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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눅 6:27-33 (사 랑)우리교회누가복음

눅 6:27-33 (사 랑)

이름 : 우리교회(IP:220.81.41.203)

본문 : 누가복음 6장27-33절
제목 : 사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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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10-06-13 13:31

사랑

2010년 6월 13일 본문 말씀: 누가복음 6:27-33

(눅 6:27, 개역)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눅 6:28, 개역)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29, 개역)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눅 6:30, 개역)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눅 6:31, 개역)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눅 6:32, 개역)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눅 6:33, 개역)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오늘 말씀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 자신이 허구한 것이 아니라고 우기도 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자기부터 챙기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와같은 말씀은 전혀 우리 몸을 통해서 나올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우리의 것을 건지지는 것이 아니라 일단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신의 것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것을 우리 속에 집어넣으시고서는 그 자신의 것을 도로 획득하는 식으로 우리를 건지십니다. 나라호 로켓이 두 번씩이나 하늘에 쏘아올렸지만 땅으로 도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만약에 우리 교회 교인들을 그 로켓 위에 얹어놓고 우리교회에서 쏘아 올렸는데 얼마 안가서 도로 지상에 추락한다면 목회자의 심정을 어떠하겠습니까? 기가 찰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천국에 이르지 못하고 도로 떨어지는 겁니까? 그것은 우리 자체가 하나님 보시고 헛되고 헛된 존재인 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그것이 하늘의 고리에 걸리는 부분이 따로 있어 그것에 걸어서 하늘나라에 당기면 구원되는 겁니다. 따라서 나라호 로켓처럼 지상에서 추진력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당기는 힘으로 구원되는 겁니다.

에베소서 2:8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마저 우리가 원인이 되어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을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주신 걸개를 알려주는 믿음입니다.

그 걸개는 바로 로마서 8:36-39에 나와있습니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 밖에서 사랑을 찾지 말하는 말입니다. 도마라는 제자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찾아왔습니다. 과연 예수님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가름합니까? 바로 손에 난 못자국과 허리에 난 창자국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가까이 접근한다는 것은 바로 그 못자국과 창자국이 가까이 접근한다는 겁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멀어진다는 것은 그 못자국과 창자국이 멀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못자국과 창자국이 멀어진다는 말은, 그 흔적과 관련지어서 나 자신을 규명하거나 규정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 됩니다. 십자가와 무관하게 자기 자신을 규정하게 되면 자신을 항상 잘난 존재가 되고 말입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앞에서마저 죄인이 아닌게 되어버립니다.

이것은 우리를 걸어서 건져주시는 걸개의 기능을 해내지 못하는 식입니다. 올라갔다고 공중에서 폭발하고 도로 땅에 추락되는 형국입니다.

자신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채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고 우리는 그 말씀대로 살려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마치 명승지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연도에 가득 들어선 선물가게에 매혹되어 진짜 명승지의 가치를 놓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실천에 옮겨본다는 식으로, 자신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에게 떡을 해다 바친다든지, 아니면 돈 떼먹기 위해 돈 빌려달라는 사람에게 그냥 돈을 줘버린다든지는 하는 짓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래놓고 천국 입구에 들어서니 하나님께서 들어오지 말하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원수 여기 한 사람 추구요!”라고 천사가 외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 자신을 헛된 죄인이라고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라는 관계에서만 파악됩니다. 그 외의 노선에서는 사랑을 모르게 됩니다.

5:10-11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수란 어디서 발생하는 겁니까? 원수란 자신의 의를 가지고 창조주께서 하신 일을 무효화 만들어버리는 일을 말합니다. 피조물과 피조물 사이에서는 진정한 원수란 발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두다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원인은 원인되시는 분끼리만 모이게 되는데 그곳은 바로 하늘 나라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만이 원인이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결과일 뿐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원인을 자기 행함에 두고서 출발하기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모독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받는 자되기 위해 야곱은 태어나야만 했고, 하나님께 미움받는자 되기 위해 에서는 태어나야만 했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존재 원인은 각자 본인의 행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는 일점일획이라도 양보없는 그 말씀의 터널을 지나가면서 왜 자신들이 하나님의 원수일 밖에 없는 가를 분명히 해야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자신의 몸이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압니다. 만약 자신의 몸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면 그 때부터 그것이 곧 허구요 허무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성도의 자리는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사랑과 용서의 훈풍이 불어옵니다. 그러면 성도는 비로소 ‘원수에 대한 예수님의 끊어지지 않는 사랑’을 압니다. 야곱을 야곱되게 하신 그 창세전의 사랑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못할 일이 없습니다.

사랑 안에서 우리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즐겨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나의 증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모든 것이 몽땅 하나님이 것임을 놓치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우리교회

10-06-16 18:35

031강-눅6장27-33(사랑)-luk100613

2010-06-16 10:41:17 녹취: 오용익

031강-눅6장27-33(사랑)-luk100613-(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 누가복음 6장 27절에서33절까지입니다. 신약성경 99페이지입니다.

누가복음 6:27-33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주째 아멘이 안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했다고 하면 용서가 되는데 만약에 옆에 있는 김 집사나 박 집사가 이 이야기를 했다면 용서가 안 되지요. 이런 소리는 네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소리가 이렇게 빈정거릴 겁니다. 과연 이 말씀이 함부로 해서는 안 될 이야기입니까? 과연 우리에게 이 말씀은 주제로 삼지 말아야 할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죄인일 뿐이지요. 여기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달라는 자에게 거저 주라.’는 이 이야기가 과연 자본주의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이야기이겠어요? 그리고 ‘너를 칭찬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그게 무슨 사랑이냐, 그런 것은 조폭들도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너희들이 조폭이 아니고 하나님과 영원히 살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너를 대접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너는 사랑할 수 있어야 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그대로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려면 조건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이 다 허상이라는 거예요. 내 인생이 허상이 아니고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진짜라고 여겨진다면 그 순간부터 오늘 읽은 이 말씀은 날아가 버립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중심으로 살게 되어 있어요.

사람이 자기만 중요하고 자기에게만 관심이 있을 때는 자연적으로 남들의 것은 다 허구가 되고 허상이 돼요. 혹시 그 중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관련되어 있기에 실제라고 느끼는 수가 있겠지만 사람이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자기가 하는 의로움에 집중해 버리면 자기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남의 일은 있으나 마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허구가 되는 거예요.

내 것이 중요하고 남의 것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허구가 된다면 이 말씀이 우리 몸을 통해서 밖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내가 미쳤다고 내 것을 남에게 줍니까?’ 이렇게 나온다 이 말이죠. 내 몸이 살아 있다는 것이 실제 현실이고 내 손톱 밑에 가시가 박혀서 내 몸이 아프다는 이것이 나의 현실이고 남의 이빨을 빼도 그것은 현실이 아니고 허구예요.

내가 아픈 것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내가 아픈 것이 지금 제일 중요한데 그 실제현실인 내 몸을 놔두고 허상인 남을 돌봅니까? 그것은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 말이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주께서는 ‘그러니까 네가 구원을 못 받지.’ 그렇게 되는 거예요. ‘자꾸 자기 인생은 허상이 아니라고 우기니까, 내 것은 내 것이라고 자꾸 우기니 그런 식으로 백날 해봐라 구원이 되는가, 안되잖아.’라고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할 말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 모양 이 꼴로 태어났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얼마 전에 나로 호 로켓을 발사했는데 작년에도 시도했지만 올해도 또 떨어졌어요. ‘여러분, 떨어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중력이 있어서 떨어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그것이 비정상이에요. 그런데 인간들의 힘으로 올려보겠다고 또 올렸는데 또 떨어졌습니다.

제가 그걸 보고 가슴이 덜렁 내려앉았어요. 그 로켓의 머리위에 성도가 하나씩 얹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초밥에 생선살 올리어져 있듯이 그 로켓에 사람 하나씩 올려 봅시다. 올려놨는데 지상 57킬로미터 지점에서 도로 떨어져버리면 목사로서는 기가 찬 거예요. 천당 가라고 올려놨는데 못 올라가는 거예요.

올라가면 떨어지고 올라가면 떨어지고, 그렇게 떨어질 바에야 처음부터 교회 뭐하려고 왔습니까? 교회 왜 나온 거예요? 목회자의 고민이 거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천국에 올려 보내느냐. 이런 고민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의 고민이란 어떻게 하면 교인들 돈이나 빼먹는가, 그것뿐입니다. 목사 자기 몸만의 현실이 현실이고 나머지는 현실이 아니니까요. 자기만 섬기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야,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천국 궤도에 올려 보내느냐?’ 27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해서 지옥 갈 ‘저희’와 구원받을 ‘너희’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구분을 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시킬 때는 우리가 로켓타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자기 것을 획득하는 식으로, 자기 것을 회수하는 식으로 하기 때문에 도중에 지상 57킬로미터 지점에서 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의 것을 던져 놓고, 자기 것을 줍는 식으로 줍다 보니 걸려든 것이 우리라는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자기 것을 칩으로 심어 놔요. 심어 놓고 우리 속에 들어온 하나님의 자기 것을 하나의 걸개로, 고리처럼 걸면 딱 걸려서 끌 수 있는 그 걸개가 있는데 하늘나라에서 고리가 내려와서 다른 데는 안 걸고 하나님이 주신 그 걸개에 고리를 걸어서 잡아당기면 그것은 끊어지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교회 온 사람들이 자꾸 자기 헌금한 것, 봉사한 것, 기도한 것 자꾸 이걸 붙드니까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했고,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출석했습니다.’ 이런 것만 보이는데 주님의 걸개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끊어지지 않는 것이 있어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 8:35 ; 8:39)

기근? 핍박? 가뭄? 태풍? 월드컵? 그 어떤 것으로도 끊어지지 않아요. 어떤 것들로도 끊어지지 않는 것,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 없으리라.’ 마귀? 마귀가 와도 안 끊어져요. 어떤 부교역자가 큰 교회 설교를 하는데 그 설교가 당회장목사와 모든 장로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설교라면 그 다음부터 그 부교역자가 자기 고민을 하겠습니까?

그 부교역자는 하나님이 주신 그 걸개,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 그것을 걸개로 해서 그것만을 딱 걸어서 가기 때문에 그것만 현실이고 실체고 나머지의 자기는 허상이기 때문에 내가 교회에서 쫓겨나든 말든 허상은 허상으로 돌려놓고 주께서 거시는 그것만 붙들면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 사랑이라는 거예요.

제가 서울서 강의할 때 이런 강의 했거든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올 때 어떻게 찾아오는가? 그것은 부흥사나 경험 많다는 목사들의 간증 같은 것, 6.25때 폭탄 맞았다는 이야기같은 것 들지 말고 성경 이야기를 들어야 됩니다. 성경에서 이미 부활해서 살아계신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건질 때 걸개는 딱 하나 밖에 없어요.

‘내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아라. 그리고 내 허리에 있는 창 자국을 보아라.’ 이걸 보여주니까 도마가 하는 말이 ‘주는 하나님이요 살아계신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에 십자가의 흔적이 안 지워지고 그대로 있더라 그 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 같으면 ‘난 귀신이다. 짠, 나는 부활했다.’ 그러면 될 텐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건질 때는 ‘나 부활했다.’ 하고 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인간들이 하도 많습니다. ‘나는 부활한 주님을 봤다.’고 귀신 본 것 같이 말하는 인간들이 많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예수님 봤다, 키는 180이고 수염도 나고 인물은 훤하더라.’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건지는 것,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는 그 걸개는 주님의 손에 있는 못 자국과 자기 허리에 있는 창 자국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점점 가까이 오게 되면 못자국과 창 자국이 점점 더 크게 보여서 그것이 가까이 오게 되면 우리는 자꾸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저 창자국은 누구 때문에, 저 못자국은 누구 때문에? 아하, 나 때문이구나.’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이 오면 올수록 ‘나는 죄인중의 괴수’라는 것이 점점 더 드러나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이 멀찍이 있으면 갑자기 나는 허상이 아니고 내가 잘난 사람이 되어버리며 ‘내가 이만큼 잘났고 교회에서 나만한 일군이 없는데 설마 나 같은 인간을 버릴까?’라고 자기 의를 구축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회수를 하는데 자기가 집어넣어준 것 가지고 회수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볼 때 ‘아이고, 인물 잘났다.’ 이런 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염두에 두고 창자국과 못 자국을 가지고 다가오는 겁니다. 그러면 ‘그동안 허상인 것을 내가 쥐고서 내가 내 로켓을 만들어서 내가 나를 하늘위로 올리려는 이 자체가 헛짓이었구나.’ 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수할 때는 반드시 그 과정이 있어요. ‘너의 모든 것은 애초부터 너의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제가 교인들을 볼 때에 안타까운 것은 허구적이고 허상인 것에 말려든다는 그것인데 그걸 볼 때에 분통이 터지고 안타까워요. 아무것도 아닌 허구적인 유혹인데 그것 때문에 웃고 그것 때문에 울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회수할 때 어떻게 통과하느냐, 본문의 말씀을 통과하게 되어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동화사에 소풍을 간 적이 있어요. 옛날부터 저는 절을 안 좋아했습니다. 불당에 피워놓은 향기가 이상하게 심기를 건드려요. 비빔밥도 별로 안 좋아해요. 배고파서 어쩔 수 없이 먹기는 하지만.

동화사에 가게 되면 동화사보다 더 신기한 것이 있어요. 명승지에 가면 대개 가는 길목에 늘어선 관광용품 파는 가게가 있잖아요. 동화사가 신라 언제 적 지어진 절이니 뭐니 그런 것은 어린 마음에 관심 없어요. 동화사 들어가기 전에 늘어선 물건 파는 가게들이 재미있어요. 불면 혀처럼 죽죽 나오는 것도 있고 신기한 것들이 많아서 재미있어요.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것이니까 자기 것을 회수할 때 무엇을 통과시키느냐하면, 이 말씀을 통과시키는 겁니다. 그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이쪽 관광용품가게에 뭐라고 간판이 되어 있느냐, ‘원수를 사랑하며’라고 되어 있는 거예요. 이쪽은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라고 되어 있어요.

그 옆의 가게에 가니까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라고 간판을 붙였다 이 말이죠. 그 가게 실컷 구경하다가 다른 가게 가니까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라고 간판이 붙었어요. 텔레비전 본방보다 홈쇼핑광고가 더 재미있어요. 쇼핑몰에서 ‘이건 오늘까지입니다.’ 하면 환장들 합니다.

연도에 사람들을 미혹할 만한 것들이 죽 가더라는 말이지요.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여러분, 제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하면서 혼자 신나서 이야기를 하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것이 이해가 안 될 겁니다. 어제 슬쩍 스치듯이 보니까 네비게이션인데 DMB가 3D로 나오는데 삼십팔만 원인가에 판다고 하는데 보면 또 갖고 싶어요.

전부 다 유혹거리잖아요. 그런데 말씀이 죽 늘어서 있는 곳을 통과하게 되면 어떤 유혹거리가 있느냐하면, 오늘 설교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나옵니다, 내가 원수를 사랑해서 그 원수 사랑을 근거로 천국에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받는 겁니다. 표정들이 왜 그래요?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누가 내 뺨을 칠 것 같으면 다른 편 뺨도 돌려댐으로 말미암아 ‘이 정도로 나는 천국백성에 합당한 거룩한 백성인 것에 대한 폼을 내고 싶다.’ 하는 유혹이 대단한 유혹입니다. 그것을 죽 보게 하시는 거예요. 31절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그 까짓거 하지 뭐.’

그 다음에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아하, 그러니까 나에게 해코지를 하는 사람조차 내가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을 근거로 해서 나는 로켓 타고 천국 간다.’라는 유혹을 받는 겁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난 뒤에 맨 날 시끄럽게 떠드는 앞집에 떡 싸들고 찾아가서 딩동, 초인종 누르고는 ‘그동안 우리가 이웃 간에 싸우고 지냈는데 제가 성격이 좀 예민해서 그렇습니다. 앞으로 좋게 지냅시다.’ 하고 떡 주고 돌아서서 ‘옳지I, 주여, 제가 드디어 누가복음 6장 31절 말씀을 이루었습니다. 제가 이룬 이 성과로 제가 천국 갈 수 있겠지요?’라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주제파악을 못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가 지켰다는 말씀을 뜯어서 훈장처럼 달고 다니면서 ‘5년째 교회 다니면서 이 말씀도 성취했고 10년째 교회 다니면서 이 말씀도 성취했고 15년째 다니니까 이 말씀도 이루어지더라.’라고 더덕더덕 훈장을 다는 것처럼 하는 겁니다. 훈장 구경하고 싶으면 북한 인민대회 같은 것 할 때 군인들이 훈장 다 달고 나와요. 달 데가 모자라서 바짓가랑이에도 달고 나와요.

옛날 빨치산 활동했던 사람들이 남아서 장군 따먹기 하고 있어요. 아주 퇴행성 질병입니다. 어린애의 꿈을 아직도 갖고 있는 거예요. 이러한 명승지의 관광용품 파는 코스를 밟아서 주께서는 통과케 하십니다. 그런데 죽 통과해서 동화사 들어가는 입구로 들어서는데 주께서 못 들어가게 하고 막아 버리네요.

훈장이 달려 있는데, 목사 되고 장로 되고 개척교회 열군데 하고 자기 딴에는 십일조니 뭐니 한 것이 참 많은데, 아예 들어가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부아가 나서 훈장이고 뭐고 다 떼어버리고 ‘누구야, 내 앞길 막는 작자가.’ 하고 그 사람을 죽여 버리지요. ‘감히 나같이 의로운 사람을 천국에 못 간다고 단정을 짓는 너는 누구야. 내 손에 한 번 죽어봐라.’ 하고 죽여 버려요.

죽여 버리면 그 때 하늘나라에서 박수소리가 들립니다. ‘참 잘했다. 아주 잘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어이, 천사! 하나님의 원수 하나 나왔어. 275번 적어놔. 하나님의 원수.’ 무슨 뜻이냐 하면, 인간은 자기가 하나님의 원수인줄도 모르고 자기 딴엔 원수를 사랑한다고 자기가 원수인자와 아닌 자를 자기라는 실제에 근거해서 결정내린 겁니다.

이것은 성경을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인간에게 없다는 것을 몰랐던 거예요. 인간은 성경을 봐도 날 때부터 자기중심으로 살기에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어떤 짓도 다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칼로 자기 몸을 그리라고 하면 그렇게 해서라도 구원받고자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왜? 자기는 헛되지 않다고 우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네가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준 거예요. 잘 이해가 안 되시면 실제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징크스를 갖고 있어요. 자기가 응원하는 팀은 무조건 진다는 거예요. 하여튼 백발백중 자기가 텔레비전 보면서 응원하는 팀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드디어 한국하고 그리스 하고 축구를 하게 되었어요.

그 남자가 ‘여보, 우리 마트나 가자. 나는 안 보려고.’ 자기 팀이 이기도록 하기 위해서 희생정신을 발휘해서 마트에 가고 있는데 가고 있는 그동안에 벌써 한 골 넣어버렸어요. 그러니까 마트에 가다가 그만두고 ‘여보 빨리 가자.’ 한 거예요. 이제 이겼으니까 마음 놓고 응원하러 가자는 거지요. 하나의 예를 드는 겁니다.

그래서 마트에 가다말고 도로 집으로 왔다? 와서 텔레비전 켜보니 벌써 우리 팀에서 두골을 먹었네요. 내가 응원한다 치면 마귀가 역사해서 두골을 먹게 하는 거예요. 집에 오자마자 또 다시 마트에 가자고 합니다. 왜? 응원하려고 하니까 벌써 두골 먹어버렸잖아요. 이것은 뭡니까?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을 가지고 세상 일이 누구와 관련되어 있다?

어떤 기의 흐름이 있어서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진다는 거예요. 이 사람이 성경의 기본도 모르고 있는데 성경은 내가 원인이 되어서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거나 지는 결과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원인은 원인끼리 놀고 결과는 결과끼리 놀아요. 성경을 보면 성부 하나님은 성자와 의논해서 누구를 구원할 것인가, 누구를 지옥 보낼 것인가, 이미 창세전에, 이미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다 이야기가 끝난 상태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사랑하는 자를 야곱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게 만들고 미워하는 자를 에서로 만들’기로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결정을 해놓은 상태에요. 그래서 마귀가 화를 내는 거예요. 마귀가 화를 내는 이유는 아무리 해도 자기 운명이 안 바뀐다는 것을 눈치채버렸거든요. 그런데 인간들은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지옥 가느냐, 천당 가느냐, 그것은 내 하기 나름이다.’라고 오해하는 겁니다.

그 오해중의 하나는 ‘내가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표정들이 왜 그래요? 성경에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네 믿음의 원인이 네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너는 믿음이 주어지는 결과로서 이 땅에서 살아갈 뿐이다.’ 하는 거예요. ‘믿음은 선물’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너는 하나님의 선물로 믿음을 받았다.’는 겁니다.

‘아니, 목사님,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물으신다면 내가 그 전에 원인이었던 그 원인에서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질 때, 여러 번 실습해 볼 때 그것이 낭패를 볼 때 비로소 우리는 느껴지는 겁니다. 우리교회 어떤 집사님께서 기도를 바짝 하고 남묘호랑게쿄, 거기에 전도하러 가셨어요. 그 이름을 윤○○집사님이라고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그냥 가면 마귀한테 밀린다고 기도를 바짝 하고 갔거든요. 기도를 잔뜩 하고 남묘호랑게쿄 그 집단에 전도를 하는데 씨알도 안 먹혔어요. 얼마나 멋진 경험입니까? 내가 하는 기도가 응답이 안 된다는 말은, 그렇게 기도 응답도 안 되는 인간인 나라는 주제가 구원받은 것은 원인이 나에게 없다는 이야기예요. 그 원인은 시간 공간적으로 창세전인 하늘에 있지 내가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패와 낭패를 되풀이하게 만들어서 내가 만든 로켓이 아니고 주님의 독수리 날개에 얹혀서 간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는 겁니다.

그게 주님이 주시는 걸개예요. 우리가 만든 새끼줄은 끊어져요. 우리교회 그런 분들 많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십일조 하는 버릇으로 우리교회 와서도 십일조를 해야 되는 줄 알고 해 보다가 아무도 안하거든요. 그러면 좀 해보다가 때려치웁니다. 처음에 한두 번 안할 때는 벌 받을까봐서 얼마나 마음이 졸였겠습니까?

한번 안 해도 아무 일 없고 두 번 안 해도 아무 일 없고, ‘야, 이거!’ 하지요. 십일조를 하면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복을 받는다는 그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면 그것을 안 해보는 거예요. ‘십일조 안 해서 어느 집안 날아갔습니다. 아무개 저주받았습니다.’라는 그 소리 듣고는 심신이 다 졸아붙었는데 그것을 일부러 안 해보는 거예요.

안 해본다는 말은 ‘벌 한 번 받지, 뭐.’ 라고 하는 거지요. 그렇게 하면서 뭘 느끼느냐하면, 내가 교회에서 뭘 바치고 전도하고 예배참석 한다고 해서 복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그 사실에서 문제점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내가 성경을 개뿔도 모르면서 내 몸 하나 건지려고 성경 봤던 지난 수십 년의 신앙생활이 다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작업입니다.

거기서 못 벗어나면 여러분의 로켓은 떨어집니다. 한 윤범 목사님도 강의에서 언급을 했지만 브레이브라는 어떤 청교도목사는 하루에 체크할 리스트가 수십 개가 돼요. 아침에 성경을 읽었는가, 기도를 했는가, 체크를 해요. 그런데 체크할 항목이 점점 늘어납니다. 사람의 심보가 이런 것이 있어요.

한 300미터 등산했잖아요. 그거 한 서너 번 하면 식상합니다. 그러면 500미터로 올립니다. 제가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사람은 천 미터 이상짜리 산이 없어서 500미터짜리 산을 세 번 왕복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얼마 안가서 네 번을 왕복해야 됩니다. 사람이 어떤 행세를 하게 되면 그 짜릿함이 얼마 못갑니다.

처음에 운동 안하다가 한 2킬로쯤 뛰면 자기가 황영조라도 된 줄 알지요. 차츰 그걸 늘려갑니다. 5킬로에서 10킬로, 이렇게 늘려가다가 나중에는 42.195킬로미터를 달리려고 시도합니다. 그것도 그냥 뛰면 재미없어요. 시간기록을 단축해 가면서 뛰지요. 등산하는 사람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가면 그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난코스, 어려운 코스를 골라갑니다. 미쳤어요. 16강이 목표라고요? 한 번 이겼다고 목표가 벌써 8강까지 올라갔어요. 인간이 승리하고 뭔가 일이 잘 되면 주님이 내미시는 못자국과 창 자국이 점점 더 나와 무관한 사람이 되어버려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딱 걸어서 구원하는 이 걸개가 없어져버려요. 마음에 안 두게 되는 겁니다.

‘나같이 주님의 축복을 받아서 하는 일마다 만사형통한 인간을 설마 버릴까?’ 이러고 있어요. ‘남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대접하는데 나에게 삐져있는 옆집의 이웃에게 떡도 대접할 줄 아는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하나님이 버릴까?’ 이러고 있다는 말이지요. 원인은 원인끼리만 알고 우리는 그 원인을 몰라요. 그러면 우리는 뭐냐? 그냥 결과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두 종류가 있다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했듯이 야곱 같은 결과가 있는 사람과 에서처럼 지옥 가도록 작정된 두 가지 결과밖에 없어요. 제 삼의 중립지역? 없습니다. 그 둘밖에 없어요. 그 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려면 내 행위가 나를 구원한다는 원인을 나에게서 철수시키시기 바랍니다. 철수시키세요.

주님은 죄인에게 어떤 것도 받지 않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를 혼자만 아는 것처럼 선언하고 있는데 이것이 히브리서 이야기입니다. 제사장이 소 바치지요? 양 바쳤지요. 염소 바쳤습니다. 주께서는 ‘안 받는다’고 하십니다. 처음부터 안 받는다고 하신 것이 아니고 받아놓고는 소용없게 만들어요. 소 바치고 멸망당하게 만들고 염소 바치고 멸망당하게 만들고, 요새 말로 하면 하나님께 어린양 바치고 지옥가게 만드는 거예요.

교회 다니고 지옥가게 만드시는 겁니다. ‘그동안 네가 헛짓했다.’ 큰 교회가 허상이라고 하면 화를 내는데 그 큰 교회가 허상이라는 것이기보다는 큰 교회를 다니는 내가 곧 허상이라는 뜻으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 원인과 결과, 결과와 원인을 어떻게 조인트 하느냐? 어떻게 원인이 하늘에 있다는 것을 아느냐?

하늘이 원인이 되어서 내가 이렇게 믿음을 선물로 받아서 그 선물을 뜯어보니, 그 선물을 받기 전에는 뭔가 내가 설쳐서 내가 구원을 받아야 되는 것처럼 알았는데, 하늘나라택배가 믿음이라는 선물로 와서 뜯어보고 십자가 피를 가지고 모든 성경구절을 다 대어보니 ‘아하, 이 성경구절은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될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원수주제에 뭘 남을 사랑해요, 사실은 내숭이면서, 자기는 자기밖에 모르면서. 제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로마서 5장 7절에서 10절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7절부터 보면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 자리, 우리가 펴야 될 돗자리가 뭐냐, 하나님의 원수 된 돗자리가 되는 거예요. 동화사 가는 도중에 이쪽 가게 저쪽가게 들러 가면서 뭘 느끼느냐, ‘아, 내가 하나님의 원수구나.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하는 그 이야기가 바로 나보고 하는 이야기구만. 네 뺨을 치는 자에게 다른 뺨도 돌려대라? 나는 그럴 맘이 없는데, 아하, 그러니까 내가 원수구나.’

성경말씀이라는 터널을 죽 통과하면서, 여기 잘 들어보세요, 죽 통과하면서 어떤 말씀이라도 일점일획이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을 지적안하고 그냥 넘어가는 법은 없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다.’라는 그 말씀도 누구를 위해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있는 말씀입니다. ‘이 돈밖에 모르는 인간아! 네가 바로 원수야.’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그 말씀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말씀을 어떻게 스물네 시간 잊지 않고 지킵니까? 집에 돈 한 푼 없을 때는 내가 돈 사랑 안한다고 하겠지요. 혹시 그런 마음이 들면서 자기에 대해서 착각도 할 수 있지만 갑자기 돈이요, 하면서 택배로 한 20억 들어오면 입이 쩍 벌어지면 ‘주여, 웬 은혜입니까?’라고 갑자기 나온다는 말이죠. ‘이런 종이 쪼가리가 왜 왔어?’ 이렇게 될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꼭 계산을 하는 거예요. 내가 돈을 사랑하지 않으면 돈 줄줄 알고. 주님이 바보입니까? 그 노림수에 말려들 주님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주님을 상대로 자꾸 속임수를 써요. 우리 자리가 하나님의 원수 된 자리에 있다는 그 자리에 그냥 푹 드러누우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의 바람이 순풍처럼 술술 불어서, 한여름 땡볕에 하나님 위한다고 설치지 말고 그냥 나무 밑 그늘에 돗자리 펴는데 그냥 펴지 말고 이름을 쓰세요, 하나님의 원수자리, 그래놓고 누워있으면 하나님의 용서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주여, 감사합니다. 하늘도 참 맑군요.’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한낮 땡볕에 돈 번다고 설치고 돌아다니면서 ‘주여, 이렇게 돈 번다고 나를 버릴 겁니까? 제가 이렇게 열심히 봉사하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버립니까?’ 제가 기존교회에 전도사로 있는 동안은 금요일마다 다니면서 구역예배를 인도했어요. 집사님들 권사님들 모여서 동네에 들어가기 전에 통성으로 기도하면서 기를 모아요.

‘주여, 우리가 가는 발걸음이 복음의 발걸음이 되게 하소서.’ 그렇게 기를 모은 뒤에 가는 동안에 전도지도 돌리면서 가곤 했지요. 부교역자가 전도사인 저에게 시키니까 그걸 하면서 생각하기를 ‘이 아주머니들은 이 시간에 별 돈 벌 거리가 없는 모양이다. 애는 다 커버리고 집안에 있어봐야 연속극이나 보고 있을 것이 뻔하니까 그래서 나오신 게 아닌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가 그분들의 신앙심을 모독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것도 염려가 되기도 했었어요. 그러데 제 말이 맞았습니다. 갑자기 아르바이트거리가 생겼다고 그 때부터 발을 끊어요. ‘맞구나, 일자리가 없는 그 틈새의 시간을 이용해서 교회 와서 구역예배니 이런 저런 봉사를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뭐냐, 구역봉사를 열심히 하면 돈 벌 거리를 혹시 주님이 주실까 하는 노림수를 가지고 오셨구나.’

지금은 훤히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도 익히 아시지요. 우리 패 다 깠잖아요. 지금은 패가 다 까여서 익히 아는 일인데 그 당시에 저는 초짜 목회자여서 아주 그 일이 신기했어요. 탄식을 했다니까요. ‘세상에서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잖아요. 원래 이 세상에 믿는 자가 없어요. 주께서 하신 모든 말씀은 ‘이 말씀 일점일획도 원래 너하고는 상관없는 것이다.’는 말입니다.

‘네가 원인이 되어서 구원받는 결과로 이어지는 구절은 이 성경 속에 한 구절도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돈을 사랑하지 않으면 돈 줄줄 알고 돈을 사랑하지 않는 척, 또는 ‘돈을 사랑하지 않게 하옵소서.’라는 통성기도를 교회마다 해대는 거예요. 하면 할수록 자기 자리는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가 아니고 황금색으로 점점 변해요. 이란의 카펫처럼 황금색으로 변해서 누가 자기가 펴놓은 자리에 똥싸놓는다든지 더럽히고 욕을 하면 화를 냅니다.

여러분, 다시 이야기합니다. 주께서 찾아올 때 손에 못 자국 박힌 것, 배에 창 자국 박힌 것으로 다가오면 거기에 걸 맞는 내 모습을 갖추어주세요. ‘왜 저 못은 찔렸는가, 왜 저 창은 저기에 찔렸는가, 내가 전적으로 죄인이구나. 내 행함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구나.’ 세리와 창기가 천당 먼저 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탕자가 사랑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내놓을 것이 있어야지요. 아무것도 없어요. 나 같은 것은 안 찾아와도 되는데 원인이 원인끼리 이야기해요. 원인이 원인끼리 이야기해서 찾아가게 되어 있어요. 야곱계열이기 때문에 찾아가도록 되어 있어서 찾아와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끊어지지 않는 사랑을 줄 때 현재 우리의 내 자리가 괜찮은 자리에서 천하의 몹쓸 자리로 변합니다.

그리고 평생 그 자리 버리지 마시고 기념품으로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기념품 자리 알아보려면 여러분이 성경을 자주 봐야 됩니다. 성경을 볼 때 마다 ‘내가 이것도 못 지키는구나. 또 못 지키네. 맞아. 이게 다 나보고 하는 이야기네.’ 이것을 하나하나 들어야 됩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5절,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세상에, 이 땅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라는 겁니다. 자기 생명이 허상이라는 겁니다. 허상 같으면 세상일에 울고불고 하지 않을 거잖아요. 이것이 바로 우리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끝으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목사님, 그게 전부입니까? 그게 다라면 우리는 그냥 하나님의 원수자리에 눌러 앉아 있는 것으로 다입니까?’

아니지요. 주께서 하나님의 원수자리에 올 때 피와 더불어 주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역할이 원수역할이고 주님은 원수마저 사랑하고 원수마저 대접하는, 대접 안 해도 되는 인간을 대접하는 사랑의 주님으로 오시게 됩니다. 그 때부터 나오는 것이 뭐냐? 주님을 좋아하게 된다는 겁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겁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주님의 창 자국, 못자국의 사랑을 받게 되면 16강이나 8강에 못 들어가도 우리는 내 인생 못할 것이 없어요. 이거 하라면 이것 하고 전도 하라면 전도하고, 내가 싫다고 할 이유가 없어요. 왜? 누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요. 어제 울산에서 주례를 했는데 혼주께서 주례사 설교한 내용을 올리라고 해서 올렸습니다.

그거 자랑한다고 또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은데 저는 주례한 설교는 잘 안올리는데 혼주께서 올리라고 명령을 하신 것인데 저는 누가 명령하면 잘 따르거든요. 그래서 올려놓았는데 신랑보고 물었어요. “신랑아, 네가 아내에게 올인 할 수 있느냐, 네 평생의 수고와 희생을 해서 돈 번 것과 함께 모든 것을 다 아내에게 줄 용의가 되어 있느냐?” “예!” 했어요. 표정자체까지도 충만하게 예, 라고 했어요.

혼자 살 때와 둘이 있을 때의 차이점이 뭐냐 하면, 내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랑하는 대상이 생겼다는 겁니다. 혼자 살 때는 그것이 엄청난 손해처럼 느껴집니다. ‘내가 벌었는데 미쳤다고 남을 줘?’ 그런데 총각남자가 아니라 남편남자의 특징이 뭐냐 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뭐든 아낌없이 줘도 슬프거나 노하지 않는, 그 여자가 모든 재산을 자기 이름으로 돌려놓고 다 도망가도 조금도 내가 노하지 않는, 제가 지금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제가 그 총각에게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느냐를 물었어요. “예!” 했습니다. 거기서 아니요,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결혼하기 전에는 나밖에 모르고 누굴 만나도 내 이익만 챙기다가 결혼을 해서 뭘 알았는가? 사랑을 알게 되면 사랑은 모든 이기주의를 박살내 버립니다. 까라면 까는 거예요. 하라면 하는 겁니다. 그것도 즐겨서, 좋아서.

저 같은 경우도 충분히 합니다. 왜? 돈을 제대로 못 벌어다 주니. 제가 만약에 한 달 수입이 천만 원쯤 되면 얼마나 아깝겠습니까? ‘아이고, 천만 원이나 줄 것 같으면 다른 여자를 고르지.’ 할 수도 있어요.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돈 못 벌게 만들어서 줄게 없게 만들어서 말이라도 ‘다 줄게’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는 이것이 얼마나 행복한 겁니까?

저도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알아서 들으세요. 사랑이라 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받으면 형제가 목 달라고 할 때 목을 딸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럴 때 다른 사람이 옆에 서서 ‘아이고, 신앙 좋네요. 성화 하셨네요. 와, 사랑이 많고 성경대로 사네요. 원수도 사랑하네요.’라고 하면 우리는 손을 저으면서 이야기합니다.

‘내 자리는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인데 나로 하여금 그렇게 비쳤다면 주께서 나를 걸어서 하늘로 올라가는 도중에 주께서 외부로 하나님의 사랑을 껍데기 같은 나를 통해서 발산하는 결과일 뿐입니다.’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증인이 되는 겁니다. 성령 받아야 사랑을 알고 사랑받으면 이 땅에서 어떤 것도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원인을 나부터 출발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애초부터 실수였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보니 원인이 이미 결정 난 사실을, 이미 구원되었다는 사실을, 다 이루었다는 사실을 흔쾌히 받아들여서 뭘 해도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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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8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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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