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씨의 글을 읽고
김현수씨의 글을 읽고
이름 : 이진용(IP:117.53.231.96)
김현수씨의 글을 읽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분의 피로써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고 이 세상에서 불러 주신다면(십자가의 강도처럼) 그처럼 해피앤딩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남겨 놓으신 이유는 주님의 주되심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을 증거하는 자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남겨두신 것이(행1:8)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신 일이 영광 받으시려는 것이고 성도는 그 영광의 배경일뿐이다.
교회(성도)는 주님께서 피 값 주시고 사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게 팔린 자이고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이 것이며 내 것은 없고 오직 주의 것이다 라는 것을 모르는 성도는 아무도 없다. 문제는 성도에게 육체가 있다는 것이다. 이 육체는 먹여주고 입혀주고 씻어주고 하는 일들 즉 생존의 문제가 있다는데 성도의 마음은 갈라지는 것이다. 마음은 주님을 위하여 살고 싶은데 육체는 자신만을 섬기기를 고집하며 끌고 간다(롬7:19).
김현수씨의 글을 읽으면서 욥의 친구들은 다 어디있는가라는 글에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영적침체에 빠진 분들을 목사라는 자들은 정죄하기 바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다. 믿음이 없다느니 가짜 복음을 믿는다느니 하는 무리에 나도 속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다. 우리가 내 일이 아닌바에야 할 수 있는 것은 정죄하는 일뿐이 아닌가? 아니면 나는 복음을 전했으니 성령님께서 역사 하신다는 당연한 생각뿐인지?
목사들의 위로의 목회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위로의 목회는 교회 사업의 또 한가지의 방법일뿐이다. 사도행전 4장 36절에 보면 요셉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사도들이 별명으로 바나바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 같다. 번역하면 권위자라는. 권위자란 권면하고 위로를 잘했던 것 같다. 초대 교회의 주를 열망하는 그 뜨거움 속에서도 영적 침체자는 있었던 것이다. 아니 성도에게는 항상 마귀의 공격으로 인한 침체가 있다 언제든지. 주님께서 왜 허락하셨는지 알 수는 없으나 마귀의 공격이 없으면 성도가 아니다. 침체의 과정을 겪게 하시면서 성령님께서는 성도를 주님의 십자가로, 주님의 가신 길로 기쁘게 이끌리어감을 깨닫게 하신다.
좌절과 낙망 속에 빠진 분들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마음 속에 잘 안들어 온다. 오직 자신의 고통과 괴로움에서만 탈출을 시도한다. 그럴수록 더욱 깊은 절망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원망과 낙망이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인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죄와 판단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뿐이고 모든 일은 주님께서 하신다. 아무리 절망과 낙망 속에서도 주님은 찾아오신다. 때가되면 우리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직접 찿아오셔서 깨닫게 하시고 절망과 낙심을 기쁨과 희락으로 바꾸어 주신다. 그리고 그 길이 좁은 길이며 고난의 길 임도 깨닫지만 문제는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반복된다는 것이다.
성도의 마음은 준비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마귀는 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주님께서 같이 하시고 있으며 결코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성령님께서는 상기 시키신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주시며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 분을 믿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물론 그 믿음조차 주님께서 주신 것이지만.
공포와 낙망은 이 세상에 나 혼자라고 생각하며 빠져 나갈 길이 없고 방법이 없다고 단정졌을 때 깊이깊이 찾아든다. 우리가 마귀의 괴궤를 모르는 바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우리 속에 사신 주님께서 주님의 길로 이끄심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이 글로 김현수씨를 판단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욥의 친구로서 말씀드린게 아닙니다. 나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