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 스님과 관련된 인터넷 기사
수경 스님과 관련된 인터넷 기사
이름 : 이근호(IP:117.55.164.12)
북한과 포르투갈의 월드컵 예선전이 벌어진 6월 21일 저녁에
봉은사에서 <진실을 알리는 시민모임>과 <라디오 21>이라는 단체 등이 개최한
북한 응원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참석 인원은 600여명이고 한반도기를 흔들며.. 북한 가요 <반갑습니다>를 함께
부르면서 북한을 응원했다고 하는 보도를 보고 좀 어이가 없었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천안함 사건은 벌써 잊혀져 버린 것인가?
그들에게 북한은 분단된 한민족으로서 어렵게 사는 형제 국가일 뿐이고..
월드컵 16강에 올라가기를 열렬히 응원해야 하는 대상인가보다.
천안함 사건에 사망한 46인의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하늘에서 그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할 것일까.. 궁금하다.
이런 요지경같은 모습이 일반화 되어가는 세상에 얼마 전에 수경스님인가 하는 사람의
기사가 생각나서 다시 찾아보았다.
그는 4대강 사업 반대를 주도하는 등 불교계의 환경 운동을 이끌어 온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6월 14일 화계사 주지 직과 불교환경연대 대표, 조계종 승적등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겠다며 지인을 통해 달랑 A4 용지 1장 분량의 글을 내놓고 종적을 감췄다고 한다.
기거하던 화계사 방도 정리하고 휴대전화도 해지했다고 한다.
수경스님은 글에서 말하길.. 대접받는 중노릇을 해서는 안된다고 초심 학인(學人) 시절에
어른 스님들로부터 늘 들었는데 자신이 그런 중 노릇을 하고 있다.. 또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치 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지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착각에 빠졌다.
또 자신은 죽음이 두렵다. 자신의 생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중노릇을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다.
그러면서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남은 인생은 初心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다..
라고 밝혔다고 한다.
내가 존경하고 싶은 종교인을 생각해 보니..(사실 잘 모르기 때문에 느낌으로)
김수환 추기경님과 얼마전에 열반한 법정스님.. 명색이 기독교인데 그래도 목사 한분은
거론해야 할텐데.. 오래전 소천하신 한경직 목사님이면 어떨까 싶다.
(내 시대 이전의 종교인은 제외 했음).. 사실 별로 존경하는 종교인이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런데 수경스님이라는 분의 기사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종교인 중에 이런 분들도 아직 있구나.
단지 좀 아쉬운 점은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나이 61세에 깨달음을 얻었으니.. 음~ 허기사 현재에도 껍질만 종교인으로 종교적 권력을
행사하는 다른 인간들에 비해서는 그것마저 대단하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기독교 목사들 중에서도 존경할 만한 인물이 많~이 나와야 할텐데.......
이근호(IP:117.♡.164.12)
10-06-24 08:50
환상은 환상을 낳고... 액자 그림 속 같은 세상에서 수경 스님이 빠져나갈 여지는 없다. 종교가 주는 환상을 벗어나 기독교로 도피하고, 기독교가 주는 환상에서도 벗어나 자기만의 교회 공동체로 도피하고, 자기만의 믿음 공동체가 주는 환상에서 벗어나 초야에 묻혀봤자 자기 자신이 곧 환상 덩어리인 것을 왜 개혁주의자들은 모를까. 십자가 피만 증거하면 될 일을 왜 자꾸 소위 바른 목회에 기대를 가지면서 수경 스님이 가시는 지옥 코스로 접어드는지...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인 것을 모른다면 십자가 피에 대한 감격이 없고, 이 감격이 없으면 어느새 위선자로 달라진 수경 스님, 한경직, 법정, 김수환 꼴이 된다.
이미아(IP:119.♡.113.104)
10-06-24 18:01
아무리 자본주의가 가져다 주는 쾌락이 만만치 않다해도 그 쾌락마저도 때로는 질리고 돈버는 일에 질리고 멋진 남자에게도 질리고 예쁜 여자에게도 질리고 사람사는 것에 질리고 사람에게 질리고 복음만 전해주는 목사에게도 질린다...더 질리는 것은 나에게 질린다. 자신에게 학을 뗀다.
그러나 질리지 않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피 밖에는 없다.
자신이 질리지 않을려고 해서 질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질리고 싶어도 웬 질기디 질긴 찰거머리인지, 웬 은혜인지 질리지 않게 하시는 십자가의 능력 때문이다. 왜? 사람에게 질리지 않고 더 나아가 자신에게 질리지 않고 존경할만한 자들을 찾고 그들을 모델로 삼아 추앙할까? 혈관에 예수님의 피가 흐르지 않고 인간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겠지....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인 것을 모른다면 십자가 피에 대한 감격이 없고, 이 감격이 없으면 어느새 위선자로 달라진 수경 스님, 한경직, 법정, 김수환 꼴이 된다."
이 말씀에 큰 은혜 주셔서 댓글 달아 봅니다.
얼마나 곤고했는지..메마른 땅에 단비처럼...적셔옵니다..
수경도 될 수 있고 한경직도 될 수 있고 법정도 될 수 있고 김수환도 될 수 있는데...
죄인이 될 수 없다면 지옥일 뿐입니다.
죄인은 위에서 주시는 선물이 아니라면 될 수 없는 자격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