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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영국에서 온 편지자유게시판-

영국에서 온 편지

이름 : 강구만(IP:121.150.1.112)

주님 안에서의 수고로 또 다시 이렇게 은혜를 입게 되내요.
년말에 보내주신 책(욥 안에서의 그리스도)은 이곳에서 제가 참석하고 있는 교회의 교우들에게 읽어보라고도 하고 도서부에도 전해서 교회 책장에는 꽂혀 있으나 과연 몇분이나 관심이 있게 읽게되고 또한 읽은 후에라도 복음을 잘 깨닫게 될지 의문입니다.

그러니 복음을 더 깊게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오늘도 주님께서만이 당신 스스로 세우신 약속데로 일하고 계심을 그나마 조금씩 알아가게 되고 그것이 기쁨이요 감사입니다.

이곳 런던에서 25년을 지내오는 동안에 한 한인교회에 모여 외국에서의 외로움도 달래가며 함께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으나, 교회 모임이나 구역에서 말씀을 서로 나누는 가운데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제 자신이 언제부터인가 목회자들과 교우들로 부터 신앙의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음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교우들 중에서도 특히 일상 생활에서의 고민까지도 서로 나누며 가장 가깝게 지내오던 분(저희 교회 은퇴 장로님)과 마저도 무엇이 과연 바른 복음인가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서로에 대한 복음의 관점이 서로 다름을 인식하곤 (물론 제가 언급하고 있는 복음이 이상한 복음이라고들 반응을 하는...) 결국은 각자 생각하는 복음으로 나눠져야하는 최근의 저에 상황은 외국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에 비교 할 수 없는 외로움이요 아품이었습니다.

주변에 교우들이 그나마 알량하게 붙잡고들 있고 함께 말씀을 나눌때 마다 말씀에 순종이라며 제게 드리밀고들 있는 그들(인간)에 모든 행함의 가치들을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깡그리 무시하면 무시 할수록 그 분들로 부터 더더욱 높아만 가는 보이지 않는 제 주위에 높은 담으로 인한 외로운 싸움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신앙이라고 붙잡고 있는 그 분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남아 있음을 부인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에 은총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간단히 회신드리려다가 이제는 어디에다가도 대놓고 말할데가 없다보니 이렇게 넋두리를 늘어 놓게 됩니다.

신간 보내 주심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김동규 드림

추신; 제가 가장 가까이 지내던 그 장로님과 마지막으로 나눈 최근의 메일 내용입니다. 차례가 밑부분 부터 입니다.

===인용===

From: David Kim
Date: 2010/7/3
Subject: Re: 여기서 끝입니다.
To: XXX 장로

장로님,

이렇게라도 끝을 장로님께서 맺어주시니 다행입니다.
주님께서 직접 마부가 되신 마차는 주님의 창세전 계획과 언약대로만 치닫고 있습니다.
저는 그 주님에 일하심을 막고설 어떤 자격도 없는 오직 주님께서 오늘도 불쌍히 여겨서 구원해 주셔야만 될 불쌍한 죄인일 뿐입니다.

주 안에서

작은다윗 드립니다.

From: XXX 장로
Date: 2010/7/3
Subject: Re: 여기서 끝입니다.
To: David Kim

예수께서 승천 이후에 성령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또 바울이 회심한 이후에 집안에 밖혀 있었는가?
모든 사도들을 잡아서 놀고먹다가 천국 오라고?
등등의 의문을 던지면서

성령을 받은 자나 받지 못한자나
복음을 깨달은 자나 깨닫지 못한 자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예수님께서
헛 고생만 하셨던지 아니면 내가
믿는다고 하면서 그리고 복음을 깨달었다고
자신있게 말은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이나
깨닫지 못한 사람같이 순종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지는 않는가 ? 한번 쯤은 자신을
돌아 보는것이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복음이란 바뀌만 남고 한쪽 바뀌(순종=행함)가 빠진 마차가
내리막 길을 치닫는 것 같아 옆에서 보기가 위태
위태 합니다.
ㅇㅇ 드림

From: David Kim
Date: 2010/7/3
Subject: Re: 계속합니다.
To: XXX 장로

장로님,

이장우 목사님의 명확한 설교 내용을 잘 들으셨다고 하시고선 여전히 저와 핏대를 올리며 믿음이냐 행위냐에 대해서 이바구를
하시는것이 더 좋다고 하시니 이해가 안됩니다. 그 설교 내용이 명확하시다고 하시면 내용을 잘 이해하셨다는 말씀인데... 아직도 이런저런 성경 말씀들을 끌어와서는 이 말씀도 내가 해야되고 저 말씀도 내가 해야 된다고 적용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장로님께서 그 설교를 들으신 것 뿐이지 실상 그 중심 내용에 대해서 듣지를 않으셨다고 생각이 됨은 아직도 모든 성경 말씀들을
가지고 내가, 내가, 내가... 라는 내 중심만으로의 해석을 내놓으시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장로님과 저와의 본 토론 내용이 종국에 가서 하나로 합해지는 결론이 도출됨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가 더 커다란 차이가 있음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저는 성경이 주님만을 계시하고 있고 주님께서 창세전의 약속[언약]데로 이제까지 어떻게 일해 오셨고 현재도 어떻게 일하고 계시며 앞으로 어떻게 일하실 것인지 오직 그 주님의 일해가심을 더 깊고 더 넓게 더 높고 더 길게 알아가야
한다고만 말씀드리고 있는데, 장로님께서는 그런 저에게 자꾸만 동일한 성경말씀들을 끌어다가 당신이 이렇게 저렇게 해야 되지
않느냐고 하시니 성경 말씀을 접근하는 출발점이 이미 서로 다르다 라는 것입니다.

장로님께서 요즈음와서 더욱 제게 조언하신다며 예를드시는 모든 내용들이 그런 인간 중심에서의 출발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바친것을 보고선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음을 아신다고 하지 않았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를 썼는데 우리도
그렇게...등등등 모든 성경 말씀들에 대한 접근이 내가 중심이 되어 행해야 되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며...

그러니 이러한 상황의 종국에는 저는 계속해서 주님의 언약대로 일하고 계심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만 남게되고
장로님은 계속해서 인간의 의무 즉, '행함'을 말씀하시는 것으로만 남게 될 것이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제목으로 "계속합니다"고 잡으셨는데,,, 장로님, 저는 이미 그 계속에 종국, 그 끝지점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만이 들어날 것이고 하나는 인간의 가치가 들어나고 마는... 분명히 말씀은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아님이 아닌것이
성경에서 이미 인간이란게 어떠함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이냐 행함이냐에 대해서 더 이상 핏대를 내며 토론을 않겠습니다.
혹시나, 장로님께서도 믿음만임을 믿고 있으시면서도 그저 인간이 빠지기 쉬운 행함의 문제점에 대해서 더 확실히 하시고저
의도적으로 행함을 내어놓으시며 이바구를 하시자는 차원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어느 열심(?)있는 분이 제게 이미 언급한바와 같이 무익한 변론일 뿐입니다.

그러니 장로님께서 깨닫고 계시는 '믿음+행함'으로 신앙생활 해가시면 되겠고 저는 저대로 '주님에 다 이루심 안'에서 신앙생활 해가면 되겠습니다.

주 안에서

김동규 드림

> From: XXX 장로
> Date: 2010/7/3
> Subject: Re: 계속합니다.
> To: David Kim
>
>
> 나는 기억력이 없어서 어디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바울이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에 대한 말씀 중에 연약한 지체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먹을 수도 있고 안먹을 수도 있다는 말이 기억 납니다.

> 또 고전 10장 끝 부분에서 (31-33) 특히 32절의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하라! 이말씀을 권하고 싶습니다.
>
> 또 로마서가 시작되는 1일자의 본문에서 내가 느낀바는 왜 바울이 그처럼 애타는 심정으로 편지를 써야만 했을까? 로마교회에도 (우리 같이) 믿는다고 하면서 복음을 깨닫지 못한 형제들을 위한 안타까움이였겠구나 라는 생각과 14절에서 바울의 복음전도 대상이 헬라인, 야만인, 지혜 있는자, 어리석은 자들을 대상으로 복음 전하기를 안타깝게 애쓰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 김동규 집사님도 복음을 깨닫게 해 주셔서 저렇게 사용하시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
>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
> ㅇㅇ가

===인용 끝===

죄인들이 사는 세상은 영국이나 한국이나 '아담안'인 것을 새삼 알게됩니다.

복음이 성도들을 세상살이 부적격자로 만든 것 또한 보게됩니다.

본인의 허락 없이 내용을 공개 한것 양해를 구합니다.

찌질이집사(IP:110.♡.252.19)

10-07-23 10:28

참 전도자십니다. 이런 대화 나누는 것만으로도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음을 느낍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거두심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대화자의 문자적 합리성, 대략난감하지만 저도 그자리에 있었던 적 있었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그 안에서(율법안에서) 바로됨 없이 끊임없는 정죄, 나를 향한 율법의 정죄를 기억합니다. 자기 행위를 믿다니요. 그(자신의,인간의) 한계성을 체험하지 못한 까닭이겠지요. 도무지 다다를 수 없는 율법의 요구!!

이근호(IP:117.♡.164.12)

10-07-23 11:26

벽! 자존심이라는 이름의 벽들! 온통 이런 벽들로 둘러쳐져 있는 우물 속에서 성도는 한방울 기름처럼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살았어요!"라고 외쳐봤자 그들의 자존심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자존심은 곧 악마의 자존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다행인 것은 기름은 물에 섞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근호(IP:117.♡.164.12)

10-07-23 11:31

참고로, 신앙생활에는 바퀴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퀴를 아예 빼버렸습니다. 바퀴없이 천국까지 날아가는 UFO 같은 것입니다.

유상준(IP:121.♡.254.22)

10-07-24 15:08

세상 어디인가 나 같은 외톨이가 하나 더 만들어 지고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오손도손 정답게 같이 예배하고 기도하고 봉사하던 교회에서
어느날 나는 그들로부터 저만치 있음을 알게 된다.
다행인 것은 아내와 피, 십자가, 예수에 관하여 말이 좀 통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성령께서 힘드셨지만…
.
오늘 점심때도 친한 집사님은 교회이야기로 나는 예수 이야기로
같이 밥 먹으면서 서서히 멀어져 간다.
결국 갈 길이 다르다는 무익한 변론만이 유익이 되었다.

잠언 속의 그리스도 라는 책이 올 것이다.
저자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고 물어야 한다는데…
그 분은 내 인생의 방해자 이신 게 분명하다.
힘이 있어야 사는 이세상에서 힘을 빼라니… 어떻게 살라고..
나도 좀 살게 교회와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용도 책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 (없겠지만)

그 분의 내 인생 방해의 목적이 나를 없애는 것이다.
없는 나.
예수 안의 나.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셔서.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시는.
피 만이 아시기에.

강구만(IP:59.♡.197.162)

10-07-24 20:14

십자가의 영이 하시는 일은 영국이나 괌이나 다를 것이 없음을 우리는 압니다. 오직 주로 말미암고 주를 위한 모든 성도의 기쁨이요 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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