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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출 9:27-30 (인간에 대한 이해)우리교회출애굽기

033강-출9장,27-30(인간에,대한,이해)-exo040222 인간에 대한 이해 2004년 2월 22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9:27-30 9:2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9:28 여호와께 구하여 이 뇌성과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다시는 머물지 아니하리라 9: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성에서 나가자 곧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뇌성이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않을찌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 9:30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언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가 하면 하나님에 대해 견해를 말할 때입니다. '취중진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술 취하게 되면 본심이 나온다는 것인데, 사실은 본심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야성과 탐욕과 악독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본심이라면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란 이성으로 따지기를 좋아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핑계이고, 따지기 전에 기분과 느낌과 감정의 포로가 된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자기 욕심에 대해서 제 때에 제대로 처리로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행동에 나서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 욕망이 침투하지 않는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 이 욕망으로 인간은 자아가 구축됩니다. 이렇게 구축된 자아는 왠지 하나님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설쳐봐도 전혀 동조해 줄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벌리시는 일에 대해서 모두 반대하고 나서고 싶습니다. 왠지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은 다 싫어지고 불쾌하고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머리와 지식과 교회에서 들은 설교는 이성적으로 남아 있기에, 지옥가지 싫어서라도 노골적으로 하나님에게 대들지는 않을 뿐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타고난 죄인입니다. 즉 인간 안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죄 안에 인간이 놓여져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로 염색이 된 상태입니다. 시편 51편에서는 이것은 '죄 중에 태어났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 중에 탄생한' 겁니다. 이 죄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외에 모든 인간은 타인으로, 즉 나와는 직접 관련성 없는 대상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되었든 누가 되었든지 말입니다. 하나님을 타인으로 관련되면, 그분과의 관계에 대해서 자기가 무슨 조치를 감행해야 될 필요가 있게 됩니다. 즉 그 분과의 관계 속에서도 그 분과 경쟁을 하든지, 아니면 굴복을 하면서 계속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계속 타인처럼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대할 때 내 쪽에서 일단 손을 내밀면서 비로소 관계가 성립되는 타인처럼 간주합니다. 마치 친구에게 악수를 내미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다음에 상대를 내가 이길 것인가 아니면 내가 질 것이 아니면 전혀 상관없는 자로 처리하든지 그것은 자기 쪽에서 결정하겠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로 왕도 바로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7절에서 바로 왕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이번은 내가 범죄 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 하도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최종 모세의 답변은 이러합니다.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즉 바로 왕은 스스로 자신을 악하다, 범죄 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모세가 보기에 뭐가 빠진 상태입니까? 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상실되어 있다고 본 것입니다. 경외감이 형성되려면, 자신에 대한 방어 벽이 송두리째 날라 가 버려야 합니다. 마치 뜨거운 열기 앞에서 초에 새겨진 붙어있는 장식 모양들이 무용지물이 되어 흐물흐물 녹아지듯이 여호와의 말씀 앞에 자아의 모든 것이 녹아져야 합니다. 즉 다시 돌아서서 자아의 고유성을 주섬주섬 찾아내어 조립할 생각을 아예 먹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이래야 '경외'하는 말을 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자주 나오고, 신학을 공부하고, 성경 공부를 빈번하게 한다고 해서 경외감이 절로 강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호와 말씀에 대한 경외성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방패삼아 삭제해 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면, 사무엘상 2:30에 보면,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엘리 가정에 대한 솔직한 심정 표시입니다. 즉 엘리 제사장 가정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이 완전히 메말랐다는 겁니다. 제사장이란 사실 백성들에게 모범적인 모습과 생활을 보여주어야 될 입장에 있는 자입니다. 제사장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 중에서 뽑게 됩니다. 그리고 제사장 되고 난 뒤에도 제사장은 백성들의 어른으로 간주되어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머리나 이성으로 따져서 자신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욕망과 욕심이라는 감정에 의해서 구축되는 죄성을 절제해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건성과 형식으로 백성들의 눈을 가리는 위선적인 생활의 반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제사장 가정의 철없는 자식들은, 제사장이 모범적인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제사장이기 때문에 들어오는 각가지 수혜만을 챙기기 급급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모습이 사람들에게는 들키지 않지만 하나님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남들 보기에 경건을 가장한 위선적인 종교 행태가 하나님 보시기에 더 가증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인간이 스스로 자기를 지키려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이 손길을 건방지게 뿌리치는 교만 중의 교만의 형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그것을 지적하는 겁니다. 시합에서 "졌다"고 꼬리 내린다고 해서 상대방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도리어 마음 내면에서 내심 복수의 칼날을 더 날카롭게 갈게 되는 시발점이 형성될 것입니다. "두고 보자!"라는 식이 될 것이 뻔합니다. "어디 허점만 보이라. 천배, 백배로 갚아 줄 테니"라는 식이 될 것입니다. 화해가 아니라 휴전 상태이지요. 비록 겉으로 보기에 둘 다 평화롭게 보이겠지만 말입니다.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이고자 하는 뜻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인간들이 점차 자신의 죄성을 유감 없이 발휘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바로 왕의 심정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항상 찾아볼 수 있는 심령 상태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일단 지옥 보낸다고 하니 인간들은 더럽지만 고개 숙이는 척을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는 존경이나 경외까지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무엘상 16:22에 보면,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제사와 순종이 서로 대립되는 뜻으로 등장합니다. 즉 제사를 반복하는 것이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존경과 경의의 모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종교적인 경건의 모습을 계속 지켜내는 것이 결코 하나님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어떤 사람의 생활을 전체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의 표준으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순종이라는 것은 그 시작을 사람에게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적절하게 순종할 내용들을 제공하는데 제 3자가 그 중간에 개입할 수는 없는 겁니다. 즉 "당신은 나처럼 행동을 해주셔야 비로소 순종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시편 94:9절의 말씀처럼,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못하겠으며, 귀를 만들지 자가 듣지 못하겠으며, 마음을 만드신 자가 우리들의 속마음 해석에 혼선을 갖겠습니까. 결코 그럴 리 없습니다. 바로 왕은 모세가 곁에 있음을 진정으로 고마워해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 세계를 지키겠다는 무모함을 버려야 했습니다. 바로 왕은 하나님과 대결 구조에 버티고 있지 결코 순종 구조 안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졌습니다!"라고 한다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성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순종입니다. 날마다 예수님의 순종을 보면서, 우리들이 평소에 얼마나 자기 합리화하는 여전히 세상에 쳐다보고 사는 인간인지를 절실하게 느껴야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순종의 구조를 가지고 우리를 덮쳐오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하나님은 우리의 타인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겉을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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