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강-YouTube강의(하나님의 일)121213-이 근호 목사
12강-YouTube강의(하나님의 일)121213-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1.16)
12강-YouTube강의(하나님의 일)121213-이 근호 목사
오늘 열두 번째 강의에서는 역사와 묵시가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좋아해서 따라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고 어떤 자기의 희망을 거기서 발견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자기의 소망을 달성하고자 따라 왔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생각과 자기의 생각이 아마 같을 것이라고 따라 왔는데 예수님께서 따라온 사람에게 상당히 난처하고 당황스럽고 질문을 먼저 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26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 다음에 나온 말씀이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썩는 양식이라는 것은 이 앞에서 언급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고자 하는 그 의도, 그 노림수, 예수를 믿어서 새로운 기적을 얻겠다 하는 그 내용, 그런 것은 영생하고는 상관없습니다. 썩을 수밖에 없는 양식과 관련돼 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딱 들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께 분명히 떡은 얻어먹었지만 그 얻어먹은 떡을 계속해서 추구하라고 예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는 그들은 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제안을 받은 걸로 이해하는데, 그게 뭐냐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구미를 느꼈습니다.
떡보다 중요한 것이 영생하도록 받는 양식이다. 정말 멋진 호기심 아닙니까? 먹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 얼마나 이게 필요합니까? 아침 점심 저녁 세 끼 식사를 먹어서 우리 몸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이 아주 멋진 일이듯이 마치 그와 같이 영생이라는 것도 먹기만 하면 영원히 저주받지 않고 영원히 쇠하지 않고 멸망당하지 않고 영원한 영생 축복을 누리는 그런 양식이 있다면 이건 횡재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 제안에 호감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뭐를 해야 그 영생을 얻는 양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역사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걸 다시 한 번 정리를 해야 됩니다. 역사라 하는 것은 돌이켜 볼 때에 우리가 기억할 만한 것들, 그런 사건들의 나열이 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만한 그런 모든 것들 속에는 방금 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은 것처럼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의 떡을 먹을 수 있습니까?’ 라고 해서 인간의 역사는 다 이렇게 결국은 우리가 이런, 이런 일을 행했다 하는 것들에 이렇게 줄지어져 있는 겁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다고 간주하고, 우리가 예상하는 ‘예수님, 저희가 무슨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또는 교회 목사님 보고 ’제가 오늘 교회 처음 나왔는데 어떤 일을 해야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을 때 우리가 그 목사님의 입에서, 또 예수님의 입에서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답변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영생을 얻으려면 이쪽에서 ’이런, 이런 일을 해야 된다.‘라는 답변을 우리는 기대하게 됩니다. ’주일성수 해야 되고, 십일조를 해야 되고, 그 다음에 교회 봉사를 해야 되고, 그리고 남은여생을 선교하든지, 아니면 선교를 못하면 선교 비를 내든지, 선교하는 사람을 후원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널리 확장하는데 보탬이 되는 것이 마귀와 싸워 이겨서 우리가 승리자로 구원받는 성도의 바른 삶입니다.‘라는 답변을 질문을 하는 쪽에서 이미 은근히 그런 답변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교회 온 초자가 했을 때 그 옆에 교회 오랫동안 다녔던 중직들, 서리 집사나 장립집사나 장로님이나 이런 분들이 같이 그 질문을 듣고 있다면, 아마 그들은 목사님 답변보다 예수님 답변보다도 자기가 먼저 나서서 답변하고 싶은 그런 마음 충동을 느낄 겁니다. ‘우리 교회 처음 나오신 분도 그게 궁금한데 저도 처음 나올 때 궁금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교회 15년 나오고 20년 다니면서 이런, 이런 일은 이러했고, 그래서 천막으로 시작했던 교회가 이제는 버젖하게 500평짜리 고딕체 건물로 해서 이렇게 훌륭한 교회가 세워져서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져서 주차장도 넓히고 이 지역사회 모범이 되고 빛과 소금이 되어서 복음전파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 전에 많은 성도들이 새벽제단에 나와서 기도하고 자기의 살던 집도 전세로 바꿔서 전셋돈을 바쳐서 그렇게 헌신해서 교회가 오늘날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는 하나님의 영생을 얻게 하는 모습들입니다.’라고 그런 답변을 하고 싶어서 마음이 굴뚝같은 심정일 거예요. 또는 그런 답변을 할 때 교회 처음 나온 사람은 ‘아, 내가 처음 나왔지만 발걸음을 새로 시작했기 때문에 천국 갈 때까지 꾸준히 이 교회에 봉사하면서 목사님 시키는 대로 성경말씀 대로 주의 말씀에 잘 순종하고 교회 질서에 순종하면서 그러니까 세례 받고 학습 받고 해서 내가 살던 시대에 복음 전파에 내가 조금이라고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게 영생 얻는 하나님의 일이구나.’ 라고 은근히 그런 대답이 나올 거라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의 말씀은 이거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 할 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우리는 행함을 내놓으려는 만반의 마음준비, 겸손한 마음준비, 순전하고 경건하게 살 마음 자세, 진정성 있는 그런 마음 자세로 어떤 교회 일이나 주의 일을 하려면 덤벼들 마음 자세, 헌금할 마음자세, 선교에 보탬이 될 간접적으로 보탬이 될 그런 마음 자세도 돼 있는데, 거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너무나 엉뚱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네가 행하는 중에서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는 일을 행하라.’고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시는 이 하나님의 일, 하나님이 보내신 이라는 것은 그 뒤에 나오는 “내 살과 내 피를 마시라‘는 언급을 여기서 나중에 더 붙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앞서서 언급한 게 뭐냐 하면 바로 ”누구든지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44절에 나와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몸을 투신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는 그런 대화의 분위기에서 어떻게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내게 올 수 없다.”는 부정적인 답변이 왜 거기 나오고 바로 그것을 믿으라는 거예요.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내게 올 수 없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53절에 나오는 “내 살과 내 피를 마셔라.” 그리고 난 뒤에 예상대로 사람들은 다 떠나버리고 한명도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아니했더라.“ 66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 앞에서의 일련의 모습은 인간이 예수님 앞에 나올 때는, 이미 그전에 인간들은 행함을 근거로 해서 이미 자기 역사란 게 있었습니다. 그 역사에다가 예수님을 끌어당겨서 찬란한 자기 역사, 훌륭한 자기 역사에다가 예수 믿는다는 그 사건 하나를 거기다 같이 결합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그러나 영생의 양식, 묵시의 세계, 천국의 세계는 우리가 지금까지 행했다고 하는 것, ‘내가 이렇게 행해서 오늘날 이거까지 끌어왔습니다.’ 라는 걸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됩니다. 이것은 노선이 다릅니다. 지금까지 행했던 나의 역사에다 예수님까지 실어서 그 화물열차가 내가 기대했던 소망의 나라 천국 같다는 그 노선 자체에서 주님께서는 완전히 그 노선을 부정해 버리고, 그걸 배격해 버리고 아버지가 날마다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예수님만 쳐다볼 수 없다는,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이 하신 일로만 우리가 지금 살아있다는, 그 앞에서 자기의 행함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그러한 영생의 역사, 영생 주시는 그 기적은 아무도 거기에 합류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결국 주님께서 보여주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너희들이 나를 믿고자 하지만 그것은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십자가 지고 다시 성령을 보내서 너희들을 묵시의 세계로, 역사 아닌 세계로 이끈다면 그 안에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 공로로만이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지니까, 아버지가 보내신 자 곧 예수님의 행하심만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앞에서 우리의 행함은 부정되어 마땅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비로소 성령 안에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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