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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34강-누가복음 6장43-45(나무와 열매)-luk100704자유게시판누가복음

034강-누가복음 6장43-45(나무와 열매)-luk100704

이름 : 오용익(IP:59.3.201.250)

034강-누가복음 6장43-45(나무와 열매)-luk100704-(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 누가복음 6장 43절에서 45절까지입니다. 신약성경 100페이지입니다.

누가복음 6:43-45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 보고 ‘열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보고 열매라고 하는 것은 ‘너 어디 소속이야.’라고 소속을 묻는 겁니다. ‘넌 찔레나무 소속이야, 가시나무 소속이야, 아니면 포도나무 소속이야, 무화과소속이야.’ 우리의 소속을 묻거든요. ‘너희는 무화과다. 너희는 포도나무다.’라고 직접 하나님께서 이야기했는데 다른 민족에게는 그게 없어요.

이스라엘민족한테만 ‘너희는 포도나무인데 포도나무 열매를 맺혔느냐.’라고 따지시고 ‘너희는 무화과나무거든, 그런데 어떻게 악한 무화과나무열매가 맺혔느냐, 이제 혼 좀 나봐라. 내가 너희들을 아예 곡소리 나게 만들겠다.’ 이렇게 하시더라는 말이지요. ‘열매를 내어봐라.’ 혹은 ‘네가 어떤 열매냐.’라고 묻는 것은 사실 인간적으로 들으면 기분 나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소속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어릴 때는 부모간섭 받고 어릴 때는 학교에 다니면서 선생님 간섭을 받잖아요. 그런 때를 참 좋은 시절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뒤돌아볼 때 그런 것이고 지금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학생들에게 ‘너 참 좋은 시절이지?’라고 하면 화냅니다. 빨리 어른 되고 싶어요. 왜냐하면 제발 간섭 없는 곳에서 살고 싶고 시험 안치는 세계에서 내 능력 발휘하는 세계에서 살고 싶은 겁니다.

내가 누구의 소속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는 괴로워 미치겠어요. 직장생활 좋지만 내 개인사업 하고 싶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안 받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여행가고 싶을 때 여행가고 가게 문 열고 싶을 때 열고 닫고 싶을 때 닫고, 누구의 간섭도 없는 채 내 왕국, 내 천국, 내 영역, 그것 하고 싶어요. 오죽하면 김밥 집 간판도 ‘김밥천국’으로 달겠습니까?

‘너는 누구소속이야?’라고 묻는 것이 천성적으로 우리에게 거부감을 유발시킵니다. 현대인에게는 특히 더 그렇지요. 어디의 열매라고 한다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열매라고 하는 것은 쉽게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우리 피부에 두드러기 나는 겁니다. 또는 제주감귤에 도돌도돌 돋아나는 것과 같은 거예요.

화장지에 표면에 올록볼록 튀어나오는 그 것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는 거예요. ‘볼록 튀어나온 것 가지고 네가 잘했나, 못했나.’ 보지 말고 너를 튀어나오게 만든 그 둥근 표면, 그게 어떤 표면이냐를 보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너를 지탱하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를 보는 거예요. ‘어디서 나와서 너로 하여금 살게 하는 힘이 나왔기에 네 입에서 그런 사고방식과 성격과 태도와 마음자세가 튀어나왔느냐.’ 그 말이지요.

‘어떻게 그렇게 악한 생각이 튀어나오느냐, 그것은 네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네가 제주 감귤의 표면같이 오돌도돌 튀어나오게 하는데 그것은 엄청난 악의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은 몸에 열기가 많으면 막 튀어나와요. 제 아버지도 그랬고 저 도 그 유전인자를 받아서 아프지는 않은데 막 튀어나온다고요.

‘열 내지 마라. 땀 내지 마라.’ 이것은 다 우리 손을 떠나버렸습니다. ‘자네는 별로 덥지도 않은데 왜 그리 땀을 흘려.’ ‘몰라, 태생이 그런 모양이지.’ 우리의 태생은 우리가 감당을 못합니다. 여러분, 감당할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저 자신의 본성을 감당할 뿐이고 그걸 참으면 나중에 폭발하는 수가 있습니다.

폭발하면 어떻게 되느냐, 33살 나이에 자살도 하고 그런 겁니다. 얼마나 눌렀으면 폭발하겠습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울산서 강의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월드컵 할 때 심판이 호각불어야 시작되는 본게임이 남았는데 본게임 이전에 그라운드 적응한다고 연습으로 공 툭툭 차거든요. 본게임 들어가기 전에 공 툭툭 치면서 컨디션조절하고 있는데 그게 우리 짧은 기간의 인생입니다.

이 짧은 인생은 본게임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냥 연습게임이에요. 본게임은 천국 가서 영원히 복락을 누리고 또 다른 쪽은 지옥 가서 영원한 저주받는 것, 아르헨티나의 경우처럼 4대 빵으로 져서 자기 국민들로부터 욕 실컷 얻어먹는 것처럼 영원히 승자와 패자로 갈라지는 그것이 본게임입니다.

본게임은 끝이 없어요. ‘영원히’입니다. 그 전에 툭툭 맛보기로 공차는 이것이 길어봐야 90년입니다. 요양병원 가고 링커 꽂으면 좀 더 가겠지요. 인생이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그런데 이제 33살 먹은 인간이 인생을 뭐 안다고 본게임도 들어가기 전에 연습게임에, 짧디 짧은 안개 같은 인생에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자하고 모든 돈과 자존심과 체면을 거기에 다 쏟아 붓고 자기 뜻대로 안되니까 죽어 버리고.

그게 뭔데요.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지나가면 시간이 해결하는데, 지나가면 ‘그때 괜히 흥분했지. 내가 왜 그렇게 그때 흥분했지?’ 그렇게 되잖아요. 돈 한 10만원 사기당해 보세요. 당장 그때는 죽고 싶을 거예요. 그러나 나이 한 80넘어서 20대에 돈 십 만원 떼인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에취, 하고 기침한 것 밖에 안돼요.’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그것에다가 세상 사람들이 온통 거기에 매진하고 돈 투자하고 인생 실패 했니, 성공 했니, 그것 가지고 동창회 나가서 견주니까 거기에 그만 휘말려서, 말씀은 보지도 않으면서 말씀에서 멀어지니까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나도 내가 얼마나 뛰어난 가’ 한 번 해보겠다고 쓸데없는 경쟁에 나서서 혼자 좌절하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그런 겁니다.

열매라는 것은 나무가 훅 하고 불어주면 생기는 것이 열매에요. 열매는 나무 따로 열매 따로가 아니라 열매의 속성과 성질을 드러내기 위해서 외부에 나타나는 것이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열매로 본다는 것은 참 고맙게도 우리를 쥐고 닦달내지 않는다는 겁니다. ‘똑바로 하란 말이야.’ 우리보고 나무라지를 않아요.

우리는 그냥 나무자체가 잘못되어서 나온 뾰루지예요. 그냥 뾰루지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보고 닦달내고 우리보고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너는 비켜봐. 네 배후에 엄청난 놈이 있어. 괴물 있어. 괴물.’ 우리 배후에서 우리를 사주하고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강력한 힘, 우리고 벗어나지 못하는 강력한 힘을 겨냥해서 싸웁니다.

그것이 바로 뱀이라고 하는 악마입니다. 원래 이 세상의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 아니고 여자의 후손되시는 그리스도와 뱀인 악마의 싸움터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튀어나온 뾰루지에요. 우리는 지금 놀아나고 있는 겁니다. 먼데서 보면 지구가 둥급니다. 달에서 보면 지구는 그냥 둥근 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집의 골목을 보세요. 그게 둥글게 보이는가, 그것이 세상의 전부처럼 보이잖아요.

아까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제주감귤의 표면처럼 그 감귤의 속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어서 그 연장으로서 떨어지지 않는 그 확장으로서, 악의 확장으로서 돋아난 것이 우리 자신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지배하고 있고 우리를 무섭게 하는 그 힘이 하나님 보시기에 저주받는 힘이고 악마라면 당연히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도 당연히 저주받게 되어 있어요.

저주받는 우리의 운명을 우리 손으로 바꾸어보려고 시도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이 성경은 헛 읽은 겁니다. 여러분, 저주받습니까? 그냥 놔두세요. 그냥 놔두셔야지 괜히 내 인생은 이렇게 있다가는 저주받겠구나 싶어서 설쳐대면 거기서 어떤 생각들이 자꾸 유입이 되면서 쏟아지느냐하면 ‘네 인생은 네가 하기 나름이다.’라는 것이 자꾸 유입이 돼버려요.

그러면 우리는 열매라는 생각은 없어지고 나 혼자라는 ‘단독자’가 되어버립니다. 믿을 놈은 나 밖에 없어요.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한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교회에서 백날 믿어도 자기가 자기를 믿는 식이 되는 거예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겁니다. ‘네가 성경을 제대로 해석했는가.’를 측정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 ‘네가 하나님 믿는 것하고 네가 너를 믿는 것하고 어떻게 구분하느냐?’ 그걸 묻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 믿습니다.’ 하고 ‘내가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진 나를 믿습니다.’ 하고 그 차이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내가 하나님을 믿는 나를 믿는 것과 어떤 차이가 나는지. 그것이 구분이 안 되면 결국은 모호해져 버립니다.

열심히 교회 나오고 헌금도 해보고 애써보다가 ‘아이고, 20년 믿어도 안 되더라.’ 하고 나자빠져 버려요. ‘열심히 나름대로 해보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안도와주네. 하나님이 안받쳐주네.’ 하고 나자빠져버려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하면, 만약에 내가 내 믿음을 믿어버리면 나는 내 자체가 열매가 아니고 나는 어디의 소속도 없고 내 인생은 나 자체로서 내가 알아서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어떤 사태, 사건을 일으켜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흔들어버려요. 그게 뭐냐 하면, 이 성경 말씀입니다. 어렵게 갈 것 없어요. 쉽게 갑시다. 성경 말씀을 주셨습니다. 거기에 보면 ‘하라’와 ‘하지 말라’가 나옵니다. 한 번 해보라는 거지요.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해보고 하라고 하는 것은 해보라는 거지요.

해 봐서 만약에 내 믿음 내가 관리하고 내 믿음 내가 챙겨서 내가 챙긴 믿음가지고 내가 구원받는다면 이 말씀대로 되는지 한 번 해 보라는 말이지요. 하다하다 안 되면 나중에 성경 덮어버립니다. 되지도 않는 책 봐야 소용없다고 하면서 자포자기 하고 나자빠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이성경책이 얼마나 좋은지 하나님 믿은 적 없고 그저 하나님 믿는 척 하고 있는 나를 믿는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발각되도록, 전혀 애초부터 하나님을 믿은 적이 없다는 것을 발각되도록 하는 책이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성경책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어떤 열매냐고 물을 때에 성경을 덮어놓은 채로 아예 안본 사람이라면 자기가 어떤 열매가 되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질 이유도 없고 가질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누구의 열매가 되어야 해.’ 이것은 성경을 봐야 그것을 요구받게 되어있지 성경을 덮어버리면 자기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서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한다는 식인데 타인이 요구하는 열매를 왜 맺어야 됩니까? ‘당신하고 나와 무슨 관계인데.’ 이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께 들이대는 것은 ‘한 번 해 보라.’ 그 말이죠. 과연 이것을 지킬 수가 있는지. 그러면 우리는 뭘 느끼느냐 하면, 성경 말씀이 적든지 많든지, 십계명의 말씀이 열 가지밖에 안되더라도 그 중에 한 가지라도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느 것 한 가지도 못 지킵니다. 지킬 수가 없어요.

그러면 내가 나를 믿는다는 것도 영 시원치 않아요. 이것은 나를 구원할 보장책이 전혀 되지 못합니다. 성경말씀대로 하나도 못 지키는데 천국은 가고 싶고 이것을 지키지는 못하고, 그러면 어쩌란 말입니까? 이것은 낭패지요. ‘야, 내 힘으로 성경 지켜서는 구원 못 받는구나.’ 이것을 명심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가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런 것도 다 좋지만 혹시 나보고 성경의 말씀으로 가훈 될 문장하나 해 주세요, 라고 한다면, 전에는 ‘죽자’라고 하기도 했는데, ‘못 지킨다, 때려죽여도 못 지킨다.’ 이것이 가훈이 되어야 됩니다. 못 지키는 입장에서 창세기부터 성경을 다시 보게 되면 그 이유가 나와 있어요. 그때부터는 성경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아하, 우리 조상이 저주받을 과실을 따먹고 저주받을 열매를 맺혔구나.’ 그러니까 저주받을 과실을 따먹지 말라는 그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애초부터 우리 인간을 하나의 과실로 간주해서 다루겠다고 한 겁니다. 이것은 듣기 굉장히 기분 나쁜 말이잖아요. 우리를 하나의 과실로 다루는데 어떤 과실이냐 하면, ‘하나님이 이런 쪽의 열매는 저주하고 이런 쪽의 열매는 거두어서 알곡이 되게 한다.’라고 하나님이 자기의 담겨 있던 속성을 보여주는데 필요한 과실용도로서 자신의 피조물을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천당 갈 테니까 기다리세요.’ 하게 되면 이것은 단독자가 되어서 아주 주체가 강렬해요. ‘하나님, 보세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훌륭한지.’ 하고 독단적으로 나아갈 때 항상 우리는 내가 중요하고 항상 나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고 여겼는데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런 인간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너는 하나의 과실이다.’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 조상이 뱀의 유혹을 받아서 무슨 열매를 따먹었느냐하면, 저주받는 열매를 따먹었어요. 저주받는 열매를 따먹으니까 저주가 온몸에 퍼졌습니다. 인간은 뭘 해도 저주예요. 저주받은 열매기 때문에 저주받은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나는 저주받은 열매를 맺으면 나는 지옥가기에 싫어. 따라서 나는 이제부터 좋은 열매 맺을 거야.’ 그렇게 되지요.

성경에 보니까 ‘너는 나쁜 열매 맺지 말고 좋은 열매를 맺으라.’ 여기서 ‘하라’가 나오니까 ‘그렇다, 나는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해야지.’ 이렇게 시도하지만 한 번 해 보라는 말이지요. 해보게 되면 인간이라 하는 것은 자기를 자기 맘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이 안 됩니다. 주위에서 힘이 오면 그 힘을 우리는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박지성이가 태어날 때부터 공 찼습니까? 태어나면서부터 오줌부터 쌌잖아요. 인간의 힘이라는 것은 외부의 힘을 이길 수 있는 처지가 못 됩니다. 박지성이가 어릴 때 기타도 치고 축구도 할 때 엄마가 ‘축구 하지마라. 너는 축구 말고 기타리스트 해라.’ 그러면 박지성이가 기타리스트 했겠습니까?

안합니다. 그냥 맨 축구 할 거예요. 이것은 박지성의 열매입니다. 어떤 열매냐 하면 축구귀신, 축구마귀가 있는데 이것은 자기도 자기 맘대로 못해요. 남들은 그렇게도 싫어하는 수학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몸도 감당이 안돼요. 아무리 주변에서 뭘 하라고 해도 수학이 좋고 다른 것을 알려줘도 그냥 수학이 좋아요.

사람이라 하는 것은 휘둘리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어떤 힘이 오게 되면 그 힘이 딱 일치가 되고 힘에 맞는 힘이 오게 되면 그 힘을 인간이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선악과를 심어놓은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해도 인간은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인간이 못됩니다.

따먹지 말라, 한 그것을 언제까지 안 따먹느냐 하면 마귀라는 강력한 영적인 힘이 오기 전까지는 아직까지 안 따먹은 채로 유보되어 있지요. ‘나는 안 따먹었어. 나는 안 따먹었어.’ 이렇게 유보되어 있다가 막상 누가 옆에서 따먹으라고 하니까 그 지시를 거부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인간은 힘의 먹잇감이에요. 인간은 힘의 밥이고 권력의 밥이에요.

어떤 인간도 자기가 원하는 권력이 좋은 대로 좇아가게 되어 있어요. 국가? 민족? 무지 좋아하는 것 같지요. 하지만 돈 준다고 하면 국가든 민족이든 가정이든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만반의 태세가 되어 있는 것이 우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애초부터 권력의 열매였습니다.

우리는 이쪽 열매아니면 저쪽 열매, 저쪽 열매 아니면 이쪽 열매예요. 우리는 휘돌리게 되어 있다니까요. 아가씨들 시집갈 때 보세요. 첫째는 믿음이요. 둘째는 인물이요, 세째는 집안이요, 네 번째는 허우대요, 다섯 번째 성격이고, 여섯 번째는 학력이고 마지막 일곱 번째가 돈이다, 이런 식으로 보통 하잖아요.

시집갈 때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되니까 기도원에 가서 기도할 때 건전한 것부터 앞장 세우잖아요. ‘주께서 주실 줄 믿습니다.’ 하고 기도응답 받았다고 산에서 내려와 보세요. 산 밑에 내려오자마자 어떤 남자를 만나서 뿅 하고 가는 수가 있습니다. 그냥 뿅 가요. 왜 좋은지 이유도 모르면서 그냥 끌리는 겁니다. 좋은데 무슨 이유가 필요 하냐, 그렇게 돼요.

그게 바로 우리의 어머니였던 하와, 우리의 아버지였던 아담이었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하고 보암직도 한데 이것이 어떻게 말로 설명됩니까? 먹고 싶다는데, 따먹고 싶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어요. 부모가 자식 결혼하는 것을 핍박하면서 ‘너는 저런 여자하고 결혼하려거든 호적을 파라.’고 백날 해도 소용없어요. 둘이 좋다는데요, 뭐.

둘이 살겠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어이구, 자식도 내 맘대로 안 되네.’ 그런 본인도 부모 앞에서 자기 맘대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건성에 불과하고 하나의 문자에 불과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자기 맘대로 살았던 사람이에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데 따먹고 말지 그것을 버텨봐야 버티는 것이 의미 없습니다.

‘주여, 일 년 버텼습니다. 2년 버텼습니다.’ 소용없습니다. 따먹는 그 순간부터 카운트 새로 시작합니다. ‘예수 믿고 술 끊은 지 3년 되었습니다.’ 그거 소용없습니다. 먹는 순간 3년은 벌써 날아가 버렸어요. 어떤 가수는 ‘내가 예수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내 입으로는 절대로 유행가 부르지 않는다.’ 고 하면서 목사 된 사람이 있어요.

요새 유행가 부르면서 아주 돈 많이 벌고 있어요. 사람이 자기 결심대로 될 것 같으면 그것은 아담의 자식이 아니에요. 하와의 자식이 아닙니다. 그런 자식이 없어요. 우리 조상이 힘에 휘둘렸으면 그 부모에 그 자식입니다. 우리도 내 인생 장담 못합니다. 어디서 무슨 유혹이, 어디서 무슨 바람이 불지, 어디서 바람, 바람, 바람이 불지 우리는 장담 못해요.

주께서 그렇게 바람 불게 하신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너라고 여긴 것은 그동안 환상이 환상의 꼬리를 물고 그냥 안개처럼 푹 환상이 피워낸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안개를 거두면 실상이 남아요. 실상이 뭐냐 하면, 저주의 열매로서 저주받아야 될 것이 입체영상처럼 확연하게, 내 말고 내 행동 전부가 저주의 이 징그러운 가지가 뻗어 나와서 ‘너희들은 다 죽어도 나 혼자 살래.’라는 악마의 품성을 교회가나 집에 가나 어디에 가나 직장에 가나 산에 가나 항상 품어져 나오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주의 열매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최초로 알려준 민족이 있어요. 그게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이 하라 하지 말라, 율법을 주니까 신이 났어요. ‘야, 이거 지키면 우리는 복 받지요?’ ‘그래.’ ‘신난다. 우리는 이거 받아서 택함 받은 거룩한 백성이지요?’ ‘그렇다.’ ‘야, 신난다. 저 놈들은 개지요?’ ‘그럼!’ ‘와, 신난다.’라고 신나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었습니다. 거기서 이구동성으로 나온 소리가 있습니다. ‘주여, 죽여주옵소서.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을 뻔 했습니다.’ 마지막 유대나라 멸망할 때 에스겔, 이사야, 예레미야 그 광경들이, 아주 적나라한 묘사들이 나옵니다.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저주받도록 했습니다.

‘내가 분명히 좋은 포도주를 원했는데 악한 포도주를 내었다. 좋은 무화과 나무열매를 원했는데 악한 무화과열매를 내었다. 이제 너희에게 남은 것은 이 계약대로 저주받아야 된다.’ 다른 민족은 멀쩡합니다. 손 안댑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민족만 혹독한 절규를 하게 됩니다. 얼마나 심했던지 얼마나 힘들었던지 ‘차라리 우리를 그만 죽여주옵소서.’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이 된 통으로 진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저주의 힘에서 우리 인간은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저주라는 덩어리, 악마의 덩어리에서 표면에 볼록 볼록 튀어나온 두드러기 같은 거예요. 뾰루지, 여드름 같은 것, 그게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저주 덩어리가 있고. 그렇게 될 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밝혀진 이 세상이 실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 이스라엘은 다른 모든 민족을 대표해서 현재 인간이라는 것이 개인적으로 단독적으로 영웅 된다든지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뭔가 밑바닥에 엄청난 저주의 뿌리가 나오는 거예요. 이사야에 보면 이런 것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저주와 징벌을 주게 되면 그들은 그들의 실상을 드러내는데 뭐냐 하면,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저주한 것은 대표적인 사람이 가인입니다. 제가 울산서 그런 강의했거든요. 가인이 제사지낼 때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았으면 아무 문제없어요. 가인 제사 받고 아벨 제사 받아도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형제간에 좋게 잘 지냈습니다. 가인 제사 안 받고 아벨 제사 안 받아도 그것도 아무 문제없어요. 둘 다 제사 안지내도 둘 다 아무 문제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안 받고 아벨의 제사를 안 받았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문제가 없었을 경우의 수가 더 많아요. 가인은 제사를 드렸는데 동생은 그냥 놀고 있었다면 집안에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문제는 가인의 제사를 안 받고 아벨의 제사를 받아버린 것이 문제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웅크리고 있던 죄가 가인을 덮쳐서, 가인은 그냥 하나의 저주의 열매니까 아벨을 죽여 버린 겁니다. 집안 꼴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게 뭐냐, 하나님이 관여하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어요. 인간이 기도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중얼중얼 하는 것이니까 아무것도 아닌데 우리가 기도 가운데 발견해야 될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관여하느냐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아벨에 관여했어요. 관여하게 되면 우리가 단독자가 아니고 우리가 자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거대한 덩어리위에 난 하나의 뾰루지에 불과하고 하나의 표면에 불과한 거예요. 어떤 썩어지고 저주받을 나무의 열매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의 열매에 불과한데 이 내 인생을 내가 처리하려고 하니까 그때부터 문제가 되는 겁니다.

마귀가 자꾸 이야기하기를 ‘네 인생은 네가 처리해야지. 화 좀 내라. 동생 제사는 받아놓고 네 제사는 안 받았지. 봐라, 하나님께서 동생하고 너를 편애하지 않느냐. 네가 가만있으면 되겠느냐. 화를 내야지.’ 자꾸 저쪽도 하나, 이쪽도 하나, 하나, 하나, 하나, 그것을 셈하기라고 하는데 사람을 셈하기 한다고요.

셈을 해버리면 이것은 양적인 개념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질적인 개념은 셈을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돋아나게 한 덩어리 자체가 어떤 질적인 성질 속에 있느냐를 보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저주의 열매를 따먹고 난 뒤에 아담으로부터 저주가 퍼지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양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얼마 벌었어. 네가 아이큐가 얼마야.’ 이렇게 숫자로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숫자를 지워버립니다. ‘네가 자식이 몇 명이야?’ 이런 것을 아예 지워버려요. 모든 사람, 모든 직업, 목사, 장로, 필요 없어요. 균질화, 혹은 동질화시키는데 그 질이 뭐냐, 어떤 인간도 저주받은 그 아비와 어미의 자식이다, 그것뿐 이예요. ‘나는 악한 열매다.’ 그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해주는 겁니다.

‘열매 내놓아라.’ ‘없습니다.’ ‘그러면 저주받아라.’ ‘왜요?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너보고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고 네가 어느 모종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어떤 터전에서 나온 거예요. 우리를 닦달 내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다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꽂혀있는 그 기반, 바탕 자체가 애초부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닦달내지 않고 우리를 비켜 가시는 겁니다.

그런데 마귀는 자꾸 우리보고 지적하는 거예요. ‘똑바로 하란 말이야. 말씀대로 살란 말이야. 열심을 내야지.’ 자꾸 이렇게 해서 우리 문제를 우리가 알아서 해결하도록 자꾸 부추깁니다. 우리가 하나의 열매에 불과한데 마귀는 우리가 열매가 아니고 ‘내가 알아서 잘했으면 천국갈수 있을 텐데 내가 게을러서 태도를 분명히 못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아서 지옥 갔다.’고 원인을 자꾸 자기한테 두는 그런 버릇과 습관을 계속해서 집어넣은 겁니다.

양적으로, ‘저 사람은 가는데 너는 못가잖아. 봐라. 너도 저 사람처럼 되어야지.’ 자꾸 우리에게 경쟁붙이고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천국에 가려면 천국 가는 그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그 열매는 뭐냐, 사마리아 여인에게 ‘너 목마르지.’라고 했어요. ‘내가 목마르지 않은 물을 주겠다.’ ‘그런 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영원한 생수를 주겠다.’ 영원한 생수를 주겠다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자가 남자가 다섯인데 여섯 번째 남자를 사귀고 있다는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고, 그 밑둥치, 우리로 하여금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고 내 하기 나름에서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는 이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우리로 하여금 ‘나는 어디에 소속된 열매다.’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어떤 열매에서 돋아나야 된다는 겁니다.

열매에서 돋아나려면 우리보고 ‘열매, 똑바로 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너는 무슨 나무에 속했어.’라고만 이야기해 준다면 ‘나는 어느 나무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그 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으로 인하여 생명수로 인해서 열매는 저절로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우리 아버지는 농부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해서 가지가 열매 맺는 것이 아니고 포도나무가 가지를 통해서 열매를 맺게 하는 중간 매개체로서 우리를 사용하는 거예요.

여러분, 유리 세공할 때 보면 뭘 훅 불어넣지요. 그러면 유리대롱 끝에서 잔도 만들어지고 컵도 만들어지고 뭐가 되잖아요. 훅 불어주시는 분이 예수님인 거예요. 우리는 그 부는 대롱, 그 대롱역할밖에 안하는 겁니다. 예화가 너무 진솔해서 반응이 이렇습니까? ‘너는 포도나무의 가지다.’라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가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디에 박혀 있는 거예요.

포도나무에 박혀 있으면 우리 자체가 포도나무의 열매가 되는 겁니다. 포도나무의 열매가 된 것을 가지고 ‘왜 우리집안은 이 모양 이 꼴이니, 키가 왜 이렇게 작고, 나는 왜 재벌집안에서 태어나지 않고…….’ 재벌집안에서 태어나든 안 태어나든 관계없이 그 비교와 양적인 가치는 포도나무라는 동일한 영생의 질에 의해서 무산되는 것이고 의미 없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이면서도 세상에서 들은 것이 있어서 꿈을 꾸고 환상을 꾸는 겁니다. ‘나도 우리애가 서울대학에 들어갔으면……’ 하면서 뭐라고 자꾸 하는데 그런 것은 다 안개입니다. 인기 있어야 되고 사업도 잘되어야 하고, 그런 환상을 거치면 자살하는 본인밖에 안 남아요. 그런 환상을 주께서 자꾸 말씀으로 거두어가게 하는 겁니다.

자꾸 거둬가게 해서 바깥에서 들어오는 환상은, 마귀가 하는 말은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열심히 해야지, 네 인생 네가 놓치면 너는 아무것도 안 돼.’라고 자꾸 잔소리 해대고 진짜 성경을 보게 되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저 박혀만 있어다오.’ 하는데 박혀만 있어다오, 그것조차 안 되지요, 그냥 튀어나온 표면이니까, 우리는 주님에 의해서 삼투압작용에 의해서 대롱만 꼽혀져 있으면 그 대기압작용에 의해서 표면위로 물이 죽 빨려 올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실험해보세요. 유리관을 물에 박아놓으면 유리관을 따라 물이 표면위로 올라오잖아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유리 봅니까? ‘어, 저 유리관안의 저것이 뭐지? 예수님의 생명수구나.’ 그것이 예수님의 증인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증인. 아프고 안 아프고, 죽고 살고, 몇 년 살까, 그런 것은 의미 없어요.

어떤 사람은 30년 대롱, 어떤 사람은 60년 대롱이 있는데 그 대롱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어떤 사람은 부한 사람도 있는데 그 대롱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대롱 안에 무엇이 채워지는가 말이지요. ‘나는 예수님의 피 때문에 살았습니다.’가 나오는 거예요.

끝으로 이 말씀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오지요. 이것은 도둑놈한테 돈 빼앗기는 것과 똑같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왔다는 말은 인간의 육의 바탕은 이제 끝나는 거예요. 성령이 와야 성령의 새로운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라는 것은 교회 좀 다닌 사람들 같으면 다 압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잖아요. ‘온유와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형제우애’ 등등. 성령께서 오게 되면 우리를 단독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유리대롱으로 만들어요. 유리대롱으로 만들어서 어디에 꽂느냐 하면 십자가에 꽂아버립니다. 십자가에 꽂아버리는데 그 십자가가 뭐냐 하면, ‘정과 욕심을 죽여서 이제는 영으로 산다.’ 거기에 꽂아버리면 그 표면에 올라오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가 되는 거예요.

자식이 아프든지 형편이 어쩌든지 그 은혜가 눈금처럼 올라오는 거예요. 거기다가 또 마귀의 역사를 받으면 눈금이 내려가요. ‘나는 왜 저 사람처럼 안 될까.’ 하는데 다시 십자가로 돌아가면 눈금이 죽 올라가서 온유와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형제우애가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어떻게 되는가?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성령을 받지 아니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육체의 일이 그대로 있는데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이게 뭐냐 하면, 단독자에서 나오는 거예요.

‘내 인생 내가 관리하겠다.’에서 오는 거예요. 내 인생 내가 관리하니까 저 사람이 내 말을 안 들으니까 기분 나쁜 거예요. 내 인생 내가 관리하면 이것은 대롱이 아니고 자기 인생 자기가 관리하기 때문에 자기 자존심을 위한 힘을 모으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인간은 힘을 차지하기 위해서 힘을 끌어 모아서 ‘나, 이만하면 되었지? 너는 저리가.’ 이러면 그게 바로 시기와 질투가 되는 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교회에서 파벌싸움이 일어나서 ‘네 편이 몇 명이야? 내편은 이 만큼이야.’ 목사 편은 몇 명이고 장로 편은 몇 명이고, 이게 바로 교회라는 곳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교회는 뭐냐,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샀잖아요. 그러면 그 대롱이 예수님의 피에 꽂혀서 빨간 눈금이 올라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에고, 내가 이야기하면서도 무섭다 정말! 소름이 돋습니다. 빨간 눈금이, 주님의 눈금이 나의 사적인 권력과 욕심을 밀어내는 그 눈금이, 수치가 올라가는 거예요. 수치가 올라가면서 우리의 죄도 같이 밀려 내려가는 겁니다. 끝으로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마중 나올 때 왜 그냥 말로 하지 않고 왜 피로 하는가? 우리가 십자가 피를 믿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피를 믿어버리면 그 피를 믿는 나를 단독적으로 또 믿게 돼요.

단독적으로 또 믿게 되면 마귀가 놀립니다. ‘어제는 믿더니만 오늘은 왜 안 믿었어.’ 하고 또 개인을 다뤄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비켜 갑니다. 우리로 하여금 항상 나만 생각하고 내 권력만 생각하게 만든 그 배후의 악마에 대해서 상대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피로서 다가오는 거예요. 우리는 그 피도 무슨 뜻인지 몰라요. ‘예수님께서 피를 흘렸지.’ 하지만 몰라요.

그런데 피를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를 붙잡고 있는 악마입니다. 왜냐하면 악마는 성경을 알기 때문입니다. ‘피’라 하는 것은 대신 용서하심이고 대신 살려주심이거든요. 대신 용서하고 대신 살려줬다는 말은 주님께서는 우리를 닦달내고 우리를 직접 다루지 않는다는 뜻이거든요. 내 피로 일방적으로 건져내겠다는 뜻이 예수님의 피 안에 들어 있다는 말이지요.

‘네가 받을 저주를 내가 대신 받았다.’는 뜻에서 ‘피’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의 피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의 대롱에 불과하다, 내가 내 기초를 내가 파악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는 피에 꽂혔기 때문에 생산되는 것이 붉은 피가 올라오는 거예요. 나는 그 피에게 내 자리를 내어주면 될 뿐이지 그 피를 내가 소유할 이유는 없다 이 말이지요.

소유해봤자 소용없습니다. 그냥 주님께서 타고 올라오는 거예요. 그냥 주님이 날 이용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열매라는 거예요. 열매! 열매는 열매가 맺는 것이 열매가 아닙니다. 열매가 무슨 열매를 맺습니까? 나무가 열매를 맺지요. ‘나는 나무가 아니고 내 나무 따로 있습니다. 어떤 나무, 하나님의 피가 나를 살리는 나의 나무입니다.’ ‘너는 뭔데?’ ‘나는 그 나무에 붙어 있는 그냥 열매에 불과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타인과의 양적인 경쟁이라는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내 눈까풀에 뭔가 씌었구나, 아무것도 아닌데.’ 그동안 마귀한테 길들여졌던 그 성격이 그대로 눅눅하게 남아 있어서 계속 가는 거예요. 어떤 며느리가 있는데 시아버지가 돈에 얼마나 민감하고 깐깐한지 돈을 그렇게 아끼는 거예요.

그런데 며느리가 촌에 사는 시아버지 생신이라고 십 만원을 송금했어요. 그러니까 그 시아버지가 아주 좋아했어요. 그 다음에 시댁에서 친정어머니 생신이라고 전화가 왔어요. ‘얘야, 전에 십 만원 보내줬다면서. 나도 돈 보내줄게.’ 하고 시댁에서 돈을 보내왔지요. 그러니까 그 친정엄마는 우리 딸 시댁에서 돈을 보낸다고 자기가 한턱 쓴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했네요.

통장을 열어보니까 십 만원이 올 줄 알았는데 십 원이 왔어요. 십 만원을 받았으니까 십 원을 갚아야 된다는 이 사고방식, 우리는 성경을 알고 복음 알고 예수 피를 안다고 아무리 해도 막상 시댁에서 여러분 챙긴다고 십 원을 줘보세요. 기분 나쁘지요. 이것이 대롱이 아니고 또 하나의 단독적으로 내 자랑을 하는 나무가 되고 말았어요.

교회 와서 이 말씀 보지요. 교회 문만 나가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또 내 인생 내가 알아서 남한테 양적으로 꿇리지 않는 인생 살아보겠다고, 권력을 찾아 권력을 찾아, 권력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또 나서는 우리의 모습,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이 그때마다 십자가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오죽했으면 피 흘렸겠습니까, 그냥 그 피에 꽂혀서 그 게이지에 피가 상승해서 올라오는 피의 증인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저희들 뭔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내가 착실하게 하면 천국 가는 줄 알았습니다. 애초부터 우리의 바닥이 저주였던 것을, 나밖에 모르고 나만 잘하면 다 잘되는 것처럼 여겼는데 그것이 환상이었습니다. 주여, 성령의 열매를 내라 하시는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고 예수님의 피로 맺는 온유와 화평의 열매를 주님 주신 공로로서 주님의 것이라고 내놓을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034강-누가복음 6장43-45(나무와열매)-luk100704.hwp (64.0K), Down: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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