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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행 7" 1- 3 (스데반의 설교)우리교회사도행전

Re..행 7: 1- 3 (스데반의 설교)

이름 : 이근호(IP:)

사도행전 7:1-3(스데반의 설교)

스데반의 설교

2004년 4월 7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7:1-3

7:1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7:2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7:3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오늘 이 시간이 이 설교시간, 이 강단에 스데반 집사님이 서서 설교하신다고 생각해 봅시다. 나중에 설교 끝나고 난 뒤 우리 교인들이 스데반 집사님에게 분노의 감정을 쏟아낼지 아니면 같이 동참하겠다는 마음을 쏟아낼지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스데반 집사님의 생애 마지막 설교입니다. 그는 이 설교 마치고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인물이 됩니다. 아마 그는 자기 생애의 마지막 끝 선을 딛고 있다는 것을 짐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보통 사람같으면 그동안 자신이 수행한 숱한 신앙적 업적들과 공적으로 내세워 더 오래살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는 많은 기적을 베풀었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지혜와 성령의 충만으로 바른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활발한 활동으로서는 그의 수명 연장에 보탬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죽음이란 결코 실패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었다고해서 그 인생이 망한 인생이라고 해석해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사도행전 6:15절에 보면,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천사의 얼굴을 하면서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마치고 죽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과 눈을 마주치면서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그의 설교는 이미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인물임을 확실히 드러내면서 행한 설교입니다. 그의 얼굴이 왜 천사같이 밝은 얼굴이었을까요? 그를 고수하고, 그를 분노로 처단하고 싶은 무리들 앞에서도 말입니다. 그것은 그는 너무나 확실한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너무나도 분명한 진리 한가운데 있으면 천사처럼 얼굴이 펴집니다. 그렇지 않고 마냥 살아남고자 하는 데에 신경을 쓰면, 평안함 대신이 자기 방어와 초조감, 조마조마함, 불안감으로 얼굴이 펴지지를 않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개의치 않는 것은 이미 그는 산 자의 세계 속에 속해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졸지에 죽는 것이 만약 인생으로서 실패작에 해당된다고 생각했다면 그의 얼굴은 결코 천사같은 얼굴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미 진리를 알아버렸고 그 진리 안에서 마음껏 진리를 즐기는 그에게 있어 그 어떤 위협도 천사의 얼굴을 걱정으로 주름지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이 스데반 집사님을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델로 보고 싶습니다. 뿐만아니라 오늘날 성도들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은, 신자의 모델을 큰 교회 당회장 목사를 염두에 두는데 그것은 악마가 만들어낸 거짓된 모델상입니다. 특히 신학생들이 목회자들이 이 스데반 집사님처럼 되고 싶어하지 않고 큰 교회 당회장이나 총회장을 꿈꾸는 것은 스데반 집사님이 속해 있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들은 교회라는 것을 이 세상의 일부를 점유한 또하나의 사업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자신의 살 자리를 포기 못하겠다는 심보를 지니고 큰 교회 당회장을 부러워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업이 자기 수명 연장에 보탬이 될 것으로 은근히 기대하는 자들입니다.

사람은 본성대로 삽니다. 본성을 결국에는 숨길 수 없습니다. 본성대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인간들은 스데반 집사님이 가신 천국과 반대편으로 빠질 사람들입니다.

오늘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는 과거 이스라엘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두고서, 인간의 범죄에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과 용서와 인내심이 한데 어울려서 엮여진 역사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무수하게 그 사랑을 배반해 온 배반의 역사라는 겁니다.

지금 스데반 집사에게 심문하는 대제사장이 물은 바는 이것입니다. "네가 정말 성전이 헐려야 마땅하단 말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 답변을 하면서 스데반집사는 왜 과거 이스라엘 역사를 다 끄집어내는 겁니까? 그것은 과거 하나님에게 반역했던 그 인간성이 유감없이 폭로되는 바가 바로 성전 고수라는 것을 분명히 말합니다.

성전을 고수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구원이 가능한 통로는 오직 성전 뿐이라는 의식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을 고수하게 되면 그 성전 고수함에 기여한 바에 따라서 행함의 질이 결정되고 말 것입니다.

평생 성전 활동에 종사했던 자들과 그렇지 않고 성전과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사이에는 구원의 격차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곧 '행함으로 구원이 된다'는 논리로 정착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 스데반 집사님의 주장은 이러합니다. 긴 이스라엘 역사 속에는 우리의 조상들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서 살아왔다는 겁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들을 보내어 그것은 패역한 심성을 드러내었는데 이제 마지막 때에 예수님을 하나님은 보내셨다는 겁니다.

여기서 스데반 집사님은 계속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을 거론한다는데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그 설교의 요지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에 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란 행함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으신 분의 의로운 공로만이 성립된다는 것을 말해주고자 하는 겁니다.

역대상 17:4에 보면,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즉 다윗이 먼저 하나님께 언약궤가 초라한 천막에 놓여 있는 것이 죄송스러워서 꿈에 성전을 지을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 단호하게 말리고 나옵니다.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전은 어떻게 이루어진다는 말입니까?

10절에 보니,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또 네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울찌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직접 집을 지겠다는 겁니다. 그 집이 바로 다윗의 자손에 와서 지을 집입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현재 성도는 예수님의 몸의 사지요 지체입니다. 집이란 지붕 아래 방도 있고 부엌도 있어 감싸고 있게 되면 그것이 '하나'가 되는 것처럼, 오늘날 성도는 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그 몸에 놓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더 이상 인간의 행함이 필요치 않습니다. 바로 이런 몸 안에 놓인 자에게라만 성령이 찾아오게 되어 있고, 성령이 오신 경우에 한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공로만을 거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예수님의 공로를 성전 존재론를 들고 나와서 공격해 대는 사고방식이야말로 그동안 이스라엘 역사에서 쉴새없이 하나님의 뜻에 배반했던 그 조상들의 불신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 스데반 집사님의 역사 이해입니다.

사람이 자기 역사를 스스로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은 현재 자기 자신의 공로를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스데반 집사님에게 있어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러한 성전 고수에 따르는 인간 행함의 죄악성을 단호하게 보여진 사건이라는 겁니다.

친히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세워준 성전이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거기에만 계신데 어째서 아직도 성전을 고수하는가 이 말입니다.

오늘날도 예외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를 중심으로 사람을 훈련시켜 교회사람 만들려고 하려는 것은 스데반 집사님을 죽이려는 사람들과 같은 정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성전이 없으면 아예 하나님을 붙잡아 둘 수 없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심리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신앙 장사를 벌리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진리이며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현실입니까? 그것은 이 시대의 성전이란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 몸 뿐이라는 겁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아무 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성령 안에서 얼마든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은 결코 실패적인 인생이 아닙니다. 심지어 목숨까지 일찍 빼앗겼다고해서 실패한 인생이 아닙니다.

진정한 실패란 아직도 눈에 보이는 세상 것을 갖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도리어 스데반 집사님 같은 분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참된 구원이란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 몸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눈에 보이는 교회를 잘 되게 하려는 생각보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대로 십자가 복음만을 정확하게 전달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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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 7: 1- 3 (스데반의 설교) - 이근호 ┼
본문 : 사도행전 7장 1-3절
제목 : 스데반의 설교
일시 : 200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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