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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행 7"53-60 (스데반의 죽음)우리교회사도행전

Re..행 7:53-60 (스데반의 죽음)

이름 : 이근호(IP:)

스데반의 죽음

2004년 5월 5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7:54-60

7:54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7: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7: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상황을 보면서 스데반 집사님이 측은하게 느껴지십니까? 도리어 그러한 마음이 하나님의 일을 막게 되는 의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스데반 집사님을 통해서 일을 벌리시는 취지는, 이 세상 안에서 생명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둘로 가르는 경계선을 만들기 위한 겁니다. 즉 사람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을 둘러보면, 그 어떤 경계선도 눈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 다 한 공기를 마시고, 모두 같은 지구라는 터 안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다 한 편이라고 간주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선지자를 보내셔서 이 세상에 경계선이 나타나도록 조치해 버립니다.

죽음에 속한 세계와 생명의 속한 세계를 구분 짓게 됩니다. 따라서 스데반 집사의 죽음을 보고 측은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부러워해야 합니다. 부러워한다는 것은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성령을 받은 자라면 필히 스데반 집사님과 같은 운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어디를 가도 죽음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로 구분되는 경계선이 역할을 맡길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선 역할은 비단 스데반 집사님이 처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공생애에 나서실 때에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악마와 만나게 하셨습니다. 죽음의 세계의 대표자와 생명의 세계의 대표자가 처음으로 대면한 순간입니다.

두 개의 세계는 서로 대치하는 상황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악마에게 속한 세계의 속성은 이러합니다. 돈이 떡이 되게 하는 목적으로 움직이고, 사람들의 환영과 인기와 존경을 기대하면서 사는 세계요, 세계의 권세와 번영과 영광을 사모하는 속성을 지녔습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추구하게 되면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일을 막고 방해하는 식이 됩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님을 죽이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두 개의 세계가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는 어느 쪽도 속하지 않을 경우는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어느 한 쪽의 세계에 소속이 되기 마련입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데반 집사님과 같이 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죽음이 더 이상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세상에 속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왜 유대인들은 스데반 집사님을 죽이려고 할까요? 오늘 본문 54절에 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마음에 찔렸으면 회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왜 이를 갑니까?

여러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은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즉 어느 포도원 비유인데요, 어떤 포도원에 악한 농부들이 있었습니다. 그 농부들에게 농산물을 받아내기 위해서 포도원 주인이 종을 보내었습니다. 그랬더니만 악한 농부들이 자기에게 오는 종이란 종은 전부 다 핍박하고 죽여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주인의 아들이 오게 됩니다. 그러자 농부들은 그 아들을 공경하기는커녕 그 아들마저 죽여버립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께서 분노하여 그 농부를 진멸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주인이 보낸 종들이 결코 악한 농부들과 타협이나 하고 노닥거리기 위해서 파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악함을 지적하기 위해서 바른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악한 농부들은 마음에 찔려 이를 갈게 되겠지요.

바로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이 보낸 종 역할을 하는 자가 오늘 본문에서는 스데반 집사님이요 선지자들입니다. 흔히 이방민족들의 설화나 전설에 나오는 천사 이야기는 땅 속한 백성들이 아주 극진히 대접해 주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는 이 땅의 사람들이 극도로 미워하면서 그 사람을 핍박하게 됩니다. 52절에 봐도 그러합니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치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이처럼 선지자들은 이 죽음으로 위협받고 지배받는 이 세상에 생명의 세계를 알려주려 온 자들입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속성을 잘 말해주는 경우가 열왕기하 2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열왕기하 2:11-14에 보면,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스승 엘리야는 하늘에서 내려온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고 남겨진 제자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만 가지고서 물이 갈라지게 했습니다. 기존의 죽음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질서가 펼쳐지는 현장입니다.

이 세상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이기에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다는 것이 상식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자기 곁에 와서 생명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도 그저 위로조로 들을 공산이 큽니다. 아무리 종교가 위대해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놀랍게도 그냥 하늘에서 온 불 수레와 불 병거를 타고 홀연히 이 세계를 떠났습니다. 이것은 평소에 엘리야가 언급한 모든 이야기가 단순히 자기 견해가 아니라 정말 생명의 세계에 속해서 그 세계의 다가섬에 의해서만 들려지고 알려질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를 추종한다는 선지 생도 50명은 이러한 스승의 운명을 믿지를 않았습니다. 즉 평소에 그들이 스승에게 배운 말씀이 그저 이 세상을 위한 말씀인줄 만 알았지 참으로 죽음조차 이기는 생명의 능력이라고 믿지를 못한 겁니다.

이 점은 오늘날 소위 성경 공부나 설교를 듣는 우리들에게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어디 써먹고 보다 유식하기 위해서 성경 공부를 하기는 하지만 참으로 스데반 집사님의 경우처럼 확실한 생명의 세계에 이미 소속되어 있기에 죽음조차 편하게 받아드리고 싶은 생각과 무관할 수도 있습니다.

열왕기하 2:17-18에 보면, "무리가 저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저희가 오 십인을 보내었더니 사흘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왕하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저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시신을 이 땅에 두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엘리야가 그 전에 말한 모든 말씀은 결코 지상에서 만들어낸 내용이 아니라는 겁니다. 정말 불수레와 불말을 내려보내어서 엘리야를 거두어갔던 그 세계에서 보내준 말들을 엘리야는 자기 세상에 전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의 시대에서도 죽음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가 가름하는 경계선 역할을 엘리야 선지자가 충실히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스데반 집사님의 경우에는 하늘에서 불수레와 불말로 모셔가지를 않습니까?

그것은 스데반 집사님은 더 이상 개인적인 입장에서 죽고 사는 운명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죽음 자체를 초월하는 그 세계에 속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즉 죽음이 두려워서 벌벌 떠는 이 세계가 내세우는 최고의 무기인 죽음 앞에서도 스데반 집사님은 차라리 그 죽음 속으로 들어가게 하심으로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의 초청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끝에 보면, 스데반 집사님의 죽음을 '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의 경우처럼 '승천'이 더 신나는가 아니면 '자는 것'이 더 신나느냐 상호 우열을 비교할 문제가 아니라 둘 다 죽음과 상관없음을 그 어떤 식으로도 자신이 속한 시대의 세상에 전달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성령님은 사람을 잡습니다. 그렇게 잡아야 그 사람이 하늘에 계신 예수님과 영원히 연결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죽음이란 곧 지금도 하늘서 손꼽아 기다리시는 예수님과의 상봉의 순간입니다. 뭘 타고 올라가느냐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누군가 기다려 주는 분이 있다는 사실이 관권입니다. 우리는 스데반 집사님을 측은히 여길 것이 아니라 부러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은 우리는 이미 우리는 죽음이 있는 쪽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쪽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무엇이 실패인지 성공인지를 확실하게 정리하게 하옵소서. 세상 것 좋아해서 하나님 계신 쪽에다 돌을 던지는 일이 없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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