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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교회 파괴묻고답하기-

교회 파괴교회를 부수시고 다시 세우는 주님(요 2:13-25)지난 주에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표적을 통해 주님이 정작 나누어 주시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먹고 마시는 기적이 아니라, 정작 주님의 때에 나누어 줄 주님 자신의 살과 피라는 요나의 표적 뿐이라는 겁니다. 이 의미를 주님이 언약을 다 성취하시고 약속한 대로 나누어 주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때에 우리가 먹은 것은 내 존재를 연장 연속 시키는 먹고 마시는 포도주가 아니라,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하는 주님의 살과 피 였다는 겁니다.(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오늘은 요한복음에서 첫 번째 표적을 행한 그 다음 이야기입니다. (요 2:13) 『[성전 청결;마21:12-13,막11:11-18,눅19:45-46] 유대인들이 해마다 지키는 유월절 축제가 되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요 2:14) 『예수께서는 성전뜰에 이르러 희생제물에 쓸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 또 그 뒤에 환전상들이 들어 앉아 있는 것을 보셨다.』(요 2:15) 『그래서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몰아내고 환전상들의 돈을 땅바닥에 쏟아 버리며 그들의 탁자들을 둘러엎으셨다.』(요 2:16) 『그러고나서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들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요 2:17) 『그때 제자들에게는 ㄴ) `하나님의 집을 아끼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 라고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이 떠올랐다. (ㄴ. 시69:9)』(요 2:18) 『그러자 유대인 지도자들이 몰려와서 예수께 따졌다. `무슨 권한으로 그들에게 나가라고 명령하시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그러한 권한을 받았다면 그것을 증명할 만한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시오.'』(요 2:1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성전을 다시 이곳에 세우겠다!'』(요 2:20) 『`뭐라구요?' 그들이 소리쳤다. `이 성전을 짓는 데 46년이나 걸렸는데 당신이 이것을 사흘 안에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겁니까?'』(요 2:21)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자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요 2:22)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뒤에야 이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께서 자신이 대해서 인용하신 성경 구절들을 깨달았으며 또 그것이 다 이루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요 2:23) 『[사람의 마음을 아시다] 예수께서 유월절 축제 동안 예루살렘에서 많은 이적을 행하시는 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야말로 메시야이시라는 사실을 믿었으나』(요 2:24) 『예수께서는 그들을 신임하시지 않으셨다. 그것은 누가 예수께 말씀드리지 않아도 예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요 2:25) 『(24절과 같음)』 (현대어성경)자 먼저 우리는 교회(성전)가 누구를 위하여 있는가에 대해 많은 책과 논의를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교회론, 성경적인 교회, 바른 교회상, 개혁적인 교회관, 참교회 다움 등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다 한결같이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태클 걸수 없는 그야말로 칭찬해주고픈 모습들이요 좋은 생각입니다. 자 그런데 아주 이상하고 낫설고, 어떤 종교에서도 잘 나타나지 않는 일종의 종교개혁과는 차원이 다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일은 바로 예수님에 의해서 나타난 일입니다. 지금 하나님께 경배 드리고자 유월절날 전 이방에 흩어진 유대인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몇날 며칠을 지내면서 온 이 유월절날에 그들의 노고를 덜어주고자 먼길에서 오다 혹 제물(소,양,비둘기,식물, 등등) 상하거나 죽거나 잃어버리거나 하는 난처한 일을 격었을때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봉사정신에서 나온 해결책으로 서로의 편리를 추구하고자 제물을 성전주변에서 매매하도록 하여 혹 혹여 제물 못바치는 일이 없도록 배려하는 그런 조치가 있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혹 깜빡하고 헌금 봉투를 못 마련해서 그냥 가지고 왔다 하더라도,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 여러 우산이 있듯이 건축헌금 봉투 감사헌금 봉투 십일조헌금봉투 생일감사헌금봉투 아마 점점 세밀하게 봉투 종류가 많아질껍니다. 과거는 매미채로 다 해결했지만요. 미리 미리 교회에서 봉투를 돈주고 사와서 준비 해놓으면 혹시나 준비 못한 분들에게 아주 좋은 대신 수고를 덜어주는 일이니 이 얼마나 좋습니까? 다 교회를 위한 일이고 하나님을 위한 일이니 말이지요.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입니다. 이상하게 주님만은 그냥 안넘어가십니다. 여기에 아무도 시비 거는자 없었습니다. 그쵸? 심지어 당파 싸움하는 그룹들도 여기에 뭐 그렇게 큰 시비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저 돈을 엉뚱한데 사용해서 가끔 똑바로 해라 라고 외치는 개혁자가 가끔 드물게 나타나지만(물론 이런 개혁적인 정의를 구현자들도 나타나길 대중은 원하고 있지만 이들도 강도입니다), 주님이 시비 거는 그것들에 대해같이 그 자체를 두고 시비 거는 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안넘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보통 문제가 아님을 몸소 보여주십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 비둘기 소 다 쫏아내고 돈을 거래하는 그 행정 책상을 엎어버리시고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마 21:13)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참 이상합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계신 집에서 만약 장사를 하며는 그 장사한 돈으로 뭐든지 할수 있지 않습니까? 아픈 사람 병원 치료비 내고, 가난한 사람 먹을 것 주며, 해외원정 구호품도 줄수 있고, 이거 무진장 할것이 많습니다. 지금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목회자 살림살이 해결 해주고요, 선교사 보조금도 줄수 있고요, 미자립개척교회 후원 할수 있고요, 사회봉사비도 지원하고요, 노숙사 독거노인 식사 제공을 할수 있고요, 고아나 버림받은 아이들 양육등의 생활 보조비도 할수 있고요. 이 얼마나 할게 많습니까? 안그런가요? 오히려 더 격려 해주고 더 많이 하도록 부추겨 줘야 하겠네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 나라 확장이나 기독교의 사랑은 이 세상 널리 널리 퍼져 나갈 것입니다.이런 좋은 기능을 왜 주님은 거부 하시면서까지 고집스럽게 내 아버지 집에 대한 독선적인 자기자신밖에 모르는 말을 하실까요? 남(타인)은 생각도 않고요. 그것이 다 불쌍한 사람. 이웃들, 타인을 위해 얼마나 좋은 일인데 말이지요.제가군입대 하기 전에 대구 계산 성당에 한번 가본적 있습니다. 그때 공부 삼아 성당을 처음으로 가봤는데 뭐 처음 느껴보는 분위기라서 아 그런가 보다 하고 나왔는데 아 마침 그때 재미있는 장면을 봤습니다. 성당 마당에 분주히 수녀랑 사제랑 바쁘게 움직이더니 예배 마친후 사람들이 다 나가기전에 큰 트럭을 앞 마당에 주차 시켜서 배추를 나누어 주는 장면 이었습니다. 물론 아주 싼 값에 농가를 살린다는 취지로 열린 행사였나 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왠 서비스냐 하고 사기도 하고 뭐 등등 분주한 모습을 봤습니다. 그런 모습에 사람들의 모습이 한결같이 다 천사같이 미소를 띄면서 아주 좋아라하는 모습이였죠. 참으로 생소 했습니다.아 그런데 성당에만 있는 줄 알았던 그런 행사가 개신교도 마찬가지더군요. 나만 몰랐던 거지요. 바자회 등등 이젠 연례 행사처럼 꼭꼭 지켜줘야만 하는 행사처럼 되었지요. 이래따지면 안 그런것이 없겠지요.이런 모든 움직임들이 다 교회를 나름대로 활기있고 생동력있고 살아있는 본인에게나 안믿는 동네 주민에게나 선한 모습을 보도록 하는 다 좋은 취지인 것 같습니다. 결국 뭔가 동질감이 있어 보입니다. 이신전심처럼 이것이우리에게 딱 맞는 교회의 모습 같아 보입니다.그러나 주님은 너무 독선 적입니다. 성전을 교회를 열린교회 열린성전으로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폐쇄적인적처럼 닫힌공동체처럼 너무 너무 냉소적으로 아니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채찍을 만드셔서 그런 모습 아름다운 모습을 다 엎어 버렸으니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거기 있던 사람들 얼매나 놀랬습니까? 생전 처음 느낀 마치 이것은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도전처럼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아무리 악해도 그런자를 못 봤을텐데요. 기가막힐 모습 아니었겠습니까?.자 예수님은 자신의 일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 자기 피알 하기 딱인 이 좋은 기회의 유월절에 가장 좋은 인상, 럭셔리하고 엘레강스하고 좋은 이미지로 사람에게 다가갈려면 특히 성전에서 만큼은 이런 행동은 금물입니다. 이랬다가는 복음은커녕 죽도 밥도 안되는 우리로 봐서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일을 망치는 모습이 아닐까요? 예수님 하실 일의 초반부터 이렇게 싸움을 걸 듯이 엎어버리고 쫏아내고 하는 모습은 오디션에서 낙방깜입니다.(교회 처음 설교 할때 교역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잘보여서 교회 중역자들에게 합격을 받아야지만 몇 년 동안은 먹고살 걱정 할 필요 없듯이 말이지요). 교회를 바르게 개혁하고 깨끗하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마치 한판 붙자고 선전 포고하는 전쟁을 하러 온 자의 모습 같습니다.여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두 모습이 나타납니다. 제자들과 유대인들입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은 이 상황을이런 반응으로 나타냅니다.참으로 이해가 안갑니다. 그 와중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요.(요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구약의 시편 69:9에 있는 말씀을 그 상황에 기억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이해가 안갑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서 구약의 말씀과 연관해서 주님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그것도 전혀 연관되어 보이지 않는 말씀을 떠올린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아무리 시편을 어릴적부터 달달 외우는 유대인 가정의 교육을 받았지만 말이지요. (시 69: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둘째로 유대인들의 반응입니다. 자 예수님의 저런 행동에 당장 포박하여서 성전모독죄로 바로 구속하여 가두면 되는데, 유대인들은 당황하고 놀랬겠지만 아주 침착하게 이 상황에 대처를 하는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흥분하여 화를 냄으로 상을 엎어버리고 이런 모습인 반면에 유대인들은 지금 유월절 이 거룩한 절기에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요 2: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유대인도 참 이상합니다. 거룩한 유월절에 행사 방해꾼이 나타났다면 그냥 바로 포박하여 가두면 될 겁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표적을 언급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해 보입니다. 절제하면서까지 이 성전에 일어난 일로 불상사가 크게 확대 안되도록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엄청나게 많이 모이는 그 속에서 그야말로 하나의 해프닝처럼 마무리 할려는 그래서 어떤 표적을 보여줄려고 너가 그러느냐? 함 봐줄게 뭔데 뭔데? 에이 별거 아니면 그냥 조용히 나가주세요 라고 할 것처럼 참으로 신기하게도 표적을 요구합니다.(요 2: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마치 우리가 앞에서 배운 마귀의 두 번째 시험처럼 거룩한 성전에서 일어나는 표적은 더욱더 거룩한 성전을 성전 답게 하기에 뛰어내려라 그럼 천사가 착 받쳐 줄거다 라고 구약의 시편 91편을 언급하듯 말이지요(시 91: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시 91: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시 91: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 91: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그러고보니 다들 시편 해석 싸움처럼 보입니다. 제자들도 그렇고, 유대인들도 그렇고 예수님도 그렇고자 이제 표적 문제로 압축이 되어 어떤 표적이냐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절정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이 반응에 예수님의 답변은 이러 합니다.교회를 폭파 해라 내가 3일 만에 일으키겠다.우리 생각에는 다시 일으킬 것말라고 폭파하냐 어차피 세울 것 같으면 그냥 유지하면 되지 않느냐 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가지는 그런 표적을 표적이라 할수 있냐 라는 겁니다. 적어도 표적이라면 교회를 3일 동안 눈에 안보이게 수리수리 마술을 부려서 3일만에 짠하고 나타난다면 이것은 박수칠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생명과도 같은 교회를 완전 파괴 시키라 라는 것은 조금전의 상을 엎어버리는 안좋은 추억 보다 더 자극적으로 시비를 걸고 전쟁을 선포하는 듯한 뭔가 악한 의도처럼 보이기 까지 합니다. 차라리 날 죽여라 라고 평생을 성전을 위해 두부팔며 헌금한 할머니가 뛰어나와서 말릴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주님의 답변은 너무 전투적입니다. 아니 작정을 하고 뭔가 그동안 잔뜩 벼르고 벼르어왔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사람들은 아니 46년 동안 지은 성전을 어떻게 3일만에 짓느냐고 의아해 합니다. 그들이 46년 동안 기술이 없어서 오래도록 지은 것이 아니라 모든 정성을 드려 부정함이 없도록 차곡차곡 열성을 다한 성전인데 아무리 빨리 짓는 건축 기술이 있어도 3일 안에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요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뭔가 전투적인 상황처럼 큰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아 보였습니다만 너무나 허무하게 뭐 별다른 일이 없습니다. 마치 해프닝처럼 죽도 밥도 아닌 아무일이 일어나질 않았습니다. 괜히 미움만 사고 밉상처럼 여김을 받게 된 것 뿐이고 아무런 일이 벌어지질 않았습니다.왜 이런 내용이 성경에 적혀져 있고 이 상황이 너무너무 이상해 보입니다. 두 양쪽이 서로서로가 교회에 대한 성전에 대한 열심과 동시에 성전에 대한 훼방꾼처럼 서로가 으르렁 거리는 모습 같아 보입니다.결국 성전과 표적, 교회와 표적 이것은 땔래야 땔수 없는 문제로 유대인들도(마귀도 포함해서) 언급하고, 예수님도 교회를 파괴하는 자로 더불어 교회를 일으키는 자로써 표적을 언급하십니다. 양쪽 진영 모두가 교회에 집착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이 양쪽 싸움에 끼여있는 듯 합니다. 누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을 가진자이고, 누가 삼킴을 당하는 자인지? 또 누가 교회를 파괴하는 자이고 누가 교회를 일으키는 자인지 여기에 양쪽 대결 구도에 우리가 놓여져 있습니다. 아니 이미 양 편에 서 있겠지요. 어느 편인지 모르지만. 아니 모두다 예수님 편이다 우기지만. 그래서 표적만이 이것을 푸는 열쇠임을 예수님도 유대인들(마귀)도 언급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서로가 말하는 표적이 다릅니다. 유대인은 교회를 교회 답게 하는 표적일 것이요, 예수님은 자신의 몸 이외에는 다른 교회가 없음을 말씀하시면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파괴 시켜놓고 다시 일어나는지 아닌지를 말씀하시는 요나의 표적을 언급하십니다. 그 표적이 예수님의 지혜만으로 나타난 십자가(요나의 표적)이기에 십자가로 그 양편을 갈라놓는 지혜로 말미암아 구분 구별될 것입니다.(요 3:14-18)(요 2: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이것은 지금 아는 자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다시 만나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후 알게 된 일인 겁니다.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 예수님을 만난 후에 알게된 한 참 뒤에 일을 미리 앞당겨 교회와 표적에 관한 유월절에 있었던 예수님의 말씀을 알게되어 믿게 되는 겁니다.주님 많은 사람들이 바른교회, 개혁을 추구하는 교회, 참교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표적을 직접 보이십니다. 그 표적은 요나의 표적 뿐입니다. 이 표적으로 판가름나는 교회임을 주님이 직접 교회를 파괴하시고 주님이 직접 일으키시는 교회. 곧 주님의 몸이십니다. 주님의 몸이 아닌 가짜가 판 치는 세상에서 주님의 몸이 어떻게 누구의 손에 늘 훼방을 받았는지, 바로 우리가 훼방자가 아니었는지, 여전히 주님의 몸을 무시하고 교회를 세우겠다고 열심을 내고 있지는 않은지, 주님이 지신 그 십자가를 통해 파괴되고 다시 일어나는 교회(오뚜기)임을 확인하는 주님의 열심을 지금도 행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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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81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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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 설교 비유에 대한 해석 2004년 1월 11일 마태복음 13:11-17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01-12
841 우리교회 Re..마 13:11-17 (비유에 대한 해석)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01-12
840 묻고답하기 Re..광야의 이스라엘 백성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1-12
839 묻고답하기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 - 최고관리자 04-01-12
838 묻고답하기 구자면 자매님 잘 도착했는지요? - 최고관리자 04-01-11
열람 ➜ 묻고답하기 교회 파괴 - 최고관리자 04-01-11
836 묻고답하기 Re..목사님 한번 평해 주십시요!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1-09
835 묻고답하기 목사님 한번 평해 주십시요! 시편 최고관리자 04-01-09
834 묻고답하기 samuel c.young이라는 사람을 아시는지요? - 최고관리자 04-01-09
833 묻고답하기 Re..목사님...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1-08
832 묻고답하기 질문이 있습니다. - 최고관리자 04-01-07
831 묻고답하기 아름다운 권력 - 최고관리자 04-01-07
830 우리교회 [일반] "우리교회"는 바른교회를 지향합니다.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4-01-05
829 묻고답하기 Re.. 예 ! 저도 그러 합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1-05
828 묻고답하기 Re..목사님 이럴땐 어떻게 권면해야하나요?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1-05
827 묻고답하기 목사님 이럴땐 어떻게 권면해야하나요? - 최고관리자 04-01-05
826 묻고답하기 하나님의 것, 가이사의 것 - 최고관리자 04-01-04
825 우리교회 Re.. 출 8: 1- 7 (개구리 재앙)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1-04
824 우리교회 Re.. 출 8: 1- 7 (개구리 재앙)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4-01-04
823 설교 예수님의 비유 2004년 1월 4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3:1-9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01-04
822 우리교회 Re..마 13: 1- 9 (예수님의 비유)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4-01-04
821 묻고답하기 혼인잔치의 표적 - 최고관리자 04-01-04
820 묻고답하기 Re..성경해석방법에 대한 질문입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1-04
819 묻고답하기 Re..여쭙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1-03
818 묻고답하기 한 해의 다짐 로마서 최고관리자 0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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