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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9강-미4장6-8(남은 백성)120923-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미가

09강-미4장6-8(남은 백성)120923-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1.16)

09강-미4장6-8(남은 백성)120923-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미가서 4장 6절에서 8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1294페이지입니다.

미가 4:6-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면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 하셨나니 너 양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하나님께서 쫓겨나게도 하시고 다시 주워 모으기도 하시고 모든 게 하나님 자기 마음대로죠. 우리 사람들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원대로 그냥 마음대로 밀고 당기고 밀고 당기고, 또 우리 인간은 꼭두각시 인형 같은 그런 느낌을 부여받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침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자신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천지를 만드신 하늘과 땅, 땅과 하늘, 이 모든 것이 우리 예수님을 위하여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예수님과 연계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그중에 일부로 사용하시는 거예요.

가락교회 나오시는 김 권사님이 계시는데 그분이 자기의 가정사를 이야기했어요. 제가 ‘그거 참 좋은 예화인데 설교 시간에 써먹어야 되겠습니다.’ 라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기억에 담아왔는데 그게 뭐냐 하면 딸은 결혼했고 딸하고 사위하고 아이, 그리고 엄마하고 아빠하고 사는데 엄마 생일인데 딸이 생일을 몰라요. 그래서 자기가 얼마나 화가 났던지, 딸애 뒷바라지 다해주고 손자까지 다 키워주고 했는데 생일을 모르고 그냥 넘어간 거예요. 그래서 너무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걸 딸한테 이야기를 했답니다. 생일 지나고 난 뒤에 딸한테 이야기를 하니까 딸이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권사님이 복음 말씀을 듣고 난 뒤에 ‘아! 내가 뭔가 죄인이다.’하는 사실, 욕심을 내고 기대를 하고, 그냥 사랑으로 딸을 돌봐준다 하면서도 뭔가 자기 행함에 대해서 대가를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딸애의 투박스러운 답변을 통해서 그걸 알았답니다. 그런데 생일을 몰랐던 그 정도가 아니고 그보다 더 화나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니 왜 엄마 생일 안 챙기노?’ 하니까 딸의 느낌은 이런 겁니다.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엄마는 왜 그렇게 행복한데?’ 아니 엄마 행복한 것도 문제라. ‘내가 힘들면 같이 힘들어야지, 엄마는 왜 그렇게 행복한데? 아빠와 더불어서.’ 아하! 그래서 그 권사님은 정리한 게 있어요. 뭐냐 하면 함부로 행복하면 안 된다는 사실. 그렇게 남들 앞에서 행복에 유난 떨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여기 쫓겨난 자, 내가 환난 받게 하는 자, 그리고 저는 자, 이런 자를 누가 그렇게 만든 겁니까? 하나님께서 다리 절게 만들고, 하나님께서 환난 받게 해놓고 하나님께서 쫓겨나게 해놓고는 그 쫓겨나고 환난 받는 그 흔적과 그러한 경험을 했던 자기 백성을 데리시고 따로 하나님의 남은 자, 천국의 백성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천국 백성은 성한 인간으로서는 올 생각을 하지 말라 이 말이죠. 멀쩡하게는 오지 말라 이 말이죠. 내가 다리 몽뎅이를 부러뜨려 놓고는 그것이 천국의 시작이라고 보면 돼요.

쫓겨난다는 것은 아침에도 이야기했지만 자기 자리에서 ‘이건 내 자리야,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자리야, 하나님, 이 자리만큼은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라고 다짐에 다짐을 했는데 ‘고뤠?’ 하더니만 그 자리에서 쫓아내버린 겁니다. 그리고 쫓아내고 ‘오! 내 자리, 내 자리, 난 어떻게 살라고?’ 이럴 때 하나님께서 ‘고뤠? 그러면 이제부터는 너는 내 백성이 된다.’ 이 말이죠.

내 자리에서 내 자리를 가지고 소유한 채 그대로 천국에 가는 게 아니고 일단 내 자리에서 쫓아내서 ‘내 자리 없다. 내 자리란 게 없어.’라고 만들어 놓고 없는 자리를 전에 있던 내 자리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천국의 자리로 바꿔치기 하는 방법, 그런 방법을 사용해서 천국의 백성에 넣어주는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바로 천국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의 일생 자체가 그러한 전복, 뒤바뀜, 대체적인 일들이 예수님을 예수님 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예수님께서는 그냥 주가 아니라, 지시 명령하는 주가 아니라 지시 명령대로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대신해서 명령을 해놓고 명령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자를 대신해서 그 죄 값을 치러서 그래서 주님이 구원자가 됐기에 구원자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그러한 대체했다는 흔적을 지니고 있는 사람만 영원히 면류관 주께 반납하고 영원히 천국에서 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을 줄 때 그 명령을 지킬 능력이 우리한테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명령을 줬다는 거예요. 모든 명령, 십계명부터 모든 사도바울의 명령과 권면이 우리한테는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준 건데, 그것은 예수님이 갖고 있는 십자가의 의미, 대체의 의미, 대신의 의미를 우리한테 흔적으로 남기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 같은 경우는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자 하니까, 다리 몽뎅이를 부러뜨린 거예요. 쫓겨난 자, 환난 받는 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 이방인 대신 먼저 시범 조교로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무섭고, 지켰다고 하지만 못 지킬 경우에 나중에 주어질 저주를 그들이 몸소 다 받았어요. 그들이 몸소 다 받았고 그들이 받은 그 저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또 예수님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중심 되어서 구약은 예수님을 쳐다보게 돼 있고 이미 구원받은 사람은 이미 오신 예수님을 쳐다보면서 시간적인 지평이 아니라 묵시적인 수직을 바라보며 살도록 그렇게 하는 거예요. 우리가 인생을 몇 년 사는 그건 의미 없고 언제 죽더라고 오늘밤에 죽더라도 수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다 이루었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겁니다.

말씀이라 하는 것은 지키지 못할 것을 준 거예요. 지키지도 못하는데 앞장세우는 거, 그 좋은 예가 코미디 프로에 보면 나와 있죠. 개그 콘서트에 ‘브라우니’라는 개가 등장합니다. 이 개는 인형 이예요. 그 인형보고 개그맨이 뭐라 그러느냐 하면 ‘물어, 물어.’ 이런다고요. 그 개가 연애 인 순위 1등 했어요. 말도 못하는 개한테 ‘물어, 물어.’ 하는 그것이 얼마나 우스운 이야깁니까? 사람들이 우스워서 넘어가죠. 그거 보고는 우스워서 넘어가면서 왜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는 우리보고는 우리 자신이 왜 우스워 넘어가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인형 같은 개거든요. 그래서 인형 개한테 ‘물어, 물어.’ 해도 안무니까 개그맨 하는 말이 ‘차도 남, 차갑고 도도한 남자.’ 이런 식으로 해석을 갖다 붙이는 겁니다.

이처럼 되지도 않는 인간을 앞장 세워서 소위 된다고 여기는 그 꼴사나운 것이 얼마나 같잖은 것인가, 그런데 그 모습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가 발견해야 돼요.

그런데 오늘 본문 7절을 보게 되면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이렇게 돼 있거든요. 여기서 약간만 깊이 있게 들어가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느냐 하면, 참 하나님도 이상하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라고 구원하면 중간에 말썽 없이 그대로 천국까지 그대로 이어줘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안심이 되잖아요? 그런데 남은 자 같으면 처음부터 남은 자라고 언급을 하든지, 오늘 주일학교 설교 때 그런 이야기 했습니다만 아버지께서 유산을 줄 때 전부 다 몰아주는 거예요. 한 놈이 다 먹는 겁니다. 하나는 망통이고, 맏이에게 다 몰아주기로 한 겁니다.

처음부터 ‘너는 맏이다.’ 해서 몰아주기를 시도합니다. 아버지 이삭이. 그런데 야곱은 도저히 안 되는 거예요. 왜냐,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이건 중간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태어난 것은 형은 형이고 동생은 동생이라는 이 서열이 뒤바뀌는 일은 없는 거예요. 그리고 형은 아버지로부터 모든 복을 받기 때문에 축복된 자고 동생은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장자 위주로 구원받는다는 원칙이 언약 속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야곱이 무슨 발상을 하느냐 하면 말도 안 되는 발상을 해요. 뭐냐 하면 ‘나도 형이 될 수 있겠다.’ 하는 발상을 해요. 이거 완전히 미친 거예요. 집에 형 있으면 한번 물어 보세요. ‘니 앞으로 동생 할래?’ 어릴 때 같으면 많이 쥐 박힐 겁니다. ‘이게 교회 가더니만 완전히 돌았구나.’ 안 되는 거예요. 안 되는 걸 시도하는 겁니다.

이것은 개인의 욕심이고 야망입니다. 그 야망을 시도하다 보니까 필연적으로 등장한 게 뭐냐, 속임수가 등장하는 거예요. 야곱 자체가 사기꾼이고 이름이 속임수예요.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이렇게 상품으로 걸어놓고 거기서 그 상품을 쳐다보는 자를 속임수로, 사기꾼으로 전락시켜 놓고 내가 사기꾼 짓을 다 했을 때 그 사기꾼 그 인간을 그토록 바라던 장자 되게 축복 자리에다 집어넣어 버리는 겁니다. 이게 뭐냐 하면 역전되는 거예요. 착한 장자가 결국은 장자가 아니라 장자도 못되는 나쁜 인간이 착한 장자로 뒤바뀌는 요러한 대체를 예수님의 십자가에 담긴 의미라고 그렇게 보이시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에서 제일 난해한 게 뭐냐 하면 족보가 있잖아요? 족보는 변경이 안 돼요. 아버지보고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 엄마, 나 딸로 낳아주세요.’ 이렇게 요구를 못하듯이 이미 족보는 흐르고, 흐르고 흘러가는 거예요. 그리고 족보는 이미 되어 진 것이, 결과가 원인을 수정하지 못합니다. 이미 되어져 버린 것에서 원인 소급이 되지 안 해요. 그래서 한번 족보가 흘러갔다 하면 위에서 밀어내는 대로 그냥 밀쳐내는 대로 흘러갈 뿐인데, 그런데 웬걸 남은 자, 남은 자란 말은 단절이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단절(斷) 끊어짐이죠. 족보라 하는 것은 안 끊어지는 것이 우리의 상식입니다. 자식을 못 낳으면 끊어지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족보가 없으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족보가 끊어져서 다시 이어진다는 것이 족보에는 말이 안 돼요. 족보는 말이 안 됩니다. 족보라 하는 것은 끊어지면 그걸로 끝나니까. 족보는 흘러온 대로 흘러갈 뿐 이예요. 족보를 쓰는 것은 우리가 쓰지만 족보 될 수 있는 인간 등장은 인간의 손을 넘어서 있습니다. 아니, 태어난 걸 무효화 시킬 수는 없죠. ‘무릅시다.’ 그럴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남은 자라는 것은 족보대로 흘러오게 되면 그 남은 자에 해당되는 족보하고 저쪽 남은 자에 해당되지 않는 족보하고 뭔가 중간에 끊어지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야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겁니다.

두 가지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예상 못한 어떤 대체를 하기 때문에 대체하는 가운데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 ‘대신 해줄게. 니는 못하니까 니는 브라우니니까 니는 개니까 능력이 없으니까 내가 해줄게.’라는 그 대체 일로 인하여 구원되고 또 하나는 그 대상이 기존 족보와 족보 사이에서 뭔가 끊어지는 현상과 더불어서 그 일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스파이 영화나 007 영화에서 보면 관광객들을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와요. ‘다이하드’라는 영화에 보면 그 형사가 마지막 뉴욕 시민을 건지기 위해서 나쁜 범인이 폭탄을 장치해 놓은 두 개의 선중에 빨간 선을 자를 것인가, 파란 선을 자를 것인가, 드라이버 대면서 땀이 삐직삐직 나오면서 손에도 땀이 나고 저거 잘못 잘라서 폭발하면 뉴욕 시민이 다 폭발하거든요. 고 짜릿짜릿함.

주님께서는 족보를 하나의 노선으로 만들어서 안심 푹 놓고 가면 좋은데 족보를 빨간 선, 파란 선 2개를 놔둬요. 꼭 귀신 영화에 나오는 것 같아요. ‘이거 줄까? 저거 줄까?’ 딱 선을 2개를 놔둬요. 이게 갈라디아서 4장에 보면 율법을 좇아난 족보와 성령으로 좇아난 족보, 그리고 그 외 제 3의 족보는 일체 인간에게 허용한 적이 없다. 이렇게 돼 있어요.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모든 죽은 자들은 소집하게 돼 있는데 예수님, 인자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그래서 부활의 호명을 부른 사람은 부활의 천국 가고 지옥으로 호명 부른 사람은 지옥 간다는 거예요. 이거 빨간 선, 파란 선,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걸 족보에 심어 놨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자기가 단선으로 내려오는 족보에서 뭐를 찾아내야 되느냐 하면 구원받는 남은 자 속에 있는 그런 흔적과 지옥 가는 흔적을 둘 다 아울러서 눈치 채야 될 그러한 것을 요구받게 되는 겁니다.

교회 오면 어떤 흔적을 가진 사람이 같이 교회 와서 저 사람은 교회 와서 지옥 가는 사람이고 저 사람은 교회 와서 천국 가는 사람이냐, 그걸 교회 오면서 그걸 눈치 채도록 간파가 돼야 된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 흔적이 뭐냐, 야, 이거 오늘 오후 예배 참석한 못한 사람은 아깝다. 그 흔적이 뭐냐 하는 겁니다. 착한 일 한 거, 봉사 한 거, 전도 한 거,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흔적이 뭐냐 하는 겁니다. 그건 인간의 행함에서 찾으면 안 되고, 성경에서 찾아야 되거든요. 족보가 바뀌는 흔적에서 그 흔적부터 말씀드리지 않고 그건 뜸 들이고 흔적의 결과부터 말씀드리고 흔적 말씀드리겠습니다.

흔적의 결과는 하나는 그냥 인간으로 와서 그냥 인간으로 사는 거예요. 그게 지옥 가는 것이고, 또 하나의 갈라진 사람은 신의 혈통입니다. 하나님 혈통 이예요. 그걸 성령으로 난 사람, 이렇게 되는 겁니다. 신의 나라 천국 가는 겁니다. 이게 흔적으로 그렇게 갈라지는 거예요. 신의 혈통을 잇는다.

비행기가 활주로 그냥 가다가 어느 순간에 땅에서 멀어지면서 부력이 생겨버리면 공중에 붕 떠버려요. 부력이 생겨버리면 속도가 강해지면 진공이 생겨서 그 진공을 메우기 위해서 압력이 밑으로 가는 게 아니라 위로 올라가는 그걸 부력이라 합니다. 그래서 그 안의 물체가 같이 떠버리거든요. 어느 순간 뜨는 순간이 있다고요. 뜨는 순간이 남은 자로서 흔적이 남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형제라 생각하고 같은 이웃이라 생각하고 같이 천국 간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보니까 공중에 떠있고 저쪽은 활주로 그냥 가고 있고 그런 겁니다.

요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가 소설, 남북 전쟁 때 소설 이야기 하나 할게요. 그 소설 내용은 뭐냐 하면, 흑인 노예로 있는 흑인, 그때는 노예 시대니까, 흑인 노예를 백인들이 와서 꼬십니다. ‘내가 너를 탈출시켜 줄게. 그리고 돈도 줄게.’ 2가지입니다. ‘내가 너 노예생활 하는 걸 끄집어 줄게.’ 그 다음에 그리고 ‘돈도 너에게 막대하게 줄게.’ 그 당시 노예생활 하는 흑인이 그 제안에 거부할 흑인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유, 백인 아저씨, 제가 가겠습니다.’ 자, 그래서 빼내줬어요. 빼내주니까 자유를 얻었잖아요.

그럼 두 번째, ‘돈 주세요.’ 하니까 백인 하는 말이 ‘돈 줄 테니까 다시 저 집 말고 다른 주, 다른 도시에 가서 흑인 노예생활을 해라.’ 그러면서 백인이 그 흑인을 다른 도시에다 팔아먹는 거예요. ‘자, 100만 원짜리 노예인데, 힘 좋고 일 잘합니다.’ 하고 그 노예를 팔면 100만 원을 받잖아요. 100만 원을 받으면 백인이 50만 원을 먹고 50만 원은 저축해 놨다가 흑인한테 주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놓고 그 사람은 노예 하잖아요. 그러면 노예생활 하면 다시 백인이 와서 빼내주는 거예요. 빼내줘서 다른 도시에 가서 다시 팔아먹고 나머지는 역시 100만 원에 다시 팔아먹고 50만 원은 자기가 챙기고 50만 원은 주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죠. 그렇잖아요? 제가 말 잘못 했는가? 맞죠. 돈도 주고 자유도 주고, 말이 맞잖아요.

유명한 소설가가 그 소설을 왜 썼느냐 하면 인간은 노예다 말이죠. 대통령이 되던 국회의원이 되던, 의사든, 판사든 모든 인간은 자유와 돈을 원하지만 그 자유가 돈이라는 것은 자기가 돈의 노예, 악마의 노예가 되는 조건하에 우리는 돈도 얻고 일시적으로 자유도 얻는다 이 말입니다. 그 현대인들이 실존을 묘사를 그렇게 설명한 거예요.

그래서 제 말은 뭐냐, 그 자유가 자유겠으며 그 돈이 진짜 행복이겠습니까? 인간은 남은 자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그 소설 이야기를 한 거예요. 인간은 어떤 몸부림을 쳐도 남은 자가 될 수 없어요. 족보에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절대로 기존의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고 육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신의 혈통이요? 꿈도 꾸지 마세요. 신의 혈통은 내가 노력한다고 신의 혈통 되는 게 아닙니다.

자, 그렇다면 신의 혈통이라는 흔적이 뭐냐, 그걸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그 흔적은 출애굽기에 12장에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니까 그 문 입구에 발린 그 피는 백인 주인들하고 거래하는 것이 아니고 신의 혈통이 될 거냐, 말 거냐의 결정권을 갖고 있는 하나님과의 맞흥정 이예요. ‘니가 어린양의 피가 있으면 모든 걸 용서하고 하나님 백성의 혈통 되게 해줄게. 이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에 담겨있던 실내용이었다.’라고 하시면서 오십니다.

어린양의 피를 바르게 되면 다른 집에는 장자가 죽지만 그 피 때문에 이상스럽게 안 죽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안 죽는 대신 그 장자는 더 이상 그 집안의 장자의 소유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리워, 그리워하던 신의 소유권이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신의 혈통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소유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 앞에 그리스도의 어린양 되시는 그리스도이 피가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이스라엘에게 전할 때 이스라엘은 여기에 대해서 또 착각을 했습니다. ‘양 잡으면 되고, 피 바르면 되겠지.’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거 아니었거든요.

이사야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야기하기를 이스라엘이 있더라도 다 잘라버리고, 잘라버리고 심지어 10분의 1도 잘라버리고 그루터기만 남게 하겠다는 예언을 하십니다. 그 예언이 로마서 9장 27절에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여기 바다 모래같이 숫자가 많다는 데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교회 부흥 숫자 많은 것 아무 의미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은 자예요.

교회에 내 자리를 폈느냐, 아니면 십자가 피 속에 내 자리를 폈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남은 자로 인하여’ 할 때 그 남은 자는 이구동성으로 한 가지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다 가져갔다. 예수님의 피가 내 죄를 몽땅 다 가져갔습니다.’라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나의 교회 봉사, 나의 교회 헌금, 나의 충성이 나의 죄를 삭제시킨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어떤 사건이, 나의 모든 것을 나의 인생을 사건화 시켰습니다. 나를 가지고 솜사탕 만들듯이 나를 가지고 빙빙 돌면 나라는 죄 많은 육체는 그대로 죄 많은 육체지만 내 아우라에, 내 주변에 솜사탕 같이 성령의 열매라는 것이 이 더러운 몸을, 더러운 몸일수록 더욱 더 은혜가 피어나는 겁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여러분, 유원지에 가면 솜사탕 파는 아저씨 봤죠? 어릴 때는 얼마나 신기했다고요. 둥그런 양철통에서 둥그렇게 뭔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거예요. 보니까 나무 막대를 가지고 빙빙 돌려서 내밀면 부풀어 있는 거예요. 그처럼 우리 죄 많은 작대기, 나무대기처럼 죄 밖에 없는, 우리의 흔적은 뭐냐, 매일같이 쓰레기 나오잖아요. 음식 쓰레기 괜히 돌아다니지 않잖아요. 우리는 살면 살수록 쓰레기가 자꾸 쌓이고 우리는 끝까지 추합니다. 뭐 찍어 발라도 안 되고 뜯어 고쳐도 안 돼요. 추한데 이상하게 아우라는 성령의 열매라. 이게 뭐냐, 대체, 대신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를 더욱 더 죄인 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남은 자에 대한 전략입니다. 이것이 죽어도 산다는 모습입니다.

끝으로 한 말씀 하고 마치겠습니다. 나사로 오빠의 누이들, 자매 마르다 마리아, 섬긴다고 섬겨서 이제는 주님께서 믿음 좋다고 간주했죠? 아닙니다. 주님 맛있는 거 해준다고 믿음 좋은 게 아니거든요. 실컷 주를 섬겨도 나중에 오빠 죽고 나니까 멱살 쥐고 달려들듯이 달려들었잖아요. 그 마르다 마리아가 우리의 모습 이예요. 그럴 때 주님께서 ‘니 오빠 산다.’ 하니까 ‘나중에 살겠죠.‘ 이렇다 말이죠.

그 집안에서 오빠를 누이동생을 위해서 다시 한 번 불러내서 군대 생활 두 번 간 거예요. 완전히 싸이예요. 다시 불러내서 누이동생에게 보여주고 다시 죽게 했잖아요. 그러니까 누이동생 잘 둬야 돼요. 아니면 다시 호출당할 수가 있어요.

이게 뭐냐 하면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말은 신빙성이 있다는 거예요. 헛되이 듣지 말라 말이죠.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안 죽는다.’ 하면 죽어도 안 죽는 줄 알아야지, 자꾸 토 달고 하지 말라 말이죠.

이게 어린양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능력인 것을 믿는 사람한테는 우리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반갑게 감사함으로 받아들입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대체한다고 해서 우리는 농담으로 여겼고 내 인생을 바꿔 천국 들어간다 할 때도 십자가가 그렇게 능력이 있다 해도 우리는 그 효과를 돈의 효과보다 못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진짜 쓰레기 같은 작대기 같은 우리를 들어 쓰셔서 지금도 과연 어린양 되시고 구원자는 주님밖에 없음을 고백케 하시니 이런 영광의 자리를 귀하게 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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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