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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투브 강의 (10강, 11강) 성경의 가치, 임박한 진노 121115강의[신학]

유투브 강의 (10강, 11강) 성경의 가치, 임박한 진노 121115

이름 : 이근호(IP:117.55.145.100)

(10강)

(11강)

이한례(IP:203.♡.41.16)

12-11-16 12:24

10강-YouTube강의(성경의 가치)121115-이 근호 목사

오늘은 제 10강입니다. 10강 제목은 성경의 가치! 성경이란 것이 기존의 많은 사람들이 지혜, 똑똑함, 도덕과 윤리, 고상한 사람들의 그 체험담, 이런 인간의 지혜 담이 역사적으로 많이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하나 더 첨가해서 성경이란 것이 끼어들었다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성경이 기존의 인간들이 지혜서나 진리를 주장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겠죠.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성경을 언급한다는 것은 기존의 알고 있는 인간의 생각에서 나올 수 있는 세상 지혜서 중에 한권이라고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을 제대로 몰라서 그런 것이고, 성경을 진지하게 보았다면 세상의 윤리 도덕책하고는 전혀 다른 책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눈치 챌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이 세상에 인간으로서 살아가면서 제일 무서운 게 뭐겠습니까? 그것은 아마 가난일 겁니다.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게 없습니다. 한국에 있는 많은 선교사들이 가난한 나라에 선교하러 갈 때에 그들은 성경의 진리, 예수 그리스도, 복음, 그런 것을 증거 한다고 사명 받았다고 그렇게 나오지만, 막상 현지에 가보면 복음을 전한다든지, 진리를 전하는 것보다 우선으로 그들에게 돈과 떡과 신선한 마실 물을 제공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 인양 생각이 들 것입니다.

라이베리아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서쪽 해변에 있는 나라인데 세계에서 못 살기로 열 번째 속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국민의 75%가 실업자인데 방송에 보니 거기에 3살 먹은 아이가 등장합니다. 3살 먹은 아이가 하루 종일 뭘 하느냐 하면, 망치를 들고 돌을 깹니다. 그것도 이틀 동안 굶어있는 상태에서. 그걸 취재하러 갔던 한국의 방송사가 그걸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할 말을 잃었답니다. 도대체 3살 된 애를 하루 10시간동안 돌을 깨야 되는 이유는 그렇게 암석을 깨어서 아버지가 큰 암석을 깨면 아이는 망치를 들고 3살 먹은 아이가 하루 종일 깨는데 그걸 자갈로 만들어주면 그러한 일로 한 끼 밥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한 라이베리아 나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신앙이고 성경의 진리를 모르고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 가난에서 약간이나마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 급선무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그 나라에 선교사가 갔다면, 이것은 성경은 제쳐두고 교육에 대해서, 뭔가 가르쳐야 된다는 것, 산아제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되겠고,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문제.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 보이게 마련이니까 세상을 볼 때 허비하지 않고 다른 어떤 식물이 주어질 때 그걸 아낄 수 있는 그러한 정신체계. 그러니까 물질적인 가난을 벗어나는 해결책은 어쩌면 신앙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무장, 정신적인 교육, 반복적인 훈련, 그런 걸 통해서 그것을 근본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면, 그게 진정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요, 복음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어떤 사람이 성경을 가지고 그들에게 접근한다면 그들은 성경을 대할 수 있는 그러한 기본적인 여건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전하고 그리고 성경말씀을 전할 수 있는 그러한 기회를 가질 수 있겠느냐 하는 의심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성경보다도 사람을 가르치는 교육문제가 성경보다 우선된다면, 결국 성경이라는 것도 그 사람을 잘 가르쳐서 스스로 자기의 능력, 자질을 개발해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면 이것 또한 성경이 갖고 있는 하나의 가치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같은 생각이라면, 예수님 같은 마음이라면 과연 예수님이 그 나라에 갔을 때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마태복음 13장 14절부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 본문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성경을 말씀하시는 것은 그 사람이 말씀을 알아들어서 서로 깨우침을 받아서 그래서 자기 형편이 살만한 형편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는 그런 방안으로서 주께서 그런 말씀을 주신 게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은 물질 없이는, 그리고 재물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재물을 얻으려면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기 때문에 정신적인 훈련이 돼야 되는데 그 정신적 훈련은 반복적인 학습과 교육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럼 그걸로 만족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걸로 인간답게 사는 것이 그게 끝이 되지 않겠습니까? 결국 사람이 성경을 가르치겠다는 것도 니가 스스로 설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그런 관계에서 만약에 교회나 선교사가 가르친다면, 결국 이 성경의 가치라 하는 것은 원래 예수님이 언급했던 하나님의 말씀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세속적인 삶의 유지, 또는 그걸 지탱, 번성, 그런 쪽으로 성경을 활용하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들이나 선교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래야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친화력을 가지고 예수님에 대해서 좋은 호감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선입관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에게 친화력을 갖고 예수님을 좋아하게 되면, 그것을 목사들이나 선교사들은 그걸 예수님 믿고 예수님을 사랑한다. 그 사람은 아마 이런 혜택과 이런 삶의 유지를 제공했기 때문에 그런 좋으신 하나님, 그런 자비가 넘치는 메시아를 받아들여서 아마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는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마태복음 13장 읽었던 14장 1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히려 반대로 나옵니다. 사람들이 뭘 원하고 있다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돌이 떡 되게 하는 것, 그래서 나를 배불리 할 수 있는 메시아라면, 하나님이라면, 믿을 용의가 돼 있다. 이것은 사람이 아무리 물질에서 정신으로 또 정신에서 영적으로 더욱 더 성숙되려고 하다가도 결국은 인간은 그 물질 바탕 위에 있는 정신세계라는 것, 또는 영적 세계라는 것도 사실은 이것은 구실이고 핑계에 불과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먹는 것, 입는 것이 보장된다는 조건하에 그것을 하나의 취미생활처럼 거기에 덤으로 얹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그들 인간은 존재하지 않아요.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보탬이 되는 예수라면 사랑할 용의가 돼 있고 믿을 용의가 돼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죽어도 좋다는 식으로 나올 위인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주신 것은 오늘 제목이 성경의 가치인데, 성경의 가치라 하는 것은‘ 나한테 뭔가 보탬이 된다는 조건하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을 용의가 돼 있습니다.’ 라는 그 거래 흥정에 예수님은 그걸 익히 아시고 오히려 그걸 거부하시고 단죄하십니다. 내가 주는 모든 말은 너희들이 믿고 싶어도 믿지 못하게 하고 알고 싶어도 알지 못하게 하는 그 말씀을 내가 너희에게 제공한다. 그렇게 나오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 17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하지만 너희들은 이걸 귀로 들음으로, 그 다음에 복이 있다고 16절, 17절에서 하고 있습니다. 복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내 먹을 것 입을 것 주시고 나라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면, 그렇게 많은 혜택을 주신 예수님을 제가 믿고 그 하나님을 제가 진짜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라는 사람을 거부해버리고, 주의 모든 말씀은 내가 존재하는 자체가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하신 일, 그것을 증거 하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게 했다는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사람, 이것은 성령의 축복을 받은 사람뿐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을 골라내기 위해서 주께서 그런 사람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주신 겁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의 가치입니다.

이한례(IP:203.♡.41.16)

12-11-16 14:44

11강-YouTube강의(임박한 진노)121115-이 근호 목사

열한 번째 강의의 제목은 임박한 진노입니다. 요시야 왕이란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은 이스라엘이 둘로 갈라지면서 북쪽 나라 왕이 아니고 남쪽 유다 나라 왕인데 BC 7세기경의 왕입니다. 이 왕이 16세 때 새로운 정신적인 변화, 영적인 변화를 겪었고 힐기야란 사람에 의해서 하나님의 율법 책을 받게 되는데 그 율법 책에 보니까 하나님의 약속들이 거기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현재 한 왕으로서 자기 유다나라의 형편을 발견한 하나님의 율법 책에 의해서 다시 한 번 영적으로 점검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본인부터 해서 온 나라가 뭔가 이 유다나라가 하나님의 말씀과는 멀어도 거리가 너무 멀게 그동안 유지돼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선대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었고 다른 이방나라의 번성과 그들의 통치이념에 그들은 거기 같이 말려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정치하는 것이 아니고 백성들이 또는 주변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정치하게 되면, 나라가 그나마 유지가 된다. 라는 생각을 갖고 정치를 한 겁니다. 이러한 정치 방식은 보통 오늘날 민주정치 가운데서 정치인들이 하는 것과 그렇게 동일한 정치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 앞이 아니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취지 않는다면, 전혀 하자 없고 정상적인 정치를 해온 겁니다. 하등 지적받을 일이 없고 문제 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하나님의 율법 책이 발견됐다는 그 점에 있습니다. 새로운 기준이 등장한 겁니다. ‘과연 내가 정치를 올바르게 하고 있는지, 잘못되고 있는지를 절대적으로 판정을 내릴 판정의 기준이 요시야 왕의 손에 들어온 거예요.

그리고 요시야 왕은 자기 나라의 특수성을 발견한 겁니다. 그 율법 책을 보면서 열왕기하 22장 14절-16절에 보면 요시야 왕은 여선지자 훌다에게 그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훌다라는 여선지자가 율법 전체의 말씀이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되는가를 경청했습니다. 훌다라는 여선지자가 율법의 결론을 단 하나로 내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멸망이었습니다.

성경에 여러 가지 말씀, 지키고, 지키고, 하고, 이건 해야 되고, 이건 하지 말아야 되고, 모든 말씀이 있더라도 그 율법의 결론은 멸망이었습니다. 16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곳과 그 거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의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리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 손의 모든 소위로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라” 하나의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사람에게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백성들의 분노입니다. 백성들의 분노 이외에 또는 다른 나라 인민들의 분노, 그 정도는 생각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분노를 의식하면서 정치하는 사람 아마 없을 겁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인간의 한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자기 몸을 거울에 쳐다보듯이 그 거울 앞에 있는 자기의 몸둥아리가 눈에 보이면 ‘저거야 말로 현실이다. 내 몸이 존재한다.‘라는 그 외 무슨 다른 현실을 찾겠습니까? 저 거울에 비친 내 몸이 더럽다면 세수할 것이고, 배고프다면 밥 먹을 것이고 상처 났다면 약 바를 겁니다. 따라서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출발해서 결국은 되돌아오는 것이 눈에 보이는 존재 그걸로 마감됩니다. 그것이 현실의 전부요, 그 외 다른 현실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건 허구요 상상에 불과한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여자 선지자 훌다가 하는 말이 ‘이 나라 백성과 선대왕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는 행동을 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존재, 보이지 않는 신이라는 그러한 하나님의 심성까지 걱정한다는 것은 이건 큰 스트레스와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나 또는 공무원 생활하면서 눈에 보이는 공무원들, 사무소 직원들이 동민들의 그들의 의견과 그들의 행동과 눈앞에 서있는 그들의 태도가 더 현실로 와 닿는 것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 하나님 생각하면서 하루 종일 근무하지 않을 거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사람의 한계라 하는 것은 결국은 같은 인간들, 또는 눈에 보이는 대자연, 그런 변화 질서, 그것만 챙기면 현실이 현실 전부니까 그걸로 마감되는 겁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말씀을 사람이 말보다도 더 우선해야 된다는 것이 이 왕의 신앙이었습니다. 참으로 특이하고 특이한 신앙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가 돼서 교인들의 눈치가 우선입니다. 교인들이 신앙이 없다면 그 교회는 모조리 다 신앙 없는 것이 묵인하게 됩니다.‘ 다들 신앙 없으니까 그냥 신앙 없는 채로 되는 것도 우리가 서로서로 용납합시다.‘라고 그냥 넘어가는 그런 시대입니다. 사람보다 더 우선되는 게 없습니다. 사람들의 헌금이나 열심보다 더 우선되는 게 없습니다. 교인들의 요구사항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선 되는 이 시대가 오늘날 교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 참 선지자인 여 선지자 훌다는 말합니다. ‘왕이시여, 멸망입니다. 율법의 마지막은 우리를 멸망한다는 겁니다. 신명기 마지막에 보면 그렇게 돼 있습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 할지라도 너희는 나보다도 세속적인 신, 너희들이 만족하는 신을 이름, 명칭이 어떻게 됐든, 예수가 됐든, 여호와가 됐든, 성령이 됐든, 성자가 됐든 상관없이 그 알맹이는 세속적인 신으로 탈바꿈 되어서 너희들이 믿을 수밖에 없는 본성이 이미 너희 천성으로 타고 났다고 그렇게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 요시야가 그걸 발견한 겁니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7절에 세례오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례요한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라고 돼 있습니다. 임박한 진노라고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여자에게 태어난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예수님이 언급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보시면서 그 중에 세례요한을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연관 있는 그런 인물로 독특하게 돋보이게 추천하십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이 하는 말이 그냥 인간의 상식에서 나온다든지 인간의 삶의 경험에서 나온 삶의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세례요한은 어떤 식으로 신앙생활 했습니까? 바로 임박한 진노, 임박한 멸망의 날, 심판의 날을 배후에 깔고 다시 방향을 세상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씀을 하는 겁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많이 자기에게 몰려오니까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지칭을 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우리 인간이 같은 얼굴 모습을 한 인간보고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욕설을 내뱉을 수 있는 권한이 과연 있는 겁니까? 그러한 권리가 과연 주어지는 겁니까? 똑같은 인간인데, 다 같이 인간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이 사회의 기본적인 윤리고 그게 도덕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독사의 자식들아” 듣는 사람이 뭐라 하겠습니까? ‘니가 뭔데?’ 이렇게 나올 거예요. ‘니가 뭔데, 어떤 우월성을 갖느냐?’ 세례요한은 말합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 도끼까지 나옵니다.

세례요한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 사람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특정 인간이 얄미워서가 아니라 어떤 사적인 복수심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해야 될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이걸 여기서 사명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명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누구 하나 교인 하나 더 내 사람 만들기 위한 그러한 노림수라는 것이 사명이 섞일 수가 없습니다. 교회를 어떻게 부흥시켜 볼까, 어떻게 내 편을 만들어 볼까, 내 추종자를 만들어 볼까, 어떻게 세력을 확보해 볼까, 이런 것은 사명에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명 자는 본인부터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임박한 진노 앞에, 자기는 멸망당해야 될 사람이라는 것을 자인하면서 다른 사람한테 외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말씀에만 매이고 어떤 누구에게 매이지 않는 이 모습, 하나님의 성령이 임할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칭찬했습니다. 임박한 진노를 의식하면서 항상 언제 사람은 죽게 마련인데 그 심판이라는 것도 우리 삶의 일부로서 가져가는 사람, 그런 식으로 평소에 살아가는 사람,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관련된 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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