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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설교란?묻고답하기[신학]

설교란?

이름 : 이근호(IP:117.55.164.12)

설교란?

악마의 신경선을 건드리는 것이다. 치아가 아플 때, 치아 표면만 깎아낸다고 문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치과의사는 치아 밑을 지나가는 신경선을 찾아내어 처리해야 한다.

이처럼 악마의 신경선이 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악마의 노림수는 뭘까?

악마는 주 예수님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고 거기에 자기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여. 나하고 이야기하세요. 나를 비켜가서 예수님하고 의논하는 것 싫습니다” 이렇게 해서 악마는 신으로 대우받고 싶어한다.

악마의 신경선에서 피어난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예수님 중심으로만 움직이는 그 복음의 광채를 싫어하고 외면하려 한다.(고후 4:4) “하나님 나하고 이야기합시다.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 정말 질투 납니다. 나도 성령 받아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 되었습니다. 나하고 이야기합시다.”

설교란, 이러한 악마선을 포착해서 집어서 그 실체를 현실의 표면 위로 건져 올리는 작업이다.

왜 청교도 정신이 악마적일까?

왜 개혁주의 신학이 악마적일까?

그것은 구원 가능성을 여전히 인간에게서 찾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신학’이라는 이성적 작업과 윤리성이라는 고운 양심적 모판을 먼저 깔아두고 그 위에다 십자가 복음을 가미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성사시키려 한다.

이 말은 곧, 이 모판을 치워버리면 구원이고, 영생이고 천국이고 도저히 성사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신학도 모르는 창녀나 강도가 예수님의 피만 믿고 금새 구원받고 천국가는 것을 도저히 못봐주겠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목회 전문가의 입지를 있으나마나로 만들어버리는 상황을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교회 없이도 구원이 되는 사실을 저주하겠다는 것이다.

악마가 근원적으로 인간에게 심어준 신학과 양심에 바탕을 둔 이 의식은, “나도 하나님과 상대할 자격을 상당히 갖추어져 있습니다.”를 주장하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에서 방출되는 피의 능력만으로 구원이 된다는 예수 그리스도 고유의 역할에 대해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악마는 늘 ‘적그리스도’다.

“예수를 넘어서서 언젠가 우리 피조물도 하나님과 직접 상대할 만큼 신적인 존재로 격상됨”을 목표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청교도 정신과 개혁주의가 이토록 악마적이다. 이 청교도 정신과 개혁주의 정신이 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지금도 악마를 통해서 이 정신이 계속 확산되는 것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곧 악마의 얼굴들이기 때문이다.

강구만(IP:121.♡.1.14)

10-09-21 14:00

악마가 쳐놓은 촘촘한 그물망에 이상신호가 잡힌다. '십자가 피'를 이야기하는 자들이 나타났다는 신호다. 하나님마저 살해 해버린 세상에 자신의 머리를 상하게 한 십자가 사건을 거론하는 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악마는 종말을 이야기 하는 자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긴장한다. 비상이다. 온갖 무기들이 다 동원된다. 인간들에게 가장 잘 먹혀드는 무기들이다. '유혹과 생존' 그러나 피 뿌림을 입은 성도에게는 이미 어떠한 무기도 효과가 없다. 이들에겐 더 이상 빼앗길 '나의 것'도 없고 정죄할 ‘법’도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들에겐 내 것 이란 게 없었다. 이들은 생명마저 하나님 품에 감추인채 죽은 자로 살게 하셨기에 마음껏 악마에게 유린당함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들이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은 오늘도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날로 복잡하고 완벽해지는 악마의 시스템에도 가끔씩 불안한 징후가 보인다. 악마는 오랜 세월 쌓아 논 이 모든 것들이, 자존과 독존의 세상이 말씀대로 멸망키 위해 간수되어 있음이 견딜 수가 없다. 이러한 멸망의 징후를 앞당겨 보여주는 성도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사람의 성도가 목 베임을 당한다. 자본주의의 차가운 길바닥에서. 그러나 악마의 열심과 성도의 목 베임이 있어야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짐을 오히려 성도는 기뻐한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바라보는 여유로움과(시73) 여호와의 궁정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는 열심만이 성도의 현실이다.(시84) 오직 교회는 감추어진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 오늘도 죽음에 넘기운다. 그러므로 그 무엇도 아버지로 부터 빼앗을 수 없는 '피로사신' 교회는 오늘도 이 땅에 있다

박온정(IP:123.♡.206.146)

10-09-21 18:19

장로님은 호흡을 짧게 한 문장의 소설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주면서 끌고 가시는군요.

결국 악마의 아킬레스는 설교 때 건드려줘야 되는군요.

주님의, 악마를 통해 청교도 정신과 개혁주의 정신이라는 울타리 안에 숨어있는 양과 염소를 가르는 필요한 조처.
흔들림이 있을 때 어떤이에게는 연단이겠고
어떤이에게는 쭉정이로서의 정체가 발각되겠습니다.
그 싸움이 세상 끝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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