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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00702a 울산강의-출애굽기 12장자유게시판출애굽기

20100702a 울산강의-출애굽기 12장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48)

20100702a 울산강의-출애굽기 12장

(강의:이근호 목사)

출애굽기 12장 12절에 보면, “내가 그 밤에 애굽 당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서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돼 있잖아요. 하나님께서 신이면 신하고만 상대하고 치는지 아니면 사람이 미우면 사람을 치든지 해야 되는데 다같이 치느냐 하는 겁니다.

그 이유는 상당히 복잡한데요. 우선 무엇부터 알아야 하느냐 하면, 고대인들이 하나님과 신 사이에 중간에 뭐가 있다고 생각 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 여기 있다, 나 여기 있다 그럼 그 중간에 뭐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까? 옛날 두레박이 오든지, 산신령이 오든지 뭔가 신과 우리 사이에 뭐가 있어야 하느냐 하는 겁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 헬라 시대에는 누가 오느냐 하면, 신은 안 보이잖아요. 신과 인간 사이에 뭐가 있느냐 하면, 인간으로서 최고의 경지를 보일 수 있는, 인간이라면 이 정도 돼야 최고 인간형이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배치해서 신의 요소를 결합시켰습니다. 이게 바로 영웅들이에요. 이 영웅들이 곧 신이 되는 겁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영웅이 있어서 우리가 해내지 못하는 걸 잘 해내는 그런 영웅적인 인물이 있다 이 말이에요. 이것은 창세기 10장에도 나오는 이야기에요. 내피림, 당대의 영웅이라 하잖아요. 신은 안 보이고 영웅이 보이니까 멀리 계시는 신이 영웅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거예요.

그럼 영웅과 인간 사이에 또 뭐가 있겠습니까? 영웅은 대단한 사람이거든요. 헤라클레스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란 말이죠. 우리가 대단한 사람 되고자 하는 것도 힘들잖아요. 너무 대단하기 때문에.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인간과 신 사이에 결혼해서 반 인간, 반 신. 인간과 신 사이 결혼해서 낳은 인간의 허접스러움도 있고, 신의 괜찮은 면도 있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이미 영웅적인 신을 신봉하는, 옛날 사람들은 하여튼 영웅적인 신을 신봉해요. 이만한 것도 신께서는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고 이 정도 지점에서 왔으니까 가까운데 이 가까운 것도 더 가깝게 하려면 영웅과 인간 사이에 진짜 인간적인 면도 들어있고, 영웅적인 면도 들어있는 그런 사람을 배치한다면 그 신은 위쪽에서 점점 더 가까이 오겠지요.

이렇게 신이 손에 잡힐 정도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손에 잡힐 정도가 돼버리면 다같이 신을 믿어버리면 이게 뭐가 되느냐 하면, 권력, 권력이란 집중력이거든요. 집중화라 하는데 뭔가 중심으로 끌어 모으는 거예요. 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끌어 모을 수 있게 되겠지요. 박지성이라면 박지성 싫어하는 사람 봤습니까? 그 사람이 종교가 불교든 뭐든 관계없이 다 좋아하잖아요. 박지성 축구를 동네 애들이 할 수 있습니까? 못 하잖아요. 상당히 영웅적인 거죠.

영웅적인 거기 때문에 인간이 나는 못 하지만 축구라면 저 정도는 돼야지? 뭔가 되고 싶은 것. 별, 스타가 돼요. 누가 우리 가운데서 새순교회 인물 다 좋습니다만 만약에 뛰어난 인물이 다음주에 누구 하나 등록하는데 남자가 너무 잘 생겼어. 초콜릿 복근에다 키가 180이고 너무 잘 생긴 사람이 왔다면 사람들은 쳐다보게 되고, 거기서 어떻게 저 사람은 나보다 저렇게 예쁘고 잘 생겼나. 그걸 어려운 말로 잉여, 내가 못하는 여분의 것을 혜택을 더 받은 쪽을 잉여, 넘치는 거예요. 신으로부터 넘치는 요소의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하나의 그쪽에 집중하게 되고 권력이 되고, 그 나라가 그 집단이 평정을 찾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면 물어봅시다. 세상 사람들은 신과 인간 사이에 영웅을 집어넣어서 영웅을 통해서 하나님의 면면,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 영웅의 행동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파악한다는 거죠.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인간 사이에 뭘 주십니까? 그만큼 성경공부를 많이 했으니까 알아차려야 되는데. 자꾸 물으면 미안하니까 정답을 미리 이야기해서 모르는 것은 안 들키도록 해드릴게요.

12장 15절에 보면, “너희는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 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이렇게 돼있어요. 뭘 집어넣느냐 하면, 무교병을 먹어라. 또는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라.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우리는 영웅이 보고 싶은데 진짜 하나님처럼 살아가는 사람 ‘아이고 부러워라.’ 우리가 기대하는 것,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중간에 집어넣고 싶은데

하나님은 그게 아니고 ‘네가 딱딱한 떡을 먹어라. 그리고 어린양을 잡되 피가 핵심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식으로 잡아라. 못 먹는 피 버리지 말고. 피가 우리를 살렸다.’ 하는 피를 강조하는 식으로 잡아서 그 피를 너의 삶에 너의 인생의 전부를 대표하는 식으로 하나님 앞에 마중 나가라. 너희를 찾아오는 무서운 하나님을 마중 나갈 때는 네 것 가지고 나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어떤 법칙으로 나가는데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환영하고 영접하라. 그렇게 나가더란 말이에요.

얼마나 이게 이상합니까? 이 일이 너무 이상하기 때문에 오늘날 복음을 믿는 기독교 신자들도 한국교회 자체한데 이단 소리 들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 와서 영웅을 원한다고요. 큰 바위 얼굴. ‘우리 교회 영웅 없나?’ 하는 순간에 자기가 교회에 중심이 돼있고, 영웅이 돼있고. 그런 식으로 우리 교회 기둥을 장려하고 버틸 수 있는 영웅적인 사람을 양성하는데 교회가 힘을 다 쏟는데

거기에 비해서 진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무교병을 먹어라. 희한한 이야기죠. 양을 잡되 피를 앞장세우면서 피만 뽑아내면 다른 것 어떻게 되도 괜찮아. 피가 중요해. 피를 부각시키고 드러내는 식으로 양을 잡아라. 이런 식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걸 집어넣어버렸단 말이에요.

그러니 이건 양 잡고 무교병 먹어도 그 의미를 모르게 되면 아무 소용없는 거예요. 왜 양을 잡아야 되는지, 왜 무교병을 먹어야 되는지 의미 없단 말이죠. 그럼 그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했느냐? 여호와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애굽에서 종 되었던 너희를 끄집어내고 첫 번째 계명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해서 인간들이 생각하는 하나님과 진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그걸 늘 인정하는 식으로 살아가야 내 백성이라는 겁니다. 그걸 모호하면 구분 안 되면 내 백성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기존의 인간들의 신은 어떻습니까? 인간과 신 위에 영웅을 두는 거예요. 영웅이라는 것은 반쯤은 인간적인 요소가 있고, 반은 하나님의 요소가 있어서 그 특징은 내가 되고자 해도 안 되는데 유독 그 사람만 홀로 갖고 있는 것. 아까 박지성 이야기했지요. 박지성, 메시 이런 사람들. 축구선수들한테는 그 사람들이 영웅이에요. 탤런트나 이런 사람들한테는 박용하가 영웅이라니까.

언제 저렇게 사업하고 인기 있고. 지금도 이름 없는 연예인 안 많습니까? 무명 가수가 수천 명이 넘는데. 히트하고 장윤정이 돈 벌면 영웅이 되는 거예요. 부러운 거예요.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겹쳐서 보는 거예요.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되고 싶은 영웅을 겹치는 겁니다. 이건 창세기 10장에 나온다 했지요. 당대의 영웅이라고 나온다 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여호와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쪽 애굽에 있는 신을 죽이는데 신을 무엇과 더불어 죽입니까? 인간이든 짐승이든 첫 번째 태어난 자식이나 짐승과 더불어 애굽의 신을 겸해서 죽여 버리죠.

그렇다면 인간이 영웅이 되고자 한다는 것은 결국은 이 관계는 혈육적 관계에요. 혈육적 관계에서 제일 대표적인 사람은 맏아들이에요. 사람이 둘째 아들 잘 되고, 셋째 아들 잘 되는 건 별로에요. 맏이가 잘 돼야 제사도 잘 드려주고, 맏이가 잘 돼야 집안이 삽니다. 맏이는 아비의 기대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뭐냐 하면, 인간적인 자기 혈육, 맏이 중심인데 창세기 3장부터 누구 맏이에요? 가인이 맏이에요, 아벨이 맏이에요? 가인 자체가 인간성이 이상한 놈이 등장해서 멀쩡한 동생까지 죽였잖아요. 이미 맏이가 하나님의 뜻을 반영을 못해.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하질 못해. 맏이 자체가 악 덩어리에요. 죄악 덩어리고. 악마도 마귀 덩어리에요. 이것은 혈육을 대표하는 자가 마귀의 종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것은 바로 새롭게 나타날 하나님과 인간들이 알고 있는 섬기는 하나님하고 완전히 서로 적대적 관계, 대적 관계고 원수관계에 돌입돼있다는 겁니다.

가인이 제사 안 드렸으면 아무 일 없어요. 가정 화평했습니다. 가인이 제사를 안 드렸는데 아벨이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이 받았다? 뭐 아무 일 없어요. 그런데 가인이 제사 드리고 아벨은 제사 안 드렸으면 집안에 아무 문제없습니다. 가인이 제사 드렸는데 하나님이 받으시면 가정에 아무 문제없어요. 가인 드린 제사 받고, 아벨 드린 제사 받아도 가정에 아무 문제없습니다. 지금 아무 문제없는 경우가 열 가지가 더 돼요.

그런데 아다리, 딱 하나. 가인의 제사를 받고, 아벨의 제사 받았으면 아무 문제없는 것을 그리고 가인의 제사 안 받고 아벨 제사도 안 받아도 아무 문제없어요. 하나님께서 그 집안에 관여했다는 게 무서운 이야기에요. 그것도 진짜 하나님이. 가짜 하나님 같으면 아벨 제사 넙죽 받고, 가인 제사 넙죽 받고. 제사 지내는 이 혈육에 아무 문제없습니다. 오케이 정상입니다. 가짜 하나님은 항상 우리 가정이 정상이고, 이 세상이 정상이고, 인간들 세계는 지금 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항상 위로 하고 격려하는 겁니다. 힘내라 힘. 아빠 우리가 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만 개입하면 문제에요. 우리는 영웅 되기를 원하는데 영웅과 신을 한꺼번에 다 작살내 버립니다.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인간의 자식과 신이 한꺼번에 작살나고 하나님의 심판 받는다는 말은 이스라엘 쪽에서 자기들이 의논해서 아이디어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신과 인간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없단 말입니까?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깜짝 놀라는 거예요. 저들의 자식이 죽고, 저들의 신이 죽는다면 우리가 진짜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없는 걸 어떻게 가게 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뭘 우리한테 요구하느냐 하면, 저 애굽 사람들이 왜 깨지는지 네가 수긍하나, 인정하나? 그것만 요구합니다. 쉽게 예를 들게요. 나도 회사 차리고 저쪽도 회사 차렸다. 회사 잘 되라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선 우리의 기도, 저쪽 기도 안 들어줘요. 기도는 안 들어줘도 관여는 하셔요. 이것 아주 중요한 말인데 그냥 무심코 나와 버렸는데.

우리가 기존교회는 철야하고 하지만 보통 철야는 안 하잖아요. 우리는 왜 하느냐 하면 관여하는 걸 믿기 때문에 안 하는 거예요. 기도를 하나, 안 하나 관여는 하시는 거예요. 아벨과 가인에 관여하듯이. 그런데 우리가 진짜 백성인 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이겁니다. 하나님께서 저쪽 회사를 망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저쪽을 망하게 하고 우리한테 와서 묻습니다. 저쪽이 확실하게 망해도 마땅한 걸 인정하나? 벌벌 떨면서 인정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주의 백성이에요. 이게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취미가 희한하지요. 남 망하는 것, 남 지옥 가는 이유만 알면 그게 곧 천국 가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우리 나름대로 ‘하나님 저쪽이 망하게 한 걸 바랐습니다. 나는 이런 포부가 있고, 이런 기대가 있는데 남은 망해도 나는 이런 기도를 해야죠?’라고 뭔가 요구조건을 하게 되면 작살나는 저쪽이나 이쪽이나 똑같은 인간들이에요. 저쪽은 그런 식으로 기도 안 하는 줄 압니까? 다 남은 못 돼도 나는 잘 되게 해달라고 했을 건데. 정말 구원받은 사람은 남이 망하는 걸 고소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들이 망하는 요소가 엄연히 나한테도 있는 거예요.

그럼 나한테도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다같이 망해도 되는데 왜 저쪽은 망하고, 안 망하게 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요소, 신과 인간 사이에 중간에 중보인으로 주신 그 약속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그 약속이 마땅히 저주받아야 될 우리를 카바하고 있는 겁니다.

어제 하나교회에서 강의하면서 이런 예를 들었거든요. 밥이 이렇게 있어요. 밥을 뚜껑으로 덮지요. 두 번째는 이걸 보자기를 덮는 거예요. 밥이 뭐냐? 죄입니다. 죄는 육에서 나와요. 내 자식 최고 아닙니까. 항상 애굽을 생각해야 돼요. 여기서 내 자식 잘 되기 위한, 내 가문이 잘 되기 위한 영웅적인 신을 믿었고. 육이 있는 우리 몸이 있는 이상은 죄는 계속 나오는 거예요. 이걸 명확하게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라고 죄 안 나오는 게 아니에요. 눈만 뜨면 죄가 나와요. 왜? 육은 원래 죄 냄새를 풍기게 돼있어요. 그리고 이 육은 마귀가 항상 유혹해서 육은 마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 아래 있어요. 악마의 능력 아래 있습니다. 왜냐? 육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런 식으로 하면 애굽이 되는데 여기에 보자기가 덮여요. 하나님의 의, 한 사람의 의로움이, 예수님의 피가 보자기를 덮어버리면 이 모든 죄는 그대로 나오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계속 침투하게 돼있어요. 죄 없는 곳에 은혜가 필요치 않습니다. 은혜가 등장했다는 말은, ‘죄 갖고 나와.’ 이런 뜻이에요. 있는 죄 다 갖고 나와.

마치 엘리야가 과부한테 밥그릇, 냄비 다 가져와. 참기름 다 채워줄게. 하는 식으로 빈 그릇 가져오면 무조건 다 채워주는 거예요. 그때 가뭄 난 이유가 뭐냐? 이스라엘이 저주받아 가뭄 났거든요. 가뭄을 안 일으키고 그러니까 기근이 없이 은혜를 주는 게 아니고 기근은 기근대로 마귀로 하여금 저주받게 해놓고 거기에 찾아와서 그 많은 과부 있는데 사렙다 과부한테 찾아와서 보자기 은혜를 덮어주는 거예요. 그것도 계속이 아니고 삼년 육개월 동안만.

그래서 진짜 성도는 뭐냐 하면, 여기 애굽이잖아요. 애굽만 애굽이 아니고 우리도 애굽이에요. 이스라엘이 그냥 멍청하게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죽어야 될 장자를 위해서 어린양의 피를, 같은 식구, 어린양이 장자를 대신하니까. 어린양이 장자를 대신하고 장자는 자신의 미래를 대신하고. 장자 죽어버리면 가문이 끊어지니까. 여자는 시집가면 그만이지만.

그래서 이 아들과 아버지와 혈육을 전부다 이게 애굽이거든요. 애굽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그대로 유지하면서 은혜로, 어린양의 피로써 이렇게 이것을 하는 이것이 신과 인간, 인간과 신 사이에 하나님 쪽에서만 들이민 겁니다. 이걸 나중에 언약화시켜요. 언약을 만들고 여기 제사 나오고 여러 가지 법이 들어가는 거예요. 이걸 중심으로 언약으로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신을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앞장세워서 이해한다는 겁니다. 애굽을 통해서. 여기에 하나님께선 둘째아들, 셋째 아들 죽이는 게 아니고 애굽의 장자를 죽이잖아요. 짐승의 먼저 태어난 것, 신. 신과 인간들이 생각하는 장자와 연관이 돼있어요.

아들을 죽인다는 말은, 아들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아들 배후에는 반드시 무엇 때문에 아들이란 개념이 성립하느냐 하면, 앞에 아버지가 있을 때 아들이 있잖아요. ‘너 누고?’ 할 때 ‘누구 집 아들입니다.’ 할 때 누구 집은 아버지 쪽이고 아들이잖아요. 아들과 아버지에 대해서 누가 관여합니까? 하나님께서 관여했지요. 기도하지 않아도 관여합니다. 좋은 말 한다. 관여할 때 반드시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 관여하는 거예요.

그래서 애굽의 장자를 죽인다는 것은 모든 육적인 인간은 다 죽인 겁니다. 거기에 이스라엘도 죽여 버립니다. 남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 관계인데 이 아버지가 그전까지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였고, 애굽의 아들이었는데 이 아들을 이런 일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아들로 삼겠다 이 말입니다. 이 말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누굴 통해서 나타난다? 아들을 통해서 등장하는 거예요.

그리고 어린양도 무엇과 연관돼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입장에서 어린양이 등장할 것이고, 무교절 지키라는 그것도 아버지를 증거하기 위한 아들의 임무, 장차오실 예수님이 해야 될 기능과 관련된 무교절이 되는 겁니다. 장차오실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미리 참여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장차 예수님 기능을 지금부터 유월절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아까 목사님들 하고 식사하는데 박용하 장례식하는 게 나왔었어요. 제가 이런 이야기했습니다. 이 세상은 아직까지 본 게임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니면 마귀 자식이냐 하는 것은 본 게임이 있는데 그건 죽고 난 뒤에 본 게임 되는 겁니다. 천국 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지옥 가는 사람은 마귀 자식이 되고. 본 게임이 남아있는데 박용하란 사람은 아직까지 몸 풀다 갔어요.

월드컵 하는데 하기 전에 먼저 연습하잖아요. 휘슬 불고 본 게임 들어가는데 공차고 연습하는데 공 자기한테 안 온다고 자살한 거예요. 우리가 지금 보이는 것은 잠간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울산이든 대구도 마찬가지고. 왜 현대인들이 본 게임 하지도 않았는데 지금 예고 게임에 벌써 좌절하고 나빠지고 하나님 원망하고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직 본 게임 시작도 않았어요. 내 신분이 누구 아들이냐 드러나는 것은 죽고 난 뒤거든요. 물론 예수 믿는 사람은 미리 알지만.

짧은 안개 같은 순간에 불과한 인생에서 이런 일, 저런 일 생기는 것 봐야 다 연습 게임입니다. 이런 일도 생기고, 저런 일도 생기네. 하지만 구원 받은 천국 가면 신분이 고정되고 모든 환경이 고정되면 더 이상 아픈 것도 없고, 우는 것도 없고, 사기꾼도 없고, 부동산 등 처먹는 것도 없고, 이단 목사도 없을 것이고. 하지만 그전에 눈물 흘릴 날도 있거든요.

하지만 이거는 어디까지나 본 게임에 들어갈 연습 게임, 예비 게임에 불과한 겁니다. 그곳에다 자기를 투자하고 거기다가 자기의 모든 걸 걸고 이거는 정말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간 어리석은 짓입니다. 길어봐야 백년 아닙니까. 링거 맞아봐야 구십년 가고, 백년 가잖아요. 그것 빼버리면 그냥 팔십 되면 가잖아요. 그건 사소한 일이에요. 그것 가지고 인생을 잘 사니, 못 사니 따지만 안 됩니다.

하여튼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유월절 통해서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은 영웅이 아니고 자기 아들 앞장세워서 우리를 하늘나라에 데려간다는 사실을 저쪽의 아들을 침으로서 우리에게 알려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전쟁은 신의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니면 인간들이 내세우는 너희들이 말하는 신과 인간 사이의 영웅들이냐 아니면 내가 제시하는 아들이냐의 싸움이거든요.

그 아들과 아들의 싸움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뭐라 합니까?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다. 그것도 어떤 때는 내 장자라 하죠. 이스라엘과 싸우려거든 너희 장자 내놔라. 이쪽 여호와 장자야. 여호와 장자들이여 힘내라. 저쪽의 장자 내놔라. 어느 장자가 세다는 것은 어느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냐 결판내자, 결정내자는 거예요.

정말 신기합니다. 하여튼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줄 어떻게 알겠어요. 나중에 이 아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 아들이죠. 여호와의 이름이 아들에게 임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이니까 아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움직이는 거예요. 아들은 예수님이지만 그전까지는 누구라 했습니까?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감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움직여요. 반면에 애굽이나 이방사람, 주변 사람들은 자기들 이름으로 하죠. 인간 대 하나님과 싸우면 하나님이 이기죠.

그걸 갈렙은 믿었고 여호수아는 알았던 거예요. 그래서 저 가나안 땅에 장대 같은 사람이 있더라도 어디까지나 그들은 신이 아니고 그냥 인간에 불과하고. 우리 이스라엘은 인간으로 보이지만 실은 누구 이름으로 움직인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움직이는 거예요. 남들 불교에서 인간의 이름으로 기도하지만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잖아요.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잖아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못 살지만, 그런 애로사항이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축복입니까? 내 마음대로 살면 넓은 길로 가고 지옥 가는데요.

세상 사람은 신과 인간 사이에 자기들의 행함으로 새삼스럽게 믿어야 될 것이 오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는 이스라엘이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무교병 먹으면 구원받지요.’라는 생각을 이스라엘 사람이 끄집어낸 적이 없어요. ‘어린양을 말라볼까, 염소를 말라볼까, 소 피를 받아볼까?’ 이런 걸 의논한 적 없습니다. 이 말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 되기로 작정된 겁니다.

그래서 하나교회에서 했던 그 부분을 조금만 해보겠습니다. 시작이요 끝이요, 알파요 오메가란 말이 요한계시록에 나오죠. 만약에 시작이 없다면 끝도 없는 거예요. 끝이 있다는 말은 반드시 짝이 되어 시작이 있기 때문에 끝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만 알면 안 돼요. 시작과 끝이 있다 할 때에 시작한 이 요소가 시작만 하고 끝나 버립니까? 아니죠.

시작할 때 그 안에 정보가 들어있어요. 끝으로 지향할 수밖에 없는 끝으로 밀어붙이는 그러한 원리가 있지요. 이 원리는 중간에 인간들이 손대면 달라집니까? 인간이 행함으로 아무리 달려들어도 마귀가 달려들어도 이건 안 달라지요. 이것은 창세전에 이미 야곱은 사랑받기로 작정돼있고, 에서는 미움받기로 작정된 원리가 그대로 에서나 야곱의 어떤 행위에도 방해받지 않고 그대로 쭉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뭐라 하느냐 하면, 종말이란 말은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이다. 여러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기분 좋습니까, 기분 나쁩니까? 기분 좋아야 돼요. 왜냐하면 그 돌이킬 수 없다는 내용이 무엇입니까에 우리는 궁금해야 돼요. 돌이킬 수 없는 내용이 너는 이미 창세전부터 사랑받기로 돼있고, 에서는 지옥 가기로 돼있다는 점을 에서가 안다 할지라도 돌이킬 수 없는 거예요. 왜? 우리는 끝을 향하여 가고 있기 때문에.

못 생긴 사람이 거울 보니까 자기가 못 생겼거든요. 그러면 거울 깨면 잘 생겼습니까? 인간의 선택은 거울 깨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인간의 모든 선택은 실제보다도 환상을 좋아해서 인간의 선택은 환상이다. 그런 걸 하나교회에서 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선택은 거울을 보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그리는 것을 도화지에 그리는 그게 인간의 선택입니다.

자기 자식이 공부 잘하기를 여러 가지 선택하죠. ‘우리 애는 공부 잘해야 돼.’ 그래서 선택을 하죠. 뭐도 가르치고, 뭐도 가르치고. 그런데 애의 타고난 역량이 안 되는 걸 어떻게 해요. 그대로 밀어붙이는 거예요.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역할을 해야 되려면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주신 창세전의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있으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육이거든요. 육은 모든 걸 환상이라 하죠. 인간의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기 때문에 욕심이 가득해서 못한 걸 쥐어박기도 하고 나무라기도 하면서 그 변동사항, 공부 못한다는 것을 공부 잘하는 쪽으로 바꿔보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창세전에 예정된 대로 서울법대는 못 들어가고 서울대 경영대밖에 못 들어가고 서울대 의대밖에 못 들어가는.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은 무저갱에서 나오기 때문에 무저갱에서 권력이 나옵니다.

70이레 논문에 대해서 오 목사님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자기가 죽으려고 했는데 70이레 논문 나오고 난 뒤에 이것 알고 죽어야지 못 죽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죠. 평생 해봐야 아는가?

70이레 논문이 진짜 무지무지 어렵습니다. 왜 어려우냐 하면, 권력이 어디서 나오는가? 권력이 짐승에서 나오거든요. 권력이 짐승에서 나오는 그 경위, 그 절차도 알아야 되고, 권력이 하나의 국가가 되는 절차도 알아야 되고, 국가가 하나의 개인이 되는 절차도 알아야 되고, 이 짐승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도전하는 그 절차를 알아야 되고. 전부다 그 안에 다 들어있어요.

이런 복잡한 것 다 제거하면 권력만 남아요. 지상에서는 짐승은 보이지 않으니까 바다 밑에 숨어있으니까 나타나는 것은 뭐밖에 없느냐? 권력이에요. 그러면 모든 가정 치고 돈 힘, 세상 힘, 그 권력 추구하지 않는 집안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요. 그리고 어느 가정치고 울고불고 난리치는 이유가 무엇을 추구해서 그렇게 난리칩니까? 힘이에요. 돈, 자본의 힘 그리고 권력의 힘, 유명세, 인기 전부다 힘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게 뭐예요? 힘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힘 있는 나의 제사 안 받고 나한테 얻어맞는 저 인간 제사는 왜 받느냐 이 말이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걸 안 받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뭘 추구한다? 너 같은 힘을 추구하는데 그 힘이 가인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고 가인을 잡아먹기 위해서 노리는 짐승의 권력을 가인이 수용했고, 아벨은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제물에 담아서 그냥 보이는 거예요.

가인, 아벨부터 벌써 예수님하고 악마와의 싸움은 시작된 겁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은 벌써 개시됐어요. 왜? 시작이 있으면 끝을 향하여 돌이킬 수 없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거예요. 이거는 중간에 호남선, 전라선 열차노선 탈선 이것도 안 돼요. 그냥 가는 거예요.

무교병, 누룩 없는 떡을 먹어야 되는 내력을 아는 사람과, 어린양의 피를 발라야 되는 그걸 아는 쪽과, 하나님 아들 쪽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는 쪽과 그렇지 않고 밥 있고, 뚜껑 이것만 달랑 있는 쪽과 밥 있고 뚜껑 있고 그걸 보자기로 덮는 쪽과 그 싸움은 계속해서 재현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출애굽기 12장 15절 봅시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시작이고 나중이기 때문에 끝까지 유지하면서 계속 가는 겁니다. 유지하면서 시작된 정보가 유지하면서 끝의 내용이 점점 더 다채로워지죠. 온갖 변화가 있지요.

출애굽기 12장 15절. “너희는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하나님께서 어린양 피 발라서 그냥 넘어가면 그만이지 여기 무교병, 떡 재료까지 떡의 성질까지 이런 것까지 다 의도적으로 왜 먹어야 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왜 유교병을 먹어서는 안 되느냐 하는 겁니다. 만약에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그러면 이야기는 간단하게 풀렸습니다. 누룩이 있는 이스트가 있는 맛있는 빵, 유교병을 먹으라 이겁니다. 먹으면 이스라엘에는 안 넣어준다 이 말이죠. 그러면 아까 이스라엘은 누구 이름으로 행세한다? 하나님 아들의 이름으로 행세한다 했지요. 하나님의 아들로 행세하는 그 집단에 누룩이 있는 떡을 먹었다고 참여 못한다는 말은, 이제는 이스라엘의 확정된 성격 속에는 누룩이 없는 그러한 사람들의 집단이 되겠지요.

그런데 왜 누룩이 없어야 되느냐? 누룩이 뭐냐는 것 때문에 이스라엘도 모르고 아무도 몰랐는데 하나님 당사자가 알려주네요. 누룩이 죄에요. 그러면 누룩이 있는 떡을 먹지 말라는 것은 율법이죠. 그러면 율법이 추가적으로 나중에 주어지는 것은 장차오실 예수님께서 죄가 있는 사람은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방법이 율법이란 말이죠. 마태복음 5장에 일점일획이라도 다 이루리라 했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으려면 간단해요. 모든 율법을 이루시면 되는 겁니다. 모든 율법을 그것도 늘, 잊지 않고, 빼먹지 않고, 항상 언제나 다 지켜주시면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아이디어, 계획은 누가 세웠느냐고 물으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아버지와 아들 되시는 이스라엘 속에 계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세운 거예요.

여러분 요새 열매철이 됐지요. 포도나무 끝에 뭐가 맺힙니까? 포도가 맺히지요. 이 포도가 어떻게 맺히느냐 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포도나무 이야기할 때 이겁니다. 가지가 없으면 열매도 없는 거예요. 그럼 열매가 핵심입니까, 가지가 핵심입니까? 가지가 열매보다 앞선 원인이 된다는 거예요. 가지 끝에 있어야 열매가 맺힌다는 겁니다. 그럼 가지는 또 어디에 붙어있습니까? 포도나무 둥치에 붙어있겠지요.

이 말은 아버지와 아들하고 이미 확정된 것에 뭔가 유리 세공할 때 유리 녹인 물을 공예사들이 불면 대롱 끝에 유리제품 있지요. 하나님 아버지와 의논해서 불어주면 포도나무 끝에 열매가 맺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포도나무 열매는 누구 솜씨여야 한다? 하나님과 아버지 솜씨지 결코 열매 자체적인 솜씨는 아니란 말이죠.

그래서 말하기를 네가 가지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열매가 맺지 못한다 이 말이죠. 열매되라가 아니라 제발 가지 붙어있어라. 너 혼자 놀지 말고 좀 가지에 붙어라. 가지에 붙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내가 말한 열매도 아니다.

이 원리가 무교병을 먹지 말라는 원리에 있습니다. 무교병을 먹지 말라는 것은 누룩이 없어야 된다. 누룩이 없어야 된다는 것은 그냥 딱딱한 빵이란 의미도 있지만 장차 함께 하실 하나님 아들이 죄가 없으신 분이 우리에게 찾아와서 우리를 건져내는 거예요.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반드시 뭐가 개입되어야 우리는 구원받느냐 하면, 죄가 없으신 분이 오셔야 된다. 그런데 애굽에서는 힘을 자랑하잖아요.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좋다 너희들이 자랑할 게 뭐고?’ ‘우리는 힘 있다.’ ‘그래 이쪽에는 죄 없다. 죄 없는 것과 힘 센 것 하고 누가 이기나 보자.’

그때부터 이스라엘이 군대가 되는 거예요. 무슨 군대? 힘과 의의 군대. 힘과 의의 싸움을 붙는 이쪽은 하나님의 거룩과 의를 앞장세우고 저쪽은 인간의 육적인 힘을 앞장세우고 그 싸움이 벌어지잖아요. 신약 시대에서는 그 싸움이 어디서 벌어지느냐 하면, 우리 자체 내에서 우리 몸 성도 내에서 벌어져요. 이 안에서 3차 대전 막 퍼집니다. 어떤 사람은 3차대전 두렵다는데 3차대전보다 더 무서운 전쟁이 매일같이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어요. ‘주여 힘이 있어야 됩니다.’ 하면, ‘아닙니다. 의만 있으면 됐습니다.’

이 전쟁에서 생기는 것이 이번에 하나교회에서 했던 것, 교회는 ‘막’이다. 대치되는 힘, 두 세력이 마주치면 반드시 여기에 막이 형성됩니다. 여러분, 묵 같은 것 오래 놔두면 두꺼운 막이 생기죠. 교회가 뭐냐 하면, 이쪽은 권력을 추구하는 그런 악마들의 세력과 이쪽에선 하나님의 말씀, 창세전부터 있던 원리가 맞서다보면 자연적으로 막이 생기는데 막이 두꺼우면 안 돼요.

두꺼우면 막이 막 자랑한다고. 우리 교회는 완전한 교회고, 우리 교회는 복음적 교회고. 까불면 그게 권력이 돼요. 그러면 뻥뻥 구멍 뚫립니다. 구멍 뚫리면 여기서 주께서 용서로 땜질하기 바빠요. 용서해야 되고, 용서해야 되고. 용서 받은 그 순간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오죠. 사랑이 나오면 권력이 약간 물러갑니다. 물러갔다가 다시 우리는 역시 사랑 받은 거야. 또 교만하면 뻥하고 뚫죠. 이것이 무슨 교회냐? 이게 바로 일곱 교회. 까불다가 망한 거예요. 까불다가 얻어터진 거예요. 구멍 뻥뻥 난 거예요. 구멍투성이, 땜질 투성이. 그게 막이에요.

이 막을 부흥시킨다, 확장한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막은 양쪽 세력이 있을 때 성립하지 막을 따로 뽑아내질 못해요. 막을 따로 뽑아내면 여기 힘이 있어야 되는데 뽑아난 그 자체가 이미 악마에 속한 교회가 됩니다. 그러면 뽑아낸 이것은 교회를 위한 교회가 되죠. 원래 이쪽 세력은, ‘말씀만으로 족합니다. 말씀만 있다면 죽어도 좋습니다.’ 이거거든요. 저쪽은 ‘교회 없으면 나 죽을랍니다.’ 이렇게 나온다고. 이게 하나의 권력이 돼버린 거예요.

이런 싸움이 벌써 이스라엘이 했어요. 에서의 싸움과 야곱의 마주침, 이스마엘 계통과 이삭 계통의 마주침, 유다와 이스라엘의 마주침. 모든 것은 얇은 막으로 해당됩니다. 압살론의 공격과 다윗의 마주침 이게 전부다 이 막이 생겨요.

이 막을 구약에서 형성하면 생긴 것이 바로 언약입니다. 언약이란 필름을 뽑아내면 반드시 거기는 언약이 생기게 된 이유가 이쪽 악마의 세력도 설명해야 되고, 이쪽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도 같이 설명해줘야 언약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새 언약은 뭐로 돼있어요? 피로 돼있고, 찢겨진 살점으로 돼있죠. 왜 그렇습니까? 그만큼 시달렸다 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언약 세우기 위해서 뺨 맞고 채찍 맞고 시달렸는데 그냥 언약한다고 두 시에 다방에서 만나자. 이런 것은 시달릴 필요 없어요. 두 시에 다방에 앉아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주님의 언약 하려면 악마의 세력도 경험해야 되고 그것을 이겨낸 우리 주님의 하나님 아버지의 도우심도 있어야 되고. 이것이 막을 형성해서 그 막을 끄집어내보니까 온통 피투성이고, 창 자국이고, 못 자국이고 자기 백성을 위해 대신 죽으신 그 고난의 길이 그대로 새 언약으로 나왔다 이 말이죠. 이것이 한 마디로 말해서 십자가라고. 이 십자가를 증거한다는 것은 오늘날 이 시대도 똑같이 그러한 사정 속에 우리가 놓여있는 겁니다.

10분 쉬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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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7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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