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7월 9일 빌립보서 3:20
서울 7월 9일 빌립보서 3:20
이름 : 관리자(IP:124.59.87.52)
100709 빌립보서 3:20
관리자(IP:124.♡.87.52)
10-07-1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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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IP:220.♡.41.203)
10-07-19 16:08
서울100709빌3장20절a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구원이라는 것이 여기 서울 계시다가 부산으로 이사 가는 것 그것이 구원입니까? 아니죠. 그냥 공간이동, 이사 가는 거죠. 인천 사시다가 부천 오는 것, 그것 구원 아니죠. 인천사시는 분이 신정동으로 이사 온다. 부산 사시는 분 보고 ‘아저씨, 부산사십니까?’ ‘예’ ‘그러면 신정동으로 이사 오시려고 합니까?’ ‘예’ ‘아,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안 되지’ ‘아이고 어떻게 그게 됩니까?’ ‘어떻게 부산 사시다가 서울에 사실 마음을 갖습니까?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에요. 아이 차 있겠다, 1톤 트럭 하나 빌려서 그릇 몇 개 싣고 집 얻어오면 오는 거지 그게 뭘 못해요 그거 가능하지요 나물하는 게 아닌데 지금 부산 사시는 분이 서울로 오는 게 여러분 가능합니다. 심지어 남한 살다 북한 사는 것 가능합니다. 월북하면 돼요. 기거서 정신병자 만들어 사람을 죽이던 영웅 만들던 두 다리 있겠다, 그냥 가면 지뢰에 밟혀죽던 아무튼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 아니에요. 옛날에 19세기 영국에 감자가 안돼서 영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무엇을 했냐하면 배를 타고 몰래 밀입국을 했어요. 그때 배가 좁아 많이 죽었지만 그래도 산 사람도 있어서 왔습니다. 그것은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신정동에 사시다가 하늘나라 가는 것 가능합니까? 무슨 수로 갑니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예수 믿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이 어디 계신데요? 없는 예수 왜 찾나 지금 교인들이 교회에 예수님이 오시면 찾습니다. 그러면 교회 한 10년 다니면 교회에서 예수님 보입니까? 10년 다녀도 안 보이죠. 20년 다녀도 안 보이죠. 학생, 교회에서 예수님 봤어요? 안 봤어요? 못 봤지요. 그러면 한 앞으로 20년 교회에 다니면 예수님 나타날 것 같아요? 그러면 계속해서 10년, 20년 안 나오면 예수님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사람에게 안 띄면 그것은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내 눈에 띄어지지 않으면 남한테는 있는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없는 샘이죠. 그러면 한번 따라해 보세요. ‘없는 예수 왜 찾나?’ 이거 멋진 거예요. 교회에 예수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예수 얘기 한다고요 ‘그러면 목사님, 예수님 봤습니까?’ 안 봤지요. 그러면 앞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죠. 우리는 다 같이 없는 예수를 교회에서 찾을 필요가 없겠죠. 그러면 교회는 왜 오느냐 하면 위로 받으려고 서로 서로 아쉬운 것 도와주고 살림살이 좀 나아지려고 자기 관심 가져 보려고 사랑 받으려고 또 아내가 교회가라 해서 교회가면 가정 화목 이룩할까 싶어서……. 예수를 찾으려고 교회 오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오늘도 보고 싶어요. 예수님 만나서 예수님 말씀 그대로 듣고 싶어요. 나는 예수님 보고 싶어서 미치겠어요.’ 이래서 교회 온다면 옆에 있는 사람이 없는 예수 왜 찾나 이렇게 할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없는 예수를 왜 찾아 교회 나왔습니까? 나는 교회 사람들에게 도움 받으러 왔습니다. 우리 솔직하게 딱 깨놓고 이야기합시다. 교회에 아무도 안 왔는데 진짜 당신이 예수 찾아왔다면 교회 아무도 없고 목사님 혼자 딱 있고 보니까 그날따라 아무도 안 왔는데 혼자 교회 오면 얼마나 어정쩡하겠습니까? ‘다음 주에 또 가야지’ 그런 생각이 막 납니까? ‘왜이래 오늘 교회 왜이래 내가 모르는 사건이 터졌나! 목사님께 무슨 문제 있어서 전부 다 나 빼놓고 안 오기로 아주 마음에 작정 했는 모양이구먼! 아 교회가 이렇게 나오면 나 혼자 나오기에 어색하지 다음 주에 나 못 나오겠다. 다음 주에 들여다보고 사람들 와 있으면 참석해야지’ 그게 예수 찾아온 사람의 특징입니까? 그게 예수 찾아 온 거예요? 교회 한번 해 보려고 온 사람이잖아요 교회가도 예수님이 없잖아요 그렇다면 예수님을 어디서 믿습니까? 교회가도 예수가 없는데 그러면 예수님을 어디서 만나고 어떻게 해야 구원받는단 말입니까? 결국 부산에서 신정동으로 이사 가는 것이 가능하죠. 그러면 의존교회에서 천국 가는 것이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 오는 것만큼 가능합니까? 답변해 보세요. 1번 가능하다 2번 가능 안하다 지금 제가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능하다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능한 이유를 제가 물을 참이에요. 그럼 가능 안하다 하는 사람은 지금 까지 그러면 헛수고 한 거냐고 물을 참이에요. 사람들이 제가 이 문제를 이렇게 답답한 질문을 제가 왜 하고 싶어 하느냐면 서울서 신정동으로 이사했다고 좋아하기는 좋아하겠죠. 그런데 부산서 신정동으로 오는, 인간이 가능한 일도 그렇게 기분 좋다면 감히 할 수 없는 의존교회에서 천국 갔다면 여러분, 여러분 집에 한국에 어떤 사태의 전쟁이 일어나도 여러분의 기쁨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그게 진짜 믿는 사람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여러분들이 구원받았다는 기쁨이 세상에 있는 돈 보따리 보다 더 못하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천국 가는 것을 시큰둥하게 여기는 겁니다. 목사님 이야기하지 마세요. 별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왜 하세요. 천국갈 수 있는데 그냥 믿는 척은 하지만 그렇게 간다고 장담은 못하겠네요. 장담이 안 되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장담될 수 있는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 오는 것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나는 기쁨을 얻겠지 내가 할 수 없는 여기 있다 하늘나라 간다. 이건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지만 믿으면 간다 하니까 믿는 척을 했을 뿐입니다. 괜히 그렇게 요구 하는 사람들 마음을 섭섭하게 하면 인간적으로 안 되지 싶어서 믿습니까? 믿습니까? 내가 믿어줄게요 했을 뿐 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구원받은 기쁨이 전혀 남아있지를 않는 거예요 대통령도 못하는 일을 나에게 일어났다는 것을 안다면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슬픈 기색을 할 필요가 없어요. 슬픈 기색하니까 생각나는데 슬픈 기색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누구복음 끝에 보면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다멕섹에 내려가면서 슬픈 기색을 하고 내려가요 ‘아이고 나 사는 보람 없어. 나는 평범하게 살래’ 슬픈 기색을 하고 내려갈 때에 주님께서 딱 붙어서 ‘니 누가 죽었단 말이고?’ ‘예수가 죽었단 말입니다’ ‘안 죽으면 어떻게 할래?’ ‘아이 죽었습니다.’ ‘안 죽으면 어떻게 할래?’ ‘안 죽으면 나타내 보세요. 안 나타났잖아요. 그러니까 죽은 것 맞습니다.’ ‘내가 그 예수라면 너 어떻게 할래?’ ‘어머나 이럴 수가!’ 그 어머 하는 그 순간 지금 한 달 수입이 얼마며 자기 나라가 어떻게 되며 애들 걱정……. 이런 것들이 그 짧은 순간에 다 날아가 버려요 다시 말씀드려서 안 된 다고 철석 같이 믿었던 일이 안 되는 것이 아니고 되는 수가 있다는 거예요. 되는 수 가 있어요. 제가 지금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는 평생 동안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만 계속 해 왔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교회 와주는 것, 오늘 피곤한데 참석해 주셨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억지를 부리면 참석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참석해도 안 되는 일이 있어요. 그것은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하늘나라로 이사 가는 것, 이것은 어떤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겁니다. 성경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분명히 안 되는 일이라고 계속해서 각인시키고 분명히 합니다. ‘여러분!, 안 되는 겁니다.’ 라고 성경에서 계속 다지고 다지면서 그런데 ‘되거든요!’ 라고 이야기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안 된다고 하시고 왜 되게 하시느냐하면, 만약에 여러분들이 진짜 구원을 받아 주신다면 더 이상 그전에 여러분들이 염려 했던 거, 두려워하고 근심에 쌓였던 모든 것은 제발 하늘나라 기쁨 앞에서 좀 제거해 달라는 거예요. 그것을 좀 없애달라는 거예요. 나는 구원 받은 사람이 슬픈 기색을 해서 풀이 죽어가지고 고개 푹 숙이고 사는 것이 도저히 하나님 입장에서는 못 봐 주겠다는 겁니다. 구원 받아놓고 고개숙여버리면 구원 시켜준 하나님의 입장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모독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거든요. 하나님의 하신 일을 모독하는 방법이 하나님께 욕하고 침 뱉는 것도 있지만 구원 시켜줬는데 슬픈 기색을 하고 푹 숙이면서 뭔가 나름대로 고민에 빠져 있는 이 자체, 이 평소의 생활모습, ‘엄마, 시험 쳤는데 수학 20점 나왔어.’ 슬픈 기색하고 있는 것 바로 이런 모습이 하나님하신 일을 정면으로 모독하는 겁니다. 시골에 있던 사람이 서울 사람 되겠다고 돈 모아서 서울에 아파트 사고 이사 오면서 트럭타고 오면서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트럭 타고 이사 오면서 약간 기분 좋아서 과속을 해서 경찰에게 걸려서 3만 원짜리 끊어도 그 3만 원짜리 아무것도 아닙니다. 타이어 펑크가 나도 갈면 되고……. 지금 내가 서울로 이사 가는 판에 오는 와중에 일어나는 그런 사소한 일은 내가 서울로 이사 가는 기쁨을 깔아뭉개지를 않아요. 하물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도 기쁘거든……. 이거는 못해! 안 돼! 분명히 할 수 없어! 명확하게 할 수 없어! 확실하게 할 수 없는 그 구원을 주께서 구원을, 혜택을 베풀어 줬으면 우리 인간적으로 슬픈 기색 가지고 살지 맙시다. 부탁해요. 그렇게 슬픈 기색으로 살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어쨌는데요? 어쨌는데 그렇게 슬픈 기색하고 살아요. 뭘 어쨌다고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무슨 해코지 하던가요? 피 흘려줬지요, 피 흘린 것 모를까 싶어서 성령 보내 주셔서 믿게 해 주셨지요, 성령에서 또 보너스로 세트로 네가 죽어도 문은 열고 데려가겠다고 했지요. 엘리야, 모세 봐라! 벌써 선배들 와서 희희낙락하고 있잖아, 그 자리가 네 자리야 하고 약속해 줬죠. 뭐 하나님이 어쨌는데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해 줬으면 인간적으로 슬픈 기색내고 사기 당했다고 슬프게 그렇게 살지는 맙시다. 그게 기초가 되어야 돼요. 그것이 기본이 되어야 돼요. 성경이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아닙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에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습니다.’ 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이에요.’ 이런 이야기 하지, 우리는 하늘나라 사람이라는 말을 조선일보 동아일보, MBC, KBS……. 그런 이야기 안 합니다. 어느 드라마가 우리는 하나님 백성이고 우리는 하늘나라를 위해서 삽시다! 하는 드라마가 없어요. 왜? 그 드라마는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 인간들이 엄두가 안 나는 이야기는 그렇게 하는 법이 없거든요. 이것도 인간이 할 수 없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구원에 탈락 되더라도 너무 슬프게 생각하지 마세요. 애초부터 안 되는 일에 대해서 너무 어쭙잖게 욕심을 낸 거예요. 구원이 안 되더라도 마땅히 안 된다고 여기시고 괜히 욕심 내지 마시고 구원이 안 되더라도 지옥 가더라도 약간 좀 덥다, 좀 더울 거예요. 물 한 방울 없이 더울 건데 그것도 못 빠져나오고 영원히 지옥 가더라도 당연히 내 신분에 맞아요. 합당해요. 그냥 가시고 다만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행여나 여러분 가운데 ‘목사님 우리의 시민권 하늘에 있어요.’ 라고 이야기 하고 싶거든 슬픈 기색하지 말고 살자 이 말입니다. 정말 옆 사람 탈락하는 것 보고 야, 저 사람도 안 되면 나도 안 되는 것 맞는데 왠지 나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거든 여러분들은 당첨 된 줄 아시고 두 번 다시 슬픈 기색하지 말고 삽시다. 주님이 뭐 어쨌는데 주님 앞에서 슬픈 척을 하고 난리입니까? 사람이 슬픈 것도 버릇돼요. 나중에 집안에 슬픈 일이 없으면 일부로 만들어내요. 얼마나 심심하면 그러겠습니까? 자, 이제부터 봅시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데 하늘나라에 성이 있는데, 성의 대표적인 그림은 독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이라고 아주 번쩍 번쩍한 성이 있어요. 백설 공주 그림에 나오는 아주 예쁘게 지은 성이 있는데 지금도 그 성이 유명한 관광지로 있어요. 하늘나라에 성이 있다 합시다. 자, 여기 예루살렘성에 먼저 선배들이 고개 내밀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또 다른 많은 증인들이 도착해서 밑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서울 땅에서 살고 있는데 여기에 건너갈 수 있는 연결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인간이 펄쩍 뛰어봤자 중력에 의해서 도로 떨어지니까 갈 수가 없어요. 갈 수가 없는데 갔다 이 말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불가능성을 확실히 함, 여기 하늘나라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히 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먼저 간 사람들은 무엇을 받은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불가능성을 아는 사람” 그것을 체험한 사람들 우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한 사람들이죠. 여기 지옥 가는 사람들도 천국 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체험한 사람들인데 이 사람이 불가능한 것을 체험해서 지옥가고 이 사람은 불가능한 것을 체험해서 천국 간 사람이에요. 천국 가는 사람치고 자기가 해서 구원받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죽어서 천국가기 전에 지금 여기서부터 ‘그 구원은 불가능하다.’를 매일 마음속으로 천 번씩 해요. ‘구원은 불가능하다. 될 리가 없어. 있을 수가 없는 거야 하늘나라가 있더라도 나는 못가는 거야. 왜 나는 갈 수 없기 때문에’ 라는 것을 하루 천 번이라도 반복해서 이것을 알아야 돼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우리는 하늘나라 사람이라 할 때 우리가 누구냐 하면 여기 나와요 빌립보서 3장17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빌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보통 그림을 그리면 십자가를 통해서 하늘나라를 이렇게 간다 하면 이것은 불가능이 아니고 십자가 올라타고 가면 되거든요. 십자가를 통해서 하늘과 땅이 이어 졌습니다. 이 십자가을 통해서 올라가면 된다 이 말입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내가 십자가 믿으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십자가가 이런 십자가가 아니고 그냥 십자가가 피 흘려 죽어버리는 진짜 십자가는 그냥 죽어버리는 거예요 주님이 계신데 칼로 찔려서 죽어 버렸어요. 죽고 난 뒤에 3일 동안 공백이 있어요. 죽은 자가 슬로우비디오로 살아 올라간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있을 수 없거든요 어떤 사람이 만약에 미친 사람이 있어서 예수님이 죽을 때 ‘야! 예수님 죽었다. 저 죽음이 천국 가는 비밀통로다. 나도 예수님 따라 죽을래요.’ 이런 사람 없어요. 예수님 옆에 있던 강도도 안 그랬어요. 자기 죽으면 죽고 예수님 죽음 따로, 예수님 죽음에 합류가 안 됩니다. 베드로가 합류한다 해도 말렸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십자가가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가 거꾸로 이렇게 되어야 해요 자기가 살려고 하는 데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서, 본받으라 하니까 ‘예수님 본받으라 했으니까 나도 죽어야지’ 하며 죽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 이 말입니다. 없다는 말은 인간이 아무리 가능해도 인간은 구원에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십자가를 원수로 취급하는 이유가 십자가가 죽어야 산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살고 싶어 하는데 ‘어이, 이근호 너는 죽어’ 라고 할 때 화 안낼 수가 없어요. ‘사세요.’하면 ‘좋습니다.’ 하는데 ‘죽어’ 하면 화내지요 그러니까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은 구원받을 수 없음을 외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십자가원수 아닌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예수님한테는 다 원수가 되는 겁니다. 십자가가 결국은 사람의 힘으로 구원받은 것을 다 차단하니까 지금까지 강의 한 것을 정리하면 십자가가 하나의 막이 되서 사람들이 말아서 천국 가는 것을 가로 막기 위한 용도로서 십자가가 있다 왜? 어느 누구도 십자가를 무서워서 다 도망가서 십자가의 원수이고, 천국가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가기 싫어. 십자가에 내가 왜 죽어 내가 살아야지 내가 왜 죽어’ 하고 다 기피하기 때문에 십자가는 예수님 홀로 뒤로 가셨다 말입니다. 앞에는 여전히 아무 것도 없어요.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으면 심심하니까 여기 다가 상상으로 무엇을 하냐 하면 십자가 하나 만들어서 ‘십자가 믿습니까? 믿어지십니까? 믿어지시면 눈감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는데 이 십자가는 진짜 십자가를 빼돌리고 자기가 가능한 십자가, 믿을 수 있는 십자가를 떡 세워 거짓말로 해 놓고 ‘야, 우리 십자가 믿으니까 다 같이 얼싸안고 할렐루야’ 하고 간다고 성도를 위로 해 주는 거예요 그거 말짱 사기입니다. 거짓말입니다. ‘목사님 자꾸 못 간다. 하는데 진짜 가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진짜 간 사람은 구원받았으면 이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슬픈 기색이 없어야 된다니까요 지가 놀래가지고 ‘분명히 안 되는 일이 왜 생겼지 안 되는 일이 나에게 발생되었구나. 나 같은 인간이 구원받다니’ 이렇게 되지 슬픈 기색해 가지고 구원은 받아놓고 슬픈 것은 슬프고……. 이런 것은 없어요. 빌립보서 내용이 뭐냐 뒤에 나와요 항상 기뻐하라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하라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네 할 도리를 다 할 수 있느니라 그거잖아요 4장에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3장을 대충 넘어가면 안돼요. 3장의 끝에서 단단히 해 줘야 해요 단단히 해 줘야 4장 넘어갈 때 기쁨이 생기지 ‘3장 다 압니다. 그냥 넘어갑시다.’ 이러면 안 돼요 그럼 뭐가 문제냐? 이런 십자가가 가짜라니까요 예수 피를 믿으면 되지 않습니까? 하는데 진짜 예수의 피를 믿는 사람은 여생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슬픈 기색을 안 한다니까요 왜냐 하면 예수피를 믿을 수 있는 내가 아닌 것을 자기가 알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 피가 뭐냐 하면 같이 죽자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눈만 뜨면 살고 싶어서 환장한 인간이 누가 옆에 와서 ‘어이, 이목사 같이 죽으세!’ 이런 것은 이 땅에 없어요. ‘돈 줘서 목사직 사세요. 하면 감사합니다.’ 이런 인간이지……. ‘지금 딸 시집도 안 갔는데 왜 죽어요? 결혼식 때 아버지가 손잡고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나 죽고 난 뒤에 삼촌이 손잡고 들어가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우리 딸 시집갈 때 까지는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만약에 우리 딸이 ‘남자하고 관계 깨졌어.’ 하면 갑자기 슬픈 기색을 해요. 그러면 주님께 구원받았다는 것 혹시 가짜 아니에요? 그거 엉터리 아니에요? 딸이 남자하고 좋은 관계 깨어졌다는 것이 내가 구원받은 불가능의 기쁨을 다 앗아갈 정도 같으면 그거 구원받은 거 맞아요? 구원받았다는 게 수상하기 짝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목사님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아셔야 됩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그 죄를 반드시 자기가 죄 지은 것을 알고 그것을 회개해서 라도 그 죄를 의로 바꾸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계속해서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내가 내 죄를 알아서 그 죄를 반성하고 회개하는 그것으로 예수님이 거저 주는 은총을 그것으로 대체하려해요 교회 나오기 전에 담배 피고 술 먹고 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술 끊고 담배 끊고 교회 나와서 목사님말씀 잘 듣고 봉사하는 그 업적, 그 의로움, 그 실적, 그것으로 과거에 내가 죄 지었다는 생각을 대신해 주면 거기에 예수 믿는 착함까지 보태면, 예수피를 믿는 착함까지 보태면 그것으로 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 문제의 잘못된 점은 인간이 죄 짓고 싶어도 죄지을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자기 죄가 뭔지 몰라요 죄를 알아야 죄를 짓지 자기가 평소에 짓는 이기주의라든지 나쁜 짓이라든지 살인, 간음……. 이런 것 죄 아니에요. 그것은 자기가 지어낸 죄라니까요 자기가 선악과 따먹고 지어낸 죄에요 교회 돌 던져 유리창 깨고 예수님 모른다 하는 것 그거 죄 아니에요 인간은 죄를 지을 수가 없어요. 왜, 죄를 모르기 때문에…….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죠. 여러분들이 만약에 죄를 알게 되면 ‘아 이건 나쁜 거야’ 하고 알게 되면 그 나쁜 것을 어떤 식으로 내 힘으로 나쁜 짓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 노력 중에 하나가 예수님의 복음을 믿어주고 예수님의 새 언약의 피를 믿어주는 착한 일을 시도 하게 돼요 그게 자기 구원을 방해하는 겁니다. 제가 지금 30분 동안 이야기합니다. 안 되는 데 자꾸 착함, 안 되는 이유가 내가 죄를 지어서 안 되었어 그러니까 죄만 알고 죄만 반성하고 두 번 다시 죄를 안 지으면 나는 될 수도 있다고 자기 쪽에서 그것을 수정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안 된다는 것을 ‘그것 되거든요’이런 식으로 원칙을 바꾸려고 시도 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아까 했죠. 교회 와서 예수님 찾는 게 아니고 교회 와서 ‘목사님 제가 무슨 착한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그것을 찾으러 교회 온 거예요 없는 예수 왜 찾나? 예수는 없으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없어요. 오늘 괴상한 소리를 계속하고 있는데 예수님 있으면 여러분 눈에 띕니다. 여러분 눈에 띌 예수는 없습니다. 무슨 예수님이 눈에 띄겠어요. 눈에 띄면 행동 바르게 할 거기 때문에……. 오늘 학생들 어렵다. 무슨 말인지 모른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여러분 예수님께 모든 정성과 성의를 다 표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이 됩니다. 마르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잘했습니까? 못했습니까? 대접을 평소에 잘했습니까? 못했습니까? 잘 했죠. 예수 믿은 겁니까? 아니죠. 그러면 평소에 잘한 것을 마르다 마리아가 무엇을 놓고 해석하겠어요? 그것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라고 해석할 거 아니냐 이 말이죠. 그 믿음이 언제 깨졌습니까? 자기 오빠가 죽었을 때……. 차마 주님이라 멱살을 못 잡았죠. 저 같았으면 벌써 멱살 잡았습니다 ‘너 이리와 뭘 어쨌다고 그래 금요일에 꼬박 꼬박 성경공부 참석했는데 그래 그 정도면 됐지 뭐 더 어쩌라고 우리 오빠 왜 죽였냐? 이제 우리 다 살았어. 이제 슬픈 추억가지고 어떻게 평생을 산단 말이냐!’ 여러분 오빠가 죽었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잊힐 문제가 아닙니다. 평생 아픔이에요. 그럼 평생 아픔을 보상할 어떤 수로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그럴 때 예수님께서 오빠 산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럼 계속해서 오빠 레벨에서 유지되기 때문에 자기가 행할 수 있는 착함이 유지되기 때문에 마르다 마리아가 전적으로 착한 일 같은 것을 믿은 적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오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네가 나를 믿나?’라고 했어요. ‘아이 대접 했으면 됐잖아요! 또 뭘 믿어요?’ ‘그것 말고 네가 나를 믿나?’마르다 마리아가 ‘안 믿습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왜, 마르다 마리아의 그 한계성에서는 잘 대접하면 믿는 것이고 안 믿는 다는 것은 나쁘게 대접하는 것인데 자기는 예수님을 대접 안한 사람보다 착하게 대접했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자기는 믿는 사람이 된다 이 말입니다. 현재 믿고 있는데 ‘네가 믿고 있나?’ 할 때 답변할 말이 없는 겁니다. 오늘 점점 어려워서 제가 헛갈리는 데……. 한 목사님, 남자입니까? ‘남자 아니거든요’ 이렇게 하면 말이 안 돼요. 본인이 남자라고 알고 있는데 ‘남자입니까?’ 이 말은 질문을 들을 때 기분 더럽죠. 내가 남자인데……. ‘마르다 마리아야 네가 나를 믿느냐?’ ‘아, 잘 믿지요. 그러니까 오빠 죽고 난 다음에 예수님 초빙했지 부처 초빙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그 묻는 뉘앙스가 뭡니까? ‘남자 아니거든요.’ ‘믿는 거 아니거든요.’ 믿는 거 아니란 말이죠.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예수 믿는 사람이 없어요. 왜 믿는 사람이 없느냐 하면 마르다 마리아는 믿음이 아닌지를 모르기 때문에 믿는 것인지 모른 거예요. 죄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저 자기 육적 레벨에 머물러있는 거예요 그런 사람에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하면 ‘믿습니다.’할 사람들인데 전부 다 ‘십자가 피로 구원받음을 믿습니까?’하면 ‘믿습니다.’ ‘구원받았습니까?’ ‘할렐루야’ 다 이럴 사람들이에요. 그래 놓고 집에 애 아프다 하면 슬픈 기색하고 돌아다녀요. 직장 잘렸다하면 슬픈 기색하고 돌아다닙니다. 수상해, 아주 수상합니다. 3,4년간 성경 공부한 것, 수상해요 아닌 것 같아요. 성경 전혀 깊이 있게 안 들어 간 것 같아요. 간단한 문제인데……. 죄를 지을 수 없다는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이라는 왕을 만났을 때 아합이 먼저 ‘엘리야야 너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라고 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엘리야가 그 당시에 아주 나쁜 아합왕을 만났을 때 지명수배 당했어요. 엘리야를 신고하는 사람은 포상금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걱정하는 것을 보고 엘리야가 자진해서 왕에게 나타나니까 왕이 대뜸 하는 말이 ‘네가 엘리야냐?’ ‘엘리야다.’ ‘너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다.’했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왕 화장실에 있는데 문 안 열어줬습니까? 그래서 괴로운 거예요? 아합왕이 침실에 있을 때 신발 감춰 맨발로 뛰어나오게 해서 괴롭겠습니까? 아니죠. 그러면 왜 아합왕이 엘리야를 보고 너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지게 되면 지금 엘리야는 하나님의 언약을 몰고 왔습니다. 전혀 관심을 안 가져도 되는 사람이 언약에 관심을 갖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인데 엘리야가 언약을 들고 나왔을 때 다른 사람은 그냥 집에서 수제비하고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하고 운동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tv보고 그냥 평상시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아합왕만은 엘리야를 보고 특별한 발언을 해야만 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그 순간 아합왕 말고 다른 사람들은 아합왕이 하는 말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른 거예요 가룟유다가 예수님하고 식사하면서 예수님께서 먼저 가룟유다에게 떡을 주면서 ‘유다야 네 할 일 해야지’라고 했어요. 가룟유다가 알아들었습니까? 못 알아들었습니까? 알아들었죠. ‘예’ 하고 먼저 나갔죠. 그러면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과 가룟유다의 이야기를 알아들었습니까? 못 알아들었습니까? 못 알아들었죠. 그것이 하나의 언약이 오게 되면 일상 평상시의 행동, 너무 어려워서 극단적 인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어떤 은행원이 있는데 여기에 엘리야가 갔어요. ‘손님 번호 한번 봅시다.’ ‘75번’ ‘맞습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할 때 엘리야가 있다가 ‘아가씨!’하니까 은행직원이 일을 하고 있다가 ‘아가씨? 엘리야여! 당신은 나를 괴롭게 하는 자다.’라고 했을 때 옆에 있는 직원들이 그 말을 알아듣습니까? 못 알아듣습니까? ‘저게 미쳤나! 고객한테 왜 저래’ 지금 성경 이야기가 그 이야기에요 성경은 하나님이 다루시는 사람에게 특별대화가 교차되는 겁니다. 너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말을 이명박 들어도 몰라요 정운찬들어도 몰라요 그 사람은 지금 나라 일 하느라 바빠요 그런데 그냥 택시 운전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디 까지 가십니까?’ ‘너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이런 관계는 특수한 관계에요 ‘이 차가 미쳤구나! 어디에 가시는데요? 어디 하늘나라 갑니까?’ 그러면 그 사람은 특수한 관계 아니라니까요 전도에 미련한 것으로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거예요 ‘당신 똑똑하죠.’ ‘네. 똑똑합니다.’ ‘똑똑하니까 똑똑한 것으로 통합시다.’ 이런 것으로 구원받은 것은 없어요. 은행원이 아침에 화장하고 평소에 일 하는데 그 순간 난데없이 말씀 자체에서 나오는 희한한 능력이 와 버리면 ‘당신은 나를 괴롭게 하는 자여’ 이런 소리 한다 이 말입니다. ‘내가 미쳤지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하지’ 완전 오맨 영화 찍는 거예요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언약 속에 개입된 사람만 알아요. 예수님 십자가에 있을 때 옆에 강도 둘이 있었죠. 한 쪽은 ‘예수여! 남도 구원 못하면서 당신도 꼴좋다 살인당하네 아이고 이 사기꾼아’ 하고 한 쪽은 이상한 소리했어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이억해 달라’ 그 때 주님께서 이상한 소리 했죠. ‘네가 오늘 밤에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지금 그 강도가 풀렸습니까? 만약에 드라마 같으면 그 강도 풀렸어요.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치면서 십자가 뿌리 채 뽑혀서 두두 둑하고 수갑 다 풀리고 로마국민들이 ‘주여, 좋습니다.’ 이렇게 박수치며 할 텐데……. 그 강도 100명이 봐도 1,000명이 봐도 그냥 죽었어요. 예수님하고 둘이 놀고 있는 거예요 ‘네가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 밑에 있는 로마군이 ‘둘 다 참 잘 논다. 웃기고 있다. 마지막 죽는 게 무슨 말을 못해. 끝까지 착각해 과대망상이야. 예수만 미쳤는지 알았는데 옆에 강도도 미쳤구나.’ 여러분들이 그런 미친 소리를 들어야 돼요 세상 사람들은 ‘내가 안 믿어지는 하늘나라를 너희 시민권이 하늘나라에 있다는 말을 성경에 있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내가 안 믿어지는 것을 네가 감히 교회 간지 이틀 만에 믿어지냐 이거는 착각이야’ 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우리는 불가능함에 익숙해 져야 합니다. ‘아, 이거 안 된다.’ 안 되는데 하나님 말씀 자체가 살아서 그 말씀 세계에 우리를 강제로 당기고 초빙한 겁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슬픈 기색을 고개를 숙여서 땅에 눈물을 뚝뚝 흘릴 이유가 없습니다. 드라마 보시더라도 눈물 흘리지 마셔요 20년 만에 오빠 만나도 울지 마세요. 진짜 기쁨의 웃음은 안 되는 일을 주께서 창세전에 예정되었다는 그 이유 때문에 그 귀하신 성령께서 일부로 찾아 오셔서 설거지 하는 나에게 찾아오셔서 ‘너는 하늘나라 사람이거든’ ‘안 되는데…….’ ‘안 되는 줄 알고 찾아왔거든, 너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왜요?’ ‘십자가 피를 들어 본적 있나?’ ‘아 그 이야기구나! 나 그거 그냥 건성으로 들었는데……. 아 진짜 안 되기 때문에 주님의 피가 되게 하셨구나!’ 그러면 그 논리, 안 되는데 피 때문에 되게 하셨다는 그 논리를 설명할 길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전도에 미련한 거예요. 그 사람의 똑똑함을 자극시키고 발취해 내는 법도가 없어요. 그냥 ‘미련한 것 그냥 받아둬’ ‘피, 그냥 받아둬. 너한테 구원의 능력되게 되어 있거든’그것을 안 믿으면 안 되고 그것을 받는 순간 믿어지더라 이 말이죠. 내 인생이 어떻게 꼬이고 어떻게 망가져도 내가 하늘나라 가는 신분이 전혀 흠집이 안나요. 여러분 주민등록에 흠 안 납니다. 여러분 생명책에 이름이 흐려지지 않아요. 그것은 예수님의 피로 새긴 사람은 흐려지지 않아요. 그것은 말씀대로 약속대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없다. 이유가 죄를 지을 수 없는 죄인이에요. 왜냐 하면 죄를 모르기 때문에 지을 수 없어요. 그런데 인간은 뭐라 합니까?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거예요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말은 죄가 뭔지 알기 때문에 지은 죄를 다음부터 안 지을 수도 있고 회개 할 수도 있고 죄지은 만큼 착한 일도 더 할 수도 있고 해서 내 쪽에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만약에 내 쪽에서 해결해 버리면 기쁨이 오지 않아요. 내가 애써서 구원받기 때문에 난데없는 기쁨은 생길 수가 없습니다. 이 더운 날 이렇게 성경공부 해서 구원받았지 이렇게 되지 ‘어떻게 안 되는 것을 하셨습니다.’ 하는 이런 놀라움이 없어요. 놀라움이 없으면 우리는 그때부터는 불안해서 못삽니다. 항상 좋은 일만 생겨야 되는데 깜짝 놀라는 경기 일어나는 일만 생기면 우리는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하고 깜짝 놀랍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으로 찾아오셔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데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그것이 바로 주님 쪽에서 나오는 능력 가지고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네가 나를 믿느냐?’ ‘뭐요?’ ‘네가 죽어도 살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어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믿느냐?’ ‘옆 사람에게 물어보고요’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말고 그 사람은 내가 다뤄, 내가 너한테 묻는 거야 너는 그게 믿어지냐?’ ‘그건 믿기 힘든데요. 불가능한 데요’ ‘그것은 인정하나?’ ‘네. 내 믿음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네가 믿는 자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이 믿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믿음이에요.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주체자가 나의 주인입니다. 따로 계시는 그 인생이기 때문에 그 주인이 마련한 줄줄이 나머지 모든 약속은 내가 피할 수가 없어요. 그대로 하늘에서 우박 떨어지듯이 남은 역사도 다 떨어집니다. 재림하면 재림도 쏟아지고, 부활하면 부활도 주어지고……. 나머지 역사가 뭐가 있나 봅시다. 21절 다 같이 봅시다. 빌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라는 약속이 그 다음 차례로 우리에게 그대로 주어지게 되어 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 약속이 있는 한 우리는 더 이상 고개 떨어뜨리면서 눈물 흘리면서 땅을 볼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어차피 내가 말릴 일도 아니고 내가 저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주님께서 말씀을 주니까 비로소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아하, 죄라는 것은 성령이 알려줘야 죄인데 그 죄가 뭐냐 하면 예수님을 안 믿는 게 죄에요.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은 누가 믿게 하죠? 예수님이 믿게 하지요. 예수님을 믿게 하는 데 예수님이 안 찾아와서 안 믿으면 그게 뭐가 된다? 믿지 않는 것이 죄지요 .그러면 죄를 누가 유발시킵니까? 예수님이 안 찾아오기만 하면 뭐가 돼요? 죄가 되지요. 그러니까 죄는 자기가 짓습니까? 예수님이 짓게 하십니까? 예수님이 짓게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안 찾아오면 안 믿어지고 안 믿어지니까 죄가 되고……. 세상만사는 예수님 자기 마음대로예요. 이 사실이 믿어져야 돼요.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예수님의 고유권한을 증명하기 위해서 마음껏 발휘하기 위해서 배치된 피조물들입니다. 그것을 여러분, 성경에서 찾아야 됩니다.
관리자(IP:220.♡.41.203)
10-07-19 16:09
서울100709빌3장20절b
두 번째 시간 시작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한 것을 다시 한 번 간추리면 구원받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 합니다. ‘불가능한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렇게 된다.’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불가능 한데 있다.’ 그럴 경우에 우리는 대뜸 우리의 방식으로 구원받으려고 시도를 하는 거예요. 그것이 ‘주여, 죄를 알려주시면 그 죄를 우리가 알아서 회개하고 반성해서 예수 믿어서 구원받겠습니다.’ 라고 하는 시도가 나오는데, 그런 짓들이 믿음이 아닌 거예요. 왜냐하면 너는 죄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야기 하는 죄를 네가 주인공이 되어서 네가 알아서 지을 수가 없는 거예요. 죄는 짓지 못하면서 그냥 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 죄가 예수님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해요. “아이, 믿겠습니다.” “믿지 못한다니까” “믿겠습니다.” “믿지 못해!” “예, 알았습니다. 저는 못 믿습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믿지 못해! 예, 맞습니다. 도저히 못 믿겠습니다. 그 못 믿겠다는 것이 그게 바로 믿음이란 말입니다. 왜, 그럴 때 그 믿음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맺어주신 관계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 사람은 어디에 가도 천국가고 어디에 가도 내가 믿어서 구원 못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주께서 이 믿음 없는 나에게 찾아와 주셔서 그 때 비로소 나는 예수님 안 믿는 것이 바로 죄이다 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이웃을 해하는 것, 절에 불 질렀던 것, 교회 유리창 깨는 것……. 이런 것들이 죄인 줄 알았는데 이것은 우리가 가능한 죄이고 우리가 가능한 죄는 죄가 아니에요. 우리는 죄가 뭔지를 몰라야 돼요. 예수를 안 믿는다는 것을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몰라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알아요. 예수 안 믿는 것이 뭔지를……. 갈수록 미궁에 빠졌어요. 말 할 수가 없어요. 너무 미궁이라서……. 목사님 백날 여러 소리해도 나는 그래도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습니다. 저는 그냥 믿어집니다. 목사님께서 뭔가 요상하게 기발하게 이렇게 설명하려고 애써도 목사님 백날 하세요. 나는 성경대로 나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믿었습니까?” 하고 물으면 그러면 그 사람은 “그거야 십자가 피의 능력이 있어 믿게 되었지요.” “그게 당신의 능력이 아니라니까요” “그러시면 동의합니다. 그러면 내 생각하고 같네요.” 그럼 제가 묻지요. “그럼 앞으로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기 때문에 당신에게 어떤 어려움과 사태가 벌어진다 해도 당신은 슬픈 기색을 내지 않고 늘 기뻐하고 감사하겠죠?” “그럼요” 하고 나와야죠. 안되더라도……. 이제부터는 불행 끝, 행복 시작이에요. 기쁨 시작이에요. 자 그 다음에 21절을 보시겠어요. 첫 번째, 우리의 낮은 몸을 두 번째, 우리 하나님의 영광의 몸으로 변케, 변하게 해 주신다. 변하게 해 주신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가 매일 같이 변화하는 것을 아십니까? 늘 맛있는 떡인데 오늘 유난히 맛있는 떡이 왔는데 여기 안에 꿀 앙꼬가 들어가 있어 맛있는 것 같은데 제가 아까 이 떡을 먹었을 때 그 맛이 맛있었습니다. 자, 두 번째 지금 옆에 있는 이 떡을 먹었을 때 앞에 있는 떡하고 맛이 같겠어요? 달라지겠어요? 달라지죠. 그게 바로 변케입니다. 그러면 이 세 번째 떡 먹을 때 달라지겠어요? 달라지지 않겠어요? 달라지죠. 그것이 변케 에요. 변하는 거예요. 어제 여러분 예수님 믿었죠? 어제 예수 믿는 것과 오늘 예수 믿는 것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변하지요. 여러분들이 잘못 되어서, 여러분들이 신앙과 믿음이 없어서 신앙이 약해서 달라지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변하게 하십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주님께서 그렇게 변동을 일으키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오늘 믿은 것으로 스톱해서 이것을 영원히 가져가려는 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내일 되면 그날 지금은 괜찮은데 내일되면 우리가 살아 있다면 어제 생각은 날아가 버리고 오늘 주께서 새롭게 주시는 믿음이 새롭게 있어요. ‘목사님 만약에 하나님이 안주시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에 보니까 변하게 해 주신다는 거예요. ‘목사님 그거 안 믿어지는데요.’ ‘당신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믿습니까?’ ‘그것은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민권 자에 한에서 우리의 낮은 몸을 주님의 영광의 몸으로 변하게 해 주시는 겁니다. 낮은 몸에서 영광의 몸으로 우리보다 먼저 가신 분이 계신데 누구시지요? 예수님이죠. 오늘 21절에 보면 너희의 낮은 몸을 영광스러운 몸으로 바꿔 주지요. 그러면 그 영광스러운 변화의 그 코스가 예수님의 코스와 같겠습니까? 다르겠습니까? 1번 같다. 2번 다르다. 몇 번입니까? 같다. 같아야지요. 주님께서 낮은 몸으로 영광스러운 몸으로 바뀐 것은 혼자 폼 잡으려고 간 길이 아니고 내가 갔던 경로 영어로 path, 갔던 그 길을 그 과정은 예수님이 혼자만 가는 과정이 아니고 그 뒤에 주님께서 자기만 낮은 몸과 영광스런 몸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기 백성을 낮은 몸을 영광스런 몸으로 바꿔주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몸이 되어야 합니까? 낮은 몸이 되어야지요. 그런데 왜, 살을 빼려 합니까? 여러분 거지 나사로가 어떤 몸이라고 봅니까? 거지 나사로의 몸이 초콜릿 복근입니까? 몸이 아파 기왓장으로 긁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잘 믿었으면 어지간하면 낫게도 하실 만한데 죽을 때 까지 어떻게 연금이라고 타게 하시면 될 텐데, 죽을 때까지 거지고 마지막 때에 거지나사로를 방문한 존재가 있어요. 개, 개가 헌데를 핥았습니다. 그것이 무슨 몸이라고요? 낮은 몸이죠. 그 나사로의 낮은 몸이 구원 받는데 지장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나사로가 자기가 거지꼴이 된 것이 자기의 구원의 기쁨을 뺏어 갈까요? 안 빼앗아 갈까요? 안 뺏기지요. 왜? 철저하게 낮은 몸이기 때문에 물 한 모금 마시고……. 지금 우리가 중요한 대목을 지나고 있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낮은 몸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낮은 몸이겠습니까? 어느 것이 더 낮은 몸이겠습니까? 십자가 진 것이 더 낮은 몸입니다. 그것이 빌립보서 2장에 나옵니다. 주께서 낮추자 어디까지 죽으심이라?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앞에 2장 5절에 보면 너희는 이 마음을 곧 품으라. 곧 누구의 마음이니?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하고 줄줄이 뒤에 나온 것이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 된 분이시나 동등 됨을, 영광을 다 취하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반대로 낮은 몸으로 가셨지요. 낮은 몸 되어가지고 하나님께서 ‘어이, 너 낮은 몸이구나, 구원 안 해 줘!’ 이랬습니까? 낮은 몸일수록 영광의 폭은 더 크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하는 말이 지금 여러분들은 낮은 몸입니다. 낮은 몸이 된 여러분들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1번 안 낮은 몸, 2번 더 낮은 몸……. 많이 용서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하거든요. 나같이 천한 몸, 예를 들어서 이런 겁니다. 한 달 수입이 한 이천만원 되는 사람이 사업을 하는데 그만 실패를 했어요. 그래서 이천만원 되다가 천만원밖에 안되니 그때 혼자 울며 기도합니다. ‘주여, 이렇게 낮은 몸을 구원해 주시니…….’ 이렇게 합니다. 석 달 뒤에 백만원밖에 안됐어요. 어떻게 되어야겠어요. ‘아, 천만원 되어야 하는데 아이, 나 예수 안 믿어’ 이렇게 되어야 합니까? 천만원이지만 그보다 수입 없는 사람은 ‘아저씨 더 좀 내려오세요. 천만원 가지고 낮은 몸 아닙니다. 누구 앞에서 감히 낮은 몸 합니까?’ 라고 끌어내지요. 그 끌어내리시는 분이 만약에 예수님이라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너희들이 이미 영광스런 몸이 될 자야. 될 자이기 때문에 진흙 구덩이에 한 번 빠져도 괜찮은 거야, 믿나?’ ‘믿습니다.’ ‘그러면 한번 빠져봐!’ ‘그건 아니거든요.’ 이러면 곤란하다 이 말입니다. 거지 나사로도 영광스런 몸이 된다면 그것도 잠깐 거지됐다가 영광으로 갔다면 우리로 하여금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우리가 영광스런 몸이 되게 하시는 가운데서 주님의 솜씨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잠언 속의 그리스도’라는 책이 나오는데 그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가난과 가난한자, 부와 부한 자를 나누웠어요. 여러분, 부자가 지옥 갑니까? 부자라고 지옥 가는 거 아니죠. 부하다는 것을 내가 돈이 많다는 것을 무엇으로 해석하느냐 하면 주님이 주신 가난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돈을 의지하지 않고 이런 해석을 주신, 새로운 해석을 가미해 주신 우리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구원받는 겁니다. 재산을 가지고 자기를 측정하지 말고 성경이 나를 뭐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 재산이 20억이 되던 50억이 되던 주님은 우리보고 가난한 자라 하는 겁니다. ‘저 부자인데요.’ 이러면 안 되고 ‘맞습니다. 가난한자 맞습니다.’ 하면 가난한 몸이 뭐가 됩니까? 지금 주님의 출발점이 어디에요? 아무리 돈 많아도 출발점이 뭐라고요? 가난한 자로 출발해서 그 다음에 주님의 솜씨, 솜씨로만 이어져서 뭐가 된다? 영광의 몸이 되고자 하는 것이 주님의 솜씨에요. 그 중간에 누가 끼어들면 안돼요. 돈이 50억 있어도 괜찮아요. 땅이 5억 있어도 괜찮아요. 그 자체를 뭐로 보자는 말이에요? 가난한 몸, 낮은 몸으로 보자 이 말입니다. 초콜릿 복근이 7개인데 6개밖에 없네. 이것을 낮은 몸으로 보자 이 말입니다. 장동건이 보고 ‘아이고, 아저씨 잘 생겼네.’ 하면 ‘나, 이것은 피부 덩어리에 불과하고 나는 낮은 몸입니다. 이건 쓰레기 같은 몸입니다.’ 이러면 그 사람은 남이 미남이라고 할지라도 장동건이는 빌립보서 3장 21절을 보는 하나님이 보는 시선을 가지고 자기를 동일하게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은 시작을 했습니다. 무슨 시작을 했습니까? 장차 이런 장동건이는 뭐가 된다? 주의 솜씨로 영광스런 몸이 될 사람이 된 거예요. 그런 시선을 잡아당기자 이 말입니다. 그런 시선을 받자 이 말입니다. ‘목사님, 그런 시선을 받으려면 우리가 가난해야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무리 가난해도 가난하기 때문에 낮은 몸이 되지는 않아요. 예수님 몸처럼 낮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안경 쓰셨습니까? 그냥 삽니까? 그러면 그것 자체가 낮은 몸으로 보시는데 이래서 낮은 몸이 아니고 성경이 나보고 낮은 몸이라고 하니까 낮은 몸이구나! 믿어지면 되는 겁니다. 감사하라, 늘 감사하라 할 때 4장에 나오거든요. ‘하나님 감사할만해서 감사 합니다.’ 라는 말을 우리는 두 번 다시 하지는 맙시다. 감사하다는 말은 네가 낮은 몸인 것을 하나님이 낮은 몸이라 알려준 자체가 감사하고 그 몸은 낮은 몸으로 있는 몸이 아니고 영광스런 몸이 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낮은 몸의 코스를 누가 먼저 갔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이 먼저 가셨죠. 그러면 낮은 몸에서 영광스런 몸이 될 때 우리는 어느 코스로 갑니까? 예수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가지요. 자, 1번 우리가 이 길을 간다. 2번 성령님께서 가게 하신다. 몇 번입니까? 2번, 성령님께서 가게 하세요. 왜 그러냐 하면은 예수님이 가신길이 예수님 홀로 가신길이 아니고 성령께서 인도하셔서, 당겨주셔서 간 거예요.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3번 시험받을 때 예수님이 ‘아, 한번 시험 받아볼까 내 믿음 테스트 해 볼까’ 이렇게 해서 받았습니까? 누구 때문에 받았습니까? 성령께서 광야로 몰아내니까 가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칠 때 누구의 이름으로 했어요. 성령의 힘으로 했어요. 그 성령님의 힘으로 낫기 때문에 그 성령님이 그대로 찾아오게 되면 그것은 본인이 거부할 수 없어요. 예수님 가신 그길로 그대로 가게 되어 있어요. 세 번째 봅시다. 세 번째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하셨다는 말이 너무나 무책임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걸핏하면 성령께서, ‘아이고 어떻게 헌금을 하셨습니까?’ ‘성령께서’ ‘아이고 평소에 짬뽕 좋아하는데 왜 오늘은 자장면을 시키십니까?’ ‘성령께서’ 쥐나 개나 성령께서……. ‘교회에서 회개 할 때, 책상 엎어 놓고 왜 그렇게 고함지릅니까?’ ‘성령께서’ 이 성령께서 너무 함부로 남발한다는 생각 안 드십니까? 학생들 시험 칠 때 ‘주여,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성적 좋게 해 달라고’ 어디서 들은 풍월은 있어서 경찰한테 과속 걸렸을 때 ‘성령께서 보호하사 제일 싼 벌금 내게 하옵소서!’ 하여튼 성령께서 바빠요. 벌금도 낮춰져야 돼, 아는 문제만 출제하게 해야 돼. 성령께서 왜 그렇게 바쁜지……. 성령께서 라는 말을 붙이려면 성급하게 자기 욕망을 갖다 붙이지 말고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성령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조사해 보면 돼요. 그 성령께서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임하시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승천하실 때 말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이에 누가 오셨냐하면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이 오셨는데 예수님이 그 때 무슨 몸이 되냐 하면 바로 낮은 몸이 되셨어요. 몸이 낮아졌어요. 낮은 몸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 뭐냐, 말씀이고 다른 말로 하면 뜻이죠. 예수님의 낮은 몸을 가지고 아버지 뜻을 이뤄야 돼요. 낮은 몸을 가지고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누구를 보내셨습니까? 성령을 보내셨죠. 그러면 성령의 목적이 뭐예요? 아버지의 말씀과 뜻을 어떤 몸을 가지고 이룬다? 예수님의 낮은 몸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아버지의 뜻과 말씀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잖아요. 정답을 미리 봅시다. 빌립보소 4장 12절 다 같이 읽어 봅시다.
빌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도바울이 이야기 하는 거 같은데 먼저 선수 쳐서 이 일을 하신 분이 있죠? 누굽니까? 예수님이잖아요. 성령의 목적은 우리의 소원 들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누구 뜻대로? 아버지 뜻대로 해달라고 했죠. 성령께서는 아버지의 뜻만 낮은 몸에 적용 시키면 성령님은 할 일 다 했어요. 우리가 떡 맛있게 먹는 게 뜻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거예요. 아버지 뜻대로 해서 성령께서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아버지의 뜻, 하나님의 뜻이 그 때, 예수님께서 성령이 오실 때 우리 인간들은 이 뜻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몰랐죠. 아까 그랬잖아요. 인간은 죄도 모르면서 죄인으로 살고 있고 의도 모르면서 착한일 하고 있고 율법도 모르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우기고 있고 인간이 아는 것이 뭡니까? 아무것도 몰라요. 유일하게 아는 분은 예수님만이 아실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을 이루는 것, 이것을 가지고 의 또는 하나님의 의, 다른 말로 거룩, 하나님의 거룩 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면, 모든 율법을 다 이루면 하나님의 거룩이 되는 거예요. 자, 물어봅시다. 예수님이 십계명을 이렇게 이루어줘야 의입니다 라고 우리가 알 수 있어요? 없어요? 우리가 예수님 이리 와 보세요. 예수님이 이렇게 해 줘야 의입니다. ‘아 그렇게 했구나! 의 맞구나!’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모두 오해고 착각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계명을 지켰다는 것을 관찰해서 예수 믿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예수님이 다 이뤘다는 것이 들어오게 되면 비로소 예수님의 의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다 이루심 안에서 아, 이런 성경이 이런 식으로 다 이룬 것 맞구나 하고 우리가 확인 할 뿐이에요. 그런데 그 의는 뭔가 하면 잘 들어보세요. 오늘 제일 중요한 겁니다. 졸면 안 됩니다. 의는 뭐냐 하면 이웃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이웃사랑은 원수를 사랑하는 거예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이 성전에서 이루었잖아요. 그 이루는 대상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원수는 누구에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우리가 원수잖아요. 그러면 우리에게 편지가 왔는데 뜯어보니 예수님께서 ‘아무개야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런데 이것이 다 이루었다. 예수님으로부터 끝. 추신: 이제 더 이상 네가 이룰 수 있는 의는 남아 있지 않다. 끝.’ 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그 편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졸지에 하나님의 의가 되는 거예요. 이 의는 내가 이룬 의입니까? 예수님이 이룬 의입니까? 예수님이 이룬 의죠. 그러면 성령의 하는 일이 뭐냐 하면 우리가 주의 일을 새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홀로 다 지키신 그 의를 성령께서 우리에게 줄때는 그냥 은혜로 공짜로 주시는 거예요. 왜? 뭣 때문에? 주님께서 이웃사랑의 값을 하신다고 이웃사랑의 자기 숙제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 누가 필요합니까? 사랑받아야 될, 이웃사랑을 공짜로 받아야 될 우리가 주님한테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거예요. 막 도망가면 잡고 ‘놓으세요.’ ‘네가 있어야 내가 숙제를 다 할 수 있어’ ‘저는 뭐 할까요?’ ‘너는 할 것 없어. 내가 다 이룬 것을 퍼부음 받기만 하면 돼.’ 라는 희한한 괴상망측한 이 일, 이 말도 안 되는 일, 그 의 때문에 천국 간다는 일을 오직 성령 받은 사람만 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낮은 몸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스런 몸이 되어야 할 때는 뭐가 있어야 합니까? 낮은 몸이 돼서 그냥 영광스런 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이 안에 예수님의 공로가 필요하고 예수님의 율법 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