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하나님
57 이기적인 하나님씨의 활동 마 13장천국엔 무수한 함정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믿음하나 달랑 걸고, 행함하나 달랑 걸고, 믿음행함 하나 달랑걸고, 너도나도 천국에 덤벼드는자가 한 둘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 마다 다들 좁은 길로 갈려고 몸부림치기에 그 좁은 길이 그만 넓은 길로 되고만 실정입니다. 너도 나도 믿음 하나 붙잡으면 천국인줄 알고있고, 너도나도 행함 하나 붙잡으면 구원인 줄 알고 있고, 너도나도 성화 붙잡으면 거룩인줄 알고 있고, 너도나도 새생명의 삶 붙잡으면 성령안에 있는 줄 알고 있고, 너도나도 십자가 붙잡으면 주님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천국행의 힌트라면 무엇이든지 손에 가득 잡아 쥘려고 합니다 니고데모처럼, 예수님 앞에서 겸손하고, 신실하고, 모든 것을 성경적으로 믿을려고한 그 자세. 이거 이거 대단하지 않습니까? 니고데모 보다 삶을 낮추는 자 아마 없을 껍니다.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열쇠(키)입니다. 처음도 나중도 모든 열쇠는 예수님입니다. 이 점을 놓치지 맙시다. 절대로 인간의 손에 맡기질 않으시고 직접 일하십니다. 천국의 주인, 천국의 오픈 개설한자, 천국의 당사자, 천국을 몰고온자. 그 본인이 아무나 넣어 주질 않습니다. 예정론을 들이밀고 들어갈려고 해도 태클 걸려 넘어지고, 겸손을 들이밀고 들어갈려고 해도 넘어지며, 정통 보수 개혁 신학적 믿음을 들이밀고 들어갈려고 해도 차단당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로 문을 두들겨도 천국문은 열리지 않고, 교회 충성봉사 이웃 사랑을 통해 남을 섬기는 일만 살아온 낮은자의 삶도 천국은 거부합니다. 그런 것 가려내는데 천국은 기가막히게 잘 가려내거든요. 저마다 다들 열쇠를 들고 와서 자기 믿음으로 만든 열쇠, 자기 행함 실천으로 만든 열쇠로 열려고 달려들어도 패스워드는 비밀번호는 주님에게만 있는 겁니다.제게 조카가 있는데 게임을 하고파서 제 컴을 만지다 보면 여기저기 다 누르다 보니 시스템 따운시켜 나중엔 리셋 버튼 자기 멋대로 눌러서 그만 안전모드 상태 그것도 모자라서 결국 컴이 맛이 살짝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포맷을 했지요. 지금 컴맹인 분들 무슨 말인지 모르실껍니다. 한마디로 컴 고장나게 했다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패스워드를 비밀번호를 걸어두어서 그만 컴퓨터를 잠궈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만 삼촌은 자기만 컴퓨터 하고 나는 안해주고 밉다고, 이기적이다구, 삼촌 싫다고 하더군요.그래서 제가 컴을 켜는 순간 옆에서 비밀번호 알아내겠다고 딱 달라붙어서 지켜봅니다. 저는 비밀번호를 13자리를 했기에 아무리 옆에 있어도 더군다나 자판기 글자 인쇄물이 지워진것도 6개씩이나 있는데 무슨 수로 자기가 외우겠습니까? 하여튼 비밀번호 쳐 넣으면 중간에 놓쳤다고 아 아깝다고 외치면서 제 방을 나가 버립니다. 어떤 인간도 성경에 나온 천국 이야기를 통해 힌트 삼아 비밀번호 넣어 본들 소용없습니다. 산상수훈을 지켜본들 해도 안통합니다. 열쇠는 예수님 뿐인데요 뭘. 그것이 너무너무 기쁘질 않습니까? 컴 고장 날 일이 이젠 없잖아요? 천국에서 쿠테타 일으킬 존재들은 아예 원천 차단 시키는 겁니다. 뭘 지켜서 천국 들어가겠다는 심뽀는 또 다시 천국을 두 번 반란을 일으킬 자들입니다. 그럼 천국이 두 번 파괴 되게요? 그렇다면 제 조카가 제 컴을 사용하는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자기 따나 저에게 알랑방구를 끼며 삼촌 이 과자 묵으라 저 과자 먹으라 온갖 아부를 합니다만, 절대 허락 하질 않습니다. 그럼 언제 컴을 하라고 할까요? 제 마음대로입니다. 이 얼마나 이기적입니까? 너무 독선 적 아닙니까? 네 맞지요 컴을 생각하는 것은 저 뿐이니깐요. 고치는 것도, 컴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도 저만 하지요. 조카야 컴 가지고 놀기만 하면 되지만, 전 여기 중요한 자료들을 날려버리면 안되니깐요. 그럼 언제 사용하게 하느냐 숙제 할때만 열어 줍니다. 그것도 옆에서 제가 지켜볼때죠. 안그러면 자기 혼자 별에별 게임을 다 깔아버리거든요. 정 하고프면 아래층에 가계에 있는 컴을 사용하라고 하지 제 컴은 못 사용토록 합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영생하게 하는 생명나무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이 될까봐 싶어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시고 두루도는 화염검으로 패쓰워드 걸어버리는 그래서 어떤 열쇠로도 생명나무를 손 못대도록 자물쇠를 채운 겁니다.이처럼 천국에 대한 비유는 한마디로 말해 천국갈 꿈을 꾸지 말라 라는 겁니다. 그래서 비유는 그 열쇠가 누구냐 라는 것을 항상 목적으로 선포 증거 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은 그 열쇠가 예수님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세계가 아니라, 내 쪽에서의 해결점으로 본다는 겁니다. 내 문제다는 거죠. 옳치 방법론이 떨어 졋구나 이제 비밀번호를 캐내면 구원은 내꼬야, 천국은 내꼬야 라고 자기만의 열쇠를 제작하며 미션성공 미션승리를 외치며 단계별 첩보 작전을 펼치듯 정보 스파이처럼 해커처럼 패쓰워드 알아낼려고 별짓을 다하는 겁니다.오늘 이 씨뿌리는 비유는 인간의 그런 비밀번호 알아내기를 원천 봉쇄 하는 내용들입니다. 농부가 씨를 땅에 뿌립니다. 마구 마구 뿌립니다. 어떤 씨앗은 돌 밭에. 어떤 씨앗은 길가에. 어떤 씨앗은 가시덤불에. 어떤 씨앗은 좋은 땅에 뿌려집니다.여기서 네 종류의 밭이 나옴으로 인해 우리는 힌트다 아 어느 밭에서 열매를 맺는가? 옳치 좋은 땅이넹 나도 좋은 땅처럼 되어서 열매 맺으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며는 함정에 빠진거지요. 천국이 그렇게 호락호락 한 곳이 아닙니다.오히려 땅은 고정되어 있습니다. 씨가 열심히 움직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천국을 가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자기 백성 찾기 위해 열심히 움직인다는 겁니다. 저번주에도 그렇게 말했지요.저는 이 비유가 구약의 광야교회 상황과 같다고 봅니다. 물론 예수님의 복음 증거하시며 활동하시는 그 움직임과도 동일합니다.구약 출애굽기를 보며는 첫 번째 (마 13: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마 13: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마 13: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마 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는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구약의 애굽의 바로 왕의 강퍅함이 바로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는 것을 빼앗은 길가에 뿌려운 모습입니다. 모세의 하나님 말씀을 대언한 것을 무시하고, 참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선지자를 죽여버린 자들의 모습인 겁니다.둘째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여호와의 은혜가 날마다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만나, 구름기둥 불기둥, 기타 등등 그 순간 순간적 구원의 역사는 기쁨으로 받아들였으나 물없는 곳으로 양식 없는 곳으로 인도 했을때에는 당장 원망하는 그 모든 은혜를 스스로 거부하고 원망한 모습입니다.(마 13: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마 13: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마 13: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마 13: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그럼 그 동안 뿌려진 은혜는 무엇입니까? 열매는커녕 다들 원망했고 다들 광야에서 죽었으니 효과 없네요? 아니지요 효과를 백퍼센트 발휘를 했지요. 은혜가 무분별하게 마구 떨어지는 것 같아 보였지만 그 은혜는 그 은혜의 역할을 제대로 한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는 은혜를 한 없이 베풀어도 만족함 없이 교만한 목, 뻣뻣한 목을 자랑합니다만, 바보처럼 미련하게 은혜만 잔뜩 베풀어주는 줄 알았지만 바로 그런 뻣뻣한 목을 가려내어 부러드리기 위해, 낮추기 위해, 꺽어버리기 위해 은혜가 날마다 만나처럼 불기둥 구름기둥처럼 마구 마구 쏟아지는 겁니다. 은혜는 은혜 아는 자와 만나게 되지, 공짜라고 마구 마구 이용해먹을려는 자는 도리어 함정에 빠지게 되는 꼴이 되는 겁니다.세 번째로(마 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마 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이 그 가나안 민족을 몰아내지 못함으로 인해 늘 가시처럼 가나안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게 되는 겁니다.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약속의 땅에 들어왔지만 그들은 그 속에서 천국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지옥을 누리는 겁니다. 늘 가시밭 같은 세상살이 하는 겁니다. 12명의 정탐꾼 이야기를 통해서 10명은 생지옥을 단 한명은 같은 장소 같은 시간 똑같은 코스를 돌면서도 생천국을 누렸다고 배웠습니다.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그 은혜가 허락된 자를 기필코 찾아내는 방식이다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은 철두철미하게 가려내신다는 겁니다.이 천국의 활동, 곧 구약의 여호와의 열심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신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죄의 권세와 싸우면서 전쟁을 펼치시면서 거룩(죄와 구별된)의 발자취를 남기면서 그 자석에 끌려 당겨져서 자신이 죄인임을 긍휼과 자비와 인애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자임을, 저번 주에 말했듯이 마치 N(거룩)극 자석에 N(의인)극은 밀쳐버리고, 서로가 서로를 거부하게 되고, 오히려 반대로 N(천국,거룩,여호와의 열심, 예수님) 극은 S(비천한자,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극이 딸려 척척 붙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겁니다.(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자석(천국, 예수님)의 활동만이 철가루 돌가루를 구별할 수 있지, 이미 모랫사장에 파묻혀 살아가는 자들은 길들여진 세상에서 못 빠져 나옵니다.그래서 이기적인 하나님은 모든 열쇠를 예수님에게 천국 되신 예수님에게 씨앗 되신 예수님에게 허락 하셨습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열쇠가 될 수 없습니다.(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결론적으로 씨앗은 바로 연약하고 가치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이 땅에 뿌려집니다. 흠모할 모양도 없고 귀히 여기는 자 없는 모습입니다. 어느 누구 하나 그 작고 연약한 힘없어 보이는 씨앗이 몰고 오는 천국의 비밀을 눈치채는 자 없습니다. 그러나 씨앗은 꿋꿋하게 자신이 정착 할 곳을 찾아서 그 속에 머물러 열매는 맺습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즉 좋은 땅은 이 씨앗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아무리 지가 좋은 땅이라 우겨도 말이지요. 땅에 발이 달렸나요? 즉 중요성이 땅이 아니라 씨앗이라는 겁니다.씨앗이야 말로 그 땅의 본성을 들추어내는 미끼였고, 동시에 좋은 땅에서는 열매인 겁니다. 씨앗에 좋은 땅이 걸려든 겁니다. 좋은 땅이 주체가 아니라 씨앗이 주체요 씨앗 때문에 그 땅의 모습을 알게 되니깐요. 예수님에게 베드로가 낚여진 것처럼 말이지요.주님. 주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뿌려집니까? 그 은혜 속에서도 우리는 내 믿음 챙기기, 내 천국 챙기기, 내 가족, 내 교회, 내 교단, 내 신학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혼자 단독적으로 다 이루셨다는 그 말씀은 여전히 무시 되고 있습니다. 오로지 주님의 십자가의 용서로 일하심을 알게 하소서. 인간에게 절대로 어떤 기대도 걸지 않고 주님 홀로 이루신 그 나라를 허락하여 주소서. 우리의 어두운 눈과, 완악한 마음과, 그런 우리의 뻣뻣한 목을 뿌러드려 주시고, 낮추셔서 주님이 낮아지신 그 길에 동참하도록 예수님의 마음을 허락하여 주소서. 불로 태우시고 물로 씻어 주소서. 예수님께 부탁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