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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하나교회100805요한계시록 4강a자유게시판요한계시록

하나교회100805요한계시록 4강a

이름 : 이한례(IP:119.148.121.61)

하나교회 100805요한계시록 4강a(서울하나교회, 이 근호목사)

제 4강a

자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4장 넘어가면서 요한계시록 3장에서 해석했던 그 해석의 원칙과 원리가 요한계시록 4장에도 그대로 적용이 됐느냐 하는 그 문제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부터 3장까지 해석 쭉 하다가 갑자기 요한계시록 4장 이야기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렇게 하늘 문이 열렸다. 하늘 문이 열렸다. 요 영역은 하늘 영역이고, 하늘 영역은 문이 열리지 않으면 알 수가 없죠? 지상의 영역에 교회가 얼마 있었습니까? 대충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이 있다 이 말이죠. 이 교회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여러 가지 말씀을 주는데 있어서 이렇게 된다. 저렇게 된다. 하는 해석이 주어지겠죠.

여기에 하늘 문이 빼꼼이 열렸습니다. 하늘 문이 열렸으면 닫혔을 때는 지금 하늘 영역을 모르죠. 모르는 상태에서 땅의 7교회를 해석을 했다 이 말이죠. 과연 이 해석이 옳은 해석이냐? 틀린 해석이냐 하는 것은 요한 계시록 4장에서 하늘 문이 열려서 이 하늘나라의 영역과 지상의 영역이 생각하는 것이 모독하는 것이 하나가 되면 그 해석은 옳은 해석이겠죠. 그렇죠?

그런데 실컷 7교회 해석을 해 놨는데, 하늘 문이 빼꼼이 열리면서 하늘 영역의 하나님께서 일어난 일하고 이쪽하고 이것이 서로 틀린다면, 해석이 땅의 영역의 해석이 틀리고->1번이 틀리고, 하늘 영역이 맞을 수도 있고->2번이 틀리고 1번 맞을 수도 있고, 둘 다 틀릴 수도 있고, 둘 다 틀린다는 말은 원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일치가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사도요한에게 주신 계시가 원활하게 잘 소통이 된다 할 수 있겠죠. 근데 땅의 해석하고 하늘의 해석이 다르다 한다면 둘 중의 해석 하나는 잘못 된 거예요. 1장부터 3장까지 해석을 전부 다 때려 치워야 해요. 무효가 되는 거예요. 새로 다시 해야 돼요.

보통 1장에서 3장 해석할 때 어떤 해석을 해야 하느냐 하면, 마지막에 ‘하라’ ‘하지마라‘ 이렇게 나오고, ’하라‘ 하는 것은 하겠습니다. ’하지마라‘ 하는 것은 안하겠습니다. 라고 나오죠. 그런데 이 해석에서 아~ ’하라‘ 하는 것은 하면 옳은 교회되고 ’하지마라‘ 하면 안하면 옳은 교회 되겠구나~ 라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이 하늘 영역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빼꼼히 열린 하늘 문을 열고 보니까 인간들이 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하늘 영역은 일괄적으로 하나님의 천사가 일괄적으로 모든 걸 처리를 해나가더란 말이죠. 그러면 1번 지상의 해석과 하늘의 해석이 같습니까? 틀립니까? 틀리죠. 틀리니까 우물쭈물 그냥 넘어가는 수가 있어요.

그래서 캘빈이라 하는 사람이 요한계시록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요한계시록은 주석 못한다고 하고 덮어버렸어요. 이유는 하나 밖에 없어요. 땅의 영역과 하늘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그래요. 만약 이문열 소설가가 드라마 작가가 요한계시록을 썼다면, 3장부터 차근차근 계단 밟아가서 하늘 문 열릴 것도 없이 그저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4장 5장 6장하시면, 드디어 천국 골인 하십니다. 성공 하셨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드디어 구원입니다 라고 얘기 한다 말이죠.

1장부터 3장 해석이 4장의 기초가 되고, 4장 5장의 기초가 되니까, 아 구원에 골인 했으니까 1장부터 3장 해석도 옳다고 속이 시원하게 안심 푹 놓고 판정을 내릴 수가 있는 겁니다. 근데 초반부터 4장부터 위의 해석과 아래의 해석이 다르게 된다면, 이것은 반대로 4장에서 1장 3장을 해석하고 5장에서 4장을 해석하고 6장이 거꾸로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방식이 돼야 된다 말이죠.

해석이 위에서 내려오는 방식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천사를 통해서 사도요한에게 말씀을 줄 때에 우리보고 지키라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을 줌과 더불어서 말씀이 이렇게 말씀 덩어리가 내려온다면 말씀 덩어리 안에 우리가 겉으로 보면 하라 하지마라 이런 식으로 나오지만 성경 알맹이에 뭐가 들어 있냐 하면 이 말씀의 성취는 ‘내가 이룬다’ ‘어린양께서 이룬다’ 라는 것이 포함이 된 채 내려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밑에서 보면 안에는 텅텅 비고 아무것도 없는 줄 알고 껍데기에 써 있는 ‘하라’ ‘하지마라’ 만 충실하게 ‘쉐마 쉐마’ 하면서 지키게 되면 뭔가 말씀이 성취해서 그 댓가로 보상으로 천국에 하늘나라로 갈 수 있다는 오해들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4장 해석이라 하는 것은 4장 해석에서 1장 3장을 봐서 일치점을 가져야 되고, 충돌과 마찰이 없어야 돼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죠. 요한계시록이 끝났다 한 해석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이전까지 성경 해석과 일치돼야 하지 편리한대로 저 구절 에서는 저런 소리 했다가 이 구절에서는 이런 소리 했다가 사람 좋아라고 할 수 없어요. 일관성을 가지고 어디를 푹 쑤셔도 동일한 전체가 일관성을 가지고 전체가 다 딸려 와야 돼요.

그렇다면 여기서 요한계시록 2장, 3장은 4장에 의하면 간단하게 말씀 드리는 겁니다. 누가복음에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라는 말씀이 있죠.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지구상 모든 것을 얻는다 할지라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한번 적어 보겠습니다. “ 온 천하를 얻었다” 와 “자기 목숨을 얻는 것” 과 어느 것이 비중이 세단 말입니까? 자기 목숨이 비중이 더 세죠? 그러면 이 말씀에서 2가지 해석이 나오죠. ‘나는 자기 목숨을 얻기 위해서 온 천하를 얻는 노력을 나는 포기 하겠다’라고 애를 쓰는 것. 그 해석이 있겠죠. 더 좋은 것(자기 목숨)을 얻기 위해서 온 천하를 얻는 것을 포기하고, 나는 이걸 그만 두겠다.

두 번째 이 말씀은 우리 인간들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체에서 이대로 성도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신다. 그러니까 살아가면서 수시로 부딪치고 만나는 그 사건과 사건 속에서 아~ 바로 이 사건이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자기 목숨을 잃는 것이 무슨 유익 하리요? 너는 모든 걸 버리더라도 너 생명 하나 주님께서 주셨으면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는 그러한 해석을 주시려고 이러한 사건을 주변(가정에서, 교회에서)에서 일어났구나. 하고 받을 때 이론으로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 하면 감격이 일어나요. 감격. 내가 할 수도 없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그냥 공짜로 주셨구나. 어떤 공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 대신 생명을 얻게 하는 그러한 선물을 공짜로 주셨구나. 뉘앙스가 이상 하죠?

모든 것을 잃고도 생명에 비로소 눈 뜨게 되는 생명을 받았다(신경 쓰지 마. 내가 생명을 주는 거야)는 것을 주께서 직접 접촉해서 주셨다는 것을 깨닫는 그 말씀, 그 느낌을 안 순간 그것은 하나의 감명이 되고 위에서 일부는 하나의 애씀이 되겠죠. 가자. 해보자. 할 때까지 한번 해 보자. 기어이 은혜 받는 날이 오겠지. 열심히 해 보자. 이렇게 되겠죠? 이건 아무리 열심히 해봐도 순간적 기쁨은 모르지만 항상 미흡한 + 알파가 되어 뭔가 남아 있어요. 이 감격 속에는 남아 있는 것이 아니고, “다 이루었다” 속에 본인이 함유되어 있고 포함되어 있는 희열입니다. 그 안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이러한 감격이 오래가지 않는 것을 우리가 경험상 알지만 그러나 감격하는 그 순간만큼은 이게 오래 가느냐 안 오래 갈 것이냐 라는 생각조차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너무 감격스러울 때는...

아들이 만약에 사법고시에 응시 했는데 한 5년간 매번 떨어지고 5번째 이번에 안 되면 자살 할란다. 하고 심각하게 나올 때, “엄마 합격했어. 2차 3차 합격 했어”라 하면 얼마나 감격 스럽겠습니가? 그런데 감격스런 아들보고 “얘야 너는 판사 되면 뇌물 받지 말고 후원자 술 먹지 마라” 그 감격스런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 해야 되겠습니까? 대보 난다 해서 너는 더 침착해야 돼. 인생이 다가 아니야. 요것은 감격하는 그 순간에 말고 하루쯤 지나서 해야 될 문제죠. 감격스런 그 순간에는 그 생각이 안 난다 말이죠. 이렇게 감격하는 순간이란 말은 남들은 이상하게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저렇게 하다가 삐지고 타락한다 하고 놀리고 시기하지만 본인만큼은 뭐가 달아나느냐 하면 지금까지 내가 내 구원받기 위해서 시도했고 노력했던 모든 수고가 다 헛짓이었음을 감격 가운데 알게 되죠.

그래서 그동안 구원받기 위해 모든 수고와 애씀이 모든 부질없는 헛짓이구나. 감격 가운데 알고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날아가죠. 헛짓이다 얘기 하면 주위사람들이 감격은 보지 않고 헛짓이구나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가지고 그렇게 헛짓이라면 사람들을 방종케 하고 타락케 하는데 사람들에게 함부로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느냐. 그런 식으로 가르쳐 가지고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다 모두 해도 된다. 이렇게 나오면 “그 책임을 당신이 질 수 있느냐?” 나오겠죠.

그런데 이 사람의 허점은 그런 것을 고려해서 헛짓이 아니고 남들이 뭐라 해도 당신들이 그런 소리 하는 나를 구원한 것이 아니고 지금 직접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생명은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참 생명을 얻는 것이 더 낫다” 하는 그것이 수백 번 들었던 말씀이지만 어느 순간에 내가 이해하려 했던 그 모든 과거는 사라지고 주님이 알게 해 주셨을 때 저항이 안 됩니다. 저항도 안 되고 말릴 수도 없고 그리고 당신은 수천 번 애썼던 것이 절대로 손해라는 느낌도 안 들고 그렇게 헛짓 했던 그것도 감격스런 순간이 되고 보니 그것도 필수 코스였고 또 누구도 그런 짓을 하는 것에 대해 나도 그런 짓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 왜 나도 그랬기 때문에.

그러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은혜 받은 것은 분명하다 이 말이죠. 내 노력한 것과 은혜 받은 것의 사이에 그 갭(gap)을 메꿀 수 있는 인간적 노력은 일체 없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고백할 수가 없어요. 아저씨는 어떻게, 집사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런 질문을 은혜 안 받으면 나도 남한테 질문을 하겠는데 은혜 받고 보니까 그 질문 자체가 은혜를 안 받았다는 표현밖에 되지를 않아요. 은혜를 안 받았으니까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또 해대는 거예요. 알아서 모방 하려고? 또 흉내 내려고? 필요 없는 거죠.

이 순간 감격의 순간 다시 말하면 뭐냐면 말씀이 나의 주인이 되고 나는 말씀이 실제로 이렇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물로 사용되어 질뿐이죠. 전에는 내가 주인공이고 말씀은 내가 지켜야 하는 하나의 규칙 같은 거였는데 주객이 바뀌었어요. 말씀이 덮쳐 버리니까 그 말씀이 우르르 내 안의 모든 것을 점령하고 말았습니다. 방금 얘기 했듯이 그것이 계획입니다.

땅에서 ‘하라’ ‘하지마라’와 하늘을 정복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다는 것이죠. 그것을 요한계시록 4장에서는 간단하게 얘기해서 하늘 문이 열리니, 하늘 문이 열렸다. 이렇게 얘기하면 목사님! 그렇게 얘기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여러분 성경은 믿으라고 준 게 아닙니다. 믿으라고 준 게 아니고, 믿는 자를 하나님이 만들어 낸다는 책 이예요. 믿으라고 했더니만 믿었다가 아니라 난데없이 믿어보니까 아~하나님이 주신 은혜구나를 고백하라고 증거 하라고 준 게 성경책 이예요. 그냥 하늘에서 땅에서 믿으려고 애쓰면 일종의 행함에 해당돼요. 그 행함은 은혜 주는 자 앞에서는 빛을 잃어 버립니다. 자 그다음 여기까지는 여러분 아셨죠? 감격...

그렇다면 지상에서 교회에게 ‘하라’ ‘하지마라’ ‘눈에 깐 것을 끍어 내라’ 죽도록 충성하라’ ‘하라‘하는 이런 이야기와 위의 원리와 일치 돼야 된다고 했잖아요. 하라 하지마라는 어떻게 해석 하는가? 4장에서 거꾸로 1장 2장 3장을 해석해야 하는가 하면, 하늘에서 그냥 ’하늘 문이 열렸다‘ 요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 무슨 준비된 작업이 있어요. 지난번에는 동해안에서 해상 훈련 하고 오늘은 서해안에서 해상 훈련하죠? 해상 훈련할 때 지휘관은 지휘봉 하나만 있으면 해상 훈련합니까? 뭔가 구축함도 필요하고 준비된 게 있어야 되겠죠?

저 중국집에 조리실도 없고 주방장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의자 탁자만 놓으면, 자~ 손님 맞이합니다. 짬봉 5천 원, 짜장면 4천 원 이렇게 안하거든요. 뭔가 준비된 게 있지 않습니까?

하늘 문 열었다. 하늘 문이 열렸다는 것은 그 위에는 하늘 문을 통해서 뭔가 지상에 일을 하고자 하는 준비된 작업들이 있어요. 그 준비된 작업을... 제가 문제 하나 낼게요. 준비된 작업을 지상에서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방해 할 수 있겠습니까? 방해할 수 없겠습니까? 없죠. 이게 원리예요.

준비된 것은 지상에서 방해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방해가 될 수 없어요. 그래서 도약이 필요치 않은 거예요. 애씀이 필요치 않은 거예요. 아까 오다 보니까 빗방울이 약간 떨어지던데...빗방울이 막 떨어져요. 그 빗방울 떨어질 때 위에서 비 고만, 빨리 비 내려.. 고함질러서 빗방울 떨어진 거 아니죠? 준비된 오염된 기체 상태의 수증기가 액체가 되어 떨어지는 거잖아요. 준비된 거죠. 그럼 어깨에 머리에 우스스스 소나기를 맞죠.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비를 맞든지 피하든지 그럴 뿐이죠. 비오기만 해 봐라! 이런 것은 헛짓이 되는 겁니다. 구원 받는 사람이 위에서 그냥 소나기 맞으면 아! 위에서 하늘 문 통해서 이미 작업 해가지고 그냥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나~ 짜장면 시켜 놓고 손님이 앉아 있으면 되는데 지가 고무장갑 끼고 짜장면 제가 할게요. 이럴 필요가 없다 말이죠.

그냥 주는 대로 먹으면 됩니다. 주는 대로 먹어놓고 제발 밖에 나가서 돈 내서 먹었다고 얘기 하지 마세요. 그냥 먹은 거예요. 이런 중국집에서 돈 내지 않은 것처럼 하늘나라에서도 그냥 먹는 거예요. 어떻게 은혜 받았습니까? 그냥 받은 겁니다. 어떻게 영생 얻었습니까? 그냥 받은 겁니다. 어떻게 천국 가게 되었습니까? 요한계시록 강의 들어서? 아니 그냥 받은 거예요. 요한계시록 강의 들은 것도 아니고 교회 가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받은 거예요. 그냥 받았으니까 받아서 그냥 챙기면 되지. 잘 됐다 그냥 받았으니까 그냥 고맙습니다. 하고 챙기면 되는데 그것이 안 됩니다. 준비된 작업이 우리로 하여금 옛날 사람처럼, 내가 지상에서 은혜 받기 전의 인간성으로 가도록 허용이 안 되는 겁니다.

좀 지저분한 예를 들면, 중국집에 짜장면을 시켰는데 돈도 안냈는데 공짜로 짜장면이 나왔어요. 잘 먹고 나오려고 하는데 주방장이 시커먼 짜장 발린 면을 얼굴에다 옷에다 칭칭 감아버렸어요. 시껍하고 놀라서 나갈 때 길 가던 사람이 보면 누가 봐도 사람은 짜장맨 이예요. 누가 봐도 짜장맨 이죠. 뗄 수가 없어요. 짜장면을 뗄 수가 없어요. 누가 봐도 짜장맨 이예요. 니 인간아 와 이리케 됐노? 받은 은혜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받은 은혜가... 열린 문으로 주신 하나님의 작업이 나로 이렇게 되었다. 나는 짜장면 먹고 입 딱 씻고 옛날처럼 고맙습니다. 구원 받았으니까 내 맘대로 살겠습니다. 하고 싶었는데 그게 호락호락 맘대로 안돼요. 왜냐하면 여기에서 주시는 작업을 성경에서는 무엇이라 하느냐면 “구원“이라하고 ”생명”이라 하고 “천국”이라 여러 가지로 말합니다. 구원과 영생의 특징은 우리가 소지하지 못하고 소유할 수 있는 용도가 아니고 오히려 구원이 나를 소유하고 영생, 천국이 나를 소유해 버립니다.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만약에 이런 은혜를 안 받은 사람끼리 모였다고 합시다. 안 받은 사람들이 모여 교회나 성당을 차려 가지고 한다면, 성경에 나와 있는 “구원” 천국“ ”영생”을 쭉 보고 또 십자가 나오고 언약도 나오니까,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자~~ 영생을 갖고 싶다,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다. 구원 받고 싶다. 그런데 방법은 뭐라 합니까? 십자가 피만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하니까 얼마나 쉽습니까? 네? 얼마나 쉬워요?

첫 번째 단계는 성경을 공부해야 되고, 두 번째 단계는 그 성경 공부한 것을 이해해야 되고, 이해와 동시에 나아가서 그것을 믿습니다. 믿는다. 하고 세 번째 단계는 그것을 소지하면 되고, 네 번째는 중요한데 소지한 것을 도중에 엷어지지 않도록 사라지지 않도록 늘 이것을 되새김 하면서 유지 시키는 노력을 해야 되겠죠. 이게 다잖아요. 한국 교회 150년 역사 이거잖아요. 전부 이거. 이거 완전한 이단 이예요. 완전한 이단입니다. 이 이단이 유대교, 바리새인 이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작업은 여기는 아무것도 없어요. 1번도 내 작업이고 2번도 내 작업이고 3번도 내 작업이고 4번도 내 작업이고, 유지하는 것, 견제하는 것도 모자라 다섯 번째 그것도 모자라 키우는 것, 성화까지

그래서 가끔 밧데리 떨어지면 교환해서 밧데리 한번 채우고, 소나무 뿌리 2뿌리 뽑고, 주여~ 한번 부르고 시원하여 유지된 느낌이 들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믿음이 없었으면 이런 식으로 해서 믿는 척을 해야 하는지...얼마나 믿음이 없었으면...

만약에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감격” 다른 말로 “대박”

감격한 사람 와 버리면 이사람 이단 돼버립니다. 대번 이단 돼 버립니다. 니는 왜 우리와 다른데? 니는 왜 우리와 다른가? 미가야 선지자가 이런 이단 소리 들었어요. 니는 왜 400명이 다 여호사밧 다 찬성하는데 너도 찬성해 나는 못해, 왜 다른데? 나는 열린 천상회의에 가 봤거든.. 그러니까 이쪽 하는 말이 “내가 못 보는데 니가 왜 보는데?” 한국 교회가 은혜 안 받았다고 해서 우리도 은혜 받지 말아야 되는 겁니까? 그런 법이 한국의 헌법에 있습니까? 없죠? 은혜 받으면 누가 받든 은혜 안 받든 그런데 신경 안 쓴단 말이죠. 주위에서 어떤 시선 성화 전혀 신경 안 써요.

다만 있을 수 있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기 말씀을 성취해서 사람이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용서를 얻는 것이 더 낫다 하는 것을 분명히 나로 하여금 현실인 것을 이렇게 일을 하시는데 나를 구원 하려고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고 온 천하보다 생명이 더 귀하다는 말씀을 그게 실제다 하는 것을 알려줬는데 감격이 왔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믿음도 함께 왔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실제로 믿어지더라 말이죠. 믿어지고 난 뒤에 부도가 나는 것, 불이 나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예요. 생명을 얻었거든요. 이 해석이 하늘나라 영역의 해석이에요.

만약에 2번 해석이 1번 해석 같으면 1번 해석으로 이 말씀으로 성경하고 이해할 것 같으면 이해가 안 되면 이해 되도록 애써야 되거든요. 이해되려 애쓰는 것은 뭐냐면 이것은 전도가 아니고 교육이 돼요. 교육 이예요. 나 되는데 니 될 수 있어? 교육이 돼요. 나처럼 해 봐라. 이렇게 교육이 돼요. 이건 뭐냐면 교육이 아니고 증거가 돼요. 교육이 아니고 증거!!

목격자고 증거. 그냥 처음이고 전도가 되죠. 도를 전하게 되요. 여기 전하게 되면 1번 전체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리석음 이예요. 어리석음. 글쎄 말은 이해가 되는데 어떻게 해서 은혜를 받았어? 어떻게? 설명을 해보라니까. 6하 원칙에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했느냐?

그러면 하늘 문이 열려서 그렇다고 하죠. 그러면 뺨 날아가죠. 니만 열리고 나한테는 왜 안 열리느냐?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 하나님이 하실 일을 우리한테 물어보면 곤란하죠. 다만 은혜 받은 사람의 특징이 있다면 바로 “감명”이죠. 온유와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형제우애 한꺼번에 터져 나오죠. 실시간에 한꺼번에 터져 나오죠.

그리고 그 사람은 바로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말씀의 풀(Pool=수영장)장에 풍덩 뛰어드니까 온 피부에 물기가 튕기는 듯이 말씀이 톡톡 튕기는 거예요. 헤엄을 쳐도 말씀 속에서 헤엄치는 거예요. 말씀을 쥐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우리를 물속에 잠수 시켜 또 집어넣고 또 집어넣고.. 그래서 풍덩 풍덩 하며 허프~허프~ 하며 손 놀리는데 손 놀리면 외부에서 말씀이 다 튀어 나오는 거예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 하고 막 튀어 나오는 거예요. 주께서 오시리라. 이런 게 막 튀어 나오는 거예요. 이 말씀만 이해해서 감겨 있다가 튀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전체의 풀장, 말씀의 풀장에서 내 손에 묻은 한 방울의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요것도 이해되고 다른 것도 이해되고 한꺼번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가 이해가 되는 거예요.

이해가 되는 정답은 “모든 말씀은 주께서 자신이 지키기에 주가 되신다.” 예수님은 주십니다. 왜? 예수님 홀로 자신의 약속과 말씀을 홀로 다 지켜 나가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결과를 우리에게 그냥 지키지도 못하는 우리에게 거저 은혜로 주시기 때문에..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그 모든 과제와 숙제를 우리가 푸는 과제 숙제가 아니고 주께서 그렇게 하시는 자신의 과제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노아 방주 때 그 많은 사람이 있지만, 달랑 1식구, 한 family, 8명만 들어가도 노아는 그렇게 섭섭할 일이 없습니다.

왜 8명인가? 9명 되지 않고, 말을 안 했죠. 8명 되고 9명 되고 안 되고는 누구 소관입니까? 자기에게 은혜를 주신 주님의 소관이지 자기가 왜 이 넓은 방주에 왜 8명입니까? 8명 너무 허전합니다. 채워 갈 걸 이런 걱정이나 뭔가 그래서는 배가 안 뜬다는 그런 걱정은 본인이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9명 안 채워서 배 안 뜬다는 거 없거든요. 없어요. 왜냐면 8명만 구원되라고 처음부터 창세전에 말씀이 그렇게 작정 되었기에 말씀만 되면 꽉 찬 겁니다. 그냥 꽉 찬 겁니다. 들어갈 틈이 없어요. 꽉꽉 찼습니다.

이것이 지상에서 본 우리의 안목과 열린 문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안목의 차이 입니다.

결국은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이 두 가지 안목의 차이를 니가 알라는 겁니다.

우리가 육적인 것을 가지고 태어 날 때부터 육적인 것으로 태어나서 성경을 보면서 내 구원받기 위해서 말씀을 지키는 육적인 구원 욕구, 구원 욕구도 충분히 우리가 알고, 그리고 그것이 구원 받고 난 뒤에는 얼마나 헛짓인 것을 알아서, 고 차이, 고 차이의 틈새에서 생기는 것이 뭐냐면, 십자가는 은밀하게 아무에게 들킬 리도 없었고, 어느 사람도 십자가의 비밀을 알려고 시도해도 절대로 밝혀 낼 수 없는 그 은밀한 하나님의 가장 깊숙한 비밀이 바로 십자가였다는 것을 깨닫죠. 그 십자가에서 나온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되지도 않는 은혜를 받게 되었으니 우리의 모든 공로는 십자가에서 피 흘린 예수님의 공로로 돌리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본론도 안 들어갔어요. 이제 서론 들어갔어요. 이제 본론 들어가 보면, 그러면 하늘 문이 열리고 내려가는 이 작업이 어떤 작업이기에 1장 2장 3장의 교회를 그런 식으로 닦달내고 따지고 책망 하시고 왜 그런 식으로 협박 공갈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심하게 얘기 하느냐? 무슨 작업이 있었기에 1장 2장 3장의 7교회를 가지고 잡아먹을 듯이 왜 그렇게 심하게 하느냐 말이냐. 교회 다니는 일도 얼마나 자랑하고 대단한 일인데,

그리하지 아니하면 촛대 옮긴다 하고 겁나서 교회 다니겠어요? 눈에 안약을 바르라 하고 이거 뭐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요. 하나하나 다 시비 다 걸고, 칭찬했다 싶으면 또 뒤에 보면 책망이 나오고 우리가 그 말씀 듣고 개선했죠. 자 책망한 게 %가 높을까 나쁜 짓 한 게 %가 높을까 따지고, 책망한 게 많은가 나쁜 짓 한 게 많은가 책망한 게 조금이라도 많으면 혹시 구원받는데 천국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그런 육적인 계산을 해대요.

그러니까 4장의 열린 문의 준비된 작업을 모르기 때문에 항상 ‘하라’ ‘하지 마라’ 육적인 이런 법적인 그런 입장에서 시키는 대로 구원받고자 하는 아이디어만 자꾸 끄집어내는 거예요. 오늘 강의 분위기가 엄숙한지 모르겠어요. ㅋ

자 그러면 위의 있는 준비된 작업이 어떤 것이기에 지상의 교회를 그렇게 닦달내고 힘들게 만들고 죽도록 충성하라 그래야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고 하니 보통 문제 아니잖아요? 예수 믿고 구원 받는 줄 알았는데 ‘죽도록 충성하라’ 충성 안하면 지옥 간다는 거예요. 죽는 척 해도 안돼요. 죽는 척하면 안 되고 죽어야 해요. 순교한 척 하면 마지막 때 살려 준다는 말도 아니에요. 그냥 죽어버리라는 거예요. 죽고 난 후에 구원 안 해주면 누가 손핸데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에요.

그리고 또 문제는 ‘죽도록 충성하라’에서 문제는 ‘죽지 아니하면 죽도록 충성한 게 아닌 게 됩니다. 그렇죠? 죽도록 충성하라 했으니 죽지 않으면 아무리 충성해도 영 미흡해. 왜? 아직까지 죽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진짜 죽어 버리면 죽고 난 뒤에 니가 충성해서 죽었는지, 충성 안 해서 죽었는지 죽고 난 뒤에 따질 수 있는 기회가 이미 사라져 버렸어요.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라. 보통 문제 아니잖아요. 자기는 죽도록 충성했다고 죽었는데 죽고 난 뒤에 “저 죽도록 충성했죠?” “어~ 니 까불다 죽었어.” 그러면 새로 다시 어떻게?? 이미 게임 다 끝나버렸는데, 게임 over 했는데...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그러면 자꾸 물어보는 거예요. “하나님 이정도 하면 충성이죠?” 그러면 하나님께서 “ 죽어 봐라 죽어봐” “곧 죽습니다.” “글쎄 아직도 멀었어. 죽어봐”아~~ 이래도 저래도 문제예요.

여기에 4장에 보면, 제 강의시간에 성경을 안 봐요. 왜냐면 잠이 오니까 그냥 들으세요. 요한계시록 4장에 보면, 하늘 보좌가 있고, 여기 24장로가 있고,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 4생물(4천사)이 나오죠. 4천사가 나와요. 요 하늘나라 보좌 이야기가 열린 문 안에 있는 작업이라 했어요. 작업. 그런데 뭔가 하늘나라에 이렇게 배치돼 있는 어떤 존재는 무의미하게 배치된 게 하나도 없어요. 그냥 철퍼덕 버티고 있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일을 해야 돼요. 기능을 발휘해야 돼요.

신학생들이나 일반 교회도 마찬가지지만 구약을 보면서 제일 오해하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을 존재론적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고, 기능적으로 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이스라엘이 뭐가 잘 되면 ‘구원 받았구나.’ 어떤 사람이 벌 받으면 ‘지옥 갔구나.’ 이렇게 그 사람 천국 갔거나 지옥 갔거나 이렇게 이스라엘이 어디서 존재 할지 그거만 생각하는데, 이스라엘은 하나의 기능입니다. 기능.

다시 쉽게 말해서 탈렌트들이 나쁜 역 맡았다고 해서 시장 통에서 만나서 욕하고 그러지 마세요. 그 사람의 존재는 나쁘지 않습니다. 범죄인이 어떻게 탈렌트 하겠어요? 역할이 나쁜 역이기 때문에 인상이 밉상 역으로 보이는 거예요. 하는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만 역할을 수행하는 겁니까? 아니에요. 이스라엘 위에 하늘의 영역이 있는데, 하늘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작업에 걸려요. 이스라엘을 출애굽기 4장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죠. 그러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예. 그러면 존재론적으로 답변하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기능적으로 아들입니다. 하면 딩동~♬ 맞는 거예요. 기능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어디 계셔요? 하늘 영역에 계시죠. 하늘에 있는 아들의 기능을 하늘에서 벌리는 사람이 아니라 지상에서 기능을 발휘하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이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일들입니다. 라는 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주는 거예요. 여기까지는 아시겠죠?

그러면 이스라엘이 어떻게 됩니까? ①번 구원 받았다. ②번 멸망 받았다. 멸망했죠? 이스라엘 멸망했어요.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은 이 땅에서 뭐 해야 합니까? 멸망 해야죠. 저주 받아야죠. 간단한 문제죠. 뭐 어려운 거 아니죠? 왜 하늘나라에서 자기 택한 백성을 낚싯대로“너 올라와” 너 올라와“ 낚싯대로 하지 않고, 왜 십자가라는 귀찮은 작업을 왜 합니까?

망하지 않고서는 망하지 않고서는 구원은 없습니다. 그러면 망하면 구원이 되겠네요. 하잖아요? 망하면 구원 되겠네요 하는 그 노림수가 안 망하겠다는 뜻이거든요. 그거 구원 없습니다. 그거 구원 없어요.

그럼 이래도 구원 없고 저래도 구원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선택했던 거예요. 왜냐면 이스라엘은 구원 받을 수 있는 권한이나 자격이나 권리가 일체 없습니다. 왜냐면 아담을 대표하기 때문이에요. 아담과 하와의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슨 과일을 못 따먹었습니까? 같이 에덴동산에 있으면서도 생명나무 과실을 못 따먹었죠. 영생을 얻지 못했죠? 어떤 사람은 미리 따먹었다 하는데, 미리 따먹고 선악과 먹었으면 계속 저주 받은 채 영생, 지옥에 갑니다. 어떤 분이 그리 얘기 했어요. 처음엔 다 따먹었는데 선악과 따먹고 안 따먹었다 하는데, 일단 생명나무 따먹으면 그 효과가 영원히 갑니다. 선악과 한 번 따먹으면 돼요. 선악과 한 번 따먹고 자꾸만 따 먹었습니까?

두 나무의 특징은 한 번 따먹으면 그 나무의 기능은 정지(소멸)되는 겁니다. 그게 특징이에요. 사과야 먹고 다음에 또 먹을 수 있지만, 선악과 생명나무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별한 나무에요. 그래서 선악과 따 먹은 아담과 하와, 다시 인간들이라 하면 안 되죠. 아니 아담과 하와만 따먹었죠.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 따먹었을 때, 모든 앞으로 태어날 모든 인간들이 포함되어요. 인간들은 영원히 생명나무 가는 것은 미안하지만, 기대하지 마세요. 끝났습니다. 끝난 거예요.

그런데 인간들이 선악과 따먹고 난 뒤에는 마귀가 거짓말시켜 놓은 게 있어서, 악을 버리고 선하게 나가면 구원 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가 온 아담의 세계에 완전히 퍼졌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도, 서기관들도, 성경 주니까 성경을 어쨌던 간에 교회 안 나올 때는 개차반 같이 살다가도 교회 나와서 성경 보고 술 끊고 담배 끊어서 전보다 조금 더 전에는 소주 5병 먹었는데 이제는 반잔 먹고,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착한 쪽으로 나아지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착하다 충성되다 니 괜찮다. 완전하진 않지만 애쓰는 것 보고 봐 줄게’ 이런 식으로 구원 한다고 믿어서 만들어 진 것이 뭐냐면 천주교고 기독교고 불교, 이슬람교에요. 문화죠. 복음이 아닌 겁니다. 그냥 내 양심이 그러고 싶은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왜? 달리 저항이 없으니까. 뭐가 나쁜 건 알고 뭐가 좋은 건 아니까.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건 시도하는 것, 그런 식으로 좋은 쪽으로 눈을 틀었다는 것으로“아이고~ 대견 하구나~ 착 하구나~ 이런 인간 너 같은 인간 드물다. 그래서 죽어서 좋은 나라 같으면 좋겠어요.

로마서 7장에서 그거 완전히 다 깨집니다. 말씀이 들어오면 너 마음은 가상하다만, 니 또한 법이 있어서 니 법을 꺾어버립니다. 사도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절망적입니다. 아하 절망적입니다. 절망이구나.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절망, 절망, 절망케 하는 거예요. 절망 뒤에 희망 준다. 그런 생각 하지 마세요. 이건 절망 아닙니다.

절망 중의 희망주면 반 절망입니다. 절망인척 하는 거예요. 사람끼리는 속아 넘어가요.하나님한테는 안 통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1번, 2번, 3번, 4번, 5번 있는데, 십자가 여기 있는데 십자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은혜 받고, 이런 걸 모은다고 구원 되는 것이 아니고, 구원은 십자가의 능력이 와서 구원되는 겁니다. 근데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은 생각 안하고 내가 십자가를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되고,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되고,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하는가. 자기 머리 굴리는데 여기에 집중해서 양육 받고 교육 받으려 해요. 천주교는 피정, 수련회에 가서 도 닦고 참선해 가지고 천주교는 도입해 자기나 쳐다보고 있고, 다이어트는 도움이 돼요. 딴 건 도움이 안 된다니까.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불순종 안에 가두어 두시는 거예요.(롬11:32) 여러분 길가에 두더 쥐 게임 있죠? 돈 넣고 때려 치는 거. 순종하면 다 때려버려요.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어 두심은, 오직 불쌍히 여겨 주심을 받을 사람만 구원한다는 원칙입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이것이 바로 진짜 하나님이고, 이런 하나님 말고 다른 하나님은 전부 너희들이 선악과로 지어 낸 하나님. 일방적으로만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만 구원 하는 이 방식 외에 다른 방식으로 참 하나님은 구원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목사님 우리가 기다려야 하나요? 기다리지 말고 그냥 지옥가면 돼요. 왜냐하면 성경의 말씀에 보면, 죄의 삯은 뭡니까? 사망, 사망이란 저주예요. 아까 얘기 다시 얘기 해 봅시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하리요? 자기 목숨을 얻는 게 낫다는 말씀이 우리가 이 내용을 알고 싶어서 깨닫는 것이 아니고, 그냥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깨닫죠. 깨닫는 그 옆에 뭐가 있느냐면, 죄의 삯, 죄를 지으면 저주 받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처사라고 같이 오는 거예요. 따라서 저주 받은 자가 건방지게 구원 받으려는 심보가 더러운 심보예요. 말도 안 되는 심보라고요.

말씀대로 돼야지. 세상에 말씀대로 되려면 죄 지었으면 저주 받아야지요. 혹시 빠지는 수는 없습니까? 그렇게 물어본다는 자체가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의 현실성을 자기가 모독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주여 이 저주 받는 거, 주의 당연한 처분입니다. 합당한 처사입니다. 아 일 참 잘했습니다. 멋지게 했습니다. 죄 지었으면 지옥가야죠. 암요.

이러한 것이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이야기 한 거예요. “화로다 나는 드디어 망하는 모습이 내 모습이다.” 게임 끝났어요. 목사로서 선지자로서 열심히 말씀을 가르치고 율법을 가르치면서 나는 이렇게 하면, 하나님 뜻에 합당하죠? 라고 나름대로의 자긍심을 가지고 주의 종으로 활동했건만, 막상 성전에 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난 뒤에는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망하게 되었구나. 끝

고담에, 고담 장면은 우리가 미리 알아서 느긋하지만..그담 장면은 이사야가 예상도 못하고 우리도 예상 못한 거예요. 그담에 천사가 와서 숯불로 지져줄 줄이야..그건 우리가 예상 못했습니다. 우리의 예상 하기는 지지는 것은 못하고 파스 붙이는 정도. 우리의 계획은 주께서는 그 인간의 입술을 지져 버리고, 니가 알게 된 진짜 알게 된 하나님의 영광을 전하기 위해서 누가 갈꼬? 뻔히 알면서도 “누가 갈꼬?” 하니 “제가 가겠나이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사야 3년 동안 발가벗고 돌아다녀도 이사야는 “감격” “대박”.

3년 동안 발가벗고 애굽에서 전도해도 남들이 뭐라고 흉을 보든지, 가족들이 어떻게 돌보든 상관없이 본인은“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그 때 그 시절 품속에서 벗어나지 않죠. 그러니까 그다음 차례에 이사야 준비된 것이 무엇이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계속해서 기능적으로 이사야를 말씀 속에 풀장에 푹 잠겨서 계속해서 그리스도 오실 모습의 내용을 예언자의 모습으로 계속 주어지는 거예요.

그거 받아서 이사야가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자기는 그냥 “감격” 하나님의 계심은 인간의 조작된 것이 아니고, 이게 바로 현실입니다. 이게 바로 숨겨진 현실입니다.

10분 쉬고 합시다.

첨부파일 : 하나교회 100805요한계시록 4강a.hwp (64.0K), Down: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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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6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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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