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100611빌3장17절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서울100611빌3장17절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이름 : 김창길(IP:222.112.87.237)
서울100611빌3장17절a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빌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오늘 강의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 십자가의 원수 되면 천국 갑니까? 지옥 갑니까? 예를 들면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삼위일체 다 인정하고 십자가도 다 인정 하는 데 행하기를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면 그 사람 구원받겠어요? 십자가의 원수인데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 하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인정해요. 다 인정하는데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려면 보통사람은 안되고 마귀에 들려야 이것이 가능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할 수가 없어요. 악마의 힘이 필요합니다. 악마의 힘으로서 십자가의 원수로 자리 하게 되는 데, 지금 제가 적어 볼게요.
‘나는 하나님을 인정한다.’ 여기 사도 신경 새로 외울 필요 없지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다 안 다면요. ‘나는 교회를 믿는다.’ 줄줄이 나는 다시 사신 것 다 믿는 데 십자의 원수라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그것을 모르겠다. ‘십자가의 원수가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라고 나온다면 상당히 곤란합니다. 구원받았다고 하기가 곤란해요. 왜냐 하면 보통사람들은 십자가를 어디에 집어넣느냐 하면 십자가가 우리 성도가 알아야 될 여러 가지 사도 신경에 나오는 항목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부활도 있고 재림도 있는데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기를 그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십자가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교회도 알아야 하고 하나님도 알아야 하고 삼위일체도 알아야 하고 부활도 알아야 되고 십자가도 알아야 되고 ……. 10개 된다면 그중에 하나, 십자가의 원수로 행동한다면 과연 나머지 9개 아는 것이 전부 무효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이 십자가의 원수로 하는 이것만 문제가 될 것인가 하는 겁니다. 십자가 원수 이것만 문제 된다면 나머지 9개를 보고 그 사람을 신자로 볼 수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되려면 십자가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마지막 10번째가 재림이라면 중간에 천국도 있고 있는데 이 십자가가 1,2,3,4,5,6,7,8,9,10 중에 십자가가 독특하게 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10문제 있는데 그 10문제 중에서 기껏 한 문제에 불과하다. 이렇게 된다 이 말 이죠.
예를 들어서 10문제가운데서 한 문제틀리고 9문제 맞으면 몇 점입니까? 90점이잖아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뭐라 하냐 하면 너희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했다 이 말이죠. 부활의 원수다. 교회의 원수다. 삼위일체의 원수다. 하나님의 원수다. 이것을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의 원수라고 결정한 거예요 그렇다면 십자가의 원수라는 것을 가지고 천국과 지옥을 가름했다면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다른 여러 가지 성경 개념 가운데 적당하게 포함될 문제가 아니고 이것은 독특하게 튀어야 할 문제예요 따로 뽑아내어야 될 문제에요. 여러 가지가 성경에 있지만 그중에 우뚝 서야 할 문제가 뭐냐 하면 바로 십자가라는 겁니다.
그러면 왜 그럴까요? 왜 다른 여러 가지 가운데서 십자가만 독특하게 불쑥 튀어나와서 십자가의 원수 된 자들이 지옥 간다면 그것은 백발백중 십자가의 원수이기 때문에 지옥 간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지옥 갈 거냐, 천국 갈 거냐 판결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느냐 교회를 믿느냐 그것이 판결이 아니고 오직 십자가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느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 다면 그 사람은 지옥가고 십자가의 원수가 아니라면 천국 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무슨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여기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말라 했으니까 천국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천국은 십자가 중심으로 구성된 나라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겠죠. 그래서 십자가 건드려서 십자가 반대하고 십자가 원수로 행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다른 어떤 조건이 갖춰줘도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이 많은 교훈 중에서 율법도 있고 천국도 있고 땅도 있고 여러 가지 많이 있는데 하필 십자가가 천국과 지옥을 가름하는 기준이 될까요? 그것은 바로 십자가는 누구만 행할 수 있느냐 하면 예수님만 행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시고 어린 양으로서 다 이루었다고 우리가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우리가 십자가 지고 산위에 매달리면 그게 십자가 됩니까? 안됩니까? 안되지요 이것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고 하나님만이 최종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십자가의 원수가 된 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나는 이정도로 했습니다. 하는 것이 전부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거죠. 십자가라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 100층짜리 건물을 외벽을 맨손으로 올라갔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 저것은 예수님만할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은 못한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의 적은 무엇이겠어요? ‘에이 나도 할 수 있는데’ 하는 것, 이것이 적이잖아요. 결국은 지옥 가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하면 ‘내 힘으로 천국갈 수 있는데......’라고 나오는 것은 전부다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다 지옥 가는 사람이에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데 교회 나와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데 교회 나오는 것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데 헌금하는 것도 내 이름으로 할 수 있는데 기도 하는 것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데.......
십자가의 원수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에이, 나도 할 수 있는데…….’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응하기 위해서 말씀대로 되기 위해서 이 땅에서 솟아 올라와지는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를 중간에 두고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은 지옥 간다고 결정을 냈다 이 말입니다.
원수란 ‘나도 할 수 있는데……. 나도 내 힘으로 교회갈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겁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원수가 아닌 것은 뭘까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일 때문에 지금 된 겁니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선 것은 하나님의 일 때문에 선 겁니다. 하나님의 일로 인하여 제가 지금이 자리에 섰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가 안 된 사람이겠죠. ‘하나님이 없었으면 내가 십자가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유일하게 하나의 원수가 안 된 거예요.
그런데 십자가를 내 힘으로 믿을 수 있다 하면 그것 자체가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거예요. 십자가 믿는 것도 내가 알아서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십자가 원수가 되는 겁니다. 지금 내가 여기 있게 된 것이 밑에서 누가 솟구쳐 올라와서 내가 이렇게 있다는 겁니다.
여기 팽팽한 보자기 하나있고 그냥 얇은 보자기 하나있고 밑에 울퉁불풍한 조각품을 하나 만들어 놓고 이것을 가지고 밑에서 힘을 줘서 쭉 올라오면 보자기 이것도 이 모습 따라 울퉁불퉁 되겠지요. 그럴 때 다른 사람이 보고 ‘오 당신 생김세가 왜 이래?’ 하면 ‘밑에서 뭐가 치고 올라와서 이 모습 됐다.’고 이렇게 해야 됩니다. 밑에서 치고 올라와서 이렇게 된 거예요. 세상의 모든 것은 말씀 계획 잡힌 대로 치고 올라오니까 어떤 사람은 미국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필리핀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아프리카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박지성이고 그렇다 이 말입니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이 있어요. 이 밑에서 올라오는 힘이 누구 힘이냔 말입니까? 이게 하나님의 힘이고 말씀의 힘이 되는 거예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까 이만큼 이 모습까지 되었습니다. 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고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야, 도대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 이렇게 누구야? 라고 물을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돼요.
나를 이 자리까지 있게 한 이가 누구십니까? 정체를 밝히세요. 누구십니까? 그 때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어이, 당신 지금 누구보고 이야기 하는 거야? 당신이 이렇게 된 것은 당신이 애쓰고 노력하고 공부해서 된 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럴 것 같으면 누구냐고 묻지를 않지, 누구세요? 무대 뒤에서 빨리 나 오세요. 나를 이 모습까지 이끌어 주신 분 빨리 나와 보세요. 누구십니까? 나는 나를 믿지 않고 당신께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해야 되는 겁니다.
갈릴리 바다를 예수님과 함께 제자들이 지났습니다. 파도가 일었습니다.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풍랑을 잠잠케 하기 위해서 배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깨웠어요. 예수님이 일어나서 먼저 나물하십니다. 쉽게 말해서 풍랑이 일어나는 것도 이 밑에서 풍랑 일어나야 된다는 계획 하에서 이것을 밀어버리니까 하필 갈릴리 바다에 가는 제자들에게 풍랑이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겁니다. 일어나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풍랑이 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풍랑을 잠잠케 하기 전에 먼저 누구보고 나물 하였냐면 제자들에게 나물하신 거예요. ‘아이, 얘들아!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 이 말이죠. 참, 재미있지요? 지금 제자들은 제발 우리가 좀 편하게 갈 수 있도록 풍랑을 잠잠케 해달라고 했는데, 제자들은 지금 풍랑을 가리키고 있는데 주님은 일어나자마자 제자들이 가리키는 풍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 왜 이렇게 믿음이 없느냐? 너희들은 왜 밑에서 밀고 오는 이것을 보지 못하느냐?’ 이 말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바다야! 까불래 자꾸, 잠잠해라!’ 하니까 잠잠해 졌지요.
그제야 제자들이 풍랑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풍랑도 보지 않고 자기도 보지 않고 일제히 주님을 봅니다. ‘저분이 누구시기에 풍랑도 잠잠 하는고?’ 아, 주님이 누군지 몰랐습니까? 주님이 때마침 풍랑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그분을 몰랐습니까?
신앙생활을 자기 힘으로 하니까 덥다고 때려치우고 춥다고 안 해 버리고 교회에 삐져서 안 나오고 자기가 평소에 생활하는 것이 내 힘으로 인생을 일구어 나가는 그 참 더러운 버릇을 그대로 교회에 가지고 와서 천국 가는 것도 자기가 노력해서 애써서 목사님 말씀에 순종해서 말씀을 실천에 옮겨서 그래서 자기가 천국 간다고 하니까 그게 바로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사도신경 외우라 해서 다 외워, 주기도문 외워, 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목사가 물으면 ‘믿습니까?’ ‘믿습니다.’ 그것도 안 되면 ‘믿쓉니까?’ ‘믿쓉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외치고 나중에는 ‘믿습니다.’를 반복한 그것으로 구원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밑에서 계획 잡힌 것이 나를 치고 올라오는 것은 이것은 내 권한 밖이고 내가 손쓸 수 있는 권한 밖에서 움직이는 피스톤이에요. 각이 짜인 어떤 형체가 있는 피스톤을 여기 평평한 막이 있었는데 밑에서 치고 올라오니까 이 형태, 모습 그대로 튀어 나 온 거예요. 막이 밑에서 치고 올라온 모습을 가지게 된 거예요.
이 피스톤 밑에 이 막이 말씀입니다. 세상의 모든 발걸음도 세십니다. 모든 것이 말씀대로 되어 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버릇이 뭐냐 하면 항상 내 인생은 내가 가꾸고 내가 해야 할 일 안해야 할 일을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결정짓고 자기가 최선을 다하다 보니까 무엇을 자꾸 놓치고 잊어버리느냐 하면 주께서 밀어 붙이셨다는 사실을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다 날려 버렸어요. 주께서 하셨다는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를 않아요.
결국 그들은 무엇을 믿느냐 하면 나는 내가 열심히 애쓰고 있고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나 신앙생활 하는 행동 자체를 믿어버려요.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라는 겁니다. 그것이 왜 십자가의 원수가 되느냐 하면 이렇게 풍랑에서부터 밀어붙이는 것의 모든 하이라이트, 구심점 마지막 최종점이 툭하고 튀어나온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주께서 하시고자 하는 직결되는 모든 것, 전부에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부활의 원수도 아니고 하나님의 원수, 삼위일체의 원수, 교회의 원수, 교회의 원수 된다고 지옥 가는 것 아닙니다. 삼위일체 원수 된다고 지옥 가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것 다 걷어치우고 오직 유독 지옥이냐, 천국이냐의 가름하는 기준은 오직 십자가 밖에 없어요. 십자가의 원수가 되면 이것은 아무리 삼위일체 알고 교회 잘 다녀도 다 지옥 가는 겁니다. 십자가의 원수가 안 되어야 됩니다.
너희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할 때, 사도바울이 너희들이 ( )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문제입니다. 다음 중 ( ) 안에 들어갈 말은?
1) 교회의 원수 되면 너는 지옥 가느니라.
2) 목사의 원수 되면 너는 지옥 가느니라.
3) 착한 일에 원수 되면 너는 지옥 가느니라.
4) 부활에 원수 되면 너는 지옥 가느니라.
5) 재림에 원수 되면 너는 지옥 가느니라.
6) 요한계시록 잘못 해석하면 너는 지옥 가느니라.
7) 십자가 원수 되면 너는 지옥 가느니라.
몇 번 입니까? 7번이지요.
너희들은 왜, 완전히 행하지 못해 그것을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에요. 너희들은 재림 안 믿으니까 지옥 간다는 이야기가 없어요. 전부다 재림이든 요한계시록이든 모두가 다 한 곳에 모이는데 그것은 십자가로 모이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모르면 전부를 모르는 것이 되고 십자가를 알면 전부를 아는 것이 됩니다. 왜, 십자가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그것을 주께서는 다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100개중에 10개를 할 줄 아는데 90개를 못하겠는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90개만을 위해서 죄를 사했습니까? 우리가 100개 중에서 10개는 자신 있는데 영 자신이 없는 90개는 못했다. 그러면 주께서 90개만 찾아서 그것만을 위해서 우리 죄를 씻었습니까? 십자가에서 그런 거예요? 십자가는 우리의 하는 모든 것 때문에 대신 지신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해도 십자가 없이는 구원 받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행함은 주님 앞에 안 받아 줍니다. 그것을 ‘우리의 어떤 행한 것도 주님께서 일체 받아 주지 않습니다.’ 라고 아는 사람은 ‘십자가가 너무 좋아’ 이것을 아는 사람이에요. 십자가를 안다고 해 놓고 나름대로 할 수 있다고 골라내면 그것은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겁니다. 십자가를 모독하는 겁니다. ‘주님 그거 헛짓 했습니다.’ 하는 겁니다.
여러분, 부활이 어느 지점에서 부활 되는 거예요? 물위를 걸어서 부활되던가요? 아니면 산상설교 하다 부활 된 건가요? 예수님의 부활된 장소가 어딥니까? 십자가지요. 십자가를 거쳐서 부활되잖아요. 감람산에 올라가서 설교 하시다가 그냥 올라가신 게 아니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여러분들이 부활이 되고 싶습니까? 그래서 변화산에 올라가서 모세, 엘리야처럼 같이 합세 하고 싶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디를 가야 해요? 예수님 갔던 경로, 십자가 속에 있었을 때 비로소 부활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 뭐라 했습니까? 그 십자가 앞에서는 우리가 어떤 행동도 만의 하나라도 제대로 행동한 게 전혀 없음을 십자가 앞에서 발각당하는 즐거움, 그런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주여, 우리가 어떤 것을 해도 의가 아니고 죄밖에 되지 않는군요.’ 하는 기쁨과 즐거움,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그 행복감, 여러분! 이것 맛보시기 바랍니다. 일부러 또 죄짓고 맛보지 말고 죄 안 져도 죄인이에요. 이것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구나! 내가 천국갈 수 있는 어떤 바탕을 내가 지상에서 내 힘으로 만들 수 없구나하는 것을 충분히 알 때, 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사람은 십자가 앞에서 섰다는 것이고 십자가 앞에서 섰다는 것은 이미 부활의 세계에 들어갔다는 뜻이에요. 왜, 부활의 세계 안에 십자가가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현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죄짓는 모든 것도 죄 지으라고 주께서 밑에서 피스톤으로 올려붙인 거예요.
너는 앞으로 이런 죄를 지을 것이고 내가 죄 지은 것도, 내가 죄짓고 싶어서 지은 게 아니고 밑에서부터 죄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밀어 붙인 겁니다. 죄가 아담에 속했잖아요. 아담에 속한 사람은 죄가 왕 노릇 한다고 했죠. 죄가 왕 노릇 했다는 말은 우리는 죄의 신하죠. 그래서 죄가 왕 노릇 했다는 말은 죄가 왕이니까 ‘어이, 비타500 가져와!’ ‘예’ 이러면 이거 무슨 행동입니까? 죄지요. 죄가 시켰잖아요. 죄가 왕 노릇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죄 따로 있고 우리 따로 있는 것이 왕이 아니에요. 왕이란 말은 우리를 포함시키고 못 빠져 나가게 만들고 똘마니, 똘마니란 말 알지요? 상스런 말이지만 제가 상스런 말 한두 번 썼겠습니까? (하하) 죄의 종일 때, 그 죄가 오야봉, 우두머리가 되는 거예요. 죄가 오야봉이란 말은 우리는 본의 아니게 죄가 시키는 대로 똘마니처럼 굴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애써 그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밑에서 올라오는 말씀 덩어리 자체가 너는 되는 거야 하고 밀어붙여서 성경 로마서 5장에 그렇게 나와 있다 이 말이죠. 죄가 너희에게 왕 노릇 한 것이다.
죄가 왕 노릇하는 것을 섭섭하게 여기지 마세요. 죄가 왕 노릇한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은 이미 구원받은 자에게 만 주어진 혜택입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도대체 내가 누구야? 음, 죄가 왕 노릇 했구먼!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거예요. 표정들이 왜 그래요? 행복하지 않은 사람처럼 (하하) 이게 얼마나 행복한 겁니까? 에베소서 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악령이에요. 악령 속에 너희는 지냈다. 이것이 여러분 기분 나쁘게 들립니까? 오케이! 딩동~ 이이래야 돼요. 내가 악령 안에 있는 똘마니였고 악령이 우리 오야봉 이었고 나는 철저한 야쿠자 세계에서 철저하게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인 것을 이제 알게 되었으니 다 같이 우리 행복 합니다. 다 같이 우리 행복한 겁니다. 이것을 아시는 분이 행복한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 전체를 보고 여러분들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이 성경 전체, 어떤 한 구절도 밑에서 이미 작정한 대로 올라오기 때문에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행해서 지금 내가 이 자리까지 이런 모습으로 깨닫게 된 것도 주님의 공로라는 것을 알 때 성경 보는 것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언제 성경 보는 것이 부담이 되느냐 하면 하나님 이것도 해야 합니까? 저것도 해야 합니까? 평소에 버릇이 자기가 행해서 구원받는 버릇이 들어 기도 하면 하나님 돈 벌고 바쁜 가운데서 이 정도 한 것도 좀 봐 주세요. 여기서 더 하라 하면 나자빠집니다. 정말 더 이상 못합니다. 더 이상 봉사하다가는 우리 집 거덜 납니다.
이렇게 모든지 자기가 행한다고 생각하니까 뒤로 두두둑 물러서 가지고 나중에는 믿음이고 뭐고 다 귀찮고 싫은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누가 그렇게 만들었냐 하면 목사들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목사들이 금요일 철야예배에 나오세요. 새벽기도 나오세요. 주일날 나오세요. 헌금하세요. 십일조 하세요. 교회 건축헌금하세요 뭐 하세요 뭐 하세요……. 자꾸 시키니까
여러분 사람의 본성은 노는 겁니다. 호모루덴스라는 책에 보면 사람의 본성은 노는 건데 그 노는 것은 사람의 본성은 오락하는 것이 본성이에요. 그래서 일하는 이유가 오락을 즐기기 위해서 일하는 거예요 그 오락의 내용이 전쟁이에요. 내편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승리하고 내편이 아닌 것은 무조건 죽어줘야 되는 거예요
그럴 때 사람은 희열을 느끼는 거예요 우리 초등학생들 희열 뜻이 뭔지 알아요? 희열은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희열 중에 최고의 희열이 월드컵입니다. 젊은이들이 붉은 티를 입고 같이 응원할 때 도대체 누가 저 사람들 십자가의 원수 아니라고 이야기합니까? 그들이 무엇에 열광합니까? 왜 열광합니까? 왜 그렇게 한 통속이 되는 건데요 평소의 그들의 사고방식이 어떠했기에 어떻게 한 통속이 되느냐 이 말입니다.
인생의 즐거움을 어디서 찾기에 행복을 어디서 찾기에 보람을 어디서 찾기에 애써서 공부하고 애써서 교회 다니고 열심히 기도한 그것 자체가 즐거움이 아니었고 사실은 교회 다니고 공부해서 힘을 모아서 그 힘을 어디다 써먹나 하면 내가 있는 자리는 무조건 승리의 자리가 되고 나에게 대드는 놈은 모두 다 작살나라……. 그러니까 모든 세상이 십자가의 원수가 아니고 나의 원수로 간주하는 즐거움 내가 돛대가 되고 나머지는 다 적이 되서 남에게 굴복하는 그런 광경을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습니까?
목사에게도 이런 것이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서 복음 전하는데 누가 와서 목사 당신! 하고 손가락 내밀다가 손가락이 얼어붙어서 내가 ‘주여!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하니까 손가락이 다시 풀리는 거……. 열왕기상에 나오는 거예요 그런 것을 이렇게 보여주면 목사가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역시 난 주의 종 맞아 나한 테 까불면 저주받는 거야’ 라고 하잖아요. 바로 그 태도와 그 마음가짐이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겁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마지막 지점이 뭐냐 하면 부활과 가장 가까운 지점이 무엇이었습니까? 십자가 이었죠. 그러면 하나님마저 이 땅에는 사람들한테 천대받아서 배척받아서 결국 간곳이 십자가 갔잖아요. 지난 시간에 했는데 빌립보서 3장10절 봅시다.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죠. 죽으심을 본받지 아니 하면 어디에 이르지 못합니까? 부활에 이르지를 못하는 거예요 주님께서 오신경로를 밟지 아니 하면 부활은 어림도 없습니다. 부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부활 없어요. 십자가 지점에 서야 부활이라는 조명발이 있는 거예요 십자가에 가지 않는 자는 부활은 남의 이야기입니다. 교회 간다고 부활되는 줄 알아요. 십자가 있어야 돼요 십자가에 서야 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십자가에 설 때 우리는 죄인으로 서는 겁니까? 의인으로 서는 겁니까? 죄인으로 서는 거예요 예수님마저 저주받는 모습, 죄인으로 섰잖아요. 십자가 질 때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했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십자가 서면 어떻게 돼요? ‘우리는 죽어 저주 받아 마땅합니다.’ 이래야지요. 예수님이야 어찌하여 하지만 우리는 어찌하여 할 것도 없어요.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 저주받으니까 어찌하여 하지만 우리는 당연히 저주받아야 하지요 이렇게 십자가에 설 때 비로소 내가 대학교 총장이 되던 내가 변호사가 되던 내가 의사가 되던 하나님이 변호사 앞에 꼼짝 못하고 하는 그런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대학총장이기 때문에 깜짝 놀라고 이것은 아깝다 하는 그런 것은 없어요. 그냥 죄인입니다. 죄인인데 총장하면서 죄를 드러내게 했죠. 의사하면서 죄 들어내게 하시고 목사는 목사하면서 죄를 드러내고 장로는 장로하면서 죄를 드러내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자기가 가진 직업 여러 가지 있지만 그것이 몽땅 소용없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아무짝에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행복합니까? 안 행복해요? 나에게 걸치고 있는 모든 직업과 평생 동안 내가 모았던 것이 나의 자리 나의 돗자리 내가 지금 까지 모아왔던 성과가 있는 그것이 남들 보기에는 재벌이라고 부러워하던 그것…….
여러분 박지성 선수가 1년 수입이 70억입니다. 재원씨 알았어요? 어느 세월에 모으겠어요? 세금이 반 나가요 50억 나갑니다. 그런데 박지성이 언제 성령 받아서 십자가 영을 받아서 주여! 죄인입니다. 할 때 다른 사람이 70억 버는 박지성보다가 무슨 면을 보겠어요? 도대체 박지성이가 무엇을 보고 저렇게 돈 잘 벌고 축구 잘하면서 뭐라 합니까?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박지성이가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같이 가서 같이 쳐다보고 그 자리에서 뭐가 보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세상에 70억 벌어도 아무 의미 없다는 거예요 안개라는 겁니다.
신학박사 박사증은 진작 찢어버려야 돼요. 목사증 그것도 찢어버려야 돼요. 주님 앞에서 찢으면 훌륭한 거예요 왜? 그것이 부담이 되고 스트레스가 되니까 목사답게 신학박사답게 의사답게 판사답게 이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겁니다. 찢어버려야 돼요. 나는 그냥 내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된 것으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주여 나는 이것으로 족합니다. 충분합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이 말입니다. 네가 예수를 본받고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십자가 앞으로 너희를 세워 줄께’ 그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다시 정리하면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현재 내가 나 된 것이 일체 내가 어떻게 해서 된 일은 절대로 아니고 밑에서부터 이미 뜻에 의해서 차고 올라와서 지금에 내가 됐다 그런데 차고 올라온 하나님의 일에 모든 초점은 오직 십자가의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십자가의 원수가 되었다는 말은 결국 그것이 지옥 가는 사람은 오직 십자가의 원수라는 이유 때문에만 지옥 가는 거예요. 십자가라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최 정점이에요. 오로지 주님께서 다 이루셔서 하신 일이기 때문에 그 십자가에서 천국과 지옥이 판단되는 겁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특이성이라고 하는 데 특이성이라는 것은 그 지점에 서야 방향이 결정되는 것을 특이성이라고 해요. 만약에 여기 서 있으면 방향은 위라는 방향이 결정되어 있죠. 여기 서 있으면 내려오는 방향이 결론되어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온다. 밑에서부터 올라온다. 하지만 이쯤에 서면 내려갈까? 말까? 하는 방향은 여기 이 지점에 설치하는 거죠. 천국이냐 지옥이냐 하는 것은 천국과 지옥을 가름하는 최 정점에 와야지 이쯤해서 천국이고 지옥이고 안 돼요. 이쪽은 저쪽이 안보이고 저쪽은 이쪽이 안보이니까 산비탈이라는 정점에 서야 이쪽은 확연하게 천국이고 저쪽은 확연하게 지옥이고 둘이 섞이지 않는 둘이 섞일 수 없는 그 중앙지점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원수라는 말은 십자가의 원수가 될 때 너는 방향적으로 이미 지옥 갈 방향이다 이말 입니다.
십자가의 원수의 특징은 때려죽여도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내가 알아서 이끌러 왔다고 우기는 사람, 이것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아듣지를 못해요 ‘내가 열심히 기도해서 부흥 시킵니다.’ 그게 아니거든요 목사님 그게 아닙니다. 이 교회 부흥된 것은 이 교회부흥을 통해서 우리가 왜 죄인일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간단하지요 교회 부흥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십자가 믿는다 하니까 곧이들었죠. 막상 부흥되니까 이제는 교회가 아까운 거예요 교회 50명 되다 2천명되니까 2천명되고 교회 손 털고 나가라 하니까 아까워 죽는 거예요 왜 자기가 평생 낙타 무릎으로 기도 해서 2천명되었다고 우기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평생 동안 십자가의 원수로 만들었어요. 자기만 원수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교인들을 원수로 만들어 버렸어요. 진작 그 교회에서 십자가 방향설을 이야기했더라면 그 교인 모두가 교회를 안 믿고 십자가 사건을 믿을 건데 자꾸 목사가 평소에 교회 키우세요. 교회 부흥되어야 한다 하니까 교인들이 그것이 하나님 뜻 인줄 알고 교회 붙들고 가니까 그것이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줄 미처 몰랐죠. 목사만 나쁘다고 할 것이 못돼요 교인들이 교회 오면서 ‘목사님 십자가 복음만 알려 주세요.’ 하는 교인들이 없거든요 ‘복주세요 복 내놓으란 말이야’ 이렇게 나오니까 목사님이 ‘복 줄께 받쳐라’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으라 이 말입니다. 쉽게 복 주는 거예요.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으니까…….
뭐 사랑의 교회 사람이 많아서 교회 2천억 주고 짓는다 하는데 거기에 어떤 목사가 와서 복음만 전해 버리면 몇 만 명 교인이요 그 다음 20명 정도 남을라나 교회 텅텅 빕니다. 교회 아무도 안 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마신 그 쓴잔을 마십시다.’ 하는데 누가 나와요 복 달라고 온 무당 제단에, 사랑의 교회라는 무당 제단에 왔는데 여러분 그것이 주의 뜻이 아니고 우리는 이미 구원 받은 자로서 주님의 길을 가기 위해서 주님 마신 쓴잔을 우리같이 마십시다. 처음에는 몰라요. 처음에는 내가 잘 못 들었나 싶어서 한 500명 남겠죠. 세 번째 네 번째 되면 한 20명 남습니다. 물론 남기 전에 목사부터 쫓겨나겠지요.
세상에 사도 바울을 목사로 초빙하는 데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을 왜 초빙 못 하느냐 하면 사도 바울 당시, 고린도후서 당시 이미 그 모든 교회를 사탄의 일꾼들이 장악했던 거예요 악마의 종들이 이미 교회 마다 장악했어요. 교회라고 하는 곳은 죄를 확산시키는 장소에요.
사람들이 교회 와야 제대로 죄가 뭔지 알아요. 술집에 가면 죄도 아닌 것을 죄라고 하는 거예요. 술 먹고 싸움질하고 그것은 죄도 아니에요. 그것은 아주 수준 낮은 죄예요. 진짜 수준 높은 죄, 하나님을 어떻게 욕보이느냐 할 때는 세리와 창기가 욕보인 게 아닙니다. 누가 욕보였습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율법사들과 서기관들 소위 신학자들 목회자들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죽이는 데 주동했잖아요. 술집에 조폭들이 예수를 핍박한 것이 아니에요. 진짜 죄는 교회 가서 예수로 복음 이용해서 교회 키우려고 하는 것이 그런 작자들이 ‘devil of devil’ 악마 중에 악마 ‘king of king’ 최고죠.
죄의 왕 노릇 한 다는 것은 이미 우리는 똘마니라서 죄가 시키는 대로 그냥 따라 가는 것이 똘마니에요 그러면 우리는 시키는 그대로 하면 그것이 죄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피스톤으로 밀어붙여서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은 죄의 똘마니 악마의 똘마니로 그렇게 만들었어요. 여러분 아니라고 하지 마세요. 참 부탁합니다. 아닌 게 아니에요. 그게 진짜에요 왜 성경에 나오니까 하나님은 참되시나 모든 인간은 거짓되다. 이게 로마서 3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모든 인간은 거짓되다하면 거짓된 줄 아세요. 나는 빼주세요 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참되시고 모든 인간은 거짓되다 하면 거짓된 것 맞아요. 거짓된 인간은 그냥 지옥가야 되요 그뿐 이에요. 천국 안 넣어줘도 상관없어요. 왜 우리는 거짓되기 때문에 가야 되는 겁니다.
행여나 십자가 앞에서 거짓된 것 알고 죄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것은 여러분의 공로가 아니고 여러분들이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이기 때문에 때가 돼서 그것을 깨닫게 한 겁니다. 모든 공로는 주님 앞에 돌려져야 돼요. 사람들이 말씀을 안 듣는 이유는 평소 버릇이 내가 행해서 지금 보다 내 가치가 높이는 일에 매진하기 때문에 그래요 십자가 지려고 아르바이트하는 사람 없습니다. 십자가 지기 위해서 보험건수하나 올리는 사람 없습니다. 지금 보다 삶의 질이 나와지고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 여러분 성경공부해서 살림살이 나아졌습니까? 망했어요.
그런데 그 주님가신 그 좁은 길을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선택할 수도 없고 그 길에 참여 하지도 못하고 동행하지도 않습니다. 주의 뜻이니까 우리가 가는 길이 좁은 길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죄의 종이잖아요 죄의 종이 좁은 길 넓은 길을 선택하면 이 좁은 길이 좁은 길이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어려운 문제 아닌데 다시 할게요. 죄의 종이 ‘나는 좁은 길로 갈래’ 해서 좁은 길로 가면 그게 좁은 길입니까? 넓은 길입니까? 이거 넓은 길입니다.
예를 들면 수녀들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들 나는 부족하다 하는 사람들……. 이거 전부 넓은 길이에요. 금식하는 사람들 몇 달 굶고 철야하는 사람들 넓은 길이에요. 남들 보기에 좁은 길로 보이죠. 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길이에요. 그런데 인간이 할 수 없는 길을 가신 분은 이만큼 넓어도 그게 좁은 길이에요. 우리는 매일 눈만 뜨면 이 일도 내가 원한 하루가 아니고 이 직장이나 이 모든 교회나 이 모든 사항도 이 날씨도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월드컵에 붉은 옷 입고 돌아다니는 것도 내가 원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있으면 생명의 길 좁은 길로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상과는 한 통속이 안 되는 거예요
월드컵 이야기 해 보면 월드컵 할 때 ‘치 예수도 안 믿고 저게 뭐하는 짓이야’ 하겠지만 막상 상암 경기장이나 거기에 휩쓸리게 되면 자기의 숨겨진 본색이 다 나옵니다. 막 기도가 절로 나오죠. ‘주여 한 골만, 한 골만 넣어주세요’ ‘붉은 악마 응원 속에서 100대 0으로 져라’(하하) 이런 집회에서 힘을 모아서, 기를 모아서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거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겁니다. 정 응원하고 싶거든 인간이 할 수 있는 응원하지 마세요. 그냥 집에서 할 일하세요. 그래서 한 골 넣으면 주의 은혜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괜히 기를 모으지 마세요. 그렇게 되면 말씀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내 뜻이 가미된 십자가의 원수가 하는 짓이 바로 그 짓이 되는 겁니다. 월드컵 보면 압니다. 앞으로 월드컵, 그것은 유혹꺼리도 안됩니다. 앞으로 어떤 유혹이 올지 모르겠어요.
‘같이 합세를 하자! 같이 한 통속이 되자! 너 여기서 왕따 되면 안 돼. 그럼 넌 죽어.’ 이런 식의 유혹이 얼마나 많이 찾아온다고요 그럴 때 마다 ‘나는 거기에 동참하지 않았어. 나는 벗어났어.’ 이런 행함으로 여러분들이 구원받는 것 아닙니다. 그냥 ‘나는 그런데 왠지 관심이 없어 나는 내가 살아가는 것은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기 때문에 내가 뭘 더 한 다고 나에게 효과 있는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주는 은혜로 살아 왔는데 앞으로 그럴 거야’ 라는 식으로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것이 비록 옛날 죄의 행세가 나올 수 있지만 그것이 이미 십자가에 포대기로 싸여서 주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증거하는 증거로서 우리인생이 그 좁은 길을 향하여 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완전하게 행해서가 아니라 내가 쉴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의 노동을 생각안하다보니까 그 자체가 주님의 노동이 되고 주님의 은혜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은 어디를 가도 주님의 하신 일을 증거하는 성도가 되는 겁니다.
서울100611 빌3장17절b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빌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빌 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18절에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절에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십자가 원수가 되면 멸망이에요. 십자가 원수가 되면 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