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행 2"43-47 (초대 교회)
Re..행 2:43-47 (초대 교회)
이름 : 이근호(IP:)
초대 교회
2003년 12월 3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2:43-47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람들은 눈에 안 보이는 예수님을 찾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교회를 통해서 천국에 나아가려는 의식이 강렬합니다. 그래서 소위 바람직하고 이상적이고, 하나님께서는 칭찬 안하면 못 배길 정도로 완전한 교회를 만들어서, 그 교회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이 구원이 되는 식의 전략을 구상하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러한 구상을 밑 설계도처럼 삼게 되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인간들의 그러한 도전에 부응해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는 사람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도 개입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개입하지 않는 조직은 교회라고 부를게 못됩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움직임처럼 유사한 움직임을 조직원들이 흉내낼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예수님 본인께서 인간들의 '교회 만들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의 사람들에게 있어 '교회 다니기'라는 말은 흔히 쓰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시대에는 '교회 다니기'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교회 되기'입니다. '교회 다닌다'라는 표현은, 교회라는 특정 업체가 공간상 특정 지역에 건립되어 있기에 마치 회사 다니듯이 정기적인 날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면 곧 그것이 '교회'다라고 여기는데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정녕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교회는, 본인들 각자가 교회되어야지만 교회가 되는 식의 교회를 말합니다. 즉 모두들 교회가 이미 된 상태에서 한 데 모일 때, 비로소 그것을 교회라고 부른다는 말입니다. 특정 지역, 특정 공간이 교회됨에 있어 아무런 상관도 없는 요소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 결코 교회됨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구원이란, 오직 복음에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불신앙을 어떤 식으로 가릴 수 있는 대체물을 찾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만들기'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 본문 37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여기에서 '주께서'를 떼어내어 버리고 인간들의 행위와 능력을 집어 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모이는 사람이 더해지는 상태'를 유발시켜 마치 자신이 교회가 이상적이고 모범적으로 교회인양 주목을 받기를 원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현재 자신들에게 퍼붓는 축복이 손에 잡힐 듯 하겠지요. "아, 우리 교회는 지금 실껏 신의 축복을 받고 있는 중이구나"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면서 그것을 현 시대의 신의 내린 계시로 삼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 특정 교회의 특정 교회상으로 굳어져 버리게 됩니다. 이것은 무서운 배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초대 교회 모습들은 어디서 유발된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늘날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제대로 정리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6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
이 말씀을 받은 사도요한은 한창 목회하고 있는 중이 아닙니다. 그냥 쓸쓸하게 밧모섬에 잡혀온 신세입니다. 이런 사도요한에게 영광스러운 부활의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그냥 방문차 오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예수님께서 어떤 관점 하에 일하시느냐 하는 그 내막을 알리려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나타나신 예수님의 능력있는 오른손에 뭔가가 붙잡혀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보니 7별이었습니다. 자 7별이 무엇일까요? 요한계시록 1:20에 보니 그 7별은 일곱 교회를 책임지고 심부름을 하게 될 일곱 천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곱 천사가 각 담당한 교회에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촛대를 옮기는 일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특정 지역 교회나, 특정 시간대의 교회가 완전한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의 손에 붙잡혀 있는 교회만이 완전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지묘동에 있는 저희 교회가 기도하기를,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를 완전한 교회로 만들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한다면 우리 교회가 곧 이 시대의 구원의 기준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움직임이나 행정이나 설교나, 심방이나 기도나 교제가 곧 이 시대에 있는 구원의 기준으로 등장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미리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한결같은 구원의 기준은 교회가 아니라 복음입니다. 곧 '예수님에게 붙잡힌 바 됨' 그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을 보고 인위적으로 모방해서 대외적으로 우리 교회의 자존심을 드높일 그런 시험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무상통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의 살아계심과 그 은사주심에 근거합니다. 로마서 12:5-12절에 보면,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주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뭔가 받은 자들이 있기에 그들이 각기 받은 것을 발휘할 수 있는 관계까지 우리 주님께서 조성해 주시는 차원에서 모여들다 보니 그것이 곧 교회인 것입니다.
따라서 옆의 사람에게 자기와 같이 봉사 안하고 헌금 안다고 지시하거나 명령할 권한은 없는 것입니다. 각자의 주인님은 따로 계신 것입니다. 같은 인간이 인간을 지시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란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아담의 복제입니다.
창세기 3:17-19에 보면, 아담에게 주어진 운명이 나와있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담이 아니라 마치 천사라도 되는 양 이 세상에서 전혀 고생없이 살고싶어 합니다. 이것은 원칙에 한참 어긋나 있는 바, 곧 욕심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죽어가야만 합니다. 그런데 놀랍고 감사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성도에게만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왕 죽을 목숨이지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봉사하라고 주신 은혜요 능력입니다. 이것이 곧 오늘 본문 43절에 나오는 기적이요 표적입니다. 이 바쁜 세상에,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미하고 싶어서 꾸역꾸역 모여드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 보통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기적을 받은 자만이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은혜를 받아도 로마서 12;3의 말씀처럼, '믿음의 분량'이 각가 따로 인 것입니다. 로마서 12;6에 보면, '믿음의 분수대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결코 초대교회 사람들이 특정 교회를 모델로 삼아서 그것을 본받기 위해 일률적으로 일을 추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받은 은사대로 예수님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랬더니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런 결과로 비쳐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교회를 구성하고 운영할까의 문제가 아니라 고린도전서 3:16-17의 사실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즉 이미 성전된 자들에게는 성령이 각 사람의 발걸음을 인도하십니다.
결코 이상적인 교회상을 모델로 삼아 직분자들이 노력한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이상적인 교회 만들기로 성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이러한 구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예수님의 교회에서 이탈하는 발상입니다.
끝으로 베드로전서 4:10-11를 보겠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란 인간들의 교회 봉사나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움직임이란 주님이 주신 은사없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요, 더 중요한 것은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란 오직 예수님의 공로를 믿는가 여부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의 인도함이 없는 자는 성도가 아님을 확실히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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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 2:43-47 (초대 교회) - 이근호 ┼
본문 : 사도행전 2장 43-47절
제목 : 초대 교회
일시 : 200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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