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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전120927b-마12장41절(이중관점)32강-이 근호목사자유게시판마태복음

대전120927b-마12장41절(이중관점)32강-이 근호목사

이름 : 공은주(IP:218.147.193.143)

대전120927b-마12장41절(이중관점)32강-이 근호목사

시작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0, 41절 읽어보겠습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 이어니와”이렇게 되어 있지요. 니느웨 사람 있고, 요나 있고, 그 다음에 요나의 출생지였던 이스라엘사람이 있고, 니느웨사람 이 쪽에 배치하고 이스라엘사람을 배치하고 요나를 배치했을 때에 이스라엘사람들은 요나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았지만, 니느웨사람은 회개했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배치하는 것은 지금 요나에다가 누구를 배치하는 겁니까? 예수님을 배치하고, 이스라엘은 유다를 배치하고 그 다음에 이 니느웨는 공백상태로 비워놓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앞으로 할 일은 요나의 기적대로 하려면 “그래, 유다는 결국 버렸어!”라는 것도 주께서 하실 일이고 그 버린 자리를 니느웨 같은 사람이 없다고 여겼는데 새롭게 등장한 그 작업도 누가 할 일이죠? 예수님의 하실 일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요나에 대한 이러한 해석이 어떠한 원리가 되는가, 그 원리에 대해서 제가 한 번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코맥이란 사람하고 하운스필드란 사람하고 1979년에 노벨 의학상을 받았어요. 그 상 받은 내용이 뭐냐 하면 AT(단층촬영)에 의해서 X선이 와버리면 사람의 뼈가 사진에 보이는 거예요. 앨런M.코맥이란 사람은 방사능기사인데, 어떻게 하면 내부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을까 해서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는 거예요. 신호를 보내게 되면 그냥 보내게 되면 평면으로 보이게 되잖아요. 이걸 입체로 보내면 어떻게 되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기에 나온 것이 뭐냐 연립방정식이 나와요. 예를 들면 #에 P, Q, R, S 해 놓고 방사선을 양쪽에서 보내는 거예요. 각각 10이라는 신호를 보내보니까 3이 나오고, 5가 나오고, 1이 나왔다 하면, P+S= 7되고, Q+R=7되고, P+Q=5가 되고 S+R=5가 되거든요. 이걸 연립방정식 풀어 버리면 P는2가 되고, Q는 3이 되고, R은4가 되고, S는5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 가지 신호를 입체적으로 봐버리면 새로운 입체가 나오는데, 이것을 하운스필드라는 사람이 CT라는 걸 발견했어요. 그래서 노벨의학상을 받은 겁니다.

말씀을 수평적인 역사로 보는 것이 아니고 묵시로 수직으로 봐버리는 거예요. 묵시로 보면 예수님께서 해석을 이렇게 하는 겁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의 몸이 묵시적 몸이거든요. 인자에서 왔잖아요. 인자된 몸이 왔잖아요. 하늘에서 왔잖아요. 인자라는 개념은 다니엘 7장에 나오는 개념 아닙니까?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분 이름이 인자예요. 인자 같은 분이 이 땅에 오니까 이 지상은 뭘 받아줘야 하는가 하면, 하늘에서 오신 분을 받음으로서 하늘과 땅이 맞닥뜨릴 때, 새롭게 발생하는 사건과 현상을 보여줘야 돼요. 땅이.

땅이 보여주면서 땅이 움푹 파이겠지요. 하늘의 묵시가 땅에 떨어져 버리면 땅이 파이잖아요. 이 파인 구멍에 대해서 수평적으로 역사적으로 보는 사람은 어떻게 해석하게 되고, 성령 받은 사람은 어떻게 해석하느냐, 해석이 입체적으로 두 가지 해석이 나오는 겁니다.

예수님의 해석은 예수님이 바로 구세주라는 쪽으로 해석이 되겠고, 수평적으로 역사적으로 죽~ 달리는 해석으로 해버리면 주님은 똘아이지요. 정신병자지요. 같은 엑스레이를 찍어도 그냥 시커멓게 나오는 그것은 병명을 잘 모르는데 CT촬영해보면 입체적으로 봐버리면 3D로 보이니까 확실하게 구체적으로 내막이 속사정이 보이잖아요. 역사적으로만 보면 안 되지요. 역사와 묵시가 마주치는 그 지점을 봐야하기 때문에 역사라는 걸 포기하면 안돼요. 이단 이란 걸 포기하면 안돼요. 이단이 있어줘야 돼요. 유대인 있어주고, 거기에 예수님과 유대인이 만남에서 어떤 블랙홀이 생기는가, 어떤 구멍이 생겨야 되는 거예요. 그걸 예수님이 뭐라 했습니까? 그걸 요나의 기적이라 하는 거예요. 요나의 기적.

그러니 아무도 해석을 못 하는 거예요. 이걸 누가 해석하는가 하면, 예수님만 알고 있고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왜 사람들은 모르는가 하면, 사람들이 안다는 것은 전통과 학습의 반복에 의해서 누적된 기억이 새로운 지식을 수집하게 돼 있습니다. 그 계속 쌓이고 쌓인 지식체계가 이루어지면 계속 쌓여가는 거예요. 마치 성냥개비가지고 쌓고, 쌓고 하지요. 다보탑처럼 쌓는 거 있지요. 계속 지식이 누적되어 쌓이는 겁니다. 그게 쌓여서 그걸 기초로 해야 새로운 지식을 여기에다가 받아들이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 요나의 기적이라 하는 것은 완전이 구멍이 나고 쌓인 성냥개비 다보탑이 부셔지니까 그동안 배운 것이 부셔진다 하니까 사람들은 내부적으로 반발력을 발휘하게 돼요. 그 반발력을 주께서 의도한 거예요. 반발력이 있어줘야 예수님의 죽음이 성사되는 겁니다. 그 예수님의 죽음을 도로 우리 앞에 정렬을 해버려요. “니가 나를 죽였잖아!” “제가 뭘 했는데요” “역사적인 해석을 했잖아, 역사적인 해석을.” “니가 쌓아 놓은 모든 지식으로 나를 해석했잖아. 그러니까 너를 부셔줘야 돼!” 하는 겁니다.

10월 3일 자로 김기덕 감독이 선언을 했어요. 피에타란 영화를 상영 그만한다 해서 화들짝 놀라서 오늘 아침 급하게 바쁜데 피에타를 봤어요. 기존에는 피에타란 영화 황금사자상을 받은 최고의 영화에서 누가 평을 안 하고 있어요. 이상하다, 보통 평을 많이 하는데 평을 안 하는데 영화를 보니까 평을 안 할 이유가 있었어요. 이게 십자가 이야기예요. 아무도 십자가를 모르는 거예요. 사람들이 십자가를 모르니까 평을 못 하는 거예요.

엄마가 아들 찾아가서 감동을 받는 것은 흔해 빠진 거잖아요. 그것도 아니거든요. 엄마가 아들 찾아가서 감동받아서 아들 되라고 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고 십자가 이야기인데, 뭐냐 하면 십자가가 오늘날 돈만 아는 세상에서 십자가가 어떻게 나타나느냐 하는 그 주제입니다.

마지막 장면이 뭐냐 하면, 1톤 트럭 밑에다가 주인공 되는 남자가 자기의 목을 걸고 트럭 밑에 바퀴달린 중간에 자기 목을 그어버려요. 아침에 운전하는 아줌마는 그것도 모르고 물건 팔러 계속 달립니다. 밑에 시체가 끌리니까 계속 뭐가 남습니까? 피가 계속 흐를 것 아닙니까? 피가 좍~ 묻어 나오는 거예요. 뭐냐 하면 십자가 피에요. 차가 달리면 달릴수록 계속 피가 도로에 젖어지는 거예요. 시체가 안 떨어지고 계속 물려있으니까 피가 다 마를 때까지 계속 쏟아지니까. 그 도로에 피가 깔리고 끝나버려요.

그런데 자진해서 아줌마 트럭 밑에 들어가서 피를 흘렸던 남자 주인공이 누구냐 하면, 바로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고 세상에 대해서 분노를 퍼붓던 죄 많은 죄인입니다. 죄 많은 죄인이 엄마를 만났다고 죄 많은 짐승이 짐승 같은 인간 청산하고, 제대로 된 인간으로 살아보려고 했는데 그 엄마가 가짜 엄마였습니다.

왜 가짜 엄마냐 하면 진짜 엄마는 이 나쁜 놈을 버리고 얼마큼 나쁜가 하면 돈을 안 갚는 것 사채, 돈 대신 갚는데 보험 들어 놓고 손을 잘라서 받는 그 정도로 나빴는데, 그 짓에 걸려서 자살했던 애, 아이의 엄마가 그 자기의 아들을 죽였던 그 인간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엄마로 위장해서 잠입해서 “내가 니 엄마다.” 니 버린 엄마다.“ 들어가서는 복수하려고 갔는데 그 아이는 감동받아서 진짜 엄마인 줄 알고, 엄마 죽었다고, 엄마 죽은 세상 더 이상 못 산다고 가짜 엄마인 줄도 모르고 진짜 엄마인 줄 여기고 엄마 없으면 죽겠다고 해서 그렇게 한 거예요.

유명한 영화 그 대사에 나와요. ‘돈이 시작이요, 돈이 끝이다.’ 라는 말이 나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십자가란 의미는 무엇이냐, 이것은 위로도 아니고 이것은 희망도 아니라는 거예요. 기존의 기독교에서는 김기덕 감독이 기존의 기독교를 치는 거예요. 기존의 성당과 교회에서는 이 십자가를 무엇과 연관시킵니까? 희망과 구원으로 시키잖아요. 희망과 구원으로 여기는데 그게 아니라 이 자본주의 지나가는 십자가는 자기 죄를 아는 그것이 십자가다. “나는 차 밑에 질질 끌려서 내 남은 피를 세상에 다 쏟아 부어도 내 속죄가 안 돼. 그 정도로 내 죄는 속죄가 안 될 정도로 이렇게 피를 흘려야 마땅합니다.” 라는 그 자체가 나중에 멀리서 보면 이게 십자가 모습으로 지상에 남겨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김기덕 감독의 십자가 이야기예요. 이걸 누가 평합니까?

엄마는 없어요. 복수하러 간 위장 엄마예요. 그런데 엄마를 만나고 지가 죄인임을 알게 된 그 인간이 성경의 모습에서 보면 십자가 옆에 달린 강도잖아요. 왜냐 하면 그 강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했습니까? 아니 사도바울이 사울일 때, 얼마나 많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였던가요? 잡은 것만 아니고 잡아 죽였다니까요. 잡아 죽였으니 그 가족들이 있을 게 아닙니까? 이제 와서 사도바울이 주의 종이다, 나서면 죽은 가족들이 얼마나 같찮게 여기겠습니까?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그래, 그렇게 하면 되나? 그러면 내 가족은?” 귀하디 귀한 내 가족은 누가 보상하는데? 니가 예수 존대했다고 보상되나, 말이지요.

사도바울이 뭐라 합니까? 죄인 중에 괴수다. 윤리 도덕적인 게 아니에요. 이 세상에서 태어났다는 자체가 누구나 할 것 없이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엄연한 현실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거기서 누구 하나 발 뺄 수가 없어요. 우리가 인간이라고 생겨먹은 이상은 이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인의 괴수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피에타에서는 안 그러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요나의 기적은 결국은 회개를 촉구하는데 이것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로 와버리면 이렇게 간단히 돼 버려요. “모든 인간은 의인이 없나니 하나도 없다.” 간단히 돼 버려요. 로마서 3장에서. 지금 예수님은 요나 이야기 했지만, 예수님의 종 사도바울은 성령으로서 예수님의 지시를 받고 편지를 쓸 때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모든 인간은 입을 다물라, 율법으로 말미암아 저주아래 있다. 간단하게 이야기해 버려요.

그리고 그것이 주께서 화목제물로, 예수님의 화목제물만이 인간이 죄인 될 때, 행해서 죄인 안 된 것처럼, 출생자체가 죄인인 것처럼, 의인되는 것도 출생자체가 의인으로 태어난다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두 번째 아담에서 태어날 경우에는 그런 혜택을 입는다는 거예요. 첫 번째 아담 때는 인간자체가 그냥 죄인이 되는 것처럼, 두 번째 아담에서는 성도자체가 그냥 의인되는 거예요. 복음이란 너무 기가 막히지요. 너무 복음이라서 말이 안 되잖아요. 너무 복음이라서. 이런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은 “목사님, 진작 이야기하시지.” 이런 소리 하는 사람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진작 이야기해야지. 아휴~ 착한일 한다고 교회에서 얼마나 애를 썼는지. 당신이 당신 잘못이지. ㅎㅎ

예수님께서 세례 받을 때, 세례요한한테 세례 받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이 말렸어요. “딱 보니 당신은 회개할 게 없는데.” “내가 오히려 당신한테 회개 받아야 되는데.” “아니 어르신네 왜 이러십니까? 이러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니까 내가 죄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죄 속에 있는 너희가 하나님의 천국에 못 갑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가망성이 없습니다. 절망입니다.

주님이 와서 손목 걷고 꺼내주지 않으면 주님의 손에 질질 끌려 나오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구원이 안 됩니다. 종교적인 수법과 수완은 이미 유대인들이 다 한 거예요. 아까 다 들었지요? 어떻게 지켰는지. 안식일날 애 유모차 끌고 가지도 않아요. 과일 냄새도 안 맡는다 했잖아요.

그런데 그 안식일 예수님이 담요 들고 가라 했으니까 누가 조마조마 했겠습니까? 담요 들고 간 그 사람이 조마조마했을 거예요. 그들은 그냥 인간적인 차원에서 담요를 들고 가지 말라 한 것이 아니고 안식일입니다. 안식일. 이것이 사람이 만든 법 같으면 유대인도 그렇게 심하게 안 나와요.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모세만 이야기했던 소리 아닙니다. 이미 에스겔, 이사야, 예레미야에 안식일에 금식하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것은 누가 봐도 안식을 어기면 안 되는 거예요. 아예 어기면 지옥 백성 되는 겁니다.

그런데 누가 어겼습니까? 주님이 어긴 거예요. 주님이. 그리고 주님을 본받으려면 우리가 무엇을 어겨야 돼요? 안식일 어겨 줘야 됩니다. 자꾸 예수님을 필요할 때만 이용하지 말고.

42절 봅시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여기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요나 이야기했지요. 요나 이야기할 때, 니느웨 사람 회개했지요. 그 다음에 두 번째 솔로몬이야기 할 때, 누가 왔습니까? 누가 회개해서 찾아왔습니까? 남방여인이 왔지요. 지혜를 얻기 위해서. 세 번째는 요나 자리에 솔로몬 자리에 누가 오십니까? 예수님 오시지요. 그렇다면 예수님 때문에 회개할 자는 누구입니까? 이거는 아무도 없습니다. 왜 아무도 없느냐 하면,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모든 인간은 아담 속에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은 예수님 못 알아봐요.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다니까요. 예수님 안 믿는 걸 탓하지 마세요. 당연한 거예요. 그게 정상적이에요. 예수님 믿는 게 비정상이지.

예수님께서 여기서 비워 놓고, 비워놨으니까 이건 뭡니까? 이 자리가 비워져있으니까 예수님한테는 의중에 있지만, 사람들 보기에는 예수님 믿고 회개할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잖아요. 없으니까 뭐냐 하면, 바로 없는데서 유를 창조하는 겁니다.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가 있잖아요. 아브라함과 사라 두 사람이 있을 때, 자식 없었지요. 없는 거예요. 이스마엘 있지만 그건 남으로 치고. 어떻든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이 없지요. 자식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사라의 태까지 죽여 버렸잖아요. 단순히 없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죽어서 더 이상 자식은 생기지 않는다가 완전히 단정 되었어요. 확정되었어요.

오늘 아침 뉴스에 보니까 57세 먹은 아주머니께서 쌍둥이를 낳았어요. 57세에 쌍둥이 낳았으니까 당신도 가망성이. 이렇게 하니까 아내가 하는 말이 누가 키우려고? 대번에 누가 키우려고? 굉장히 실용적이지요. 그 나이에 아 낳으면 누가 키운다고? 이렇게 애 낳을 능력이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믿을 만한 능력이 있으면 안 돼요. 우리는 신앙인이 아닙니다. 적어도 예수님 믿었으면 저한테는 주여, 그런 능력 없었습니다. 하는 고백이 나와야 돼요. 상에다가 숟가락 얹으면 안 됩니다. 상에 내 숟가락 내 재주로 얹으면 안 돼요. 그거 얹은 거 다 비워 내야 돼요. 전부 다. 교회에 뭐 했습니다. 이것 했습니다. 저것 했습니다. 다 걷어 내야 돼요.

미래에서 상을 차릴 때는 단 하나 십자가밖에 없어요. 어린양의 피로서 흰옷 입은 사람, 그것만 우리에게 상 차려서 오기 때문에 내거 찾으려 해도 흔적도 없어요. 그래서 없는데서 있게 하고, 죽은데서 살리는 것을 약속만 있음으로서 된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이 아브라함 이삭의 믿음입니다.

요 약속을 로마서 4장에서는 뭐냐,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죄인 때문에 내가 죽어야 했고 너희의 의를 인하여 내가 살아나야 한다. 로마서 4장 25절. 아까 사도행전 17장에서 전했던 복음, 오늘날 교회에서 외칠 것은 그 외에 무엇이 또 있겠습니까? 뭐가 있어요? 교육관 짓고, 선교하고, 왜 그 따위 소리를 합니까? 이렇게 하면 복 받고, 왜 그 따위 소리를 해요? 왜 사람을 좋게 하려고 합니까? 왜 사람의 공통점을 찾으려 해요?

믿음이라는 것은 성령의 선물로 오는 것이지 사람의 공통점을 발췌하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이런 것이 나온다고 믿음을 조작하기 위해서 뜨겁게, 뜨겁게 박수치고 해서 자꾸 끄집어내려고 하면 안 돼요. 반복적인 학습이 되면 마치 고상한 것이 나오는 것처럼 온 몸으로 느낄 수는 있어요. 믿습니다, 믿씁니다, 믿씁니다, 하면 믿어지는 거 같아요. 그건 자기 최면입니다.

최면술에 걸리면 환상도 보고, 꿈도 꾸고, 예수님 180Cm의 키도 나오고, 인물도 나오고, 잘생기고, 수염달리고, 보일 거예요. 그건 지 모습이에요. 지가 상상한 지 모습이에요. 지한테 빗 받으러온 빗쟁이 모습이에요. 지가 경험한 게 기억 속에 있거든요. 기억의 창고에서 누가 끄집어내서 조립한 모습이 그 모습이라니까요. 그런 거 안 볼 수는 없어요. 나오는 걸 어이합니까? 나오는 걸 안 본다고 할 수도 없고, 봤더라도 구원은 없는데서 나오는 힘이 나를 구원하지, 내가 본데서 내가 나를 구원하는 힘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본 것을 증거 하지 않는다 했잖아요. 사도 바울이.

문제 내겠습니다. 요나에서 니느웨고, 솔로몬에서 남방여인이고, 그 다음에 예수님에게서 새로운 구원 받을 사람이 나오는데요, 이것은 누구 솜씨냐 하면 예수님의 솜씨, 작품이기 때문에 인간이 여기에 들어갈 수 없지요. 누굴 만들던지 주님의 마음대로 뜻대로 하는 거니까.

문제는 바로 요나와 니느웨의 관계, 솔로몬과 남방여인과의 관계, 예수님과 이들의 관계, 이 관계의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공통점이 뭐냐 하면, 39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이리 되어 있지요. 요 공통점은 뭐냐 하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과 기적을 원하지요. 그러니까 제가 단독적으로 결론부터 이야기할게요. 요나와 니느웨 사이, 솔로몬과 남방여인 사이, 예수님과 이들의 사이는 기적같이 않는 기적이지요. 우리가 기대하고 원하는 기적 있잖아요. 전혀 기적의 항목에 들어있지 않는 기적, 기적 같지도 않는 기적, 노래에도 사랑 같지도 않은 사랑 있어요.

“바보야, 그걸 다 믿게.” 하는 거. “니, 저걸 믿다가는 거지 꼴 난다.” 하는 거. “나한테 이득도 없고 이익도 없는데 그걸 왜 믿어?” 라는 그 거. 내가 은근히 노리고 희망했고, 소망했고, 기대했고, 내가 이렇게 됐으면 좋다하는 것을 다 비켜가요. 비켜가면서 나를 죄인 되게 하는 그런 기적들. 왜냐 하면, 악하고 음란한 세대 “내가 바로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구성원이었습니다.” 하고 고백할 만한 그 요소가 예수님이 자기 백성 만들 그 관계에 동원되는 능력입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나로 하여금 더 살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더 살아봐야 나만 챙기고 내가 숟가락 젓가락 상에 얹을 그런 행동밖에 안 나오는 그런 철딱서니 없는 죄인입니다. 뜻이 있거든 오늘 데려가도 감지덕지하겠습니다.” 하는 마음.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주여, 한 번 물어보겠는데요. 오늘밤에 제가 죽으면 어디 갑니까? 이런 거요. 그러니까 예수님 뭐라 했습니까? ”니가 나와함께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 강도가 예수님한테 그런 질문했다는 게 중요한 거예요. 옆에 있는 강도는 물을 생각도 안했어요. ”아이고, 같이 물에 빠져가면서 아이고, 바보야 지금 누구보고 묻는 거야? 지금 로마군정에게 사정해야 살려주지?“ 같이 죽는 사형수 입장에서 누구한테 묻느냐 말이지요. 같은 감옥 동기보고 ”니 나중에 출세하거든 나도 생각해줘라“ 이거는 말이 안 되지요.

믿음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인력으로 믿지 못하는 모습으로 주께서 우리에게 다가와서 “니가 나를 믿느냐?” 하는 겁니다. 그럴 때 믿어야 이것은 선물이지 행함의 항목 중에 하나 들어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인간의 항목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믿음도 있고, 절제도 있고, 온유도 있고, 도덕도 있고, 착함도 있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있고, 측은지심도 있고, 예의 지키는 마음도 있고, 시비를 따지는 마음도 있고, 논어에 보면 나오잖아요. 사단칠정(四端七情)이라고 나온다고요. 인간이 누구나 보편적인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끄집어내면 이게 보편적인 교육으로서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항상 인간에 있는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보편적인 선한 씨앗이 있다는 거예요. 그 씨앗을 뽑아내자는 겁니다. 최초로 이야기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끄집어낸 것이 ‘덕’인데 국가가 덕에 의한 통치를 위해서 국가는 교육에 나설 필요가 있고, 그것은 바로 인간 속에 있는 덕이다. 이 덕은 이번 수련회에서 했지요. 로고스지요. 신의 지혜, 신의 이성, 하나님의 형상이라 해요. 오늘날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그 형상을 거룩과 그 착함을 끄집어내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령 받은 증거입니다. 라고 이야기해주니까 사람들은 그걸 자기 절제에 나서서 그걸 끄집어내기 바쁜 거예요. 그것은 이미 내 속에 내장되어 있는 거잖아요.

그러나 정작 들어 있는 주님께서 주신 믿음이라 하는 것은 나를 바로 쪼다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어느 정도로? “지금 죽어도 너는 나한테 군소리 하지 마! 지금 암 말기 환자가 돼도 지금 군소리하면 안 돼!” “당연하지요.” 라는 것이 있어야 돼요. 당연한 것이. “니 지금 집에 불이 나고 집이 몽땅 망하고 이혼 당해도 그렇게 해도 니 나한테 대들 거야, 안대들 거야?” “뭐 그러라구요. 그렇게 하세요.” 이거 성령 안 받으면 이런 거 안 생깁니다. 성령 안 받으면 지가 상차리기 바빠 가지고 자꾸 지 멋있게 상차리기 바쁩니다.

그 다음 43절입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참, 성경에서 제일 무서운 말인데요, 그 대목에 우리가 지금 도달했습니다. 겁내지 말고 그 계곡을 넘어가 볼까요? 제가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라고 했지요. 무섭지 않습니까?

왜 무서우냐 하면, 사람이 어떤 것이 무서우냐 하면, 선풍기가 칼날이 무섭다 하지만, 내가 손으로 이렇게 끄면 스텁 되잖아요. 내가 다룰 수 있으면 무섭지 않습니다. 평소에 남편은 안 무서운데, 남편이 술 처먹고 들어올 때 무서워요. 내가 다룰 수가 없어요. 길에 가다가 평범한 남자 같으면 같이 하자 하면 괜찮은데 술 먹고 밤늦게 돌아다니는 이것은 무슨 짓을 할 지 몰라요. 내 수하에서 조정이 안 될 때, 무서운 겁니다.

예수님께서 뭐냐 하면, 지금 이 말씀에서 보면 모든 이는 내 행함에 허락을 맡아야 돼요. 누가 오든 누가 들어가든 나한테 허락을 받을 때, 우리는 가장 인격적이고 인간다움 같은 거예요. 왜, 우리는 그 때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에.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술을 끊을 수 있었는데 담배 끊을 수 있었는데 아직도 못 끊었으니 잘못 했습니다." 이 말은 뭐냐, 술 끊고 담배 끊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전제되어 있거든요. "주님이여, 술을 못 끊고 담배 못 끊는 것에 너무 탓하지 마세요. 저는 그만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인간이고 제가 한 인격자지요." 라고 버틸 수 있는데, 지금 주님은 누굴 보고 나무랍니까? 우리보고 나무라는 게 아니에요. 말씀을 잘 보세요. 지금 누구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고 상황을 이야기 합니다.

지금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어떤 상황인가 하면, 귀신한테 완전히 노출된 상황이라는 겁니다. 누가 들어갔는지, 누가 나갔는지, 바보같이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입 속에 누가 들어갔는지, 7 귀신이 들어갔는지, 기어 나왔는지, 어쨌든 모르고 살아가는 거예요. 그게 이 세상 악한 세대에요.

제가 가락교회 때, 거기에 노래 가사를 하나 적었습니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 퍼져가지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하는 거, 김 종환이 불렀던 존재의 이유인데, 2절에 보면 나는 저녁 늦게 잠이 들었지, 늘 생각할 시간도 없이 그리고 그 중간을 빼고 그 다음 뭐냐, ‘나 왜 이렇게 사는 거야?’ 대한민국을 표현한 말 중에 이만한 말 중 더 적절한 표현이 없다고 봅니다. 김 종환의 테이프 엄청나게 팔렸어요. 남자들이 울면서 들었습니다.

이 가사 '나 왜 이렇게 사는 거야?' 오늘날 20대 후반부터 30대 말까지 인간치고 이거 안 느낀 인간 어디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40대 넘어가는 사람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사업장가서 술 퍼먹고 와서 엎어졌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 간다고 기어 올라가고. 끄뻑 끄뻑 졸면서 회사 일하고 버스타고 집에 가서 또 퍼지고. 집에 가면 바가지 긁고. 그 때 느끼는 건 뭡니까? 남자는 뭡니까? 나 왜 이렇게 거야. 나, 왜 사는 게 이것 밖에 안 돼? 왜 나는 낭만도, 꿈도 꿀 기회를 안 주는 거야? 이 말 아닙니까? 나는 왜 이 직장에 사표를 못 내는 거야? 이거 때려 치워 버리고 춘천 닭갈비 가게를 왜 못 꾸리는 거야? 나는 왜 직장 사표를 못 내는 거야, 왜 이렇게 사는 거야? 상사한테 완전히 당하고. 나 왜 이렇게 사는 거야? 매일 실적 채워라, 특히 은행직원들 보면 만날 실적 채워야 되고, 만날 누구 찾아가 누구는 몇 억했고, 니는 몇 억 했는고, 만날 채워야 돼요. 지점장이라고 편한 것도 아니고. 모든 게 영업이에요. 모든 게.

지금 우리교회에 새로 온 청년이 있는데, 지금 사표를 낼까 말까하고 있어요. 영업직을 시켜 놨는데 홈플러스에서 영업직을 맡기면서 올해까지 몇 억을 하라는 거예요. 지금 미치겠는 거예요. 자기는 지금 한 달에 30만원 했는데 그거 안 돼요. 환장하겠어요. 그럴 때, 공무원이 최고야. 아들이 애 먹이든 말든. 공무원이 최고야. 모든 게 경쟁이고 모든 게 영업이잖아요. 모든 게 영업되면 없던 제품도 만들어내요. 경쟁이에요. 경쟁.

나 왜 이렇게 사는 거야, 이 말은 뭐냐 하면 7귀신, 8귀신 들어와도 지가 지금 완전히 귀신에 노출됐어요. 완전히 무덤가에서 방황하는 귀신들린 귀신 만 마리 들어있는 청년하고 똑같은 거예요. 결국 그 귀신이 노린 것은 사람을 죽이는 거예요. 그러다가 죽어요. 심지어 놀라운 것은 죽어가면서 이 이야기해요. 방금 내일 모레 죽어가면서 뭐라 하느냐 하면, 나 왜 이렇게 사는 거야, 방금 죽는데 나, 왜 이렇게 죽는 거야가 아니라 기어이 자기는 죽을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이 말은 뭐냐, 남은 죽어도 나는 기어이 안 죽고 버텨야 된다는 거예요.

버텨야 되는데, 왜 이리 힘들게 버틸 수밖에 없는 힘들어야 버티는 식이 되느냐, 내 인생 이 모양 이 꼴이냐, 이 말이거든요. 그런데 사람은 사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방향이 잘못됐어요. 지금 오라이~ 오라이~ 사람을 비탈길로 지금 차를 몰고 있는데 지는 자꾸 오르막길로 올라간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모든 인간은 균등해요. 평등합니다. 죄라는 점에서 죽는다는 점에서 다 골고루 평등합니다. 고스톱해서 몇 푼 따나, 일하나 다 죽어요. 돈 따고 어~ 하고 죽을 수가 있어요. 돈 따다가.

그래서 가사를 바꿔야 합니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살아있어서 사는 게 아니고 사람 몸 자체가 죽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골적으로 말해서 귀신이 어떤 활동을 적그리스도로 예수님을 반대해서 귀신이 늙어서 어떤 식으로 적그리스도적인 활동을 벌이는가 보여주는 도구로 사용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은 아담에서 살아나는 겁니다. 우리의 몸이.

그래서 우리의 몸은 뭐냐 다시 죽는 정도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십자가 복음을 반대하는 요소가 펄펄 살아서 냄새를 피우면서 나오는 겁니다. 이게 고생한다고 줄어드는 게 아니에요. 고생과 고난이 많을수록 점점 악만 남았어요. “이제 니 예수만나면 죽여 버릴 거야.” “누구야? 하나님, 하나님 나와! 나 이렇게 힘들게 하는 하나님 나와! 죽여 버린다!”이걸 누가 이야기했느냐 하면 바로 욥이 이야기했어요. 여기서 마지막 중요한 대목 들어갑니다.

욥이 “하나님, 나를 태어나게 말 것이지 저는 제 생일을 저주합니다. 왜 괜히 태어나게 해서 이런 고생을 시킵니까? 차라리 내가 엄마 모태에서 태어나지 말아서 밖에 나가지 말고 그 안에서 자체적으로 사산됐으면 나 이런 고생을 안보지요.“라고 했을 때, 욥이 무엇을 몰랐는가 하면, 이걸 몰랐어요. 환경을 모른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할 때, 욥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환경을 구원하는 거예요. 욥은 새로운 환경을 보여주기 위한 미끼였고 하나의 씨앗이었던 거예요. 발아된 하나의 씨앗이었던 거예요. 제가 아까 묵시와 역사를 말할 때, 웅덩이가 움퍽 파인다고 했지요. 그 웅덩이에서 씨앗하나 떨어진 겁니다.

처음에는 그 씨앗이 예수님의 십자가지요. 예수님의 씨앗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는 지체는 그리스도 몸과 함께 죽음을 이기고 온갖 것을 이기고 지옥을 이기고 구원의 나라로 간 겁니다. 그 씨앗의 역할을 하는 것이 뭐냐,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말씀이에요.

이 말씀이 떨어지게 되면,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나는 지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30대 후반이다. 지금 계장인데 회사에서 압력을 가한다. 실적을 올리라고 한다. 화가 나서 일주일에 2번씩 퍼마셨다.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서너시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거야?” 라고 그럴 때, 옛날에 봤던 마태복음 12장 43절, 44절, 45절을 봤다 칩시다. 읽어보니까 지금 내 안에 7귀신이 들어 있는 거예요. “그래, 이걸 왜 몰랐을까?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 다녔는데. 그 때 분명히 이걸 읽었을 건데. 왜 몰랐을까?” 이게 뭡니까? 말씀의 환경이 계장될 때, 그 때 덮친 거예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들어 할 때, 왜 나는 이렇게 사는 거야, 술 마시고 퍼져 있을 때, 그 때 타이밍 맞춰서 이 본문 말씀을 딱 주니까 이 본문 말씀은 누구를 위한 말씀입니까? 바로 나를 위한 본문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내가 이 말씀을 지키는 게 아니고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옛날에 몇 년도에 이 땅에 태어나서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거야, 탄식하게 하면서 김 종환의 존재이유를 불러 가면서 지금까지 온 거예요. 말씀을 싣는 하나의 움직이는 1톤 트럭의 역할입니다. 로켓 올릴 때, 틀리 역할 한 거예요. 말씀을 싣고 발사되어 올라갈 때까지 우리는 천천히 말씀이 우리를 끌고 가는 거예요. 끌고 가는 말씀 중에 하나가 뭐냐, 7귀신 들은 8귀신 들은 것이 쫙~ 가는 거예요.

이 모든 말씀이 저것은 남이 들을 일이고, 이것은 이단들에 대한 것이고, 한국 목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부 다 내 이야기로 들려오는 거예요. “이 이야기는 나한테는 필요 없어, 저 쪽이 들어야 돼!” 라고 하는 것은 아직까지 그런 환경이 안 덮쳐서 그래요. 디모데전서에 보면 먹는 것 입는 것으로 족한 줄로 알라, 할 때는 진짜 먹을 게 없었는데 갑자기 보너스 받을 때, 셋방살이 하면서 쌀까지 떨어졌는데 갑자기 누가 갔다 줬을 때, 아, 주여 먹는 것 입는 것 족한 줄로 알라가 되지만, 나중에 그 사람이 성공해서 샐러리맨의 성공신화에 나와서 설명할 때, 초심을 잃지 말라하며 손바닥에 쓸 수도 있잖아요. 먹는 것 입는 것으로 족한 줄로 알라, “주여, 나 재벌이 되더라도 족한 줄로 알겠습니다.” 그 때 다짐한 것은 소용없어요. 그거 얼마 안갑니다.

그 때 그 상황에서는 말씀만 드러났는데, 잘 되고 난 뒤에는 환경자체가 이미 혼자서도 잘해요. 그런 상황이거든요. 혼자 있어도 주님한테 악바리로 기도 안 해도 내 힘으로 버틸 수가 있어요. 상황이기 때문에, 그 때는 디모데전서에 그런 게 있었나? 아무 감동이 없어요. 갑자기 폭삭 망해 버리니까 먹는 것 입는 것 족한 줄 알라, “아, 그 말씀이구나!”라고 하다가 갑자가 누가 200억을 대줘서 또 재벌 되고 난 뒤에 또 폭삭 망하고, 그러니 인간은 매일같이 말씀의 상을 새롭게, 새롭게 차려줘야 돼요. 계속해서.

지금 목사들의 문제가 뭐냐 하면, 목사들이 교회란 상을 차리는 게 문제예요. 그걸 버려야 되는데. 그냥 용서받은 사람으로 족해야 하는데, 내 교회에 몇 명 있다, 헌금 얼마 나온다, 내 교회에 있다, 나 무시하지 말라 나 어느 교회 목사야! 이거 있잖아요.

평소에 집사님 그림 그리더니 갑자기 “나, 학원 차렸다!” “나, 원장이다!” 그러니 귀신이 7까지는 아니고 3귀신이 들어왔어요. 나중에 학원생이 100명 들어왔다. 그 다음에는 8귀신 들어와요. 이제는 예수님 다 알고, 십자가 다 아는데. 이제는 즐겁게 살지 뭐~

그러니까 제가 강의하는 주제가 뭐냐 하면, 우리는 자꾸만 십자가에서 멀어지는 상상만 해요. 7귀신이 그냥 귀신이 아니고 예수님 십자가 보지 말라고, 떨어지라고 만날 떨어지는 삶을 살게 해요. 7귀신이. 7귀신 들어있는 우리를 성령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한 능력이기 때문에 7귀신 만개해서 다시 오라고 오라이 할 수 있어요.

1000귀신이 있어도 성령이 와 버리면 나가이, 다 내 보내고 다시 십자가로 잡아당기고, 당기면 우리는 또 구원 받았다고 까불다가 2귀신이 들어가서 또 밀리고, 우리는 그저 도구라. 밀었다가 당겼다가, 밀었다가 당겼다가, 십자가가 크게 보이다가 작게 보이다가, 크게 보이다가 작게 보이다가, 목사가 교회 신경 쓰면 십자가 날아가 버립니다. 십자가 없습니다. 교회가 더 중요해요. 그래서 설교하는 거 보면 십자가만 섞어내요. 지 복음 안다고. 끝에 보면 돈 내라 나오고 교회를 여러분이 왜 소홀히 합니까? 여러분이 소홀히 해서 교회가 전에 보다 숫자가 적고, 교회 이야기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미 그 목사는 십자가에서 멀어진 거예요. 눈을 돌려버렸다 이 말이에요.

십자가로 가까이, 찬송가 있잖아요. 있으면 뭐합니까? 처음에 부를 때는 눈물 흘리면서 부르다가 나중에는 눈물도 안 나와요. 이게 인간이 계속 자기가 상을 차리기 때문에 그래요. 과거에 알고 있었던 것 가지고 자꾸 상 차리고 지가 꾸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추석 때니까 마지막 추석 상하고 마치겠습니다.

우리 할머니 같은 경우에 교회를 안 다니시니까 추석 상을 차리는데, 지금 같아서는 지혜로워요. 문어는 비싸기 때문에 작년의 문어를 다락방에 딱 보관합니다. 문어가 바짝 마르기 때문에 장기간 보관해도 괜찮아요. 그걸 다시 요번 추석에 또 올려놔요. 귀신을 안 믿거든요. 귀신을 안 믿는 거예요. 문어가 비싸니까 계속 하긴 하는데, 귀신 없는 거예요. 귀신이 없는데 왜 추석 상을 차리느냐, 내가 이 집에 좋은 며느리라는 자기상을 차리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추석 명절 되게 되면, 누구 욕하고 남편 욕하지만, 그런 만남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 잘남을 이 안에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다 같이 음란한 세대에서 자기만 혼자 천사처럼 되려는 그러한 멋있는 존재가 되려고 하는 그 욕구, 그것이 바로 7귀신까지는 아니지만 귀신이 1마리 반쯤 들어와요. 그런 게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께서 의도적으로 다시 우리를 보내서 그런 불신세계에 보내 가지고 이미 그것마저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아시고 어떤 환난이나 핍박이나 어떤 게 있더라도 그 주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추석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우리 힘으로 못 사는 것을 뻔히 알지만, 돌아서면 또 내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고마운 것은 성령께서 늘 이렇게 십자가로 앞장세우셔서 십자가에서 멀어지지 말라고 당부해 주시니 이런 능력마저 십자가에서 온 능력인 것을 우리가 고맙게 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대전120927b-마12장41절(이중관점)32강-이 근호목사.hwp (60.0K), Dow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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