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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하나님과의 논쟁 121021우리교회마태복음

하나님과의 논쟁 121021

이름 : 이근호(IP:119.18.78.175)

하나님과의 논쟁 (미 6:1-5)

이근호

12-10-21 15:33

하나님과의 논쟁

2012년 10월 21일 본문 말씀: 미가 6:1-5

(미 6:1, 개역)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일어나서 산 앞에서 쟁변하여 작은 산으로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미 6:2, 개역)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쟁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쟁변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미 6:3, 개역)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엇에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거하라』

(미 6:4, 개역)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종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어 네 앞에 행하게 하였었느니라』

(미 6:5, 개역)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의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추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땅의 지명들과 인물들이 나옵니다. 오늘날 21세기에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친숙한 지명이나 인물들이 아닙니다. 따라서 신경 쓰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마치 몰라도 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으로 쓰여져야 하는 이유는 모두 다 한결같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두 발 딛고 사는 이 땅은 오늘 성경에 나오는 그 땅과 같은 땅입니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비록 상당히 멀기는 합니다만. 이 말은 곧 그 당시 그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나 오늘날 우리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사고방식과 생존을 보내고 있다는 겁니다. 땅 위에서 살아가야 될 인생에 별날 게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계시로 친히 개입하시고 다루고 계시다는 겁니다. 바로 그것이 사건화되어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싯딤이나 길갈이라는 지명 이름이 이점을 말해줍니다. 세상의 모든 땅은 이미 하나님의 조치가 덧입혀진 상황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8-9장에 나오는 노아홍수와 그 이후의 조치로 알 수가 있습니다.

하늘에 무지개가 새로운 의미가 지니고 떠있습니다. 가혹한 저주를 받아도 마땅한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사랑과 은혜로 보존해주신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5:43-45에 보면,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왜 선하신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봐주고 계시는 겁니까? 그냥 저주해버리면 그만인 것을 말입니다. 그것은 노아 언약의 취지를 빛내기 위해서입니다.

즉 안 악한 자가 없고 죄인 아닌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날 때부터 다 생각하는 것이 악합니다.(창세기 8: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물의 피흘리심을 하나님이 받아서 계속 자연의 질서를 지켜주십니다. 따라서 이 땅 위에서 예수님의 피흘리심의 은혜를 발렸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숨겨진 원리를 밝혀낼 민족이 노아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의 노선을 따라 이 지상에 등장되게 됩니다. 대자연은 뭘 자꾸만 내놓게 되는데 그것을 ‘창조’라고 합니다. 반면에 인간들이 내놓는 것은 ‘창조’가 아니라 ‘생산’입니다. 창조는 창조의 원리를 품고 있고, 인간들의 생산은 생산의 원리를 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주변에 있는 산들을 증인으로 세워놓고 그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이스라엘에게 묻고 계십니다. 즉 숨겨진 창조의 원리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이 ‘인간적 생산’으로 변경시켰다는 겁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모독입니다.

달리 말씀드려서, 도무지 은혜를 돌려야 될 분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찾지도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이스라엘은 어떤 식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창조원리’에 접선하는 계기를 갖게 된 것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깃딤과 길갈에서 일어나 두 가지 일로서 제시합니다.

둘 다 모압 땅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모압이란 유다나라 남동쪽에 있는 평야지역입니다. 모압왕 발락은 깃딤이라는 자기 영토에서 진치고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집단 이동에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발람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자기 하나님으로부터 벌받도록 유도하는 방책을 취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민수기 25장에 나옵니다. 여인들과 술과 쾌락을 주내용으로 하는 이방종교 파티를 열어서 이스라엘을 유혹한 것입니다. 거기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아서 무려 24,000명이나 죽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란 다른 민족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사명과 정체성을 정립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구라는 땅을 예를 들면 이러합니다. 우리 인간이 딛고 있는 땅은 실은 10km 내외의 두께를 지닌 지구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 중심쪽으로 수 천 km에 이르기 까지 뜨거운 금속물질이 담겨 있습니다. 그 지구 내부에서 마그마라고 하는 물질이 대류하고 있는 이 대류의 힘으로 인해 지각판이 움직입니다.

이 지각판은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마치 뗏목위에 사공인 신세가 바로 오늘 우리들입니다. 바다에 있는 것을 해양판이라고 하고 육지에 있는 것을 대륙판이라고 합니다. 해양판이 무거워서 대륙을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갈라진 틈으로 마그마가 위로 솟구쳐 올라옵니다. 내부의 물질이 외부화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방민족과 마주치게 하시는 이유도 이와같습니다. 이스라엘을 밑에서 지탱하고는 것이 언약적 창조원리입니다. 이 원리에 의하면 인간은 스스로의 생산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움에 나오는 은혜와 능력으로 삽니다. 마태복음 6:26-32에 보면,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것은 이방인들처럼,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가 아니라 ‘그 나라와 의’입니다. 따라서 깃딤에서 더럽혀진 이들 이스라엘은 길갈이라는 곳에 가서 집단적으로 할례를 행사하게 됩니다. 할례란 더러운 것이 굴러 떨어지게 하는 시술입니다.

즉 생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은 창조 원리에 부합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다르다는 점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2-10-23 06:28

13강-미6장1-5(하나님과의 논쟁)121021-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미가서 6장1절에서 5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295페이지입니다.

미가 6:1-5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일어나서 산 앞에서 쟁변하여 작은 산으로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쟁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쟁변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엇에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거하라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종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어 네 앞에 행하게 하였었느니라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의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추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성경을 일반 교인들이 볼 때에 자기 직업들이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연구를 이렇게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미가를 이렇게 보게 되면 여기 모세 나오고 아론 나오고 미리암 나오고 그 다음에 싯딤 나오고 발람 나오고 브올 나오고 길갈 나오고 모압 나오고. 평소에 관심 없던 용어나 지명들이 나올 때 이걸 꼭 다 알아야 구원받습니까? 하는 일종의 분통같은 것도 나올 수가 있거든요.

성경 말씀에서 이 동네도 아니고, 지묘동, 동성 로, 내당동, 이런 것 같으면 이해되는데, 남의 동네 지명과 남의 동네 사람들이 나오는 이유가 뭔가, 왜 이걸 이렇게 우리한테 알려주는가. 모두 다 땅에서 나온 겁니다. 그들이 살던 땅, 우리가 살던 땅, 같은 땅입니다. 같은 땅인데 땅이 그냥 땅으로 놔두게 되면 우리는 그들과 상관없어요. 그런데 그들이 살던 땅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 이 말이죠. 하나님이 개입했었던 일을 일으켰어요.

똑같은 원리로 오늘날 21세기 살고 있는 우리 대구 땅, 또는 한국 땅, 여기에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데 개입하시는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같은 원리로 개입한다는 점을 우리가 감안해야 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옛날 이스라엘 지나갔던 땅, 그 땅에서 개입하신 하나님의 원리원칙을 우리가 파악을 하게 되면 그 원리원칙대로 오늘날 우리에게 또 다시 적용하게 되고, 우리는 적용된 원리원칙을 파악해서 ‘아!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겁니다. 따라서 이것이 과거에 성경에 나오는 용어와 지명들이 아, 몰라도 돼, 이게 아니라 그들을 이렇게 다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파악을 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땅에서 살았다 하는데 이걸 우리가 알아야 돼요. 자연은 저절로 뭐든지 만들어 냅니다. 그걸 자연은 ‘창조’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연자체가 창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연 위에서, 땅 위에서 인간이 움직여서 만들어 내는 것을 그걸 창조라 하지 않습니다. 그걸 ‘생산’이라고 합니다.

생산을 이렇게 하게 되면 생산은 창조한테 검사 맞게 돼 있습니다. 벌써 어렵죠? 인간이 노동해서 생산하는 것은 땅의 원리와 부합되는 걸 검사 맞게 돼 있습니다. 땅은 무엇을 생산하느냐, 이거부터 알아야 되겠죠. 창세기 6장 7장 8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땅을 이미 새로운 원칙이 발리도록 했습니다. 어떤 원칙이 발렸어요. 저는 이걸 땅 위에 하나님의 원칙이 발렸다고 하는데, 성경대로 하면 ‘무지개가 떴다.’ 이렇게 보거든요. 무지개가 떴었다 하는 것은 그만큼 땅의 환경이 혹독해서 무지개라는 자비의 이미지로서 보호한다는 모습, 그런 현실이 없으면, 너희들은 악해서 저주의 저주를 살 수밖에 없는 겁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되고 땅이 노동하면 생산을 내는 것은 그것을 무지개가 보여주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혜택이지, 결코 너희들이 착해서 그렇게 생산해 내는 게 아니라는 거죠.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악한 자나 선한 자에게나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고 햇빛을 주신다고 돼 있어요. 지금도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 농사 잘~ 짓습니다. 공판장에서 제 값 받고 물건 삽니다. 그런데 그 모든 영광을 누구한테 돌리느냐, 자기한테 돌리거든요. 날 때부터 악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 사람들에게 무지개 보라고 하면 ‘무지개? 무지개 봤다. 그래, 빨주노초파남보, 어쩌라고?’ 그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누구한테 ‘당신의 은혜입니다. 당신 때문에 살았어요.’라고 돌릴 수 있는 그 대상이 이 세상 사람들은 없다는 거예요. 이 세상 사람들이. 분명히 박근혜하고 안철수하고 문재인 셋 중에 누가 되든지 아니면 허경영이가 되든지 모릅니다마는 되든지 하면 ‘이 모든 것은 국민의 덕입니다.’ 이렇게 할 거다 말이죠.

어떻게,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고 자기에게 이뤄진 모든 것을 ‘나는 당신의 덕인 줄 믿습니다.’라고 그분과의 관계가 이어져야 되는데, 관계가 끊어져서 몰라요. 기껏 우리나라는 조상 덕이다, 하죠.

제가 결혼식 주례 마치고 같이 이야기하면서 김 을수 집사님이 저한테 질문을 했어요. ‘목사님, 폐백이 뭡니까?’ 우 인숙 집사님은 폐백을 생략해서 안 했습니다만. 아, 전에는 알았는데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서울역에서 한 40분 기다리면서 인터넷에서 찾아서 알려줬습니다. 폐백이라 하는 것은 잘 들으세요. 중요한 건 아니지만 잘 들으세요.ㅎ 여자가 시집에 가서 밥벌이하기 때문에 뇌물 바치는 게 폐백입니다. ‘잘 봐 주이소.’ 요게 폐백 이예요. 그러면 시댁에서는 치마 펼치라 해서 밤 대추를 던져주며 ‘애 잘 낳으면 잘 봐줄게. 순풍, 순풍 애나 잘 낳으면 잘 봐줄게.’ 이 폐백이라 하는 것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에서 한쪽이 한쪽에 순종하는 표시로 뇌물을 내주는 게 폐백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외가 집 살다가 시댁에 완전히 옮겨가면서 ‘앞으로 밥 먹고 살 거니까 미리 제가 이렇게 폐물을 드릴 테니 어지간해도 잘 봐 주세요.‘라는 게 폐백이라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까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원리에서 제가 느낀 것은 뭐냐 하면, 은혜를 누구한테 돌리면, 그렇게 되면 옛날에는 폐백을 시집 어른부터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어디를 데려가느냐 하면 산소에 데려가서 대대로 내려오는 시가집 무덤 앞에서 먼저 폐백을 드리고 그 다음에 시가집에서 했어요. 옛날에는. 지금은 그것도 생략하지만. 그걸 보니까 사람들은 은혜 돌릴 사람, 그런 분을 몰라요. 모르고 그냥 우리 집안 잘 되고 이것 뿐 이예요.

그렇다면 땅의 원리는 뭐냐, 제가 아까 노아 이야기했지만 땅의 원리는 언젠가는 이 땅이 뒤집어버려요. 땅이 뒤집어져서 땅이 폭발해 버립니다. 땅이 불나서 불타버립니다. 그럴 경우에 진작 불타서 멸망해야 될 걸, 그동안 햇빛과 공기와 비를 내린 것은 그 흘린 피, 의인의 피, 예수님의 피 때문에 그동안 너희들을 많이 봐주고 묵인한 거예요. 성경에 나오는 이야깁니다. 그동안 은혜 돌리려 하나님을 찾지 않더라도 내가 그동안 너희들에게 벌 안 내린 것은 그동안 묵인한 거예요. 이제는 그것이 뒤집어지는 겁니다.

그게 뒤집어져서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만 자기 백성을 삼는데 그게
땅의 원리에 입각해서 솔~솔~솔 실타래 풀리듯이 풀려나오는 특수한 집단이 있어요. 그게 노아언약 이후에 아브라함언약에서 나오는데 그게 아브라함 자손 이스라엘이라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오늘도 갓 바위 빌러 올라가는 사람한테 다 해야 되는데 제가 바빠서 이야기 못합니다만.

아브라함언약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진짜 은혜를 받은 민족과 집단이 등장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어디 있어?’ 자꾸 하나님이 어디 있어? 안 보인다고 보여 달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 나라 있거든 그게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담겨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스라엘은 뭐를 했느냐, 항상 주변에 있는 땅이나 산천초목, 이런 것과 연관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줘야 됩니다.

오늘 6장 1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일어나서 산 앞에서 쟁변하여 작은 산으로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쟁변을 들으라” 이게 뭐냐 하면 이스라엘과 이야기하면서 주위에 있는 산천초목을 다 불러 모으는 거예요. ‘야, 산, 작은 산, 둔덕, 전부 다 와. 너희들이 땅이니까 이 땅 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고 하나님이 어떻게 땅에 개입했다는 것을 너희 작은 산, 큰 산 할 거 없이 골짜기 할 거 없이, 너 봤지? 봤으면 이 증인들 앞에서 이스라엘아 니 나한테 받았고 행했던 거 한번 이야기해봐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말 설명하기 위해서 땅을 먼저 설명할 수밖에 없어요. 땅은 뭘 품고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품고 있습니다. 더 깨끗하게 이야기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희생제물, 이스라엘이 아침저녁마다 드리는 희생제물의 덕분으로 이스라엘뿐만 아니고 주변에 있는 나라까지 그동안 은혜로서 사랑으로서 자비로서 지켜왔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5장 말씀에 의하면 선인이든지 악인이든지 상관없이 복을 준 거예요. 선인과 악인! 우리 같으면 악인 같으면 저주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악인과 선인과 상관없이 그동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온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마저 결국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의 뜻을 알아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될 이스라엘이 오! 주변나라의 이방 신에게 제사하고, 은혜를 주지도 못할 신에게 자꾸만 매달리고 어떤 흥정과 거래에 나선 겁니다. 세상에 신이라는 것이 인간하고 흥정하고 거래할 신은 없어요. ‘하나님 이거 받으시고 나한테 복주세요.’ ‘오냐, 복 줄게.’ 이거는 너무나 인위적이고 인공적이잖아요. 그러니 이건 창조적이 아니고 생산적입니다. 인간의 몸으로서 자기 몸을 위해서 새로운 복을 획득하기 위해서 종교라는 매개를 통해서 복을 따내기 위해서 그 짓하고 있는 거예요. 그 짓을 바로 이스라엘이 한 겁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했는가, 마태복음 6장 31절에 보면 이런 말씀 있습니다. 참, 무서운 말 이예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마라” 이거보다 더 무서운 말이 뒤에 나옵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우리보고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교회 못 나온다. 바쁘다. 어떻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뭡니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가 관심사가 돼 있던 거예요. 그런데 그런 관심사는 이방인들, 은혜 돌릴 대상자가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이 말이죠.

그러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뭘 해야 되는가, 택한 백성은 그 뒤에 나오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땅이 품고 있었던 그 원리는 인간이 의가 없어서 저주받는 거예요. 의만 있고 거룩만 있다면 저주와도 피해가요. 지옥 가도 지옥에서 못 가게 막고, ‘손님 여기 아니고 저쪽 천국 가세요.’ 라고 지옥 지키는 천사가 천국 보내버립니다. 하나님의 의가 있는 사람은 그건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나보다 더 중요한 게 들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의가 들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의를 줄 테니까 니는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에 거기에 혼 빼지 말라 이 말입니다. 거기에 목숨 걸지 말라 이 말이거든요.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하는 것은 땅이라는 그 객관을 가지고 내가 주체적으로 노동해서 얻겠다는 거거든요. 그것은 뭐냐 하면 바로 이스라엘 주변 이방민족들이 그렇게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도 없고 은혜도 모르고 땅을 어떻게 이용해서 밥 먹고 살까, 이것만 신경 쓰는 자들에게만 그런 우상 같은 신들을 섬기는 거예요.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땅이 원래 품고 있던 무지개 언약, 나쁜 짓해도 용서가 된다는 그 모든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로움이 유일하게 너에게 있다는 그 고귀함을 유지해야 되는 거예요.

언뜻 들었는데 노래 가사에 이런 게 있어요. ‘내가 보석인 것을 왜 몰랐느냐.’라는 게 있어요. 그게 누가 불렀느냐 하면 소녀시대가 불렀던 트윙클이라는 거예요. 트윙클, 트윙클 나오는데 내가 보석인 것을 왜 몰랐느냐 하는 거예요. 굉장히 은혜로웠어요. 우리가 보석이 아니고 우리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의는 얼마나 보석인지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팔아서 얻은 생산입니다.

* Twinkle 노래가사 *
『The twinkle, twinkle
The twinkle, twinkle
숨겨도 twinkle 어쩌나
눈에 확 띄잖아
베일에 싸여 있어도
나는 twinkle 티가 나
딴 사람들도 다 빛나는
나를 좋아해
끝까지 경계해야 해
보석을 훔친 너잖아
늘 나의 곁을 지켜줘
내 주위만 맴돌아
눈을 떼지 말아줘
내 매력에 빠져
숨겨도 twinkle 어쩌나
눈에 확 띄잖아
베일에 싸여 있어도
나는 twinkle 티가 나
난 미지의 세계 시간을 잊어버릴걸
아침에 눈을 떠봐도
꿈은 계속될 거야
난 너를 위해 꾸미고
더 예쁘게 날 반짝일래
왜 너만 혼자 몰라 나의 진가를
숨겨도 twinkle 어쩌나
눈에 확 띄잖아
베일에 싸여 있어도
나는 twinkle 티가 나
너무 태연해 너무 뻔뻔해 밖에는
날 소원하는 줄이 끝이 안 보여
말도 안되게 넌 너무 담담해
난 하늘 아래 떨어진 별
숨겨도 twinkle 어쩌나
눈에 확 띄잖아
베일에 싸여 있어도
나는 twinkle 티가 나
그대의 twinkle 나를 봐 어딜 봐
나를 봐 칙칙한 옷 속에서도
나는 twinkle 태가 나
숨겨도 twinkle 어쩌나
눈에 확 띄잖아 베일에 싸여 있어도
나는 twinkle 티가 나』

땅은 예수님이 생산해야지, 우리가 생산하면 안 돼요. 우리는 예수님이 생산한 것을 얻어먹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참새를 보아라, 들풀을 보아라, 백합을 보아라, 누가 키우느냐, 주님께서 친히 기르시나니. 주님께서 친히 길러주니까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죠.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데리고 하시는 말씀이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 했습니다. 천국이 만만치 않아요. 키를 압축할 수도 없고, 다시 교복입고 돌아다닐 수도 없고, 코 질질 흘리면서 손수건 달고 입학할 수도 없고, 이미 어른 돼 버렸는데 어떻게 어린아이가 돼요?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는 말은 갈수록 줄어들라는 말인데 이거 뭐 침해 걸려야 될 일이지 안 되거든요.

이 말은 뭐냐 하면 어린아이란 뜻은 그냥 생산하는 것이 아니고, 창조의 혜택을 그냥 공짜로 그런 입장에 있다 이 말이죠. 우리가 이 땅에서 뭘 하면서 살아도 이건 우리의 노력의 열매가 아니고 주께서 은혜주신 겁니다. 그래서 그걸 받았으면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그것, 그것을 이스라엘이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야 되는데 여기 하나님께서 화내시고 시비 걸러 나오시는 겁니다. ‘우리 시비하자, 논쟁해 보자.’ 하고 나서시는 것이 그 뒤에 5절부터 나오는 이야깁니다.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의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추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라” 이 말은 뭐냐 하면 전부 다 이게 이스라엘의 위기였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려면 이러한 우상을 섬기는 이방민족의 저주 같은 게 맞닥뜨리지 않도록 하면 참 좋겠는데 왜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이 땅에 하나님을 안 믿는 하나님을 저주하는 그런 민족들로 자꾸 배치를 하느냐, 그걸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봐야 돼요. 특히 발람 같은 경우에는 민수기 25장에 나오는 말씀이거든요. 거기 보면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진 치고 있을 때 발람이 꾀를 써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수 있는 묘책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미인계를 동원해서 그들 앞에서 유혹하게 하면 그들은 다 넘어갑니다. 그래서 미인계에다 술까지 마시게 하고 음행하게 하고 이렇게 하니까 과연 아니나 다를까 이스라엘 집단은 내부적으로 와해되거든요. 누가 그렇게 했는가, 발람 선지자가 그렇게 뇌물 받고 그 짓을 한 거예요.

그렇게 하니까 갑자기 ‘하나님 은혜, 우리는 죄인인데 하나님의 자비’ 이러다가 다 귀찮은 거예요. 종교적인 것도 딱딱하고 그냥 인생이라는 것은 즐기는 거야, 해서 즐기는 쪽으로 나가서 무려 죽은 사람이 거기서 염병으로 2만4천 명이 죽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이렇게 이방민족을 붙여줘야 잊어버렸던 땅의 원리가 새록새록 다시 생성되는 거예요.

이걸 제가 땅의 비유로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진이라는 게 있어요. 지진이 왜 일어나는가, 지각판과 지각 판이 충돌할 때 지진이 일어나게 돼 있습니다. 원래 지구가 딱딱하니까 땅 속까지 딱딱한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구는 껍데기 지표에서 10킬로미터만 딱딱하고 그 밑에는 물렁물렁해요. 저 밑에 들어가면 액체입니다. 그 액체인 외핵이라는 데서 액체에서 액체가 돌아다니면서 돌아가야 지구의 자장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그 중간에 10킬로미터로 마그마가 올라오는데, 맨틀이라 하는데, 올라오는 마그마가 열이 많아서 빙빙 돌아요. 대류현상이라 하는데 빙빙 돌아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때마다 위에 떠있는 물에 떠 있는 기름처럼 지각 판에 떠 있어요. 떠 있어서 지 맘대로 움직여요.

지각 판중에서 바다에 있는 걸 해양판이라 하고 대륙에 있는 걸 대륙판이라 합니다. 그런데 해양판은 무게가 무겁고 대륙판은 이게 가벼우니까 추울 때 애들 이불 속에 들어가듯이 자꾸 기어오는 거예요. 기어오니까 여기서 대륙판이 떠버리죠. 여기서 갈라지면서 일본에 지진이 일어나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결국 인생이라 하는 것을 껍데기에 불과한 거예요. 마그마의 대류현상이 우리로 하여금 뗏목 타듯이 그냥 가만히 있어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처럼 이 땅이라는 것은 땅도 지 맘대로 못해요. 땅도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야 되는 겁니다. 이게 땅이 예수님의 활동을 보여주기 위해서 땅이 만들어졌어요. 골로새서 1장 16절. 세상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위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과학자들은 이걸 몰라요. 과학을 아무리 연구해도 현미경을 들여다봐도 아기예수 안 보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자들은 맹목적으로 이용할 생각만 하지, 우리가 누구한테 은혜를 돌려야 될지, 감사해야 될지, 찬양해야 될지, 전혀 대상이 없어요. 그저 과학적인 성과 일어나면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지, 그거 신앙도 아닙니다.

‘과학 하는 자체도 이게 예수님의 피 앞에서는 죄다.’라는 걸 느껴야 과학이고, ‘신학 하는 자체도 주님 앞에 죄가 된다.‘는 게 돼야 제대로 된 믿음 있는 신학자가 되는 거예요. 목사는 목회하는 자체도 죄가 된다는 것을 십자가 앞에서 항상 볼 때 하는 거예요. 목회하면서 죄를 느끼고 그 죄는 바로 십자가에서 나온다는 이것이 이 땅의 창조의 원리예요. 무지개 원리예요. 이게 무지개 떠 있는 이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의 이방민족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용서받지 못할 자라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오늘 본문 미가 6장에 보면 길갈이 나옵니다. 길갈은 뭐냐 하면 할례를 행했던 자리예요. 그러니까 더러운 민족과 합체해서 지진이 일어나서 2만4천 명이 죽었습니다. 완전히 이스라엘은 깨졌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내부적으로 맨틀에서 마그마처럼 어떤 조치를 취하는데 그게 숨어있는 창조의 원리가 동원됩니다. 그게 뭐냐 할례입니다. 더러운 것을 제거해버리는 거예요.

더러운 것을 씻어버리고 제거해주는 하나님의 특별조치가 여기서 감행이 되는 겁니다. 그게 길갈입니다. 민수기 4장에서 5장에 보면 요단강 건너고 난 뒤에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니까 껍데기가 딱 떨어져서 굴러가니까 굴러간다는 뜻으로 길갈이란 지명이 거기서 나온 거예요. 굴러가고 그 다음에 여리고성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여리고성 도니까 무너진 거예요. 그냥 돈 게 아니고 할례 받은 자들끼리만 도니까 무너진 겁니다. 이 땅, 여리고성은 니가 살 땅이 아니고 약속의 땅은 약속의 하나님의 의가 품고 있는, 고귀한 보석 같은 그걸 품고 있는 자만 거기 들어간다는 거예요. 트윙클, 트윙클, 노래 한번 들어보세요. 보석 같은 자들만 거기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할례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죄가 굴러 떨어졌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가 없어졌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만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옛날에 하나님이 개입된 그 사건이 여전히 오늘날 사건이 있는 땅에서 삽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가 지금 주 관심사가 돼 있어요. 이것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였고 마찬가지였습니다.

땅에서 민족을 뽑아낼 때 어떤 민족은 지옥 갈 민족도 뽑아냈지만 어떤 민족은 구원받을 민족도 뽑아냈습니다. 이게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있어요. 이 민족과 민족의 충돌, 이건 해양판과 대륙판의 충돌, 여기서 둘이 틈이 갈라지면서 그 틈 사이에서 할례언약, 노아언약, 아브라함언약,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가 거기서 솟구쳐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떨쳐버릴 수 없는데 우리보다 더 잘 살고 우리보다 더 화려하게 살고 더 멋지게 사는 것하고 우리하고 몸싸움을 벌리게 만들어요. 승진도 안 돼, 돈도 못 벌어, 이러한 것이 오면서 우리는 주눅 들어 가면서 그들을 더 부러워하는 가운데서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그 사건을 통해서 아! 주께서 친히 기르시고 우리는 살아온 것에 영광을 돌리고 감사해야 될 분을 놓치고 있었구나, 잊고 있었구나. 그 나라 의가 중요한데 나는 내 몸이 중요하고 내 사는 게 중요하고 내 모가지 목숨이 중요하다고 그런 식으로 계속 세월만, 세월만 보내고 있는 거예요. 70이고 80이고 90이고, 90노인 가운데 믿음 있는 사람 있겠나 싶어요.

그렇게 오래 살아도 아직도 몰라요. 더 살아야 될 건데, 더 살아야 될 건데. 제가 들은 이야긴데 어떤 분이 90된 노인보고 ‘아이고, 내년 되면 또 천국 가서 만나겠네요.’ 이렇게 말하니까 그거 듣고 난 뒤에 화가 나서 나중에 토요일 날 만났답니다. ‘그래, 여기가 천국이다. 그래, 뭐 천국 가서 만난다고? 여기가 천국이다. 그래.’ 그렇게 화를 냈답니다. 믿음의 증거가 뭔지, 그걸 보고 노인보고 아무리 덕담이라도 천국 가서 만납시다. 그 소리해서는 안 되겠구나. 아이고, 보니 앞으로 더 사십니다. 이래야 되겠구나. 하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죠. 이 해양판에서 이 대륙판에서 어디 밑에 받쳐야 돼요. 옆구리에 받쳐야 되지.

날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의 참새로서 백합이라고 이렇게 호칭을 해주는데, 우리는 백합 되기 싫고 참새 되기 싫고 우리는 내가 부러워하는 모압 사람 되고 싶은 거예요. 모압이란 지명이 어디냐 하면 여기 대구가 만약 예루살렘이라면 모압은 포항 울산 저 지역입니다. 울산 지역 잘 들어야 돼요. 경주 저쪽 지역이 모압 이예요. 대구가 약속의 땅이라면.

그러니까 왜 하나님이 그 땅을 경유해서 약속의 땅에 오느냐 하면 바로 내가 천국에 못 들어갈 존재라는 것을 느끼면서 예수님의 무지개 언약, 예수님의 희생과 피 흘림이 그게 곧 사랑인 것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생산하는데 주목하지 말고 창조하는 원리에 따라서 우리자신이 생산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옵소서. 지금도 매일같이 주님께서 은혜 주시는데 은혜주신 분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는 저희들입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면서 항상 기도하면서 자신의 몸을 주의 일에 바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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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