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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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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강-미6장6-8(하나님이 원하시는 것)121028-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미가

14강-미6장6-8(하나님이 원하시는 것)121028-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1.16)

14강-미6장6-8(하나님이 원하시는 것)121028-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미가서 6장6절에서 8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296페이지입니다.

미가 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성경말씀에 앞에서는 뭔가 하나님께 제안을 해요. 나에게 나오는 방법이 너희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겁니다. 여기 6절에 보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라는 말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취한 흔한 이런 조치들이 이미 보편화돼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여, 제가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합니다.’ 빈 손들고 나가려니까 미안하니까 제가 하나님 생각 안 하고 그냥 교회 올 때만 생각하고 평소에 하나님 생각 안한 게 교회 올 때마다 늘 마음에 캥겼는데 캥긴 게 미안스럽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고 하나님 일에 보탬도 되지 않고 도움도 안 되니까 그냥 제가 힘대로 얻은 이것 가지고 나아갈 테니까 이게 제 마음이라 생각하시고 받아주셔서 좋은 관계, 좋은 교섭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라고 했을 때 또는 ’ 하나님, 돈 가지고 나아가려고 하니까 이 근호 목사에 의하면 헌금도 하지 말라 하니까 헌금도 안 하고 그냥 이 몸 바칩니다.‘라고 나갈 때 과연 하나님께서 교섭의 문을 열겠느냐 이 말입니다.

제가 헌금하지 말라는 소리 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해요. 과연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이, 그래 내 뜻 잘 알았다. 그래 받아줄게.’라고 할 거냐 말이죠. 앞에 제시한 이것, 두 번째 제시한 게 뭐냐,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라는 말은 ‘기뻐하시겠지.‘라고 다들 그렇게 생각들 하고 있는 모양인데, 라는 뜻이거든요. 앞에 ①,②번 배치를 한 것은 인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기껏 생각해봐야 요정도지 그 이상으로 생각할 위인은 없다는 거예요.

문제는 뭐냐 하면 하나님께 나가고자 하는 의도가 굉장히 수상한 거예요. 평소대로 살아요. 평소대로. 평소대로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삽니다. 어떤 분이 십자가마을에 질문을 했어요. ‘둘 중에 누구 말이 맞습니까?’라는 질문을. 아주 예민한 정치적인 문제의 질문을 해놨어요. ‘둘 중에 정 낙원 목사님 글하고 정 석훈 목사님 글하고 올려놓고 그걸 보시고 목사님은 둘 중에 누가 맞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거 찾는데 애먹었어요. 옛날 무슨 일 있으면 찾아보니까 있어서 그거 제가 올려놨어요. 문제는 그 두 사람 차이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차이가 있기 때문에 둘 중에 누가 맞습니까? 하잖아요.

오늘 본문에서 미가 선지자가 하나님 뜻이 있어 하는 말이 ‘자, 이런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게 옳습니까?’ 묻는 거예요. 그런데 둘 중에 차이를 알려면, 이쪽 주장도 알아야 되고, 저쪽 주장도 알아야 되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문제는 이거는 중요한 정도를 우리가 제켜 버려야 돼요. 왜냐, 세 번째 이야기는 엄청난 이야기를 해서. 첫 번째 두 번째 이야기는 우리가 평소에 늘 품고 있었던 우리 생각인데 그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이 아니라면 세 번째는 첫 번째 두 번째 통하는 그 노림수가 세 번째 원칙에는 안 통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첫 번째 원칙이 뭐냐, ‘하나님이여, 제가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갈까?’ 라는 그런 취향이거든요. 하나님 뜻은 이겁니다. ‘니가 왜 오려하는데? 그냥 평소대로 살아.’ 평소대로 살면 우리는 하나님 안 찾습니다. 안 찾는데 왜 오느냐 하는 겁니다. 평소에 안 찾는데 교회 왔다고 하나님 찾은 걸로 쳐주겠느냐 이 말이죠. 아니죠. 그건 아니다 이 말이죠.

그 차이성을 부각을 시킴으로서 인간은 자기 스스로 만들은 차이조차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존재다. 지가 나름대로 ‘이렇게 해볼까?’ 이렇게 한번 해봤다가 헌금 가지고 나왔다가 에이고, 십일조 헌금도 안 해보고 해 봤다가 백날 해봤자 평소대로 해라 평소대로. 평소대로 하면 니 하나님은 없어. 하나님이 없는 거예요.

목회자에게 천기누설에 해당되는 것, 목회자가 가장 감추고 싶은 것은 뭐냐 하면, 목회 말고 수입이 딴 게 많다면 반드시 그 직업을 갖게 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입이 6일 놀고 하루 일 했는데 그만한 수입 보장되면 그 목사 말고 다른 직업 가게 돼 있어요. 지금 다른 직업 하지 않는 것은, 6일 안 놀고 일주일 내리 일하기 때문에 힘들어서 그래요. 목사는 하루 일하고 6일 놀기 때문에 계산해 보면 그 수입도 괜찮다 말이죠. 어떤 목사님이 저한테 이야기했어요. ‘나 직업 멋있다.’ 했어요. 왜, 설교 1편에 40만원 받는다는 거예요. 가만히 계산해 보니까 그것도 옛날이야기지만. 일주일 설교 3번 하고 (옛날 일이예요.) 120만원 받으니까 설교 1편에 40만 원짜리가 어디 있어요? 강연은 1시간짜리가 괜찮다는 거예요. 지금 그게 값이 많이 올라갔겠지만.

주님께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게 다 노림수가 있고 이게 수상한 구석이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하나님 쪽에서 세 번째 이야기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이 제시하는 것은 뭐냐 하면 ‘내 것이 아닌 것을 니가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야! 이거 정말 어려워요. 내 것이 아니라면 과연 우리가 그걸 사랑의 대상으로 삼겠느냐, 하는 겁니다.

그걸 성경에서는 간단하게 하죠.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가 문제가 되는 게 원수를 사랑하게 되면 그 원수가 내 말을 듣고 내 똘마니가 된다면 우리는 사랑할 용의가 돼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원수를 사랑하더라고 노림수와 어떤 목적이 없이 사랑하는 법은 없어요. 인간의 모든 것은! 하물며 하나님께 나아갈 때 목적 없이 나갈 수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 앞에 원수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진짜 하나님은 사람 앞에 원수 모습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마서 5장에 나오는 이야깁니다. 롬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구약 성경에서 해석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하나님이라고 자기들을 잘 해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 걸려서 병을 고치러 이스라엘을 위한 선지자 엘리사에게 찾아와 버려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모압 여인이 자기 나라 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이스라엘 남의 나라 신을 섬깁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거예요? 기생 라합이 자기 조국을 배신합니다.

제가 어떤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죠. 2차 대전 때 독일을 배신하고 독일과 맞장 싸움했던 사람들이 만 명이 넘는다 했습니다. 자기 조국을 상대해서 자기 일가친척과 친구를 상대해서 총을 겨누어서 싸웠던 사람이 1만 명이 넘어요. 독일에서 다른 나라로 귀환한 사람은 5만 명인데 5만 명 중에서 만 명이 굉장히 큰 숫자 비율입니다. 만 명이 자기 고향 친척들 상대로 하는 거예요. 왜냐 하면 그 사람이 연합군 입장에서는 자기 고향 지형을 잘 아니까, 자기 고향에 파견시켜서 자기 친구와 친척과 자기 가족들을 향해서 총을 겨누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 대부분은 나중에 전쟁 끝나고 나서 영국으로 귀환했지만, 잘못하면 잘 때 복수당할 뻔 했어요.

자기 조국을 배신한다는 것, 이건 원수로 간주한다는 거거든요. 사람은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 왜냐 하면 결국은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을 인간은 절대로 사랑하지 않는 법입니다. 연애하는 것도 내 것 될까 말까, 내 것 안 되면 사랑 안 해요. 이것이 왜 그렇게 하느냐, 하나님께서 혼란과 혼선을 의도적으로 인간에게 가미합니다. 혼란과 혼선은 어떤 경우냐 하면 이것이 내 것이라는 그 자체 내에는 동질화 돼 있어요. 동질화 돼 있고 동질성 돼 있는 것에 이질적인 것이 들어와 버리면 그걸 혼선, 또는 혼란이라고 하는 겁니다.

제가 한번 예를 들겠습니다. 어떤 주부가 부엌에서 깍두기를 네모나게 딱딱 썰고 있습니다. 깍두기를 썰고 있는데 잠시 TV가 켜져 있어서 보느라 그거 본다고 칼하고 도마하고 놔두고 TV 끄고 오니까 보이지 않는 손이 자기가 하던 칼로 깍두기를 썰고 있다면 ‘어마야.’ 하고 기절초풍하겠죠.

그게 오늘 이야기하는 세 번째 사항입니다. ①번하고 ②번하고 ③번하고 딱 붙여놓으니까 ①번 ②번 안 되면 ③번으로 해서 하나님 한번 믿어볼까 이렇게 나오는 게 있는데, ①번하고 ②번은 같은 유잖아요. 사실은 인간들은 같은 유로 보지 않아요. 왜냐 하면 ①번은 재물을 갖다 바치는 것이고, ②번은 자기 자식을 갖다 바치는 거예요. ‘하나님이여, 내 자식을 갖다 바치겠습니다.’ 하나님 뜻을 ‘평소 하던 대로 살아라. 아서라 말아라. 어디 속마음은 안 그러면서 뭘 바쳐서 뭘 얻겠다고 바치는데?’ 앞에는 헌금 바치고 두 번째는 헌금도 안 되니까 지 아들까지 바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마 그것도 안 되면 지 목숨까지 바칠 거예요. 목숨을 바치든 자식을 바치든 헌금을 바치든, 이것은 평소에 우리 사는 모습이 아니다. 우리 사는 모습은, 우리 모든 인생은 내부적으로 동질화 돼 있어요. 동질화 돼 있다는 것은 어느 걸 건드려도 이게 혼선과 혼란이 안 되게 정리정돈이 돼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세 번째 방법은 뭐냐 하면 거기다 스파크를 일으켜서 혼선을 야기 시키는 겁니다. 혼선을 야기 시키게 되면 어떤 결과가 되느냐, ‘내 꺼’라는 자체가 이게 하나의 경계선을 쳐지는 거예요. ‘내 꺼‘라는 경계선에 ’누가 임의로 침범을 했구나.’ 하는 겁니다.

또 하나 예를 들게요. 깍두기 예를 들었죠. 기절 안 합니까? 그런 일 있으면 기절하죠. 보이지 않는 손이 칼로 깍두기 하고 하면 자기는 서 있는데 기절하죠. 그 비슷한 예로 어떤 사람이 작가가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여기 아무개씨 집이죠?’ 해서 형사 두 명이 와서 자기를 묶어 데리고 갈 때 이건 자기 인생에 있어서 오늘 스케줄에 예상된 스케줄이 아니잖아요. 혼선과 혼란입니다. 그런 일은 많이 당하죠. 유신시절 때 김근태 사건 등 많이 당하잖아요.

자, 그럴 때 여기서 우리는 뭘 아느냐 하면 그동안 이렇게 내가 갖추어 놓은 ‘나’라고 하는 경계선, 동질화가 이것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있어서는 이것이 훼방이 되고 방해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여기서 여기까지는 내 것입니다. 이 헌금은 제가 힘들여 벌은 헌금인데 요거 받을 때 남이 냈다 하지 말고 저한테 받은 걸로 쳐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분명히 바치는 겁니다.’라고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받지를 않는 거예요. 왜냐 하면 너의 동질성이 있는 한 너는 네가 사랑하고 싶은 것만 사랑하게 돼 있다는 그 한계를 네가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겁니다.

결국 뛰어넘을 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는 것은 자기 것이 따로 확립돼 있고 하나님 것 따로 떼서 자기 것을 더 키우기 위해서 갖다 붙이는 것밖에 안 돼요. 요새 청도에 감 많이 열리잖아요. 기차 타고 가다 보면 감들이 열렸어요. 감들이 열렸을 때 ‘참, 감이 이쁘다. 참하다.’하죠. 감들을 그냥 볼 때는 누구나 가슴이 아프지 않습니다. 그런데 언제 감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냐 하면 분명히 감이 있는데 어떤 동네 꼬마들이 주인 몰래 감을 딸 때 ‘저 봐라, 남의 감 훔친다.’ 할 때 우리는 가슴 아파요. ‘아! 저 감은 내가 따야 되는데, 저걸 내가 따야지.’

사람들은 뭐든지 예쁘다고 볼 때 이렇게 생각해요. 내 것 될 거냐? 내 것 안 될 거냐? 를 먼저 생각해서 내 것 안 되면 누가 망치든 상관없어요. 그런데 내 것 되면 그렇게 그걸 아까워하는 겁니다. 그리스나 스페인의 경제 파탄, 아~무 가슴 아픈 거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나 스페인에다 수출을 해야 될 입장에서는 이거 미치는 거예요. 수출할 유럽의 시장이 죽어버리면 수출이 안 돼 버리면 직원들 보너스를 못 주고 월급이 못 나가는데 환장하는 겁니다.

내 것이라고 관련된 것만 사랑하게 돼 있기 때문에,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건 하나님의 전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유용한 것만 뽑아서 챙기는 그런 심보밖에 안 됩니다. 그런 식으로 여기 나오는 대로 네가 해도“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라고 묻는 거예요. 이 천천의 양을 바친다는 것은 일천 번제고 만만의 기름은 일만 번제가 되겠죠. 그 다음에 네 몸의 열매, 자식을 바쳐도 그런 것은 우리한테 극복될 수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①번, ②번을 버리느냐, ①번, ②번 다 잊어버렸죠? ①번은 일 년 된 번제 송아지를 드리는 것이고 ②번은 자기 자식까지 바치는 것이고 ③번은 제가 이야기 안 한 거예요. ①번, ②번 이걸 시비 걸었기 때문에 ‘나 삐졌어. 나 이거 안 해. 나 헌금도 안 해. 나 아무것도 안 할게요. 자식도 안 바치고 내 맘대로 살게요.’라고 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냐 이 말입니다.

그게 원하시는 바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원하시는 바가 아니면 이게 어떤 문제가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원하지도 않는 문제를 왜 옛날의 율법에 일 년 된 송아지를 바치고 수양이나 기름을 바치고 또 아브라함 같이 자식을 바치라고 왜 그렇게 했느냐, 하는 그것은 붕 떴어요. 붕 떴다는 것은 하나님이 쓸데없는 짓 한 것밖에 안 되거든요. 우리는 ①번이 아니라 하고 ②번이라 한다면 곧장 ①번 버리고 ②번 하는 경향이 많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①번에서 ②번, ②번에서 다시 ①번을 보라는 그 취지는 우리가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 어린양 번제를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만을 시내 산에 불러서 하나님과 만나서 거기서 하나님의 성막과 그 운영 방식에 대해서 40일 동안 다 알려줬어요. 그때는 모세는 물도 마시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얼굴빛이 빛나면서 살았습니다. 다 그걸 이야기해주고 다시 모세를 보내니까 그때부터 모세는 늙어빠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 보세요. ③번을 이야기해 봅시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안 늙어요. 안 죽어요. 안 아파요. 눈에서 눈물도 없습니다. 함께 있으면 악한 것도 없어요. 오늘 세 번째가 뭐냐 하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뜻은 뭐냐, 니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가 시내 산꼭대기에 살면서 40일 동안 아무것도 안 먹어도 아픈 것도 없고 괴로운 것도 없고 슬픈 것도 없고 행복했었죠. 얼굴도 빛이 나고. 바로 고 순간 바로 고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뭘 원하느냐 하면 이 땅에서 똥배 들어가고 이 땅에서 남 앞에 예뻐 보이고 고런 걸 원한다고요. 그래놓고 ‘하나님이여, 내가 임플란트 수술했는데 그거 하나님께 감사드리겠습니다. 이거 바쳐서’ 임플란트 하는 게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왜냐 임플란트는 자기 것이 되기 때문에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이 돼 버려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이유는 기껏 자기가 생각하는 그 자기 것이 자기의 사랑의 끝이고 사랑의 한계로 자기의 행복의 바구니로 담기 때문에 문제인 겁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지가 좋다는 이유 때문에 지는 무조건 그것을 챙기려고 하는데, 그것은 지가 지 좋은 것으로 함께 하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으로 함께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함께 하려면 뭘 떨쳐버려야 하느냐 하면 그동안 내가 내 것으로 즐거워 했던 그 내 것이란 그것이 쏟아져야 되겠죠. 폭력이 없으면 진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폭력이라 말로 진실을 비로소 쏟아낸다는 것. 그게 취중진담쯤 되겠죠. 술 먹고 개 될 때 ‘아! 평소에도 개였구나.’ 드러나듯이. 폭력적인 것, 혼란과 혼선이 돼서. 사람들은 동질화 된다는 것은 내 속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폭력을 제거한 거거든요. 평화로운 이 상태가 원래 내 것이라고 우기는데 그렇게 돼 버리면 그것은 내가 사랑의 대상이 돼 버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면 안 돼요. 왜, 원수지간이기 때문에.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해 버리면 그 하나님은 자기 사랑의 연장이지 그건 진짜 하나님이 아닌 겁니다. 사람들은 자꾸 하나님보고 ‘땅에 내려오라’ 하고 하나님은 자꾸 우리보고 ‘하늘로 올라오라’ 하고, 이게 꼭 노래 가사 같아요. 저 산은 나보고 내려오라 하고 양 희은 노래 같아요. 하나님은 우리보고 올라가라 하는데 우리는 이곳 땅이 좋사오니 이것이라도 채워 달라 하니까, 오고 가는 방향이 반대방향으로 되는 거예요. 살아있는 쪽에서 보면 하나님이 죽은 자로 보이고, 하나님 쪽에서 보면 우리가 죽은 자로 보고, 우리가 죽은 쪽에서 산 쪽으로 가야 하는데 우리가 살아있는 쪽으로 더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 해도 이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여기에 8절에 보면 세 번째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기에 나오는 공의로움과 그 인자함, 사랑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겁니다. 왜냐 하면 제가 아까 이야기한 사랑이라 하는 것은, 내 것이 되지 않는 것을 사랑할 때만 그게 사랑이 됩니다. 그것은 선한 사마리아 비유에서 강도만난 사람 이야기할 때 하나님께서 바로 강도만난 사람을 사랑한 사람, 그 사람은 소위 하나님을 안다는 사람은 아니라고 이야기했죠?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했어요. 우리가 사랑한 예수님은 다 마귀입니다. 혹시 나한테 도움 될까 싶어서 내가 요리할까 싶어서 사랑한 사랑, 다 거짓 이예요.

주님이 나를 먼저 사랑할 때는 우리 안에 폭력적인 요소와 그리고 한계와 혼란을 야기 시켜서 더 이상 나라는 동질성을 여기에 생산 못하게 방해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내 것이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비로소 눈 떴다는 말 이예요.

그래서 정 낙원 목사님과 정 석훈 목사님 둘 중에 누가 맞습니까? 할 때 제 뜻은 뭐냐 하면 누구든지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죄인의 괴수라는 것을 아는 그것이 옳다 이 말이죠. 십자가 앞에서 누가 자기가 죄인의 괴수냐, 따라서 정 석훈 목사님이 하는 그 모습이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죄인입니다.’하는 그 주장이냐, 아니면 정 낙원 목사님 하는 모든 것이 ‘우리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냐, 질문한 당신이 한번 보라는 겁니다. 어느 쪽인지.

자꾸 자기 동질화, 나는 어떤 경계선을 쳐서 나는 요 경계선 안에 ‘이게 납니다.‘라고 그걸 갖추려고 하면 안 돼요. ’하나님이 원하는 것,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은 이런 모습일 거야. 하나님이 원하는 행함은 이런 것일 거야.’라고 자꾸 갖추게 되면 그때부터는 자기를 갖추는 그걸 사랑하게 돼 있어요.

창세기 3장에 보면 인간이 하나님의 경계선을 깨뜨렸잖아요. 이번에는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란, 나라는 경계선을 하나님이 깨뜨려요. 아담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그 경계선을 깨뜨려버렸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편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과 우리는 원수가 되었어요. 하나는 뱀의 자손이고 하나는 여자의 후손이고 원수지간입니다. 전쟁입니다. 이 전쟁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우리 속에 남아있는 ‘요거는 나만의 것’이라는 안정적이고 동질적이고 평화로운 것, 그것을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고 불화와 분쟁을 일으킵니다.

사람이 아프다. ‘트라우마‘라 하는데 상처. 아프다, 너무 아프다. 사람이 왜 아플까요? 가슴이 찢어진다. 왜 아프겠습니까? 그동안 ’나‘라고 여긴 것이 전부 다 이게 구겨져서 아파요. 너무 마음이 아파. 너무 마음이 아파서 울음도 안 나오고 끄윽, 끄윽 마음이 너무 아픈 거예요. 어떻게? 너무 아파서 울음도 안 나올 정도로. 그게 뭐냐, 저항하는 겁니다. 내 것이 깨어질 때, 무너질 때, 붕괴될 때 저항하는 겁니다. 그걸 술로 달래고 마약으로 달래고 그걸 자살충동을 느끼고 우울증 느끼고, 아프다, 너무 아프다. 사람아 너무 아프다. 하는 노래도 있어요.

“사랑아 그리운 내 사랑아

이렇게 아픈 내 사랑아

얼마나 아프고 아파아야

아물 수 있겠니“

그것은 내가 나의 길을 포기 못하겠다는 겁니다.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겁니다. ‘신이시여, 왜 나의 경계선을 왜 허물어 버리면, 나라는 게 없잖아요? 나라는 게 없으면 나는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거예요.

여러분, 모세는 시내 산에서 지 것 없이 하나님의 것으로 트윙클, 트윙클, 반짝반짝 빛나면서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사와 같은 하늘나라 형상입니다. 우리 것 무너져야, 우리 것 무너지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면 그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모든 것이 용납이 되고, 다시는 괴로움과 아픈 것, 가슴이 찢어지는 것, 그 없는 세계가 저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것이 무너지는 그런 혼란과 아픔을 우린 싫다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히려 그게 축복이고 그게 우리가 몰랐던 그동안의 주님의 사랑인 것을, 십자가의 능력인 것을 우리가 접선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14강-미6장6-8(하나님이 원하시는 것)121028-이 근호 목사.hwp (48.0K), Dow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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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