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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65강-렘18장21-23(용서할 수 없는 자)-jer100602자유게시판예레미야

065강-렘18장21-23(용서할 수 없는 자)-jer100602

이름 : 오용익(IP:59.3.201.250)

065강-렘18장21-23(용서할 수 없는 자)-jer100602-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18장 21절부터 23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080페이지입니다.

예례미야 18:21-23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붙이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사망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주께서 군대로 졸지에 그들에게 임하게 하사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를 취하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치려고 올무를 베풀었음이니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시며 그 죄를 주의 목전에서 도말치 마시고 그들로 주의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주의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특정인물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저주를 있는 대로 퍼부어 달라고 지금 예례미야가 하나님을 향하여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례미야의 감정이 예례미야의 사적인, 개인적인 복수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이 예례미야에게서 나온 이 기도대로 남은 세상 전체가 진척이 되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 같은 것, 예를 들어서 사적으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살면 복 받고 바르게 못살면 벌 받는다.’는 이런 사적인 의견이나 상식 같은 것이 이 마지막시대에는 폐기처분되어야 됩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지만 항상 성경의 내용이 우리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것,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만 자꾸 성경은 이야기해요.

그것은 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믿으라는 겁니다. 이것은 성경을 해석하라는 말이 아니고 그냥 그대로 믿으라는 말입니다. 십자가마을에 보니까 김 성환 목사님이 아주 울부짖는 듯이 글들을 써놓았어요. 제가 그 글을 보면서 탁 느껴지는 것이 뭐냐 하면, ‘야, 드디어 말씀 구조 속에 들어가 있구나.’ 말씀구조, 말씀구조 속에 들어가 있어 버리면, 예를 들어 한적한 숲속, 하늘을 가릴 정도의 숲속에 들어가 버리면 시원한 산소가 막 쏟아지겠지요.

그렇다면 그 나무에서 쏟아지는 산소를 흠뻑 맞으면서 ‘세상에 이렇게 신선한 공기도 있나.’ 하고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숲속구조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그것을 그대로 말씀 구조에 한 번 넣어보세요. 말씀구조에 보면 세상을 다 잊어버리고 뭐가 날아오느냐, 말씀이 주는 은혜가 산소처럼 막 날아올 때 세상의 모든 시름과 염려가 다 날아가 버리지요. 말씀구조 안에 들어갔을 때.

그러면 말씀구조 안에 안 들어갔을 때는 어떻게 되느냐? 자기는 멀리 있고 저 뒷산에 있는 숲속을 바라보는 거예요. ‘야, 저 뒷산 숲속은 정말 좋겠다. 저 뒷산에서 좀 쉬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맨 날 좋겠대요. ‘나도 직장 때려 치고 저렇게 말씀 들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맨 날 이렇게 생각하시는데 그것은 멀찍이 바라보는 거지요.

멀찍이 바라볼 때 숲속에 있는 것이 참 좋아 보이지만 막상 자기는 여전히 자기 집에 있지요. 그런데 말씀 구조 안에 그냥 들어가 버리면 온 천지가 숲에 싸인 것처럼 그냥 말씀으로 싸인 겁니다. 바람이 불었다? 그러면 온 숲의 나무들이 사르륵 사르륵 소리를 내면서 이파리가 막 떨어지는 것처럼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이 있으면 그 말씀 구조 안에서는 세상 일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세상일에 대한 합당한 말씀들이 그 어깨위에 머리위에 두두둑 떨어지겠지요.

그래서 이 말씀구조 안에 들어가 버리면 입에서 증거 되는 것이 이 말씀에 대해서 증거 되는 겁니다. 본문도 마찬가지예요. 본문도 예례미야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과도하게, 너무 심하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들어갈 정도입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29절에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붙이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자식 잃고 과부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은데, “……그 장정은 사망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

이래 죽고 저래 죽고 폭삭 망하게 해 달라는 거예요. 22절에 “주께서 군대로 졸지에 그들에게 임하게 하사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그 모든 이유가 그들이 선지자 예례미야를 힘들게 했다는 것, ‘내 말을 믿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제가 한번 속으로 물어보겠습니다. 성경은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듣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 본인이 ‘이런 일은 예상 못했다.’하는 것 하나, 궁극적인 것, ‘설마 하나님이 이런 일을 했을까? 하나님이 이럴 수는 없어.’라고 하는 것 하나를 딱 집으라면 그 무엇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럴 줄은 몰랐어.’ 했을 경우에 그 마지막 딱 잡히는 것이 뭘까요?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예상해도 진짜 예상 못하는 그 한 가지는 뭘까요?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심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사람은 상상할 때 꼭 자기 좋은 대로 상상하거든요. 우선 자기는 살아 있는 채 자기가 잘되는 쪽으로 상상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상상해도 그래도 상상 안 되는 것은 뭐냐, 그렇게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우리가 졸지에 망해버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밀어버리는 것, 이것은 우리가 아무리 상상해도 상상이 안 되겠지요.

제가 어느 책을 봤는데 꿈에 대해서 나옵니다. 꿈이 뭐냐? 꿈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생존하는 훈련을 밤중에 스스로 양육 받는 거예요. 되새기고 또 되새기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그것이 꿈이라는 겁니다. 제가 본 꿈에 대한 책들 중에서 그렇게 정확하게 써 놓은 책은 처음인 것 같아요. 쉽게 말해서 꿈이라 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느냐를, 내가 어떻게 하면 계속해서 주인공이 될 수 있는가를 자면서까지 훈련시키는 그 훈련과정이 꿈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꿈의 내용은 항상 주인공이 누구냐 하면, 내가 주인공이 되어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야, 꿈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답이 나왔다.’ 하고 장담을 해버렸습니다. 꿈의 주인공을 제켜 놓고 해석을 하려니까 해석이 되지 않는 거예요. 꿈의 주인공은 어떤 해석을 해도 항상 ‘나’가 주인공이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꿈은 어떻게 해서든 내가 나를 살려내기 위한 훈련과 연습과 되풀이되는 양육의 코스가 꿈인 거예요. 왜 제가 꿈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꿈에서 아슬아슬한 것도 있겠지만 결코 자기가 궁극적으로 심판받는 꿈은 꿀 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살아야 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저는 종교를 꿈이라고 봅니다.

인간들이 기대한 것이 다 담겨 있는 종교. 그런데 예례미야는 놀랍게도 우리의 예상과는 완전히 어긋나게 예례미야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처참하게 심판을 해 버립니다. 이 대목의 의미를 이제부터 우리가 살펴야 되겠는데요, 그것을 살피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이것 하나 말씀드리면 여러분이 ‘아하, 그래서 구약과 신약이 이렇게 되는구나. 아하!’라고 이해 될 겁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것은 신약시대에 오순절사건이 일어날 때의 일을 베드로가 예언한 것입니다.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례미야 본문 같은 경우에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예례미야에서는 죽고 또 죽는다는 이야기고 신약의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성령을 부어줄 테니 성령은 하늘나라에 대해서 그들이 꿈을 꾸고 하늘나라를 그들이 쳐다보게 될 것이다. 하늘나라의 정보를 알아서 마음이 흐뭇하게 될 것이다.’라고 되어 있는 거예요.

구약에 없는 것이 신약에는 없습니다. 쫄딱 망한 것이 없으면 인간은 하늘나라를 쳐다보지 않게 되어 있어요. 언젠가 강의하면서 제가 그런 이야기 했지요. 하늘나라와 교회라는 것을 환풍기라고 했잖아요. 통풍기, 유일하게 위의 공기와 통하는 곳, 야고보서에 나오지요, ‘모든 좋은 것이 위에서부터 온다.’

위에서부터 온다는 것은 위에서부터 구멍이 뚫려서 산소가 들어오든지 하늘나라 생명이 들어오든지 위에서부터 내려오게 되는 거예요. 위에서부터 오려면 그 위에서부터 오는 것이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가 내 욕심이 있는 한 절대로 이것은 예상대로 오지를 않습니다. 이 땅에서 먼저 예상 밖의 일이 폭탄처럼 터져서 그 폭탄 터진 한복판에 우리가 놓여 있을 때 우리가 예상 못한 성령도 위로부터 그 자리에 오는 겁니다.

이것은 간단하게 그리스도가 십자가 지고 난 뒤에,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된 뒤에 그 다음에 주께서 성령을 부어주게 되면 우리는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 힘으로 사는구나.’ 비로소 그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성령의 선물인지, 아니면 평소에 내가 노리고 있었던 내 기대치인지 그것을 어떻게 구분하느냐하면, 우리가 이 본문 말씀대로 예상 밖으로 쫄딱 망하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나가도 죽고 들어와도 죽고, 이렇게 죽는 것이 우리에게 당연하다고 받아질 때에 이런 심판이 예상 밖의 심판인 경우에 한해서만 생명과 성령과 하나님의 의와 거룩도 항상 예상 밖의 선물로만 우리에게 뚜렷하게 주어지는 법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선물이잖아요. 그것을 은사라 하는데 믿음 소망 사랑이 선물로 되려면 우리는 그 선물을 받기 이전에 ‘우리는 이런 선물을 받을 자격도 못됩니다.’라는 것이 먼저 여기에 난데없는 사태를 통해서 확연하게 드러나 줘야 돼요. ‘교회 10년 나왔는데 천당이야 가지.’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합니다.

‘교회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그것 가지고 지옥갈 수밖에 없다. 교회는 나왔는데 그것으로 지옥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라는 것을 분명히 굳혔을 때 비로소 거저 주시는 예수님의 생명이 귀한 줄 알고 그 때부터 그것만을 우리는 증거 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세상일이 잘 안 풀리는 것, 정상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환풍기가 위에 달려 있거든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자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본문의 말씀에 들어가 봅시다. 예례미야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도대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혹독하게 이야기를 하는가? 환풍기 이야기, 통풍구 이야기를 했으니까 그것과 관련되어서 제가 성경구절을 하나 찾아드리겠습니다. 열왕기상 22장 19절에 보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이야기인데 거기에 미가야 선지자가 나옵니다.

미가야 선지자가 하는 말이 뭐라고 되어 있느냐하면, 자기가 하늘나라 회의에 참석했대요. 통풍기 위의 하늘나라에 부름 받고 초대되어서 하늘나라 회의의 참석했는데 거기에 가보니까 하나님이 계시고 천사가 양쪽에 좍 있더라, 합니다. 거기 보니까 마귀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거예요. 그 회의에서 하는 말이 아합왕을 속이기 위해서 거짓말 하는 영, 마귀죠, 악령을 사람들에게 부어주는 역할을 통풍기, 환풍기를 타고 위에서부터 내려와야 그들이 거짓복음을 전할 수 가 있습니다. 이걸 미가야 선지자가 봤다는 거예요.

열왕기상 22:19-23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이 이야기를 하자마자 미가야에게 번쩍 하고 뺨 싸대기가 날아오는 거예요. 시드기야 선지자가 때리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의 영이 와서 너한테 싹 가버리고 우리한테는 안 온다는 법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자기한테는 악령이 오고 미가야한테는 진짜 성령이 온다는 그 근거와 법, ‘도대체 우리는 그것을 못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게 일리 있잖아요. 그게 일리 있는 이야기거든요. 여러분들도 복음 전하면서 그런 소리 많이 안 들었습니까? 여러분, 복음 전해 봤지요? 다들 복음 전하지요? 전하면 저쪽에서 뭐라고 합니까? ‘너만 아나? 너만 천당 가나?’ 맨 날 하는 소리가 그거잖아요.

그걸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어떻게 성령이 죽 내려와서 너한테만 쏙 들어가고 어떻게 우리한테는 안 오는 정도가 아니고 우리한테 오는 것은 악령이어서 복음 아닌 것을 복음이라고 우기고 예수도 아닌 것을 예수라고 믿고 지옥갈 수밖에 없도록 엉터리 같은 악령이 온다는 그 근거를 대봐라.’라는 소리를 여러분은 많이 들으셨지요.

‘나도 교회 50년 다니고 복음 알고 다 안다.’ 그런 소리 얼마나 들었습니까? 차이점이 뭐냐 하면, 성령 받은 사람은 예상치를 못했다는 거예요. 왜 예상치를 못했느냐하면 ‘나는 지옥가도 마땅하기 때문에 교회 백날 나와 봐야 지옥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라는 것을 뻔히 익히 알거든요. 그런데 악령 받은 사람의 특징은 뭐냐 하면, ‘이렇게 교회 나와서 충성하게 때문에 자기는 구원받을 것이다.’라고 자기가 예상문제를 쥐고 있는 거예요.

예상문제를 쥐고 있으니까 그것은 성령을 안 받은 것이 확실합니다. 성령을 안 받은 것이 확실한 거예요.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그냥 제키고 구원 안할 수가 있겠어.’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 그 사람은 무엇을 비켜 가느냐하면, 예례미야를 비켜서, 예례미야가 없는 곳으로 통과해서 예수님과의 면담을 시도한 겁니다.

구약을 통과해서 신약에 도달하는데, 예례미야 18장 21절 22절을 통과해야 예수님이 주신 성령이 그냥 거저주신 자비와 사랑인줄 아는 거예요. 그것도 예상 밖의, ‘왜 하필이면 저를 구원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김○일도 있고 우○기도 있고 김선○도 있고 참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있는데, 유○민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국회의원 되기는커녕 나가보지도 못하는 저에게 하필 성령이 오십니까?’라는 고백이 나올 때 그 사람은 어딜 가도 주 예수만, 은혜만 증거 하게 될 거예요.

이게 예례미야고 이게 미가야입니다. 예례미야가 공부 많이 한 것 아닙니다. 우리하고 똑같은 입장이에요. 전에 봤잖아요. 예례미야가 ‘왜 하필이면 저에게 이런 일이 임하게 해서 저를 힘들게 합니까?’ 분명히 여러 번 했고 뒤에 또 나와요. 하나님이 하는 일의 성경해석에 있어서 제일 난처한 것이 이미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짐작을 한다는 거예요.

대전에서 강의할 때인데 제가 마태복음을 강의하면서 초반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산상설교를 강의하면서 ‘율법 안에 우리 자리가 있습니까?’라고 묻고 들어갔어요. 정답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율법 안에 자기 자리를 터 잡으려고 시도한 거예요. 그것이 오류였습니다. 율법은 무서운 곳인데 그 무서운 곳에 방석 깔고 앉아 있는 거예요.

그 율법에 앉아서 구원받겠다고, 율법 지켜서 의인되겠다고.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지키지 않으면 저주받는다고 하면서 산상설교를 시작 한 겁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율법이 그렇게 무서운 줄을 모르고 전에는 율법바깥에 자기자리를 터 잡았는데 이제는 방석을 끌고 와서 율법 안에 터 잡겠다고 앉아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바로 예례미야에 의하면 오히려 가시방석이 되어서 자기뿐만이 아니고 자기의 모든 가족들이 다 저주, 저주, 저주받는 능력이 올라오는 그런 율법입니다. 바로 그 율법을 사실은 모든 인간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다 통과를 해야 비로소 우리는 율법에 의해서 죽은 자가 되는 겁니다.

죽은 자가 되어버리면 어떤 효과가 있느냐하면, 죽은 자가 될 때 비로소 숨쉴만한 통로는 하늘에서 주어진다는 것을 알지요. 복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죽을 자리에서만 비로소 복음이 복음답게 보이는 겁니다. 자기 주변에 살 자리가 생기면 주변을 둘러보기에 연연해서 위로 안 쳐다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복음 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항상 우리 주변의 믿을만한 것을 다 치워버려서 우리로 하여금 난처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예례미야의 있던 그 자리가 하나님이 계시는 약속의 땅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지금부터 제가 약간 어려운 것을 말씀 드릴 테니까 이해가 잘 안되어도 그냥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레위기 26장 41절부터 45절에 보면 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요, 그냥 땅인데 땅에서 뭐가 올라오느냐, 언약이 올라온다는 겁니다. 42절에 보면 ‘야곱과 맺은 언약,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숭숭 올라온다는 겁니다.

레위기 26:41-45

“나도 그들을 대항하여 그 대적의 땅으로 끌어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그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 그들이 나의 법도를 싫어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땅이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죄악으로 형벌을 순히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대적의 땅에 거할 때에 내가 싫어 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여 나의 그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열방의 목전에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그들의 열조와 맺은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언약이 아지랑이처럼 계속해서 올라오는 거예요. 땅에서 언약이 올라오는데 그 땅에서 올라오는 언약이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언약대로 하지 아니하면 이 땅이 화를 낸다는 거예요. 지난 주일날 아침에 설교한 것 다시 한 번 해 봅시다. 가인과 아벨이 있는데 형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죽인 그 형을 그냥 즉사시키지 않고 동생은 죽고 없어지고 가인은 하나님이 안 죽입니다.

안 죽이고 마크를 해요. 마크를 해놓고 온 세상에 그 성격이 확산되게 만들어버리지요. 그 성격이 뭐냐? 제가 주일 아침 설교한 것을 기억나는 대로 한다면 ‘나는 얼마나 고집이 센지 하나님도 내 한주먹에 날아갔다. 하나님이 뭘 해도 나는 내 고집대로 산다.’ 하는 성격이 온 세계에 퍼뜨리는 거예요. 그리되면 어떤 점이 하나님 편에서 좋으냐, 땅에서 올라오는 하나님의 성격이 그런 가인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그 면면을 보이게 되는 겁니다.

땅은 지금 저주의 기운이 올라오거든요. 저주의 기운이 올라오고 전부 다 죽게 만드는 그 땅에서 인간들은 ‘못살겠다, 못살겠다.’ 하지만 그렇게 가인의 성격들이 확 퍼져버리면 그들이 벌 받아도 마땅하고 저주받아 마땅한 그것이 아귀가 맞아서 합당한 게 되어버려요. 저주가 올라오는 땅에서 그들은 늘 큰소리치거든요. ‘내가 하나님을 믿는가 봐라. 나도 한 고집 한다. 아무리 예수 믿으라고 해도 나는 성질이 더러워서 나는 예수 안 믿는다.’

마키아벨리라는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보고 천당 가자고 하지 말라. 나는 지옥 게 가고 싶다. 천당 가면 심심해서 못산다. 나는 톡톡 튀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얼마나 신에게 반항했으면, 얼마나 신에게 반항하는 개성이 있었으면 지옥 갔겠는가? 나는 그 사람을 만나면 무지무지 재미있겠다.’ 그런 소리를 했어요.

그러니까 무미건조하게 ‘주여, 주여’ 이것은 자기성질에 안 맞는다는 거예요. 뭔가 아니요, 할 때는 아니라고 하고 성질 더러우면 신에게 대들기도 하고 신에게도 욕도 해보고 신을 밀쳐보기도 하고 인간의 타고난 개성답게 발휘를 해보는 것, 그런 세계라면 나는 천국보다 지옥을 선택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얼마나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일하십니까? 죽고, 죽고, 죽고, 자식죽고, 남편죽고, 다 죽고, 우리도 죽고 사람이 태어났다 하면 다 죽음으로 달려가지 않습니까? 죽음이라 하는 것이 마치 콜라병 같아서 그 밑의 뚜껑이 죽음이에요. 안에 뭐가 들었든지 상관없어요. 판사가 들어있든지 의사가 들어있든지 목사가 들어있든지 관계없어요. 뚜껑이 죽음이면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다 죽음입니다.

마지막뚜껑이에요. 그 뚜껑을 다 닫아버려요. 그래서 올라오는 그 저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을 우리는 못 지킵니다. 지킬 수가 없어요. 심지어 아브라함 본인도 못 지켰고 놀랍게도 이삭도 야곱도 그 언약을 못 지켰습니다. 그러면 누가 지켰는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아브라함 되게 했고 이삭을 이삭 되게 했고 야곱을 야곱 되게 하신 겁니다.

언약을 못 지키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언약백성 되게 하시는 그 원칙이 땅에서 올라온다면 그 땅은 일단은 죽읍시다. 오늘 설교 아주 쉬워요. 아주 결론 맺기 쉽습니다. 그냥 이 땅에서 죽어 가면 돼요. 죽어가면서 자기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법에 의하면 당연하다고 수긍을 합시다.

하나의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임신에 두 종류가 있지요. 진짜 임신, 상상임신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제가 임신을 안 해봐서 모르겠습니다만 상상임신도 임신한 증세와 비슷한 증세가 나오면서 헛구역질을 한다고 합니다. 진짜 임신과 상상임신과 차이점이 뭐겠습니까? 10개월이 되어보면 알잖아요. 하나는 진짜 배가 부르고 나머지 하나는 실제 그런 일이 없을 것 아닙니까?

종교라는 것이 관념도 아니고 추상도 아니고 이론도 아니에요. 종교중의 종교가 뭐냐,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상상죽음도 아니고 상상천국도 아니고 상상예수님도 아니고 상상되는 십자가도 아닙니다. 진짜로 우리가 임신한 것처럼 매일같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교신자, 교회신자, 천주교신자는 떠나 있는 문제입니다. 종교라는 환상을 벗겨놓고 진짜 자기 자신을 벗겨놔 보면 이 세상이 우리 뜻대로 살만한 곳이 못됩니다.

우리가 이것이 실감나야 돼요. 그 당시의 예례미야가 상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힘듭니다.’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이스라엘은 망했어요. 이스라엘 역사가 진짜 망했거든 예수님 십자가 피로 구원받는 것도 상상이 아니고 실제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나라가 실제로 망했어요. 예례미야가 한 말씀 그대로 된 겁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죽었고 사흘 만에 부활했고 실제로 구름타고 승천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이 성경전체가 이제는 제발 우리의 지식으로 머물지 말고 온 몸으로 느껴야 됩니다. 온 몸으로 느끼는데 그 느끼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아, 오늘도 비실비실 죽어가고 있구나.’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하나님의 계획에 입각해서 죽는다, 하고 하나님의 말씀구조 속에서 내가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을 행복하게 느껴야 됩니다.

이걸 즐거워해야 돼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죽어가면서도 죽는 이유를 알다니 주여, 이런 행운이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실제였습니다. 실제로 바쳤을 때 실제로 이삭은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지식만 하나님께 바치지 말고 우리의 죽어가는 몸 전체를 교체해달라고 남은 생애를 그냥 하나님께 바칩시다.

그냥 바치게 되면 그것이 말씀구조 안에 들어가서 그 때부터, 우리가 내 식대로 살려고 하지 않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하늘나라가 크게 실제로 다가와서 우리 입에서 성령의 영에 대한 증거들이 막 나올 겁니다. 꿈을 꾸고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살렸다는 것이 막 나오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나에 대해서 이미 죽은 것이 확정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무겁게 느껴지지 않고 모든 것이 아주 쉽고 가볍습니다. 끝으로 한 말씀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주기도문에 보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지요.

그 기도는 유치원 애들도 압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 뜻이 뭐냐, 간단합니다. ‘주여, 우리를 이 땅에서 데려가게 하옵소서.’ 그겁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를 하늘나라 데려가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땅은 살만한 곳이 못됩니다.

이 장우 목사님이 이야기하는데 의성군의 불교 절에서 기왓장만 하나 깨져도 나라 세금으로 다 갈아준대요. 문화재보호라는 명목이랍니다. 그걸 보고 의성에 있는 노회의 목사들이 회의해서 들고 일어나서 ‘불교는 해주고 왜 교회는 안 해주나.’ 한 거지요. 그 때부터 교회당 2천만 원씩 나랏돈을 보조 받게 되었답니다. 다섯 교회 씩 조별로 돌아가면서.

아, 그것은 말씀구조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구조입니다. 교회가지고 먹고 살려고 그 짓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처자식은 사실은 죽어야 될 자식인데 오늘도 살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몸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데 왜 살려주는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다윗언약에 보면 죽어야 될 죄인을 주님의 피로서 살려준다는 것이 우리 속에 정보로서 들어오기 위해서 말씀구조 안에서 우리가 흠뻑 젖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살려주시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예례미야를 통과해서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이스라엘만 망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도 진즉에 망해야 될 사람인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신 것은 남이 모르는 성령이 임해서, 하늘나라 통풍구에서 하늘나라 성령이 임해서 저희들로 하여금 하늘나라를 증거 하라고 하셨사오니 이런 사명을 저희들이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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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8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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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