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에스겔1장 4-14(하늘성전의 구조)120815-이 근호목사
2강-에스겔1장 4-14(하늘성전의 구조)120815-이 근호목사
이름 : 오용익(IP:183.105.212.7)
2강-에스겔1장 4-14(하늘성전의 구조)120815-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1장 4절에서 14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151페이지입니다.
에스겔 1:4-14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며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그 다리는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같이 빛나며 그 사면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행할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그 얼굴은 이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리웠으며 신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같이 빠르더라.”
에스겔 1장 4절에서 방금 보았던 것은 하나님의 모습을 이야기한 겁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실상 하나님의 모습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그 앞에 있는 천사들의 모양새가 여기 나와 있습니다. 네 천사들의 모습이 이렇게 등장하는데 이 천사들의 모양새를 우리가 구성하고 있는 이 현실 속에다가 용납을 해야 될까요, 말아야 될까요? 천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다 집어넣어줄까요, 아니면 뺄까요? 천사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집어넣게 되면 그 때부터 우리 자신이 달라지고 바뀌어야 됩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천국에 가려면 세상에서 살던 우리가 바뀌어져야 돼요.
바뀌어져야 되는데 안 바뀌고는 우리가 천국에 못갑니다. 제가 바뀐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성경 요한복음 3장에서는 거듭나라, 다시 태어나라, 라는 어려운 주문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한 번 태어난 인생, 밥 먹고 사는 것도 힘들어서 겨우겨우 아슬아슬하게 가는데 재주를 넘으라는 식이지요. 다시 태어나라니, 이것은 있는 몸체조차 감당 못하는 입장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못 본다고 하니 우리보고 뭘 어쩌란 말입니까? 바뀐다고 해도 옷을 갈아 입으라든지, 이발을 하고 오라든지, 똥배를 집어넣고 오라는 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 가능한데 다시 태어난 채로 오거라, 이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숙제 같은 것을 짊어지게 되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아셔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는 명령, 거듭나라, 하는 이 명령은 그 명령을 듣는 순간부터 내 몸은 내 관리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명령을 하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을 하는 것은, 십계명을 비롯해서 많은 명령이 있지요, 이 명령을 하는 것은 내가 내 몸을 관리할 수 있는 주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말은 달리 해서 ‘네 몸에서 손을 떼라’ 하고 같은 이야기에요. 네 손을 떼고 내가 너를 직접 손대겠다, 손대는데 어떻게 하는가, 내가 너한테 명령한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너를 다시 태어나게 만들겠다,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제일 힘든 것이 뭐냐, 공포스럽다는 거예요.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어떤 사람은 눈뜨기 전에 꿈속에서 이미 그렇지만, 눈을 뜨면서부터 인간은 무섭습니다. 산다는 것이 무서워요. 전부 다 미친 사람들 같아요. 세상 전부가 미친 사람들 같아요. 뭔가 무서움을 벗어내지 못해서 환장한 것 같은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사가 다 무서워요. 시장에 가서 장을 보면서도 무서워요. 이 집에 가야 헐하게 살까, 저 집에 가야 헐한 값으로 살까, 이것도 겁나요. 세상 모든 들리는 것, 보는 것이 우리를 천국가게 하기 위해서 나를 거듭나게 하는 일하고 아무 상관없는 일들이 우리를 꽉 조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야 하늘나라 가는데 거듭나는데 전혀 보탬이 안 되는 일들이 온 주변에 가득 차 있어요. 대표적인 것은 양학선 선수가 체조 도마에서 금메달 딴 것, 기 보배 활 쏜 것, 박 태환 수영 금메달 못 딴 것, 축구 선수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세레모니 하다가 시상대에 못 올라간 것,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정치적인 세레모니를 하다가 시상대에 못 올라갔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공포가 되는 것은 ‘앞으로 올림픽 할 때는 주의해야지’라는 공포로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겁니다. 제가 이번에 서울 도서관에 갔다가 박 윤진 성도를 만났어요. 그분이 회사생활을 이야기하는데 그 자체가 공포입니다.
현재 과장인데 진급이, 승진이 무서운 거예요. 자리를 확확 빼버리니까. 이것은 나중에 부장되어서 임원되기 전에 탈락해서 퇴직할 그 이전부터, 과장자리에 있을 때부터 벌써 겁나는 거예요. 주부가 애 세 명 키울 때 다 잘 자라주면 좋은데 행여나 애 하나가 중간에 아프다, 그러면 목돈이 들어갑니다. 목돈 안 들어가도 혹시 들어갈까 싶어서 또 겁나요. 다른 애들 조기유학 보내는데 자기 애 못가면 영어 못하는 바보 될까 싶어서 남 유학 가는 그것조차도 우리한테는 압박과 스트레스와 공포로 주어집니다.
어느 한 순간도, 어느 시점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리는 공포에 의해서 쫓기듯이 사는 거예요. 공포가 떨어져 나가는 순간이 없어요. 매 순간이 공포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입니다. 아마 노인네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오늘도 할 짓이 없이 하루 그냥 보내려 하니 그것도 공포스럽지 싶어요. 그것을 술이나 담배로 그 짧은 순간 잊겠지만 술 깨면서 머리가 아프면 그것도 공포스럽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천국가게 한다, 할 때에 우리는 어떤 오해를 하느냐 하면, ‘그래, 이 세상 산다고 고생 너무 많이 했어. 애들 키운다고 고생 너무 했어. 좋은데 천국으로 가야지.’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천국을 만드신 주님이 우리에게 마중 나와서 하는 말이 ‘네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 했어요. ‘너 고생스럽냐, 천국에 넣어줄게.’ 이런 것은 없습니다. 이런 것은 한국교회가 이야기하는 것이고 실제로는 예수님이 그런 이야기한 것 아니에요. 예수님이 이야기한 것은 뭡니까? 잘 들으세요.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 그겁니다. 한국교회는 ‘천국에 넣어줄게’ 하잖아요. 예수님은 반대로 합니다. 천국에 못 온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몸 아프면 만사가 짜증나요. 몸이 아프니까 자살해서라도 인생 마감하고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은 충동이 왜 없겠습니까?
저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있을 거예요. 세상일 맘대로 안 되는데 치사스럽게 실패하며 사는 것 보다는 아예 그런 욕을 안보고 안 듣는 것이 더 낫지요. 하지만 주께서 또 이야기합니다.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못 온다.’ 가고 싶어도 저쪽에서 오지 말래요. 안 거듭났거든 오지 말라는 겁니다. 십계명 한 계명도 우리가 못 지켜요. 하나님께서 탐내지 말라, 고 한 것도 못 지키는 주제에 거듭나라는 그 말씀을 무슨 수로 지킵니까? 이것은 안 돼요. 못 지키는 거예요. 주께서 못 지키는 말씀을 주는 것은 ……, 벌써 잊으셨지요, 친절을 베풀어서 다시 이야기해 드립니다.
주께서 우리가 지키지도 못 할 명령을 주시는 이유는 이제부터 네가 너한테서 손 떼고 네가 안 되는 그 일을 내가 되게 하는 식으로 직접 너에게 손을 대겠다, 라는 식으로 가는 겁니다. 어떻게, 거듭날 능력도 없는 인간을 거듭나게 만들고야 말리라, 그렇게 되는 겁니다. 거듭나게 해서 천국에 넣어주고야 말리라, 이것이 주님의 솜씨입니다. 주님이 다가오심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것은 뭡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만 하면 돼요. ‘ 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나이다.’ 참 쉽죠, 잉! 굉장히 간단한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4장에 보면 ‘값없이’ 넣어준다는 말이 나옵니다. 값없이, 사람들은 그 대목을 왜 훌쩍 지나가는지 모르겠어요. 그 대목이 얼마나 중요한 대목인데,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 그 대목이 로마서 4장에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왜 그냥 슬쩍 지나가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그냥 지나치면서 에베소서나 갈라디아서의 ‘하라’ 하는 것들을 가지고 되지도 않는 것을 한다고 그렇게 억세게 하잖아요. 기도하라, 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 사람 보면 제가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제가 기도하라고 해서 기도했고 헌금하라고 해서 헌금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합니다. ‘거듭났습니까?’ 그러면 꿀리기 싫어서 거듭났다고 이야기해야 되거든요. ‘예, 거듭났습니다.’
‘거듭날 때 무슨 방법으로 거듭났습니까?’ 저쪽에서 할 말이 없지요. 차마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말을 못해요. 왜,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말은 자기가 안했다는 뜻이거든요. 제 말 맞잖아요. 처음부터 우리 육으로는 할 것이 없잖아요. 그 말이 제 말 아닙니까?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말은 우리가 거듭남에 대해서 개입할 것이 없었다, 그 말 아닙니까? 그걸 고백하시면 그게 천국 가는 사람이라니까요. 제가 저한테 손 댄 것이 없이 그냥 덜렁 천국가게 되었습니다, 그 고백을 쏟아내면 된다 이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 고백을 하는 대신 얼마나 우리는 내가 이만큼 했다는 그것을 자랑 질 하고 싶어서 마음이 막 바쁘잖아요. 그러면 방금 신약 요한복음 3장에서 성령님이 하신다면 구약에서 성령이 오기 전에는 뭐가 했는가, 그게 오늘 본문 에스겔 1장에 나온 겁니다. 에스겔 1장 4절부터 14절에 보면 천사들이 나옵니다. 4절에 보면 “번쩍번쩍” 6절에 보면 “네 얼굴” 7절에 보면 “마광한 구리” 8절에 보면 “사람의 손”이 나오고 9절에 보면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0절에 보면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고.
저는 이 대목을 보면서 뭘 생각했느냐하면, 야외콘서트 할 때 앰프 시설이 생각납니다. 총 열 여섯 개 달린 스피커, 이쪽에 네 개, 이쪽에 네 개, 이쪽에 네 개, 이쪽에 네 개, 마이크에 대고 소리 내면 한꺼번에 소리가 울리는 그 앰프. 넷이 한조가 되어서 넷은 사람의 얼굴이고 넷은 사자의 얼굴이고 넷은 소의 얼굴이고 넷은 독수리 얼굴이다, 그 다음에 12절에 보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한다. 방금 제가 나열한 이 말을 한꺼번에 딱 줄여서 ‘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습니까?’ 물으신다면 우리가 우리를 손댈 수 있는 인생이 아닌데 우리 대신 훨씬 활동성 있는 분, 네 천사들이 이렇게 하나님 보좌에서 나와서 움직임을 보이면서 왜 활동 하겠습니까?
왜 활동하겠어요? 우리가 나에게 손대는 것이 아니고 그분들의 활동력에 의해서 우리가 구원받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 처음에 이야기했잖아요. 여기에 나오는 천사를 우리의 삶의 현실에 집어넣을까요, 말까요, 라고 질문 드린 겁니다. 네 존재의 천사를 우리 인생에 심어놓으면 오늘 아침에 밥 먹고 설거지 하고 빨래한 이 모든 것도 천사들의 힘에 의해서 우리가 하게 된 것이고 만약에 천사를 빼버리면 우리는 하루하루 공포에 쫓기듯이 살게 되고, 그런 겁니다.
여러분, 천사가 귀신을 무서워할까요, 안할까요? 천사가 여기 있는데 ‘귀신 나온다. 왁!’ 하면 천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