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YouTube강의(기도)121101-이 근호 목사
8강-YouTube강의(기도)121101-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1.16)
8강-YouTube강의(기도)121101-이 근호 목사
오늘은 제 8강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기도하는 그 자유만큼은 구태여 하나님한테 허락 맡거나 검사 맡을 필요가 없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죠. 예를 들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기도할 때 엘리 제사장한테 허락 맡을 일이 없잖아요. 그러니 기도라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우리 내부에서 발산되는 것이고, 그리고 폭발하는 것이고, 그리고 토해내는 것인데, 그런 기도까지 성경말씀에 규정해서 ‘이건 기도다. 기도 아니다.’ 그렇게 규제를 받는다는 것이 상당히 우리 사람으로서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만큼은 우리 인간들이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시고 응답은 하나님 뜻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응답 안 하고, 합당한 것은 응답한다. 그렇게들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기도를 10가지한다면, 그 중에 하나는 응답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겠죠. 그런데 성경에 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시비 걸고 나오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7절에 보면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 하느니라” 그렇게 돼 있습니다.
인간이 신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 이건 누가 봐도 굉장히 가상스럽고 대견하고 착하고 선한 일이라 그렇게 생각이 들겠죠.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이 칭찬을 해주면 좋겠는데, 칭찬을 하시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기도는 따로 있다는 겁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이방인들이 기도하는 것은 그건 예수님이 용납 못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니까 이방인들도 충분하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유대인이 아닌 입장에서 이방인이죠. 그러니 이방인들이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를 예수님께서 미리 아시고 그런 식으로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타박을 이미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예수님의 지적을 우리가 무시할 수 없고 외면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다면 기도하는 것도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이고 기도도 규제를 받는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궁금한 것은, 그러면 예수님이 원하는 기도, 하나님이 원하는 기도가 어떤 것이냐, 그것이 뭔가 성경적으로 정립이 돼야 되겠죠.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시고 난 뒤에 나오는 8절부터 우선 보게 되면,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버지가 아신다.” 이 말은 지금 우리가 구하는 것만, 우리가 기도하는 것만 기도의 전부가 아니라, 우리 말고 따로 아버지와 통하시면서 기도하는 분이 따로 계시다는 이야깁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고 또는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이 자기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그 기도하신 기도의 내용에 의하면, 우리가 기도해서 이거 달라, 저거 달라, 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버지로부터 우리에게 계속 공급하고 제공해 왔다는 것을, 그 다음에 우리가 그걸 받아들이고 알고 그것을 고백하는 입장에서 기도를 해야 된다는 거죠.
우리가 기도하게 되면, 이거 제시해서 ‘하나님 이거 기도합니다. 여러 개 중에서 하나라도 들어주옵소서. 응답해 주옵소서.’ 이렇게 윽박지를 것이 아니고, 우리보다 먼저 아버지를 아시고 아버지에게 합당한 기도를 하시는 예수님의 기도내용을 우리가 뭔가 눈치 채서 그 기도에 대한 내용이 응답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그 응답 그대로 지금 주어진 그 결과물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기도하는 자체가 예수님의 기도의 응답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아무렇게나 기도해도 응답이냐?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9절에 보면 여기에 흔히들 ‘주기도문’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기도 내용이 나옵니다. 이 주기도문의 내용은 3가지 내용으로 돼 있어요. 하나는 뭐냐 하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 아버지의 이름을 위해서 우리는 존재한다는 것, 두 번째는 일용할 양식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더라도 일용할 양식은 우리의 노동의 대가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세 번째는 죄에 대해서, 악에 대해서, 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이렇게 한꺼번에 묶어서 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는 그 내용은, 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이름을 위해서, 자기 영광을 위해서 살지 않게 하옵소서. 이것은 바로 우리가 평소에 기도할 때, 기도의 의도, 기도의 그 노림수, 기도하면서 은근히 기대하는 기대치, 그것과 우리의 영광, 우리의 자존심 향상, 우리가 남한테 과시하는 것, 우리가 스스로 잘 된다고 여기는 것, 우리가 소망이라고 생각하면서 품었던 것, 그런 것들이 우리 이름을 이 세상에서 빛내는 것과 연관돼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미 눈치를 채시고, 그런 식으로 살지 않기를, 존재하지 않기를 아버지께 기도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우리자신의 과시나 영광 이런 것은 참된 성도라면, 그것은 예수님의 기도에 받혀서 그것은 응답될 수가 없죠. 응답되지 않는다는 것은 날마다 우리는 우리자신의 소망에 대해서 실망되는 그런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기도 덕분에 우리 이름이 와장창 늘 부서지고 뭉개지는 그러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는 겁니다. 어떤 경우라도 내가 생각한 내 이름의 자존심이 높아지고 영광이 높아지는 그것을 예수님은 그냥 보지 아니하시고 기도를 기어이 해서 아버지께 기도의 응답을 따내서 그것을 저지하는 식으로 우리에게 작용합니다. 만약 그러한 체험이나 그런 현상이 없다면 그것은 천국 백성이 아니고 지옥 백성이 되는 겁니다.
그 다음의 기도 내용이 일용할 양식을 달라 했습니다. 일용한 양식이라 하는 것은 이틀 치 양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우리가 오늘까지 살 수 있습니다.‘하는 그런 고백을 의미하는 겁니다. 오늘 살 수 있다면, 오늘까지 살았다는 것은 주께서 오늘까지만 살게 필요한 조치들은, 영양분이나 양식은 그것은 하나님에게만 제공된 것이다, 라는 고백을 기도에 담으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일용할 양식을 준 걸 봐서 오늘도 또 하루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군요. 감사합니다.‘라는 식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대신 아버지께 기도한 기도내용에 포함이 돼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내일까지 더 살고 싶어 하는 그거마저도 우리한테는 욕심이 되고 탐욕이 되고 죄가 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겁니다. 야고보서 4장에 보면 ‘내가 어느 도시에 가서 이익을 보리라’ 하는 그런 것은 다 악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옳다는 거예요. ‘우리가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주의 뜻이면 죽기도 한다.’ ‘죽기도 한다.’를 우리가 용납해야 돼요. 주의 뜻이면 저는 살 수 있습니다, 만 고집부리지 말고 주의 뜻이면 언제라도 죽고 사는 권한은 우리한테 없습니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은 우리 권한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기도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주의 기도 때문에 오늘도 하루치를 살아가고 있습니다.‘라는 고백을 할 때, 그게 참된 기도에 대한 보답이 되고 응답이 된다 이 말입니다.
세 번째가 뭐냐 하면 우리가 살아있는 존재 이유가 우리의 죄가 어떻게 용서 받았는가를, 증거 하는 증거물로서 이 땅에 살아갈 때, 그것이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 돌리는 그러한 바탕이 되는 겁니다. 무엇을 했느냐, 얼마나 높은 자리에 앉았느냐, 얼마나 출세했느냐. 가 아니라 오늘도 나의 죄는 아버지에 의해서, 예수님에 의해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 예수님의 공로가 그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세상에 증거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먹고 우리는 이 죄지었다는 것을 파악하고 그 죄가 우리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에 의해서 제거됐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성도로서 이 땅에 잠시 나타났다가 이제는 나이 들면 또 사라지고 죽게 되면 또 사라지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런 기도 하시면서 결국은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으셨으니까 이 기도의 결론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여, 제가 한 이 기도 때문에 제가 목숨을 걸게 하옵소서.’ 다시 말해서 ‘이 기도로 인하여 저를 죽이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해야 돼요.‘ 이 기도할 테니까 더 살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 기도내용대로 죽을 때까지만 살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해야 된다 이 말이죠.
예를 들어서 ‘제 아이가 예수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제 아들 예수 믿는데 제 목숨을 걸게 하옵소서.‘ 이렇게 돼야 돼요. ’저는 더 이상 안 살아도 되니까 제 아들은 예수 믿게 하옵소서.‘ 라는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그 모습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우리가 살아야 될 존재 이유가 기도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고백돼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살고자 하는 기도는 다 이방인들의 헛된 기도고 마귀가 시킨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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