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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5강-미6장9-16(악인의 집)121104-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미가

15강-미6장9-16(악인의 집)121104-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1.16)

15강-미6장9-16(악인의 집)121104-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미가서 6장9절에서16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296페이지입니다.

미가 6:9-16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를 순히 받고 그것을 정하신 자를 순종할지니라 악인의 집에 오히려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거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궤사하도다 그러므로 나도 너를 쳐서 중히 상하게 하였으며 네 죄를 인하여 너를 적막하게 하였나니 네가 먹으나 배부르지 못하고 속이 항상 빌 것이며 네가 감추나 보존되지 못하겠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일 것이며 네가 씨를 뿌리나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을 밟으나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으나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행위를 지키고 그들의 꾀를 좇으니 이는 나로 너희를 황무케 하며 그 거민으로 사람의 치솟거리를 만들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을 담당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아침에도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마는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는 서로 장점과 긍정적인 것, 그런 것을 들고 나오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평범한 것을 부숩니다. 보통을 부수고 우리 속에 있는 특수한 것을 끄집어내는 거예요. 그런데 그 특수성은 반도체 칩처럼 하나님이 집어넣어준 거예요. 하나님이 집어넣었지만 우리는 풍덩하고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놓고는 우리는 내속에 들어온 것이 얼마나 특수적인가는 깨닫지 못하고 그저 보통 사람과 똑같은 존재고 똑같은 운명이고 똑같은 팔자라고 그렇게 자꾸 오해를 하는 겁니다.

성경 로마서 8장에 보면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건 특수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거예요. 아무나 해당되는 게 아니고, 미리 알았다 하는 것도 우리가 눈치 못 채고 부르신다는 것도 어떻게 불러주는지 우리가 아침저녁마다 밥 먹고 사는데 바빠서 언제 하나님이 불러주는지 그것까지 체크할 수가 없잖아요. 그냥 살아가잖아요.

우리는 그냥 살아가는데 주께서는 우리 속에 있는 특수한 것 때문에 미리 아신 자를 불러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는 거예요. 이걸 제가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그걸 분류작업이라 한다 이 말이죠. 악한 고기, 좋은 고기 분류하고 양과 염소를 분류하듯이 이 분류하는 이 작업에 대해서 우리가 터치할 수가 없어요. 주께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밀어붙이는데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저를 분류하지 마세요.’라고 항변할 수 있는 그런 능력도 우리한테는 없습니다. 그냥 당하세요. 그냥 당하시고 감사하세요.

십자가 옆에 있던 강도가 강도입니다. 제가 틀린 말 안 했죠? 강도는 그냥 강도일 뿐 이예요. 옆의 강도도 그냥 강도고 이쪽의 강도도 그냥 강도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이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는 것은 그건 주님의 소관이지, 주님이 특수한 것을 집어넣어주니까 ‘예수여, 오늘 밤에 저를 예수님 나라 임할 때 저를 생각해 달라’ 이건 껍데기는 강도인데 속에는 예수님의 특수한 것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는 아주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럴 때 예수님께서 자신이 심어준 그 능력으로 고백해 놓고 거기에 반응을 나타냅니다. ‘니가 오늘 밤에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봤으면 둘 다 주고받고 잘 논다 할 거예요. 우리 그렇게 놉시다. 다른 사람들 안 믿는 사람들이 ‘아이고, 뭐 주고받고, 주고받고 자기들끼리 천국 간단다. 그래 잘 먹고 잘 놀아라.’ 하면 우리는 그렇게 잘 먹고 잘 놉시다.

이것은 우리가 교육 받아서 우리가 교회 오래 다닌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특수한 것이 뾰루지처럼 발현한다. 불그스레하게 이렇게 튀어나오죠. 이건 우리가 저항할 수 없이 튀어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 내용은 너희들이 숨을 곳이 없다는 게 주제가 됩니다. 숨을 곳이 없다. 감출 것도 없고 숨을 곳도 자시고 할 게 없다. 그냥 노출되고, 노출되고, 노출되고 노출되는 거예요. 우리의 삶은 우리가 ‘하나님 이렇습니다.’ 하기 이전부터 이미 노출돼 있어요. 새삼스럽게 ‘하나님이여, 저 이런 인간인데요.’ 하면 주께서 웃으십니다. ‘니 그런 소리 안 해도 알고 니가 그런 소리 꼭 한다고 해서, 아하, 몰랐네. 내가 왜 미처 몰랐을까.’ 이렇게 하지 않는다 이 말이죠. 주께서 다 아십니다.

어젠가 목욕탕에 갔는데 남자 목욕탕에 여자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깜짝 놀랐습니다. 보니까 남자 목욕탕에 여자 소리 나는 것은 한 경우 밖에 없습니다. TV. TV 틀어놓으니까 여자 아나운서라. 아하, 저거다. 우리 안에 모니터, TV를 장치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매일 24시간 내 목소리만 이야기하는데, 가끔은 여자 아나운서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이건 있을 수 없는, 나에게 나올 수 없는 여자 아나운서, 여자 목소리가 튀어 나온 겁니다.

주께서 장착해 놓은 내장된 특수성이 우리의 몸을 통해서 예수님의 자신의 발언을 내뱉고 계시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선지자도 똑같은 입장입니다. 선지자가 이런 말해서 살림살이가 나아졌겠습니까? 저는 궁금해요. 선지자가 이런 소리해서 한 달에 얼마 받는지 궁금해요. 이런 예언만 해서 월급을 많이 받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한다고 보너스 받는 것도 아니고, 전부 다 욕설인데 예레미야 같은 경우에 하나님 말씀 전하니까 주위 사람들이 이런 평이 나왔습니다. ‘제발 우리보고 욕 좀 하지 마라’ 예레미야는 억울해 죽죠. 욕을 한 게 아니고 말씀을 전했는데 저들에게 욕으로 들린다는 말은 결국은 지가 욕한 게 아니고 여자 아나운서가 욕한 거죠. 하나님이 그들을 향하여 욕을 한 겁니다. 당하기는 자기만 욕을 얻어먹은 거죠.

이 모니터, 우리 속에 장착돼 있는 이 모니터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가, 그게 오늘 본문 내용에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제가 차근차근 말씀드릴게요. 요 말씀을 이야기할 때 여기 16절 끝에 보면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행위를 지키고 그들의 꾀를 좇으니”라고 돼 있습니다. 성경을 평소에 깊이 있게 본다든지 관심 있게 본 사람은 성경에 오므리나 아합이라는 한국 용어가 아니고 외국 용어가 튀어 나오면 이 성경을 꼴도 보기 싫어해요. ‘내가 아는 이야기 좀 해줘. 왜 자꾸 모르는 지명이 나오느냐.’ 하는데 요런 지명들은 이런 겁니다. 하나님께서 중국집 주방장이라면 ‘뭐 드시겠습니까?’ ‘자장면 시키겠습니다.’ ‘그래요? 5분 기다리세요.’ 하고 자장면 나올 때 주방장이 손에 시커멓게 자장 국수를 들고 ‘먹어라’ 하고 입에다 처넣겠습니까? 제가 예를 든 게 너무 과격한데, 그렇게 하지 않고 쟁반에 담아서 먹으라 하겠죠. 그 쟁반 역할이 뭐냐, 오므리와 아합이라는 겁니다.

오므리나 아합은 우리가 평소에 방송에서 못 듣던 게 나온다고 ‘이거 말고 다른 이야기 해 달라’고 할 수가 없어요. 오므리와 아합이라는 쟁반에 쟁반자장이 담기듯이 오므리, 아합이라는 이것이 분명히 둘 다 사람이름 이예요. 왕 이름이거든요. 이 말은 뭐냐, 왕이 이런 짓을 했는데 왕이 그런 짓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들 속에 심어 넣은 특수한 남자 목욕탕에 여자 아나운서 목소리처럼 그들의 심어놓은 TV 모니터에서 특수성이 분명히 울려 나왔다는 거예요. 그때 그 당시에. 그러니까 아합과 오므리는 그때보다 약간 옛날 사람들 이예요. 옛날 사람 아합과 오므리가 이런 짓을 했더니만 그들 속에 있는 여자 아나운서가 욕을 하면서 ‘니가 감히 약속의 땅에서 그런 짓을 해도 돼?’ 라고 욕을 했던 거와 똑같은 경우처럼, 아제 그 이후에 있는 그들의 후손들이 그때와 똑같은 짓을 되풀이 하느냐, 이렇게 나오시는 거예요.

그러면 그 소리를 듣는 그 당시 사람들이 ‘우리는 오므리 아닙니다. 아니무니이다. 우리는 아합 아닙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을 거다 말이죠. 그건 옛날 사람이고, 쉽게 이야기하면 조선시대 간신들 있잖아요.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 때 부정부패 한 사람들, 박정희 대통령 시대 때 어떻게 한 사람들, 유신한 사람들, 항상 우리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 조갑제란 옛날에 조선일보 언론에 있는 사람이 박 근혜 보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 했던 모양이라. 그 사람은 아버지 무덤에 침 뱉었다고 이야기한 거예요. 그 사람은 극 보수거든요. 어떻게 니가 여자 대통령 되려고 온갖 짓을 그렇게 다 하느냐, 어떻게 아버지가 문제가 있고 어떻게 딸이 돼서 아버지를 욕되게 하느냐, 고 들고 나왔다 이 말이거든요. 그런데 박 근혜 대통령 후보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청바지 입고 이야기하기를 ‘나는 우리 아버지는 이런 점이 잘못 됐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시대가 지나갔다는 거죠.

성경에는 시대가 지났다는 게 용납이 안 됩니다. 왜 지금 와서 헤까닥하느냐 말이죠. 헤까닥 할 마음도 아닌데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마음은 달라질 게 없다. 하지만 이걸 듣는 사람들은 뭡니까? ‘우리는 그런 나쁜 짓을 안 했습니다.‘ 라고 하거든요. 이제부터 중요한 거예요. ’우린 그런 나쁜 짓을 안했습니다.‘에 대해서 선지자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지금은 그 나쁜 짓이 현 시대에 맞춰서 맞춤 죄악으로 이렇게 변형되어서 너희들이 저지르고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게 뭐냐, 10절에 나옵니다. “악인의 집에 오히려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여기 에바가 나오죠. 또 모르는 용어. 그래서 성경 보는 사람이 이것 때문에 짜증을 내고 불평을 해요. 에바라 하는 것은 여자 이름이 아닙니다. 에바는 부피를 재는 측량기구 에바입니다. 그걸 축소를 시켰답니다.

제가 중학교 때인가 부모님께 효도한답시고 저의 효도는 즉흥적 효도기 때문에 대구역 앞에 가면 번개시장 있잖아요. 밤을 수북이 쌓아놨어요. 에바(되) 위에다 밤을 수북이 쌓아서 주는데 별로 안 비싸요. 그래서 효도한답시고 ‘이거 주세요.’라고 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순진해서, 그래서 됫박을 붓는데 보니까 세상에, 밑둥치가 표면까지 다 올라와 있어요. 세상에, 이만큼 다 올라오고 그 위에 올라온 그게 전부예요. 무를 수도 없고 학생이 되고 또 얻어맞을까 싶어서.

축소를 시켜놔서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적게 속여서 장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이 우리가 이런 잘못은 옛날 오므리나 아합 이런 사람들이 나쁜 짓해서 벌 받은 사람이거든요. 옛날 오므리나 아합 같은 그런 짓하고는 이건 다른 겁니다. 그때 망한 것은 살인해서 망한 거고, 우리는 그저 됫박 속인 거밖에 안 됩니다.‘라는 식으로 변명조로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미가 선지자가 딱 캐치하고 하는 말이 ‘너희가 그렇게 해서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 하고 나온 거예요. 니거 그렇게 해서 벌은 돈을 너희가 어디다 저축을 했느냐고 보는 겁니다. 그게 어디 나오느냐, 14절에 나오죠. “네가 먹으나 배부르지 못하고 속이 항상 빌 것이며 네가 감추나 보존되지 못하겠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을 것이며” 그래서 한두 푼 돼서 여기 11절부터 한번 봅시다.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하고 묻죠?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거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궤사하도다” 전부 다 모두가 구라고 사기다 이 말이거든요. 구라와 사기, 그리고 속이는 거, 그것이 보편화 되었고 너나 나나 보편화 되니까 그게 뭐냐, 평범화 된 겁니다. 그러니까 제 설교를 처음부터 잘 들으셔야 돼요.

우리가 평범하다는 것은 평범하기 때문에 용납이 된다고 그렇게 생각들을 하고 싶어 해요. ‘나만 그런가? 다 그런데.’ 우리는 보편이 평범으로 변하고 평범하기 때문에 ‘용납해줘’ 이 말이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은 말합니다. ‘내가 그럴 것 같으면 너희들을 구원하는 백성이라고 내가 말을 안 한다. 너희들이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하고 똑같이 평범하게 산다면 그것은 내가 이해는 하겠지만 너희 속에 들어있는 특수한 것, 그 특수한 것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희들은 그것을 죄라고 니가 스스로 인정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요즘 교인들이 교회 가게 되면 자기를 키워달라고 ‘하나님 저를 키워주세요. 하나님 능력이 무한하니까 그 무한한 능력을 뚝 떼서 제가 기도할 테니까 저를 크게 키워주시면 그 보상으로 키운 만큼 제가 섭섭지 않게 할 용의가 돼 있습니다.’ 그러한 시장 바닥에서 콩나물 흥정하듯이 흥정하러 옵니다.

그런데 거기에 만약에 설교단에 미가 선지자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이렇게 합니다. ‘너희들 돈 구라 쳐서 돈 어디다가 숨겨놨느냐?’ 이렇게 지적하죠. 부흥사 같으면 목요일 오후에 어떻게 설교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돈 꼬불쳐 놓으면 하나님께서 미가 6장의 말씀처럼 전부 다 발굴해서 다 가져간다. 다 가져가기 전에 이 강대상에 하얀 봉투에 내놔라. 괜히 그때 당해서 후회하지 말고’ 또 이렇게 구라를 칠거다 말이죠.

이 말은 우리가 돈을 하나님께 헌금을 한다고 해서 나머지 돈이 깨끗하다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가 어떤 행동을 나쁘게 해서 나쁜 행동 한 게 아니라는 이야깁니다. 차마 이런 이야기 나오기까지 참 오랜 세월 걸린 거예요. 우리가 나쁜 짓을 할 때만 나쁜 짓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헌금을 하든 뭐하든, 나머지도 마찬가지고 헌금 하나 안 하나 마찬가지고, 인간은 어쩔 수 없고 그럴 수밖에 없는 그 쟁반 자장의 그 쟁반, 그 쟁반에 우리는 그대로 노출돼 있는 겁니다.

남자 목욕탕에 남자는 그냥 발가벗고 있고 거기에 여자 목소리는 그냥 북한의 선전원처럼 목소리는 그냥 흘러들어오는 거예요. 거기에다 솜 가지고 귀를 막으면서 ‘어디 감히 여자 목소리가 남자 목욕탕에 들려.’ 하고 솜으로 막고 귀로 안 들으려 해도 주의 말씀은 우리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걸 가지고 성경 시편 139편 6절에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쟁반 자장이 있는 그 국수 가락과 같은 신세인 우리가 하나님이 깔아놓은 쟁반 위에서 우리가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보세요. 이게 어려운데 우리는 내 자리 있고, 천국을 보고 싶고 지옥을 보고 싶어 합니다. 내 자리는 그대로 있고. 천국도 봐서 집어넣고 지옥도 구경해서 집어넣는데, 지옥보다도 천국, 어느 쪽이 나을까? 옳지 천국이 낫겠네. 이렇게 그걸 우리가 결정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그런 것은 우리의 잘못된 오류고, 현재 우리 있는 자리가 하나님께서 천국을 유발하는 자리에 우리가 덜렁 놓여있는 겁니다. 이게 다른 사람 같으면 미가를 통해서 이런 소리를 안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미가 선지자 보낸 취지입니다. ‘내가 이런 잔소리 하는 것도 남의 집 사람 같으면 이런 잔소리 안 한다. 이것들아. 너를 천국 보내기 위해서 이런 소리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런 잔소리 들을 때 고마운 줄 알고 감사하게 여기라 이 말 이예요.

결혼해서 아내가 있다는 것은 그냥 아무소리 안 하면 아내가 있을 이유가 없거든요. 늘 잔소리를 해대는 것, 그 잔소리를 하라고 아내를 붙여준 거예요. 그런데 남자들이 제일 고역스러운 것이 여자들의 잔소립니다. 잔소리 한번 들을 때마다 혼자 사는 게 안 좋았겠나, 생각이 드는데, 성경에 보면 아내는 여호와가 보냈다고 하는 거예요. 갑자기 주례사가 되었는데 아내는 여호와께서 보냈기 때문에 그들의 소리는, 그 여자 목소리는 내 아내가 아니라 하나님에 속한 어떤 여인이 인간 되라고 늘 잔소리를 해대는 겁니다.

언제 아내가 아내 역할로 끝나느냐 하면, 아내에서 더 이상 잔소리 나오지 않을 때, 그건 문제가 심각하무니이다. 심각한 문제예요. 어떤 남자가 자기 여자를 사랑해서 이런 멘트를 남겼답니다. ‘죽을 때까지도 내 손을 놓지 않겠다.’ 아! 이 멋있는 멘트가 어디 나오느냐 하면 광해라는 영화에 보면 나와요. 죽을 때까지 내 손을 놓지 않겠다. 이건 남자 쪽에서 여자 쪽에 배려죠. 그런데 놓지 않는다는 손을 통해서 잔소리가 계속 흘러들어올 때도 놓지 않을 건지 놓을 건지, 그때 가봐야 알겠죠. 이렇게 잔소리 할 것 같으면 손 놔 버린다 이럴 수도 있겠죠.

그 잔소리! 미가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 요거까지는 드릴 테니까 요거까지는 내가 노동해서 얻은 거니까 진짜 이거 손대면 하나님 손 놓습니다.’ 이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아까 보았던 시편 139편에 보면 니가 하나님을 붙들고 자시고 할 그런 처지가 아니라는 겁니다. 니가 착각을 하고 있다. 니가 하나님을 섬길까 말까, 이런 처지가 아니고 아예 하나님이 덮쳐버린 겁니다. 콘크리트 공사하다가 무너져서 밑에 있는 사람이 깔려죽는 사람처럼, 그냥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덮쳐버리면 우리의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 끝이고, 내가 있는 곳이 바다 끝이고, 내가 있는 곳이 땅 끝 이예요. 거기에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저기도 하나님 잔소리 있고 여기도 하나님 잔소리 있는 겁니다.

이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천국이라 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들어갑니다. 아예 안 들어갑니다. 그 잔소리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합니까? 천국이라 하는 것은 아름다운 곳, 좋은 곳이 아니라, 계속 잔소리를 해대는 그것으로 감사하는 곳이 천국 이예요. 주께서 계속해서. 그래서 시편 84편에 보면 내가 주의 성전의 참새나 제비가 더 부럽다는 거예요. 세상의 천 날보다 주의 성전의 문지기로 있는 게 좋사오니, 이런 잔소리를, 이런 미가 6장의 잔소리를 ‘니가 속여서 그래 살림살이 나아졌나? 그래서 니가 잘 먹고 잘 살고 얼추 헌금도 내고 나머지는 내 것입니다. 이건 자식 키워야 됩니다. 이렇게 꼬불쳐 놓으니 그게 좋디? 그래서 그게 행복 했더냐?’ 이 말이죠.

‘요거는 십일조로 하나님께 가고 요거 손대면 하나님 욕심 많은 겁니다.’라고 했을 때 과연 그게 천국이겠느냐 하는 겁니다. 과연 너희들이 진짜 행복한 곳이냐 이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그것마저 쟁반에 담아서 그 쟁반자체에서 모든 것도 그냥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라. 하나님이 돈을 탐내는 게 아니고, 돈에 환장하신 것이 아니고 돈이 어디 있든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몸으로 숨 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몸속에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모니터! 여자 아나운서 목소리처럼 특수한 음성이 자꾸만 나오는 거예요. ‘나는 너를 특수하게 다룬다.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를 영광스럽게 하는 나의 작업은 절대로 너를 위하여 멈추지 않을 것이다.’ 라는 그 말씀. 그것이 우리의 기쁨으로 자리 잡을 때 그런 사람만이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그 천국을 그렇게 사모하고 그리워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속여서 부자 되어서 이거는 내 노동의 대가라고 꿍치고 있을 때, 선지자의 잔소리가 날라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므리의 망한 이유고 아합이 망한 이유라고, 저희들 우리 모습을 볼 때 진작 망해야 됐는데, 잔소리를 주시니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기이하고 특이한가를 깨닫습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해서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는 우리의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15강-미6장9-16(악인의 집)121104-이 근호 목사.hwp (48.0K), Down: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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