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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9강-YouTube강의(믿음 아닌 것)121101-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고린도후서

9강-YouTube강의(믿음 아닌 것)121101-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1.16)

9강-YouTube강의(믿음 아닌 것)121101-이 근호 목사

이번에는 아홉 번째 강의 제목은 무엇이 신앙이 아닌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흔히들 무엇이 신앙인가, 라는 질문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느냐 하면, 지금은 내가 이만큼, 이만큼, 이만큼 가졌는데 그동안 하나님 믿는 것은 빠뜨렸다든지, 교회 가는 것은 그동안 내가 안했으니까, 현재 가지고 있는 이것들도 내 것이고, 거기다가 자리를 하나 만들어서 교회 다니기, 예수 믿기, 하나님 섬기기‘라는 그 항목을 하나 더 첨가시켜 버리면, 현재 내가 가진 것에다가 추가적으로 들어온 신앙까지 보태면, 그 다음에 나의 자질이 완벽해 지지 않겠는가, 해서 교회 와서 ’목사님, 무엇이 신앙입니까? 그 신앙을 알게 되면 제가 알아서 그 신앙생활까지 내 것에다 편입시키고 싶습니다.‘라는 의도로 ’무엇이 신앙입니까?‘라고 묻는 그런 버릇이 있어요.

그런데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시고 살아나시고 죽으시고 승천하신 그 현장의 신앙은 어떤 신앙이냐 하면, 신앙이 없는 이방인들 나라에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이 아니고, 지금 신앙생활을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여호와를 잘 섬기고 있고 모세 율법으로 충만한 그 나라에 예수님께서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신을 믿고 여호와 믿는 것은, 그건 신앙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모든 예수님의 말씀 안에 다 그게 바탕으로 깔려 있습니다. ‘이래서 너희들은 신앙이 아니니라. 이래서 너희들은 천국의 본 자손이 될 수 없느니라.’ 이렇게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소위 신앙 교육의 담당자라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거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퍽이나 착한 사람이거나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거나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지 않았어요. 예수님과 정작 만났던 사람들의 인상에서 예수님은 착하다, 너그럽다, 자비롭다, 사랑이 많다, 그런 인상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이 뭔가 예수님을 연상하려고 한다면, 항상 너그럽고 착하고 훌륭하고 순하고 그런 뉘앙스를 가지고 합쳐서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종합하고 구성하는 그런 경향들이 많습니다. 훌륭하니까 우리를 구원하지 안하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죠. 그런데 막상 그 당시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참 나쁘다. 악하다. 귀신 들렸다. 저 사람은 아마 마귀대장에 의해서 조정 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인상이 더 강렬했습니다. 따라서 뭔가 우리가 예수님 생각하는 게 큰 오해가 있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가상적으로 따로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참된 예수님이라고 이렇게 섬기고 싶은 충동이 우리 내부에서 이끌어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한번 생각해 봐야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인상을 만나고 예수님의 키를 보고 몸무게 보고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예수님이라면, 예수님은 그런 식으로 절대로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저지했습니다. 보고도 믿지 못하는 것이 예수님이다.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제가 성경을 한 장 읽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람들에게 때로는 인기 있는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사람들에게 밉상을 받았는데 그 당시 사람들도 예수님에게 호응을 가졌던 경우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5개,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무려 남자만 5천 명을 먹였습니다. 그렇게 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왕처럼 비췬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나를 따른 이유가 뭐냐? 너희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잖아?’ 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정작 너희가 먹을 떡은 내 살과 내 피를 먹어야 되지, 너희가 전에 먹었던 오병이어는 그건 너희에게 영생을 가져다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민중들이 도무지 그들이 기대하지 않는 예수님의 발언이고 그렇게 될 때 예수님에게서 전혀 예상 못한 면이 나올 때 그들은 두말없이 예수님을 떠나서 두 번 다시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셔서 자기를 따르는 사람까지 자기 자리로 돌려보냈을까요? 고린도후서 13장 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이렇게 돼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고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기적을 일으킨 그 모든 것이 모여 모여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가장 약한 사람 만들겠다는 것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에 대한 대우였고 뜻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제발 약하게 살아가라는 거예요. 약하게!

그런데 오병이어 떡을 먹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할 때 그들의 노림수는 뭐냐, 예수 믿고 난 뒤에 지금보다 더 강한 존재가 되는 거, 거기 몰두하고 그걸 내다보고 그들은 예수를 믿었습니다. 오늘날 교인들도 마찬가지예요. 교회 다니기 전보다 교회 다닌 후가 훨씬 자기 파워라든지 자기 세력이라든지 자기 가진 재산이라든지 그게 늘어나고 흔히 말하는 축복 받았기에 이제는 여유 있게 살아가고 큰 소리치고 살아가고 싶은 그런 소망, 그런 희망을 품고 예수 믿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그런 예수는 그건 다른 예수고 마귀가 조작해 낸 날조한 예수입니다. 정작 예수는 예수님이 일으킨 모든 기적들이 모여서 오히려 예수님을 약하고, 약하고 약하게 만들었어요. 왜,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런 식으로 아들을 대우했을까요? 그것은 뭐냐,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살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충분히 약해져도 괜찮습니다. 왜, 아버지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아버지는 말씀대로 모든 것을 이루시기 때문에, 그 말씀의 능력이 예수님 자신이 충분히 약해져도 상관없는 겁니다. 아버지의 능력은 자신의 약함을 이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정도로 약했느냐 하면 자진해서 죽으실 정도로 약했습니다. 예수님 옆에 있던 강도는 예수님 보고 ‘당신이 가진 솜씨를 발휘해서 여기서 벗어나라’고 그렇게 충동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냥 못 박히고 그냥 창 찔리고 그냥 돌아가셨어요. 죽었습니다. 완벽하게 죽었습니다. 정말 자기 목숨 잃었습니다. 세상 사람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 모습 보고 ‘모든 소설은 끝났다. 이제 예수님 이야기는 여기서 종결된다.’고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제자들도 물론 다 갔습니다. 제자들도 마지막까지 예수님께 어떤 기적이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죽는 마지막에 9회 말 어떤 역전이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역전 없었습니다. 그냥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말 예수님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이시고, 아니 예수님 아버지만이 진짜 하나님이시라면, 그리고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은 가짜라면, 어디를 초점으로 어떤 사건을 일으켰는가, 세상 사람들은 그걸 아예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기대하신 분이 있다면 오직 아들 되신 예수님만 기대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사흘 만에 아버지의 능력으로 살아나셔서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이 믿음과 이렇게 약해져도 된다는 이 믿음은 어떤 인간도 이것을 흉내 내거나 모방하거나 답습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갖고 있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믿는다, 믿는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다 천국과 끊어진 사람이고 단절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는데, 우편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자신이 갖고 있던 믿음 소망 사랑을 선물로 포장해서 성령의 힘으로 자기 구원받을 자에게만 그것을 은사로 주는 그러한 권한을 가진 자리가 하나님 오른편 주의 자리입니다. 그런 권한이 오게 될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룻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라고 하시면서 11절에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죽음에 넘기어야 될 이유가 바로 우리 예수님의 생명이 또 우리 안에 이렇게 활약하고 있다는 것을 바깥으로 증거 하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죽음에 넘기는 그런 사태와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약해져야 된다는 겁니다. 우리 힘으로 약해지는 것은 그건 하나의 교만이고 또 하나의 자기 의가 되니까 그러면 안 되고, 성령께서 환경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지 못하고,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나 하나님의 능력 없이는 전혀 희망이 없다는 그것을 보여주는 상황이 자꾸만 우리 성도에게만 몰려오게 돼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날마다 죽고 주의 은혜로 날마다 살 때, 우리는 모든 내 삶의 영광과 공로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에만 돌릴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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