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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독생자를 주셨으니묻고답하기요한복음

니고데모와의 대화 2독생자를 주셨으니지난 공부시간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는 구원을 자기소관 문제로 구원을 자기 쪽에서 이루어 보겠다는 모습입니다. 즉 구원이든 천국이든 하나님은 인간에서 숙제를 내어서 그 문제에 도달 하는 자를 합격 시킨다는 식으로 고정된 구원, 고정된 천국으로 만드셔서 거기에 합당한 점수만 따내면(마치 생명나무를 따먹을려고 하듯) 통과하는 구원, 천국으로 본 것이 바로 니고데모가 알고 있던 식의 구원이요 천국이었습니다. 그러니 니고데모는 부족한 점수를 채우면 되는 겁니다. 니고데모는 어떤 식으로든 능력있는 자를 만나서 그 점수를 올리면 된다고, 수준을 업그레이드 하면 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관점에서 밤에 몰래 찾아와서(요 19:39) 이루어진 니고데모와의 대화에 응하질 않습니다. 전혀 낫설은 대화로 니고데모에게 거듭날 것을 말씀 하십니다. 중생은 바로 인간의 소관에서 벗어났다는 겁니다. 인간의 손에서는 도저히 손델수 없는 겁니다 이것이 창조의 능력입니다. 인간의 손에서 절대 이룰수 없는 겁니다. 주님의 소관이요. 주님이 직접 창조하시는 창조의 영역이기에 인간은 하등 끼일 틈이 없는 겁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왜 독생자 이야기를 하셔야 하는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금 니고데모와의 대화가 단절 되면서 주님은 독생자가 오신 이유를 말씀 하십니다. 단절된 상태를 모르고 자기 쪽에서 자기 믿음으로, 자기가 만들어 낸 믿음으로 다가갈려는 시도를 원천 차단당한 시점에서 예수님은 독생자를 언급합니다.그 독생자이신 예수님 자신이 바로 구원자로써 심판의 기준이 됨을, 구원의 기준이 됨을 언급하십니다. 중생도, 거듭남도, 성령이 임하는 것도 모두다 독생자의 소관으로써, 인간이 임의적으로 소유하거나, 찾을수 있거나, 접근할수 있는 것이 아님이, 마치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과 같은 방식이다는 겁니다.(요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그 하늘의 일이 독생자를 보내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람들(니고데모)은 독생자에게는 관심이 없고, 표적을 행하는 예수님을 인정해준 대견한 한 믿음 하는 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이 독생자 예수님이 폭로하신다는 겁니다. 하늘의 일에는 도통 관심 없는 것을 폭로 하시는 겁니다.(요 6: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 6:30)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사람이란 자기 사랑에만 집착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하시면서, "네 몸과 같이"라고 언급 하십니다. 즉 자기 자신 외에는 사랑을 베풀수가 없다는 존재임을 말하는 겁니다. 이 두 사랑 싸움이 성경 전체의 싸움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사랑을 도구로해서 또 자기 사랑에 돌입하는 우리 인간의 죄성이지만, 주님은 자기 사랑이 자기를 오히려 부인하는 십자가의 지혜로 나타남을 증거하십니다.(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구원의 길은 영생의 길은 오직 주님 뿐입니다. 내 쪽에서 만들어 낸 믿음으로 다가설 수 없는 영생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믿음만으로 영생을 얻게 되는 겁니다.(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믿음의 주체자요 주관자요 기준이 되시는 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에, 모든 것이 사랑도, 믿음도, 십자가도, 지혜도, 부활도, 영생도, 구원도, 다 주께로 왔고 주로 말미암아 주님께로 돌아가기에 우리는 그 공로만을 자랑할 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 자랑을 내세우는 행함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겁니다.(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주님의 사랑은 다른 어떤 누구도 아닌 주님 자신이 언급 하십니다.(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그 독선적인 사랑의 결과로 믿음을 선물로(엡 2:8) 받은 자는 심판을 받지 않고(pass of = 넘어가다) 마치 애굽의 10번째 재앙, 장자재앙 심판 날에 어린양의 피를 보고 천사가 넘어가듯, 심판이 넘어가듯,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낸 이유가 바로 심판 받지 않고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다 라는 겁니다. 그것이 사랑의 결과이지요.그러나 그 사랑을, 그 독선적인 사랑을 거부하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기에 벌써 심판 받았기에 어린양의 피의 공로가 그들에게는 무의미하고 그들도 무시하고 멸시하고, 아무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당한다는 겁니다.자 그럼 또 여기서 오해하기를 좌우 문설주에 피를 바른 나의 행동은 믿음의 결과로 보아서 그 순종의 댓가로 구원이 왔고, 믿어준 결과로 댓가로 구원이 왔다는 것은 아직도 장자 심판의 그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희생을 당하고 피를 흘린분의 공로는 관심 조차 없고, 그 피를 믿어준 나의 의로운 행동 즉 자기 믿음 때문에 구원이 오게된 원인과 결과를 내 쪽에서 챙기기를 했다는 그 수고로 왔다는 자들은, 여전히 주님이 왜 이 말씀을 십자가와 연관해서 하는 지 이해를 못하게 됩니다. 그들은 십자가가 단순히 사랑을 전달하는 사랑을 표출한 한 방편 도구로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벌써 심판 받은자입니다. 그런 자를 끝까지 추격해서 광야에서 스스로 멸망 당하게끔 하셨지요.(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진리를 쫓는 자는, 자기 믿음에서 행함이 나오지 않습니다. 빛되신 주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 진리를 증거하고, 사모하고, 쫓는 모습은 바로 진리의 주체요, 하나님의 열심의 당사자이신 빛되신 하나님 안에서 행한 모습이기에, 그 모습을 받은 우리가, 나도 모르게 술술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를 자랑하지 못합니다.(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행위의 주체자요 믿음의 주체자이신 독생자. 이 독생자가 이 지상에 남기신 유일한 표적 딱 하나. 요나의 표적.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열심(행위=일하심)의 최종목표요, 하나님의 지혜의 결정체인 십자가가 바로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는, 영생의 길이다는 겁니다. 독생자가 이 땅에 사랑으로 온 이유입니다.바울은 그가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난 후 그냥 예수님이 아니라 바울이 핍박한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그 예수님을 그 예수님을 만난후 그가 그동안 알던 모든 것이 십자가 안에서는 모두 손 놓아도 든든하고 안정감있고 전혀 불안하지 않는 모든 지혜가 십자가에 다 담겨져 있기에 그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독생자의 사랑이 그 속에 다 있기 때문이었죠.자기 쪽에서 믿음 챙기기, 믿음 만들기. 충성 행하기. 온유 행하기. 말씀 사모하기. 큐티 지키기 등의 모습으로 광야 교회(행 7:38)를 버틸 수 없었습니다. 다 원망의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 나의 열심들은 늘 중심없이 변질되는 모습입니다. 그 광야 지옥과 같은 아무것도 없는 그 광야를 천국으로 누린 자는, 오로지 유월절 어린양의 피의 공로만 바라보던, 자기 쪽의 믿음에 기대를 걸지 않는, 예수님의 피 앞에 자기가 갈고 닦은 모든 지혜, 모든 믿음, 자기 행동을 다 두 손 놓듯 놓아버리고, 털털 털어버리는. 텅텅 털림을 당하는, 그 빼앗김 속에서 그는 광야에서 천국을, 움직이는 천국을 이미 맛보는 겁니다. 광야에서 천국을 못 누리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본들 다 탈락이니 말이지요. 주님의 관심사는 천국에 들어가자 가 아니라, 이 광야에서 천국에서 버틸수 있는 인간이 되자입니다. 그래서 미리 광야에서 낮추시는 길로 물 없는 양식 없는 곳으로 인도하는 겁니다. 지금 니고데모도 자신의 그 관심사에 엉뚱한 대답으로, 대화가 단절된 입장에서 예수님이 답변을 하시지만, 주님은 그 답변 속에서도 니고데모를 낮추시는 모습으로, 낮아진 독생자의 사랑을 증거하는데 일관 하십니다. 그 낮추심의 비밀이 바로 십자가 이기에 예수님이 이렇게 까지 니고데모를 섬겨도 (섬기는 자가 주主 이시기에), 그 섬김을 전혀 모르고 자기 이해력 밖의 일로 니고데모는 보는 겁니다.니고데모는 끝까지 예수님을 선생으로 대우하고, 자신을 낮추며, 예수님을 하늘에서 보낸 표적을 행하는 분으로, 일심 변함 없이 예수님을 바라봅니다(요 7:50-51). 또 그렇게 끝까지 섬깁니다.(요 19:39) 그의 모든 생각, 자세, 모든 것이 율법에서 나온 모습입니다만, 정작 그 율법이 몽학선생이되어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결과가 나타나지 못한 것은, 최대한의 인간 정성과, 최대한의 주님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예수님께 최상의 아량을 베풀고, 그 마음 변하지 않았지만, 니고데모는 영으로 나지 않았기에, 즉 믿음을 선물로 받지 않았기에 심판을 벌서 받은 겁니다. (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믿음의 주체자 이신 예수님으로 의로운 자 된 것이 아닌 오히려 그것은 거부하고 율법으로 자기 의를 추구하였다는 결과입니다. 자신의 스스로 낮춤과 주님의 낮추심이 대립되었고, 자신의 스스로 섬김과 주님의 섬김이 서로 대립되어 나타납니다. 자신이 미리 스스로 낮추는 자세로 주님을 대하기에 주님의 낮추심이 뭔지를 모르고, 자신이 미리 스스로 섬기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으니 주님이 섬기시는 그 모습은 전혀 낫설은 대화요 알아먹기 힘든 말들인 것 뿐입니다. 자기가 추구해서 찾아낸 의가 아닌, 공짜로 주시는 선물이기에 그 의를 스스로 외면하는 겁니다.독생자를 주시는 하나님의 일하심, 하늘의 일에는 그 또한 어두움이기에 알지 못한 겁니다.(요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요 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요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요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요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주님 !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했습니다.(마 16:4) 니고데모처럼 가장 인간적으로 주님을 가까이 하고파 했던 그 정성 그 열심을 가진 그런 니고데모를 우리는 보고있지만, 주님의 입장에선 니고데모는 악한자요, 음란한 자였음을 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니고데모처럼 악하고 음란한 것을 바라고 주님께 요구하는 표적을 구하는 자가 많습니다. 우리 또한 악하고 음란하여 과거에는 이런 것들을 많이 구했습니다. 주님 이제는 그런 악하고 음란한 것을 구하지 않도록 인도하시고, 오직 성령만을 구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여 주소서. 독생자를 주신 그 사랑 알게 하소서. 독생자가 흘리신 그 보혈을 날마다 기억하게 하소서. 독생자가 자기를 부인하면서 까지 갔던 그 십자가의 길을 우리 또한 갈수 있도록 믿음 허락 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눅 11: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눅 11:11)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눅 11:12)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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