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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우상과 인생 121114우리교회에스겔

우상과 인생 121114

이름 : 이근호(IP:119.18.78.175)

우상과 인생(겔 6:1-7)

이근호

12-11-14 21:33

우상과 인생

2012년 11월 14일 본문 말씀: 에스겔 6:1-7

(겔 6: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6:2, 개역)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을 향하여 그들에게 예언하여』

(겔 6:3, 개역)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작은 산과 시내와 골짜기를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겔 6:4, 개역) 『너희 제단이 황무하고 태양상이 훼파될 것이며 내가 또 너희 중에서 살륙을 당하여 너희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

(겔 6:5, 개역) 『이스라엘 자손의 시체를 그 우상 앞에 두며 너희 해골을 너희 제단 사방에 흩으리라』

(겔 6:6, 개역) 『내가 너희 거하는 모든 성읍으로 사막이 되며 산당으로 황무하게 하리니 이는 너희 제단이 깨어지고 황폐하며 너희 우상들이 깨어져 없어지며 너희 태양상들이 찍히며 너희 만든 것이 다 폐하며』

(겔 6:7, 개역) 『또 너희 중에서 살륙을 당하여 엎드러지게 하여 너희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보다도 하나님 자신이 누구신가를 드러내는 것에 관심 두고 계십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만드셨습니다. 피조물을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피조물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자신의 자신됨을 드러내면 소기의 성과를 이루신 것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껏 우상을 섬기도록 방치하십니다. 그들은 산마다 죄다 올라가서 우상 섬기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우상이 일상화되었고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충분히 그들의 우상성을 배출시켜놓고서는 그들을 모조리 죽여버리십니다.

그들이 세웠던 제단 근처에 널브러진 해골이 되게 하십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펼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하나님됨을 위하여 필히 ‘우상’이라고 지칭되는 신이나 행위들이 지상에 먼저 펼쳐져야 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선호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야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보면 ‘태양상’이 등장합니다. 태양을 신으로 신봉하는 것은 이 역시 외국에서 수입한 종교입니다. 우상은 인간들이 쉽게 납득이 되고 이해가 되는 신입니다. 신의 속성이 인간들에 의해서 쉽게 수용이 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인간들이 ‘나는 소중하다’는 교리가 밑바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신을 섬기는 것이 신이 소중하고 귀해서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소중하고 귀해서 그러합니다. 자신이 환경에 적응하고 계속 생존하기 위해서 우주와 친해지고 우주 질서와 잘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주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걱정되어서 그러합니다.

이것은 인간에게서 흘러나오는 당연한 본성입니다. 즉 인간에게는 생존이 가장 근본적인 관심사입니다. 태양을 섬긴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이치를 따져보면 아는 일입니다. 세상에 있는 만물이 다 태양의 덕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 뿐만 아니라 아침에 눈을 떠보면 대지에 늘려있는 곡식들도 태양에서 오는 기운으로 삽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있어 대자연의 질서란 태양 중심으로 살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태양이 만들어낸 질서에 준해서 인생사도 짜이게 마련입니다. 세게 최초로 거대한 제국을 이룬 나라가 있습니다. 무려 4000년 동안이란 굳건하게 유지한 제국이 있습니다. 이집트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태양신을 섬김으로서 내부 결속을 단단히 가져갔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인, 태양의 작용을 신으로 전환시킨 것입니다. 태양 중심으로 신의 가족과 가계도를 만들고 거기서 지상 세상을 다스리는 법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 법이 마트(Maat)입니다. 곧 태양신의 법입니다. 태양신의 이름은 '레‘입니다. (Re) 사막 위에 우뚝 선 피라밋은 태양신의 상징입니다.

이 태양신의 세계에도 신들 끼리의; 가계도가 짜여져 있습니다. 태양신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질서를 인간들은 고안해 내었습니다. 원래 오시리스와 그의 부인 이시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시리스의 신의 동생이 셑Set 신이 형을 죽이자, 형수가 되는 이시스가 마법으로 남편을 잠시 불러내어서 동침을 하여 호루스라는 신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호루스 신이 장성하여 삼촌 셑 신을 물리치므로서 비로서 신의 세계를 평정케 했는데 이 호루스 신을 사람들은 태양신을 대변한다고 보는 겁니다. 이 호루스가 하는 역할을 이집트 제국의 왕인 바로가 다 해내어야 합니다. 이럴 때 이집트 제국은 확고한 종교심으로 마음을 하나로 뭉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고안해내는 모든 우상이란 곧 신은 껍질에 불과하고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물이란 전부 우리 인간이 기대하고 희망하고 염원하는 모든 것들이 소복히 담겨 있는 형국입니다. 이러니 신이란 곧 인간들의 자기 얼굴입니다. 인간 본인이 신을 섬기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겁니다.

‘자기’라는 신을 자신이 섬기는 겁니다. 자신이 관리하고 자신이 가꾸고 자기가 이쁘합니다. 이름이 아무리 여호와라니 예수라고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전부 우상일 뿐입니다. 그 안의 내용이 자신이 희망하는 것으로 소복히 채워져 있다면 말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납득이 되기 자기 자신의 가치를 지켜줄 신이라면 사람들은 그 신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상 제단들 곁에서 해골로 만들어버리시는 작업을 통해서 하나님됨을 확실하게 드러내십니다. 왜 참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납득이 갈 수 있는 신이기를 거부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인간의 소중함을 배척하므로서 인간들의 자기 소중함에 훼방받지 않으려는 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4:12에 보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그 어떤 인간의 행함으로 구원이 되는 것을 허락하신 적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자기부터 챙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방식으로 섬기는 우리를 우상을 낳게 한 원인으로 보시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닮은 신을 원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지키는 방식으로 채택합니다. 죽은 망자의 시신에서 모든 구멍을 틀어막는 것은 행여 혼이 나와서 산 자들의 일상을 힘들게 할까봐 염려가 되어서 그러합니다.

참된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담겨있는 우상의 본질을 토하게 만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결코 우리의 영으로 전환되지 않습니다. 십자가 영으로 오셔서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시도하는 짓‘의 모든 것을 드러내어서 토하게 하십니다. 우리 자신들이 곧 우상임을 고백케 하십니다.

우상이 없는 곳에는 참 신도 없으십니다. 우상이 우상을 드러내면서 그 신을 공박하는 식으로 참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 자신을 우상시하는 본색이 노출되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이 마땅히 해골임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2-11-15 22:21

14강-에스겔6장 1-7(우상과 인생)121114-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6장 1절에서7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156페이지입니다.

에스겔 6:1-7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을 향하여 그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작은 산과 시내와 골짜기를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너희 제단이 황무하고 태양상이 훼파될 것이며 내가 또 너희 중에서 살륙을 당하여 너희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 이스라엘 자손의 시체를 그 우상 앞에 두며 너희 해골을 너희 제단 사방에 흩으리라 내가 너희 거하는 모든 성읍으로 사막이 되며 산당으로 황무하게 하리니 이는 너희 제단이 깨어지고 황폐하며 너희 우상들이 깨어져 없어지며 너희 태양상들이 찍히며 너희 만든 것이 다 폐하며 또 너희 중에서 살륙을 당하여 엎드러지게 하여 너희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나타나심의 목적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를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내가 이런 신이라는 것을 드러낸 것,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피조물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만들어 두었습니다. 누가 너를 만들었는지를 네가 아느냐, 인간으로서는 가장 근원적이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 누가 만들었는지를 알아야 우리가 왜 사는지,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 이유가 뭔지, 왜 여기 있어야 되는지, 왜 아직 안 죽는지, 그리고 왜 죽는지, 왜 아직 안 아픈지, 왜 아파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주의 뜻을 펼치는 일환으로 이런 저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아픈 것이 문제가 아니고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파도 죽어도 좋으니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알면 그것이 영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를 알리는 방식은 여러 가지지만 성경을 통해서 대표적인 것이 뭐냐, 자기 백성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없애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면서 자기 나라 이스라엘을 만들어놓고는 그 나라를 멸망시키는 겁니다. 멸망시킨다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것이 어떤 경우에 깨어지고 그것이 멸망당하는지 그 깨어지고 멸망당하는 와중에서 진짜 하나님이 다른 신들과 차이나는 점을 발견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허락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는데 그렇게 죽이면 해골이 되겠지요. 그 해골이 무엇을 기준으로, 무엇을 모델로 삼아서, 어떤 기준을 원칙삼아서 그것을 해골이라는 의미로 나오는가, 그냥 죽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손대서 죽었다는 그 원칙이 여기에 나옵니다. 5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시체를 그 우상 앞에 두며 너희 해골을 너희 제단 사방에 흩으리라.” 죽어서 땡 볕에 해골 되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해골이 되어야 될 이유가 ‘너희들이 만든 제단 동서남북 사방에 해골이 흩어진 상태로 해골되게 만들겠다.’는 겁니다.

죽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희들이 죽을만해서 죽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죽을만한 사실의 그 증거물이 뭐냐, 너희들이 하나님이 지시하지 않는 제단을 쌓았다는 겁니다. ‘제단 때문에 너희가 해골 된 줄 알아라. 너희들이 하나님이 원치 않는 제단을 쌓고 원치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죽는’겁니다. 이런 죽음에 대한 심판은 이스라엘 나라가 처음생길 때는 이스라엘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이방민족이나 이방나라들에게 여호와께서 관여할 때 그런 현상들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런데 광야를 지나오면서 하나님께서는 이방나라를 치는 것과 동시에 이스라엘 본 자손에게도 엄청난 재앙을 내리십니다. 지파 숫자를 헤아리면서도 그 숫자가 어떻게 축소되어가는 지를 한 번 보라는 거지요. 하나님의 언약에, 하나님의 약속에 위배되면 다 줄어든다는 거예요. 안양에 전 용렬 목사님이 계신데 그 분 사이트에 이런 글이 있어요. 목사들이 전도, 전도 하는데, 전도해서 사람들을 많이 불려놓았다고 자랑들을 하는데 그들을 교회 데리고 올 때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데려왔는지가 중요하다고 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해서 데려왔는지 아니면 교회 다니면 천당 간다고 꾀어서 데려왔는지, 그래서 끌어 모은 사람들이 과연 십자가 복음을 아는 자냐 그 말입니다.

교회는 다녔는데 십자가 복음을 모른다면 결국 그것은 천국가지도 못할 사람들을 천국 간다고 사기를 치고 있는 사기집단에 불과한 거예요. 그런 교회 설교 들어보면 이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죄니까 죄짓지 맙시다. 이것이 이단이니 이단에 넘어가지 맙시다. 이것이 정통이니 정통대로 믿고 삽시다.’ 증거 되어야 될 예수님에 대해서는, 십자가에 대해서는 증거 하지를 못하고 ‘이것이 죄입니다. 죄 짓지 맙시다.’ 이렇게 나와요. 예수님이 왜 필요한지,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십자가 졌는지를 전혀 이야기를 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교회가 된다는 사실은 오늘 본문과 연관시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산마다 우상제단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너희들을 그 제단 근처에 흩어진 해골로 만든다고 하셨는데 오늘 본문 보시면서 여러분이 느낀 점이 없습니까?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것을 느꼈을 거예요. 제단 섬겼다고 벌 내리지 마시고 아예 그 제단이 안 생기게 하면 어떻겠는가? 제단이 생기면 벼락을 때려서 무너지게 한다든지, ‘아,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제단 섬기면 안 되겠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제단 근처 해골로 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제단을 마음껏 섬기게 만들고 태양 상을 섬기게 만들고 마음껏 우상을 섬기게 해놓고 뒤늦게 오셔서 ‘너희가 우상을 섬겼으니 당해봐라.’ 이렇게 되어버리면 하나님께서 너무 무책임하신 분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구원에 대해서 아주 무책임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자신이 누구냐를 보여주고 그것을 아는 그 관계가 구원이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여기 있고 여기 있는 나를 천국 보내주면 좋~지! 천국 보내주면 나도 성의 있게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이렇게 나온다는 말이지요.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상태에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나를 하나님께서 천국이라는 좋은 곳에 가서 살게 해주면 나도 섭섭지 않고 하나님 앞에 보답할 용의가 되어 있다,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우상입니다. 우상이라 하는 것은 뭐냐, 내가 필요하기에 내가 나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 동의해주는 신을 믿는 것이 우상이에요. 여러분들이 사람이 죽어 시체가 되면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아요. 왜 시체 염할 때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는가, 거기에 흔히 나오는 것이 살아 있는 사람 보기에 거북스럽게 느껴지기에 다 막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인간은 자기 방어적이고 자기 사수 적이고 자기변명 적입니까? 자기 자신이 생존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고추요리가 있어요. 고추 속 들어내고 고기다진 것 채워 넣는 것, 그것을 보면서 제가 생각하는 것은 뭐냐, 우상이라는 것은 자기가 기대하고 원하는 것만 고추요리처럼 그 안에 소복이 들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신이라는 것, 인간이 믿는 우상이라는 것은 사실은 내 허전한 속에 내가 원하는 소망들을 가득가득 채우는 그것이 본인이 믿는 신입니다. 대단한 신이지요.

젊은 청년들이 차를 사게 되면 가만 놔두지를 않아요. 그 안에 오디오 장치를 하고 온갖 실내장식을 하지요. 오토바이 한 대만 사도 온갖 것으로 장식하지요. 차나 오토바이라도 한 대 장만하게 되면 온갖 것으로 꾸미고 맨 날 광내면서 다니는데 만약에 그 차를 누가 발로 차게 되면 자기 몸뚱이 찬 것과 똑같이 여깁니다. 내가 정성을 다하여, 지성을 다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우리는 나한테 맞춤 신을 각자각자 멈추지 않고 쉬지 않고 만들어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것은 종교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들이 다 그렇습니다.

신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신이라고 믿는 그 안에는 내가 그동안 가꾸어온 것, 내가 힘들여서 가꾼 보람과 행복의 요소들이 그 안에 빼곡히 다 담겨 있어요. 그것을 향하여 신이시여, 라고 이야기합니다. 구약의 하나님께서 나를 섬기라, 이렇게 하지 않고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이렇게 출애굽기 20장에 이야기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다른 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 다른 신이 뭐냐, 대체 어떤 신을 배격하라는 말인지? 여호와가 나타났다는 말은 여호와가 나타났으니 믿자, 그것이 아니라 다른 신을 치웠나 안 치웠나, 다른 신을 안 믿기로 작정을 했어 안했어, 그것을 물으면서 여호와가 찾아오시는 거예요.

그러면 신은 다 같은 신이고 신은 하나밖에 없고 그 신의 이름은 여호와고 아들은 예수님인데 그것을 믿으면 된 것이지, 내가 그것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 되었지 철거하기는 뭘 철거하나, 하고 우리는 상당히 난처해하는 겁니다. 현재 인간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그 신을 우상이로 핀셋으로 집어서 끄집어내고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런 분이라고 넣어줘야 되거든요. 제 발꿈치에 티눈이 났거든요. 약사선생님이 하는 말이 거기에 약을 붙이면 나중에 하얗게 될 것인데 그것이 쏙 나오면 거기서 새살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생각했습니다. 왜 약사가 한 그 말, 이것이 쏙 나오고 거기서 새살 나옵니다, 하는 그 말은 수긍하면서 왜 복음전하는 목사가 여러분이 갖고 있는 신을 뽑아내려고 하니까 그것을 안 뽑히려고, 이것을 왜 뽑느냐고, 이것이 나의 의인데 그동안 수십 년 믿는 이것이 나의 자존심인데 이것을 뽑아내면 나는 믿을 것이 없는데 이것을 뽑아 가면 뭘 믿으라는 말이냐, 기어이 안 뽑히려고 안 뽑히려고 하다가 튀어 나가버리고. 살려주겠다고 좀 뽑으려고 해도 안 뽑히려고 하는 거예요. 나는 복음도 압니다, 나는 십자가도 압니다, 나는 뭐도 압니다, 그 안다는 것 다 뽑아줄 테니까 뽑히는 대로 좀 뽑히라고.

안 뽑히네요. 아주 단단하게 눌러 붙은 거 같아요. 에스겔 보세요. 뽑습니다. 에스겔뿐만이 아니고 이사야, 예레미야, 미가야, 호세아, 아모스, 선지자라는 선지자는 죄다, 세례요한도 마찬가지요, 그 사람은 도끼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오니까 “너희들이 임박한 진노를 피하려고 왔더냐?” 그게 전도입니까, 그것을 전도라고 하고 있는 거예요? “오기는 어디를 와? 멸망 안 받겠다고 지금 온 거야? 저리 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람대우를 안 해준다고요? 무슨 성경에 ……, 사람대접은 지옥가면 해줘요. 사람대접은 지옥 가면 해줍니다.

사람대접 받으려고 천국 간다는 그런 천국은 없어요. 사람 대우해주는 그런 천국은 없습니다. 사람 대우해주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친목모임이지 그게 무슨 교회입니까? 다들 십자가 보고 있는데 툭툭 치니 “왜 칩니까?” “나 사람대우 해 줄 거야, 안 해줄 거야?” 다 같이 십자가 바라보고 있는데 왜 사람 대우해주는지 그걸 따지냐 그 말이지요. 태양 상을 섬긴 것은 이집트에서 수입된 거예요. 이집트는 무료 4천년에 걸쳐 내려온 제국입니다. 이집트에는 본래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가 있어요. 나일 강 상류 쪽이 상 이집트고 하류 쪽이 하 이집트인데 상류 쪽은 못살아요. 채집 수렵생활 하는데 하류는 매년 나일 강이 범람하면서 삼각주의 옥토를 이루어서 농사가 너무 잘되는 거예요.

그래서 상하 이집트가 합쳐져서 생길 때 공통적으로 두 종족을 결집하는 본드 역할을 하는 신이 뭐냐, 태양신입니다. 태양신이 세계 최초입니다. 태양신의 모든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납득이 되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왜냐, 봄 여름 가을 겨울 농사가 잘 되어야 밥 먹고 살 것이 아닙니까? 종교고 신이고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사는데 편하면 그것이 좋은 신이고 사는데 나쁘면 그것은 나쁜 신이죠. 그것을 나쁜 신이라고 하지 않고 그것을 마귀라고 합니다. 나한테 편하게 해주면 그것은 하나님이고 나한테 못되게 굴면 그것은 악마고, 그렇지요.

그러면 이 자연은 누가 살리냐는 말이지요. 이것은 어린애부터 어른까지 다 압니다. 태양이 살려요. 북한에서도 오죽하면 태양이신 김일성주석이라 하겠습니까? 태양 없이는 못산다는 것을 천하가 다 알아요. 그런데 이 세상에는 태양이 종일 있는 것이 아니고 밤이 되면 사라집니다. 그런데 반가운 것은 아침에 되면 태양이 또 떠올라요. 태양이 떠오르는 동시에 곡식들이 맛있게 무르익습니다. 배불리 먹었으면 누구에겐 가는 고맙다고 인사는 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누구한테 인사해야 돼요? 누구한테 감사해야 됩니까? 이것은 누구에게나 납득시키고 설득시킬 수가 있는 거예요.

태양한테 절하면 되고 태양을 섬기면 되는 겁니다. 왜, 다 같이 납득이 된다면 그 나라는 태양신의 이름으로 분열되지 아니하고 안정된 나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자식을 많이 낳아서 열 명이다. 그러면 부모가 자식한테 묻지요. “어이, 큰 애야! 네가 왜 태어났니?” “아빠 엄마 때문에 태어났지.” “아빠 엄마는 누구한테서 태어났지?” “할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 “그래? 둘째 너는 누가 만들었지?” “아빠 엄마가 만들었어요?” “아빠 엄마는 누가 만들었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만들었어요.” “그래, 우리 온 식구는 우리를 만든 할아버지를 제사로 섬기자. 이게 마땅한 우리 집안의 도리다. 그래야 집안의 결속이 다져진다.”

이게 뭐가 어렵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섬기지 말고 눈에 보이는 너의 아비 어미에게나 잘해라, 하는 이 효도 이야기를 지금 절에 가는 사람이나 유교 하는 사람이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 아닙니까? 하나님 믿는다고 제사도 안 드리는 그런 호로 자식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교회가 변명한답시고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도 잘 믿고 우리 부모한테 효도도 한다고요.’ 세상에 그렇게 둘 다 잘한다는 그것이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성경에는 처나 자식이나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그렇게 되어 있는데.

“너희는 조상 제사도 안 드리는 호로 자식이다.” 하니까 “우리는 조상제사 대신 추도예배 드린다.” 추도예배라는 것이 성경에 어디에 나옵니까? 추도예배는 귀신한테 드리는 것인데. 조상님이 인류애에 공헌해서 노벨 평화상을 받았든지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를 구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하면 그 은덕을 다 같이 공유하기 위해서 죽은 사람의 은덕을 이어받자고 하는 제사는 이해가 되는데 그냥 고혈압으로 아파서 돌아갔는데 뭐. 살만큼 살다가 80살 넘어서 고혈압으로 돌아가서 국가에 별 공헌한 것도 없는데……, 아, 6.25때 참전하셨던가, 살아생전에 밥이나 축내고 똥이나 쌌는데 별 공헌했습니까?

뉴튼의 법칙 같이 과학계에 큰 업적이나 남기고 혹은 전쟁에서 국가적으로 영웅적인 일을 했으면 그 정신을 이어받자는 취지로 교육상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적어도 국가가 되면 조상숭배 정도로는 안돼요. 이것은 모든 국가가 다 있는 것입니다. 이집트가 태양숭배를 했다는 말은 이집트가 거룩한 제국으로 가는 정신적인 지주, 발판이 되는 겁니다. 그 태양신을 섬기면서 이름을 지었어요. ‘레’라는 이름입니다. 태양신을 이렇게 섬겨놓고, 그 다음에 ……, 그 당시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습니까, 뭐가 있었습니까, 나라 결속만 되면 그만이거든요.

나라 결속이 되려면 영(令)이 있어야 되고 질서가 서야 되고 법이 있어야 되는데 태양신이 법을 내려줘요. 그 법을 마아트(Maat)라 하는데 그 법에 의해서 모든 것을 지배하거든요. 쉽게 해서 모래시계라고 보면 돼요. 모래시계를 보면 위에 불룩하고 아래도 불룩하거든요. 위에 불룩한 것이 뭐냐 하면, 아래 있는 질서를 싸잡기 위해서 인간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위쪽 패밀리, 신의 가족을 만들어요. 위쪽에는 신의 가족 그리고 아래쪽에는 인간가족 그리고 그 중간에 뭐가 있느냐 하면 왕이 있는 거예요. 왕은 뭐냐, 밑의 인간들이 태양신에게 나아갈 수 있는 소통의 유일한 접촉점으로서 있는 겁니다.

밑에서 위를 보게 되면 하늘의 천장이 보이잖아요. 사람들이 왕을 볼 때 왕을 보면 안돼요. 신이 눌러 앉아 있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신이, 물론 태양은 보이지만 그 법칙은 안보이잖아요, 보이지 않는 태양신이 인간세계를 다스리기 위해서 파견된 나타난 신의 모습이 왕입니다. 그게 바로에요, 바로. 그래서 그 밑에 있는 모든 백성들은 그 법(Maat)을 전적으로 따라야 하는데 그게 딴 게 아니고 모든 것은 다 왕의 것이라는 겁니다. 왕이 곡식 다 먹는다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은총과 모든 감사는 왕에게 드리면 왕은 신에게 드려서 그 다음에 또 농사가 잘 되게 하는 거예요. 그냥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보면 됩니다. 북한의 김일성공화국을 생각하면 딱 맞아요.

지금도 북한의 주민들은 그냥 꼼짝 마라, 뭐가 옳은지 그른지도 몰라요. 그냥 죽은 김일성이가 최고에요. 그럴 때 나라가 단결이 되는 겁니다. 하나로 결속이 됩니다. 이게 태양신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는 태양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두움도 있잖아요. 어두움은 뭐냐, 어둠의 신이 또 있어요. 지금부터 이집트의 하늘나라 패밀리 이야기입니다. 이집트에는 부부간에 신인데 오시리스는 남편이고 이시스는 아내입니다. 그 둘이 결혼했는데 남편의 동생인 세트(Seth)라는 신이 있는데 이게 남편 오시리스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했어요. 화가 난 이시스가 잠간 남편을 살려놓고 거기서 잉태해서 낳은 아이가 호루스입니다. 그 호루스가 삼촌하고 싸워서 왕좌를 다시 빼앗았어요. 이게 지상나라가 아니고 위의 나라에요.

호루스가 지상을 다스리는데 그 호루스 역할을 바로 왕이 하는 것으로 나라가 단정하게 질서를 잡게 되는 겁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우상이라고 하거든요. 그것을 우상이라고 한다면 그 나라 안의 모든 양식의 혜택이 태양으로부터 왔다, 태양신의 혜택을 입으니까 감사한다, 그러면 인간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죽으면 바로 그 호루스 신을 믿는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있어요. 왜냐하면 오시리스라는 그 신도 죽었다가 다시 부활했기 때문에 죽음에서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태양신 안에 뭐가 장착되어 있느냐하면, 태양만 섬긴다, 그것이 아니라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전부 다 결국 태양신에게 돌아가는 과정이니까 이제는 내세까지 걱정 말고 안심하는 종교가 되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것을 비난하고 그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면 여호와는 뭐고 여호와는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느냐?’하는 겁니다. 세상에 있는 우상은 납득이 되고 설득이 되잖아요. ‘야, 참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은 저 빛나는 눈에 보이는 태양 덕분이고 태양께서 법칙과 원칙을 주시고 또 왕을 주셔서 왕의 혜택을 입어서 우리가 잘산다.’ 이렇게 모든 것이 안정되고 사는 것이 행복이고 즐거움인데 그렇다면 여호와는 우리한테 뭘 제공하느냐, 본문 봅시다. 2절에 “너는 이스라엘 산을 향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산은 그냥 산이 아니고 우상 제단들이 우후죽순 세워졌던 산이에요. 그런데 그 산을 주님께서 다 훼파한다 하거든요.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뭘 주느냐, 언약을 주는데 그 언약이 뭐냐, 모든 제사를 종결시키는 제사, 모든 제사와 구원하는 방식을 종결시키는 겁니다. 그것을 종결시키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종교와 제사와 형식을 없애버리는 겁니다. 그게 뭐냐, 진짜 하나님은 주의 이름으로 구원받는 겁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주의 이름으로 하시는 특수한 사건들이 있어요.

주의 이름은 뭐냐, 인간의 이름으로 하는 것을 일체 받지를 않습니다. 더 어렵게 이야기해서 ‘하나님이여, 제가 뭘 해드리면 구원받겠습니까?’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인간의 모든 가능성, 모든 행함, 이런 것은 일체 네 구원에 보탬이 안 된다는 겁니다. 오히려 방해될 뿐이지요. 인간이 뭘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주의 이름으로 벌이는 그 사건의 위력과 효력에 휘말리면 그것이 곧 구원이 되는 겁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주신 일이 없다.’ 구원? 오시리스니 이시스니 그런 것 말고, 제사를 어떻게 드리고 절기를 어떻게 지키고 그런 것이 아니고 어떤 것도 준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면 뭘 믿느냐 하면, 어떤 것도 준적이 없다는 것을 믿는 거예요. 그 어떤 것도, 갓 바위를 갈까요, 어디 가서 세 번 기도하면 효험 봅니까, 이런 것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어느 교회 가서 기도하면 응답받습니까, 어느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면 응답받습니까, 그런 것을 주신 적이 없는 하나님이에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아까 이야기한 신기한 것처럼, ‘그렇다면 진작 이야기하지 이제 와서 우리가 실컷 섬기게 해놓고 그것을 다 때려 부수면 어떻게 하느냐?’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준 적이 없다는 말을 실감나게 해서 우리 자신을 우상을 만드는 제조기계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통 나게 하시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우상이란 우리의 거울입니다. 아까 고추요리 예를 들었는데 거울은 내 모습만 비취게 되어 있어요. 내가 믿는 예수 속에 내 모습이 다 담겨 있고 내가 믿는 하나님 속에 내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하나님 하지만 내가 나르시즘처럼 연못 속에 비췬 내 모습을 현실화 시키기 위해서 교회 나와서 간절히 기도하고 헌금하고 예배하고 있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한테 경배하는 겁니다. 왜, 세상에 나보다 더 중요한 존재는 없기 때문에. 내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데 하나님이 이야기합니다. 네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네 속에서 너를 구원하는 것이 나오느냐, 그 말입니다. ‘나는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을 이름을 준 적이 없다. 그것이 설마 너의 이름이라 할지라도.’ ‘내 이름은 예수를 믿는 이름입니다.’라는 이름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구원되는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뭡니까? 오늘 본문의 5절에 보면 간단하지요. 해골, 그것도 그냥 해골이 아니고 네가 믿고 싶은 것을 믿었던 그 제단에서 나는 이런 이유 때문에 죽어 마땅함이 증거물로서, 시체로서 퍼져 있는 해골, 그냥 해골이 아니고 내가 평소에 이런 짓거리를 했습니다, 하고 완전히 노출당한 채로 죽어버린 그 해골, 우리를 해골 되게 하시는 하나님, 고마우신 주님이십니다. 40년, 50년 교회 다닌 것이 더욱 더 우리를 해골 되게 만들게 한 주의 작업이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것은 나지 네가 아니라는 겁니다. 너는 너의 죽었다가 살아난 것을 믿지 말고 나를 믿으면 너는 죽어도 다시 살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나의 영이 아니고 예수님의 영, 성령인 겁니다. 예수님의 영이 나의 영으로 변화될 조짐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의 영이 내 영이 되는 경우는 없어요. 끝까지 성령은 주님의 영이지 내 영이 아닙니다. 성령이 내 영되어 버리면 그것은 악령이 돼요. 우리는 성령으로 인하여 육에서 영의 세계 하늘나라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영 앞에서 우리 영은 죽어 마땅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면 그 다음부터는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주기 위해서 내가 이스라엘처럼 이런 짓거리를 해야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지요.

술 먹은 인간이 술 깨는 것은 자꾸 토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해롱해롱 한 거예요. 평생 살면서 계속 토해 놓으세요. 우리가 그동안 자아에 도취되었다는 사실을. 많이 계속 배설물을 토해 놓으세요. 이 작업은 주의 영이 와서 손가락 우리 목에 집어넣어서 토하게 하십니다. 그것도 성령께서 울면서 탄식하면서 합니다. 등 두드려가면서 ‘이 술 처먹은 인간아!’ 하고 두드려 가면서 그리고 탄식하면서 대신 기도하시면서 ‘어디서 우상제단에서 쓸데없는 것 먹었나? 빨리 토해내라. 십일조 해서 복 받는다는 이런 식을 어디서 배웠나?’ 다 끄집어내는 거예요.

이렇게 할 때 저보다 제 안에 있는 예수님이 더 소중함을, 자기를 부인할 수 있고 십자가의 의미를 아는 성도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태양신을 섬긴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섬겼습니다. 세상사는 모든 것이 세상을 거울삼아서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증거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들, 토하고 또 토해야 될 것들 밖에 없는 저희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처럼 천국 가는 사람 되기 위해서 십자가 늘 바라보게 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끊임없는 사랑을 저희들이 감격함으로, 죽어도 좋다는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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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6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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