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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 강의(4,5)-십일조, 안식일 121004강의히브리서

유튜브 강의(4,5)-십일조, 안식일 121004

이름 : 이근호(IP:119.18.78.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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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례(IP:203.♡.41.16)

12-10-06 14:18

4강-YouTube강의(십일조에 관하여)121004-이 근호 목사

오늘은 십일조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성경에는 십일조란 말이 분명히 나옵니다. 십일조란 말이 나와서 사람들은 교회마다 교인들에게 십일조를 강요하고 또 교인들은 십일조를 해야 성숙한 신앙인, 수준 높은 신앙인, 믿음 깊은 그런 신앙인이라고 그렇게 교회에서 인정받게 되죠.

그런데 성령을 받은 신약의 사도는 이 십일조를 어떤 식으로 보았을까요? 그분들은 분명히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성경 해석에 있어서 어떤 하자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 해석에 하자가 없는 그분들이 구약의 십일조를 어떤 식으로 어디에다 넣어서 무엇을 설명하려고 했던가? 단순히 ‘십일조가 있으니까 10분의 1을 내면 그만이다.’라는 식으로 해석을 했을까요? 아니면 구약에 나오는 그 십일조가 신약의 무엇을 증거 하는데 하나의 배치되는 하나의 재료와 구조로서 거기에 들어가는가. 그걸 한번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히브리서 7장에 보면 거기에 십일조란 말이 나옵니다. 신약에 있는 이 십일조가 이 히브리서 7장에서는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나로 호라는 그 우주선을 올리는데 거기에 많은 부품들이 있습니다. 그 부품들을 아주 철없는 초등학교 애들한테 부품들을 나누어 줬을 때 그 애들은 그걸 가지고 그냥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버리겠죠.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고 편한 대로 이해하면서 ‘이게 뭘까? 그래, 우리 즐기는 대로 즐기고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하자.’ 그런 용도로 부품들이 쓰여 질 것입니다.

십일조라는 이 구약의 용어가 이처럼 성령 받지도 않고 그리고 이런 사도들이 십일조를 사용하는 그 취지에 대해서 모르게 되면 바로 철없는 어린아이 같이 십일조를 ‘십일조 내면 복 받겠지.’ 이런 식으로 쓰여 지는 겁니다.

히브리서 7장에서의 십일조는 이렇습니다. 먼저 아브라함 이전에 제일 먼저 십일조를 드린 분이 있는데 아브라함입니다. 그리고 그 십일조를 받으신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멜기세덱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십일조란 그 멜기세덱과 아브라함 사이에 처음으로 성립했습니다. 그러면 멜기세덱이 어떤 분이냐, 멜기세덱은 히브리서 7장 3절에 보니까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라고 돼 있습니다.

십일조를 받으시는 분은 그 십일조를 받는 이유가 십일조를 내는 사람의 모든 운명과 팔자와 그리고 그들의 장래, 그들의 구원까지 십일조를 받으시는 분이 책임지고 있다는 그러한 약속 관계에 도입된 것이 십일조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십일조를 받으시는 분은 십일조 내는 사람에게 이미 영생을 주었기 때문에 ‘이미 받은 영생을 주신 분은 바로 이분입니다.’라고 영생 주신 그분을 소개하면서 내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아브라함 때에는 바로 멜기세덱이라는 분이 십일조를 그때 받았는데 이분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히브리서 7장 뒤에 보면 아주 복잡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복잡한 내용을 간단히 추리면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이 받은 것은 그 뒤에 아브라함 자손들 가운데 레위 인이 있습니다. 그 레위 인이 십일조를 받거나 내는 것은 단순히 레위 인들이 십일조를 받아서 생업에 보태 쓰라는 것이 아니고 그 레위 족속은 이미 죽었던 아브라함 족속의 허리에 이미 거기에 약속대로 묶여져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허리에 묶여져 있다는 말은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낼 때 이미 그 허리에 있는 레위 족속이 받고 또는 레위 족속이 내는 십일조는 어디와 연결되게 돼 있느냐 하면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냈던 그 멜기세덱의 세계, 그 영역과 연결돼 있습니다. 연결됐다는 그것이 십일조라는 것을 가지고 이렇게 표현해 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일반 사람들이 레위 인에게 십일조를 내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레위 인에게 십일조를 내고 레위 인은 그 안에 있는 아브라함의 약속 때문에 받고 그 아브라함의 약속이 멜기세덱에게 바친 그 십일조의 정신이 그대로 연결되어서 일반인과 옛날 적 사람 멜기세덱의 위치와 이렇게 엮여져 있습니다.

자, 십일조를 이렇게 지상에서 하늘까지 연결시키는 사다리처럼 그렇게 연결됐다는 이 말은 이 십일조라는 율법을 레위 인들이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고 온전히 받고 그렇게 했더라면, 구태여 다윗언약에 속한 다윗의 자손이 오실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성령 받은 사도가 히브리서 7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의 10분의 1을 내는 것이 뭐가 그렇게 어렵냐 하지만 하나님께서 레위 인들이 하는 십일조 주고받고 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치 않은 십일조의 취지를 보여주는 거라고 보는 거예요. 레위 인들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더라면 절대로 그 메시야는 레위 지파를 통해서 오게 돼 있는데 여기 히브리서 7장 11절부터 그 뒤에 나오는 말씀은 율법이 반드시 변경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유다로부터 좇아나신 분이 레위 지파가 하지 못한 제사장 직을 대신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유다 지파로 오신 분이 누구냐, 그분이 바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말을 쉽게 간추려 드리면 사람이 제대로 율법을 못 지킨 것을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제대로 십일조라는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도 모르고 그냥 하는 그 모든 불완전한 그 완성을 예수님께서 대신 치러서 이 지상에 있는 죄인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엮여서 천국 백성 천국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십일조는 어디로 가버렸죠? 바로 십일조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릴 때에 모든 것을 다 이루신 겁니다. 십일조라는 그 율법마저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릴 때 이미 십일조로 받아서 영광 받고 기쁨 받겠다는 그 하나님의 취지가 예수님께서 대신해서 십자가에 피 흘릴 때 이미 십일조를 받아야 느껴지는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이미 다 받은 셈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 자신이 십일조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 자신이 십일조가 되어서 그 십일조를 제대로 받았다는 그 증거가 예수님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한 데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말합니다.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 복음이라고. 이게 기쁜 소식이라 이 말이죠.

만약에 십일조를 못해서 구원이 될지 안 될지 모른다면 그건 절대로 기쁜 소식이 아니고 완료된 소식이 아니고 불완전한 소식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 믿으면 십일조 하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면 이건 저주가 항상 옆에 찾아온다는 뜻이 돼요. 그리고 그것이 못 마땅해서 그것을 불안해서 ‘수입의 십일조를 교회에 내자.‘ 이렇게 돼 버리면 무엇을 모독하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완성하신 것에 대해서 ’난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행동적인 선언이 되는 겁니다.

나는 예수님이 피 흘림으로 말미암아 옛날에 구약 말라기에서 말하는 십일조를 받아내는 모든 법을 이제는 예수님의 피로써 모든 걸 받아낸다는 그 사실을 나는 도저히 못 믿겠으니까 따로 내 개인적인 복을 얻기 위해서 예수도 믿지만 십일조도 교회 갖다 바치겠다.‘ 그런 식으로 나온 겁니다. 그러면 교회 내는 십일조는 누구한테 내야 됩니까? 교회가 십일조를 새삼스럽게 받는 하나님과 관련돼 있습니까? 이미 하늘의 하나님의 주님의 자리는 이미 예수님이 거기에 가 계십니다.

이미 가 계신 예수님에게 십일조를 드리면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이걸 왜 바치느냐? 내가 십일조를 대신해서 다 완성한 십자가 피가 그렇게 니가 못 믿어지고 못 마땅하더냐?’라고 오히려 추궁을 당하고 꾸중 당할 게 뻔한 겁니다.

따라서 신약 시대에는 십일조라 하는 것은 내서 복 받는데 소용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서 구약의 십일조의 용어가 거기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도는 예수님의 십일조 되심에서 그냥 공짜로 얻어 받은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한례(IP:203.♡.41.16)

12-10-06 17:17

5강-YouTube강의(안식일에 관하여)121004-이 근호 목사

이번에는 안식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족하셔서 제 7일 날 쉬셨습니다. 이 안식일은 무엇과 관련돼 있느냐 하면 이게 천국과 관련돼 있습니다. 천국이란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 지상에서는 안식일이 있지만 일곱 번째 마다 돌아오는 날이 있지만 천국에는 그런 시간의 흐름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안식일은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면 천국 자체가 안식의 상태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이 지상에 안식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특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약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 것은 천국이 오는 것을 그들을 통해서 미리 어떤 천국의 내용이 천국 안에 있는 어떤 움직임이라든지 천국의 본질에 대해서 안식이라는 특정시간의 일부 시간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그들에게는 안식일을 지키라 했습니다.

날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날에 그들이 어떤 내용을 하면서 그날을 보냈느냐가 대단히 중요하죠. 그래서 안식일에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것을 생각해서 안식일이라 하라 했는지 3가지로 보셨습니다.

첫 번째는 아까 말씀한 창세기 2장초에는 천지 만물을 창조했기 때문에 안식하라고 했습니다. 자, 여기서 천지 창조를 완성했다. 만족스럽다. 하나님이 기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안식하셨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 입장에서는 만족스럽다는 걸 표현한 날이 안식일입니다.

두 번째는 바로 출애굽기 20장 8절에 십계명 주실 때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중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은 안식일이라 하는 것은 다른 6일과 대비 시키는 겁니다. 1 2 3 4 5 6은 인간이 노동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노동하는 세상의 이방민족에서는 1 2 3 4 5 6뿐만 아니라 1 2 3 4 5 6 7까지 노동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방인과는 달리 천국 백성은 1 2 3 4 5 6도 보여주고 그리고 이상스럽게 그날은 아무 노동도 하지 말아야 될 그러한 특이한 요소가 거기에 개입됩니다.

그렇다면 1 2 3 4 5 6을 생각해야 될까요? 아니면 노동을 하지 않는 7일을 위한 나라인가를 생각해야 될까요? 다른 민족들은 그냥 자기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만 그냥 늘 노동할 뿐입니다. 심지어 그것이 쉰다 할지라도 그 다음에 일 할 날을 대비해서 쉬는 겁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나라는 다른 이방민족과 달라서 1 2 3 4 5 6에 노동하는 것은 노동이 없는 세계에 속하는 백성인 걸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은 힘써 노동한 겁니다.

노동을 했다는 것은 노동한 본인들의 주체, 본인들의 그 어떤 성과를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복이란 걸 얻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제 7일에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 그 복의 유무에 따라서 축복이 되는 겁니다. 만약에 아무리 노동을 열심히 했더라도 제 7일에 돌아오는 그날에 노동해 버리면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오게 돼 있습니다.

따라서 특히 이스라엘 같은 천국의 백성 같은 사람들이 보여주고 그들의 생존 여부는 제 7일에 하나님이 친히 창조했다는 것, 그 사실을 인정 하냐. 안 하냐 여부에 달린 겁니다. 이건 6일 동안의 노동에 준해서 자기 생존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제 7일에 그날을 기념하고 제사하는 그날이 바로 하나님께 모든 것이 하나님이 친히 만족해서 만들어서 우리가 구원받고 백성 되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이렇게 6일 동안 사는 것도 이건 우리 노력이 아니고 제 7일에 복 주셔서 나온 결과물입니다.‘라는 고백을 제 7일 날 쉬면서 제사하면서 그걸 표현해 주는 겁니다. 그럴 때 그 7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해서 서로 소통하고 통할 수 있는 민족이 되겠죠.

그런데 그것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신명기 5장에 보면 그 내용이 점점 더 발전적으로 변화 됩니다. 신명기 5장 15절에 보면 안식일의 내용이 다음과 같이 바뀝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여기에 안식일을 지키라 한 이유가 출애굽기 20장에서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만족했으니까 너도 너 현장에 대해서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 여기고 만족하라. 그래서 노동하지 마라.’라고 돼 있지만 신명기에 보면 내용이 추가가 됩니다. 어떻게 추가가 되느냐 하면 “너를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내가 강한 팔로 건져 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위하여 안식하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제사 내용이 바뀌느냐 하면 단순히 존재한다는 것, 여기 있다는 게 은혜다. 라는 것에 머무는 게 아니라 세상을 애굽으로 보는 그 안목이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과 같이 안목을 갖추어야 된다는 거죠. ‘여기 있음에 여기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가 아니라 우리는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그 나왔던 그 자리가 애굽이라고 이스라엘 백성은 놓쳤는데 그 애굽의 존재를 늘 의식하면서, 두 번째 그 애굽에서 우리 힘으로 못 빠져나왔는데 하나님께서 강한 팔로 거기서 빼내줬다는 그 내용이 여기 안식일에 안식해야 될 이유로 여기에 첨부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단순히 여기 가만있다가 천국 가는 백성이다. 라고 하는 그 정도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내는 그 안식일은 그 주변나라로부터 이 세상은 애굽에 불과하고 멸망당할 세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거 하는 사명을 되새기는 날로서 안식일의 내용이 부여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애굽에서 구원된 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안식일 날이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면 이스라엘은 그때부터 새로운 사명을 띠는데 움직이는 안식일이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 가는 곳마다 그들은 구원받지 못할 나라와 구원받는 이스라엘과 이렇게 구분되고 분간되고 그 차이성을 외부에 알려주는 그런 사명과 역할을 하면서 이스라엘은 움직이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마태복음 12장, 거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란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완성이 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란 말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하나님께서의 지상에서의 안식일은 하늘나라 자체가 안식의 나라고 완성의 나라입니다. 이건 히브리서 4장에 보면 그렇게 나옵니다. 히브리서 4장에 나오듯이 천국 자체가 안식의 나라입니다.

그러면 이 안식의 나라가 우리가 그냥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식의 나라가 친히 인간 속에 들어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주무시면서 일하시면 동거하시면서 지상을 친히 걸어 다니면서 움직였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럴 경우에 이미 완성되신 안식일의 주인이 왔으면 우리는 그분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믿는 것이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쉬면서 지키는 것을 이미 대체해서 완료시키는 기능이 되는 겁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제자들이 밀밭을 지나가면서 이삭을 뜯어먹었을 때에 바리새인들은 보고 ‘저들은 안식일을 어긴다.’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런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 그런 이유가 합당하냐 하면 안식일의 주인이 이 지상을 찾아오지 않았던지 찾아오더라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지 않을 경우는 그들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킴으로서 오실 안식일의 주인을 대비하자.‘ 이렇게 되는데.

안식일의 완성은 우리가 안식일을 지켜서 예수를 믿어내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안식일 주인으로서 자비를 베푸는 겁니다. 자비를 베푼다는 것은 자비를 베풀 대상이 전혀 자비 받을 가치도 없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가치도 없는 철저한 죄인이 돼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그들이 아무리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한다 할지라도 주님보시기에는 그냥 죄인일 뿐 이예요. 주님의 자비가 동원되지 아니하면 절대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없는 그런 대상으로서 주님께서는 그런 안목으로 세상을 봅니다. 이것이 신명기에서 이야기하는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끄집어낼 때 자기 백성이 아무리 노력해도 애굽에서 빠져나올 수 없던 환경을 만들어 놓으시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로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서 그런 ‘어린양 중심으로 안식일을 지키라.‘라는 내용이 첨부됐다고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그 내용의 완성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서 그게 다 이뤄진 겁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 됨을 믿으면 되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안식일의 주인이 되느냐, 그 근거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모든 율법을, 안식일이고 십일조고 다 이뤘기 때문에 ‘이미 다 이루어졌습니다.’라는 것을 주님의 공로로 받아들이면 이미 그 사람은 예수님과 그 사람 사이에 천국국민과 천국 백성 사이로서 천국을 이루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일의 취지입니다.

따라서 특정 날을 이렇게 구분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인격적으로 안식일을 거저 주었다는 사실을, 그런 자비가 왔다는 사실을 모독하고 그 자비대신 자기의 선함과 의로움으로 안식일을 지켜보겠다고 하는 그것은 사적으로 복을 얻어내겠다는 이방종교의 연속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미 안식은 이뤄졌고 그것이 예수님 십자가에서 완성된 걸 믿는 그 사람은 안식 나라의 백성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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