이 신앙 되는 거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 12제자의 역할이라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음으로서 진정 무엇이 불신자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그러한 역할을 그들은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불신자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주제넘게 신자를 언급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사람들은 믿음과 불신앙을 어떻게 이걸 해결하려고 하느냐 하면, 자기 자신이 성찰하고 자기 자신이 연구하고 분석해서 그래서 자기의 노고를 거쳐서 힘든 수고를 거쳐서 그것을 사람들은 진리라고 그렇게 가지려고 하는 겁니다. 다듬고 연구하고 분석해서 ‘그래, 이거 믿을만해.’ 믿을만한 것은 차곡차곡 자기의 마음의 창고에다 담아두고 내가 믿을만한 것을 믿겠다고 하는 것을 그들은 신자라고 그렇게 우기고 싶은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에 이런 말씀 나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믿을 수가 있죠? 세상의 수학에서 세상의 과학에서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회생활에서 보여주지 않고 믿으라면 그거 믿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소리죠. 이 말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여, 우리 인간은 본 게 없으면 절대로 믿지 않는 존재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우리를 신자 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보고서 믿도록 조치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그러한 강렬한 의지를 이미 우리가 내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들은 사람들을 불신자를 신자 만들기 위해서 실적과 업적으로서 그들에게 보여주는 식으로 해서 그 결과를 가지고 동의하면 신자라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선언을 해줍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교회가 불신자를 통째로 신자 만드는 그런 공장노릇하고 있다 이렇게 보시면 되는 거예요.
보는 것도 보고 믿었다면 그건 믿음이 아니라고 내쳐야 되는데, 반대로 ‘내가 보이니 비로소 믿습니다.’ 그런 것만 골라서 수집하고 있는 겁니다. 어떤 기도를 해서 응답이 있고 어떤 실적이 있다면 우리가 그 실적을 보고 ‘아! 하나님 살아계시는구나.’ 안다면 그건 믿음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고 불신앙에 포함 되는 겁니다. 기도를 해도 아무런 실적이 없을 때 그게 비로소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예수를 믿을 수 있느냐, 그걸 믿는다면 그게 신앙인 겁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네가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자 중에 하나 도마에게 보여주니까 예수님께서 참된 목자를 보여주니까 ‘야, 이제야 믿겠습니다.’라고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 하시는 말씀이 “도마야 너한테는 그런 식으로 보여줘서 믿느냐” 하지만 하나님의 방식은 보여서 믿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보지 않는 것을 믿어야 될 텐데 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믿을 수가 없는 이유가 인간은 지금껏 본 것에 의해서 계속해서 자기의 이해력을 키워왔습니다. 이것 봤으니까 이거 안다. 이거 봤으니까 이거 안다. 자기가 안다는 것은 그동안 많이 보아왔다는 것들의 집합입니다.
그런데 보지 않고 믿는다는 것은 그동안 본 것, 이해한 것, 그것을 이해 못하는 것이 주어질 때 달리 말해서 ‘이건 내가 본 게 아니야.’라는 고백과 더불어서 신앙은 시작되는 겁니다. 야! 이건 상상도 못했네.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내 세계관 안에서는 도저히 이런 일은 나올 수도 없었네. 이건 내 예상을 내 꿈과 비전을 이건 완전히 빗나가는 것이야.‘라는 감탄과 더불어서 새롭게 믿어지는 그것.
이것은 그 전에 우리가 봤던 것도 아니고 알았던 것도 아니고 이해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그게 성령이죠. 성령에 의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리를 불신자로 만들어 가는 그 과정을 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오직 복에 의해서, 다른 말로 하면 성령에 의해서만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노력과 나의 성찰과 도 닦는 것과 탐색에 의하지 아니하고, 오직 거저주시는 선물로만 우리를 신자 되게 하시는 그 작업을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는 겁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습니다. 이건 우리의 행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 본문을 대하게 되면 우리가 평소에 행한 것이 아니요, 선물이라면 선물이라고 넙죽 성질 급하게 받으려고 하지 말고, 우리의 행한 것이 무엇이기에 우리의 행한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왜 믿음이 되지 못하고, 불신에 대한 증거에 불과한 것인가를 우리가 파악을 하려고 해야 돼요. 내가 행한 것, 내가 기도하고 헌금하고 전도한 것, 왜 이런 것은 믿음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그것은 불신앙의 열매로만 우리에게 계속 기억 속에 남아있는가를 그걸 깨달아야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자의 모범을 보여준 것이 아니고, 불신자의 모범을 보여준 겁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과 떨어져 있으면 예수님을 추종하니까 같이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니까 마치 멀찍이서 보면 신자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 체포될 때 분명히 저 베드로는 신자라고 알고 있었던 어떤 나이 어린 소녀가 베드로에게 ‘당신도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 맞죠?’ 라고 하니까 그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 ‘나는 저 사람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솔직하기도 하고 가장 본질을 드러낸 순간이기도 하고, 한번이 아니었습니다. 한번 같으면 실수라고 할 수 있는데 세 번이나 ‘나는 저 사람을 모른다.’ 쉽게 말해서 ‘나는 저 사람을 믿은 적이 없다.’ 다른 말로 ‘나는 저 사람에 대해서 철저한 불신자로 그동안 살아온 사람이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다.’라고 장담했고 분명히 고백했습니다.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는 평생 예수에 대해서 불신자입니다.‘라는 고백.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일부러 그러한 불신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왜, 그것이 신자의 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불신자구나, 나는 내가 본 것만 믿는구나, 내가 행한 것만 믿는구나.‘라고 솔직하게 자기를 고백하게 하시는 그 작업, 그런 작업이 닭이 울므로서 그게 말씀께서 의도적으로 베드로로 하여금 우리의 불신의 자리에 집어넣어서 그 다음에 하나님의 복으로서 복을 받아서 이제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더라도 늘 손에 만져지지 않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죄를 이미 용서했다는 그런 불신의 죄까지 용서했다는 것이 믿어지는 사람, 이게 복된 신자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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