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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2 대구강의 21] - [피 82] - 주의 자리강의[피]

[12 대구강의 21] - [피 82] - 주의 자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2 대구강의 21] - [피 82] - 주의 자리

12,11,05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251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마가복음 5장 12절에서 13절을 보면 특이한 대화가 나온다. 귀신들이 '자기 자리'를 좀 마련해달라고 예수님과 흥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막 5:12)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막 5: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 특이한 대화 !!

여기서 '특이한 대화' 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개입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는 의미인데, 그 자리에 인간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물론 인간은 그 자리에 없었지만 말이다. 즉 인간사회에서 인간들끼리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그런 대화는 여기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께서 오셔서 청년 속에 들어있던 여러 귀신들을 쫓아내실 때, 그때 청년 속에 들어있던 귀신과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 말이다.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사람들이 이렇게 있는데 여기에 공자나 석가모니가 등장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공자나 석가모니는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가? 물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예수님이 등장했다고 하면, 예수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가복음 5장에도 나오듯이 귀신과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시는 그 모든 말들은 어떠한가? 귀신은 알아듣는데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생각하는 동네가 넓은 것이 아니라 좁은 동네라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기도를 하셔도, 그 기도의 내용은 좁은 동네에서 생각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지, 예수님이 생각하는 그 나라와 그 의와는 상관이 없는데, 그래서 그런 내용으로 기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무엇은 구하지 말라는 의미인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라는 것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는 것인데, 물론 그런 것이 아니면 구할 게 없을지 몰라도 말이다. 아무튼 그런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인데, 천국에 갈 자들이 지옥에 갈 놈들과 같은 기도를 하면 천국에 가는 티가 나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그 나라와 그 의'에 해당되는 내용을 구하게 되면, 그것이 곧 예수님과 같은 생각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은 예수님은 먼저 알고 계시니, 물론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지만, 성령을 받은 자들은 이해하는 그 나라와 의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 예수님, 제발 자리 좀 내주세요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나라와 그 의'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즉 예수님이 마귀와 대화하는 가운데 그들이 뭐라고 하는가? 여기 교재에 보면 "귀신들이 '자기 자리'를 좀 마련해 달라고 예수님과 흥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라고 하는데, 이게 상당한 난해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귀신은 자리가 없어도 되는 줄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귀신들은 술술 날아다니는데, 그런데 그런 귀신들이 예수님에게 "우리에게 자리를 허락하소서" 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너거들 자리는 너거들이 알아서 선택해서 앉으면 너거들 자리인데, 그런데 왜 굳이 예수님에게 그 자리를 달라고 하는가?"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귀신들이 자기 자리라고 여겨서 앉았다 싶으면 예수님이 오셔서 쫓아내고, 또 앉았다 싶으면 쫓아내신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멸망을 당할 때가 아닌데, 그러니 그때까지라도 자기들이 활동할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그렇게 귀신들이 예수님에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귀신들이 이런 요구를 한다는 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그것은 곧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이 자기 자리를 확보할 수 없는 활동을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하시는 일의 목적은, 귀신들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는 말이다.

◈ 귀신의 자리가 곧 청년의 자리 !!

그러면 방금 살펴본 마가복음 5장에서, 귀신은 그동안 어느 자리를, 도대체 누구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청년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가? 거라사 지방의 무덤 가에 살고 있던 어느 청년의 자리를 귀신이 그동안 확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예수님께서 그 청년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면, 청년은 누구와 동거를 하고 있었겠는가? 청년은 계속해서,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닌 수천 마리의 귀신들과 같이 동거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막 5: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막 5: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막 5: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막 5: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막 5: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막 5: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막 5:7)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막 5:8)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막 5: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막 5:10)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막 5: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막 5:12)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막 5: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 그러면, 예수님께서 청년을 찾아오신 이유는?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조금 더 상세하게 생각해볼 것은 무엇인고 하니, 단순히 예수님께서 그 청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는지, 아니면 또 다른 의도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그 청년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면, 우리가 귀신에 어디로 들어가든지 거기에 대해서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과 귀신이 자리에 대해서 흥정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은 곧 예수님께서 단순히 그 청년을 구원할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귀신의 속성을, 즉 무엇이 귀신인지를, 즉 "니가 귀신을 아는가?" 라고, 혹은 "니가 귀신을 보았는가?" 라는, 귀신의 활동영역이나 귀신이 미치는 영향 등이 어느 정도로 광범위하고 대단한지,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리싸움이니 말이다.

아무튼 귀신들이 청년에게서 나갔는데, 그런데 나가서는 어떻게 되는가? 자기들이 나가서 다시 들어갈 곳이 없으니 귀신들이 어떻게 하는가? 그때 마침 산비탈에서 돼지 떼가 있었는데, 여기는 바닷가이고 말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기 무덤 가에서 말씀을 하시고 말이다. 그때 귀신들이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라고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 돼지 아저씨, 나와 동거해주세요 ??

그렇다면 여기에서 "왜 돼지인가?" 라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이 마가복음 5장에서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데, 즉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갈 때 돼지 떼에게 허락을 받는가?" 라는 것이다. "돼지 아저씨, 당신의 자리를 나의 자리로 삼고 동거하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예를 들어서, 남자가 여자친구의 집에 갈 때는 그냥 불쑥 문을 열고 들어가는가? "제가 당신의 집에 가도 됩니까?" 라고, 그렇게 일단 허락을 받고 들어가서 동거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네 상식이고,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나의 영역에 들어올 때는 반드시 나의 허락을 거쳐야, 나는 그 존재와 동거를 할 수 있다" 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하지만 귀신의 경우에는, 그들이 돼지 떼에 들어갈 때는 어떠했는가? "돼지님, 당신의 자리에 좀 들어가도 됩니까?" 라고 사전에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지 이전 청년에게 들어갔을 경우에도, 전혀 그 청년에게 사전에 허락을 받은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 인간의 운명은, 자기 선택이 아니라 !!

그러니 예수님께서 귀신들을 추방하고 그 경로를 성경에서 이렇게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인간은 자기 선택에 의해서 자기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귀신뿐만이 아니라 예수님도 역시나 마찬가지인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들어갈까? 말까?" 라고, 그렇게 우리에게 허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나 돼지는 도대체 무엇인가? 뭔가 하늘전쟁에 있어서 대리전쟁을 치르는, 일종의 하수인들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래 전쟁은 인간을 빼놓고 하는데, 그런데 거기에 대한 희생은 인간들이 당하는, 또한 돼지들도 덩달아서 희생을 당하는 입장에 놓여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조금 전에 제가 기도를 언급하면서 뭐라고 했는고 하니, 늦게 오신 분들을 위해서 다시 이야기를 하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곧 이방인들이 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말이다.

◈ 나를 잡아드세요 !!

그러면 이것을 귀신과 연관시켜서 생각해보면, 이방인들이 기도를 할 때 "하나님 아버지, 귀신이 나에게 들게 하지 마옵시고" 라고 하지 않고, 그러한 영적인 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라는 것만 얻어 챙기면, 기도는 이제 응답이 되었으니 기도로서는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라고 하는 청년에게 귀신들이 허락을 받지 않고 불쑥 들어갔다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들어오는 귀신을 막을 수 있는 방어막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무엇인고 하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라는 것을, 그러한 것을 24시간 온 종일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귀신에게 그야말로 "나를 잡아드세요" 라고, 그렇게 노출된 상태라는 것이다.

그것이 요즘의 젊은 사람들의 특징인데, 특히 울산의 젊은이들이 말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라는 것 말고 다른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데, 자기에게 도대체 귀신이 들어왔는지 나갔는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구하지 않겠습니다 !!

그런데 성도는 어떠한가? 그 나라와 의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는데, 그러니 이게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말이다. 이러한 기도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그것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과 연계가 되어있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마태복음 6장에 하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 자체는 무엇인고 하니, "'저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라는 것은 구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말이다. 그것을 전제로 해서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위해서 기도하면, 혹시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라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 트릭을 쓰면서 기대를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실제로는 그 나라와 의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렇게 그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은,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에다 하나 더 추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러한 것을 빼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런 시건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는데, 물론 늙은 사람들도 철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 돼지 떼에 들어간 귀신들의 운명은?

이렇게 예수님이 그 청년에게서 귀신들을 내어쫓으니 그만 돼지 떼에 귀신들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돼지 한 마리에 귀신이 하나가 들어갔는지는 통계를 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돼지들은 귀신이 들어가기 이전에는 한가로웠다는 것이다. 풀이나 뜯고 말이다.

그런데 귀신들이 들어가고 난 다음에 돼지 떼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만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는데, 그러면 평소에 돼지들이 해수욕을 하지 못해서 안달이 났던가? 전혀 그런 것이 아닌데, 그러면 왜 갈릴리 바다에 뛰어들어갔느냐는 말이다.

그것은 분명히 제 정신이 아니라는 소리인데, 돼지에게 제 정신이 있다면, 귀신이 들어오면 그 귀신의 정신이 돼지의 정신을 이긴다는 말이다. 그러니 제 정신이 아닌데, 그러면 어디로 가겠는가? 바다로 뛰어들어서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죽고 사는 문제는 귀신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죽게 되어있는데, 우리가 곧 돼지과도 같으니 말이다.

◈ 우리 인간은 어차피 돼지 떼 !!

그렇게 우리는 어차피 돼지인데, 그러면 이 돼지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라는 것인데, 거기에 귀신들까지 들어왔으니, 지금 자기가 죽는 것인지 사는 것인지, 거기에는 전혀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그저 산비탈의 돼지 떼처럼 먹는 것에 몰두하는데, 여기 산비탈이 음식 동네였는데, 그러니 여기에 온갖 돼지들이 다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라고 하시는 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라는 의미인데, 즉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라" 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귀신의 추방시킨 주님의 음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음성이 들어오면 귀신은 견딜 수가 없는데, 발작을 일으키면서 귀신이 나가든지, 그게 아니면 주님이 나가든지, 아무튼 그런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설교를 하든지 복음을 전할 때 제대로 해야하는데, 그래야 있는 귀신이 뒤에 앉았다가 뛰쳐나가든지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런 일들이 있어야만 하는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라고 염려하면서 온 자들이 그냥 합세하도록 용납하게 된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설교이고 복음을 전한 것이라는 말이다.

◈ You are a '영적 돼지' !!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족이나 친척들을 만나더라도, 물론 그쪽에 굳이 입을 떼지 않으면 그냥 있어도 되겠지만, 거룩한 것을 개나 돼지에게 주지 말라고 했으니 말이다. 무슨 TV동물농장도 아니고 오늘 동물이 많이 등장하는데(ㅋㅋ), 그런데 그쪽에서 먼저 운을 뗄 수가 있는데,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것이다. "너거 교회는 아직도 제대로 안 되지? 헌금도 하지 말라고 하니 교회가 제대로 되겠나?"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신호인데, 그래서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이 놈의 돼지야!" 라는 식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라고 염려하는 것이 곧 돼지이지, 다른 게 무엇이 있느냐는 말이다. "누구를 영적돼지로 보나?" 라는 말이 있는데, 하지만 그게 곧 영적돼지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한 돼지는 귀신이 들어왔을 때 그만 죽음으로 내닫고 말았는데, 그런데 인간의 입장은 무엇인고 하니까,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라는 것이다. 부자는 천국에 가는 것이 그만큼 힘이 든다는 말이다.

(마 19: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마 19: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 불어라, 로또 광풍 !!

그러면 귀신이 들린 돼지들이 추구하는 게 무엇인가? 죽을 때는 죽더라도 부자는 한번 되고 죽겠다는 것인데, 그래서 사람들이 로또를 산다는 것이다. 로또를 사는 사람들 중에서는, 당첨이 되면 교회와 교육관을 짓는데 헌금을 하겠다는 자들도 있는데, 그것을 시험해보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그런 자들이 당첨이 되지 않으니 다행이니, 만약에 걸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한국교회에 로또 광풍이 불 것이 너무나 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부자가 되어서 물에 빠져죽는데, 왜냐하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그만큼 힘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귀신이 들어있는지, 그것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그것을 점검하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귀신이 없고 성령이 있는 자들은 감사히 받을 것이고, 귀신이 있는 자들은 뛰쳐나간다는 것이다. 아니면 자기가 뛰쳐나가든지 말이다(ㅋㅋ). 그러니 귀신을 품고, 귀신이 인도하는 대로 뛰쳐나가든지, 그게 아니면 귀신만 나가고 자기는 회개를 하든지 말이다. 늘 그런 현상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왜 귀신이라는 영물이 자신들이 머물 '자리'를 필요로 했을까? 그것은 바로, 그 존재의 정체는 그 존재가 머무는 자리로서 말해주기 때문이다. 즉 "내가 누구인가?" 라는 것은 '내가 머문 자리'가 대변해준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의 거처를 친히 만드신다.

(출 15: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 머물 자리를 주소서 !!

영물이 자신들이 머물 '자리'를 왜 필요로 했는고 하니, 그것은 바로, 그 '자리'로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립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나는 누구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나는 이런 자리를 깔고 앉습니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동안 마귀들이 인간의 자리를 자치했다는 것이다.

(혹시, 저기 뒤쪽에 책이 없습니까? 지금 이 대목이 중요한 부분이라서 그러한데, 없으면 같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들어도 알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또한 여기 교재를 보면"심지어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의 거처를 친히 만드신다" 라고 되어있는데, 이 대목을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지금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까, 모든 귀신의 자리를 추방하듯이, 하나님의 세상에서는 모든 자리를 주님의 자리로 만들고, 주님의 자리 외에 다른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의 자리는 자기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지정해준 자리에만 성도가 앉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 오늘은 '자리'에 대해서 !!

여기 출애굽기 15장 17절을 보면 뭐라고 말씀하는가? 오늘은 자리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겠는데 말이다. 자리를 살펴보면, 거기서 어떤 의미를 알 수 있는고 하니, "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내 자리가 나를 만든다" 라고 하는, 그런 관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리와의 관계를 말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리가 귀한 자리라고 하면 당연히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반면에 천한 자리라고 하면 천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어떤 그릇인지, 그 그릇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엇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지, 그러한 그릇이 말이다.

이 출애굽기 15장 17절이 약간은 어려운데, 다시 한번 보자.

(출 15: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집을 지을 때는 벽돌과 모래와 철근 등이 필요한데, 그러면 사람은 꼭 필요한가?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닌, 들어와서 사는 사람이 말이다. 필요하지 않는데, 사람은 집을 다 지어놓으면 그때 들어와서 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 자체에 사람이 요구된다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는 것이다.

에스겔서에 보면,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에 천사들이 있는데, 에스겔 1장이나 이사야서 6장 등에 보면 그런 내용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천사들이 없는 자리는 자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출애굽기 15장 17절에 나오는 이 자리에 대해서 상당히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겔 1:4)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겔 1: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물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성전인 것을 알기는 아는데,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약성경에 나오는 내용이고, 그러니 서로의 간격이 너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15장과는 말이다. 그러니 그 중간에 뭔가 차곡차곡 채워야 하는 논리적인 것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감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제일 먼저 '성막'의 등장 !!

그래서 제일 먼저 나온 논리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곧 성막인데, 그러면 성막에서 주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동서남북, 도대체 어느 쪽이냐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약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많이 어려운 내용인데(ㅋㅋ), 신약에서의 자리는 동서남북이 일체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몸 자체가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에, 그런 동서남북이 거론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출애굽기에 나오는 성막은 어떠한가? 동서남북이 다 있는데, 그 출입구는 동쪽이고 나머지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얘들아, 내 자리는 너거들의 마음이다" 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지정된 주님의 자리가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각자의 그 특징이 있기는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진영이 있다고 하면, 그 숫자는 남자만 50만 정도로 추정이 되는데, 그러니 모두 다 합치면 100만은 족히 넘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성막을 만들었는데, 100미터, 50미터로 말이다. 참 그게 아니라, 50미터, 25미터인데, 나중에 에스겔서에 나오는 새성전에서는 두 배로 확대가 되는데 말이다.

여기 성막 앞에는 번제단이 있는데, 이렇게 각이 져있는데, 여기 밑에서 불을 지펴서 제물을 태운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 사이에 물두멍이라고 해서, 바다라고도 하는데, 물론 조금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거기서는 손을 씻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누어지는데, 칸막이가 되어있고 또 천사가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성소 안에는 등대가 있는데, 하나의 기둥에 7개의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 맞은 편에는 떡상이 있어서, 6개씩 두 줄로 해서 12개를 놓는다는 것이다. 그 앞에는 향을 피우는 분향단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커텐이 쳐져있는데, 거기에는 천사그림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처럼 어떤 공간을 점유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신약시대의 "우리 몸이 성전이다" 라는 최종결론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연착륙이라고 할까, 즉 갑자기 "니 몸이 성전이야"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비행기가 서서히 착륙을 하듯이 그렇게 논리가 가라앉으면서 전개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에 있어서 성막이 있는 공간과 나머지 공간은 어떻게 되겠는가? 성막이 있는 공간만이 거룩한 공간이 되는데, 그 나머지는 더 더러운 공간이 되는데, 그리고 이스라엘 바깥에 있는 공간은 또 나름대로의 더러운 공간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인 약속이 어디까지, 마치 방사능처럼 빛을 비추는고 하니까, 즉 그 영향을 어디까지 미치는고 하니까, 이스라엘 진영까지만 미치고, 그 바깥에는 자비의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어린양의 피의 효력이 이스라엘 진영까지만 미친다는 것이다. 그 바깥은 그냥 내버려두는데, 그래서 멸망을 당한다는 말이다.

◈ 하나님이 성막에 계신다고 해서 거룩한 것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말하고 싶어도 계속 참아왔는데, 여러분도 어렵더라도 좀 참아달라는 말이다(ㅋㅋ).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즉 "하나님이 지금 여기 성막에 계신다고 해서 거룩한 것인가?" 라는 점인데, 그건 아니라는 말이다. 바로 그것을 제가 출애굽기 15장을 가지고 설명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25장 이후에 보면 성막에 관해서 나오는데, 하나님의 거룩이라는 것은 여기 성막에 계신다고 해서 거룩한 것이 아니라, 즉 비행접시가 앉았다고 해서 거룩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백성들이 뭔가 성막을 향해서 주어야만 하는데, 그 주는 것을 제단에서 받아서 걸러내어서, 그렇게 해서 "이미 완전하게 걸렀습니다" 라는 효과가, 그 효과가 제물을 제공한 그 자리를 향할 때, 비로소 거룩의 값이 제대로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우, 댁길!!)

◈ 발생된 죄를 주님 앞에 늘 내어놓는, 그런 관계 !!

그러니 백성들이 반드시 필요한데, 왜 필요한가? 이 백성들은 "어린양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라고 하는 것을 마음껏 보여주는데, 바로 그렇게 보여주는 범위를 언약의 장(場), 즉 '언약의 영역' 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성막이 예수님이고 머리라고 하면 그 바깥은 성도이고 지체가 되는 모양새인데, 그것이 곧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무엇이고 교회가 무엇인고 하니까, 주님의 거룩의 효과를 받는데, 단 성도는 무엇을 빠트리면 안 되는고 하니, 매일같이 우리에게 무엇이 발생된다는 말인가? 죄가 발생되어서, 그 발생된 죄를 주님 앞에 늘 내어놓는다고 하는, 그런 관계를 빠트리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 그런데, 개혁주의 신학은?

개혁주의 신학은 이러한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왜 그런고 하니까, 개혁주의는 자기 구원욕심만 챙겨서, 그래서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십자가로 받습니까? 그러면 십자가를 믿고 거기에 합당하게 행하면 됩니까? 사도들의 권면과 명령이 그것 때문에 있었지요? 그러니 예수님을 믿고 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그것이 교회가 맞지요?"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고 하니까, "어떻게 하면 내가 한번 살아볼까?" 라는, 그렇게 관심이 자기 외에 다른 것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이고 십자가고, 그런 것은 다 들러리라는 말이다.

◈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천국에 어울리지 않아 !!

어제 오후시간에 뭐라고 했는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천국이 갈만한 나라가 되지 못한다" 라고 했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천국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 땅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식으로 교회를 다녀놓고는, 개혁주의 신학이 어떠니 저떠니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가기는 어디를 간다는 말인가? 누가 넣어준다는 말인가? 넣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우리를 구원시키기 위해서 있는 나라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엉뚱한 소리를 듣지 싶은데, 하지만 할 말은 해야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천국은 우리를 구원하려고 있는 나라가 아니고, 예수님의 효과의 영역이 어느 정도로 센지,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있는, 철저히 예수님의 나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 같은 인간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고 할 때, 그때 주님께서는 제일 좋아하신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구원받은 자기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의 효과를 증거하니 말이다. 즉 "많이 용서를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 라는 것이다.

(눅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 참 잘했어요 ??

신학을 좀 공부하고 나름대로 성경을 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야말로 가관인데, 도대체 관심사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언제나 자기가 잘났다고 하면서 끝맺음을 하는데, 그러니 "참 잘했어요!" 라고 하면서 자기 일기장에 자기가 도장을 찍는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사람들은 성경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자기 일기장을 들이대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의 행위가 가득 가득히 적힌 일기장을 말이다. 그러니 그런 일기장이 눈에 보이면 우리는 확 째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 일기장을 그렇게 들고 다니는지, 아무튼 성경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 그렇다는 말이다.

◈ 성막에서 율법이 흘러나옴으로서 !!

그건 그렇고, 이 출애굽기 15장에서 어려운 것이 무엇인고 하니, 지금은 이렇게 백성들이 갖다 바치는 것이 있는데, 죄를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죄가 죄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여기 성막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곧 율법이라는 말이다.

광주에서 그런 강의를 했는데, 출애굽기 20장부터 25장까지는 율법을 주어서 죄를 깨닫게 하고, 그리고 26장부터는 성막에 관해서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그 죄가 어떻게 해소되는지, 그것을 성막제도를 통해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성막을 만들어서 말이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까?

◈ 우리는 설문지에 체크만 하면 'OK' !!

율법을 주어서,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서 죄가 되게 하기 위해서, 물론 여기서는 십계명을 포함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죄는 율법을 주신 그 율법의 출처에게 우리가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율법은 일종의 비어있는 질문이 가득한 서류뭉치와 같다고 보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율법을 보고 체크하면 되는데, "이것은 지켰나? 아니오. 마음속으로 간음을 했지? 예.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했지? 예설. 돈을 사랑했지? 아멘" 이라고, 그렇게 체크를 해서 자기 이름을 적어서 내면 된다는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을 피를 발라서 찍으면 어떻게 되는가? 바로 합격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우리 인간을 구원시키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데, 그러면 무엇인가? 주님의 도장이 찍힌 새언약, 즉 예수님의 피와 살이 더욱 더 많이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즉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치게 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이것을 알아야 하는데, 물론 마귀가 온 힘을 다해서 가로막고 있지만 말이다. 마귀가 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귀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그래서 마귀의 종들이 여기 저기에서 설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 '거룩'을 '전쟁'으로 - 무능, 연약, 공포 !!

여기 성막에서의 거룩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닌데, 그런데 출애굽기 15장에서는 이 거룩을 전쟁으로 바꿔치기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쟁을 하시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무능한 자들로 보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능, 연약, 공포 등등, 그런 의미의 단어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평소에 무능하고, 또한 연약하고 공포를 느끼는 자들이라는 의미가 전혀 아닌데, 그들이 연약하고, 무능하고, 그렇게 공포를 느끼는 것은,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런 상황들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조성하신 환경이라는 말이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었는가? 뒤에서 누군가가 쫓아왔는데, 누구인가? 애굽의 아이들이 쫓아왔는가? "우리의 칼을 받아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가장 막강한 애굽의 대군이 뒤쫓아왔는데, 그래도 도망갈 자리라도 있으면 덜 공포를 느낄텐데 말이다.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에까지 도달했는데, 박태환이라면 수영을 해서 홍해를 건널 수 있었을지 몰라도, 하지만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하셨는데, 이렇게 되니 모세가 그만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모세야, 이게 뭐꼬? 우리를 죽이려고 환장을 했나? 똑바로 해라"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어제 낮 설교시간에 제가 "성도는 절망을 유지해야 한다" 라고 했는데, 그것도 넉넉한 절망을 말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늘 절망스럽고 막다른 골목에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바로 그때 우리 자신은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평소에 남들처럼 하라고 하면 잘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조성한 환경 속에서는 우리는 공포스럽고 연약함을 알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라는 것이 밝혀진다는 것이다. 영적인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부자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자기가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구원문제는 전혀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어떤 무능과 연약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님의 거룩한 나라에 가는데는 자기와 같은 인간성이나 양심으로는 전혀 불가능하고, 그래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물론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 이근호 -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로 망한다' !!

여기서 제가 방정식을 하나 적어보겠는데, 즉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로 망한다" 라는 것이다. 만약에 목회를 하면 그 목회로 인해서 목회자는 망하고, 또 사업을 하는 사람은 그 사업으로 인해서 망하고, 또한 직장을 다니면 그 직장이 그 사람을 망하게 하고, 그리고 주부는 주부로서 주부의 일을 하다가 망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처음부터 망하게 되어있는데, 그 망하는 폼은 자기가 하는 일로 통해서 생생하게 점령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로 인해서 말이다. 그러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할지 몰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서 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해도 인간은 자기가 하는 일로 인해서 망하게 되는데, 그러면 목회자가 목회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니가 목회를 아무리 잘해도 천국에 가는 것에 대해서는 무능하고 연약하며, 주의 일은커녕 목회를 하면서도 망할까 싶어서 벌벌 떠는 공포에 잠겨있는 존재임을, 그것을 어느 자리인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는 자리를 앞당겨서 여기 출애굽기 15장에서 조장하셨다는 것이다.

◈ 이 세상은 공포의 도가니, 즉 전쟁상태 !!

그것이 바로 어떤 상태인고 하니까, 전쟁의 상태라는 말이다. 그렇게 전쟁 상태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인고 하니, 악마의 포로가 되든지, 아니면 주님의 포로가 되든지, 그렇게 둘 중에서 하나인데, 어차피 우리는 주인공은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전쟁을 일으키신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니는 니 인생에서 니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라는 것이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능과 연약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은, 이 세상만사가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그런데 상태에 우리가 붙잡혀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다.

세상만사는 우리의 뜻이 아니라 다른 뜻을 위해서 돌아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뜻의 들러리가 되는데, 그렇게 들러리가 된다는 것이 인간에게는 상당히 기분이 나쁜 이야기이지만, 하지만 사실은 그게 구원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은 그동안 마귀의 들러리로서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라는 그것 외에 다른 것은 전혀 상상도 해본 것이 없는, 그러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나라와 그의'는 전혀 우리와는 거리가 먼데, 그런 것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 까마귀와 노숙자 !!

어제 오후에도 그런 설교를 했는데, 미가 선지자가 계시를 전하면서 어디 일당을 받은 적이 있는가? 엘리야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면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얻어먹은 것이 무엇인가? 기껏해야 까마귀가 물어다주는 것인데, 까마귀가 무슨 팔보채를 물어다주었겠는가? 아니면 탕수육을 물어주었겠는가? 그냥 자기가 먹은 것을 나눠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건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그게 무슨 사람으로서 할 짓이냐는 말이다. 까마귀에게 얻어먹는 처량한 신세인데, 노숙자도 그런 노숙자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역에 가보라는 것이다. 그런 노숙자가 있는지, 그러니 그것은 비참함 그 자체라는 것이다.

◈ 여기에 점선으로 된 또 다른 영역이 !!

하지만 이런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라는 것과 전혀 다른 영역의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은, 물론 이게 출애굽기 20장부터는 나오지만 15장에는 나오지 않는데,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한번 그려보자는 것이다. 이것도 참 그리기가 어려운데 말이다.

여기에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있고, 그리고 앞에는 홍해가 있는데, 그리고 그 뒤에는 막강한 애굽의 전차부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겁에 질려서 덜덜 떨고 있는데,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성막이 점선으로 해서 담겨있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백성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성막은 앞으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내려오고 난 뒤에 만들어지니 말이다. 그런데 인간은 홍해를 건너가지 못하는데,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건너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미 백성들 속에다 성막을 만들어놓았는데, 즉 어린양이 아침마다 죽는 장소를 이미 마련해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애굽에 쫓기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껏해야 생각하는 것이 "저기 뒤에 쫓아오는 애굽 군사들에게 쫓기기 않고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 라는 수준인데, 왜냐하면 앞에 있는 홍해바다는 도저히 건널 수가 없기 때문에 말이다.

◈ 점선에서 실선으로 !!

하지만 여기 점선으로 되어있는 것이 실선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반드시 홍해를 건너야 하는데, 그러니 홍해가 갈라진 것은 백성들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여기 점선의 취지를, 즉 홍해에 빠져 죽는 죽음을 능가하는 더 큰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래서 홍해바다는 갈라지게 되고 백성들은 그 사이를 건너가게 된다는 것이다. 점선으로 된 이 성막으로 인해서 말이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모르는데, 그래서 "야, 우리는 애굽에서만 살았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나는 니 자신에서부터 보라(??)" 라는 것이다. 그렇게 건너오게 될 때,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교회인데, 죽음의 권세조차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다.

(마 16: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 자기 믿음이 아닌, 예수님의 피 !!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오해해서 뭐라고 하는가? 베드로가 고백한 그 믿음이 죽음의 권세를 이긴다고 하는데, 그것이 엉터리이고, 베드로의 고백이 아닌 예수님의 피가 죽음의 권세를 이긴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예수님의 피를 믿지 않은 인간들은 무엇인가? "나는 믿습니다, 믿습니다" 라고 하는데, 즉 자기 믿음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줄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닌데, 오직 예수님의 피가 구원하는 것이지, 자기 믿음이 구원하는 게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믿음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가 준 선물인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믿음이란 파이프를 통해서 주어진 예수님의 피로 말이다. 그러니 그 믿음에는 예수님의 피가 가득히 담겨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를 믿어야, 그게 참된 믿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 믿음을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파이프를 믿는 것에 불과한데, 그 껍데기뿐인 파이프를 믿는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자기 믿음이 아닌, 자기 믿음 속에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이 있음을 믿는 것, 그 피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 나와있는 것은 모두 압축이 되고 응축된 개념인데, 그것을 역사라는 영사기로 돌려서 스크린에 펼치게 되면, 그게 바로 구약성경이라는 것이다. 그런 구약성경도 그 해석이 십자가에서 소급해서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구약으로 바로 차고 들어가게 되면, 구약성경은 잘라내도 되는 과거의 에피소드처럼 여겨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 과연 누구와의 전쟁인가?

아직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닌데, 제가 '전쟁' 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이렇게 전쟁이라고 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애굽 군사들조차도 이 전쟁을 어떻게 생각했는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인가? 애굽 군사들인가?" 라고, 그렇게 두 집단 사이의 전쟁으로 오해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이 전쟁은 분명히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아닌, 이스라엘 속에 함께 계시는 주의 이름, 즉 하나님의 이름과의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애굽과의 전쟁이 아닌, 애굽 사람들의 믿던 신과의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출 15: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이스라엘' 이라는 그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가? "신과 겨루어 이겼다" 라는 것인데, 그렇게 신과 겨루면 반드시 인간과 겨루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자체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창세기 32장에서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 자체가 신을 이기는 것인데, 차원이 다른데, 인간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창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그래서 로마서 14장에 보면 심판을 누구에게 맡기라고 하는가? 주님께 맡기라고 하는데, 즉 심판은 주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자기가 심판을 하게 되면, 하나님마저도 자기 똘마니가 되고 마는데, 그렇지 않은가? 큰소리를 치고 보니 자신이 없는데, 역시 14장이 아닌 12장에 나오는데 말이다(ㅋㅋ).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주님께서 친히 원수를 갚아주신다는 것인데, 그러니 "우리의 원수가 주님의 원수라고 할 수는 없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자기 원수는 개인적인 복수심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데, 그게 꼭 주님의 원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와 친한 사람이 얼마든지 주님의 원수가 될 수 있는데, 그러니 우리의 개인적인 선에서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 우리 남편은 웬수입니다 !!

하지만 사람들이 하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이 그 안에 개인적인 복수심들이 들어있는데, 특히 가정적으로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 남편이 회개케 하옵소서" 라고 하면, 그게 무슨 의미인가? "우리 남편은 웬수입니다. 남편 때문에 못살겠습니다" 라는 것이다(ㅋㅋ). 그렇게 은근히 사견이 개입된다는 말이다.

다시 강조를 하지만, 인간은 연약하고, 무능하고, 공포에 떠는데, 그런 상황을 의도적으로 누가 만든다는 것인가? 주께서 그렇게 하시는데,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스스로 해결해보겠다고 하는데, 연약하지 않고, 무능하지 않고, 공포에 떨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서 하나님에게 사적인 복수심으로 기도에 열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 기도는 폭발이다 !!

우리 인간은 그런 복수심이 있어야 기도를 해도 빡시게 하게 되는데, 그런 것이 없다고 하면 기도도 그야말로 어설프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한이 맺혀야지 기도가 나오는데, 그래서 제가 지난번 강의에서 "기도는 폭발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유투브 강의에서 말이다.

기도는 그야말로 폭발이고, 발산이고, 그냥 마구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이 맺히게 되면, 제 아무리 기도하지 말라고 말려도 안 된다는 것이다. 분통이 터져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데, 그럴 때 기도가 마구 마구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한 기도를 녹취해서 들어보면 어떠하겠는가? 사적인 복수심과도 같은 자기의 개인적인 내용들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억울해서 미치는데, 하지만 정작 억울한 분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가 억울해한다는 것이다.

그런 개인적인 복수심에 매여있게 되면, 그것은 당연히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라는 것에 얽매이게 되는데, '그 나라와 그 의'로 인해서 억울해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단지 "주님, 저 인간으로 인해서 제가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저 똥차를 제발 좀 치워주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 원리가 현대세계에도 그대로 통하는 게 무엇인고 하니, '블랙박스로 본 세상'과 같은 TV프로를 보면, 주로 교통사고를 다룬 것인데 말이다. 얼마나 억울한지 모르는데, 자기는 분명히 핸들을 잡기 전에 기도까지 했는데, 그런데 졸음운전을 하던 놈이 와서는 그만 박아버리고 말이다. 그러면 운전을 하기 전에 기도를 하라는 것인지, 하지 말라는 것인지 헷깔린다는 것이다.

◈ '주의 이름'이 용사 !!

아무튼 여기서 '전쟁' 이라는 것은, 그것은 오직 주의 이름만이 용사임을 보여주는 전쟁인데, 그런데 주의 이름만이 용사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모르는데, 여기에 있는 이러한 난로, 휴지, 칠판 등과 것은 쉬운데, 눈에 보이니 말이다. 그런데 주의 이름은 어디에 있는가? 가격은 얼마이고, 크기는 어느 정도나 되느냐는 것이다.

(출 15: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러니 왜 없는 소리를 하느냐는 것이다. 물체로 있는 것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는데, 그런데 그러한 것이 아닌 주의 이름을 믿으라고 하면, 도대체 그 주의 이름이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어려우냐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누누이 강조하는데, "주의 이름은 존재가 아니고 기능이다" 이라고 말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 말이 어렵다고 하는데 말이다(ㅋㅋ).

◈ 옛날 사람들의 조직신학 !!

여기서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하면, 옛날 사람들은 과학은 몰라도 신기하게도 무엇을 알았는고 하니까, 그게 곧 조직신학인데 말이다. 광물 속에는 자석성분이 있는데, 지구내부에 있던 광물이 화산활동으로 인해서 외부로 나온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지구 전체가 자석이 되어서,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해로운 광선도 막아주고 해서 생물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과학적인 설명인데 말이다.

아무튼 지구는 그렇게 자석으로 되어있는데, 그런데 그것이 옛날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신기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거리가 떨어져있는데, 그런데 이쪽이 저쪽에게 끌린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한 합당한 논리가 무엇인고 하니, 귀신이 있다는 것인데, 귀신이 있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달리 설명할 합당한 논리가 없으니 말이다.

분명히 직접 만져야 당겨진다는 것이 사람들의 상식인데, 그런데 자석이 있다고 하면 그렇게 만져서 당기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그것을 미처 알지를 못했으니까, 그게 곧 귀신이라는 것이다. 즉 귀신이 잡아당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이 있다" 라고 했는데, 그런데 그런 미지의 것을 자기들이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고 하니, 신의 감정으로서 표현한다는 것이다. 즉 "신이 화를 냈다. 슬퍼했다. 기뻐했다. 좋아했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 신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

그뿐만이 아니라, 같은 신이 같은 장소로서 그 사이를 나누는 것을 보아서는 어떻게 되는가? 이쪽에 가면 이쪽 신, 저쪽에 가면 저쪽 신이 되는데, 그러니 신들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많아지지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쪽 동네에서는 이쪽 신을 섬기게 되고, 또한 저쪽 동네에서는 저쪽 신을 섬기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신이 있다고 하면 그 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신과 종(?)의 관계를 이루게 되는, 즉 의식과 제례와, 그리고 신을 섬기는 방식과 교리가 반드시 여기에 수반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절에서 부처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전혀 기독교식은 아닌데, 그러니 부처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은 또한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어떻게 하는가? 좌청룡우백호(홍동백서?)도 따로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교회에서도 그렇게 하는가? 추수감사절에 한복을 입고 위치를 맞춰서 음식을 놓고 절을 하느냐는 말이다. 그게 아닌데, 교회에서는 나름대로의 예배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제례와 의식을 통해서 사다리를 타고 가서 추적을 해보면, 그러한 의식에 따라서 각각의 신이 따로 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 애굽에서는, 왕이 태양신의 제사장으로 !!

이러한 의식으로서 애굽에서는 태양신을 섬겼기 때문에, 그 태양신을 섬기는데 제사장으로 누가 등장하는가? 어제 오전예배시간에 했는데, 왕이 등장하게 되는데, 즉 왕이 신과 백성들 사이의 중재자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왕을 좋아한다고 했는가? 국가가 하나의 자궁, 즉 엄마의 몸 역할을 해주어야, 그렇게 자궁이 든든해야 자기가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나라가 무너지면 자기도 죽고 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신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신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 국가가 잘 되게 위해서 왕이 있어야 하고 말이다. 그러므로 왕은 백성들이 믿는 신으로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복을 따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실적이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 신과 신의 전쟁 !!

그런데 지금 이게 뭐라고 했는가? 전쟁인데, 즉 신과 신의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례와 의식을 따지게 되면, 결국은 누구와 누구의 전쟁인가? 신은 보이지를 않는데, 그런데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방법은 각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지시한 제사방법은 출애굽기 25장 이후에 나오는데, 우선 제사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 복장은 매우 화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신부처럼 말이다. 그리고 귓부리에 기름을 바르고 또 피를 바르게 되는데, 그리고 그 날도 다른 날은 안 되고 토요일 안식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도 정해져있는데, 그리고 절기도 정해져있고 말이다.

그러면 다른 종교에도 이러한 의식이 있는가? 있을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만의 신이 따로 있고, 그러니 의식도 또한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까 '주의 이름'을 이야기했는데, 그 주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데, 물론 저쪽 신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쪽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 '효과'가 곧 역사 !!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어떻게 해명하고 설명하는고 하니까, "이런 식으로 제사를 지냈더니만 효과를 보더라"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열을 냈는데, 즉 '효과'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효과가 발생하게 되면 그게 사건이 되고, 그러한 사건이 모여서 곧 역사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주의 이름이 일을 하면 어떻게 되는가? 기존의 세상 신들 역사 속에서 뭔가 끌어버리게 되는데, 즉 흠집을 내게 된다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질서가 있는데, 즉 제때에 비가 오고, 제때에 바람이 불고, 제때에 눈이 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사람들은 안심하고 씨를 뿌리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거둘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신이 횡포를 부리던지 변덕을 부리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농사를 지을 수가 없는데, 그러면 인간이 손해라는 것이다. 그럴 때는 대책이 무엇인가? 방금 자석 이야기를 했는데, 즉 인간이 다룰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다른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다른 능력, 즉 보이지 않는 신을 달래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 신을 달래주는 것이 곧 제사장이고, 왕 !!

그렇게 달래주려고 하면, 자기 쪽의 귀한 것을 바칠 때, 그것이 곧 정성을 표한 것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 쪽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 자기 자식과 자기가 기르는 예쁜 가축인데, 그런 것을 보이지 않는 신에게 정성을 다해서 바치는데, 착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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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