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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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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강-에스겔4장 9-17(인분)121024-이 근호목사자유게시판에스겔

12강-에스겔4장 9-17(인분)121024-이 근호목사

이름 : 오용익(IP:183.105.195.252)

12강-에스겔4장 9-17(인분)121024-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4장 9절에서 17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155페이지입니다.

에스겔 4:9-17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떡을 만들어 네 모로 눕는 날수 곧 삼백 구십일에 먹되 너는 식물을 달아서 하루 이십 세겔 중씩 때를 따라 먹고 물도 힌 육분 일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 너는 그것을 보리떡처럼 만들어 먹되 그들의 목전에서 인분 불을 피워 구울찌니라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열국으로 쫓아 흩을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와 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쇠똥으로 인분을 대신하기를 허하노니 너는 그것으로 떡을 구울찌니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리니 백성이 경겁 중에 떡을 달아 먹고 민답 중에 물을 되어 마시다가 떡과 물이 결핍하여 피차에 민답하여 하며 그 죄악 중에서 쇠패하리라.”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자기 백성을 못살게 구십니다. 자기 백성을 힘들게 합니다. 그런데 그 전체가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시가 됩니다. 그렇게 볼 때 인간의 행복이라든지 인간이 생각하는 희망보다 하나님이 우선시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 무조건 잘 먹고 잘살면 그것이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미리 담아서 마지막 때에, 세상 끝날 때에 인간이 어떻게 처신할 수밖에 없고 인간이 어떤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그 예언의 말씀을 담는 기능을 그 역할을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가 하게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슬라이드를 벽에 비추면 그림이 투사되어서 나오는데 그것을 하얀 벽에 비추면 잘 보일 텐데 장난한다거나 혹은 실수로 사람 얼굴 같은데 비추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람 얼굴에 독수리그림이 입혀지고 혹은 에펠탑 사진이 그 사람 얼굴에 입혀지지요. 성도라 하는 것은 뭐냐, 내가 내 몸이 분명히 있어서 그 몸의 희망이 있고 기대치가 있는데 여기다가 우리 허락도 없이 하나님의 계시가 쪼이니까 우리가 슬라이드를 비추는 하나의 스크린 역할을 해서 내 뜻과 포부는 따로 있는데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일방적인 하나님의 예정된 뜻만 덮쳐버릴 때 우리 아름다운 미모가 주의 말씀에 의해서 겹쳐져 버리잖아요.

그처럼 하나님은 말씀이 말씀대로 되어가는 그 위주입니다. 월요일에 대구강의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예수님이 자기 인물로 전도하고 자기 솜씨 자랑해서 전도하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말하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말씀이 우선이라는 사실,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떡만 먹고 살아버리면 떡만 먹고 배나 부르지요. 본인 사는 것만 남아요. ‘나 떡 실컷 먹었다. 나 살았다.’ 이것만 남는다는 말이지요. 떡으로만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말씀이 살아 있다.’는 그것이 살아 있는 것이라는 겁니다.

‘나는 떡 얻어먹고 50년 살았다.’ 이것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날마다 말씀이 나를 살게 만들더라, 라는 고백을 할 때 그게 말씀에 속한 사람이고 성도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하실 때 그냥 예수님이 배웠던 것을 한 수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게 마귀와의 시험에서 그런 답변이 나왔다는 것을 유념해야 돼요. 예수님은 마귀를 늘 의식하는데 우리 사람들, 교인들은 마귀 생각 안하고 그냥 사는 것 같아요. 그렇다보니 그냥 툭툭 튀어나오는 이야기가 ‘나는 주의 말씀으로 산다.’ 이것이 나와야 되는데 ‘나는 내가 가진 것으로 산다. 통장 잔고로 살고 떡으로 삽니다.’ 이런 것이 막 튀어 나오는 거예요.

이 세상이 광야고 우리는 광야에 놓여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이 땅에서 형기를 채우면서 살고 있는 죄수 입장입니다. 자유는 박탈되었고 마귀가 가두어놓은 창살에 갇혀 있어요. 자유라 하는 것은 제한되어 있고 그 제한된 자유 속에서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마귀에게 시험받고 세상에 갇히게 했는가? 그것은 우리의 본색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를 뿌리 채 노출 시키는 겁니다. 노출시켜 버리면,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물로 살고 양식으로 사는 거기에 갇혀 있는 꼴로서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에다 하나님의 쓰시는 바벨론 군대를 보내서 완전히 포위하게 되면 여기서 그들은 먹는 것 마시는 것이 아쉬워서 힘들게 되면서 먹는 것 입는 것에 자기의 뿌리를 둔다면 결국 자기가 그 먹는 것 입는 것에 담겨 있게 되기에 먹는 것 입는 것이 힘들 때 인간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전락하는 그 마지막 모습을 오늘 본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8절에 보면 “내가 줄로 너를 동이리니 네가 에워싸는 날이 맟도록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줄로서 꽁꽁 묶어 버립니다.

390일 동안 주께서 너의 몸을 묶는 것처럼 유다백성이 390년 동안 힘들게 살아가는 것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되게 하기 위해서 자기 백성을 다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어려운 것 하나 말씀드립니다. 보통 우리가 신앙이라 하는 것은 예배당에 나와서 기도하고 말씀을 공부한다든지 하는 이것을 신앙이라 하는데 그러한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환상에 불과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 실제로 우리보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라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고 그냥 정치, 경제생활 그 자체가 신앙이었어요.

따로 기도하는 모습 같은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면 못살도록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치적으로 곤란을 받았어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따로 자기 일을 하다가 교회 가서 하나님을 찾으면 그게 하나님과 통하는 것이 아니고 평소에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마련한 그 영역 속에서 하나님과 주고받고 하면서 그들은 온 몸으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선배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날 성도도 마땅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주일간 그냥 살다가 주일에 시간 내서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그것으로 신앙생활 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런 것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 하라고 우리한테 독촉한 적도 없어요.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고 정말 엉터리도 너무 엉터리인데 이것을 엉터리라고 이야기하면 욕이 들어오니까 문제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신앙이라 하는 것은 따로 기도하고 뭘 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하루하루 밥 먹고 사는 이 모든 것이 그냥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보고 살라고 그냥 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뭔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그들에게는 떡이라는 형식으로, 물이라는 형식으로 준거예요. 그래서 떡을 보고 떡이 아니라 말씀이라고 보고 물을 마시면서 물이라고 여기지 말고 말씀이라고 보고 물을 마시라 그 말입니다.

오늘날은 자본주의 사회가 되어서 떡을 봐도 그것을 자기 노동의 대가로 보고 물을 마셔도 그것을 자기 노동의 대가로 보는 거예요. 자본주의라는 것이 딴 게 아닙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산다, 이게 자본주의입니다. 사람은 돈으로 산다, 이게 자본주의거든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말하면 어떻게 되느냐? “사람은 어떻게 살지?” “돈으로 삽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게 아닌 것을 네 삶을 통해서 보여주겠다.” 이게 우리의 실상인 가운데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이에요. 그러면 우리는 ‘돈으로 사는 것 밖의 다른 삶을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돈으로 사는 것 그것뿐입니다. 돈으로 시장가서 나물사고 파 도 사고 먹을거리 사는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 외에 말씀으로 사는 방법은 저는 아예 모르고 경험하기도 싫습니다.’ 우린 이렇게 버티지요.

그렇게 버티는 것이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옛날 선배들도 그렇게 버텼다는 말이지요. 그 마지막 버틴 것을 주께서 지금 철거하는 작업에 나서신 거예요. 그것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란 자기가 속해 있는 시간과 공간이 안정하게 버티고 있기에 사람은 그 속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그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백성들이 안전하다고 여겼던 시간과 공간을 철거해버립니다. 그걸 먼저 에스겔에게 보여주지요. 제가 어렵다고 한 것은 뭐냐, 정치적인 이 상황을 인자라고 하는 에스겔의 몸에다 그대로 보여줘서 그 속에서 에스겔이 하나의 필름이 되어서 그 내용을 뽑아내는 식으로 우리에게 전달하는 겁니다.

유대백성이 있고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정상적이고 살만하고 잘 돌아갑니다.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고 마실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의 몸에다 390일 동안 묶여서 누워있는 영화필름을 거기에 줘버려요. 그러면 에스겔은 자기 몸이 굳어져서 390일 동안 누워있고 그 소문이 주위에 퍼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그것만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 아니에요. 그 전에 핍박도 받고 고난도 받고 눈물도 흘리시고 분통도 터뜨리시고 그렇게 하신 거예요.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분통 터뜨리고 화를 내시고, 멸망 선포하시고, 눈물 흘리시고, 스스로 잡히시는 그 이유와 내막을 몰라요. 바리새인뿐만 아니고 그 당시 민중들과 심지어 열두 제자들도 왜 그렇게 하는지를 몰라요.

저 분이 왜 저렇게 살지? 떡을 달라고 했는데 주께서 ‘내가 줄 것은 내 살과 피 밖에 없다.’(요 6:51)고 해서 예수님을 좋아한다고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그런 과격한 이야기를 해서 두 번 다시 예수님을 따르지 않도록 한 거예요? 도대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가 이렇게 하면 산다고 하는 그 환경과 바탕을 뜯어내시는 분이에요. 그것을 철거하시는 분이라고요. 왜, 우리는 기존의 상황 속에서 안전하고 행복을 느끼기에 그렇게 행복을 느끼지 말고 안전함을 느끼지 말라고 그것을 뜯어버립니다.

뜯어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고 우왕좌왕 하면 막다른 골목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밖에 없어요. 막다른 골목에 우리를 몰아넣어서 우리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재주나 능력과 지식은 전혀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잠재력이나 능력과 소질 같은 것은 우리가 소유하거나 갖출 수가 없다는 것을 완전히 드러내시는 겁니다. 이걸 제가 아까 뭐라고 했느냐, 뿌리 채 뽑는다고 이야기했어요. ‘한 번 보자. 뿌리가 어떤가 한 번 보자.’ 하고 뽑는 거예요.

말씀이 어려우면 쉬운 예를 들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픈데 원인을 몰라요. 이유도 모른 채 온 몸이 그렇게도 아파요. 전신통증이 왔어요. 그 아픈 정도가 어느 정도냐, 임산부가 애 낳을 때의 아픔이 6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전신이 아픈 것은 8이 되는 겁니다. 그 사람 아플 때 입 안에 종이를 틀어넣어서 이빨 안상하게 하는 가운데 고통가운데 있어요. 어떤 아주머니는 너무 아파서 자기 손톱으로 손을 긁어서 거기서 피가 나올 정도로 아파요. 이유는 모릅니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못 찾아요. 제가 만약 의사가 되었다고 치면 의사가 자기 밥 먹고 사는데 있어서 어떤 환자가 편하겠는가, 생각해 봤어요.

그렇게 원인도 모르는 채 전신이 고통을 당하는 환자가 오게 되면 의사입장에서는 자존심도 상할 것이고 그런 환자는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거예요. 고칠 수도 없으니까요. 그러면 어떤 환자가 좋은가? 멀쩡한데 와서 “의사 선생님, 오래 살려면 어떤 보약을 지어 먹어야 되겠습니까?” “이런 보약을 지어 드시면 됩니다.” 아, 그래서 한의사가 편한 거구나, 한의사가! 그래서 한의사가 양의사보다 편하고 좋은 거구나. 왜, 멀쩡한 사람이 보약을 짓는 것은 환자와 의사 사이에 신뢰감 속에 미소나 주고받으면 되니까요.

그런데 양의사는 항상 멀쩡한 사람이 없어요. 멀쩡한 사람이 없으니 전부다 짜증내면서 옵니다. 짜증내는 사람들 짜증 다 받아줘야 되고 나으면 본전이고 못 나으면 책임지라고 하고, 그러니 의사는 짜증내는 사람들, 인상 쓰면서 찾아온 사람들, 아프다고 화풀이하고 싶은 사람들이나 만나고 있으니 보약이나 지어주는 한의사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가만 보니 의사뿐만 아니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멀쩡한 사람도 전부 다 죄인 만드는 거예요. 왜,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온 거예요.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어요. ‘병든 자라야 의사가 필요하다.’(마 9:12)고 마태복음 9장에 나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다룰 때 멀쩡하다는 사람을 뭘 바꾸느냐, 완전히 죽어 마땅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려요. 그것도 말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완전히 막다른 골목으로 집어넣어 버립니다. 10절에 보면 “너는 식물을 달아서 하루 이십 세겔 중씩 때를 따라 먹고.” 220그램인데 양식이 얼마 되지도 않아요. “물도 힌 육분 일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 물도 하루에 0.6리터라고 하는데 이것도 모자라요. “너는 그것을 보리떡처럼 만들어 먹되.” 식탁이 풍요로운 식탁이 아니라 뭔가 불안스러워요. 먹고 도망칠때나 먹는 것, 먹고 다급하게 도망쳐야 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들의 목전에서 인분 불을 피워 구울찌니라.” 똥이죠, 똥으로 불을 피워서 구울찌니라.

연료, 에너지가 모자라요. 보통 마른 장작, 연탄 같은 것을 피워서 준비하는 식탁이 아닙니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울 때 준비하던 식탁이라면 화로 불을 피우라든지 해야 할 것인데 여기는 더러운 인간의 똥으로 불을 피워서 양식을 먹으라는 겁니다. 여기에 사람의 똥이 왜 등장하는가, 신명기 23장 13절에 보면 거기에 인간의 변이 등장합니다. 어떤 경우에 등장하느냐, 네 몸에서 나온 것이 땅을 더럽게 한다는 거예요. 적진에 가거든 적을 치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다윗이 골리앗을 칠 때 군사숫자나 전략이 문제가 아니었잖아요. 소년 다윗 한명만으로 골리앗을 이겼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벌이는 전쟁은 적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전쟁은 희한해요. 의도적으로 적의 숫자를 많게 만듭니다. 그 말은 ‘나의 전쟁은 숫자전쟁이 아니’라는 거예요. 거룩에 관한 전쟁이에요. 거룩하신 하나님이 너와 함께 있기 때문에 내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라는 거룩에 관한 전쟁입니다. 그런데 그 거룩은 인간으로서는 만들어 낼 수가 없어요. 이것은 막다른 골목입니다. 거룩은 만들지 못하고 인간이 내뱉은 더러운 것을 덮는 것 밖에는 못해요. 삽으로 흙을 파서 변을 그냥 덮으라고 하는 거예요.

저쪽이 적이 아니고 진정한 하나님의 적은 이스라엘 본인들이 적인 것을 알라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병자가 아니면 의사가 필요가 없어요. 주님은 그냥 정상인으로 오시고 우리도 그냥 정상인으로서 만나서 회담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하얀 가운입고 왔다니까요. 하얀 가운입고 오신 분 앞에서 우리도 하얀 옷 입고 나서면 안 된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시커먼 옷을 입고 나와야 돼요.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 시커먼 옷을 입기를 싫어하는 거예요. 우리는 보약이나 먹으려고 한의사 찾는 것과 똑같은 입장입니다.

‘하나님이여, 정상입니다. 정상인데도 교회 나온 것은 멋있는 정상인이 더욱 더 정상인이 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전부 다 이런 식이에요. ‘나에게 하자 있는 것은 집에서 알아서 다 깨끗하게 챙겨놓았습니다. 교회 나온 것은 정상인으로서 나왔으니까 뭘 원하시는지 해드릴 테니 30배, 60배, 100배의 복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나오지요. 막다른 골목에 집어넣는다는 그 원칙을 우리는 굉장히 거북스럽게 여깁니다. 좋으신 하나님, 나도 좋은 인간, 좋으신 하나님과 좋은 인간으로서 항상 대화가 좋게 진행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이야기 다시 하겠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는 우리가 얼마나 문제성 있는 인간인지가 다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볼 때, 십자가를 생각할 때에, 그리고 사도행전 20장 28절에 ‘하나님의 피로 이 교회를 값 주고 샀다. 피로 값 주고 산 교회를 성령께서 감독 세워서 지키겠다.’ 그런 말씀이 나오거든요. 하나님께서 피 흘렸다, 그 말은 ‘네가 지금 떡 먹고 배부르게 살아 있다, 는 그런 모습으로 오지 말고 하나님의 마지막 때가 죽음이니까 그 죽은 자의 모습으로 네가 내 앞에 와야 죽은 자의 모습으로 온 너와 내가 만나서 말씀이 이야기하는 그 마지막 때의 세상정황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말씀 위주이기 때문에.

제가 설교 처음에 분명히 언급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위주라고. 우리의 행복 위주가 아니고 말씀위주에요. 우리가 만약에 떡이나 먹고 물이나 마시면서 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서 별로 쓰실 이유가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사니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할 때는 말씀 때문에 쓰시기 때문에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우리 힘대로 노동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문제는 잘 먹고 잘 사는 이 부자 된 내가 어떻게 거룩한 나라 천국에 갈 것이냐에 관해서는 우리는 항상 절망할 수밖에 없도록 주께서 조치를 하십니다.

자식 공부 잘해, 딸은 예뻐서 시집 잘 가, 시집가서 손주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아, 가정에 도통 우환이 없어요. 미치겠어요. 아무리 들여다봐도 끄집어낼 걱정거리가 없어요. 교회도 부흥돼, 교회 가면 교인들한테 장로님이라고 대우 받아, 주변 사람들이 다 칭찬해, 이런 식이라면 진짜 천년이고 만년이고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문제는 그렇게 여유만만하고 축복받은 그것이 구원이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오히려 구원의 근거가 점점 더 멀어지는 거예요. 보약에 인삼에 좋은 것은 다 먹고 병원에 가고 싶어도 아파야 병원에를 가지요.

혈압도 정상이고 맥박도 정상이고 다 정상입니다, 하니 도대체 ‘주님은 십자가를 왜 지셨습니까?’ 할 정도로 십자가가 이상할 정도에요. ‘이상하다. 십자가를 왜 졌습니까? 필요도 없는 것을 괜히 지신 것이 아니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마지막 때에 모든 인류가 처한 멸망을 에스겔에게 먼저 보여주고 그 다음에 그 에스겔에게 보여줬던 것을 이스라엘에게 보여주고 그 다음에 그 이스라엘이 어떻게 멸망하는가를 보여주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모델로 삼으신 겁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 그 뒤에 이해를 돕기 위해서 넣는다면 ‘그렇기에 나는 죄짓는 일은 안하겠습니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죄짓는 일을 한다, 안한다가 아니라 주께서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문제에요. 내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범죄 안하겠습니다,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고 범죄를 안 하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다루고 사용해줘야 구원받아요.

내가 얼마나 완벽하고 착하고 바르게 사느냐가 구원이 아니고! 대체 한국교회는 구원받는 방법도 몰라요. 예수님으로 구원받는다고 백날 이야기해도 그 사람들은 이렇게 해요. ‘예수 잘 믿는 나로 인하여 내가 구원받는다.’고 우깁니다. 아~! 정말 말이 안통해도 너무나 안통해요. 안 통하는 것이 그냥 안 통하는 것이 아니고 너무너무 안통해요, 너무! 진짜 개보고 물어, 물어, 하고 싶을 정도로. 에스겔이 왜 이런 말을 하는 겁니까? 지금 하나님의 방식은 내가 예상한 방식과 어긋난다는 거예요. 주님 뜻은 이겁니다. ‘늘 어긋나게 할 거야, 늘 어긋나게. 네가 예상한 것과 늘 어긋나게 해서 너를 막다른 골목으로 집어넣을 거야.’

그래서 말씀으로 다루어져야 구원받습니다. 주의 십자가로 다루어져야 구원받습니다. 내가 십자가 알게 된다고 그 힘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아예 물 마시는 것도 십자가, 떡 먹는 것도 십자가, 오줌 누고 잠자는 것도 십자가, 모든 것이 십자가를 증거 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다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알아서 지내다가 주일 낮 예배에 참석하고, 그런 것은 엉터리입니다. 그러면 이 말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는가? 칼이라는 것은 주부가 쓰느냐, 강도가 쓰느냐, 군인이 쓰느냐에 따라서 칼의 용도가 다 다릅니다. 이것은 흔해빠진 상식에 속하는 이야기 아닙니까?

어른들이 애한테 ‘같은 칼이라도 쓰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 하지요. 그것은 이야기하면서 우리 몸이 칼이라는 사실은 왜 이야기 안합니까? 우리 몸은 내가 누군지를 몰라요.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서 그때그때 달라요. 내가 칼을 다루는 것이 아니고 칼이 나를 다루어서 나로 하여금 어떤 기능을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우리 몸이 말씀에 따른 몸인지 아니면 말씀에 의해서 버림받아야 될 몸인지가 되는데 그것은 주님 소관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위해서 쓰이는 몸인지, 아니면 십자가에 침 뱉고 십자가를 모독하고 이제는 십자가를 그만 잊으라고 하는 인간으로 사용되는 것인지, 그것은 주님 손에 달린 문제입니다.

우리가 명확하게 알 것은 우리가 정상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기존의 세상사는 방법은 떡이 있어야 되고 물이 있어야 살고 인간은 노동해야 산다는 그것이 사는 것이라고 우기는 그런 몸, 그러한 몸이 주님의 말씀에 의해서 어떻게 강제적으로 바뀌어 지는지 우리는 그것을 온 몸으로 절감해야 됩니다. 주께서 ‘내가 알았다.’고 하는 그것을 피해가는 방식으로 ‘십자가 피로 구원받지 네가 뭘 하나 알아 챙겼다고 그 지식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평생 살아가면서 매일 같이 다시 한 번 지적해 주시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에스겔도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했었습니다. 평생을 깨끗하게 살았기에 이런 나쁜 짓, 이런 더러운 짓은 안한다고 했는데 주께서 그 방법마저 취소시켰습니다. 매일 우리 잘나 보이고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잘난 존재로 과시하기 위한 그 방식을 고맙게도 주께서 피해가시니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 증거 하기 위해서 쓰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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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