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20121012a-벧후3장5절(물의 심판)-이 근호목사
안양-20121012a-벧후3장5절(물의 심판)-이 근호목사
이름 : 공은주(IP:211.211.128.214)
안양-20121012a-벧후3장5절(물의 심판)-이 근호목사
시작하겠습니다. 베드로후서3장5절부터 봅시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라고 되어 있지요. 여기5절에 보면,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되어 있는데, 하늘과 땅과 하나님의 말씀, 이 세 가지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하늘이 있고, 그 다음에 하늘밑에 땅이 있겠지요. 땅이 있고, 그리고 하늘이 하늘답게 성립하는 것도, 땅이 땅 노릇 유지되는 것도, 말씀으로 생겨났고, 또 말씀으로 유지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하늘이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유지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늘에 달이 있잖아요. 달이 지가 알아서 팽팽 돌고, 해는 알아서 화끈하게 열기를 내뿜고, 바다도 마찬가지고요.
땅은 물에 포위되어 있다. 땅은 물에 포위되어 있어서 그냥 땅이라는 게 없고 물 가운데 땅, 물이 약간 비켜 가면 땅이 되고, 물이 넘쳐버리면 땅이 사라지고, 그런 식으로 땅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물과 더불어서 이렇게 돼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 재림하시면 물과 땅으로 됐던 관계 속에 하늘에 불이 주어지게 되면 불과 물과 땅, 하늘이 전부 다 짬뽕이 되어버려 가지고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요. 예수님이 재림하게 되면 사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땅이라 하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물에서 분리되어서 땅이 되었다. 이렇게 된 땅은 말씀으로 됐다는 거예요. 그러면 땅에서 재미나게 노는 여우나 사슴이라는 것도 무슨 힘으로 그 애들이 뛰어놀고 재미나게 논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렇게 됐다는 겁니다. 이걸 누가 압니까?
우리가 아는 자연과학적인 사고에 의하면 하늘과 땅과 물과 바다 이 모든 것을 한군데 모으는 것은 오직 에너지에요. 에너지 개념은 칼로리 개념은 19세기 말부터 나온 개념입니다. 에너지라 하는 것은 힘, 열, 운동한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를 소비한다거나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거예요. 운동한다는 것은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이동하는 거고, 이동할 때는 누가 민다는 겁니다. 누가 미는 게 아니지요. 무엇이 밀어요. 그게 에너지가 밀어주면 운동에너지가 되게 되면 이 때 운동 에너지가 나오고, 상태에너지 받고 전부 다 에너지로 설명하는 겁니다.
지금의 천문학과 물리학 모든 것은 따지고 보면 에너지의 형태 변화입니다. 에너지가 어떻게 바뀌는가, 사람이 뭐냐? 에너지에요. 사람이 에너지다. 사람이 병을 고칠 때는 에너지를 제 때에 공급해 주면 살고, 에너지를 공급 못해주면 죽고, 그런 거예요.
그리고 그 에너지라 하는 것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 사람을 분해해 보면, 단백질로 되어 있지요. 단백질을 분해해 보면, 분자로 되어 있지요. 분자 깨지면 원자 나오지요. 원자 조사해 보면, 원자는 전자와 핵으로 되어 있지요. 핵은 강력과 약력과 전기력과 중력, 이 네 가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 다 되어 있어요.
사람들은 자연과학에 의하면, 우주에 대한 신비감이 삭 없어지는 이유가 지구로 날아오는 유성 있잖아요. 유성 보면, 야~ 이거 우주에서 날아온 것이기에 지구에 없는 거다! 전부다 이리 생각했잖아요. 막상 하늘에 뜬 유성을 조사해 보니까, 에·~ 지구에 있는 거예요. 지구에 있는 금속이에요. 그러니 이 말은 뭐냐 하면, 지구 밖에 것이 지구 내부에 있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지구 내부의 자석이니까 자장이 생기고, 자장이 생기는 것은 지구 내핵과 내핵이 돌아가면서 거기서 마찰력생기고 거기서 금속 내에 자장이 밖으로 퍼져서 자정, 자석부터 해가지고 태양에서 날아온 우주선도 차단시켜 가지고 생명을 보존하게 되는 이렇게 설명이 돼요.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놀라운 사실은 하늘에서 날아온 유성 있잖아요. 분명히 지구 밖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사해보니까 세상에 지구 안에 있는 내부와 똑같아요. 밑에 있는 화석 재와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바깥에 나가봤자, 새로울 게 없는 거예요. 그러면 금속 가운데 철이라 하는 것은 처음에 빅뱅시대부터 시작해서 수소와 헤롯부터 해서 굳히고, 굳히고 해서 아주 단단한 금속이 최고의 금이거든요. 나중에는 철의 화합물이라든지 제일 강한 금속이란 말이지요. 금속도 여러 가지 있지만 그렇게 볼 때, 전부 다 에너지로 되어 있다 말이지요. 에너지로 단단히 굳혀져 있으면 그게 다 힘이 되고 그게 풀어지면 파동이 되고 헤엄치는 거, 빛이라 하는 것은 입자가 되지만, 파동으로 날아오고, 빛이라 하는 것은 단단한 태양 같은 것이 팡하고 깨질 때, 빛 에너지가 오니까 세상에는 에너지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 무슨 말씀이 있습니까?
그래서 오늘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교육하는 사람에게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렇게 납득이 되도록 단계를 밟아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단계를 걸칠 사다리가 성립이 안돼요. 에너지로부터 시작해서 에너지의 변형들이 하나는 토끼가 되고, 하나는 코스모스가 되고, 하나는 인간이 되고 그런 거다 말이지요.
그래서 20세기 초에 공산주의 되고 난 뒤에 종교를 아주 핍박했어요. 신을 가르친다 해서. 공산주의는 종교가 아편이라 해서 어떻게 했냐 하면, 일요일도 없애기 위해서 9일 일하고 하루 놀게 했다고요. 반발이 너무 심해서 다음부터는 6일 일하고 하루 놀았지만, 처음에 스탈린이 그런 짓 했거든요. 그래서 종교 없앤다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신을 언급을 하려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하는데 이 지상에서 지금까지의 논리가 과학시대의 논리가 없어졌어요. 없어요.
옛날에는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지면 전부 다 “아이고, 신이여!” 이렇게 나왔지요. 번개가 친다, 벼락이 친다, 그건 신의 노하심이라고 요한계시록에 나온다 말이지요. 요한계시록 마지막에 벼락과 지진이 일어나는데. 그런데 미국의 3대 대통령 프랭클린이 피뢰침을 발견했어요. 하나님의 진노를 잡아버린 거예요. 헨리포터와 똑같아요. 그야말로 마술사에요. 하나님의 벌을 잡아버렸네요. 그러니 그때부터 신이라 하는 것은 잊자, 신이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냥 도외시하고 남겨진 신이 있다 하면 그 신이 남겨준 이것을 인구가 밥 먹고 사는데 어떻게 필요할까 하는 그런 유용물, 실용주의지요. 그걸로 가는 거예요.
가다 보니까 인구는 많아지잖아요. 인구가 많아지니까 인구를 먹여 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인구를 먹여 살리는 방법은 2가지 방법밖에 없어요. 하나는 기술과 과학의 발전밖에 없습니다. 과학과 기술이라 하는 것은 뭔가 필요할 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아닙니까? 필요하기 때문에 발명되는 거예요. 아프리카 토인들한테 컴퓨터 줘 봐요. 소용도 없는 거잖아요. 많은 인구가 증가함으로 말미암아 에너지가 필요했고, 그 에너지가 드러나 있는 노천에 나와 있는 석탄만 캐다가 기술이 발달해서 뚫기 시작했고 뚫어보니까 기름까지 뚫려 버렸네. 옛날부터 기름은 있었어요. 나왔는데 그 기름을 사용할 줄 몰랐어요. 중국 같은 경우에 석탄만 사용하다가 기름도 사용하자, 해서 그 다음부터 기름을 정제하는 방법, 암모니아 필요한 것, 이런 것을 발견하고 그 다음부터는 많은 사람이 옷 입기 위해서는 섬유 재단질 하다가 섬유를 추가 발행해서 그걸 제트기처럼 박아버리니까 완전히 애들이 하루에 16시간 이상 앉아서 재단하다가 대산업혁명이 되고, 산업혁명이 발달하면 금융자본주의가 발달하고, 금융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되면, 노동하는 사람보다 자본가진 사람이 모든 정권과 모든 주도권을 쥐는 이 시대가 바로 자본주의 시대가 아닙니까?
신으로 가는 다리가 없다는 것을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신으로 가는 다리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창세기27장에 보면, 야곱은 신을 어떻게 봤습니까? 꿈을 꿨잖아요. 꿈을 꿨는데 야곱은 어떻게 신을 봤습니까? 꿈에 사다리가 오지요. 사다리. 그 사다리가 바로 요한복음에서 내가 바로 야곱의 자리이고, 인자위에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거예요. 사다리를 내려주신, 천사를 보내주신, 그 분이 왔기에 여기는 일반적인 공간과 다른 공간이 생겼는데, 그 공간 특수한 공간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건을 일으키는 그 공간, 예수님이 함께 있는 그 공간, 새로운 공간이 발생되는 겁니다.
다른 공간에서는 아까 이야기한 에너지만 있으면 살고, 에너지가 없으면 죽는다, 돈을 가지고 양식을 제공해서 우리 속에 에너지 제공할 때, 에너지가 오게 되면 우리 세포에서 그걸 분해해요. 미토콘드리아에서 분해해서 우리의 열량이 되고 그 열량으로 모든 세포가 원활히 돌아가거든요. 그러니까 인간은 처음부터 기계고, 그 기계는 에너지만 주면 그 기계는 돌아가게 돼 있어요. 그게 인간이에요. 그런데 그 자체를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것은 말씀이 없는 상태기 때문에 죽었다고 보는 겁니다.
결국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관계성’입니다. relation. 관계성.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관계성. 야곱이 사실은 죽은 인간인데, 자고 있는데 하나님이 사다리를 보내 줬지요. 그 사다리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은 누구였습니까? 야곱의 형님이었고 야곱의 아버지였습니까? 천사라니까요. 천사. 천사는 에너지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천사가 배고파서 밥 달라고 하는 천사 없어요. 천사가 무슨 밥을 먹습니까? 사람이 죽고 나면 뭐와 같다? 우리는 천사와 같은 거예요. 죽으면 천사와 같은 거예요. 천사가 되면 시집도 안가고 장가도 아니가요. 애는 아예 없고. 애를 낳을 필요도 없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보고 이야기했어요. 너희들 왜 그걸 몰라, 너희들은 자꾸 천국가가지고 시동생하고 형수하고 결혼했는데 누구의 남편이 되겠는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데 그런 소리는 이 에너지 세계, 이 세상에서나 그 소리 통하라는 말이지요. 부부사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만 가시적으로 임시적으로만 갖는 관계입니다. 두 분 사이좋게 지내도 할 수 없어요. 이 세상에서만 사이좋지 천국가면 다르겠지만.
흙에 속한 것은, 우리가 흙이라는 말은 그냥 흙이 아니고 말씀에 입각해 볼 때, 흙이라는 거예요. 자꾸 말씀을 가위로 잘라 버리고 흙이라 하니까 이것은 괜히 흙이라 해서 괜히 신자인 것처럼 유세떠는 거와 똑같습니다. 요즘 들려오는 소리 보면, 하나님도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 믿기로 해서 교회를 만들어요. 한국교회 다 그렇습니다. 실제로는 하나님 안 믿습니다. 안 믿고 뭘 기다리는가 하면, 자기가 성도라고 합니까? 뭐라고 합니까? “기준! 해서 나 하나님 믿는데 같이 믿을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해서 계모임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 믿는 사람을 원하고 있지 예수님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제 말 이해하겠어요? 예수님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믿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거예요. 왜? 외로우니까. 사는 게 외로우니까. 그리고 남들과 만남을 통해서 나의 존재가치를 확정짓고 싶어서. 이 이야기는 여기서 안 하겠습니다. 인간은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재정립한다고. 혼자 있으면 외롭다는 말은 뭐냐 하면, 내가 누군지가 허전하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모으게 되면 그 속에서 “아! 나는 이 정도 레벨은 된다고 스스로 자기가 기대했던 자아를 되받아 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교회 만들기 또는 교회 다니기 하는 겁니다. 안 믿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주님 사랑, 주님 이야기하면 화냅니다. 교회 이야기하고 우리교회 재미있다고 해줘야지, 예수님 십자가 이야기하면 화를 버럭 냅니다. 그래서 그냥 모이려 하니까 미안하니까 예수님 믿는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 때, 예수 믿는 사람이다, 그 규칙을 정해놓고, 법을 정해놓고 그 법대로 지킨 사람들은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고 천국 간다고 확정짓자, 저희들끼리 그런 머리 맞대고 연구하는 거예요. 외롭지는 않지요. 하지만 그래 가지고 그게 사다리입니까? 인간들이 사다리 될 수 있어요? 사다리 되지 못하는 인간 믿어놓고. 그렇잖아요.
성령의 역사라 하는 것은, 육과 영을 구분하는 일을 해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성령은 무슨 일을 한다? 육과 영을 구분하는 일을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오해하기를 성령이 오시면 영의 일을 한다, 하는데 육과 영의 일을 구분하는 일을 한다니까요.
육과 영의 일을 구분해서 “아, 이게 육이고, 이게 영이구나!” 구분하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의 육은 뭡니까? 우리의 가까운 육이 뭐냐, 자식과 남편과 아내 그 사이지요. 우리가 울고불고 하는 것은 주님 십자가 때문에 울고불고 안 해요. 평소에.
지 자식 성적 내려가고, 웃는 것도 지 자식 잘 되면 웃고, 전부 다 육적인 거예요. 그게 육이라고 지적해 주는 것이 성령의 역사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평소에 하루, 하루 무슨 재미로 삽니까? 영 때문에 삽니까? 육 때문에 삽니까? 육 때문에 살잖아요. 육이 나를 만족 시키면 우리는 웃고, 육이 나를 실망하게 되면 우리는 울고, 왜? 나도 거기에 같은 육이니까. 바로 그게 육이라고 오호라, 그게 곤고한 사람이라고 그게 사다리가 끊겨진 상태라고 알려주는 거예요. 그렇게 찾아서 알려주면 그것이 유일하게 사다리가 되는 거예요. 천상의 사다리.
아까 이야기한 야곱 해석해 봅시다. 야곱이 잠을 자는데 사다리가 왔잖아요. 야곱은 또 육으로 오해하는 거예요. “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내가 여기 또 오게 되면 이 장소가 하나님과 유일하게 통하는 어떤 UFO와 통하는 유일한 비밀, 서로게이트 영화 같은, 영적인 세계와 유일하게 통하는 그런 채널 터널 같은, 그 장소해서 그것을 돌을 취해서 기름을 붓고,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다른 것과 차별된 기름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별된 기름을 붓는 거예요.
옛날부터 기름을 부으면 독특한 특수성을 띤다 하는 것이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뜻이 뭐예요? 기름 부음을 입은 사람, 다른 사람과 같은 취급 받지 마라, 특수한 분이다. 그 분한테는 신의 계시가 떨어진다. 이거거든요. 기름부음으로 해서 하나님의 집이라고 해서 내가 여기서 제단을 쌓겠습니다, 이리 나온다 말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할 때에 제단을 드린다 할 때에, 십일조 드리겠습니다. 십일조 드린다는 것은 아버지와 같은 계열입니다, 이런 뜻이에요.
아브라함이 하늘에 속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 드렸거든요. 유튜브 십일조 했거든요. 멜기세덱과 유일하게 통하는 것, 그런데 그 야곱이 돌아올 때는 야곱으로 돌아오지 않아요. 야곱은 죽어요. 사람을 죽이지 않고 구원하는 방법은 없어요. 모든 사람을 죽여 놓고 구원해요. 그래서 구원 받은 사람은 나는 죽고, 내가 아닌 딴 사람이 되어서 지금 주님한테 은혜 받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그런데 육에 속한 사람은 “아이고, 오랜 간만이다. 니 고등학교 몇 회지?” 하고 그 쪽에서 육으로 나오지요. 아이고 오래간만이다. 그렇잖아도 해서 주머니에서 청첩장 꺼내지요. 우리 딸 치우는데 온나 하지요. 보험 하나 들고.
야곱은 죽어요. 돌아올 때는 죽은 야곱으로 돌아오는데 죽은 야곱을 살려내는 것은 야곱의 본인의 기대나 희망은 버리고 이스라엘이란 이 새로운 이름의 장착된 그것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누구와 연결되어 있느냐, 장래 오실 메시아,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니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내가 여기 육이 있는데 누가 나를 붙잡고 당기는 그 이름이 내막을 조사해 보니까 하늘에 계신 승천하신 예수님과 엮여져서 질질 끌고 다니는 거예요. 야곱은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야곱의 운명은 없고, 무슨 운명이 있느냐 하면, 야곱의 언약이 제공하는 운명만 있습니다.
야곱의 언약이 제공하는 운명을 저 위에서 정체는 들어나지 않지만 어떤 어르신네가 계시는데 그 어르신네가 야곱의 언약을 완성하실 분입니다.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야곱의 언약을 이룰 사람이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속에는 이스라엘이란, 야곱이란 몸체의 껍데기 이스라엘에 진짜 이스라엘이 들어있지요. 그가 누구겠습니까? 그게 예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누구의 이름이에요? 야곱의 이름이 아니고,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 하는 것은 신과 인간이 이긴다는 것은 예수님이 장차 기능과 관련되어 있는 이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겁니다.
자, 봅시다. 특수성, 지금 물리학을 계속하는데. 야곱은 에너지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과학적 분석에서는 야곱을 아무리 조사해 봐도 실체로 분석해 봐도 태워보면 열량 나오지요. 열량이 나온다 하는 것은 평소에 에너지가 신체적 세포로 형성되어 있다가 태워버리면 이것이 재라는 뼈라는 형태로 바뀌면서 그 중에 소비된 소모된 열량만큼은 열과 연기로 공기 중에 퍼져 버리지요. 그러면 그 에너지는 우주에서 밖에 나갑니까? 안 나갑니까? 안 나갑니다. 그걸 에너지보존의 법칙이라 하는 거예요.
에너지보존의 법칙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윤회설과 비슷하게 돼요. 그 에너지가 다시 진화하게 되면 쥐가 될 수 있고, 고양이가 될 수 있고, 낭만 고양이가 될 수 있고, 소가 될 수 있고, 저처럼 연탄재가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연탄재를 함부로 차지 말라하는..... ㅎㅎ 인간은 에너지의 응축이니까.
그래서 스탈린은 사람을 죽여도 1,500만명 죽였어요. 세계 기네스북에 올라야 돼요. 자기 백성을 1,500만명을 죽인 거예요. 왜 죽였느냐, 아이~ 금속인데 뭐, 물질인데 뭐, 종교를 없앤다 했지요. 종교를 없애버리면 인간은 그냥 물질이에요. 인간은 흙이라 할 때는 반드시 언약적, 아브라함 야곱의 언약,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되어서 흙이라 해야지 그냥 이것 때문에 흙이라 하면 에너지 덩어리의 흙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흙이라 하는 것은 하늘의 형상, 흙이 아닌 형상을 염두에 두고 흙이라 하는 거예요. “너는 흙이야.” 하는 것은 욕하는 게 아니고, 언약 적으로 봐서는 “너는 희망 있어.” 이런 뜻이란 말이지요. 너는 주님께서 말씀으로 흙 되기에 흙이 되게 하신 말씀이 있다면 그 흙된 그것도 말씀의 능력으로 하늘의 형상, 주님의 부활된 모습으로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 그 말씀 풀이하려면 1시간 이상 걸립니다.
예수님께서 말장난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앞에 용어 죽어서, 살아서 같은 개념이 아니에요. 같은 개념 같으면 말이 안돼요. 니가 무릇 죽어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이게 그 용어가 같은 용어로 배치할 수가 없어요. 죽은 인간이 뭘 믿고 살아 있으면 믿을 필요가 없잖아요. 이미 살아있는데 왜 믿어요. 그렇잖아요. 성경 그 말씀 듣고. 이미 살았건만 챙길 건 다 챙겼는데. 이미 영생 얻었는데 무슨 예수를 믿어요. 영생 얻었는데. 맛있는 생명나무 따 먹고 있는데 뭘 또 예수 필요해요. 따 먹고 난 뒤에 "예수님, 어떻게 따 먹으면 영생 얻어요?" 이런 말 할 이유가 없지요. 그러면 예수는 예수고, 볼 일 보러 가고, 나는 영생 받고 천당 가고, 이게 바로 선악과 사고방식 아닙니까?
그러니 선악과 사고방식으로 성경 해석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영생 얻기로 교회 오는 것은 이거 문제 있어요. 말씀에 입각한 사람이 돼야 되는데 말씀이 아니고, 죽어서 좋은데 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거는 차라리 절에 가라, 절에 가야 돼요. 우리 동네 갓바위나 가세요.
어떻게 하면 구원받습니까? 이거는 가게 들어가서 “여기에 혹시 잉크 있습니까? 여기에 혹시 자전거 있습니까?” 묻는 사람과 똑같은 거예요. 동사무소에 가서 “여기 호적등본 떼 주세요.” 이런 거와 똑같은 거예요. 호적등본 떼고 가면 되지, 내가 동장님의 아들 되겠습니다. 이럴 필요 없잖아요. 그런데 교회는 그게 아니고 뭐 떼 내고, 돈 주고, 영생 얻어가지고 챙기고, 이거 아니에요. 그냥 죽여 달라는 거예요. 그냥 죽으면 안 되고 자살 되고, 말씀에 입각해서 죽여주시옵소서! 말씀에 입각해서 죽여줘야 말씀 자체가 예수님에서 완성되기 때문에 완성된 그 말씀으로 우리를 살릴 수가 있는 겁니다. 그 말씀으로.
그 차원에서 오늘 베드로후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베드로후서는 구원 안 받을 사람에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을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에요. 안 받은 사람들은 이거 보고 또 화를 내지요. 에너지로 되어 있는데 무슨 말씀으로 관계있는가?
여기서 좀 더 해 봅시다. 이제부터 어려워요. 하늘과 땅, 말씀인데, 이 말씀을 바로 언약이라 했지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하늘과 땅과 물이 다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보면, 물에서 분리된 게 땅인데 임시적으로 다시 물이 땅하고 합쳐버리니까 땅이 없어졌지요. 물속에 잠겨버린 거예요. 그걸 가지고 창세기 6장에 언급해서 베드로가 하는 말이 이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렇게 땅이 물속에 잠겼다. 이리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제가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말씀은 누구라 이야기했습니까? 예수님이라 했지요. 그래서 머리 좋은 사람들은 생각하지요. 하나님의 하는 일은 전에 홍수 내리신 그 분이 바로 "아!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구나!" 더 소개해 보면, “천지창조 하신 분도 예수님이구나!” “그리고 예수님께서 천지창조만 하신 게 아니고 노아 때는 물로서 땅을 덮어버린 것도 예수님이시구나!” 그 다음에 제일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신 일 중에서 천지를 창조하는 것과 물로서 세상을 심판하는 요소가 예수님이 하신 일속에 이미 내장되어 있다는 것을 감 잡을 수가 있어요. “아, 예수님의 하시는 모든 일에는 그 안에 천지창조도 담겨있고, 노아홍수 담겨있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도 담겨있고, 전부 다 예수님의 3년 동안 생활 가운데서 그게 다 안에 내장되어 있고 감추어져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다음 말씀,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다.” 이 말은 이게 헛소리가 아니고 이게 허풍떠는 소리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걸 이미 노아홍수를 염두에 두고 예수님이 제공한 마지막 기적은 뭐가 있느냐,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었다 하니까 우리는 뭔가 별난 이벤트 벌이는 줄 알았어요. 주님께서 오버한다. 잔소리하면 우리가 잔소리 들어서 지을 건 짓고 좋은 관계가 되는데, 예수님께서 덜렁 죽어버리면 우리가 선행을 해야 될 그 자체가 차단돼 버리잖아요.
예를 들어서 애가 시험을 쳤는데, 두 과목 모두 100점을 못 맞고 90점을 맞았다. 90점 맞으니까 엄마 성에 못 차지요. 애를 불렀어요. “애야, 네가 100점을 맞아야 되는데, 우리 집은 그런 적이 없다. 내가 도저히 못 참겠다.” 하고 약봉지 꺼내서 먹고 퀙 죽어 버렸다. 갑자기 죽어버렸다. 애는 엄마가 너무 오버하는 거예요. 지금.
매일 공부 잘 하라 라든지, 틀린 문제는 다시 봐서 다음에는 틀리지 말라 라든지, 이렇게 뭔가 대안을 제시하고 앞으로 더 나아질 비전을 제시하고, 차근차근해서 좀 하면 잘할 수 있어, 이것만 고치면 돼, 하고 희망을 제공하는 것이 그야말로 어른된 도리인데, 90점 맞았다고 피 흘려서 죽어버리면, 그러면 자식은 뭘 해요? 죽은 엄마 뒤치다꺼리 하면 되겠어요? 보험 하나 없고, 뭘 해야 되는 돼요?
예수님 돌아가셨잖아요. 십자가에. 그러면 우리는 뭐 해야 됩니까? 이 이야기부터 들어야 되는데. 기껏 한 게 장례예요. 막달라 마리아하고 마리아하고, 아리마대 요셉이 기껏 한 게 뭡니까? 시체를 독수리에게 뜯어 먹힐 수는 없다 말이지요. 죽은 자의 고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잖아요. 예의가 아니다 말이지요. 그래서 시체 달라 해가지고 무덤에 넣었잖아요. 손 털었지요. 무덤에 넣었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그런데 그 죽은 예수님의 천사가 방문할 줄이야. 에너지가 방문한 게 아니고, 위치에너지, 열에너지, 진동에너지, 에너지가 아니고 단백질 탄수화물 이게 아니고 지방질이 아니고 칼슘이게 아니고 프로폴리스 주사 놨습니까? 이거는 막달라 마리아가 기도한 게 아닙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마사지 한 게 아니에요. 그냥 돌문으로 가둬둠으로서 인간의 할 도리는 끝났어요.
우리의 구원은 내가 할 도리가 끝났을 때, 비로소 구원이 보입니다. 주님의 공로입니다. 내가 할 도리, 십일조, 헌금, 봉사, 기도, 교회참석, 온갖 짓들을 다해도 그게 바로 능력이 안 될 정도로 불신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불신중의 행동이라니까요. 교회 다니고 하는 모든 것이 자랑 질 하는 거, 구역예배 참석하는 거, 모든 게 불신, 안 믿어져서 환장한 것들이에요.
요번에 청도에서 특강했잖아요. 우리 몸이 기록이란 말 했잖아요. 우리 몸이 기록이에요. 우리 몸에 재봉틀로 박는 거예요. 주의 말씀으로 마구 박히는 거예요. 제가 그 이야기할 때 했잖아요. 욥은 단시간에 보답 받았지요. 우리는 90평생 상처가 찢어지고 째지고 온갖 질고로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어요. 수련회에 참석하면 따라와서 데려가려 하고. 온갖 것을 다 겪는다고. 욥은 단시간에 했지만, 우리는 천국 가는 걸 이미 결정됐기 때문에 한평생 걸쳐서 주님의 은혜 받은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의 은혜를 받았으니 뭐로 보답할꼬? 보답하지 마! 뭘 보답해! 찢어지는 것만 남아 있는데. 뭘 보답해요? 산다는 자체가 남에게 피해주는 죄인인데. 살아있는 자체가. 뭘 보답해? 보답 못해서 그것이 너무 허풍이다. 보답할 생각 말고 주께서 쥐포 찢듯이 하시면 찢어지세요. 어떤 날은 환란, 어떤 날은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 모든 것이 찢어져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영적인 사람은 뭐냐, 내 일상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게 뭔가 취소되지 않는 게 있어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동안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이런 보배가 그동안 우리 육적인 것에 때가 너무 겹겹이 쌓여서 잘 안 보였던 거예요. 보이지를 않아요. 귀한 것은 받아놓고 너무 세속적인 버릇이 남아가지고 완전히 질식하도록 쌓여서 되도 않는 것이 울고불고 하고 있어요. 우리는 안 울어도 되는데 울고, 웃어야 되는데 울고 그래요.
그래서 차라리 물로 그냥 심판 받아도 그것도 환난이라면 그것도 괜찮고, 환난에서 유황불 떨어져도 노탱큐 상관없어요. 괜찮아요. 오히려 우리의 신상 털기 백날해도 괜찮아요. 다 털려도 괜찮아요. 진짜 나의 나됨은 내가 나에게 관리해서 내가 되는 게 아니고 나 때문에 손을 다 털어내니까 정말 나의 나됨은 이스라엘 됨은 주의 언약에 의해서 되는 겁니다.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아버지가 택한 자를 구원하는 것처럼, 나도 내가 택한 자를 구원하고, 아버지가 택한 자를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살리는 그 손길을, 사실은 우리의 저 밑바닥에 가있어서 우리가 잘 느끼지를 못해요. 그런데 집안에 우환이 있다든지 누가 하나 죽던지 이리하면, “아~~ 인생 햇빛과 공기 내가 세금내서 얻은 게 아니고, 잘 때도 쉬지 않고 뛰는 심장은 내가 자면서 꿈속에서 마사지해서 사는 게 아니고, 내가 발걸음 세는 것도 하나, 둘, 셋, 넷, 세는 것이 아니고, 머리카락 빠지는 것도, 나의 나됨은 주의 은혜지 내거라는 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남의 것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이리 봐도 다 주의 것이에요. 근육이 울퉁불퉁해도 다 주의 것이에요. 자, 물로 심판했다하는 말은 뭐냐 하면, 인간 것들은 가라, 천국가지 못하는 것들은 가줘! 해서 씻어내는 거예요. 다시 물밖에 없었던 세계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면 땅은 취소가 되지요. 땅은 없는 거예요. 물밖에 없지요. 물속에 살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물이 땅 되면서 사람 살았잖아요. 그러니 “인간들아! 니가 땅이 없었을 때를 생각 못하고 있구나!” 땅이 없었을 때를.
그러면 우리에게 물을 줘놓고 왜 뺏어 가는가, 물이라 하는 것은 너희들이 원한다고 해서 물이 있고, 원하지 않는다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물은 말씀 자체를 이루기 위해서 있는 거예요. 이걸 도약해서 말해 버리면 언급하면, 물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옛날에 물이 한차례 땅을 덮었던 겁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적이 뭐라 했습니까? 요나의 기적이지요. 십자가의 기적이지요. 십자가의 위대한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옛날에 한 때, 물은 땅을 덮쳐야 했던 겁니다. 그러면 거기서 발생되는 것은 언약의 위대성, 노아방주의 위대성, 그 노아방주가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노아 때 만들었다면 지금은 방주가 아니고 어떤 배 모양이 아니라 십자가 죽는다는 거예요.
십자가에 죽는다는 이 사건은 우리 눈에 안 보입니다. 왜냐 하면 옛날에 있던 사건이고 거리가 멀고, 한국에서 너무 머니까 십자가 있어도 큰 망원경으로 보려 해도 잘 안보여요. 그 십자가를 사도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령이 보이지 않는 이미 지나가버린 한물간 십자가를 지금 현재의 것으로 성령께서 너희 속에 십자가를 심어줘 버리면, 니는 십자가 안에 존재한다. 니 안에 십자가 있고, 십자가 안에 니가 있다. 나는 십자가의 흔적을 가졌노라.
그래서 그 사람은 오직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십자가만 자랑한다는 의미가 뭐냐, 로마서 7장, 8장, 9장 죽 설명해 놨어요. 그래서 사도바울 편지가 어려워요. 십자가란 그 사건을 설명하는데 그 십자가란 설명은 뭐냐 하면, 예수님의 특이한 몸과 인간의 흙에서 만든 몸과 몸이 결합할 때, 십자가로만 결합이 된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결합이 된다는 겁니다. 어떻게 십자가로만 결합이 되느냐, 그것은 우리의 몸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서 보여줘야 될 죄인된 몸으로 보고, 우리의 의인된 몸은 예수님의 부활하고 난 뒤에 의인된 그 몸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의 몸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화 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인됐다, 에 필요한 사건들이 우리 몸 중심으로 십자가 사건의 이름으로 늘 상 발생되는 겁니다. 이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걸 구체적으로 한다면, “이러니 내가 죽어도 싸다.” 그런데 죽어도 싸다하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해서 또 살려주시고. 요러한 생각들이 매일매일 들게 만드는 거예요. 나는 죽어도 마땅한데, 살려주는 것은 주의 복음을 위해서, 주의 일을 위해서 하라고 지금도 하루하루 살려주는 겁니다.
지금 목회를 몇 십 년하고 성경연구를 몇 십년해도 그래도 참, 역시 어렵고 난해한 게 말씀인데요. 주기도문에 보면 이런 게 있지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할 때, 왜 일회용인가, 열흘 치는 왜 안 되고 한 달 치는 왜 안 됩니까? 왜 일용할 양식입니까? 그게 뭐냐 하면, 주기도문 안에 출애굽 정신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래요. 출애굽 정신을 담아버리면 출애굽16장에 보면, 거기서 매일같이 뭐가 내리지요? 만나가 왔지요. 왜 만나를 이틀 치를 안 주는 거예요. 참 궁금하지 않습니까? 왜 이틀 치를 안 주는가 하면, 만나는 만나가 아니고 말씀이라는 거예요. 신명기8장에서. 그걸 양식으로 생각하면 오해라는 겁니다.
그러면 같은 만나를 먹어도 죽어요. 만나를 먹을 때마다 이거 말씀이다! 하면 사는데, 이건 양식이네, 애굽에서 먹었던 것과는 다르긴 하지만 매일 애굽에서 하루 세끼 먹다가 안 먹으니까. 이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산다는 우리 흔히 아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압축된 예수님의 공생이 압축된 그 개념으로 주기도문에 담긴 겁니다. 그 주기도문의 내용은 딴 게 아니에요. 아버지를 이 자리로 가야 아버지가 보인다는 뜻입니다. 너희들에게는 아버지가 없는데 내가 주기도문 내용대로 실현시키는 그 현장에서 내 아버지가 보이고 내 아버지가 너희 아버지가 되고 너희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되는 거예요. 요한복음14장에 나오는 이야기잖아요. 그것은 성령의 처소 안에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3장에 말씀으로 물이 됐다 하는 것은 이것은 물도 치우고, 하늘도 치우고, 언약도 안 들은 걸로 치고 남는 것은 땅밖에 안 남겠지요. 여기서 하늘이라 하는 것은 땅의 연장은 하늘이에요. 하늘은 새로운 하늘이 등장하면 또 땅과 하늘 돼서 새로운 하늘은 그 뒤에 나옵니다.
땅은 창세기3장에 아담이 죄 짓고 난 뒤에 어디에서 쫓겨났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어디로 갔지요? 땅으로 갔지요. 여기서 보세요. 여기서 또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에덴동산은 흙 아닙니까? 땅 아니에요? 왜 에덴동산과 기존의 땅과 왜 구분하는 거예요? 지금도 땅에서 에덴동산을 찾는 작업을 고고학자들이 하고 있거든요. 기껏 찾아낸 에덴동산이 뭐냐 하면, “야~ 유브라데 강의 발원지가 어디일까?” “아, 이라크라” 이라크 가보세요. 테러폭탄 맞으려고. “아니야, 아라랏산 근처일거야” 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야, 시나이반도 그 근처일거야” 이리 하는 사람도 있고, 어쨌든 그걸 찾는다고 봅시다. 찾아보면 “내가 흙이야” 그러니 성경에서 말하는 에덴동산이 아니에요. 그게 뭐냐, 생명나무 과일 없습니다.
인간이 땅의 존재가 돼버리면 그때부터는 인간이 생각한 세계관을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17살 같으면, 17살 애가 생각하는 지가 기껏 보는 세계가 전부예요. 전부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초등학교 애들한테 엄마생일이 되었다. 엄마의 생일이 되었으니까 몰래 선물하는 것이 인형, 브라우니 개 이름 이런 거. 왜 그렇습니까? 지가 기껏 생각한 세계관에서 제일 이쁘고 아름다운 것은 개 인형이거든요. 그걸 엄마한테 하는 거예요. 엄마는 웃기지요.
우리가 나이를 떠나서 우리가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고 초등학생이라고 생각하고 볼 때,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 그렇게 늙었어요. 은행에 앉아서 지나가는 청소년 애들 노는 거 보면, 현재 자기와 노는 거와 똑같이 자기와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그 청소년 뒤에 어떤 할머니가 지나가게 되면 “아이고, 저 할머니 참 저 할망구 많이도 늙었다.” 하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그 할머니와 동갑내기라고 생각한다면 30, 40대 아줌마 아저씨가 그렇게 어려 보여요.
그러니까 인간의 보는 세계라 하는 것은 지가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변형이 다 달라져요. 변화가 돼요. 왜냐 하면 인간은 땅에 속해서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곧 말씀이고 자기가 다 전부이니까. 그러니까 이런 입장에서 물은 그냥 물로 나와서 물이고 강은 강이고 바다는 바다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지극히 당연한 거죠. 당연하니까 이 인간은 뭐가 지금 엮이지 않았지요.
말씀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이라 했지요. 말씀은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냥 계시는 예님이 아니라 엮어주는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사다리처럼 엮어주는 거예요. 사다리가 완성된 게 예수님이란 말이지요. 인자의 머리위에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했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없고, 성령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예수님 연구해도 그것은 지금까지 지가 경험한 예수뿐이에요. 그런데 그 예수는 예수님 세계, 천국세계가 아니고 지가 생각하고 있는 좋다는 기적을 베풀어주는, 이야기하기 힘든데, 이 이야기하면 쉬울 거예요. 이거 정리하고 해 봅시다. 많이 하고 빨리한다고 좋은 게 아니니까. 아까 최종기적은 무슨 기적이라 했습니까? 요나의 기적이고, 십자가지요. 그런데 육에 속한 인간이 돼버리면 인간의 기적은 사물이나 인물, 자기 자아한테 기적이 눈에 보기를 원하는 겁니다. 기적을. 병이 낫는다든지, 귀신이 나갔다든지, 내 사업이 갑자기 잘된다든지, 애가 공부를 잘한다든지, 눈으로 보기를 원하는 거예요.
요렇게 생각하는 것은 기껏 자기가 생각하는 세계관이 이미 있다는 거예요. 요렇게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지금 머리카락이 점점 빠지는데 제가 육적인 기적이라면 갑자기 머리가 까마지면서 다시 회춘이 되면서 머리가 난다든지, 갑자기 힘이 불끈불끈 생겨서 암벽도 마구 탄다든지, 아니면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가 현재 9초63인데 자기 소망이 9초5라면 갑자기 힘이 나서 9초5뛰는 거, 그거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기적이잖아요. 바로 그런 기적을 원한다는 것은 결국 뭐가 없다? 바로 요나의 기적이 없는 거예요. 이미 기적은 영화 끝났는데.
영화 끝났어요. 영화 끝났는데 지가 빈 영화해서 지가 상상해서 영화관에다가 투사해가지고 “야, 참 잘됐다, 광해군 멋있다, 멋있어.” 이러고 있다 말이지요. 진짜 영화는 다 끝났는데. 예수님 십자가의 영화에 의하면 이 세상은 지옥입니다. 왜냐 하면, 불 심판 받으니까 지옥입니다. 그리고 짐승의 나라에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짐승이 활발하게 우는 사자같이 택한 자도 꼬시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이게 기적이에요. 이걸 아는 게 기적인데.
우리는 자꾸 자기 기적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게 느껴지지도 않고 손에 붙잡히지도 않고 목사가 교회 세워놓으면 만날 그게 기적인지 알고. 돈 많이 있는 사람 와서 헌금 많이 하고, 웅성웅성해서 자기 친목계 계원들 많아지는 거. 자꾸 그걸 기적이라고 보는 거예요. “주께서 함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밤에 나타나셔서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밤에 나타난 꿈까지 내가 관여할 수 없고. 꿈에 귀신이 나타나고 예수가 나타나고 그건 좋은데 말릴 수는 없는데 어쨌든 그건 기적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기적은 이미 영화상영 끝났어요.
성령께서는 이미 마무리된 기적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와서 우리를 책망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희망과 비전과 보이스 비 앰비셔스! 이렇게 하고 있다 말이지요.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내 사랑은 이루어질 거야, 이런 식으로 하면서. 저 여자만 허락 하소서, 내가 어떤 벌이라도 받을게요. 임재범이 나와서 노래 불러가지고. 고백이라는 거 있지요. 어찌합니까? 하면서 저 여자만 허락한다면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해서. 연애할 때는 그렇지, 결혼해보면 저 여자만 내쫓는다면 어떤 짓이라도 하겠습니다, 라고 반대로 나올 텐데. ㅎㅎ
왜 기도해서 병 낫는데 그걸 왜 부정하느냐, 그게 바로 니가 아는 예수 범위, 지어낸 예수, 지어낸 하나님, 지어낸 삼위일체 그 정도예요. 이미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는데 자꾸 마귀가 그런 식으로 육적인 그러한 범주에 머물라고 하고 있으니 그런 거 안 되면 삐지고 또 원망하고, 주께서는 아주 냉혹하게 이 계획 차질 없이 진행시킵니다. 이거는 우리보고 믿으라는 말이 아니고 니가 믿든 믿지 않던 니 마음대로 하라, 해서 분리해 놓을 테니까. 그거는 몰랐다는 소리는 하지마라. 주의 계획은 차질 없습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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