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07b 울산강의-출애굽기 24장 : 해답과 질문
20120907b 울산강의-출애굽기 24장 : 해답과 질문
이름 : 한윤범(IP:14.39.134.60)
20120907b 울산강의-출애굽기 24장 : 해답과 질문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냥 믿으면 되는데 피가 왜 필요하죠? 이상하잖아요. 여기에 8절에 보면,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모세가 양푼에 피를 담아서 백성들에게 뿌려요. 6절에 보면,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피가 왜 필요합니까? 소금을 뿌리는 것은 이해가 돼요. 팥을 뿌리는 것은 옛날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필요한데 멀쩡한 피를 왜 뿌립니까? 뭔가 뿌린다는 말은 뭔가 있는 물체에 피막을 입히는 거잖아요. 덮는 걸 말하거든요. 나는 키 180이다. 나는 여자다. 남자다. 나는 직업이 의사다, 판사다. 여기에 피가 묻으면 어떻게 됩니까? 나는 판사다 했는데 피가 묻으면 피물에 묻히게 되죠.
마치 초가집이고 기와집이고 양철집이 있지만 폭설이 내리면 모든 것이 눈에 덮이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피를 뿌리면 우리가 실존적으로 개인적으로, “나는 너와 달라. 나는 아이큐가 150이야. 너는 30이야.” 이런 차이가 다 없어지는 거죠. 장애인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면 애국가 안 나옵니까? 애국가 나오죠. 그리고 진짜 장애가 아닌 비장애자가 올림픽해도 애국가 나오죠. 그러면 애국가만 듣고 장애자인지, 장애자 아닌지 알아낼 길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피를 앞장세운다는 것은 우리 인간 쪽에서 앞장세우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기도를 하면 두 시간하니, 금식기도를 몇 번 했다니, 교회를 몇 군데 세웠다느니, 나는 강의를 얼마나 돌아다니고, 책을 몇 권을 짓고, 나는 신학박사고. 이 모든 것은 누가 만들었으며 누구 좋으라고 그 짓하고 있는 겁니까? 인간 개인이 지옥가려고? 아니죠. 인간 개인이 중요합니다. 오늘 제일 중요한 것 나왔어요. 사적 구원, 개인이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님 어떻습니까? 이러면 구원시켜주겠지요.”라고 들고 나온 거란 말이죠. 그걸 피를 들고 마중 왔다는 말은 일체 그런 것에 대해서 보지도 듣지도 않고 거부하겠다는 말 아닙니까.
왜 사람들은 그걸 모를까요? 교회 와서 솜씨자랑하고 말이죠. 교회 잘 나오다 “오늘 점심식사당번 누구고? 반찬이 좀 짜다.” 이러면 삐져서 교회 안 나오고. 그게 어떻게 말이 됩니까? 진작 안 나와야 될 사람이에요. 교회 와서 뭘 보여주려고? 지 잘남. 그걸 세 자로 ‘자랑질’ 이걸 네 자로 하면 ‘구역예배’ 자랑질하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들.
이 사적구원, 개인구원은 하나님한테 안 통합니다. 이런 구원 말고 다른 식으로 구원한다고 제가 광주에서 이야기했죠. 그게 무슨 구원이냐 하면, 상태구원이라 했죠. 상황, 상태 자체를 건져버리면 그 상태에 녹아져있으면 구원받고 그 상태에 녹아져있지 않으면 구원 못 받는 겁니다. 상태구원이란 말은 제가 지어낸 거지만 성경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간단해요.
로마서 9장에서 너는 그릇이다. 그릇이란 뭐예요? 그릇이란 뭘 담는 거잖아요. 만약에 진노를 담으면 진노의 그릇, 만약에 긍휼이 담기면 긍휼의 그릇. 그걸 다 아는데 우리는 왜 빈 그릇으로 못 살아가는지 참 답답해요. 우리는 안에 내용을 내 것으로 채우려고 해요. 내 것으로 채운 것은 무효입니다. 그건 인정 안 해줘요. 이 그릇은 내 것으로 채우는 게 아니고 주님이 나에게 주신 것을 담는 그릇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주여, 이것 주셨습니다. 주여, 성령 주셨네요. 얼마나 황공한지. 예수님의 피를 담아주셨네요. 이 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주께서 주신 것을 알게 하려함이라. 성령이 임한 것은 너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함이라.
미국 대통령이 오바마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을 담았지요. 마이클 잭슨은 뭘 담았어요? 그릇은 흑인인데 뭐 DNA에 잘못 됐는지 약물중독이 됐는데 왜 코가 갑자기 커지고 얼굴은 하얘집니까? 그릇은 흑인인데 아마 병 같아서. 백인으로 되는 병, 유전자 병 같아요. 상당히 남들 보기에 당황스럽지요. 결국 사람은 자기 본색을 감출 수는 없는 겁니다.
어떻게 에티오피아, 구스의 까만 피부가 하얗게 되겠으며 반점이 있어야 표범이지, 반점이 없으면 그게 하마지 표범이겠습니까? 그 표범의 반점을 어떻게 지을 수가 있겠는가? 흑인의 멜라닌 색소가 없어지지 않듯이, 표범의 반점이 없어지지 않듯이, 너희의 없어지지 않는 그 죄가 세상에 주께서 하시겠다고 나서면 그것도 없어진다는 거예요.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어질 것이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소리 들으려고 교회 옵니까? 이 소리 들으려고.
바쳐라 이것 말고. 내놔라. 이것 말고. 너는 네가 생각한 네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들은 생각은 울산바닥에서 현대자동차 들었던 거예요. 드라마에서 들었던 거고, 신문에서 들었던 거고, 성폭행범 때문에 밤늦게 못 돌아다니고. 전부다 세상에서 듣고 본 거예요. 그런데 막상 교회 와서 듣는 것은 성폭행을 당하던, 성폭행범이든 관계없이 예수의 피로 희어진 거예요. 그 피를 지금 모세가 양푼에 담아서 머리에다 뿌리는 거예요. 죄 용서받으라고 뿌린단 말이죠.
그러니 참 제 정신 아니죠. 정상이 아니고 다 미쳤어. 현장에 이상한 사람들만 모인 것 같아. 뭐 피를 뿌리고. 그 피가 무슨 효과가 있다고. 한 바가지 덮어쓰고 돌아다니고. 이게 무슨 짓이에요. 장난도 아니고. 미친 짓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물어 볼게요? 지금 어린양 피 양푼에 담아서 저한테 뿌리면 구원받습니까? 지금? 안 되지요. 지금 양 잡고 피 발라도 소용없어요. 왜냐하면 이 모든 말씀은 너희들이 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모든 말씀을 내가 알아서 내가 다 해낸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그림자로서 폼을 낸 거예요. 그러니까 그 당시 백성들은 장차오실 예수님이 하실 것을 그냥 폼만 잡을 뿐이에요.
제가 설교시간에 예를 들었잖아요. 옛날 냇가에 천막 쳐놓고 홍콩영화 보여줄 때 [조영남-최유라]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계단에 올라가면서 칼 한 번 쓱 빼면 여러 명 죽고. 그 영화를 할머니들이 보고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이웃집 할머니가 내일 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본 할머니가 말리는 거예요. 오늘 다 죽었기 때문에 내일 죽은 사람은 안 나온다는 거예요. 영화라는 게 뭡니까? 같은 필름에 뭘 담았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똑같은 내용이 나오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똑같은 영화를 튼 거예요. 오늘도 양 잡고, 내일도 양 잡고, 모레도 양 잡고. 하지만 실제로 거기에 나왔던 엑스트라 한 명도 안 죽었죠. 그게 40년 전 영화니까 늙어서 죽었을지 모르지만 한 명도 안 죽었어요. 죽는 척을 한 거죠. 그걸 그림자.
십일조하면 복 받는다. 이게 뭡니까? 이게 그림자라니까요. 십일조가 뭔 뜻이냐 하면, 구약에는 십일조내서 복 받잖아요. 신약에는 이미 우리 대신 십일조내신 분 때문에 우리는 십일조내서 받는 복을 그냥 공짜로 다 받는 거예요. 그 십일조가 누구냐 하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일조인 겁니다. 그리고 구약 말라기의 십일조는 뭡니까? 폼을 낸 거예요. 장차오실 메시아가 이렇게 내지요. 심지어 자기 몸 전체를 바치지요.
세상에 그 폼을 가지고 오늘날 이렇게 해석하잖아요. 구약에는 십일조 했지만 신약에는 더 많이 해야 된다. 십의 이조해야 된다고 나온다니까. 아예 사기를 쳐. 그것도 모자라서 십일조해서 복 받은 인간들 간증집회해서 사람들 마음 약하게 만들어서 돈 우려내고.
여러분 인생의 해답을 알아야 돼요. 해답을 모르고 백날 울산바닥에 살아도 소용없습니다. 해답이 피에요. 피가 있을 경우에는 나를 내 것이라는 것은 접었습니다. 내 몸이 내 것이라면 우리가 거듭나도 지옥 갑니다. 그러니까 내가 내 것이라는 걸 접고 피가 있는 한, 피라는 것은 형제들 간에 밥 먹다가 “형, 좀 줘.” “안 줘.” 안 주려고 침 뱉어서 내 것이라고 한 것처럼 주님께서 피를 발라서 주님의 것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주님의 것이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주님께서 왜 스스로 십자가에 올라가서 죽어야 되는가? 그 문제와 해답을 보여주는 바탕으로서 역할을 하라고 우리를 채용을 한 거예요. 취직시켜놓은 거예요.
만약 우리가 우라늄이라고 합시다. 19세기 초에 퀴리 부인이 방사능 물질을 발견하기 전까지 우라늄 원자력발전소가 없었어요. 라듐에서 방사능 나오는 걸 발견해서 그때부터 연구해서 원자력발전소 만들었잖아요. 그러면 내가 하나의 우라늄 광석이라 합시다. 이게 그냥 길바닥에 우라늄이에요. 천년만년 방사능이 퍼지는데 이걸 어떤 사람이 나를 잡아서 가져와서 발전소의 재료로 사용한다면 결국은 너도 잡혀 왔고, 나도 잡혀 와서 발전소 돌아가면 나오는 것은 원자력에너지가 나오겠죠.
원자력에너지가 예수님이라면 우리는 길바닥에 아무 쓸모도 없는 인간인데 거기서 원자력발전소를 운영시키는 그게 교회죠.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기 위해서 우리가 취직한 거죠. 채용된 겁니다. 우리보다 채용된 나를 네 자로 집단적으로 된 것을 ‘이스라엘’ 개인적으로 된 것을 야곱. 야곱의 아버지는 이삭, 이삭의 아버지는 하나님. 그렇지요. 이삭은 두 분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아버지고 육신의 아버지는 아브라함이 되겠죠.
로마서 4장에서는 이삭에 일어난 일을 하나의 영화로 봅니다. 척하는 그림자, 연극으로 보는 거예요. 이삭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장차오실 예수님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당겨서 보여주는 거예요. 이삭은 죽었다가 살아납니다. 이 지상에 없던 존재가 새로 생겼다. 그러니까 지상에 없는 것이 약속으로 인하여 생겨버리고 그 인간이 살았는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죠. 이걸 로마서 4장 25절에서는 우리 죄 때문에 죽어야 되고 우리 의 때문에 살아나야 하느니라. 그러면 이삭은 하나의 굴러다니는 우라늄 광석과 같은 거죠.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기 위해서.
그러면 믿는다는 것은 이삭을 믿는 것이 아니고 우리도 이삭처럼 채용 되었고 이삭 같은 운명으로 주님 앞에 채택되었다는 것, 그걸 우리가 받아들이는 거예요. 채택이란 말을 했지만 성경적 용어로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세웠나니 또는 선택. 선택된 집단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나라가 되는 겁니다.
다수라는 집단과 하나님 만나고 온 모세라는 개인의 만남이죠. 일과 다수의 만남이죠. 모세의 손에서 양푼에서 피가 쏟아지고 말씀도 같이 거기에 낭독이 된다는 것은 피와 말씀의 만남을 깔아놓는 카펫, 바닥 돌로 써먹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의 돌멩이로서 거기에 가담이 돼있는 겁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노아가 방주 만들지요. 노아가 방주 만들었으니까 우리도 방주 만들면 구원받습니까? 이순신함 만들면 구원받습니까? 그렇게 해서 구원받으려면 돈 더 많이 벌어야 돼요. 구축함 하나 만드는데 돈 얼마나 드는데. 아까 원목으로 책꽂이 만드는데 오십 만원 든다고 했잖아요. 방주 원목으로 만들려면 얼마나 들어야 돼요? 있는 재산 다 팔아서, 저축은행에 하든지, 사채 쓰든지 구원받으려면 무슨 수라도 해야 될 것 아닙니까.
방주 만들어서 구원받던 시절이 있더랬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얄궂게도 노아 그 이후로 똑같이 방주 만들어서 하게 되면 얼마나 수월합니까. 고3들 보면 [정통종합영어]가 처음 나올 때나 그 다음 해나 똑같지요. 얼마나 수월합니까. [수학정석1,2] 똑같은 책을 보면 되니까 형한테 물려받으면 되니까. 왜 주님은 그런 식으로 그 다음은 이야기하지 우리 않아도 압니다. 방주 만들면 되지요? 아니거든. 이게 뭐냔 말이죠. 그러면 형이 물려준 교과서와 체육복, 교복은 다 찢어야 된다 말이죠.
노아 이후에 그 다음에 뭐였습니까? 아브라함이죠. 아브라함이 아기가 없었는데 이삭이 생겼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뭡니까? 옳다구나. 구원받으려면 무조건 바람 피워서 아기 낳으면 되겠구나. 남자들은 좋지요. 여자들은 죽을 판이고. 그것도 아브라함에게만 써먹고 그 다음부터는 그게 없어요.
이삭은 어떻게 구원합니까? 이삭은 별미 좋아해서 먹고 엉터리로 축복하면 구원받는 거예요. 나중에 어긋맞게 하는 야곱이 나오고. 이삭은 하여튼 뭔가 잘못됐어. 복 줄 사람은 저주해버리고, 저주할 사람은 복 줘버린 거예요. 그런 식으로 구원받으면 우리는 그런 걸 매일하는 거예요. 우리는 해봐야 맨날 헛짓이나 하고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쉽네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것이 하나의 모자이크, 박석 압니까? 포장 공사할 때 까는 돌. 하나의 수놓기 위한 박석으로서 있는 거예요. 특히 주의할 것은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 믿다가 톱에 켜죽잖아요. 그럼 톱에 켜죽으면 구원받습니까? 아프긴 아프겠지만 진통제 미리 먹고 목재소에 가서 드러눕지 뭐. 아프겠지만 구원받는다는데 어차피 인간은 한 번 죽는 거니까. 톱에 켠다고 구원되는 것도 아니에요.
제 말은 결국 뭔 뜻입니까? 인간은 어떤 식으로 해도 인간이 하는 식으로는 구원 안 해준다는 뜻이에요. 방주 만들어서 구원 안 줬고, 톱으로 켰다고 구원 안 해줬고, 모세가 바로의 공주 아들 됨을 버리고 고난 받기를 좋아했다고 구원 안 해줬고, 이삭이 엉터리 축복했다고 구원 안 해줬고, 야곱이 어긋맞게 축복했다고 구원 안 해줬어요. 결국은 구원하는 방법은 우리에게서 만들어낼 수 있다, 없다? 우리가 행한 것은 구원이 안 되는 겁니다. 이걸 믿는 사람이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이걸 인정함으로 그 사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 피어오르는 바로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아우라였습니다. 후광이었고 능력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면 됩니까? 내가 직장 다녀도 이것으로 구원 안 되고, 애 키워도 이것으로 구원 안 되고, 교회목회해도 이것으로 구원 안 되고, 비타500 먹어도 그것도 착한 비타500 먹어도 구원 안 되고, 교회 나온다고 구원 안 되고, 전도한다고 구원 안 되고, 헌금 하신다고 구원 안 된다고 강단에서 외쳐야 됩니다. 헌금 다 날아갔어. 끝났어. 교회 간판 내려야 돼. 어차피 합기도인데 뭐. 선교회비 내도 구원 안 돼요. 안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제가 어제 유튜브 녹화하면서 이런 이야기했거든요. 인간 쪽에서 나오는 것은 모든 것이 결국 끊어진다. 하나님 앞에 연결이 안 되고 끊어지게 돼있어요. 부부 사이가 아무리 사랑해도 결국은 사랑한 만큼 돌아서게 돼있습니다. 사랑한 만큼 사람은 실망이 더 크게 마련이에요. 그렇다고 사랑 안 할 수도 없고. 이미 결혼한 것 빼도 박도 못하고 무를 수도 없고.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을 아무리 사랑해도 거기에 도달할 수 없게 돼있습니다. 그런데도 고맙게도 끊어지지 않는 사랑은 우리 몸이 아니고 예수님 몸으로 하는 것을 환란이나 핍박이나 곤고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무슨 태풍이 와도 그리스도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느니라. 심지어 우리가 죄를 지어도 주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는 이유가, 아들이 그것 때문에 오셨다고. 안 끊어진다는 그것 때문에 오신 거예요.
삼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싶어서 이리저리 해도 다 끊어지는데 머리카락 밀어버리니까 힘이 빠져요. 몸이에요. 하나님의 성신 받은 몸, 나실인의 몸, 그 몸의 비밀이에요. 예수님의 모든 비밀은 예수에게 초점이 맞춰있어요. 우리 몸이 아니고 주의 몸에 있고 우리는 껍데기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피를 우리에게 바르는 것은 현재 있는 네 몸은 피를 바를 때 비로소 채용이 되는 거예요. 피가 만들어내는 피로 인하여 이룰 나라에 취직이 되는 겁니다. 요새처럼 취직하기 어려운데 피 발라서 천국에 취직합니다. 취직이 되면 그 나라를 이걸 택하신 나라, 이걸 거룩한 나라, 이걸 제사장 나라라 하죠. 여기에 보세요. 제사장, 거룩, 택함 이걸 한꺼번에 묶어서 언약의 나라. 그래서 언약의 피, 또는 언약서라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에서 나오는 이러한 택함이라든지, 거룩이라든지, 제사장 나라 개념이 나올 때 이건 제가 좀 설명할게요. 초등학교 얘들에게 삼각함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얘가 삼각함수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아무리 앞선 공부를 해도 삼각함수까지 배우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삼각함수가 뭐지???
그런데 수학교수한테 삼각함수 물으면 삼각함수가 줄줄 나오죠. 탄젠트, 코사인, 사인하면서. 파동을 수치화시킬 때 또는 수학에서는 해석이라는 게 있어요. 이걸 수치화시키는 방법이 삼각함수에요. 이 세상에는 에너지 파동이 있잖아요. 파동을 수치화하려면 삼각함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삼각함수가 라디안이라 해서 나중에 곡선이 되거든요. 그래서 모든 파를 물리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삼각함수가 동원됩니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1학년과 수학교수의 차이점이 뭡니까? 누적된 개념들이 있지요. 수학교수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알았습니까? 그건 천재보다 더 하죠. 자기도 역시 초등학교 때는 몰랐단 말이죠. 그런데 관심이 있어서 2학년, 3학년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대학원까지 박사학위 받으니까 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여기 나오는데 택하심, 거룩함, 제사장 이것은 예수님이 나타날 때까지는 알아요, 몰라요? 초등학생이에요. 몰라요. 그때는 우리는 초등학문 속에 있다 하는데, 모른다고. 택하신 하니까 모르는 게 꼭 아는 체 해요. 이게 또 문제라. 우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신 나라기 때문에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이것 누가 이야기합니까? 거짓 선지자가 하는 이야기하죠. 성령 받은 참된 선지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택하신 민족이기 때문에 주께서 필히 우리를 망하게 하신다. 왜? 신명기 28장에 보니까 이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면, 들어가도 저주받고 나가도 저주받으니까.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 못 지켰으니까 저주받는 것이 당연하니까 이스라엘은 망해야 마땅하다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초딩처럼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는 선택받았기 때문에 안 망한다고 돼있는 거예요. 이 아이디어 어디서 나왔습니까?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피를 믿으라고 한 게 아니고 피를 뿌렸잖아요. 피라는 지식을 믿으라는 게 아니고 피를 뿌렸다고. 피는 지식이 아니고 내가 거역할 수 없는 운명과 팔자가 돼버린 거예요. 오늘 강의에서 제일 중요한 겁니다. 방점 팍팍 찍고, 밑줄 쫙쫙 그어야 돼요.
우리가 피라는 것을 믿어서 구원받는 게 아니고 피가 나를 피를 안 사람으로 제조하고 만들어내죠. 만들어낸다는 것은 우리가 뭐다? 피는 죄인을 의인되게 만들어서 의의 나라, 천국 가잖아요. 그러니까 주께서 우리를 피 아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말은 우리를 뭐로 만든다는 말입니까? 죄인을 더욱더 죄인 되게 만들잖아요. 그 죄가 뭐냐 하면, 택함이 뭔지도 모르면서 나는 택함 받았다고 우기는 그것이 바로 죄면, 거룩이 뭔지도 모르면서 거룩이라고 우기는 그거에요.
그럼 거룩을 제대로 아는 게 뭡니까? 아까 이야기했는데 빨리 한다고 다 잊어버렸죠. 언약이 예수님께 드러나죠. 그러면 뭐가 거룩입니까? 예수님만 거룩이죠. 예수님만 택하신 자고, 예수님만 영원한 제사장. 이 말은 우리는 안 거룩하고, 우리가 선택한 선택 개념은 엉터리고, 우리가 제사장이라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이걸 아는 것이 거룩을 아는 거라 말해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되는 겁니다. 그 작업을 이제부터 우리가 눈여겨봐야 되죠.
무슨 말이냐 하면, 앞으로 24장 쭉 나가는데 그 내용을 무엇에 유념해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야기하는 모든 개념과 그걸 받아들이는 인간들이 어떤 식으로 잘못 오해해서 오해한 것과 진짜 모세를 통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어떤 충돌들이 있었는가를 살펴보면서 그런 충돌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극복했고 인간들은 어느 정도로 불신앙적인 사람들인가를 폭로당하고 있는가를 봐야 된다 이 말이죠. 그때 그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들 이야기죠.
8절에 봅시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제 이해되겠죠. 피를 뿌리는 이유는 우리를 죄인 만들기 위해서. 우리 죄와 피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백성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뒤에 나오다시피 백성들은 피 발랐으니까 우리는 죄에서 벗어났다고 우기는 사람이 되고 만 거예요.
자기 주체를 포기 안 하는 겁니다. 지 주체됨을. 피가 왔으면 우리는 채용됐는데 지가 계속해서 주인노릇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주님의 피 발린 걸 알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알아서 구원받겠습니다.” 아까 화초가 스스로 지한테 물주는 식으로. 성경에서 이런 걸 알아서 막 넣는 거예요. 팥빙수에 여러 가지 넣듯이 오색찬란하게 뿌려서 멋있게 보이는 겁니다.
그러니 사람이라 하는 것이 기껏 스물네 시간 온종일 생각하는 것이 자기를 아름답게 예쁘게 치장하는 그것 외에는 사실은 아무것도 안 한다고 보면 돼요. 그런 자아를 발견할 때 얼마나 그게 감사한지요. 피 없이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 다음에 9절 봅시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이것도 제가 질문함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겠습니다. 질문은 이겁니다. ①그들이 행했다. ②그들이 보았다. 몇 번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그냥 본 거예요? 했습니까, 봤습니까? 여러분 불꽃놀이 할 때 불꽃을 만듭니까, 보는 겁니까? 보는 거죠. 불꽃놀이는 주최 측에서 만들었죠. 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불꽃놀이를 하고 있는 거예요. 보기는 이스라엘이 그냥 보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 모든 구원도 그런 식입니다.
여러분이 성도인데 성도가 매일같이 성도되는 것이 여러분이 행한 겁니까, 그냥 당하는 겁니까? 지금 당하고 있는 거예요. 사모님, 참 요새 많이 당하죠. 좁은 문 간다고. 그냥 당하는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때려치우고 싶어. 마음 같아서는 로또 사서 1등 되서 어린이집 내가 차렸으면 좋겠다. 하여튼 원치 않는 길로 가요. 베드로처럼. 매일같이 당해. 하루 동안 내 뜻대로 된 것과 뜻대로 안 된 것을 계산해 보세요. 뜻대로 안 된 것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매일같이 우리는 불꽃놀이를 그냥 쳐다보는 거예요. 내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을 쳐다봐야 되는 신세. 나는 내 인생을 꾸미고 싶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참기름 바른 것처럼 내 손에서 벗어나 미끄러져서 어떻게 감당이 안 되는 그런 식으로 가고 있는 내 인생, 그냥 쳐다보는 겁니다. 그 자체를 우리 예수님이 나서서 만드는 작품이라고 그렇게 봐주시면 안 될까요? 그것을 아름답게 보시면 안 될까요?
사람들이 자기 인생이 자기 원대로 안 되면 세상에 재미를 못 느껴요. 재미있는 것은 뜻대로 될 때만 사는 재미를 느낍니다. 사람들이 사는 재미는 간단한 거예요. 내 예상대로만 되면 그렇게 모든 게 재미있어요.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는 시청자가 원하는 대로 작가가 써주니까 재미있는 겁니다. 은설이 성공해야 돼. 모든 드라마 무신 같은 것, 모든 것은 사람들이 기대한 대로 움직여줄 때 재미가 나는 거예요. 안철수, 철수가 아니라는데 내가 보기엔 철수에요. 철수가 철수 되려면 사람들이 되는 대로 맡기면 대통령 됩니다.
그런데 자기중심을 비워놓고 원하는 대로 채워지면 이게 절로 굴러가게 돼있어요. 그런데 지 고집이 있으면 아무리 똑똑하고 완벽하고 진리라도 사람들은 이게 싫어. 이건 너무 똑똑해서 지 뜻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여러분 똑똑한 아들이길 원합니까? 엄마 말 듣는 아들이길 원합니까? 엄마 말 듣는 아들이길 원해요. 똑똑한 아들이길 원하지 않아요. 다시 말해서 내 아들이길 원하지 아들 소유의 아들이기를 엄마는 원치 않습니다. 주변에 있는 것들이 다 내 소유가 될 때 비로소 그 장소에서 사는 재미를 느끼는 겁니다. 남편이 내 마음대로 될 때 비로소 여자로서 결혼할 맛이 나고, 아내가 내 마음대로 될 때 비로소 남편은 우리 아내 같은 훌륭한 아내 없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모든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의 행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은 행하는 게 아니고 그냥 지켜보라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 너를 내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가는 지를 너도 네 자신에 떼어내서 지켜보라는 겁니다. 지켜볼까요, 안 지켜볼까요? 택도 없어요. 절대 안 지켜봅니다.
예레미야 50장 20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 그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발견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나의 남긴 자를 사할 것임이니라” 여러분, 다시 읽어볼게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 그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발견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나의 남긴 자를 사할 것임이니라”
이걸 제가 말 바꿔보겠습니다. 그날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에게 돈 맡겨준 것을 이스라엘은 백배나 남겼고, 유다에게 돈 맡긴 것을 유다는 여섯 배나 남겨서 내가 구원했다. 이렇습니까? 아니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돈으로 따지지 않고, 건강이라든지 출세로 따지지 않지요. 뭘 매개로 따집니까? 그날에 그들이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이렇게 돼있죠.
결국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유일한 연결고리가 뭐냐 하면, “너 죄 있지? 그 죄 없애줄게.”라는 멘트로만 우리에게 찾아오세요. 우리가 어디서 살든지, 아침이든 저녁이든 밤중이든 관계없이, 우리가 목욕탕에 가든지 화장실에 가든지 관계없이, 병원에 있든지 관계없이. “많이 아프지. 내가 낫게 해줄게. 맹장수술 많이 아프지. 안 아프게 해줄게.” 이렇게 오시는 게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 안 아프게 하옵소서.” 이건 우리의 기도내용이고. 찾아오시는 것은 너에게 죄를 찾았다 할지라도 너의 죄를 없이하겠고 네가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것을 없애주겠다는 방식으로만 주께서 찾아오시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그 순간 우리가 말기 암 환자고 맹장수술 받아도 구원받는 데는 지장 있습니까? 지장 없으면 됐지. 양푼으로 피 먹을 때 맹장 낫고 난 뒤에 피 받아라. 그런 것 없거든요. 맹장수술 받는 도중에도 피 발라버려요. 그러면 용서받는 거예요. 이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목사님, 우리가 그 죄를 모르잖아요. 죄를 알아야 주님의 용서를 이해할 건데 아무리 봐도 죄 진 기억이 없고 죄 진 적이 있어야 감사가 될 건데 죄 진 게 없는데 무슨 감사가 되겠습니까?”라고 나온다 이 말이죠. 그럼 주께서 뭐라고 합니까? “감사하지 마. 바로 그따위 소리 그게 죄야.” “나는 죄를 찾아보니까 없습니다.”라는 게 바로 죄의 가장 근본적인 밑에 깔려있는 죄가 그 죄였단 말이죠.
우리가 죄가 없는 게 아니에요. 우리 안에서 편집한 겁니다. 죄 될만한 것은 가위로 잘라버리고 우리가 괜찮다고 남한테 착한 일했다는 것만 남겨둬서 앨범에다 저축해놓으니까 내가 아무리 들춰봐도 착한 것만, 잘난 것만 보이니까 죄 안 진 게 되는 거예요.
SBS에서 월요일 아침 여덟 시 사십오 분에 어떤 성우가 나오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블랙박스로 본 세상] 그 블랙박스로 본 세상을 보면 운전하는데 갑자기 오토바이가 뛰어들어서, 오토바이면 괜찮아. 지난번에 보니까 큰 유조차가 내리막길에서 커브에서 속도를 못 줄여서 바로 앞 차를 박아서 완전히 박살나버렸어요. 그게 불과 2초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아침에 출발할 때 나는 시동 걸어놨는데 같이 출근하는 아내가 2초 늦었다가 박가지 긁었다고. “맨날 늦나? 빨리 가자.” 아내가 하는 말이, “2초 늦은 걸 어떠나?” 둘이 아침부터 삐져서 갔는데 블랙박스에 2초 앞서 간 차가 박살났을 때 뭐가 죄가 되겠습니까? 그때 남편이 2초 늦었다고 아내한테 잔소리한 게 뭐가 되겠어요? 살짝 그것도 깊이가 아니고 살짝 미안하겠지요.
그렇다면 보세요. 얼마나 많은 행운이 우리에게 찾아왔었습니까? 우리도 눈치 못 채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행운이 다녀갔습니까? 그때마다 우리가 다 찾아내서 인사하고 선물 다 줬습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줬습니까? 그것 다 고마워했습니까? 미국만화에 보면 나오지요. 철없는 고양이가 너무 기분 좋아서 걷다보니까 허공을 걸으니까 답답한 생쥐가 빌딩 사이 허공에다 밑에 받침대를 가는 곳마다 다 받쳐서 떨어지지 않도록 조치했는데 고양이는 그것도 모르고 노래 부르고 있고 나중에 땅에 내려오니까 고양이는 지가 잘나서 안 다친 것처럼 쥐를 무시하고. 그런 만화 기억납니까? 나지요. 꼭 우리 모습이 그래요.
하나님이 발걸음을 세잖아요. 머리카락도 세잖아요. 우리는 매일같이 천사에 의해서 도움 받고, 혜택 받고 있는데 언제 찾아가서 언제 인사 다 했습니까? 미카엘 지난번에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내 뜻대로 안 되는 것만 짜증내죠. 우리가 이 정도 생겼으면 감사합시다. 이 정도 살아온 것도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하라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그 공로를, 그 은혜를 드러내라고 우리가 지금 이 시간까지 살아오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그걸 일일이 다 찾지 마시고 불현듯 자기가 얼마나 탐욕자인 것을 깨달을 때 그 순간 주께서 감사하라고 깨닫게 하신 줄 아시고 그 순간이라도 주여, 이 같은 죄인을 피로서 죽음으로서 용서해주시니 감사하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살아계셔서 날마다 도와주고 사도 바울 가는 길 곁에 서서 너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된다고 알려주시고 풍랑이 이는 것도 다 하나님의 계획이었는데 우리는 눈만 뜨면 불평하고 짜증내고 하나님이 나한테 해준 게 없다고 대들고 대항하는 그런 유감없이 우리 죄성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것조차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주의 십자가를 드러내기 위한 방편인 줄 아오니 우리가 항상 주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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