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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단절된 대화묻고답하기마태복음

니고데모와의 대화 1단절된 대화지난 주에 주님이 자기 성전 외에는 다 무너뜨리는 교회파괴에 대해 배웠습니다. 실체가 왔으면 그 동안의 그림자는 사라져도 실체가 있기에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자를 붙들고 오히려 실체(예수님 자신의 몸)를 거부하는, 교회가 교회를 핍박하는 현상은 끊임없이 구약 이스라엘 속에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믿는자가 믿는자를 핍박하고, 성전을 사모하는 자가 성전을 사모하는 자를 핍박하는 모습으로 늘 나타났습니다. 이제 실체가 되시는 주님이 나타나면 그런 일이 나타나지 않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 본격적인 모습이 들추어집니다(마21:37~). 즉 이것이 죄성 악마성 죽음의 실체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상대하는 모든 인간을 애굽으로 보시고 그 애굽 부수시고, 직접 자기 손으로 세운 자기 몸을 주장하십니다.(마 21:1) 『그들이 예루살렘 가까이 와서 감람산 기슭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이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2)『`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가면 나귀 한 마리가 나귀새끼와 함께 매여 있을 것이다. 그 나귀들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3)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주님께서 쓰신다고 하여라. 그러면 곧 보내 줄 것이다.'』(4)『이것은 다음과 같은 예언자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였다.』(5)『`시온 사람들에게 말하라. 보라! 너희 왕이 오신다! 그가 겸손하여 나귀를 탔으니 어린 나귀, 곧 나귀 새끼이다.'』(6)『제자들이 가서 예수님이 명령하신 대로』(7)『나귀와 그 새끼를 끌어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등에 펴자 예수님이 올라타셨다.』(8)『많은 군중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기도 하고 나무가지를 꺾어 길에 깔기도 했다.』(9)『그리고 예수님을 앞뒤로 에워싸고 가는 군중들은 `다윗의 후손에게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에게 찬양을!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고 환호성을 올렸다.』(10)『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자 온 시내가 떠들썩하며 `이분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11)『그러자 군중들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신 예언자 예수님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12)『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거기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내시고 돈 바꿔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13)『그리고 그들에게 `내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 라고 성경이 쓰여 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고 말씀하셨다.』(14)『성전 안에 있던 소경들과 절뚝발이들이 예수님께 나오자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다.』(15)『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신기한 일과 성전에서 `다윗의 후손에게 호산나!' 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나서』(16)『`이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소?' 하고 예수님께 물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렇다. 너희는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을 완전하게 하셨다.' 라고 한 성경 말씀을 읽지 못하였느냐?' 하시고』(17)『그들을 떠나 성 밖 베다니에 가셔서 밤을 보내셨다.』(18)『다음 날 이른 아침, 성으로 들어가실 때 예수님은 시장하셨다.』(19)『마침 길가에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가 있는 것을 보시고 가까이 가셨으나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었다. 예수님이 그 나무를 향해 `네가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하시자 나무가 곧 말라 버렸다.』(20)『제자들이 이것을 보고 놀라 `어떻게 무화과나무가 갑자기 말라 버렸습니까?' 하고 물었다.』(21)『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너희가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내가 그 무화과나무에게 한 일을 너희도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 산을 향하여 `땅에서 들려 바다에 빠져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다.』(22) 『너희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을 것이다.'』(마 21:23)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와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소?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하고 따져 물었다.』(24)『그때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나도 한 가지 묻겠는데 너희가 대답하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겠다.』(25)『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왔느냐? 하나님에게서 왔느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왔느냐?' 그러자 그들은 `만일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하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할 것이고』(26)『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자니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으므로 백성들이 두렵다.' 하고 서로 의논하다가』(27)『`우리는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하고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21:28)『`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그가 먼저 맏아들에게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여라.' 하였으나』(29)『그는 `예, 가겠습니다.' 하고 대답만 하고는 가지 않았다.』(30) 『그가 둘째 아들에게도 가서 같은 말을 했는데 그는 `싫습니다.' 하고 거절하였으나 뒤에 뉘우치고 갔다.』(31)『이 둘 중에 누가 아버지에게 순종하였느냐?' 그들이 `둘째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세무원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32) 『요한이 와서 올바른 길을 가르쳤으나 너희는 믿지 않았고 세무원과 창녀들은 믿었다. 그리고 너희는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마 21:33)『또 다른 비유를 들겠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었다. 그는 포도원 둘레에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포도즙틀을 놓고 망대를 세운 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여행을 떠났다.』(34)『포도철이 되어 주인은 자기 몫의 포도를 받아오라고 종들을 소작인들에게 보냈다.』(35)『그러자 소작인들은 종들을 잡아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다른 하나는 돌로 쳤다.』(36)『주인은 처음보다 더 많은 종들을 다시 보냈으나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똑같이 하였다.』(37)『마지막으로 주인은 자기 아들을 보내며 `그들이 내 아들은 존경하겠지' 하였으나』(38)『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이 사람은 상속자이다. 자, 죽여 버리고 그가 받을 유산을 우리가 차지하자' 하고 서로 말하며』(39)『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 죽였다.』(40)『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오면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41)『그러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 악한 사람들을 무참히 죽이고 포도원은 제때 열매를 주인에게 바칠 다른 농부들에게 맡길 것입니다.'』(마 21:42)『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으니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신기한 일이다 라고 한 성경 말씀을 읽지 못했느냐?』(4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해 둔다.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고 그 나라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백성이 그 나라를 얻을 것이다.』(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깨어질 것이며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45)『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한 말인 줄 알고』(46)『예수님을 잡아가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기기 때문에 두려워서 잡지 못하였다.』(현대인의 성경)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의미가 있을려면 언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 언어는 생각이 오고가는 서로 주고받는 그런 서로의 이득을 통해 자기존재기반을 더더욱 견고히 한다는 전제성이 미리 깔려 있습니다. 자기 존재성을 염두하지 않는 언어란 없습니다. 그런 언어를 통해 신앙도, 믿음도 추구합니다. 오해가 있다면 언어로 오해를 풀고, 설득 할려면 언어로써 설득하고, 부족한 것 모자라는 것 채우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 모두 언어로써 뭔가 교통하는 것이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그런 자기존재를 염두해 두고 주님께 접근하는 자, 주님을 찾아 나선 자가 있습니다. 바로 니고데모입니다. 아니 본인은 꿈에도 그렇게 생각지 않을겁니다. 그가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다가간 모습은 나름대로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었으니 말이지요 그러니 그 낮춘 댓가, 선생으로 인정한 댓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음을 인정해 주는 댓가를 바라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잠재해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요 3:1-2) 『바리새파 사람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인의 의회 의원이었다.』『그가 어느 날 밤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선생님이 베푸시는 기적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지금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 가진 예수에 대한 거부감을 뒤로하고 능력을 인정하면서 밤에 몰래 다가갑니다. 그만큼 떳떳하게 만날 대상은 아니었다는 것이겠지요. 내 쪽에서 다 계획하고 준비한 만남입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성전에서 일어난 일과 기적(마 21:14)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선생 대우를 합니다. 그리고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자 이런 자세.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누가봐도 니고데모는 주님을 제대로 본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위기를 감수하면서 까지 주님을 찾아왔으니 말이지요.문제는 이런 인간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자세는 너무 냉정합니다. 마치 부자청년이 나름대로 찾아와서 자신의 모습을 겸손 겸허(마 19:16-30) 실천에 옮기면서 선생에게 한 수 배우겠다는 심정으로 내가 뭐가 더 부족한 겁니까? 진짜 요즘 보기드믄청년인데. 오늘날 목사들은 이런 청년 나타나면 무지 좋아할 껍니다. 와 !저는 놀랬습니다. 와 저런 부자청년도 탈락인가? 부자이기 전에 우리가 한 인간으로써 가장 선망해 하던 실천가요. 모든 사람이 부자 되면 저런 덕망이 되어야 한다는 그 진짜베기 부자가(남 등처먹어 부자된 자가 아닌, 또는 어렵게 부자 되었으니 게을러 터진 것들에게 주면 안돼 자기만을 위해 부요함을 누리는 놀부 심뽀가 아닌, 덕망 덕식. 갖출 것 다 갖춘 남을 위한 봉사자로써의 부자-모 목사의 깨끗한 부자론처럼) 예수님 앞에 나타나서 머리를 쪼아려 저렇게 마음을 낮추는데 말이지요.왜 저런 마음에 응해주시지도 않고 왜 근심만 쌓이게끔 도리어 더 없던 근심 더 들게 만들어 보내느냐 말이지요. 그 마음을 꿰 뜷었으면 도와 줘야죠. 저렇게 애원하며 도와 달라는 사람 도리어 근심 맹글어 주면 우짭니까? 요즘 같으면 교회에서 어떤 수단 방법 안가리고, 큰 돈을 들여서라도 서로 스카웃 열풍이 들 정도의 서로 모셔가기 경쟁을 펼칠 청년인데 말이지요. 지금 니고데모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 청년처럼 나름대로 자기가 할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주님께 머리를 쪼아렸으면 거기에 맞는 댓가를 주님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는 말이 고았으면 오는 말도 고아야 되는데, 그것이 언어의 상식이요, 당신의 상식에서 배우겠다는 것이 동뜰어진 세계가 아닌 지금 같은 땅에 발붙여 사는 인간다움 아닙니까?설사 주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땅의 신분이 아닐찌라도, 인간의 언어를 쓰는 이상 그런 배려을 했으면 끝까지 해주면 될터인데 왜 태클을 거냐는 겁니다. 도와 달라는 질문에 오냐 도와줄게 이래이래 하면 된단다 이래 나와주면 얼마나 보기가 좋을까요 주변인도 다 수긍할꺼 아닙니까? 이렇게 인간다움으로 다가갔으면 주님도 그렇게 다가와야지 대화가 통할텐데, 이 의사소통의 수단인 언어가 대화가 막혔다는 것은 분명 둘 중 한쪽이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도와 주십시오 라는 질문에 주님은 넌 천국 백성 아니야 라고 답변을 해버리면 이건 대화 단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가치도 인정 안하시겠다는 것 아닙니까? 오죽하면 옆에 있던 제자들이 놀랍니다. 주님 그렇게 답변하시면 누가 주님께 옵니까? 누가 구원 받습니까? 누가 교회 오겠습니까? 누가 전도 되겠습니까? 부자 청년도 근심이지만, 온갖 근심은 옆에 있던 제자들이 더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입니다. 더 근심에 찬 모습입니다. 지금 다들 누가 문제 있어 보입니까? 부자 청년입니까? 니고데모 입니까? 옆에 있던 그카면 누가 구원 받겠습니까? 라고 되묻던 제자들입니까? 다 옳게 보이고 정상적 모습 아닙니까? 이것이 우리에게서 통하는 언어요 상식이요 대화가 아닐런지요. 문제는 누굽니까? 누구?지금 언어가 안되고, 대화가 안 통하고, 그 속에 언어의 소통에 막힘이 있다면 그것은 그 대화의 흐름에 방해 되는, 대화의 흐름을 막고 있는 자가 있다는 겁니다. 누구죠?니고데모, 부자 청년, 제자들 다 같은 흐름의 대화입니다. 유독 주님만 이 대화에서 나가떨어졌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대화 상대자의 이해 범위 안에서 답변을 하지 않았기에 그렇습니다. 모르는 말만 하는 겁니다. 못알아듣는 말만 하는 겁니다.그럼 또 우리는 가만히 못있지요. "알아듣는 말로 하면 될 것 아니냐" 라고 되묻게 되겠지요. 그러니깐요 그러니깐요. 그렇게 알아듣도록 하시는 말씀이 바로 두 번씩이나 알아듣도록 하신 겁니다. 안하신게 아니라 캐도캐도캐도 못알아듣더라 라는 거지요. 긍휼을 안베풀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발로 차고 거부하더라 라는 거지요. 아무리 은혜를 퍼부어줘도 싫타 카는데 우얍니까. 광야에서 옷 두벌 신발 두컬레 필요 없을 정도로 넉넉했지요? 심지도 않았고 거두지도 않았는데 일용할 양식이 날마다 떨어졌지요. 그래도 그들에게는 지옥이었습니다. 물론 갈렙에게는 천국이였죠.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경험을 해도 똑같이 먹고 마시고 누려도 한 쪽은 이빨를 갈고, 한 쪽은 노래 부르더라는 거지요.(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23)『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24)『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25)『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마 19: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지금 구원 문제를 자기 소관으로, 믿음의 문제를 자기 소관의 문제로 출발하는 자들에게 무지 무지 낮아지셔서 저들의 언어로 알아듣기 쉽도록 예수님은 말씀 하십니다. 너희 소관이 아니라, 주님 소관이라고요.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꽉꽉 막혀 있는지 아무리 알려줘도 못 알아듣습니다. 오죽 하면 제자들까지도 그카면 누가 구원 얻겠냐고 여전히 자기 범주 안에서 다루는 문제로 구원을 보고 있습니다. 쉽기는커녕 너무 어렵다고, 아니 다 아는 사실인데 실천이 어렵다고만 취급해 버립니다. 그거 다 배웠다고 하니 다른 말로 해달라는 거지요. 뭔가 자기에게 확 꽃히는 그런 획기적인 깨달음을 유발케 하는 말, 언어, 대화를 잔뜩 바라면서요. 그래도 주님은 아주 쉽게 답변을 하십니다.주님은 광야에서 받은 마귀의 시험을 통해서 지금 상대하는 모든 것이 마귀 권세 아래에 있다고 보시는 겁니다. 무질서(카오스)와 혼돈의 상태. 불뱀에게 모두 물려있다고 보시는 겁니다. 성전, 신앙, 믿음, 교회, 이스라엘, 유대인, 선민, 남은자 모조리 깡그리 다 불뱀에게 놓여져 있는 상태로 보시고 새로 창조 작업에 들어가시는 겁니다. 지금 이 창조 작업에 주님이 새롭게 하나 하나 창조해 가시는 겁니다. 그 창조 작업 앞에서 아직도 옛것을 잡고, 기존 것을 잡고, 기존 흐름, 기존의 언어를 잡아본들 소용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은 무화가 나무를 저주 하시는 겁니다. 지금 창조주가 열매를 맺으라 하면 맺을 것이 피조물의 모습인데, 때가 안되었다는 둥 기존의 것을 고수 하고 있으면 창조주의 창조 작업은 뭐가 됩니까? 피조물의 의견(자기 언어,존재,수용자세와 시간, 공간, 자유,믿음)이 왜 첨가 되어야 합니까? 왜 이런 것들이 끼어들어야 합니까? 둘이 협동 협력 하여 좋은 세상 만들어 보자고 누가 꾀던가요? 이것이 마귀의 세 번째 시험 아니던가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시작하자라는?주님은 지금 무질서(혼돈-애굽)를 부수시고, 그 애굽에서 가져온 모든 것을 광야에서 다 벗겨버리실려고 우리를 자꾸 물없는 곳으로, 양식 없는 곳으로, 원망할 것 뻔한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광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재현되듯, 주님이 가나 혼인잔치에서의 모습, 유월절 성전 파괴 하시고 다시 세우겠다는 모습 등. 결국 지금 주님은 구약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어보도 못한 만나를 먹었고, 바위에서 샘솟는 신령한 음료를 먹도록 주셨고, 쓴 물이 변하여 마실물로 변한 그것이 지금 주님이 새로 자기백성 찾는 작업, 새창조 작업, 새 이스라엘 지으시는 작업 속에서, 새창조 즉 주님 홀로만 하시는 작업을 하시는데 인간은 여기에 끼일 틈이 없는데 나름대로 끼이겠다고들 하니(나 그 기적 인정해 줄게 라고 한신앙 한다고 한믿음 들고 와도), 그것도 기존의 것을 들고와서 새창조 새언약 작업에 참여하겠다는 것이 말이 안되고 대화가 소통 될 리가 없고, 언어가 막히는, 정작 주님은 나가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말씀이 멸시를 받음)(출 34: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치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너의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소위를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민 14: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민 14:22)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기존의 것을 모두 부정하고 불뱀 물린 상태에서 오직 요나의 표적만을 목적으로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존의 하나님관 구원관 기적관 성전(교회)관 믿음관을 들고와서 한 몫을 하겠다고 하니, 주님이 거부하시거나 아님 피해 도망 다니시거나 하시지요. 그림자만 붙들다가 실체가 오니, 그 그림자에 길들여진 자들이 실체를 못알아보고 외면 하는 현상이 지금도 나타나듯이 지금 니고데모와의 대화도 이러합니다.그래서 중생이라는 거듭남이라는 예수님의 말이 니고데모에게는 전혀 알길이 없는 말인 겁니다. 좀 알아듣게 해주기는커녕 이스라엘 선생인데도 이것도 모르냐고 아예 부자청년 대하듯 하십니다. 넌 안돼 라는 식이지요. 자 이래 되면 글을 보시는 여러분도 또 걱정 됩니다. 이렇게 복음을 증거하면 누가 믿겠노 라고요? 진짜 많이 듣던 말인데요. (마 19: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이 말을 모를리는 없습니다. 다들 안다고 합니다. 영의 말이고 하나님 만이 하신다고들 다들 말합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이유 없이 손 다 댈려고 합니다. 여기저기 손 안대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말씀은 사람이 손대는 일(것)에 주님은 손 때신다는 겁니다. 왜냐 창조를 하시는 창조주이시니깐요. 창조주가 하는 일에는 사람이 끼일수 없습니다. 그러니 걱정 근심 붙들어 매시고 안심 푹 놓으세요. 안심 푹 놓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지금 주님이 하시는 공생애의 사건 사건들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만드시는 과정 속에서 기존의 애굽 것을 벗겨내고, 하늘의 것(만나)을 채우듯이 지금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새이스라엘 만드시는, 잃어버린 양 찾는, 자기 백성만 구원하시는, 새창조 작업을 하시는 겁니다. 그 새창조 작업에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과 기사와 표적들은 한마디로 물없는 곳으로, 양식 없는 곳으로, 생명 없는 곳으로 내몰아서 빈털터리 되게 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기쁜자는 성령으로 난 자요, 그것이 기분 나빠서 오히려 주님을 나가떨어지게 하는 현상이 광야라는 교회에서 펼쳐지는 모습입니다. 앞선 세례요한의 선지자의 운명 또한 그러합니다 포도원의 비유가 그것입니다(마21장).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도들도 마찬가지 같은 운명입니다.그렇기에 니고데모는 이 창조주 예수님 앞에서 기존의 신앙으로, 기존의 언어로, 기존의 믿음으로, 기존의 하나님관 다가가 본들 주님은 새창조 작업에는 끼일수가 없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육으로 난 자는 육이요 , 성령으로 난 자는 영이기에 육과 영과의 대화는 단절 되어 있는 겁니다.(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이미 벌써 심판 받은 자와 심판 받지 않은 자와의 대화는 단절되어 있습니다.(요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주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몰고온 세계를 그 새하늘과 새땅의 세계를, 새창조의 세계를, 하늘나라의 비밀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어리석어서 기존의 것을 쥔 상태로 이것도 차지하고 저것도 차지하여 양다리 걸치는 모습으로 주님의 새창조에 뛰어들려고 합니다. 그런 니고데모와 부자청년과 각기 제 갈길로 간 제자들과 다를바 없는 주인 없는 양 같은 모습을 불쌍히 여기시고,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 버리는 선한 목자만 바라보고, 쥐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손 놓는.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주소서, 부자 청년처럼 끝가지 쥐고 있던 것을 포기못하고 버리지 못하고 자기부인 못하여 근심만 하며 가는 그런 지옥 절대 가지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무시하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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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3,735건 중 13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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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 묻고답하기 Re..말씀에 대한 해석 부탁드립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2-03
459 묻고답하기 말씀에 대한 해석 부탁드립니다 - 최고관리자 04-02-03
458 묻고답하기 Re..성경읽다가...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2-01
457 묻고답하기 성경읽다가...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4-01-31
456 묻고답하기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4-01-31
455 묻고답하기 Re..목사님은 자유의지란 말을 싫어하시는 것 같네요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1-27
454 묻고답하기 목사님은 자유의지란 말을 싫어하시는 것 같네요 - 최고관리자 04-01-26
453 묻고답하기 유재성 성도님께 - 최고관리자 04-01-20
열람 ➜ 묻고답하기 단절된 대화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01-17
451 묻고답하기 Re..목사님께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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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