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출 10:13-20 (자연의 뜻)
Re..출 10:13-20 (자연의 뜻)
이름 : 이근호(IP:)
자연의 뜻
2004년 3월 14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10:13-20
10:1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에 미쳐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 들인지라
10:14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러라
10:15 메뚜기가 온 지면에 덮여 날으매 땅이 어둡게 되었고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전경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
10:16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득죄하였으니
10:17 청컨대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
10:18 그가 바로에게서 나가서 여호와께 구하매
10:19 여호와께서 돌이켜 강렬한 서풍이 불게 하사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 넣으시니 애굽 온 지경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니라
10:20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사람들은 자연 세계에 관심이 대단합니다. 이 대자연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가 하는 것을 알고 싶어합니다. 왜 알고 싶은가 하면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연 속에 담겨 있다고 여겨지는 신의 섭리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은 인간도 신처럼 마음대로 자연세계를 부리고 싶은 것입니다. 즉 자연세계에 대해서 신에게만 독점권을 넘겨주기 싫다는 겁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서양에서는 과학이 발달하는데 동양에서는 발달하지 못했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최고 수준의 라이벌, 즉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인간이 신을 인정하고 믿는다는 말은, 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그 신마저 극복하여 신으로부터 아예 영원히 자유로워지려는 야심이 깔려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모든 피조 세계가 구체적인 인물에 속하는 하나님에 의해서 지음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피조세계 안에는 신의 개성과 특징이 필히 함유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인간 각 개인 속에 있는 신의 특성과 개성을 분리하는 작업을 개시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신의 속성을 따로 뽑아내어야 하기 때문인데, 신의 속성 안에는 전지전능의 씨앗이 배태되어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전지전능 만큼은 신도 축복으로서 팍팍 밀어준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인간 속에 있는 신의 특성을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을 발췌해 내어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만이 하나님과 연관짓는 방도로 보았습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지시와 명령을 받고 그대로 수행할 수 있는 통로를 인간이 마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과학을 발전시키면 시킬수록 하나님의 뜻에 더 철저하게 복종하는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이로서 인간이 대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는 정당성이 보장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라이벌로 여기는 사고에서 나온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벌리시는 일에 인간이 관여하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도 신처럼 존재하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오해는 인간들이 일방적으로 자기 가치를 내세우고자 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하나님은 대자연을 그런 식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의 과학적 사고방식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끼어 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협조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대자연을 무엇으로 인도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언약입니다.
여러분, 언약이라면 노아의 방주 언약이 생각날 것입니다. 방주라는 배에 들어간 사람은 살았고, 방주 안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대홍수에 몰살당한 그 방주 말입니다. 그렇다면 홍수 심판이 그치고 더 이상 방주가 필요 없게 될 때에 인간과 이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원칙이 공백상태에 들어가게 될까요?
아닙니다. 노아 식구가 방주에서 나와서 새 땅을 밟게 될 때에 이미 거기에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새로운 언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홍수 이후에 이 대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일관된 지침이 제시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지개 언약'입니다. 창세기 9:12-13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언약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갖는 이유는, 언약대로 일을 처리하게 되면 인간의 자율성이 훼손되는 것을 못마땅해 하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들은 자신의 의지와 결단에 의해서 교회도 나가고 하나님도 믿는다고 자부하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인간들의 왕성한 의욕 앞에서 언약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고방식이 이어져서 '신처럼 모든 것을 알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사람은 보는 것만큼 알게 되고, 아는 것만큼 믿게 되는 겁니다.
이런 사고방식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을 불필요하게 여길 것이 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준해서 모든 것을 처리하려고 할까요? 그것은 악인이든 선인이든 모든 이에게 동일한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즉 마태복음 5:45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자... 이런 하나님의 언약적 처사에 대해서 사람들이 과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선 이런 은혜에 마음껏 이용하려는 악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 생각에는 어차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니 이런 기회를 통해서 마음껏 원 없이 악한 모든 것을 자유스럽게 체험해 보겠다고 나섭니다.
그런데 반면에 소위 의인되는 쪽에서 마음을 먹는 사람들은 이런 악인들의 횡포와 범람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 불만의 소리를 높이게 됩니다. 즉 하나님은 한없이 무능하다는 겁니다. 어떻게 저토록 죄악 된 자들이 활개치는 것을 그냥 방관만 하시느냐 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님의 공의가 전혀 인간 사회에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정의로운 분이라면 악한 자를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두 부류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독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을 은혜롭게 운영하시는 것은 이 은혜 성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자만이 영생을 얻고 구원이 되는 자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오늘 본문의 경우, 모세가 지팡이를 드는 것은 그냥 하나님이 시켜서 행한 일일뿐입니다.
자신이 특별히 하고 싶어서 한 행동이 아닙니다. 그런데 모세가 지팡이 드는 것을 신호 삼아서 하나님께서 갑자기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서 메뚜기 떼가 까맣게 온 애굽 지면을 다 덮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평소에 애굽 사람들이 착해서 그동안 메뚜기 재앙을 안 받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신 겁니다. 그리고 모세가 기도하니 그 많던 메뚜기 떼가 순식간에 싹 사라져버렸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나 의도적으로 이 세상을 관리하고 있는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즉 무지개 언약은 하나님께서 핵심적으로 일하심을 커버해 주시는 배경적 은혜가 되는 겁니다. 진짜 구원시켜 주시는 은혜는 이 무지개 언약의 배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인간들의 마음 돌리기 때문입니다.
소위 악인이나 선인이나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지목해서 일하시는 그 핵심적인 목적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일은 악을 추구하는 자들이나 선을 추구하는 자들 모두에게 핍박을 받는 양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소위 선인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부지런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선을 쌓았기에 그 대가로 자신들에게는 자연의 재앙이 안 떨어질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마음가짐조차 획기적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지개 언약이 주는 은총 안에서 진짜 은혜의 본질을 만들어 나가십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에게 자기 아들을 잡아 번제를 드리게 함으로서, 자식을 버려야 하는 아버지의 아픔을 알게 하고 동시에 그것이 자신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은혜가 됨을 알게 하십니다.
즉 진정한 은혜는 자연에서부터도 계속 흘러나오지만 그 최종적 종착지점은 하나님의 희생과 죽으심과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어떤 분이 교회에 헌금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잘 모르고 있을 때에, 목사는 강단에서 십일조 하라고 강요하고, 주위 교인들은 자신들의 십일조 한 경험담을 늘어놓는 것을 듣게 됩니다.
즉 교회에 어떤 부인 네가 하는 말이, 자신이 50만원을 십일조를 하고 나니 그 다음날 500만원이 생기는 횡재를 얻었다는 겁니다. 그것은 횡재가 아니라 십일조를 교회에 낸 것에 대한 하나님의 정확한 보상원칙에 준해서 제공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도 자신이 그 교회에 십일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복음을 접하고 난 뒤에, 그는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즉 왜 하나님께서는 그런 '헌금 바람잡이'들을 자기 주변에 나타나게 하셨는가 하면, 평소에 자신의 돈 욕심과 돈 사랑함이 가득 차 있는 것을 소위 '십일조'로 횡재하기라는 유혹을 받게 해서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사기 인 가를 통감하는 과정을 겪어서 진정한 하나님은 뜻은 하나님 이용해서 부자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데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은혜를 받기 전에 숱한 돈을 교회의 사기에 말려 날려야 했습니다. 그는 이것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가짐의 변화가 은혜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는 은혜에 눈을 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