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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마 13:51-52 (새 것과 옛 것)우리교회마태복음

Re..마 13:51-52 (새 것과 옛 것)

이름 : 이근호(IP:)

새 것과 옛 것

2004년 3월 14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3:51-52

13: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13: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구약에서 제일 우선적으로 중요시하는 것은, 참된 신을 분간해서 믿어야 된다는 겁니다.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여호와가 되었든 다른 신이 되었든 아예 신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소의 귀에 경 읽기' 같은 소리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있어 참된 신과 가짜 신의 구분조차 하지 않고, 신 전체와 자기 자신을 놓고서 대결구조로 고정시켜 말았습니다. 신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저항하겠다는 겁니다. 웃통 벗고 본격적으로 신과 시합에 나서겠다는 겁니다.

신이 대단한지 아니면 자기 자신이 대단한지를 견주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의 이러한 속성은 본인조차도 어쩔 수 없이 감당할 수 없는 본성입니다. 이 본성은 인류의 조상 대대로 물러 받은 겁니다.

한 쉬운 예로 제가 이 물 컵 하나만 가지고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차례 차례로 전달을 시켰다고 칩시다. 도중에 제가 막 컵을 전달받은 사람에게 가서 그 컵을 확 빼앗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컵은 나의 것이 그 컵에 담긴 내용물도 원래 내 것이다"고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각자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 다 여러분 것이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전달받은 속성이요 본성들입니다. 따라서 여러분 선에 감당할 수 있고 조절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넘어서 버립니다.

즉 아무리해도 우리 자신들의 노력으로 우리 자신의 본성을 억제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원래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부터 물러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물러 받은 본성이 우리로 하여금 전력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에게 대들게 합니다.

"하나님도 소용없고, 예수도 소용없다. 신을 믿지 말라, 예수도 믿지 말라. 믿을 것은 우리들 자신뿐이다!"라고 과감하고 이 강단에서 외치고 싶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애를 쓴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의 성질조차 우리가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예수님 십자가 현장에서 넉넉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시점에, 십자가 밑에서는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차지하기 위해서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즉 "십자가 지는 위인아, 너는 너고, 나는 나다"는 겁니다. 십자가 진 당신과 옷을 갖고 싶어하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거지요. 오늘날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노골적으로 십자가를 땅에 팽개치고 지근지근 밟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십자가 져라. 나는 돈이나 벌어 보련다"라고 나서는 그 행세가 곧 로마군병들과 같은 의식입니다.

옛날,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그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이 땅에 오실 때는 초라하고 비천하고 비참한 몰골로 나타나셨습니다. 사람들이 누구나 예상한 호화 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 아닙니다.

왜 예수님은 이처럼 비참하게 나타나셨는가요? 그것은 그 어느 인간도 자기 문제를 자기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 저로서는 저의 성격이나 본성조차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감당 못하겠습니다."라고 자포자기 할 때, 저 만치서 마중 나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십자가 나무 위에서 줄줄 피를 흘리는 모습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 대신 의미를 아느냐?" 하시면서 말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이 바로 구약에서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아니 된다'고 당부하신 그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51절에 보면,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라고 물으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마치 마태복음 13장을 다 읽어 가는 우리보고 시험을 치시는 취지로 물으시는 겁니다. 즉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정리했느냐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비유를 보면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마태복음 13:41-42에 보면, "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지막 심판이 있다는 점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이 심판을 누가 주도하느냐를 생각해 봐야합니다. 그 분은 바로 '인자'라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옛날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부하신 바를 생각해야 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당부하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이 모든 일에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고마워하고, 감사하고 죽도록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 여호와의 자리에서 일하시는 분은 바로 '인자'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고마워하고, 감사하고, 죽도록 그 분을 사랑하면서 자진해서 그 분과 한편 되기를 즐거워 할 때, 비로소 이런 사람에 한해서 '깨달았음'이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즉 세상을 주도하는 인간은 다른 인간이나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뿐이라는 점을 도리어 즐거워하고 반기는 상태에 들어가게 된 것을 '깨달았음'이라고 말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런 마음가짐의 깨달음을 가진 자는 반드시 어떤 결과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새것'과 '옛것'을 구분하는 눈이 있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옛것은 무엇이며 새것은 무엇입니까? 새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들의 생리입니다. 새것도 없이 흥미 거리가 없으면 못 견디어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인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과연 진정한 사랑일까요? 아닙니다. 사무엘하 13:14-15에 보면,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동침하니라 그리하고 암논이 저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이왕 연애하던 연애보다 더한지라 곧 저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암논은 다말을 너무너무 사모해서 저 연인을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막상 일이 저지르고 난 뒤에는 오히려 전에 사랑했던 정도보다 더 강하게 사랑했던 여자를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왜 갑자가 극도의 사랑이 극도의 미움으로 변했을까요?

그것은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랑 뒤에는 새로운 것이 사라지면 곧장 허탈감에 사로잡혀 사랑의 진면목이 유감 없이 드러나는 겁니다. 즉 "사랑한다"는 말 뒤쪽에는 조건 맞지 아니하면 "나는 너를 극도로 미워 할 꺼야"를 깔고 함께 제시되는 겁니다.

이처럼 인간이란 새롭지 않으면 살아 갈 맛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인생을 충분히 살았고, 그리고 인간 세계의 지혜에 대해서 통달한 솔로몬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전도서 1:8-11에 보면,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 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 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즉 '만물의 피곤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겁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통째로 '옛 것'에 속한 것이라는 규정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옛날 아담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상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자체로 거부당한 자입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어야만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로 인해 그 후손인 우리들 모두가 에덴동산과 상관없는 채 이 세상을 떠돌면서 살다가 결국에는 한 줌의 흙으로 되돌아가 가야 할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체가 새로움이 아니기에 역시 우리 안에서 나올 것도 새로울 것이라고는 없는 겁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새로운 '새로움'으로 등장하신 겁니다.

인간들이 행하는 모든 옳고, 그름도 취사 선택 자체를 하나님은 거부합니다. 그 대신 금붕어처럼 날마다 예수님의 용서하심을 사랑을 먹고 또 먹고살기를 원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모든 행위의 배후에는 인간의 의(義)가 쟁반처럼 동반해서 등장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의(義)만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새로운 것입니다. 이처럼 천국의 백성은 옛것과 새것을 확실히 구분해 내는 자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를 크게 바라보게 해 주옵소서. 날마다 예수님의 용서만 한 모금 두 모금 먹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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