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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3년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교재자유게시판마태복음

2013년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교재

이름 : 이근호(IP:119.18.78.175)

주제: “잘못 했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아 강의 (2013년 1월 십자가 마을 겨울 수련회 교재)

Ⅰ. 서론

신비는 없다. 무슨 신비를 품고 있는 듯 요란한 역사의 현장도 세월마저 떠나고 나면 빈 바람만 뒹군다. 하나님의 구원 작업은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잠시 써먹고는 은퇴시켜 버린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대하는 역사는 이와 다르다. 영웅과 그 업적으로 후손들이 배불리려 한다.

1948년 5월 14일 오후 4시, 유대인 단체장인 다비드 벤구리온은 라디오를 통해서 국가설립선언서를 낭독했다. 1967년 이스라엘은 드디어 예루살렘에 대해서 실질적인 주도권을 쥔다. 이는 미국의 복음주의 분파들에게는 묵시를 맞이하는 환희의 순간이기도 했다. 그들의 신약 성경 이해에 따르면 심판의 날이 오기 위한 9가지 선결 조건 중에 두 가지가 충족되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수복되어야 하고,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것이 되어야 하고, 제 3의 성전건축이 이루어져야 하고, 7년간의 시련, 그리고 그 후 성 미카엘이 올리브 산 위에 나타나야 하고, 성전산에서 적그리스도와 싸우는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야 하고 그리고 그 다음으로 유대인들의 개종 또는 파괴와 그 다음의 예수님 제2강림과 그리고 천년왕국으로 종말 시나리오는 마감된다고 복음주의자들은 계산해온 것이다. 앞에 나열된 조건 중에 두 개가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이로서 심판날의 시나리오를 비추어 볼 때 유대인들의 역할이 비극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속으로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역사이해에는 누군가 내부적으로 선동하는 요소에 동조하는 분위기로 인하여 조성된 이미지이다. 현실을 실제로 경험한다는 것은 실은 자신도 모르게 선동에 이끌리고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럴 때는 역사의 이면(裏面)을 까뒤집어야 한다. 신약의 십자가 복음과 연결되지 않는 다른 쪽으로 이끄는 그 원동력을 찾아내야 한다. 동일한 물질적 기반이라고 해서 같은 현실로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진리’를 놓고 벌리는 투쟁성이 외곽까지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이 내부적 갈등의 증거물이 역사다. 따라서 성경을 역사로 읽되 그 역사성을 십자가로 고발되어야 한다.

예수님 앞에서 이 역사성은 치열하게 끝점으로 치닫게 된다. 마태복음 8:26에서 제자들은 갑작스런 풍랑으로 인해 공포에 떨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신다. 과연 바다와 물이 꾸짖음의 대상이 될까? 인간의 현실적 체험에서 보자. 바다는 물이 주성분이다. 물은 물 분자로 되어 있고 물 분자는 두 개의 수소원자와 한 개의 산소 원자로서 +와 -라는 전기 극성을 띠면서 공유결합 되어있는 물질이다. 그리고 물 분자와 물 분자 사이에는 수소결합으로 결속되어 있으며 이 에너지들이 모아져서 바다를 움직인다. 이 물질에다 대고 나무랄 것이 뭐가 있고 꾸짖을 일이 뭐가 있는가? 예수님의 말씀이 과연 이들 물질에게 먹힐까?

‘물질에 인격이 가미될 수 있다’는 발상은 억지 같다. 하지만 바람과 바다가 즉시 잔잔해졌다.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이 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즉 인간들이 상대할 수 있는 범위와 예수님이 상대하는 범위가 달랐던 것이고 이 범위 안에 인간의 역사를 이끌고 오면서 내부적인 투쟁성을 품고 있는 세력도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세력의 정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종교적이고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욕구들이 요동하는 질서판을 만든다. 그 와중에서 어느새 복음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멀어지고 잠복해 들어간다. 이 방해 공작과 그것을 노출하는 투쟁의 현장이 ‘말씀의 세계’다.

Ⅱ. 본론

1. 스룹바벨 시대 (B. C.536)

(1)스룹바벨(유다 초대 총독 스 5:2/학 1:1)과 성전(聖殿)

‘바벨론의 씨앗’이란 의미의 스룹바벨은 다윗의 자손 브다야의 아들로서 유다 왕조의 18대 왕인 여호야김의 손자이며 예수님의 조상 중의 한 명이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는 모두 스룹바벨을 다윗 왕권의 이상형으로 보았다. 선지자 학개는 스룹바벨의 조부가 다윗의 인장 반지를 잃어버렸던 것을 들어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 나의 종 스룹바벨아, 너를 인장 반지처럼 만들리니”라고 했다. (학 2:23/ 렘 22:24) 스가랴는 그를 ‘순’으로 예언하였다.(슥 6:12) 그는 바사왕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포로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의 1차 귀환을 주도했고(4만 2,360명)- 세스바살과 더불어(스 1:8)- 다리오 1세에 의해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된 자였다.(학 1:1)

스룹바벨 성전은 B. C.539년 바벨론을 굴복시킨 고레스 대왕(B. C.559-530)의 조서로부터 시작된다. 스룹바벨 이전에 세스바살에게 왕은 성전건축을 부탁했다.(스 5:16과 5:2과 연관 지을 볼 때) B. C.536년 유다인들의 본토 귀환과 성전 건축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조서가 내려지자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인도 하에(스 3:1-2) 예루살렘으로 귀국한 1차 귀환자들에 의해 세워진다.

성전 건축의 사역은 포로 귀환자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몇 개월 뒤에 번제를 드릴 수 있는 제단을 처음으로 복원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복원된 제단에서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와 상번제를 드렸으며 초막절을 비롯한 각종 절기를 지켰고 이러는 동안에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재료들을 예루살렘으로 이송하여 성전 건축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았다. 그리하여 모든 준비를 끝낸 그들은 드디어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의 장엄한 찬송 속에 성전의 기초석을 놓았고 이로써 성전 건축의 힘들고도 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렇듯 기쁨과 즐거움 속에 시작된 성전 건축은 얼마 못가서 대적들의 방해로 말미암아 중단 되어야 했는데 그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전 공사 동참 제의를 스룹바벨이 거절하자 페르시아 여러 관원들에게 뇌물을 줌으로 성전 건축을 중단시켰던 것이다. 14년 동안 성전 건축이 중단되고 이때 하나님의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나타나 성전 건축의 재개를 호소하였는데 그들은 이방인의 방해에 의한 중단보다도 그러한 방해를 이길 수 있는 믿음과 열심이 부족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함으로 그들의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B. C. 520)

(2)에스라

‘여호와가 도우신다’는 뜻의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손으로서 시드기야 왕 때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잡혀간 스라야의 아들이었다(스 7:1-5) 그는 바벨론에서 출생한 자였으나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서기관이었고( 스 7:6) B. C. 458 아닥사스다 7년에 약 1750명가량의 남자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제 2차 포로귀환을 주도하였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에스라는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실시하였는데 그 중심 내용은 이방인과의 혼인에 대한 것이었다.

즉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에스라가 이방 여자와의 혼인이 성행하고 있는 것을 보고 탄식하며 회개하자 모든 백성들도 회개하였으며 이미 치러진 결혼도 취소되었다. 그 후 이방인과 결혼한 자들의 명단이 작성되었고 만인 앞에 공개됨으로 그 문제를 종결지었다.

후에 느헤미야가 유다인 포로를 이끌고 3차 귀환을 실시하자(B. C. 445) 느헤미야와 함께 또 한 번의 종교개혁을 단행하는데 이때는 초막절 절기에 율법을 낭독하였고 (느 7:73-8:1 2), 전체가 함께 죄를 자백하는 총회의 날이 준수되었으며(느 8:13-9:37) 지도자들이 율법이 낭송되자 그 율법에 인을 쳤고 (느 9:38-10:39), 이방 혼인을 반대하였으며, 안식년과 안식일을 지키고, 성전세를 내며, 성전에 나무와 합법적인 희생 제물 및 예물을 공급하겠다고 스스로 맹세하였다.

(3)예수아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의 예수아는 B. C. 586년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잡혀간 유다인들 중의 한 사람인 요사닥(여호사닥)의 아들로서 (대상 6:15) 대제사장의 직책에 있던 자였다. 학개서와 스가랴서에서 ‘여호수아’로 불리는 예수아는 일반적으로 예루살렘으로의 제 1차 귀환을 주도한 스룹바벨과 한 쌍의 이름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예루살렘 공동체에서의 그들의 종교적 정치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는 학개와 스가랴의 책망에 크게 자극받아 스룹바벨과 함께 한 때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

공사를 재개하여 (B. C.520) 성전을 완성시키는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다.(B. C.516)

2. 느헤미야 시대(B. C.445)

느헤미야는 바사의 수산성에 있는 아닥사스다 1세 궁전의 최고 요직을 맡고 있었다. 그는 파괴된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서 살 수 있도록 왕으로부터 허락을 받게 되었다. 당시 이 일은 다른 무엇보다도 긴급을 요하는 일이었다. 특히 그 무렵 성 주민들은 이웃에 있는 사악한 무리들에게 큰 괴로움과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느 1:1-2:8)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즉시(B. C.445) 밤중 몰래 파괴된 성벽들을 면밀히 조사하였다. 그 다음 그는 백성들에게 만일 성벽이 재건된다면 위험한 사태를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하였다.(느 2:9-18) 이러한 계획은 즉시 이웃에 있는 악한 무리들, 특히 사마리아의 총독인 산발랏과 요단강 건너편 지역의 총독인 도비야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느 2:10,19) 그들은 이 일에 대해 노골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에 구애됨이 없이 공사를 시작하여 거의 두 달 만에 완공을 보았다. (느 3장-4장) 이 때 백성들은 무력으로 공사를 중단시키겠다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온갖 방해 공작과 위협을 받아가면서 성벽 재건공사를 밀고 나가야만 했다.(느 4:1) 언제나 그들의 한 손에는 흙손이, 다른 한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4:7-23) 산발랏과 도비야는 재건 공사가 완성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자 느헤미야를 오노 평지의 한 촌락으로 유인해 내어 죽여 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 음모에 휘말려들지 않았다. (느 6:1-9)

느헤미야는 공동체에 속한 일부 성원들이 경제적 문제로 크게 고통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이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성벽 쌓는 일에만 전력을 다하였기 때문에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되었는가 하면, 몇 몇 유력한 자들은 가난한 형제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엄청난 이자를 갈취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느헤미야는 채권자들에게 그 같은 일을 즉각 중단할 것을 호소함과 동시에 모든 상황을 완전히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느 5:1-13) 한편 공동체 안에 있는 일부 ‘귀인들’은 자기의 분수를 지키기는커녕 스스로 외래적인 요소들을 열심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느 6:17-19)

성벽들이 수리되고 난 뒤, 느헤미야는 내부적인 문제로 눈을 돌렸다. 먼저 각 지역에서 백성의 10 분의 1을 선별하여 예루살렘에 정착하게 하였다. (느 7:1, 11:1) 7장에 있는 명단들은 이 선발자들 중에 여러 종족들이 뒤섞여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즉 그 안에는 바사인, 엘람인, 모압인, 유다인 그리고 이전의 북왕국에 속했던 성읍들, 즉 여리고, 벧엘, 아이에서 온 사람들도 속해있었다.

느헤미야는 12년 동안의 총독일을 마치고 난 뒤 수산성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B. C. 433) 얼마 후 또 다시 예루살렘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아마도 그는 그곳에서 여전히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느 13장) 당시 유다인 남자들은 모압, 암몬, 아스돗 출신의 여자들과 결혼을 하였다.

한편 요단강 건너편 지역을 관할하였던 도비야(제사장 엘리아십의 친척)는 성전에 있는 방 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면 (상업적인 목적?, 느 13:4-9), 레위 자손과 성전에서 노래하는 자들은 충분한 급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부수적으로 농사일을 해야만 하였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맡은 바 임무를 소홀히 하도록 만들었다(느 13:10-14). 더욱이 안식일도 합당하게 지켜지지 않았다. (느 13:15-22)

곧 느헤미야는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첫째, 앞으로는 더 이상 잡혼을 하지 말 것(느 10:30). 둘 째, 안식일을 합당하게 지킬 것.(느 10:31). 셋째 성전 세금을 지불하고 희생 제물들을 준비할 것. (느 10:32-34) 그리고 생산의 첫 열매를 십일조로 바쳐야 된다는 것이다.(느 10:35-38)

B. C. 415년 느헤미야는 자취를 감춘다. 그는 총독으로 있는 12년 재임 기간 중에 당연히 받아야 할 ‘총독의 녹’을 받지 아니했으며(느 5:14), 도리어 그는 성곽 건축에 온 힘을 기울이면서도 그의 상에서 먹는 일군들의 모든 비용도 다 부담했다.(느 5:18)

3.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 이후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는 바벨론에서 요절한다. 그의 즉시로 그의 주요 장군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으며, 그 후 20년 동안 알렉산더가 정복했던 땅은 여섯 후계자들의 전투로 유린되었다. 헬라 제국의 평화는 사라지고 파괴적인 전쟁만 남았다. 마침내 그 세기가 끝날 무렵 후계자들 가운데 둘이 나머지를 없애고, 알렉산더 영토를 나누어 가졌다. 알렉산더 장군들 가운데 가장 주도면밀했던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B. C. 367-283)는 이집트, 아프리카 해안, 팔레스타인, 시리아 남부를 차지했다. 알렉산더가 바벨론 총독으로 임명했던 셀레우코스Seleucos (B. C. 358?-281)는 이란을 포함한, 옛 페르시아 제국의 큰 부분을 지배했다. 그는 유지가 불가능했던 인도 영토를 포기하고, 동쪽의 경계를 확정했다.

유대인들은 알렉산더보다는 이런 후계자에게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 이후로 예루살렘은 늘 벽지였다. 예루살렘은 모든 주요 교역로에서 벗어나 있었다. 페트라나 가자에서 발을 멈춘 대상들은 원료가 없어 자체의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예루살렘에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아래 위에 위치한 후계자들의 전쟁이 벌어지면서 유다는 계속 이 군대 저 군대의 침입을 받았다. 이 침략군들은 소아시아(오늘날의 터키), 시리아, 이집트에서 짐, 장비, 가족, 노예를 이끌고 왔다.

예루살렘은 기원전 320년부터 기원전 301년 사이에 무려 여섯 번이나 지배자가 바뀌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은 그리스인을 파괴적이고, 폭력적이고 군사주의적인 존재로 경험했다. 기원전 301년 이집트의 왕인 프톨레마이오스 소테르(1세)가 유다, 사마리아, 페니키아를 비롯해서 해안 지역 전체를 장악했고, 그 이후 백 년 동안 예루살렘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이 지역은 새로운 헬라식 문명을 품은 도시가 여럿 생겨났다. 고대 도시들도 헬레니즘 모델에 따른 도시로 변모되었다. 그리스 군인, 상인, 기업가는 이런 그리스 문화권에 정착하여 새로운 기회를 활용했다. 그리스어를 말하고 쓰는 법을 배운 지역민 또한 ‘헬레네스’(헬라사람)가 되어 군대와 행정부의 하위직에 진입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이렇게 해서 문명의 충돌이 생겨났다. 지역민 가운데 일부는 그리스 문화에 매력을 느꼈다. 보수적이었던 예루살렘에서는 두 분파가 생겨났다. 한 분파는 느헤미야를 몹시 괴롭혔던 토비아의 후손인 토비아드 씨족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 세계에서 편안함을 느꼈으며, 예루살렘에서 새로운 사상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 이질적인 영향력이 대단히 위험하다고 보고 방어적으로 옛 전통을 고수했다. 단호하게 오랜 율법과 관습을 유지하려 했던 사제 집안인 오니아드 씨족 주위에 몰려들었다.

기원전 201년 셀레우코스 왕조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몰아내자 자신들의 메시아를 고대하며 독립할 희망을 품게 된다. 기원전 167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B. C. 175-163 재위)가 유대인들에게 그리스 종교인 제우스 숭배를 강요하자 나이든 유대 성직자 마타시아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마타시아스가 죽은 뒤에는 아들인 마카베오가 반란군을 이끌었는데, 마카베오는 탁월한 군사적 능력을 발휘해 예루살렘 성전을 되찾았다. 기원전 163년 안티오코스 4세가 죽자 셀레우코스 왕국은 유대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주겠다고 했으나 마카베오는 종교의 자유 뿐 아니라 정치적 자유를 위해 계속 싸우다 2년 뒤에 살해당했다.

4. 역사마저 돌려세우는 율법의 기능

산다는 것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살고자 하는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애쓰면서 산다. 그런데 진리란 마냥 드러나기만을 기다린다고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에 의해서 드러난다. 창조의 일부로서 인간은 활동하면서도 인간 나름대로 성찰해서 그 성찰의 결과물로 진리를 뽑아내는 실천도 아울러 병행하고 있다. 자신의 성찰과 탐색하는 노고를 거치지 않는 것을 사람들은 진리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제대로 된 불신자(不信者)들이다.

하지만 진리는 이런 인간들의 역사 꾸려나가기를 비켜가면서 다른 역사관을 소개한다. 그 이유는, 결코 인간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최종 종결 상태를 천국과 지옥으로 상정하지 않기 때문이요 하나님께서는 창조 작업을 끝까지 꾸준히 밀어붙이시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서 거룩과 관련된 사건들이 돌발적으로 침입하듯이 일어난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거룩에 관심 있는 자들이 난데없이 등장하는 것이다.

거룩이 성전을 건축하고 백성들을 율법에 종속시키는 것은 과거 심판성을 현재 심판성으로 적용하기 위함이다.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이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그 나라와 주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하였느니라”(느 9:34-38)

즉 “성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진정한 취지는, “존재보다 율법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는 옛 영광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는 도저히 납득될 수 없는 하나님의 조치다. 왜냐하면 현 자신의 존재가 부정적으로만 조상과 연계되어 있다는 역사관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거룩만을 그리워하는 자들에게 있어 이 세상관은 어떻게 비취게 되는가? 그것은 ‘저주받아 깨어진 성전 마당’으로 보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거룩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성전의 범위를 전 인류사로 확대하시려고 하신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2) 성전 자체에 적용되는 거룩과 더러움을 가름하는 기준점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그 기준점을 언약 펼침을 통해서 역사로 말해진다. 곧 말씀화된 역사가 전개되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영생의 창조 작업에 휘말린 자들은 ‘거룩’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따라서 거룩을 확대하려는 하나님의 뜻과 생존 위주로 삶의 목적으로 삼는 인간들의 의 충돌은 ‘공동체 구성’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보여지는 데 그것이 바로 에스라, 느헤미야에 담긴 계시적 의미다. 곧 심판의 연속작업으로서 공동체이기에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거룩에 준한 심판행위가 벌어진다.

성전마저 깨어지는 사태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를 구성하시는 하나님의 구성 원리이기도 하다. “그들이 그들의 원수와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경에 빠질 때에 내가 그들이 그들의 아들의 살, 딸의 살을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살을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렘 19:9/겔 5:10/왕하 6:28-29) 생존 위주로 사는 것을 곧 우상숭배 차원에서 판결하신다. 아무리 하나의 공동체로 단결되어도 심판을 막아내는데 는 소용없다.

Ⅲ 결 론

“초석은 나중에 놓인다”

초석이 놓이기도 전에 거주하는 위층들을 먼저 건설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역사를 다루시는 방식이다. 반면에 인간들은 투쟁과 경쟁을 통해 적절하다고 여겨진 것만 살아남아 다시 초석이 되고자 하고 어쩔 수 없이 주변으로 밀려난 자들은 그 인물을 역사의 핵으로 옹립한다. 이로서 공동체는 영원히 우상이 된다.

에스라, 느헤미야를 기억하는 유대인들이 수상하다. 이들의 관심사는 유대교라는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의 중보자는 예수님이 아니시다. 신을 도용하여 모든 벽에다 신의 이름을 새기면서 도배질하는 본인들이다. 자진해서 지상의 역사와 하늘의 신을 중재하는 중보자적 기능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교뿐만 아니라 모든 공동체의 역사는 영원히 마감되지 않는다. 게임은 한없이 연장되기 때문인데 이 와중에서 승자도 패배자로 사라진다. 누가 최후의 승자인지는 항상 보류되는 상황, 그래서 기어이 해답을 손에 쥘 수 없기에 더 서러운 곳이 이 세상이다.

이 모든 것이 떠난 그 뒷자리에는 십자가의 핏자국만 선명하다.

첨부파일 : 2013년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교재.hwp (48.5K), Down:22

이근호(IP:119.♡.78.175)

12-12-08 00:43

오자가 많아 수정해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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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