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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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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행8"1-3(사울의 생각)우리교회히브리서

Re..행8:1-3(사울의 생각)

이름 : 이근호(IP:)

사울의 생각
2004년 5월 12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8:1-3

8: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8: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우리 인간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데 하나님에 의하면 지금이 마지막 때라고 하십니다. 우리 인간들로서는 대단히 납득하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생각하는 마지막 때의 징조가 별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입장은 이렇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아드님을 보내신다는 겁니다. 히브리서 1:2에 보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아드님이 오셨으면 곧 마지막 때입니다. 마지막이란 모든 것을 결산하는 때입니다.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아 불에 태우는 추수 작업이 감행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신앙적으로 살피는 사람은 정말 이 때가 마지막 때인지 징조를 살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대 변란의 징조가 나타나지 않으니 가끔 식은 의심도 생기도 실망감도 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점을 아셔야 합니다. 마지막 때의 심판은 누가 멋있게 승자로 등장되고 누가 처참한 패자인가로 결판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대화가 안 될 정도로 분리가 된다는 겁니다. 왜 이런 분리가 일어날까요? 그것은 자기 정당함 때문입니다. 불신앙인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자기 정당함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즉 자기의 의로움은 스스로 자기가 지키겠다는 겁니다.

달리 자신의 정당함과 의로움을 지킬 타인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행위의 주체 자는 오직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마땅히'라는 말이 나옵니다. 도대체 사울이라는 사람은 무엇을 근거로 해서 자신이 '마땅히' 할 바를 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겁니까?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마땅히 행한 것을 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이는 '막 산다'고 하겠지만 따지고 보면 막 살지 않는 사람은 이 지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들 나름대로 '마땅히 행할 일'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각 사람마다 어떤 자기 기준들을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정체를 아는 지름길입니다.

빌립보서 3:5-6절을 보면,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에게 있어 '마땅함'이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정당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스데반 집사님도 나름대로 '마땅함'으로 설교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이 두 종류의 마땅함이 서로 충돌하면서 날카롭게 분리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고가 문제가 아니라 서로 타협이 되지 않을 정도로 대비가 된다는 것이 이 마지막 때에 이미 심판이 진행 중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사울의 정당함은 자신이 자신의 의를 스스로 지켜보겠다는 식으로 얻고자 했기에 그 어떤 성경 말씀이라도 기어이 자기 의로움을 유지하는 방향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거기에 비해서 스데반 집사님은 어떠합니까? 모든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다 지켜내신 것을 그는 믿고 받아드립니다. 이것은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지키는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식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여자가 시집을 가서는 모든 것이 격식을 갖추어야 될 시집이 부담이 됩니다. 스스로 자기의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친정에 가면 모든 것을 다 풀어놓고 아무 부담도 없이 편하게 지내게 됩니다. 마치 혼자 사는 사람은 늘 끼니때가 되면 뭘 먹어야 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만약에 집에 어머니라도 계신다면 무엇을 먹을지 그런 것은 걱정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적인 사람은 자신의 의를 자기가 스스로 지키려고 나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구세주와 너무나도 친밀하고 긴밀하게 지내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지키고 돌아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즉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하나님이 날 어떻게 생각 할까를 놓고 고민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게 됩니다. 모든 것이 그 분이 알아서 다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스데반 집사님은 꼭 바보같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반대로 모든 면에 거룩하고 성스러운 생활에 매진하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성스러움이 이 마지막 때에, 아들로 통해서 심판하는 이 시기에 확연한 분리된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가담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울이 거룩한 말씀을 지키면서 수립해 놓은 '마땅히 행할 일'입니다. 물론 사울이 스데반 집사를 죽일 때는 큰 자연의 변고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이런 생각도 가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라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아들과 추종자를 살해하기 위해서 나선다면 진짜로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스데반 집사님의 죽음은 그저 평범한 보통 한 인물의 죽음과 동일합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울이라는 사람은 더욱 기세 등등하게 자신이 결정한 바가 하나님 보시기에도 '마땅히 행할 일'이라고 간주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심판을 하기면서 이런 식으로 분리를 유발시키도록 하시는 겁니까?

마태복음 23:35-36에 보면,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아벨이요 다른 한 사람은 사가랴라는 이름의 선지자입니다. 이 두 분은 그 시대에 세상을 날카롭게 두 부분으로 나뉘게 했던 분입니다. 즉 하나님이 개입하시므로서 심판이 일어나게 한 분들입니다. 이 두 분 다 처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만약 스스로 자신을 지켜보려는 자들에게는 이 두 분은 모두 실패한 인생이라고 간주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모두 하나님에게 맡기며 사는 사람에게는 그 분들의 죽음을 실패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을 죽게 한 이 세상이 이토록 악하다는 것이 도리어 확연하게 드러난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처럼 신앙이란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지켜 볼 필요조차 느끼지 않을 정도에 예수님의 뜻만을 생각하며 사는 상태를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서로 상반대 두 가지 현상을 나타냅니다. 어떤 교인들은 교회 오면서 남들을 의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교회 나온 것에 대해서 목사나 교우들이 자신을 얼마나 착실하고 대단한 신앙 인으로 간주해 주겠느냐를 염두에 두면서 숨죽이듯이 조심스럽게 출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비해 교회 나오는 것이 꼭 자기 집에 들어오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지적하기 위해서 교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혀 서로 서로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는 그런 기적적인 현상을 즐겁게 여기면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즉 교회란 사람을 만나기 보다 우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해 나오는 겁니다. 또 그런 모임을 우리 예수님이 지금도 계속 만들어내시고 있음을 감사하는 겁니다. 그만큼 평소에 예수님과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가깝고 다정하고 일체감 속에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죽고 사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라는 말씀이 그냥 해보는 말씀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로 드러날 말씀인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면 누가 승자입니까? 스스로 자기를 지켜보려고 애쓰기 때문에 행여 주위에서 자신이 쌓아올린 정당함에 시비 거는 자가 있을까해서 늘 경계의 눈총을 늦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피곤한 인생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있는 불신자하고 깊게 사귀어 보세요. 그리고 가정에 불신자 부모나 조부모가 계십니까? 우리는 성장하면서 그분들의 자기 희생적이고 그저 내어주는 지극히 사랑의 혜택자임을 결코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결국 불신자는 최종적으로 자기 의로움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한평생 완벽하게 살아왔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기 딴에 훌륭한 면은 아직도 자기에게 남아 있다고 우기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최후로 사수하고 지켜보려는 의가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의를 지키기 분들의 눈에는 이 스데반 집사님의 인생을 참으로 불쌍하고 어리석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기억하십니다. 바로 심판으로 이런 식으로 오늘날에서 쉬지 않고 날카롭게 분리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스스로 자신의 의를 지켜보려는 부질없는 짓을 이제는 신앙으로 바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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