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역대기)(강의정리)08-재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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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구득영(IP:203.223.97.151)
09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역대기 제8강(둘째 날 저녁1)
2009,01,14 강의 이근호, 정리 서경수
◈ 오직 '다윗'을 위하여 !!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역대상 17장에서 선지자가 다윗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물론 선지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고 말입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서가 여기 17장에 나오는데, 그런데 그 내용들을 보면, 다른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 들으면 상당히 불쾌한 발언들이, 그것이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나단 선지자의 입으로 전달이 된다는 겁니다. 10절과 같은 말씀이 그러한데 말입니다.
(대상 17:10)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또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울지라
여러분이 방금 식사도 막 하고 피곤하지 싶어서, 지금부터는 일방적으로 찾아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참, 그것을 말하기 이전에, 제가 지난 시간에 유다의 므낫세 왕이 문둥병에 걸렸다고 했는데, 그것이 므낫세가 아니고 웃시야 왕이라는 겁니다. 요즘 치매증상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것도 강도가 점점 세어지면서 말입니다.
이사야서 6장에 보면, 웃시야가 죽던 해에 이사야가 하늘의 성전을 보게 되는데, 바로 그 양반이라는 겁니다. 그 웃시야 왕이, 자기는 제사장도 아니면서 함부로 성전에 들어가다가 그만 문둥병에 걸렸는데, 그래도 발에 병이 난 아사 왕보다는 조금은 나아 보이는데 말입니다. 나중에 목사님들이 녹취를 할 때 그 부분을 바꾸었으면 좋겠는데, 또 이런 말까지 녹취를 해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지 싶은데 말입니다. (녹취자 - 당연한데, 멋진 추임새이니 말입니다. ㅋㅋ)
치매현상은 그 정도로 하고, 여기서 시편 89편 3절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시 89:3)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나의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이런 대목을 다른 지파가 들으면 그야말로 상당히 섭섭한 이야기인데, 그야말로 다윗에게 특별대우를 하시겠다는 겁니다. 즉 다윗이 속한 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에서 들으면 매우 기분이 더러운 이야기를 주께서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는고 하니, '선택' 이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것이 시편 78편 67-68절에도 보면 나오는데, 즉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를 택했다"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물론 이 유다지파에 다윗에 속해있고 말입니다.
(시 78:67)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시 78:68)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고
◈ 레위지파가 아닌 유다지파 !!
바로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제가 히브리서 7장을 강의하면서 이미 이야기했는데,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서 숨어있는 지파, 즉 이제는 유다지파가 레위지파까지도 제치고 점령해서 영원히 이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이미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셨다는 말입니다.
(히 7:14)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히 7: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히 7:16)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히 7:17)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제가 지난 시간부터 계속해서 로마서 1장 3절 말씀을 이야기했는데, 그 대목을 여기서 확인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아들을 보내주시는데, 그 아들이 등장할 때는, 즉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라고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롬 1: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 아하, 다윗이 속한 유다 지파구나 ??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여러분에게 말로서 이해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즉 이렇게 하늘나라에 예수님이 계시고, 그것을 점선으로 표시하겠는데, 이것을 조직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성자' 라고 하는데, 물론 성경에 없는 용어이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표현함으로 말미암아서 성부와 성령과는 또 다른, 즉 차이가 나는 어떤 분이 숨어서 계신다는 겁니다.
이 지상에는 12지파가 있는데, 즉 하나님께서 12지파를 가지고 이스라엘로 만들어 놓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로 그 이스라엘 전체를 두고서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칭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12지파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위에서 내려오는 강한 힘에 의해서 땅겨 올라가는데, 그러니 올라가면서, 즉 "어, 우리가 어디로 땅겨서 올라가지?"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위에서 땅겨서 밑에서는 올라가고 해서 서로 만나는 지점이 있는데, 거기는 무엇인고 하면, "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오직 다윗만을 선택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지상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라는 말도 되고, 또한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분을 다윗의 집을 통해서 출생케 하겠다" 라는 말도 된다는 말입니다.
이제부터 어려운데, 아마 설명하는데 많은 에로사항이 있지 싶은데, 그래도 하는데 까지는 해보자는 겁니다. 이 '다윗의 집'이 12지파가 가운데 있는 '다윗의 집' 이라고 하면, 그것은 이해하기가 쉬운데, 즉 "르우벤 지파, 갓 지파가 아니고, 아하 다윗이 속한 유다 지파구나" 라고 이해하면 되는데, 하지만 그런 식으로 아무리 이해를 해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생각이니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야, 하나님이 널 부르신다. 하나님이 너를 선택했어" 라고 하면, 그렇다면 제가 건방지게도 "하나님,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렇다면 저에게 성자가 임하게 하소서" 라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해서 성자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식들, 놀고있네. 너거들끼리 그냥 369 게임이나 해라" 라고 하시지 말입니다.
◈ 하나님은 인간 다윗 집에 오지 않아 !!
이것이 바로 기존 신학자들이 무지무지하게 오해한 대목인데, 즉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윗의 집에 임할 것이다" 라고 한다면, 죄송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생각이 짧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다윗 집에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다윗의 집' 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자께서 준비한 다윗의 집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그래서 이 지상의 다윗의 집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제가 말을 하고 나서 봐도, 참 앞뒤의 문맥도 맞지 않고, 아무튼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달리 표현할 길도 없고 말입니다.
◈ 다윗의 집은 따로 있어 !!
지금까지 후지산을 하나 그려놓고 다윗과 솔로몬이 전부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런데 그 다윗의 집에 하나님이 자동적으로 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다윗의 집은 하나님이 만드신 영원한 어떤 집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즉 여기 지상에 있는 이 집은 "진짜 집이 이러이러하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동안 그림자로서 작용을 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림자' 라는 것은, 위에 이렇게 구름이 있으면 아래로 구름의 그림자가 지나가듯이, 그렇게 지나가는 바로 '다윗의 집'이고, '성전'이고,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실체는 무엇입니까? 하늘에 다윗의 집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언약은 어디에서 이루어집니까? 여기에 이 지상에 있는 다윗의 집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진짜 다윗의 집을 향하여 모든 말씀이 꽂히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하늘에 있는 다윗의 집을 향해서 말입니다.
◈ '주 예수'의 이름으로 !!
다시 말해서, 다윗의 집, 다윗의 혈통, 그렇게 말은 하지만, 그러나 진짜 다윗의 혈통은 육적인 다윗의 혈통으로는 알 수가 없고, 예수님이 오시면 비로소 드러난다는 겁니다. 즉 본격적인 다윗의 다윗 됨은 어떻게 되는고 하니까, 즉 다윗의 이름으로 오셨지만, 그 다윗의 이름은 진짜 다윗의 이름이 아니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오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서, "주 예수의 이름이면, 주 예수의 집이네. 그러면 다윗 집이 아니잖아?" 라고 할 수 있는데, 하지만 옛날부터 하나님이 원하신 다윗 집은, 그것은 바로 하늘에서 만들어지는 집을 말하는 것이지, 이 지상의 다윗 집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말입니다.
◈ 예수님의 그림자로서의 다윗 !!
마치 로켓을 발사하게 되면 로켓을 감싸고 있던 옆의 지지대는 어떻게 됩니까? 모두 떨어져 나가는데, 이처럼 지상의 다윗 집은 떨어져 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진짜 다윗의 집이 오게 되면 말입니다. 그게 제대로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즉 "수고했어. 그래, 욕봤다"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은, 즉 영원히 맹세한다는 것은 '다윗의 집' 이라고 하는 하늘에서 따로 준비된, 즉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따로 준비된 것이고, 바로 그것의 그림자로서 다윗을 선택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그림자로서의 다윗을 말입니다.
◈ 유대인들도 언약이 덮쳐야 !!
그렇다고 한다면, 시편 89편 4절에서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라는 말씀은, 여전히 그림자인 다윗의 집을 그대로 붙들고 있으면 곤란하고, 황송하게도 이러 다윗의 집을 통째로 삽입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다윗에 속한 유대인들도 죄송하지만(?)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의 의미를 하시겠습니까?
만약 이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유대인들의 경우에, "다윗에 속한 우리들은 자동적으로 구원이 된다" 라고 우길 수가 있다는 겁니다. 즉 "시편을 봐라. 다윗의 집에 언약을 했잖아"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즉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은 모두 구원받고, 추가해서 이방인들 중에서 덤으로 구원받을 자들도 있다" 라는, 그런 식이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 너, 그동안 수고가 많았어 !!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자기 할 도리를 다 했으면 이제 다윗의 집은 이제 사라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다음과 같은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즉 "포장지는 작은데 내용물은 크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억지로 내용물을 포장지로 싸려고 하면 포장지가 찢어지는, 바로 그 원리인데, 즉 포장지는 찢어지고, 그런데 그 물건은 조금도 손상이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포장지는 그냥 종이니까 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어설픈 포장지와 같은 다윗의 집을 지금 역대상에서는 열심히 쌓아올리고 있는데,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에 의해서 진짜로 다윗의 집이 임하게 되면, "너, 그동안 수고가 많았어" 라고 하면서 작별을 고하게 되고, 그 어설픈 포장지는 수거대상이 되고 만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가지고 논 겁니까? 물론 하나님은 그럴 자격이 충분한데, 창조주이니 말입니다.
◈ 다윗 - 제가 하나님을 위해서 집을 !!
그러면 이러한 차이가 어디에서 들통나게 되는고 하니, 그것이 바로 역대상 17장에 나온다는 겁니다. 사실 이런 것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서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어진 궁궐에 거하는데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는 텐트, 즉 장막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1절에 보면,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여호와의 언악궤는 휘장 밑에 있도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자기는 좋은 궁궐에서 사는데, 언약궤가 그렇게 텐트 속에 있는 것이 미안했던지, 자신을 찾아온 선지자 나단에게 뭐라고 했는고 하니, 좋은 구조물을 하나 지어서 그 안에다 언약궤를 모셔놓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대상 17:1) 다윗이 그 궁실에 거할 때에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여호와의 언악궤는 휘장 밑에 있도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고 하니,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지은 집에 대해서, 즉 그동안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 즉 "내가 다윗의 집을 세우리라" 라는 것에 대해서, 다윗은 그 말씀이 바로 자기 본인인 줄로만 알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자기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도록 하셔서, 정말로 다윗 자신을 하나님께서 세우는 줄로만 알았다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얼마나 많이 강조를 했습니까? 다윗은 자기기 하는 것마다 이상하게도 잘되니,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 - 다윗, 너는 아니야 !!
그래서 다윗은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성전을 지어서 드리겠다고 했는데,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거절했다는 겁니다. 그것이 4절에 보면 나오는데, 즉 "너는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라고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바꾸어서 말하면, "나는 그 동안 너를 가지고 놀았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대상 17:3)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대상 17:4)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그 다음이 중요한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할 집은 내가 짓는다" 라고 하시는데, 그러니 여기에서 '나'와 '다윗' 사이에 그만 균열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즉 '나' 라고 하는 하나님과, '다윗' 이라는 인간 사이에 벌써 틈이 벌어진다는 말입니다. 즉 "내가 거할 집은 내가 짓는다. 너는 집을 짓지 마라" 라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오신다는 겁니다.
◈ 여전히 건축 구조물에 집착하는 다윗 !!
여기서 또 다윗은 하나님의 그런 말씀을 듣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데, 즉 "하나님이 짓는다고 하니, 나는 재료만 제대로 준비하면, 아마도 하나님께서 내 자식 정도가 되면 지을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즉 다윗은 아직도 '집' 이라는 건축 구조물에 대해서 집착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이후부터 건축자재를 모으느라고 난리를 치는데, 벽돌은 물론이고 금도 끌어 모은다는 말입니다. 물론 다윗은 충분히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본인이 직접 짓는다고 하니, 자기 아들에게 어떻게 작용해서 짓는 것으로 말입니다.
◈ 아니, 다윗가문 자체가 집 ??
그런데 하나님께서 짓는 집은 무엇인고 하니, 다윗이 생각하는 건축 구조물이 아닌, 다윗가문 자체를 집으로 본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성경의 아주 어려운 부분에 봉착하게 되는데, 김해 김씨를 다시 한번 걸고넘어지겠는데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김해 김씨' 라는 가문으로 집을 짓는다고 하면, 그러면 제가 김대식 성도에게 "저, 김해 김씨 집을 다 지었습니까?" 라고 한다면, 그것이 말이 됩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김해 김씨에 속한 산모들에게서 아기들이 이 병원 저 병원에서 태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디에서인가 열심히 만들어지고 있는데, 물론 외롭게 있는 사람도 있고 말입니다(ㅋㅋ).
그러니 어디까지나 미완료인데, 즉 지금 김해 김씨라는 가문의 집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후로 김해 김씨의 자식을 낳기만 해라. 모두 다 죽인다" 라는 것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만약에 가문이 집이라고 하면 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가문을 자기가 직접 짓겠다고 하면, 그건 얼마동안 짓고 나서는 중단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해가 됩니까?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집을 지으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건축재료를 가지고 설계도면에 따라서 짓고, 그렇게 다 하고 나서 서로 박수를 치면 끝이 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내가 십자가 마을을 위해서 집을 짓겠다 ??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표정인데,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면, 누군가가 "내가 십자가 마을을 위해서 집을 짓겠다" 라고 하면, 그러면 십자가 마을 회원이 10명이 모이면 그것이 끝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100명이 모이면 끝입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일단 집을 지어놓고서 계속해서 회원을 모집하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겁니까?
그것도 역시 아니라고 하면, 여기 가야산에다 십자가 마을 전용으로 수련회 회관이라도 하나 지으면 되는 것입니까? 매번 이렇게 수련회를 할 때마다 회비를 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부담이 제법 되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그런 것을 이유로 해서 땅을 구입해서 십자가 마을 회관을 짓겠다고 하는 것, 바로 그것이 다윗의 아이디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여, 십자가 복음을 위해서 제가 한 곳에 집을 짓겠습니다" 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집을 짓지 마라. 내가 지을게"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다윗은 "아, 십자가 마을을 주께서 친히 인도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무엇입니까? 주께서 친히 인도하시는, 그런 십자가 마을은 없다는 것입니다(ㅋㅋ).
다시 말해서, 주께서 친히 인도하는 십자가 마을도 없는데, 즉 그러한 다윗의 집, 혹은 다윗 가문은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친히 지을 때는 미완료로 남아있는 경우는 전혀 없는데, 즉 집을 짓는 그 순간에 이미 완료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학자들 - 하나님은 왜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가?
여기에 대해서 학자들이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집을 짓지 말라고 해놓고, 그런데 일단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나니, 하나님이 거기에 계셔서 축복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왜 앞뒤가 서로 맞지 않게 일을 하시느냐는 말입니다. 일단 다윗에게 집을 짓지 말라고 했으면,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도 짓지 못하도록 하셔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놓으니, 짓지 말라고 해도 지었으니 천사를 동원해서 불을 지르기는커녕, 그게 좋아서 거기에 계시면서 "내가 축복하겠다" 라고 하니, 그러니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일관성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갈팡질팡한다는 겁니다. (녹취 '구' - 목사님,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다고 나단이 예언을 했는데, 그러니 하나님께서 미리 허락한 것이 아닙니까?)
아무튼 이 문제가 반드시 풀려야 하는데, 우리도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가야산을 내려갈 수 없는데 말입니다(ㅋㅋ). 도대체 하나님이 지은 집은 무엇이냐는 겁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짓는 집이, 다윗이 생각하는 다윗가문, 즉 "아마 내 아들이 지을 것이다" 라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아들의 아들이 짓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부동산인 건축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이 짓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윗, 다윗, 다윗" 이라고 하면서 그냥 가지고 논 것에 불과합니까? 정말이지 그런 것입니까?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데리고 놀았다고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하나님은, 인간들이 '포기한 다윗가문'을 재료로 !!
하나님께서 지은 집에 대해서 "그것이 알고 싶다!" 라고 하면, "그것을 알려주마!" 라는 것인데, 일단 하나님의 집을 지으려고 하면 자재가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바로 "포기한 다윗의 가문" 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까, 다윗을 비롯해서 인간들이 다윗의 가문을 유지하려고 그렇게 애쓰다가 결국은 망하고 말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망한 것을 주워 모아서 다윗의 가문을 만든다는 겁니다. 그것을 재료로 삼아서 말입니다.
그렇게 가문을 만드는 설계자가 누구인고 하니, 바로 예수님이란 말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자재로 자기 집을 짓는 것이 아니고, 인간들이 하다가 하다가 "야, 도저히 안 되겠다. 유대나라든 이스라엘이든, 우리 힘으로 도저히 못하겠다. 드디어 망쳤다" 라는 것을, 즉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렸는데, 그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는 것까지 포함해서, 그것을 재료로 사용하신다는 말입니다.
* 인간들 : 야, 도저히 안 되겠다.
* 하나님 : 왜 좀 더 하지?
* 인간들 : 우리 힘으로 도저히 못하겠다. 드디어 망쳤다.
* 하나님 : 정말 망쳤어? 어느 정도로?
* 인간들 : 이제는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정도로 망쳤다.
* 하나님 : 그러면 됐어. 바로 그거야.
◈ 메시야, 만나면 죽여버릴 거야 !!
다시 말해서, "인간들이 얼마나 메시야를 싫어하는가?" 라는 것까지 포함해서, 그러한 것들을 하나 둘 모아서 건축자재로, 즉 건축자들의 버린 돌을 모퉁이 돌로 사용하신다는 겁니다. 즉 "버렸지? 필요가 없지? 예수도 필요 없지" 라고, 그렇게 예수를 버린 자들을 모두 끌어 모아서, 하나님은 친히 그 안에 거하시면서 다윗의 집을 만드신다는 겁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원했던 다윗의 집이고 말입니다.
* 하나님 : 정말 버렸지?
* 인간들 : 예, 버렸습니다.
* 하나님 : 정말 필요가 없지?
* 인간들 : 예, 필요가 없습니다.
* 하나님 : 그러면 예수는?
* 인간들 : 그건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겁니다.
* 하나님 : 정말로?
* 인간들 : 예, 그렇습니다.
* 하나님 : 오케이, 됐어.
* 인간들 : ? ? ?
◈ 체험학습 - 나는 예수가 싫어 !!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려면, 예수님을 죽도록 싫어하는 체험을 해야 되는데, 이것을 체험학습이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중간고사도 치지 않고 대치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번 수련회 기간 동안에 그러한 체험학습을 열심히 했고, 또 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즉 "그런 예수 같으면, 나는 예수를 버리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그러한 순간, 즉 "나는 이러하기 때문에 예수님께 항의할 거야. 그것이 백 번 맞는 말이야" 라고 하는, 바로 그때 주님께서 친히 오셔서 거저 건져주시는 순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천당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자재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제가 목이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정말이지 중요한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학자들이 밝혀내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만약에 신학교 교수들이 이런 것을 이야기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이것은 마치 "우리 총신은 망해야, 총신이 된다" 라는 말과 똑같다는 겁니다. 여기서 총신은, 합동측 총회신학교를 의미하는데 말입니다.
◈ 먼저 교회에 실망해야 !!
그러니 여러분이 먼저 교회에 실망해야 되는데, 교회는 실망하기 위해서 온다는 겁니다. 물론 그렇게 실망해서 교회를 버리면, 그것은 애초부터 교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교회에 기대를 가지고 왔다가, 즉 '혹시나' 해서 왔는데 '역시나' 하면서 그 기대가 무너질 때, 비로소 그 사람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우리교회의 이근호 목사님이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가봤더니만, 뭐 다른 교회랑 똑같더라. 개판이네" 라고 말입니다. 정말로 잘 보셨는데, 바로 그것이 주께서 세우려는 준비된 자재들이인데, 즉 그야말로 아주 짝에도 쓸모가 없는 썩고 문드러진, 그러나 준비된 자재들이란 말입니다.
◈ 그야말로 완전한 잿더미 속에서 !!
그것도 모르고 다윗은 무엇을 했는고 하면, 건축자재를 열심히 끌어 모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에 의하면, 그야말로 완전히 잿더미인데, 즉 다 타버리고 남은 가루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언약궤도 완전히 타버렸는데, 물론 '레이더스' 라는 영화에는 보면 찾으려고 엄청 애를 쓰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놋 뱀도 히스기야 시대에 완전히 부서졌다는 말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그것을 알았는데, 그래서 남은 것이 무엇 밖에 없다고 했습니까? 물론 성전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성전을 유지하는 그 자체보다는 무엇인고 하니, "성전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과연 하나님의 언약에 가있는가?" 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성전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에 관심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이 울었는데, 즉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윗이 지은 집이 있다고 해서 자기들은 자동으로 구원을 받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얼마나 큰 오해인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무려 70년 동안을 남의 나라에 가서 살도록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 남의 나라에서는 율법도 지킬 수 없고, 또한 성전도 없고, 그래서 그때 그들은 바벨론 강가에서 울었다는 것입니다.
◈ Rivers Of Babylon ♬
'보니 엠(Boney M)' 이란 독일의 4인조 혼성 흑인그룹이 'Rivers Of Babylon' 이라는 노래를 불러서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를 쳤는데, 그게 바로 시편 137편에 나오는 말씀이란 겁니다. 그리고 'One way ticket' 이란 노래도 불렀는데, 아마 지금 40대 중반이면 너무나 익숙한 노래들이지 싶은데 말입니다. (녹취 '구' - 갑자기 대구의 '레인보우'가 생각나네요. ㅋㅋ)
(시 137: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 137: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시 137: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 아하, 우리는 버림받아 마땅하구나 !!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언제 돌아갈꼬?" 라는 것인데, 그래서 나온 유명한 말이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라고 것인데(?), 즉 "우리는 버림을 받아서 마땅하구나" 라는 것을 알 때까지 철저하게 낮추시고, 그렇게 "우리는 버림받아 마땅하구나" 라는 것을 아는 순간, 여호와를 믿지 않는다고 욕했던 고레스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진짜 메시야 같은데, 즉 불신자가 자기들을 도와준다는 말입니다.
◈ 여호와의 증인, 통일교 교인, 안식교 교인, 그리고 점쟁이 !!
지난 시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자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곧 메시야라는 겁니다. 막차를 놓쳐서 헤매고 있는데, 여호와 증인이 타라고 차를 세워주고, 또한 통일교 교인들이 제대로 된 먹거리를 팔고 말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는데, 물론 감사한 것은 감사한 것이고, 이단은 변함없는 이단이란 말입니다(ㅋㅋ).
제가 옛날에 봉화에서 신학생으로 살던 시절인데, 물론 저는 말씀이 좋아서 살이 찌고 난리가 났는데, 그런데 제 아내는 그 촌에서 외롭게 있으면서 그만 사택에 있으면서 물이 떨어지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때 누가 도움을 주었는고 하니, 물론 "바로 여러분!" 이라고 하는 것은 가수 윤복희이고 말입니다(ㅋㅋ). 그때 안식교 교인이 그야말로 매일같이 도와주었는데, 단 토요일은 빼고 말입니다. 아직까지도 고맙다는 인사를 못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제가 제일 친하게 지낸 사람이 누구인고 하니까, 물론 여호와의 증인이나 통일교 교인은 아니고, 바로 점치는 아가씨였는데, 물론 나이가 조금 많이 들었지만 말입니다. 그 아가씨와 제일 친하게 지냈는데, 얼마나 고맙게 잘해주던지 모른다는 겁니다.
◈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한, 바로 그 성전 !!
그러니 자기가 택한 백성이라고 하면, 교회 교인들이 아니고 불신자들이 앞장서서 다 도와준다는 말입니다. 지금쯤 '아멘' 이라는 추임새가 나와야 되는데(ㅋㅋ). 왜 그런고 하니, "우리는 모두가 다 같은 불신자일 수밖에는 없는데, 그런데 어떻게 은혜를 받아서 이렇게 신자가 되었는가?" 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럴 때, 그것이 바로 전혀 자기 공로가 아니라, 즉 하나님이 약속한 다윗의 집은, 바로 주께서 따로 준비하신, 즉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한 성전, 바로 그 성전이라는 겁니다. 시편 89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몸이 곧 성전이고, 우리는 그의 지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된 것도, 바로 성전에서 내려오는 물, 즉 성령을 받아서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 에스겔 - 성신으로 성전을 !!
에스겔은 이것을 이미 알았는데, 즉 기존의 성전은 부서지고, 그 부서진 잿더미 위에 다시 세워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예언하기를, 장차 올 성전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고 하니, 하나님의 성신으로 되는데, 그 성신을 어떻게 만드는고 하니,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언약궤에서 물이 나오는데, 바로 그 물 때문에 산다는 겁니다. 물론 집에 물이 나오면, 비싼 돈을 들여서 배관공을 불러야 되지만 말입니다(ㅋㅋ).
하지만 새로운 성전은 계속해서 물이 나와서, 새 하늘과 새 땅 전부를 다 적시는데, 그것은 마치 창세기에 나오듯이, 즉 에덴동산에서 네 강이 발원하는 것과 똑같이 그렇게 생명수가 흐르는데, 바로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명들이 다 살아난다는 것을, 그것을 에스겔이 예언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무엇입니까? 그야말로 바보 같은 유대인들이고, 바보 같은 다윗의 가문들이라는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의 가문을 지키신다" 라고 우기는 그 유대 지파들과 그 인간들, 그래서 유대교인이 된 자들이 그 얼마나 어리석기 짝이 없는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에스겔의 예언을 이룬다고 하면서 어떻게 했습니까? 맥추절에 양동이에 물을 퍼서 애매한 언약궤에다 물을 부었다는 겁니다. 물론 요즘 같으면 소방호스로 당겨서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그곳으로 올라가서는 "아이쿠, 아저씨들 참 수고가 많네요" 라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그 물이 바로 그 물인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게 아니라 마지막 때는 메시야에게서 성령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에스겔이 예언한 물이라는 말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성전은 부동산이 아니고 움직이고 있는 '나', 즉 자기 자신이 곧 성전이기에 말입니다.
◈ 에베소서 2장 -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그 전체가 곧 '성전' !!
그래서 에베소서 2장에 보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워진 그 전체를 두고 '성전' 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즉 "성령이 있는 곳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있으려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자재가 있어야한다는 겁니다. 자재가 말입니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 성령이 있는 곳이 곧 하나님의 성전 !!
어떤 분이 "목사님, 저도 성령이 있어요" 라고 하는데, 그래서 자기가 성전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진짜 성령이 있다고 하면, 그 자체가 바로 자기 힘으로 구원될 수 없음을 항상 느끼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확실하게 아는 사람, 물론 그것도 지극히 짧은 순간인데, 즉 0,5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무튼 어느 순간인가 "야, 내 힘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잖아!" 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바로 그때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 하신 약속은 주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다윗'이나 '나'나 그 어떤 사람의 능력으로도 주의 성전은 절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교회마다 예배당을 짓는 것, 그 정도는 용납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락원 목사님께서 써신 글 중에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제목이 "초대교회에 무슨 예배당이 있었는가?" 라고 말입니다. 즉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무조건 잡아죽이는 시대에, 그래서 모두가 지하동굴에 숨기에 바빴지, 언제 헌금을 거두고, 또 구청에 직접 가서 건축허가를 얻어서 예배당을 짓겠느냐는 겁니다. 만약 그렇게 사고를 쳤다면, 분명히 로마 군사들이 와서 잡아갔다는 겁니다.
◈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모인 바로 그곳 !!
오히려 그때는 '가이오의 집'과 같은 개인가정으로 숨어서 모였는데, 그것이 곧 교회였다는 말입니다. 또 유대인의 회당을 빌려서 말씀을 전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그 회당이 성전입니까? 그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지하동굴이 성전입니까? 그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성령이 있는 곳, 즉 거기에 모인 자들이 바로 성전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것이 곧 교회이고 성전이란 겁니다. 그러니 교회모델이 결코 여의도의 순복음 교회가 아닌데, 진짜 제대로 된 교회모델은 이미 성경에 있다는 말입니다.
◈ 교회가 교회를 망쳐 !!
제가 자주 이야기를 하는데, "교회가 교회를 망친다" 라고 말입니다. 즉 기존의 큰 건물이 있으니까, 그 사이에서 "아하, 저게 교회로구나" 라는 선입관이 박혀있으니, 그래서 가이오의 집이나, 혹은 광주 우인숙 집사님의 집에서 모이면, 그때는 "아니, 이것이 무슨 교회야?" 라고, 그렇게 나오더란 겁니다. 물론 예를 들어서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기에서 나오는 말씀은 생각을 하지 않고, 즉 "이것은 교회가 아니고, 개인 아파트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저도 우인숙 집사님의 집을 교회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는데, 다만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곧 '교회'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파트 건물을 보고서, 그것을 교회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 교회 - 공간적, 시간적으로도 이동할 필요가 없어야 !!
그러므로 '교회' 라는 것은, 어떤 공간적, 시간적으로도 이동할 필요가 없는 조건을 갖출 때, 비로소 교회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번에 우리교회를 옮겼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주님의 손에 있는 일곱 교회는 옮겨지지를 않는데, 다만 일곱 교회가 밑에서 교체되고 있을 뿐이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편 89편에 있는 다윗의 집을 완성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드디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서, 진짜 하나님께서 손수 지으신, 스가랴서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신에 의해 지어진 집을 완성시켰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다윗은 "제가 집을 지어드리겠습니다" 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것을 부숩니까? 물론 부수는데, 그런데 나중에 부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 주께서는, 다윗의 집을 위하여 집을 !!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 중에서 여기서 하나 빠진 것이 있는데, 그게 뭔고 하니,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즉 다윗의 집을 위하여 집을 짓는다" 라고 하시는데, 표현이 재미있지요? 집을 위해서 집을 지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친히 집을 짓는데, 그것이 곧 다윗가문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신학자들이 여기서 무엇을 모르는가 하면, 이 가문 끝에 누가 등장하는고 하면, 아까 살펴본 로마서 1장 3절에 의하면 다윗의 자손인데 말입니다. 그것이 복음서에 보면 나오고 말입니다. 그래서 두 소경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할 때, 주님이 임하신다는 겁니다.
(마 9: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 하나님께서 지으시는 '집'의 범위는?
그렇게 다윗의 자손이 임한다고 하면, 하나님이 집 지을 때 그것은 "다윗의 자손까지가 집인가? 아니라면 다윗의 자손만 집인가? 그것도 아니면 다윗의 자손까지 모두다 포함해서 집인가?" 라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그 뒤에 나오는 사람들을 다 포함해서 말입니다.
만약에 모두 다 포함한다고 하면, 예수님이 죽고 난 뒤에 사도행전에서 계속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여전히 다윗 집은 미완료가 아닙니까? 계속해서 들락날락하니 말입니다. 즉 아직 다윗 집은 완성되지 않은 것이니, 그러니 그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이 문제를 풀려고 애를 썼는데, 즉 "다윗의 자손, 이것이 예전에 있던 다윗의 가문과 이후에 나올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아우를 수가 있는가? 즉 이것을 어떻게 정지상태로 만들 수가 있는가?" 라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역대상 12장부터 계속해서 나오는 다윗 가문의 확고성을 가지고 설명해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또 하나님이 다윗을 가지고 놀았구나" 라는 것인데, 물론 다윗은 지금 좋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물론 주님께서는 다윗이 좋다고 하는 그것이 장차 올 확고한 하나님의 성전에 몰리게 된다는 점에서는 좋게 여기지만, 그러나 "얘야, 그건 아니야" 라는 뜻이라는 말입니다.
◈ 웬 율동 신학원 ??
지금 최 장로님이 안 계십니까? 물론 계셔도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대구시내에 있는 동인 사거리에 보면 '율동 신학원' 이라는 것이 있는데, 혹시 보셨습니까? 찬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찬양 신학교를 하나 만들었다는 겁니다. 정식인가를 받았는지는 모르겠고 말입니다.
이곳에서는 무엇을 하는고 하면, 율동을 전문적으로 가르쳐서 주일학교 율동교사를 배출하는데, 저는 그 단체를 보면서 "참으로 오래 가네. 아직도 월급이 나오는구나. 저것이 망하면 구원을 받는데, 아직도 망하지 않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ㅋㅋ).
왜냐하면, 그런 곳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뭔가 하면, 시편대로 찬양해야 올바른 찬양이고, 그 시편대로 찬양을 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찬송가도 뒷부분에 있는 노랫가락은 모두가 엉터리이고, 시편의 가락대로만 해야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실례지만, 그런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는 말입니다.
◈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보좌하기 위해서 !!
그런데 역대상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보좌하기 위해서 문지기들과 성가대원들을 차출해서 성전에 포진하도록 합니다. 물론 제일 바깥에는 군대가 둘러싸고 말입니다. 이것을 지난 시간에도 했지만 복습 삼아서 다시 해보면, 다음과 같다는 겁니다.
이렇게 멀리서 보면 하나님과 다윗이 맞닿아 있는데, 그러나 가까이 와보면, 다윗은 언약궤 가까이를 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언약궤는 누가 담당합니까? 이것은 레위지파 담당인데, 그러면 다윗은 놀고 있습니까? 그건 아니고,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군대를 가지고, 이 제사직분이 계속해서 유지되도록 주변의 위협으로부터 모든 것을 지키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은 블레셋, 암몬, 모압 등등, 소위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깡패들을 전부 다 깡그리 잠재워 놓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는 곳마다 승리케 하셨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것이 역대상 18장 13절에 나오는데 말입니다.
(대상 18:13)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매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 심방을 가면 ??
이런 구절은 목사님들이 대심방을 할 때 참으로 멋지게 써먹을 수가 있는데, 특별히 그 대상이 개인사업을 하는 교인이라고 하면 말입니다. 즉 다윗이 그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승리하게 하셨는데, 그러니 희망이 마구 마구 다가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만 이야기를 해버리면 돈이 안되니, 다른 구절도 하나 더 넣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진짜로 돈이 되는 것을 다 가르쳐 주는데 말입니다(ㅋㅋ).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일단 역대상 29장 14절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상 29:14)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그러니 이 구절을 가지고 심방을 가서 뭐라고 하면 되는고 하니, 이것이 다윗의 모델이 되기 때문에 말입니다. 즉 "집사님께서 사업에 성공하려고 하면, 즉 다윗처럼 그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승리케 하는 자가 되려고 하면, 바로 역대상 19장 14절의 말씀을 실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십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헌신예배 때도 이 말씀이 그야말로 '왔다' 인데, 교회에 헌금이 딸릴 때 얼마나 멋지냐는 겁니다. 누가 반박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게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교인들이 뭐라고 합니까? 물론 목사의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인데 한번 해보자" 라고 한다는 겁니다. 효과가 없으면 그만이고 말입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무속인이 14억이나 뜯어먹고 구속이 되었다는데 말입니다.
◈ 다윗의 승리가 아니라 !!
그러니 이러한 다윗의 승리는 다윗의 승리가 아니고, 다윗이 지켜야 될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승리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승리인데, 하지만 그렇게 자기를 지키기 위한 승리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은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름은 분명히 다윗언약이지만, 하지만 그 실제 내용은 모세율법을 유지하기 위한 다윗언약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다른 나라는 속된 나라인데, 그런데 이스라엘은 거룩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거룩을 지키는데 있어서, 이 거룩에는 피가 있다는 겁니다. 즉 피의 제사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케 하신다는 말입니다. 즉 피의 복음을 가지고 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윗처럼 어디를 가든지 승리토록 해주신다는 겁니다.
◈ 피의 제사는, 반드시 승리를 !!
그것은 제가 분명히 장담할 수 있는데, 피의 제사를 드리면 주께서 반드시 승리케 해주신다는 겁니다. 뒤에 가서 또 다시 속았다고 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ㅋㅋ),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 보면 그 근거가 나와 있다는 말입니다.
(계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여러분이 아마 이 구절을 보면, "내 그럴 줄 알았다" 라고 하지 싶은데, 또 속았다고 말입니다(ㅋㅋ). 그러니 이기는데 어떻게 이깁니까? 자기 생명을 포기하면서 이겼다는 겁니다. 무엇을 지키는데 말입니까? 십자가의 피를 지키는데 있어서 말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 생명으로 십자가의 피를 지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남쪽 유다의 요담 왕인 경우에, 미가야 선지자가 와서 이야기를 하니, 왕이 그것을 보고 무엇이라고 합니까? "저 인간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온 적이 없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가 아닙니까?(ㅋㅋ)
◈ 하나님과의 유일한 접촉점 - 언약궤 !!
그러므로 다윗이 승리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분화구에서 활화산에 폭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곧 '언약궤' 인데, 즉 하나님과 인간이 유일하게 접촉할 수 있는 말입니다. 왜 영화 'E.T'를 보면 서로 손가락이 만나는데, 그렇게 하나님과 유일하게 접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곳이란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만든 언약궤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고, 그곳에서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 주신다는 겁니다. 바로 그 언약궤가 드디어 완성이 되어서, 그 뚜껑을 박차고 열고 나오신 분이 누구인고 하면, 바로 '예수님' 이라는 말입니다.
◈ 충만, 충만, 충만 !!
이것이 '피' 라는 책에 나오는데, 즉 예수님의 십자가는 옛날에는 압축되어서 '언약궤' 라는 좁은 곳에 있었는데, 그래서 깜깜했었는데, 그런데 그것을 열고 나오면 온 우주에 예수님의 피로 넘치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을 에베소서에서는 '이미 충만' 이라고 했는데, 이 충만은 어떤 충만인고 하면, 전혀 개인 소유가 되지 않는 충만이라는 겁니다. 즉 자기 것으로 소유할 수 없는 충만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예를 들어서, 우리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면서, "아줌마, 이쪽으로는 오지 마세요. 오시면 물을 다 버립니다. 이곳은 나의 물입니다" 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가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충만은 뭐냐 하면, 둘이 있어도 충만이고, 또한 네 명이 들어와도 충만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에는, 즉 십자가의 피는 아무리 믿어도 모자람이 없는데, 그래서 '충만' 이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천 명, 아니 천만 명이 예수님을 믿어도 "야, 그만 믿어라. 지금 하늘나라에서 피가 모자란다" 라는 것은 없는데, 그래서 '충만'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자꾸만 개인 소유화를 하니까, "목사님, 지난주에는 충만했는데, 이번 주에는 충만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 겁니다. 개인 소유화를 해서 그런 오해가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수영장에서 기다리는 것이지, 개인 사물함에서 가다리면서 개인 호주머니에 무엇을 넣어주는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너의 피다" 라고 하는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아니, 세상에 '너의 피' 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목사의 피, 집사의 피, 장로의 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피 밖에 없다는 겁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 말입니다.
◈ 다윗가문이 아닌 '다윗자손' !!
여기서 중요한 것을 해야되는데, 아까 레위지파에 있는 그 모세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군대가 포진을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멀리서 보면 맞닿은 것 같지만, 그런데 가까이 가보면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거리를 누가 메우는 것입니까? 그것이 역대상 15장에 나오는데, 먼저 1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상 15:1) 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궐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하여 장막을 치고
여기에 처소, 즉 장막이 나오는데, 이것을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집은 다윗가문이 아니고 '다윗자손' 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윗자손이 다윗가문을 흡수 통합할 수 있는고 하면, 그것은 바로 다윗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확정화를 시킬 때, 그것은 바로 장차 오실 예수님에 의해서 확정되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로서, 그렇게 되면 다윗은 그만 스톱이 되고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길로 간다는 말입니다.
◈ 마태복음 1장 - 왜 '14대' 인가?
그것이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 나오는데, 즉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 라고 되어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다윗을 중심으로 해서 마치 후지산처럼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올라갈 때가 14대인데, 그러면 14대가 넘는데 왜 14대인고 하니, 올라갈 때가 14대니까, 내려올 때도 역시 14대로 쳐주고, 14대가 넘는 것은 다 빼버린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 다음에 바벨론으로 이거한 이후부터 예수님까지 가는데 또 14대를 맞춰야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42대'로 한 것은, 전부를 다 합쳐서 이렇게 42대로 보지 말고, 이것을 3으로 나누어서 "14대, 14대, 14대"로 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께서 다윗같이 되었지만, 그런데 그것을 인간들이 그만 망쳐놓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인간들이 망친 것을 주께서 오셔서 어떻게 회복하는가를 보여주는 의미에서 '14대'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인데, 즉 인간들이 실패한 자리, 그렇게 인간들이 절망한 자리, 즉 "이제는 우리 힘으로 도저히 안 됩니다" 라고 하는, 바로 그 자리가 구원이 성사되는 '개시점' 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좁아 보이는 언약궤에 누가 총집합이 됩니까? 레위지파와 아론자손이 다 들어가는데, 그것이 역대기 15장에 보면 그것이 '쭉'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신나게 진도를 낼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제사장 족보를 이야기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해서 넘어가고, 그 다음에 보면 이제 레위지파가 언약궤를 메고 오는데, 즉 이 세상에서 가장 까칠하고 위험한 물건을 수송하는데 있어서 거룩한 레위지파가 동원된다는 겁니다. 물론 그 이전에 '웃사' 라는 인간이 이 언약궤에 함부로 덤벼들다가 죽은 사건도 나오고 말입니다.
◈ 드디어 언약궤가 종착점에 !!
드디어 16장에 보면, 언약궤를 옮겨놓고 난 뒤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데, 이것만하고 쉬도록 하겠는데 말입니다. 이 16장 전체가 기도인데, 그 기도내용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고 하면, 16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대로, 그 땅에 우리가 도착을 했습니다" 라는 겁니다. 즉 "임무, 끝!", 그렇게 되는데, "드디어 마지막 종착점에 도달했습니다" 라고 본다는 말입니다. 즉 앞으로 도착한다는 것이 아니고, 이미 도착했다고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대상 16:16)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대상 16:17) 이는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대상 16:18)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그러니까 다윗은 세계를 정복할 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세계를 정복하도록 한 것이 아니고, 그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가나안 10족속을 물리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하나님의 약속대로 드디어 도달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추가적인 언약이 있습니까? 없는데, 그렇게 없으니까 짐을 내려놓고 거기에서 기쁨의 잔치를 벌인다는 겁니다. 마치 초등학생들이 소풍을 가서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면, 이제 가방을 풀어놓고서 도시락을 까먹듯이 말입니다. 물론 도중에서 이미 다 먹고, 젓가락을 들고 돌아다니는 놈들도 있지만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 다 왔습니다. 여기가 바로 그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정을 해주신 바로 그 장소에 드디어 우리가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그 장소입니다" 라고 해서,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그 장소에 내려놓았다는 말입니다.
◈ 언약궤는, 다만 사라질 뿐 !!
그러니 그 장소에서 절대로 하나님의 언약궤는 이동하지 않는데, 다만 사라질 뿐이란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그림자이니 말입니다. 마치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사라져버린 것처럼, 그렇게 사라져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라져버리면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우리가 항상 믿어야 하는 것은, 사라진 그분이 숨어 계셔서 각 개인에서 성령을 주시게 되면, 이제는 그 장소가 그 어떤 땅이든 전혀 상관이 없이 전부가 다 약속의 땅이 되는, 그런 신약시대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10분만 쉬겠습니다.
2010,05,30 오후 10시에 마침. - 녹취 '구'
오늘 원고도 없이 역대기를 설교했는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