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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하나교회100701요한계시록 3강a자유게시판요한계시록

하나교회100701요한계시록 3강a

이름 : 이한례(IP:119.148.121.61)

하나교회 100701요한계시록 3강(서울하나교회, 이 근호목사)

제 3강a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말씀을 생각할수 있는 여건과 환경과 시간을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이 떡이 없어 모자라서 죽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없어 죽는 이러한 이 시대에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 확답할 수 있는 시간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요한계시록 오늘 이시간에는 7교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7교회가 처음 등장하는 것이 요한계시록1장11절에 보면

가로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그렇게 되었죠.

7교회가 실제로 있는 교회 입니까 라고 물으신다면 사도요한이 사람입니까 로보트입니까 묻는 거와 똑같은 거예요. 사도요한이 소설책의 인물이 아니고 홍길동이 아니고 실제로 실제로 있는 사람이라면 7교회도 실제로 7교회가 있습니다 지명도 나와 있습니다.

터어키 남쪽 밧모섬 앞에 이쪽에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라오디게아 이렇게 교회가 있어요.

그럼 한번 물어봅시다. 사도요한이 실제 인물입니까? 가상 인물입니까? 7교회도 실제로 있는 교회 입니까?

가상교회입니까? 실제로 있는 교회라면, 그렇다면 7촛대가 실제로 있는 겁니까 가상입니까?

네 그게 문제죠. 성경을 잘라가지고 가시적인 것만 실제로 봐버리고 성경에 나와 있는 보이지 않는 더 중요한 세계에 대해서 현대인들은 외면해버립니다.

제가 좀전에 우리 목사와 집사와 식사하면서 사당동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인파들을 봤어요.퇴근시간이라 차가 비잡고 엄청 사람이 위에서 올라가고 내려가고 합니다.

실제로 생생하게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엠마오에서 두 제자들을 만난 것처럼 사람들이 실제로 생생하게 있는 거보다 실제로 더 생생하게 살아계신 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에요.

엠마오에서 두 제자와 내려갈 때에 그들은 생생하게 자기가 본 것을 생각하면서 실망스러움 속에서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근데 생생하게 생긴 아저씨가 게 아저씨가 붙어가지고 동행합니다. 그러나 생생한 그분이 예수님인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식사하면서 눈을 열리게 하니까 예수님이었습니다. 열리는 순간 획하고 그분이 사라졌어요. 그럼 그분이 획하고 사라졌으면 그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겁니까? 아니죠? 우리 눈에 왜 예수님이 꼭 보여야 된다는 것은 너무 심한 욕심이고 내가 보이지 않더라도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있음을 믿어야 그게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그렇게 구분될 거 아니겠습니까?

안 믿는 사람도 눈치 채는 식으로 일해 버리면 안 믿는다는 티가 안나잖아요.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의 티를 내야지 항상 생생하게 사람만 중요하지 성경에 나와 있는 예수님 같은 것은 안 중요해라는 사고방식들이 주위에 이렇게 많이 들끓어줘야 아~~ 이 세상이 정말 불신의 세계구나. 성경 말씀대로 맞네. 하고 신앙인들은 확인해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불신자들의 말이 “너도 나처럼 믿는다고 착각하지 말고 네 눈이 너도 사당동에서 사람들 보이지? 이세상은 사람뿐이야 하늘 달 별 나무 바퀴벌레 그 뿐이야 그뿐이라고 왜 자꾸 성경 속에만 나오는 세종대왕도 사라졌고 이순신장군도 사라졌고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하는 그도 다 없어졌는데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없는거야 라는 압박감을 우리는 한시도 쉬지 않고 늘 압박감을 받고 있습니다. 불신의 세계에서...

그런데 불신의 세계가 이미 신학교와 교회까지 다 점령했단 사실 아닙니까. 이미 신학교와 교회까지 예수님의 이 불신의 세계가 다 점령해 가지고 예수님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 말씀을 윤리적 도덕적으로 지키면 이미 하나님 뜻이라고 가르치는 그런 세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 돌아가셨는데, 할아버지 제사 날 다 됐는데 할아버지는 돌아가셔도 그 분의 교훈은 남아 있으니 우리 자손들 도리로서 지켜야지 이거하고, 이거하고 할아버지 제사 지내고 있는데 할아버지 나타나셔서 어이 다 치워 이거 뭐야 이거 무슨짓이야 제사 지냅니다. 누가 죽었는데 제사드려? 이거 영 얘기가 다르죠? 이거 다른겁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 눈에 보입니다 분명히 보입니다 빨간옷 파란옷 하얀옷 보입니다 요즘 하얀옷 많이 보입니다. 분명히 있어요. 거기 예수님 섞여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변화산에서 하나님 말씀에 “너희는 딴 걱정 말고 저의 말만 듣고 살아라” 쓸데없이 환경 문제 북한 핵문제 신경쓰지 말고 너희는 예수의 말만 듣고 살아라 그렇게 살았던 엘리야 모세 천국에 가 있습니다.

구원 받는 것 어떻게 보면 간단합니다. 예수님 안 죽고 지금 우리들 함께 섞여 있기에 사람들 기대하는 말, 시선 그것보다 더 엄중하고 진지하게 생생하게 살아계신 예수님 말씀을 우위로 느끼면 그게 구원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1장 11절에 보면 7교회 분명히 있다 했습니다. 동의했습니다. 제가 또 동의를 받아내야 할 곳은 12절입니다.

12절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금촛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죠? 여기 왜 이렇게 힘이 없는 표정이에요? 왜 그래요? 분명히 금촛대 있죠?

또 묻습니다 7교회가 하나교회 근처에 있다고 합시다. 7교회가 터어키에 있지 않고 두아디야 사대....교회가 하나교회를 포위하고 있다면 그러면 하나교회는 어느 교회를 보아야 합니까? 7교회를 봐야 합니까? 주님 안의 7촛대를 봐야 합니까?

하나교회 어디를 봐야 해요? 7촛대 거하는 주님을 봐야 되죠. 하나교회 주위의 7교회가 욕합니다. 하나교회만 교회고 우리는 이단이냐 이렇게 불평불만하고 공격해댑니다. 많이 들었습니다.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엄청나게 들을겁니다.

교회가 교회하고 교인이 교회하고 대화할 때 눈에 보이는 것(불신자의 안목)만 이야기하자 라는 안목을 넘어서서 범위를 넓혀서 보이는 것은 잠간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는 안목을 가지고 서로 그런 안목을 가지고 이야기가 되야 그것이 말씀대로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다고 그거 뚝 잘라버리고 보이는 것만 이야기 하자 하면 신앙이 다르네요 뭐 같은 질이 아니네요. 하면 대화 자체가 성립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어느 집사님, 어느 교인이 교회 찾아왔는데 “목사님 이 교회 그만 나올랍니다. 왜? 저 집사님이 나하고 식사할 때 먹는데 줄줄 흘리고 먹는다고 저보고 뭐라 하니 삐지고 나올 때 사랑 많은 교회인줄 알았는데 목사님 하는 말이 ”사람보고 나옵니까 주님 보고 나오죠“. 자꾸 이야기 하죠. 주님이 보여야 믿지. 그렇다면 그분이 삐진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교회 올 때 이미 사람만 보겠어. 다짐에 다짐을 하고 교회에 온 거에요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어떻게 이용할까를 예상하고 온 거에요. 그런 사람을 목사님이 붙들 때 내 그 집사님 주의하고 공개사과 할게요. 앞으로는 더욱더 집사님, 성도님 도와드리겠습니다. 필요하면 집사님 심방가고 어려우면 도와주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붙잡은들 뭐합니까 노림수가 눈에 보이는데 붙잡아도 곤란하죠.

오늘 주제가 그거에요. 붙잡지 말아야 할 것을 붙잡아서 이제 7교회가 문제가 된 겁니다 7교회 문제 간단하죠? 되게 간단해요. 사도요한의 생각과 기존의 목회자 생각이 달랐기 때문에 천년만년 7교회가 등장한겁니다. 그래서 안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안 된다는 구절이 뭐냐하면 둘 중에 하나만 하라는 겁니다. 교회 하든지 말씀하든지

왜냐하면 교회 추종하던지 말씀추종 하던지 둘 중에 하나만 하라는 겁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어디서 나왔다고요?

7촛대가 원래 교회 원본입니다. 7촛대는 7별이 관리합니다. 7별은 뭐냐? 교회 천사(사자)들입니다. 교회 천사들은 고집이 세 가지고 교회에 대해서 봐주는 것 없어요. 기존의 있는 교회는 교인들 포섭하느라 바빠서 “아이고 말씀은 천천히 나중에 하시면 되고 우선 오세요” 사랑 원하면 사랑주시고 붙잡아놓고 애쓰는 반면에 정작 7촛대를 관장하고 있는 7별은 융통성이란 손톱만큼도 없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7교회가 복사본인데 원본 7촛대도 있습니다.

11절에 7교회 나오죠 12절에 7촛대 나오죠. 7촛대 사이를 누가 돌아다니고 계시죠? 7촛대에 그 사이를 예수님이 돌아다니고 계십니다. 왜 돌아다니는 겁니까? 왜? 왜? 가만히 앉아있지 왜 돌아다니는 겁니까?

원본하고 복사본이 안 맞아요. 원본하고 복사본이 안 맞아요. 교회 문제는 목회자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 문제는 7교회를 지장 없이 잘 관장하는 주님 문제지. 너희들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기존의 이땅에 있는 눈에 보이는 교회들이 할 일의 전부입니다.

왜 그러느냐하면 7촛대가 결국은 한 촛대로 모이게 되 있어요 . 이걸 에베소서에서는 머리도 하나요 몸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여러분 포크 봤죠? 포크가 2개 3개로 갈라지잖아요. 포크 가지가 4개라고 포크를 4개라 하지 안잖아요. 하나에요. 한 몸이 7개로 갈라지잖아요 왜 7이냐? 시범 케이스에요. 왜 시범 케이스냐? 그때 사도요한이 볼수 있는 관장할 수 있는 교회가 7교회에요. 필리핀 알라스카까지 갈 필요 없어요. 사도요한이 볼 수 있는 관장할 수 있는 교회가 7교회에요. 이것만 채택하면 되는데 모델하우스에요.

7교회 내용 들어보니 쉽죠? 7교회에 대해서 우리가 신경 쓸 필요가 없죠. 교회는 교회문제에요. 교회를 잊어버려야 해요. 교회 잊으라하니까 그렇다고 말씀은 잊으면 안 되고 .... 교회는 잊는 대신에 말씀을 생각하면 계1장 11절 12절 보니 말씀 생각하니 교회가 숨어있더라 어디? 보이지 않는 형태로

늦게 오신 분들을 위해 다시 묻습니다. 사도요한이 실제 인물입니까? 아닙니까? 실제인물이죠 로버트 아니죠? 차두리 아니죠? 실제 인물이죠. 그러면 사도요한이 편지하라고 했던 7교회가 실제교회 입니까? 아닙니까? 실제 교회죠. 그러면 다시 묻습니다. 7교회 편지하라고 보낸 7촛대가 실제교회죠? 교회가 실제죠. 교회가 두군데 있으면 안되겠죠. 교회가 한군데로 모아졌죠. 하늘나라 교회 있잖아요. 하나로 모아졌잖아요. 그런데 왜 교회 신경 써요???

진짜 원래의 교회에서 원래 우리보고 무슨 말씀을 주고 있는가 말씀을 주고 있는 곳이 진짜 교회에서 흘러온 말씀이라 생각하면 그게 바로 진짜 교회와 연결고리가 유지되고 있는 그러한 7교회가 하나밖에 없는 교회에 속한 지체들입니다.

강의 끝났어요. 할 것이 없어요. 할 게 없어요. 그러면 7교회 생성 누가 책임지는가 . 목사 목사님들은 교인 핑계대고 교인들은 목사님 핑계대고, 목사님들은 교인들이 평소에 말씀을 들으라 하니까 교인들이 평소에 세상에 사당동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남들은 부자인데 나는 왜 가난하냐 남들은 건강한데 왜 나는 몸이 아프냐 그러니까 좋은 사랑의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한다며 그렇다면 왜 내 애로사항을 들어줘야지 하고 우리 조상들이 절에 가듯이 온 거에요. 산으로 가려면 멀잖아요.

그래서 가까운 절 교회에 온 거에요. 지성이면 감천 빌면 복 준다고 해서 소문나서 왔다는 겁니다. 목회자가 말씀 전해도 가버리니 말씀 없이 간증 집회를 해버리니까 오게 되더란 말이에요. 말씀 말고 간증하니 어떤 사람은 이렇게 행해서 복 받았다고 하니 우르르 소문 듣고 오더란 말이죠. 목사가 신학교에서 복음 배우고 다 했지만 그것 같고는 목회가 안되고 고객이 원해야 점포가 되잖아요

손님이 왕이잖아요. 손님이 왕! 물은 셀프지만...ㅋㅋ 딴거 말고 말씀이죠. 손님이 와야 목사님들은 교인핑계 대는거죠. 그러니 교인이 무슨 핑계를 대느냐 하면 우리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거에요. 여러분 손발 가졌죠? 예 손발 가지고 뭘 해야 되지 않습니까? 행하라고만 했다는 거에요. 교회 오기 전에 알았던 사상이나 교회 와서 안 사상이나 별 차이가 없어요.

교회 안와도 나쁜 짓 하면 벌 받고, 착한 일하면 복 받고, 교회와도 나쁜 일 하면 벌 받고 이거 뭐 똑 같으니까 다만 차이가 난다면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면 30배 60배 100배로 복 준다는 그거 하나 새로 안 것 밖에 아무것도 새로운게 없잖아요.

성경을 보실 때에 그래서 요한계시록 1장부터 이 사상이 그만큼 어둡다는 것을 감안해서 1장부터 철저하게 깨부수고 들어갑니다.

“알파요 오메가 시작이요 나중이라” 하나님은 시작이요 나중이라. 예수님도 마찬가지고 시작이 있다는 말은 모든 것이 끝장 날 날이 있다는 말이죠. 현대 철학자들은 시작한 것이 없기 때문에 끝도 없는데, 종교 교회 지도자들이 사기 쳐서 사람들에게 돈을 빼먹는다고.. 그래서 절대로 종교 단체에 가면 안된다. 시작이 없다면 끝도 없는데 왜 자꾸 사람들은 왜 끝을 얘기하느냐

성경은 시작이 있거든. 그러면 시작이 있으면 시작이 어떻게 시작되느냐? 왜 그들이 그렇게 시비를 거느냐하면 시작된 것이 그대로 끝에 가면 그들이 할 말이 없는데 중간에 인간의 행함으로 문제가 틀어져 버리면 시작은 이렇게 좋게 시작했는데 하나님이 솜씨가 없어서 일이 엉망진장이 되가지고 엉망진창 된 것을 중간에 들어온 인간들이 자기 운명을 지가 알아서 착하고 선하게 힘들게 열심히 살면 자기 운명을 괜찮은 운명으로 바꿀 수 있다. 이런 식인지

애초부터 시작부터 결정된 채 나오는 것인지 둘 중에 하나를 이야기 하라고 철학자들은 신학자에게 공격을 해댑니다. 시작은 괜찮은데 나중에 되는 것은 인간하기 나름입니다. 이렇게 돼버리면 철학자들은 승리했어요. 그러니까 그게 우리가 아는 신이야

신은 아무리 뭘 해도 자기 운명 결정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 하기 나름이야 그게 바로 철학자들이 주장 한거야 인간이 나서야 데모도 하고 이 사회는 손발 놓고 묶고 있으면 사회 돌아가지 않아 우리가 나서야 촛불집회도 하고 교회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줘야 신의 뜻이야 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 거에요.

그러니까 신학자들이 할 말이 없는 거에요. 가만히 보니까 신학자 주장한 거 보다 철학자들이 더 많이 알고 더 심도 있게 신의 아들처럼 살아가고 있거든요.

신의 아들 하니까 “사람의 아들” 소설 쓴 이문열 ‘ 빈민촌에 가서 어려운 사람 돌보는 것이 더 멋지게 보인단 말이죠. 뭡니까? 계명대학교 이사 김 진홍 목사처럼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복 받습니다.라는 말이죠.

그런데 만약에 성경을 다시 보게 되면 처음부터 결정됐어요. 그러면 성경에서 다시 보게 되면 인간 들어갈 틈이 없어요. 성경이 처음부터 결정됐다는 사실이 그들 눈에 왜 안보이죠? 참 이상하죠 정말 이상해요. 정말 이상합니다. 야곱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창세 전부터 사랑받기로 작정했고 에서는 미움 받기로 작정됐다. 라는 그것이 왜 그들 귀에는 들리지 않을까요??....

이것은 믿을만한 것을 따로 챙겨놓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가 믿을 만한것을 보이는 것을 따로 챙겨놓고 그 다음에 성경을 보니까 성경은 자기가 확립한 사고방식과 사상과 인생관을 그냥 손도 박수 쳐 주는 호응해주는 용도로 잡아 땡기는 거에요.

그러면 따지고 들어가는 거에요. 당신이 성경을 보기 전에 당신 나름대로 확립한 철학과 사상은 누구 중심이죠? 내가 일생동안 느꼈던 내 중심이죠.

그러면 성경은 두 가지죠. 첫 번째는 그게 성경에서 인간은 처음부터 죄라고 규정했으며 그것도 죄가 되는 겁니다. 두 번째 단순히 죄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그 죄로 인하여 메시야가 밀쳐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당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면 어떡하란 말입니까? 내가 어떻게 생각해도 그 생각한 것을 구원 받지 못하는 저주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지 못하죠.

자 봅시다. 오늘 들어가기 전에요 들어가기 전에 봅시다. 불교하고 복음하고 차이가 뭐냐면 불교는 자기가 자기를 늘 연구하고 탐색하는 거에요. 중심이 누구 중심입니까? 중심이 나 중심입니다. 부처가 있으면 부처를 죽이고 보살 중을 죽이고 중요한 것은 내가 부처고 부처가 모델케이스가 되는 거에요. 모든 것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자기중심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현실이 뭐가 생생합니까? 자기중심이 되는 거에요. 내가 여기 있음 이것이 생생함이에요. 이들에게 7촛대 있습니까? 하늘에 있는 7촛대가 없는 거에요.

불교 신자 중한테 7 촛대 하고 무슨 상관이냐? 안다고 행복해집니까? 7촛대 알면 내가 행복해집니까? 하고 묻는 거에요. 당신은 행복해 질 자격이 없어. 저주 받아야 마땅해. 누가 나보고 저주 받으라고 해 누구야? 예수님이 그렇게 하더라. 하나님이 그래. 누가 그래? 예수 나와 보라 그래. 내가 손 좀 봐야지. 그러니까 또 예수님이 미움 받고 십자가에 죽는 일이 벌어지는 거에요.

요한계시록 11장에 보면 두 증인이 수난 받는 그곳이 어떤 장소든지 십자가 주님이 못 박힌 장소가 되는 거에요. 그것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옛날 구약에는 애굽이 여기 있고 애굽과 광야와 약속의 땅 사이에 무슨 바다가 있어요? 홍해바다가 있죠. 그럼 애굽은 홍해바다 건너기 전에 애굽은 애굽이에요

홍해바다 건너 광야 지나 가나안 약속의 땅에 와야 이 지점에 와야 약속의 땅이 되요. 애굽은 약속의 땅이 아니에요. 신약에 보면 애굽이 약속의 땅이 되고 말아요. 어디 나오느냐 하면 마태복음2장에 나와요. 내가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러내었다 호세아에 인용하면서 예수님께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서 애굽에서 피신한 것을 가지고 뭐를 인용합니까?“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러내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공간이 애굽이 되는 거에요.

신약에 오면 땅의 개념이 이상해버려요. 요한계시록에 오면 여기도 애굽 여기도 애굽이요 이 세상에 애굽 아닌 곳이 없어요. 오호선 대장이 어디 올라갔습니까? 아세요? 오호선 대장을 아십니까?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갔잖아요. 거기가 애굽이에요.

그리고 골로세서 3장에 보면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다른 땅으로 이전해야 될 그런 신분자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당동에서 내려오는 그 수많은 인파들 생생하게 눈에 보는 인파들 그것만 쳐다보고 있으면... 사당동이 어디 있어요? 대구가면 중앙동, 동숭동 따로 있지. 모든 이런 것은 공간적인 혼선으로 반칙에 해당되는 겁니다. 공간적인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 가지고 성경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어디가도 애굽이고 어디가도 십자가 죽는 장소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십 여년 전에 대구 어느 교회에 있었는데 누가 물어요. 목사님은 성지순례 안갑니까? 젊은 사람이 투박스럽게 물었습니다. 지금은 말씨가 좋아졌습니다만...

지금 여기가 성지인데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왜 여기가 성지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곳이 바로 예수님 계신 곳이 성지인데 지금 거기 가면 예수님 아니고 거기는 예수님 기념만하지..사람들은 오해하게 되요. 예수님이 없다더니 역시 없구나. 화장실 가서 2층에 가서 아! 여기 예수님 여기 계시구나. 이렇게 느껴져야 하는데 화장실은 원래 귀신만 있고 몽달귀신만 있고 적어도 예수님 만나보려면 갈릴리 가야돼 그래서 갔더니만 평상시 예수님 없다더니 역시 없는 거야. 자기 믿음 없는 것은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이 농후한 거에요. 돈 들여 가지고 여행사에 교회한테 차비 얻어 내가지고

요한계시록에 들어가면서 바로 이러한 개념의 확산을 알아야 해요. 개념의 확산!! 개념의 확산이 어떻게 퍼지는가를 봐야 해요. 한 가지 예를 들면 왕하5장 지난 수요일에 한 겁니다. 왕하 5장에 나아만 장군님이 문둥병 걸렸습니다. 낫고 싶어가지고 엘리사 찾아왔습니다. 아직까지 생각하는 것이 생생한 인간 엘리사 선지자 만나야 문둥병 내 몸이 생생하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말씀만 주었어요. 말씀만!! 요단강 7번 들어가라는 거에요. 그래서 삐져가지고 그냥 가려고 했습니다. 주위에서 말려서 그냥 7번 요단강에 들어가서 몸이 나았어요. 문제는 게하시가 문제였어요. 그걸 보고 게하시는 어이~ 나아만 장군 그거 그냥 갖고 가면 어떻해. 염치가 있어야지. 당신은 우리 엘리사 선생님이 말씀 줘서 나았잖아. 라고 해석해서 우리 엘리사 선지자 편에 뭔가 나은 값을 해야지. 그냥 그렇게 안줘도 됩니다한다고 그냥 넙죽 가져가면 어떻해. 내 놔. 그래서 줘 버렸단 말이죠. 주니까 자기는 선물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뭐를 줬는고 하면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게하시가 문둥병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정작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내가 순종해서 문둥병 요단강 7번 왔다 갔다 한 것이 전혀 병 낫는데 아무런 보탬이 안 되었다는 것을 본인이 알아요. 본인이 압니다. 그 옆에 사람은 순종해서 요단강 왔다 갔다 하였기에 나았다고 그 댓가로 얻어 먹었다고 오해를 한 겁니다. 여러분 웃기지 않습니까? 나아만 장군은 물에 7번 왔다 갔다 한 것과 상관없이 주께서 자비를 베풀어서 이 병을 그냥 낫게 한거에요 그래서 엘리사가 안 만난겁니다.

말씀이 온 것은 그 말씀을 통해서 너의 순종이 너에게 어떤 보탬과 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에요. 우리에게 말씀을 준 것은 너는 낫게 되었기에 낫게 된 거에요. 언제부터?? 창세전부터... 창세전부터 문둥병 걸리게 되어 있고 낫게 되어 있는 거에요.

그게 알파와 오메가에요. 이미 시작할 때부터 중간에 틀어지는 것이 없어요. 이미 누구는 천국가게 되어 있고 누구는 지옥 가게 되어 있고 가룟 유다는 자살해야 되고 전부 다 들어 있어요.

이게 뭡니까?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 입을 자에게 긍휼을 주는 그런 방법으로만 구원되는 겁니다 . 그런데 은혜와 자비를 이 중간에 있는 무엇이 끼어드는가 하면 내 행위로 얻어내는 어떤 은혜, 내 행위로 바쳐서 받는 보상 그런 식으로 다 뒤바꾸는 거에요. 그 뒤바뀜의 현장에서 주님이 십자가 못 박힌 몸으로 등장하시는 겁니다.

인간아 이 같은 죄 우습게 봐서 내가 죽었고 니가 순종해서 구원 받는다고??... 내가 너같은 인간 때문에 피 흘려서 죽는다 근데 이 사실을 신약에 와도 사람들이 모르고 예수님 믿어서 구원 받는줄 알고 있어요. 예수님 믿어서 구원 받는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예수님 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겁니다. 이미 우리가 어떻게 구원 받는가 하는 것은 우리 믿음 없이도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에요. 십자가에서 그담에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나 하는 것은 십자가 사건에서 성령이 주어지게 되면 아~~ 내 행함이 아니구나. 오직 주님의 피의 공로로 피 공로로만 구원 받구나. 하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 인정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나에게서 나오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고 이미 완료된 믿음 그러니까 제 값을 하는 믿음, 효용이 충분히 나타나는 믿음은 수입을 해야 합니다. 그냥 공짜로 수입해서 온 믿음으로 봐 보니까 내가 믿어서 예수 믿는 믿음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거에요.. 그때부터 자기 예수 믿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피를 증거하는 거에요. 이걸 사람들이 몰라요. 몰라요. 하여튼 7교회 요한 계시록의 7교회 2장 3장 신학교나 교회에서 우리도 바른 교회 되자고 해요 바른교회 돼서 구원 받는 사람 한사람도 없어요. 바른 교회는 우리 소관 아니에요. 바른 교회 될 필요 없습니다. 바른 교회는 이미 있어요. 그걸 믿으면 되어요. 바른 교회는 교회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니고, 아! 우리 교회는 옳은 교회 아니구나 그걸 믿으면 바른 교회에요. 교회에서 복음이 나오고 말씀이 나오기 때문에 복음 믿고 나오는 겁니다. 교회에 기대해서 나오는 거 아닙니다.

교회 사랑받기 위해 오면 안 됩니다. 요한 계시록 2장 3장 설교하는 것, 주석해놓은 것 보면 기가 차요. 기본적인 감을 전혀 못 잡고 있어요. 이겁니다. 요한 계시록 2장 3장에서 책망 받는 일이 있거든 우리보고 책망하란 말이 아니라 책망 받는 일이 나타나야 한다는 거에요.

아! 이거 참 무슨 뜻인지 내가 해놓고도 진짜 어려운 말을 했는데... 아버지가 장사 안하고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힘들게 일해서 자식 키우느라 애쓰는데 아버지는 놀음판에 가서 놀음만 하고 있는 거에요. 그걸 목사님이 보고 김 집사 남편이 노름판에서 노름하고 있습니다..라고 얘기 한것은 남편은 죽 노름하란 말이에요. 노름하는 남편 개과천선해서 교회 오란 말이 아니고 노름하란 말에요. 그리고 당신 힘으로 힘들게 일해서 자식 키우라는 말이에요.

왜들 그래요 표정들이.....ㅋㅋㅋ 그래야 하나님 말씀대로 다들 된 거에요. 그걸 노름판에서 와 버리면 그건 목사 말이 틀린게 돼버려요. 당신 남편 노름 좋아 하니까 계속 좋아하게 두고 자꾸 고칠라 하니까 행함이 들어가는 거에요.

에베소 교회 첫 사랑 잊어버렸다. 그냥 잊어버려요. 잊어버려도 괜찮아요. 왜 담당교회는 원본 따로 있기 때문에 사본은 어째도 괜찮아요. 아~~ 그래서 교회가 아니구나. 그걸 알면 얼마나 속이 시원합니까?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것이니 우리교회 정신 차립시다. 정신 차릴 것 없어요. 주님만 있으면 족해요 .뭘 기대합니까? 좋은 교회 나와 보라 해요. 화평교회? 아이고 참!! 녹매교회? 녹차 매실교회? 우리교회? 허... 우리 교회가 좋은 점은 뭐냐면 우리교회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교회 교인들이 다 안다는 사실이 좋은 점이에요. 우리교회 교인이 예수 믿고 나오지 교회 믿고 나온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정말 좋아요. 그래서 소통이 돼요.

하루는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객소리 많이 하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월세가 많이 나가고 재정이 적자 나고 목사 월급 주기도 참 부담되고 이럴 때에 여러분들이 얼마씩 돈 내가지고 목돈 내가지고 교회 하자 이러지 마시고, 평소에 여러분 사는 집을 개방해서 우리 집은 20평인데 교인들 대충 앉게 하겠습니다. ‘우리 집을 개방 하겠습니다 하고 여러분 집을 개방하고 돈 내지 말고...여러분 집을 개방해야 집 따로 있고 교회 따로 있고 하는 이러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단 말입니다. 다들 집 갖고 계시죠? 교회가 교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여기 폭격 맞으면 집으로 모여라 하면 됩니다.

말씀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 두세 사람 있는 곳에 내가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빠져 버리면 뭐가 교회겠습니까. 주께서 성령을 통해서 말씀을 주는데 여러분 정신을 엉뚱한 교회에 신경 써 버리면 주님조차 쫒겨 나는데 그 동네에서 주님도 배제당해요.

목사님들 교회 신경 쓰는 것 하나 밖에 없어요. 그건 생존 문제에요. 자기 점포에요. 점포. 생계 때문에 그래요. 청춘 다 바쳤지. 이젠 기술도 없고 생계 때문이고 노후 대책도 그것밖에 안되고 그 외 이유가 없어요. 사진관 하다가 다 때려 치고 사진관 안 되니까 목사 되면 성공한다는 그런 것을 기도원을 통해서 큰 목회하는 선배들한테 말 많이 들었거든요. 근데 그런 식으로 후배 선배들한테 약 올리듯이 다 때려 치고 목사 성공했다는 말을 할 때 맞아요. 사도요한 살아있죠,7교회 살아있죠. 기도원 살아있죠. 그것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 뭐냐면 예수님의 말씀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비교하여 보라는 거에요. 기도원 가서 생생하게 그런 간증 들으시고 아!! 그것보다 주의 말씀이 십자가 죽으심이 하나님께서 한 남자를 죽여서 그 피로 우리를 교회되게 하셨다는 사실이 더 생생하게 다가오게 될 때 비로소 그런 이단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어요.

시작이요 나중에 이런 온갖 것들이 들끓는 이유는 사람이 자기 믿음으로 구원 받지 못한다는 것을 자기 신념으로 이 어두운 세상의 유혹을 극복할 수 없었던 죄인인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회개하고 안하고와 관계없이 이미 결정된 사항을 나중에 차후적으로 성령을 통하여 통고해 준 겁니다. 마~ 땡 잡았어요. 믿을 때에? 아니 창세 전에... 창세전에 없었는데요?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은혜고 자비지.그러니까 니가 니 의견 받아서 내가 구원하진 않잖아.

구원해주이소~ 이래야 구원 안하잖아요. 여러분 설계도 먼저 보고 로봇 만들잖아요. 로봇만들어놓고 의견 듣고 수정하진 안잖아요. 여러분 설계도대로 하지 이미 짜여진 대로 다 했을 뿐이에요. 너는 이렇게 죄인으로 살다가 공짜로 구원 받는 거야. 그렇게 하는 겁니다.

예수님 십자가 피 앞에서는 죄인밖에 없다는 거여요. 죄인밖에 없다는 말은 이 생생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그 질서, 그 계념, 그 언어적인 그 이미, 이런 것과는 별개의 질서와 언어와 개념이 통하는 딴 동네가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자~ 김 집사님 여기가 어딘지 알아 맞춰 보세요. 수건으로 눈에 안보이게 가리고 어느 장소에 가서

간호사 여기 환자 빨리하고.... 그러면 눈 감고 그 동네가 어딘지 앎니까? 아 병원이구나. 또 그 사람을 데리고 안보이게 하고 피고는 반드시 했습니까? ....변호사 .... 어디 온겁니까? 법원에 온것이죠? 그러니까 그 환경에서 통하는 용어들이 그 용어를 보고 그 공간의 성격이 결정되는 겁니다.

바로 성경이라 하는 것은 영적 용어들이 인간들이 불신자들이 통할 수 있는 그런 용어들이아니에요. 그들이 사용할 수 없는 용어와 개념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이걸 미셀 쿠프가 당론. 디스커스 당론에서는 인간의 명제와 문장을 뛰어넘는 음표가 나온다는 유명한 말 했는데......

몰라도 돼요.

왜 이런 소리를 갑자기 하는고하면 개혁주의 신학 논문할 때 문법적으로

명제와 문법을 뛰어넘는 그 어두운 세계 통하는 질서 단어 따로 있고

영의 세계 통하는 단어와 개념이 따로 있어요. 그걸 역사적 해석 가지고는 해석이 되지를 않습니다.

나아만 장군 같은 그러한 이야기가 도저히 해석이 안돼요. 또 무화과나무 이야기를 했거든요. 무화과나무가 열매가 맺힐 때가 안됐는데도 예수님께서 저주했죠? 그걸 세상적인 철학적으로 설명을 해보세요. 열매가 맺힐 때가 되었는데도 맺히지 못하면 나쁜 나무가 되잖아요.

열매를 맺힐 때가 안됐는데 열매 없다고 저주하셨어요.. 제자들 보란듯이...

제자들은 예수님과 생각이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발언을 할 때 그 음표, 그 단어를 할 때는 도대체 예수님의 세계와 자기들의 세계가 전혀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왜 무화과나무를 닦달하느냐? 무화과나무 저주 하는 것은 마치 그 옆에 서 있는 자기들을 저주하는 것과 같았어요. 잘해 보려고 하는데,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 아직 열매 때가 안돼서 열매가 없는데 착한 억울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면....

그러면 성경 전체 해석을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간단하죠.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저주 할 자에게 저주하는 소관은 누구한테 있다? 나 예수에게 있다는 것을 그걸 니가 믿느냐? 베드로 하는 말이 “저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꼴좋다. 버리지 않는다고? 내가 너를 모든 환경(어두움)이 베드로 너로 하여금 철저한 네 힘으로 예수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줄게. 해서 베드로로 하여금 저주하도록 이것이 매일같이 일상생활처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어날 때 그 일어나는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생생한 사람들 사당동에서 내려오는 인파들, 그 사람들이 보고 있는 신문, 그 신문에 있는 프로야구부터 정치권 세종 시 문제, 생생한 병원에서 환자가 죽어나가는 병원장이 닦달 내는 그 생생한 현실, 거리에서는 사람이 교통사고 나서 경찰이 조치하는 생생한 현실, 학교에서는 애 공부 못한다는 자율학습하는 현실...

그 모든 현실 그것에 평생 그 안에서 몸담고 그것뿐이고 그게 전부고 그것에 죽고 살고 그래서 바빠서 오늘 이 자리에도 참석 못했고... 그런 식으로 그럭저럭 살아가서 그 세계에 푹 빠질 수 밖에 없는 우리라는 것을 교회 다니면서 말씀 보면서 확인하시고 확인해 주세요. 내 힘으로는 구원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 안 되는 나를 도대체 왜 어떻게 구원 받았습니까? 그러면 요한계시록에 주님께서 “피” 어린양의 피“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때부터는 자기를 위해 살려고 하지 않고 나를 위해 죽었던 예수 그리스도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죠. 되려고 하죠. 될려고 하면, 그로부터 내가 하고자하는 그것과 주님께서 주의 증인되게 하시는 간격, 차이를 날마다 확인케 하는 겁니다. 내가 열심히 주의 증인되려고 하는 옛날에 받았던 은혜로 몇일 버터 보려는 시도와 그것마저 죄로 규정하고 새롭게 주신 자비와 용서가 내 노력과 어느 것이 더 생생한 현실인지 어느 것이 주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더 확실히 느끼는 것인지 날이 갈수록 깨닫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가 정 없으면 여러분 집에다 모셔야 되는데 문제는 또 모실 때 문제에요. 만약에 모실 때 식구들이 다 환영하고 건강하면 좋은데 침해 걸린 똥오줌 싸고 벽에 바르는 시어머니 계시면 냄새 맡고 예배드려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그 침해 걸린 시어머니라는 생생한 현실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집까지 찾아와서 교회라고 인정해주시는 교인들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생생하게 살아계심 그 가운데서 날아가 버린 것은 우리의 영광과 자존심입니다.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하나교회 계시록강해 3강.hwp (64.0K), Down:26

강구만(IP:211.♡.68.67)

10-09-06 21:16

연식이 만만찮은 집사님들이, 그것도 십자가마을에 오신지 얼마되지 않은 분들이, 더구나 약한 여성분들이 (이근호 목사님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만 동의 못하는 분도 많으리라 여겨 집니다) 힘든 작업을 하셔서 연일 올려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무엇을 하든 주님께 받은 힘으로 하시길 빕니다.

오용익(IP:59.♡.201.250)

10-09-07 06:53

하나교회 계시록 녹취는 제가 시작만 해놓고는 계속 밀려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하면서 울상으로 있었는데 요한일서녹취도 그렇고 계시록녹취도 그렇고 이렇게 수고해주시니 그저 님 본듯이 반갑습니다. 녹취는 어떻게 하는 거냐고 걱정하던데요? 강의하시는 이목사님 왈, (어린아이같은 함박웃음 가득해서는) 그냥 막 하는 거라고 해 주세요. 그냥 막? ^^

오용익(IP:59.♡.201.250)

10-09-07 06:54

그냥 막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이한례(IP:119.♡.121.61)

10-09-07 07:32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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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7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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