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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00706b 부산강의 : 침멀리[구약신학]08-왕자유게시판레위기

20100706b 부산강의 : 침멀리[구약신학]08-왕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48)

20100706b 부산강의 : 침멀리[구약신학]08-왕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북쪽 나라는 선지자 자체를 거부합니다. 남쪽 나라도 거부했잖아요. 그런데 남쪽 나라가 다윗의 등불이라는 말을 왜 두느냐 하면, 다윗 왕국으로 끝나버렸어요. 이런 게 어려운데. 북쪽 나라가 다윗 다음에 솔로몬, 솔로몬 다음에 여로보암 나오잖아요. 왕들이 줄줄이 나오니까 사람들은 왕이라는 것은, 인생은 영원토록 못 살기 때문에 늙어 죽으면 또 왕이 있고, 이걸 정상으로 보는 거예요.

그런데 유다나라는 왕이 있어봐야 허수아비가 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왕이에요. 북쪽 왕은, ‘너 한번 멋대로 해봐라.’ ‘우리 왕이 있어야 됩니다.’ ‘왕 줄게.’ ‘우리 교회는 당회장 있어야 된다.’ ‘당회장 줄게. 멋대로 해봐라.’ 그런데 진짜 유다나라는 왕 줘봐야 ‘나는 왕이 아닙니다. 다윗이 왕입니다.’ 죽은 자잖아요. 다윗 죽고 난 뒤에 솔로몬 생겼잖아요. 솔로몬도 왕이 아니에요. 계속 다윗만 왕이에요. 죽었는데 죽은 왕이 통치하는 겁니다.

가야산 수련회 역대기 할 때 목사님들이, 교인들이 강의 내용을 못 알아봐요. 상식적으로 우리는 시간을 의식하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기 때문에 한 때 왕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여로보암이 왕이고. 자꾸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왕이 있잖아요. 그걸 그대로 유지하고 ‘남쪽이나 북쪽이나 똑같은 나라지.’라고 일반 나라라고 생각하고 해석을 하더란 거예요. 그런데 그게 바로 인간의 죄에서 나왔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왕국은 줄줄이 열왕이죠. 왕이 있다는 자체가 이게 의미 없이 다윗 하나의 왕으로서 끝나버린 겁니다. 그러면 다윗이 죽었는데 어떻게 통치해. 그게 말이 돼?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내가 통치하는데 옛날 통치는 말씀으로 통치했잖아요. 다윗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통치하느냐 하면, 다윗 가문 안에서 통치합니다. 다윗 가문 이걸 두 자로 ‘성전’이죠.

다윗 가문 안에서 통치한다는 말은 다윗에게 일어난 주어진 언약 있잖아요. 그 언약만으로 인간의 왕이 전혀 필요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가시는 겁니다. 다윗 언약에 보면 아들이 오게 돼있어요. 다윗의 아들이 누굽니까? 우리가 아는 선입감은 솔로몬. 놀랍게도 다윗의 아들이 주님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주가 되겠느냐?

그럼 솔로몬은 다윗의 혈통적인 아들이고, 다윗의 아들로 오신 주님은 다윗 혈통이 아니고 멜기세덱 혈통이에요. 이것이 시편 110편 1절에 나와요. 멜기세덱의 반차, 멜기세덱의 반열에서 와서 나타나는 겁니다. 지난주일 오후에 설교했구나. 호두 처음 먹는 사람에게 호두 먹으라 하면 딱딱한 걸 삼키는 이빨 깨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얼마나 딱딱하겠습니까? 호두를 먹으란 말은 망치로 깨서 속살을 먹으란 말 아닙니까.

다윗 언약은 깨어져야 진면목이 나와요. 언약은 깨는 겁니다. 이게 아브라함 언약 세울 때 제물을 쪼개죠. 쪼개야 거기서 언약의 속살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건장한 신체 백날해도 언약 안 나옵니다. 봐도 몰라요. 예수님이 깨어져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깨어질 때 그 안에서 부활 나오는 거예요.

부활이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셨기 때문에 부활된 게 아닙니다. 십자가에 죽었다는, 실에서 실 나오듯이 죽지 아니하면 부활이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이에요. 살아있는 주님이 살아있는 게 아니고 영원불멸이 아닙니다. 내 영혼 누가 죽여? 예수님마저 죽어야 부활이 돼요.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우리가 천국 가는데 중간에 매개체를 통과할 때 우리는 산 자가 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죽은 자가 돼야 돼요. 죽은 자가 되면 거기서 호두 안에 있는 언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 만났다 이놈아. 죽은 자 와. 너 죽는 이유를 알지?’ ‘압니다.’ ‘왜 죽는데 네가?’ ‘죄 값이죠.’ ‘아는구나. 죄 값이란 걸 어디서 알았지?’ ‘언약이 이야기해요.’ ‘그렇지. 십자가 앞에서 나는 죽어 마땅한 죄인 중의 괴수다. 빨리 와.’ 오게 되면 죽은 채로 들어와서 주님과 더불어 산 채로 부활의 세계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부활의 세계에 들어간 사람은 죄로 죽은 자에요. 죄로 죽은 자가 중간에 속죄함을 입어서 산 자가 되는 거예요.

속죄함이라는 것은 이번에 레위기의 테마로 들어갑니다. 물어준다는 것. 룻기 한번 봅시다. 4장 5절, 6절 누가 읽어보세요. “보아스가 가로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야 할지니라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여기서 ‘무른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이게 우리말인데 참 어려워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돈을 누구한테 빌렸는데 갚을 능력이 없어요. 그런데 멀쩡한 사람에게 ‘부탁한다. 내 대신 돈 좀 갚아줘라.’ 이게 무르는 거예요. 너무 너무 가난해서 하나님께 기업으로 받은 땅덩어리를 하나하나 다 팔아 버렸어요. 먹고 살라고 하니까. 돈 없으면 땅이나 줘. 그래서 땅 가져가 버렸어요. 그때 ‘삼촌, 숙모 또는 숙부님 내 대신 내 땅 좀 돌려주이소.’ 이게 무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오미가 잃어버린 땅 내 대신 값 치루고 살 수 없는가? 해서 가까운 친척이 있었던 모양이라. 이름은 안 나오는데. ‘나는 내 재산 손해 보면서 그 짓 안 한다. 조카네 땅을 내가 왜 대신 사줘야 되는데. 내 것 되지도 않는데.’ 하니까 ‘그렇게 안 하면 내가 대신 할게.’라고 대신 나온 사람이 보아스에요. 이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위하여 값을 치루지 않으면 어떤 인간도 천국에 못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방금 이야기한 것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 값을 치루지 않으면 못 간다는 것을 하나의 가문으로 만든 게 다윗 가문이에요. 다윗 혈통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에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분은 뭐 하실 분입니까? 고엘, 대신 우리 죄를 무를 분이에요. 보아스 같은 분입니다. 이걸 ‘속죄’라 하죠. 대신 속죄하기 때문에 ‘대속’이라 하죠.

그런데 주님께서 돈 보따리를 들고 와서 ‘이 교회 교인들 마귀한테 얼마 졌어?’ 이천오백 억, 이천사백 억. 돈을 갚아주는 게 아니고 자기의 피와 살을 내줬다는 말은, 우리는 돈이 없어 만날 문제지만 주님 보시기에 돈이 문제가 아니고 살과 육체, 혈통이 문제인 거예요.

왜 혈통이 문제냐 하면, 우리는 아담의 몸 자체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이게 그저 악마의 힘만 요청하는 고치지 못할 죄가 발생되는, 담배 피는 사람들한테 담배 냄새나잖아요. 한 마디 하고 싶고 그래요. 정류장에 담배 피워서 온 몸에 담배 냄새나듯이 우리를 물려받을 때부터 힘밖에 모르는, 하나님과 재물 가운데 재물밖에 찾지 않는 그런 더러운 냄새가 계속 풍겨나는 거예요.

이건 손댈 수가 없습니다. 어디를 수선합니까? 오른 눈 뺀다고 왼 눈으로 죄 짓지요, 오른 손 잘라도 왼 손 남아있어서 죄 짓지요. 어떤 장애인 보니까 두 다리 없어도 담배는 못 끊데. 장애연금 받아서 담배 값 다 날아가요. 술값 날아가고. 어지간하면 생활 어려우면 담배부터 끊을 텐데 자포자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겁니다. 자포자기. 우리가 이 지경으로 내려가야 돼요. 목회자가 목회 실패해야 됩니다. 주님 은혜 아니면 살 길이 없는 자포자기의 지경까지 빠져버리는. 걱정하지 마세요. 대신 물어주는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이번에 수련회 제목이 [종말의 종말]이에요. 인간이 생각하는 종말은 종말이 아니다 이 말이죠. 자기 챙기기 위한 인간이 기본으로 갖고 있던 주체에서 나온 시간의식에서 나온 거예요.

70이레 어려운 부분 하나 해볼까요? 시간 가더라도. 인간은 역사와 묵시를 생각하는데 이 위에서 나온 게 묵시문학이죠. 이 묵시문학을 성전 깨지고 난 뒤에 예수님 오시기 전에 누가 썼어요? 유대나라에서 했지요. 유대나라에서 성경을 참고해서 나왔지요. 아까 이야기했지요. 인간이 자기 매개체가 되어서 묵시를 끄집어낼 때 역사로선 안 되는 걸 묵시로 오셔서 조져 달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그들은 하늘나라를 기다렸다 말이죠. 이게 바로 문제다 이 말입니다.

이걸 리델보스가 모르는 거예요. ‘이미-아직’ 여전히 주체에서 나온 묵시적인 시간구조인 줄 모르고 자기는 성경대로 한다고 역사 있고 묵시 있다. 그러니까 ‘이미-아직’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 논문에 보면 리델보스는 자기의 주체의 시간적인 구조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이것이 옳은 줄 알고 이것으로 성경을 봐서 이런 문제 생겼다.

그러니 그 논문이 굉장히 어렵죠. 역사뿐만 아니고 묵시를 찾는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란 말이죠. 유대인들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얼마나 구원받으려고 온갖 인간 지혜를 다 끄집어냈겠어요. 이것조차도 뭔가 어리석게 보이는 게 있어야 돼요. 그게 바로 십자가 세례에요. 이건 성령이 아니고서야 알 수 없는 거예요. 역사, 묵시 구조를 알았다고 해서 그래서 아주 고상하고 깊이 있는 신학을 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 피로 구원받죠.

묵시 역사는 예수님의 몸에서 나온 묵시 역사와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우리 죄악 된 몸, 죄가 발생되는, 담배냄새 풍기는 이런 상태에서 역사 묵시는 어디로 들어옵니까? 누구 좋으라고 옵니까? 결국 우리 자신을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다시 나를 살려내는 역사 묵시로 해석된단 말이죠. 이것이 바로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한 것이 그 논문의 핵심이었습니다. 70이레 그렇게 해석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리스도 몸에서 나온 역사 묵시여야 된다. 그러면 그리스도 몸이 몇 가지 나와요? 예수님 몸 나오고 우리 몸 나오고. 예수님 몸이 등장함으로써 우리 몸이 예수님 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관계입니까? 모든 인간은 아담의 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몸 미워하잖아요.

쉽게 말해서 이빨 아프면 주님 원망하잖아요. 내 이빨 아플 때 주님 이빨 아픕니까? 안 아프잖아요. 내 이빨 아프면 내 이빨 아픈 것부터 우선이지 주님 이빨 아프냐고 안 물어보잖아요. 그처럼 인간은 몸이 있으면 항상 어떤 경험을 하던 항상 누구 몸으로 되돌아온다? 내 몸 챙기는 것으로 되돌아오게 돼있어요. 심지어 구원이나 성경전체가.

그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우리 교회 잘 된다면 우리 교회 누구 믿습니까? 내 몸 있으니까 우리 교회 잘 되고, 저쪽은 망해라. 왜? 저쪽은 내 몸이 안 갔으니까. 그걸 다시 예수의 몸으로 전환시킬 수 있어야 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내 몸, 내 몸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가자 이 말이에요.

그럼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려면 이런 식으로 우리 몸 자체가 어떤 신학을 해도 우리 몸은 죄밖에 안 나온다는 걸 알게 하신 그 능력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몸에서 나온다는 게 결론의 포인트입니다. 그러니까 그 결론부분에 역사상의 모든 신학은 죄라는 게 나오거든요. 그걸 보고 진짜 화가 안 날 수 있어요. 뭐 때문에 박사학위 받았는데. 내 옆에, 옆에 있는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압니까? ‘그래도 우리는 역사적 해석을 유지하렵니다.’ 주장하더라.

그게 천주교 아닙니까. 천주교가 뭐라고요? 루터가 뭐 때문에 천주교에서 나왔습니까? 날마다 성경에서 나온다는 것이고, 이쪽은 전통과 역사를 고수하겠다는 게 천주교잖아요. 개신교가 천주교 돼버렸어요.

70이레 핵심을 출발점을 우리가 어떤 해석을 해도 그것이 나 좋으라는 해석이라는 그게 죄라는 고백이 나온다는 자체가 우리 능력이 아니고 지금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미 역사, 묵시적 관점에서 성령으로서 주니까 비로소 그 해석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 제 논문에 어떤 장점이 있느냐 하면, 22세기는 새로운 철학이 나올 거라고 기대를 할 필요조차 없다 이 말이죠.

그런데 기존의 신학자들은 18세기 신학을 19세기 신학이 꺾었고, 19세기 신학을 20세기 칼 바르트가 꺾었고, 20세기 신학을 21세기 신학이 꺾었다. 이 말은 뭡니까? 역사란 무한히 진보하고 발전한다. 그 수준이잖아요. 그게 판넨베르그의 신학이거든요. 판넨베르그에 의하면 아직도 우리는 구원 못 받았어요. 왜? 22세기, 23세기에 무슨 기발한 신학이 나오면 우린 기다려야 돼요.

그 이야기를 내가 논문에서 이야기했어요. 다니엘의 70이레가 나왔잖아요. 다니엘 그 시대에 B.C. 400년경이거든요. 그러면 다니엘 죽고 난 뒤에 300년이잖아요. 다니엘 70이레 계시를 그 당시 사람들이 알았을 것 아닙니까. 다니엘이 외쳤으니까. 그리고 그 당시 B.C. 300년에 해석을 했을 것 아닙니까. 맞지요? 그렇잖아요. 그 해석을 B.C. 200년 사람들이 옳다고 봤겠느냐 이 말이죠. ‘아이고 시건 없는 사람들. 우리 시대 돼봐야 알지 당신 시대는 몰라. 우리 시대 돼봐야 70이레가 이런 거구나.’ 안다고 이렇게 주장할 것 아니냐 이 말입니다.

그러면 B.C. 100년경 유대인들은 B.C. 200년경 해석을 옹호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당신들은 몰라.’ 그래서 제 논문에 70이레 해석을 A.D. 100년경, 200년경 해석할 때는 자기 시대의 해석이 옳다고 여기면서 그 해석을 할 게 아니냐 말이죠. 그 해석 자체가 어떤 시간적 주체에서 나왔는가 그 주체를 분해해야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모든 앞으로 23세기, 24세기 해석해도 그건 틀린 거예요.

그럼 뭐가 옳은가? 바로 그게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이 역사를 초월한 묵시적인 십자가에서 성령이, 십자가의 능력이 오게 되면 네가 해석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는다는 결론이 시대를 초월해서 유일한 해석밖에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제 해석 받고 만약에 신학생이나 어떤 사람이 24세기 되서 이근호 신학 틀렸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제가 묻지요. 내가 뭘 주장해야 틀린 게 있지. 십자가 때문에 깨졌다면 뭘 해야 합니까? 손가락 보지 말고 달을, 십자가를 보라 그거잖아요. 결국 그 사람은 내 논문을 반대하려면 십자가만 봐서 안 되고 십자가 해석을 바로 해야 된다. 이렇게 해야 되잖아요.

그럼 그 해석은 자기 주체성에서 나온 해석이란 말이죠. 왜냐하면 몸이 다르니까. 나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모든 구원의 능력이 나온다고 주장한 거고, 그 사람은 십자가라는 것을 내 몸이 해석해야 나온다는데 그 몸이 만들어낸 주체적인 시간구조가 있을 것 아니냐. 그 구조를 미리 손댔다 이 말이죠. 그런 구조 해봐야 역사 묵시 구조밖에 더 나오느냐 이 말이죠.

70이레 논문을 이런 관점에서 다시 보세요. 그러면 굉장히 어려운데 세밀한 논리를 다 집어넣어야 되니까. 거기서 나오는 그 과정에서.

사도 바울이 복음 전할 때 사도 바울보고 뭐라 했습니까? ‘너만 옳으냐?’ 했거든요. 사도 바울이 자기 주체에서 만들어냈지만 사도 바울 지나고 난 뒤에 또 다른 해석이 사도 바울 틀렸다고 나올 수 있다 이 말이에요. 예를 들면 샌더스 같은 사람들. 사도 바울은 자기 시대만 살았기 때문에 시건이 없어서 성경해석 못한다 했잖아요.

사도 바울이 뭘 이야기하던가요? 결국 나라도 복음에서 잘못하면 끊어질 수 있다 할 정도로 오직 복음 위주라 했지요.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갈라디아서 1장 8절에 심지어 나라 할지라도 내가 전한 다른 복음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 말은 후대 학자들이 아무리 그 신학 네가 만들어냈지? 아무리 외쳐도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이미 집어넣은 것이 있어요.

뭐냐? 나라 할지라도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내가 받은 것은 사람에게 받은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에게 직접 받은 것이다. 사도 바울이 베드로에게 배운 게 아니에요. 배웠다면 베드로를 면박 못 주지요. 그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된다는 거예요. 십자가구나. 그리스도 몸이 살아있구나.

제가 하나교회에서 강의 전에 먼저 물은 게 있어요. 사도 바울이 실제 인물입니까? 실제 인물입니다. 그러면 밧모 섬 앞에 있는 일곱 교회는 실제 교회입니까? 실제 교회입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일곱 촛대도 실제입니까, 아닙니까? 실제라 해야죠. 내가 그렇게 묻는데. 그런데 왜 자꾸 눈에 보이는 교회와 사도 요한 눈에 보이는 일곱 교회의 활동은 안 믿습니까? 왜 그걸 잘라 내놓고 해석하고 잘라 내놓고 이야기합니까? 그러니까 요한계시록 해석이 잘못 된 거예요.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된 게 아니잖아요. 이러니 또라이 소리 듣는 거예요.

다윗의 아들이 다윗의 주가 됨으로 말미암아 다윗부터는 시간개념이 역전돼버립니다. 건축구조물 성전은 역사 지나가면 폐허되고 깨지지만 하나님이 지은 집, 다윗 가문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완성이 돼버립니다. 그 완성이 요한계시록에 보면 새 예루살렘적으로 완성되죠. 완성되기 위해서 인간이 지은 집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 대목을 봅시다. 역대상 17장 4절. 지금 이 대목을 같이 읽어보는데 어디서 읽느냐 하면, 교회 건축을 위해서 학개서 펴고 있는 부흥사가 부흥회를 하고 있습니다. 학개서 펴놓고 너희 집은 짓되 왜 성전은 안 짓느냐 그 대목 하는데 그 부흥사가 ‘여러분 학개서 몇 장 읽어봅시다’ 할 때 우리는 뭘 읽는가? 이걸 읽어봅시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내가 이스라엘을 올라오게 한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아마 부흥회 개판 될 겁니다. ‘네가 집을 져? 난 거해.’ 왜 안 거하느냐 하면, 집을 짓겠다는 자체가 다윗을 버릴 수밖에 없어요. 집을 짓겠다는 그 의도 자체에 주님은 가담할 수 없어요. ‘지어서는 안 되는구나.’를 다윗이 알면 거합니다. 참 재미있죠. ‘내가 하나님 위해서 집 지면 안 되겠구나.’ 하면 거하시고, ‘거할 집을 지어야지.’ 하면 안 거하는 거예요. 미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성전에 거하는 것은 부수기 위해서 거하는 거예요. 왜냐? 그걸 부셔야 다윗이 알았던 하나님의 성전을 그들도 후손들, 후배들도 알아야 되기 때문에. 이 말 어렵지요. 다윗이 재료 만들어놓고 솔로몬이 성전 지었지요. 지어놓고 하나님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그 성전 어떻게 돼야 돼요? 깨어져야 돼요. 그냥 깨지면 안 되고 무엇과 비례해서? 이쪽은 깨어지면서 점점 더 뭐는 드러나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한 것, 내가 사람이 지은 곳에는 거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나는 쪽으로 저쪽이 깨어져야 돼요. 보조를 맞추어야 돼.

그래서 성전은 몇 번 짓습니까? 세 번 짓죠. 지을 때마다 ‘진짜로 안 거하시네.’라고 드러내는 식으로 계속 지어져야 돼요. 그게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 집사가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곳에 거하지 않는다.’고 했고 그 대안이 뭐냐 하면, 지금 거하지 않는다고 하는 바로 나에게 성령이 계시죠.

그러면 교회 예배당에 비가 샌다, 형광등은 막 하고, 교회 비워달라고 한다. 어차피 교인 두세 명 되면 집에서 하면 되지만 몇 백 명 된다. 옮겨야 되겠다. 그럼 집을 어떻게 지어야 되는가? 그런 집을 짓는 것에 대해선 성경 자체에 나오질 않죠. 그러면 그 집을 지으면서 계속해서 이야기해야죠. ‘관계없습니다. 성경하고 아무 상관없습니다.’라고 이야기를 계속 해야죠.

중국에 있는 정석훈 목사님이 성전 짓는 교회에 가서 2개월인가, 3개월 있었죠. 그래서 그이야기를 했어요. ‘여러분 이것 성전 아닙니다. 성전은 여러분 몸입니다.’ 쫓겨났어요. 교인들 그 소리 듣고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압니까? 돈 안 낼라고. 그런데 목사님 쫓겨나올 때 한 사람도 안 따라 나왔어요. 희한하죠. 왜?

다윗의 아들이 멜기세덱 계통으로 나가면 시편 110편이잖아요. 시편 110편을 두 자로 줄이면, ‘말씀’이죠. 말씀을 누가 전한다 했습니까? 선지자. 백성들이 선지자 말 따랐습니까, 안 따랐습니까? 택도 없어요. 왜? 그들은 안정된 권력이고 권력이 있어야 자기 생존의 자리가 보장받게 돼요.

정석훈 목사님이 아무리 외쳐도 안 따라 나옵니다. 그만큼 밑천 넣은 게 있고, 만약에 나오면 그 교회에서 목사가 저주를 해버리면 기분 찝찝하거든요. 아무리 나쁜 목사지만 목사는 주의 종이라서 저주하면 자기 집안 안 될까봐 저주가 무서워서 못 나오는 거예요.

저주가 무섭다는 말은 그 사람들이 저주가 어디서 나오고 쉽게 말해서 예수님이 저주받았다는 걸 모르고, 저주받은 매개체를 통과해야 축복받는다는 사실도 모르고, 축복과 저주를 관여하시는 분이 예수님에게 오지 인간에게 없다는 것도 모르고 그리고 자기 집에서 예배 드려도 그게 성전인 줄 모르고, 목사들이 자기 손으로 지어놓고 하나님이 지었다고 우기는 그것이 성전일 줄 알았던 것이 총체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권력의 힘에 눌리게 만든 겁니다. 참 보통 문제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 물어봅시다. 어떤 목사 일자리가 없다. 그럼 가만히 있어야 됩니까? 지금 선지자가 자기가 신학교 배운 것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선지자 특징은 본인이 선지자를 안 하려 해도 해야 된다는 겁니다. 미가야 선지자가 천상회의 참석하려고 사다리 놓은 적이 있습니까? 철야한 적 있습니까? 그냥 하나님께서 알려준 거예요.

태어날 때부터 하늘의 것을 봐야 했고, 알아야 했고, 전해야 한 거예요. 본 걸 전할 수밖에 없어요. 모태에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거예요. 그렇다면 들어서 알고 있으면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성도가 다 선지자입니다. 제사장이고 왕이고. 다음 시간에 제사장 하겠습니다만.

그렇다면 마태복음에서 다윗 언약의 계통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라헬의 자식들이 포로 잡혀 갔잖아요. 아마샤 왕이 너무 악해서 뒤에 요시야 왕이 착해도 소용없죠. 이미 주는 힘보다 빼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저주받잖아요. 그때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가고 예레미야나 이런데 보면 라헬이 자식 때문에 울죠. 그게 바로 교회 아닙니까. 그게 바로 다윗 언약의 남은 백성, 남은 자잖아요.

그러니 선지자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인하여 반드시 고난 받아야 돼요. 팔복 가운데 제일 마지막 복이 뭐죠? 내 복음과 내 말씀을 인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누구도 그렇게 당했다? 선지자들도 그렇게 당했다는 거예요.. 말씀 전하는 게 왜 고난 받아야 됩니까? 고난 받게 환경을 하나님께서 조성하죠. 이 조성된 환경에서 나온 게 북쪽 나라 왕들이고 남쪽 나라 왕들인 거예요.

결국 하나님은 왕 세우지 말란 말이야. 했던 그것이 그대로 하나님께서 취소 안 했지요. ‘왕을 왜 세웠어. 왕 세우지 말라 했잖아. 왕 준 것은 망해봐라. 욕 좀 봐라.’ 그러니까 너희 속내에 있는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그 마음, 하나님이 왕 되심을 싫어하는 그 마음을 폭로, 드러내기 위해서 계속 왕을 두는 거예요.

그럼 그들은 선지자 말 안 듣고 누구 말 들어요? 이번에 왕은 괜찮겠지. 이번에 왕은 괜찮겠지. 계속 기다리는 거예요. 한번 기다려보지? 결국 성전도 깨지고 왕도 깨지도 다 깨져버려요. 그럼 이 땅에 왕은 예수님이 왕이고, 왕 없어요. 멜기세덱의 반열 따라 온 예수님 외에는 왕이 없다 이 말이에요.

왕이 없다는 말은 이 세상에서 인간치고 믿을 놈 있다, 없다? 십자가 피 흘리고 뭘 해도 진짜 구원자는 아까 이야기한 고엘, 우리 죄를 무를 분은 예수님밖에 따로 와야 되지 인간세계 어느 목사, 어느 누구도 우리 죄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목사부터 주님 바라보고 주님 주신 말씀으로 그냥 웃으면서 전해야 돼요. 웃으면서 전하면 교회에서 핍박이 들어오고, 또 싱긋이 웃으며 전하면 핍박이 들어오고. 그러면 그 목사들은 더 살기 싫죠. 이 땅에 대해서 더 기대할 게 없지요. 그래서 이 땅에 아무 기대하지 마시고 평소에 움직이는 그 자체가 목회가 되나, 안 되나 이 땅에 살아있는 남은 자가 되고 선지자 되는 겁니다. 의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가운데.

세 번째 하고 마치겠습니다. 세 번째 솔로몬. 사울이 왕 될 때는 혈통 끊었다. 다윗이 왕 될 때도 일차 사울처럼 혈통 끊고, 두 번째 기존의 인간이 세운 왕은 왕이 아니고 선지자를 통해서 선택한다. 그런데 선지자조차도 차마 진짜 다윗이 왕 될 줄 몰랐죠. 그러니까 사무엘도 실수하잖아요. ‘얩니까?’ 하다가 ‘아니야’ 해서 마지막에 오잖아요.

그러면 다윗 안에 뭐가 포함됐습니까? 혈통 끊어서 하나님의 성신이 임해야 된다. 다윗의 특징은 사울과 사사기니까, 이것 어렵더라도 참으세요. 사사의 특징은 항상 전쟁이죠. 전쟁은 아군과 적군이 구분되죠. 그런데 아군이 적군 이기려면 성신이 임해야 되죠. 아까 하나님의 개입, 하나님이 관여가 되죠.

하나님의 관여로 적군을 이기기 때문에 이 승리는 항상 하나님의 승리로 돌아가죠. 사울도 사사 계통이니까 전쟁하죠. 전쟁하고 그 승리를 누구한테 돌렸습니까? 아말렉 전쟁할 때 좋은 것을 살려두고. 자기 전쟁이 아닙니다. 성신 받았기 때문에 누구 전쟁입니까? 하나님께 승리가 돌아가야지 자기한테 돌아갑니까? 이것 때문에 잘리잖아요.

그렇다면 사울 다음의 왕 다윗은 골리앗 할 때 이번 전쟁은 나의 전쟁이 아니고 여호와께서 개입한 전쟁이다 이 말이죠. 이 말이 어려워요. 여호와께서 개입하려면, 이런 게 설명하기 힘든 건데. 먼저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게 다윗이잖아요. 이거는 다윗이 승리한 거야. 이걸 철석같이 믿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너희 그렇게 알고 있었지?’ ‘그럼요.’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지?’ ‘그럼요.’ ‘그런데 아니거든.’ 하는 식으로 어린애를 동원시키는 거예요.

그럼 뭐가 조성돼야 된다? 이것은 우리가 예상했던 이런 식으로 전쟁이 돼야 된다는 구조가 형성 돼야 돼요. 이게 뒤집어져야 돼요. 그럼 블레셋 나라 문제가 아니고 블레셋은 언약 나라 아니에요. 지금 중요한 것은 블레셋 나라가 아니고 이스라엘이 중요하거든요. 이스라엘 바깥의 전쟁이 아니고 사실은 이스라엘 내부전쟁입니다.

내부전쟁은 하나님이 왕이냐, 인간이 왕을 고를 것이냐? 하는 그 문제입니다. 사울에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줬잖아요. 이제 어렵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선택했지요. 솔로몬과 다윗과의 차이점이 뭐냐 하면, 솔로몬 선택은 인간내부의 권력투쟁에서 솔로몬이 나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을 기름 줄 때 제사장이 기름 붓지 않아요. 사독입니다. 솔로몬에게 기름 부은 자는 선지자가 아니고 사독 제사장입니다. 사독 제사장은 다윗 제사장입니다. 어렵지요.

그렇게 되면 신약에 와서 왕과 제사장이 멜기세덱에서 하나가 돼버려요. 멜기세덱은 누굽니까? 높으신 하나님의 왕이요 예루살렘의 제사장이죠. 그 멜기세덱의 반열에서는 왕과 제사장이 하나가 된 인물이 매개체, 아까 처음에 했죠. 매개체로 오신 분. 그럼 매개체를 이스라엘 속에서 만들 때 인간들이 오해와 죄악 속에서 끄집어내죠. 시커먼 연탄 뒤집어쓰고 올라온 것과 똑같아요. 힘도 없고 그냥 말씀만 충만한, 말씀대로만 사시는 모든 율법을 이루시는 분으로서만 왕과 제사장이 결합되어서 멜기세덱 반열이 되는 겁니다. 올라오는 거예요.

그럼 솔로몬이 뭐냐? 솔로몬은 결국 인간들의 권력투쟁에서 다윗이 골리앗 이길 때 이미 뭐가 마련돼 있다? 이것은 사람이 나서서 골리앗을 이긴다는 게 철석같이 마련돼 있죠. 이걸 빼먹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야.’ 이런 거 없어요. 누가 와야 돼요? 누가 등장했습니까? 어른 다윗이 아니고 어린애 다윗이라고. 어린애 다윗을 형들도 무시했죠. ‘집에 갓.’ 집에 안 가고 이겼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다윗이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승리로 돌립니까, 안 돌립니까? 이미 선입감이?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라. 도로 어디로 가요? 그 행세 개 안 줍니다. 권력 행세 개 안 줍니다. ‘우리 당회장 바뀌면 교회 성장할 거다.’ 이 개 같은 버릇 안 버려요. 주님이 왕이 아닙니다. 교회는 당회장이 왕이에요. 자기들이 성전인 것을 인정 안 합니다. 누가 영웅이 등장해서 교회 키워주기를 바래요.

그럼 어떻게 돼요? ‘다윗!! 다윗!!’ 이러죠. 다윗은 말하기를 ‘왜 이러십니까? 내 승리가 아닌데 왜 이러십니까?’ 나오죠. 그러면 다윗이 호두라면 다윗의 육적인 가문은 깨져야 돼요. 깨지니까 세상에 다윗 빼놓고 몽땅 권력을 추구하는 압살롬, 암놈, 거기에 승리한 요압, 장군들. 다윗 빼놓고 똑같은 인간들.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가?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 후계자를 누구한테 시킵니까? 서자 출신 우리야의 아들, 우리야의 흔적을 남긴 솔로몬을 택하죠.

지금 열왕기, 역대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중요한 대목입니다. 솔로몬을 사독이 기름 부었다는 것은, 솔로몬이 다윗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된다, 안 된다? 안 돼요. 아까 했잖아요. 유다의 모든 왕들은 허수아비라고. 윗 호두 안에 누가 들어있습니까? 여호와가 왕이 들어있는 거예요.

다른 말로 하면 멜기세덱 반차를 따르는 주께서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원수를 발아래 둘 때까지. 그 주가 다윗 가문에 들어왔기 때문에 솔로몬은 다윗 언약 믿어야 돼요. 솔로몬은 자기 언약 믿으면 안 됩니다. ‘나도 왕인데 왜?’ 다윗이 자기가 이긴 게 아닙니다. 언약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 언약대로 언약 없는 골리앗을 죽였고, 블레셋을 쳐부순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소년 다윗이 이긴 걸로 이해한다니까요. 그 행세가 그대로 가야 돼요. 예수님 오실 때까지 그 죄가.

그대로 나가니까 계속 해서 다윗 가문이 오해받는 거예요. 누가? 압살롬도 ‘우리 아버지는 권련이 세.’ 아버지는 무슨 권력이 있습니까? 아버지는 모친의 죄 중에서 태어난 사람인데. 무슨 권력이 있습니까? 죄인인데. 의가 있어야 권력이 있지 의도 없는데. 그냥 은혜만 받을 뿐인데.

솔로몬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죠. 나중에 부인이 천 명이에요. 정실부인이 삼백 명이고 장희빈이 칠백 명이고. 거기다가 자기가 왕이란 표시가 이방나라 왕하고 교제했잖아요. 이게 뭔 뜻입니까? ‘나, 왕이거든. 너도 왕이라 해줄게.’ 이게 말이 됩니까? 이스라엘 왕은 여호와입니다. 지는 똘마니에요. 다윗 언약 안에 전에는 여호와지만 다윗 이후에는 다윗 집안에 계신 주가 왕이에요. 사람들이 다윗 언약이 왕이라는 말을 이해 못하는 거예요. 그 안에 주님이 계시는데. 안 보여서 문제거든요.

솔로몬은 다른 왕들과 교제하면 안 됩니다. 그들의 공주를 교환하면 안 돼요. 처음에 지혜 받을 때는 지혜에 한번 놀라고 재산에 한번 놀래서 남방 여인 와서 전설에 의하면 그 여자와 애 낳고 에티오피아 뭐. 나중에는 예레미야의 언약궤가 그쪽으로 빠져서 아직까지 쥐고 있어요. 웃기고 있어요. 새 언약인데 그것도 모르고 옛날 것 쥐고 있어요.

절대로 이방 왕하고 상종하면 안 돼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에서 참 선지자들이 왕보고 뭐라 했습니까? 제발 바로의 말과 좀 상종하지 말라. 몽둥이와 막대기에 불과한데 다윗 언약과 모세 율법을 곁에 두고 그대로 살라고 그렇게 당부해도 자꾸 지도자는 지도자까리 놀아야 된다고 만날 국가의 1% 그들끼리 노는 거예요. 그러니까 같이 외교술 하니까 계속 외래 것이 유입되니까 솔로몬의 부인들 가운데 바알이고 온갖 종교가 다 오잖아요. 솔로몬은 자기 힘이 있다 이거죠. 이 정도는 뭉칠 수 있다 이 말이죠.

솔로몬 때 이방으로 솔로몬을 안 친 이유가 뭐냐? 성경에 보니까 솔로몬 때문에 한 게 아니고 다윗에게 한 등불 때문에 안 친 거예요. 등불이 꺼질 때까지 이스라엘이 망할 때까지 등불을 계속 가는 거예요.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나라는 망해야 됩니다. 소년 다윗 망해야 돼요. 소년 다윗 깨보니까 거기서 더러운 권력들이 나오는데 권력 싸움이

나중에 분명히 사울은 하나님의 성신으로 왕 되니까 사울도 권력 가지니까 왕 되죠. 그러면 사울만 왕 되는 게 아니고 사울 집안 대 다윗 집안의 싸움이 사무엘하에 계속 나옵니다. 시므이 같은 사람은, ‘우리 사울 집안을 천대하고 네가 왕 되니까 좋으냐? 꼴좋다. 하나님께 저주받아서 네 아들한테 당해봐라.’ 이런 식으로 재를 뿌리면서 저주하죠.

그뿐만 아닙니다. 그 뒤에 나오는 신하들도 권력 위주로 생각해요. 권력 있어야 나라가 되는구나. 그건 전부다 이방나라에서 나온 습관이거든요. 권력으로 교체가 되고, 교체가 되고, 교체가 될 때 누가 당하느냐 하면, 애꿎은 선지자 있잖아요. 선지자는 그냥 하나님 지시받아서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승리는 여호와께 돌아가야 됩니다. 여호와께 돌아가려면 하나님의 말씀, 약속대로 여호와가 왕임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승리케 해줬죠. 언제 승리케 해줘요? 창도 없고, 활도 없고, 말도 없고, ‘그저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소서’ 포기할 그때 도와줬죠. 그렇잖아요. 열왕기, 역대하에 나오잖아요. 오직 선지자 말 듣고 여호와만 의지할 그때는 하나님이 도와준다. 이 말은 지금 여호와 왕이 안 계시다는 말입니까, 계시다는 말입니까? 계시죠. 계신데 누가 자꾸 가로막아요? 권력을 추구하는 민중들, 왕이 자꾸 힘 달라고 하니까 힘없어도 되는 나라를 힘이 오니까 그 나라가 이방나라가 되는 거예요.

교회가 재미있다? 십자가 깔고 회개하면 다 재미있어요. 십자가 해서 은혜와 자비와 사랑하면 형제사랑 저절로 되고, 봉사, 헌금, 전도 저절로 돼요. ‘목사님 뭘 도와드릴까요?’ 찾아와서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힘을 집에 가둬놓으니까 집에 힘이 있으니까 교회 왔다가 그냥 가버리는 거예요. 축구한다고.

사는 재미가 힘 모으는 재미로 살거든요. 힘 빼는 재미, 힘없이도 구원받은 재미로 안 살고. ‘네가 힘 저 정도야? 나 이 정도야.’ 힘 가진 재미로 살다보니까 힘의 입장에서 성경을 보니까 십자가 이야기하는 설교를 그 다음부터는 비비꼬고 만지고. 애 울면 좋다고 애 운다고 관심 두고 일부러 꺼리 없는가 싶어서 설교시간에 까르르 웃고 일부러 목사님 설교 흩어지라고, 듣지 말라고. 아주 갈수록 더 심해집니다.

참 그래도 멜기세덱의 반열에 있는 왕께서 다 속죄를 값을 치렀기 때문에 내가 당한 험한 길을 좁은 길을 그 길을 따라 코스를 밟아야 된다는 거예요. 만약에 그 코스 이탈하면 우리는 또 다시 권력에 힘에 자기가 매료되어서 나도 이만큼 힘 가졌다고 또 거기에 빠지는 거예요. 이스라엘과 똑같은 꼴이나요. 우리가. 고맙게도 우리로 하여금 하는 일 족족 안 되게 해서 세상에 실망하고 두 번째 나한테 실망하고 그래서 세리 만들고 거기 나사로 만들어서 위만 쳐다보게 이렇게 인도하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왕이 필요 없고 권력이 없고 우리는 다윗처럼 죄 중에 태어난 주께서 원하는 제사는 상한 심령밖에 없습니다. 우리 몸 자체 주님한테 맡겨서 주님이 우리가 죄인이라 할 때 감사히 여기면서 주의 피와 창 자국과 못 자국이 얼마나 큰 효능을 갖고 있는지 이 어리석게 보이는 이 십자가의 복음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쁘게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20100706b 부산강의.hwp (57.0K), Down: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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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7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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