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YouTube강의(헌금)121018-이 근호 목사
7강-YouTube강의(헌금)121018-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1.16)
7강-YouTube강의(헌금)121018-이 근호 목사
이번에는 제 7강 헌금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헌금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봐야 될 구절은 시편 50편 8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내가 너희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이 말씀을 다시 말씀드리면 “내가 너희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그 이유가 나와 있는데 “네 제물,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라는 시편 50편 8절의 말씀, 이것을 중심으로 헌금이 무엇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되는데, 왜 그러느냐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을 제쳐버리고 현재 우리 인간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신이라는 것은 인간이 누구나 상상의 산물로서 관념의 산물로서 누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상상하는 그 하나님을 제켜 버리시고 진짜 나타나셔서 어떤 작업을 하시는데 그 작업이 뭐냐,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이 땅에 남겨두셨습니다.
왜 남겨두었을까요? 참된 하나님이라는 경로를 내가 신을 생각한다고 조물주를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참된 하나님이라고 성급하게 나설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 사이에 어떤 주고받는 관계를 통해서 참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어떻게 펼쳐지는가를 그걸 먼저 전제로 하고 염두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냥 여타의 민족 중에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라고 보여줄 수 있는 계시로서 특수하게 이 땅에 등장한 민족입니다. 따라서 그 이스라엘 민족은 두 가지의 기능을 보여주는데, 하나는 인간이 신을 섬길 때 어떤 솜씨와 어떤 기능을 다 총동원해서 신에게 영광을 돌리고 신에게 감사하고자 신에게 소통하고자 그렇게 애쓰는가를 인간의 측면에서 다 보여주고,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그런 인간적인 애씀과 종교적인 경건성과 거룩과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대처해서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멸망시키느냐, 그 멸망시킴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뜻이 거기에 등장하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을 항상 위기에 몰아넣어서 위기 가운데 자기 본색을 드러내게 돼 있습니다. 사람이 위기에 직면하지 않으면 자기는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그것이 합당하고 정당하고 의롭고 경건하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을만하다고 그렇게 항상 자부심을 갖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위기에 처해버리면 어떤 인간도 하나님과 연결될 수 없는 그러한 존재로서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을 노출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헌금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고, 여기 오늘 본문에 있는 시편 50편의 문제는 바로 제사의 문제입니다. 번제에 관한 문제입니다. 제사를 드리는데 있어서는 필요한 제물들이 많고 여기에 동원되는 그러한 땅의 생산물들이 여기에다 집약이 됩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빈손으로 나올 수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여 깨끗하다고 구별된 것들을 거룩한 칭호를 붙이면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런데 시편 50편 8절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번제를 인하여 너를 책망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시편 50편 그 뒤에 보면 나옵니다. 10절에 보면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들이 제사를 드리면서 제물을 특별히 구별한다고 했지만, 사실 하나님 보시기는 공간이동에 불과합니다. 자리이동에 불과합니다. 산에 있는 사슴이나 산에 있는 양이나, 양이 살아있더라도 그건 하나님 것이고, 그것을 끌고 잡아서 성전에서 제물로 바친다 할지라도 그것도 하나님 것입니다. 산에 있을 때는 하나님이 것이 아니었는데 새삼스럽게 그걸 끌고 성전에 들일 때만 하나님의 것이 되는 그런 것은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진정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드리라는 의미는 뭐냐, 그것은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렸고 제물을 드렸던 것과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 같이 두 가지 기능을 같이 비교해서 또는 견주어서 합쳐서 우리는 이해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돈을 받는 게 아닙니다. 돈 받고 구원하는 하나님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돈 받고 축복해 주는 하나님도 이 세상에 어디에도 그런 하나님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내게 되면 하나님이 돈 받고 돈 양만큼 축복해 준다는 인간들의 이러한 아이디어는 실제로 성경이나 이스라엘 민족에서 찾은 것이 아니고 인간 대 인간의 정, 정 나눔, 이 세상에서 인간 대 인간 사회에서 서로 좋은 게 좋다는 그런 정 나눔과 사랑 나눔에서 유발된 겁니다.
우리가 이웃 간에 이사 와서 떡을 해주면 그것은 하나의 사랑의 표시요 그 사랑을 받고 난 뒤에 받은 게 있으면 사람이 양심이 있는 이상은 그냥 받고 입 싹 씻는 법이 없거든요. 그만큼 채워주는 겁니다. 바로 사람 대 사람 사이에 그것을 일반 사람들은 그걸 어디까지 이어졌느냐 하면, 하나님까지 이어 가지고 설마 이렇게 귀한 제물과 헌금을 드렸는데 설마 하나님께서 그걸 받고 난 뒤에 저주를 하시겠는가, 내 앞에 어떤 사업의 미래가 보장되지 못하고 불안한데 여기에 대해서 미리 돈으로 교회 갖다 바치고 선교헌금 내면 십일조 내면 하나님께서 그걸 받으시고, 앞에서 혹시나 주어질 그런 재앙이나 어려움을 미리 제거해줄 것이라는 일종의 뇌물성 헌금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바치게 되는 겁니다.
교인들이 세상에 살면서 뭔가 자기가 큰 실수했다고 생각한다면, 예를 들면 작은 실수나 큰 실수나, 큰 실수 같으면 범죄 수준이고 작은 실수 같으면 예배에 좀 늦었다든지 성가대 연습을 안 했다든지, 또는 교회 행사하는데 구차 없이 빠졌다든지 그럴 경우에는 미안한 마음에서 그 다음에는 헌금에 만 원짜리 하나 더 추가시켜서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누그러뜨리고 그래서 평화로운 관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심보, 그런 것은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도 아시고 특히 우리보다 먼저 하나님을 알았던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심성으로 그들은 제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오해에 대해서 일체 거절하시고 뭐라고 하시느냐 하면 내가 받는 것은 너희의 번제나 소제나 화목제, 이런 제물이 아니라 내가 받는 것은 시편 51편에 보면 너희들의 상한 심령이라 했습니다.
이 의미는 뭐냐, 우리가 상한 심령을 내게 되면 그 상한 심령과 주께서 친히 준비한 제물이 있어요. 그게 뭐냐, 주께서 친히 꺾으신 뼈가 있습니다. 주께서 친히 꺾으신 뼈는 어떤 뼈냐 하면 바로 우리가 우리의 본성대로 신을 기쁘게 하고 축복받고자 어떤 착한 일하고 경건한 일이라고 한 모든 것 때문에 오히려 탄식하시고 오히려 가슴 아파하시고 오히려 우리의 그러한 종교적 행위로 버림받으신 분의 희생과 그 처절한 운명과 그리고 상한 심령 된 우리와 만나서 그 자체가 만나서 하나님의 받으시는 율법에 기록된 진짜 제물로서 받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결국 상한 심령 주의 받으시는 그 제사에 가담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로 인하여 꺾으신 뼈가 되시는 분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께서는 꺾으신 뼈가 되고, 우리는 그 앞에서 천하에 죄인이 되는 겁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헌금이라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상한 심령으로 살아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는 겁니다. 로마서에 보면 사도바울은 ‘난 이방인을 제물로 하나님께 바친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자신을 제물로 바칠 때는 거기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새롭게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규정한 그러한 우리 자신의 삶 자체가 제물로 가담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헌금을 바치는 정도가 아니라 날마다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그 헌물에 의해서 오히려 헌금을 받고 도움을 받고 살아가는 입장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돈을 내놓는다는 것은 그것도 일종의 헌금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 자신의 돈을 하나님 일에 쓰는 것이 아니고 주의 돈을 주의 돈답게 쓰는 겁니다.
따라서 그 헌금을 하기 전부터 우리가 애들 피아노 레슨 한다든지 침대를 사는 것까지 전부 다 주께서 우리에게 먼저 주신 헌금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고, 그 중에 일부가 복음전파 하는데 쓴다면 그것도 주께서 주의 일에 쓰여 지기 위해서 헌금한 겁니다. 따라서 헌금해서 추가적인 복을 받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십자가 복음으로 인하여 죽음을 당하는 것이 우리 성도의 마땅한 도리기 때문에 추가적인 제물이나 이런 것을 우리가 따로 소유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겁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는 것 자체가 복이 있나니, 선지자들도 그같이 죽었다고 한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희생당하고 고난 받는 그 자체가 성도가 보여줄 수 있는,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축복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우리 자신이 주께서 주신 헌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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