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역대기)(강의정리)07-재정리
2009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역대기)(강의정리)07-재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1)
09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역대기 제7강(둘째 날 오후2)
2009,01,14 강의 이근호, 정리 서경수
◈ 어허, 속이 다 시원하구나 !!
이제 시작하겠는데, 역대하 36장 21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여기에 보면,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70년을 지내었으니" 라고 하는데, 여기 '70년' 이라면 "B.C 605년 ∼ B.C 536년" 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약속한 그 시간대에 맞추어서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약을 아주 바짝 올린다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데, 그야말로 철사 줄로 꽁꽁 묶여서 끌려가는데,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울며 울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끌려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아예 속시원해 하신다는 겁니다. 그게 에스겔서에 나오는데, 즉 "너희들이 벌을 받으니, 내가 속시원하다" 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위청수를 드셨는지 모르겠는데(ㅋㅋ), 아무튼 그런 구절이 예레미야서 등을 비롯해서 여러 군데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겔 5:13, 개역) 이와 같이 내 노가 다한즉 그들에게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시원하리라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
◈ 앗수르와 베벨론은, 일종의 청소용역회사 직원들 - !!
다시 말해서, 70년을 안식하게 됨으로서 "아, 이제 내 땅이 조용하구나"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일에 동원된 훌륭한 자들이 누구인고 하니, 물론 전혀 착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그들이 바로 그 잔인한 '앗수르'와 '베벨론' 이라는 겁니다. 그들이 주님의 청소용역회사 직원으로서 채용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선지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데, 그것을 아니까 어떻게 됩니까? 즉 어떤 시점에 도달해서 그것을 아는 순간, 그 사람의 시선은 갑자기 더욱 더 멀리 '붕'하고 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어떤 사람이 자기 일에 몰두하다가, 즉 "하나님, 이것만은 반드시 이뤄주세요" 라고 철야기도를 했는데, 막상 그 시기에 이르러서 모든 것이 깨어졌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은 무엇을 깨닫는고 하니,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자기의 야망으로 인해서 가려졌다는, 그런 허물이 벗겨지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 이번에 로또복권에 당첨되면 !!
예를 들어서, 로또복권을 살 때마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복권을 사면서 "하나님, 제가 욕심은 내지 않겠습니다. 만약에 1등이 당첨되기를 바란다면, 그건 제가 나쁜 놈이고, 그저 2등 정도만, 그래서 5억 정도만 당첨이 된다면, 교회에 헌금으로 일부를 내고, 나머지는 아이 학비도 좀 보태고 하겠습니다" 라고, 그렇게 일종의 갈라먹기를 시도한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도 좀 먹고, 저도 좀 먹고, 그러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로또가 꽝이 되면 그나마도 다행인데, 그런데 10년 동안 천 만원 이상을 투자해서 겨우 이번에 1등에 당첨이 되었는데, 그런데 로또회사가 그만 망해서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경우에, 그러면 정말로 황당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아이쿠, 고소하다. 참기름보다 더 고소하다. 내가 왜 이렇게 속이 다 시원하지?" 라고 하신다는 말입니다(ㅋㅋ).
◈ 하지만, 망가짐의 혜택을 입어야 !!
하지만 그런 망가짐의 혜택을 입은 사람이라면 천만다행한 일인데, 왜냐하면 그렇게 됨으로서, 자아 이미지의 노선으로 계속 구축하면서 가다가, 비로소 주님의 노선으로 합류하는 계기가 되니 말입니다. 여기서 자아 이미지는 뭐냐 하면,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라는 것인데, 그런데 주님의 노선에 합류하게 되면 "내 인생은 주님의 것이다" 라고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아 이미지의 노선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게 되면, 우리는 "인생은 미완성 ♬" 라고 나오는데, 하지만 정작 주님의 노선은 무엇입니까? "다 이루었다!" 라는 것인데, 즉 인생은 미완성이 아닌 이미 완성이 다 되었다는 겁니다. 분명히 완성이 되었는데, 즉 새로운 창조가 주어져서 교체작업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그 계기가 무엇인고 하니,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라는 것에서, 성령이 임하게 되면 "주님이 값으로 사신 주님의 것입니다" 라는 것으로 이전하게 되는데, 그런데 그렇게 이전을 하면서, 그동안 복음을 전한 목사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많이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 빈털터리가 된 이후라도 !!
우리교회에 나오시는 분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면, 평소에 돈을 잘 벌고 행세를 조금이라도 할 때는 다른 교회에서 다 퍼주고 하다가, 막상 사업이 망해서 돈을 다 잃고 빈 털털이가 된 이후에 나온다는 겁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처음에는 그것을 원망했지만, 하지만 그나마 나오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곧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심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지금 당장은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또한 성전도 보수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야말로 엉망진창이고 말입니다. 그러니 관광객도 전혀 오지 않아서 수입도 땡전 하나 없고 말입니다. 그야말로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
그런데 에스라 1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되어 있는데, 그런데 여기에서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라는 것을, 하나의 추임새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성경 중간중간에 이런 말씀이 있으니 말입니다.
(스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여러분, 추임새가 무엇인지 알지요? 왜 가락이 흘러갈 때 '얼추!' 라고 하면서 흥을 돋우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밀씀이 응하게 하셨다" 라는 말씀은 그런 추임새가 아니고, "진짜 말씀대로 이뤄지는구나. 야, 말씀이 정말로 장난이 아니네" 라고 하는, 즉 진짜 말씀대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보다 더 확실히 해준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무서운 사람의 특징은?
그래서 제가 얼마 전에 그런 설교를 했는데, 즉 "하나님이 무서운 사람의 특징은, 사람이 무섭지 않은 사람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즉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라는 겁니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 인생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까 싶어서 두려워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 인생이 두렵다는 것은, 하나님이 전혀 무섭지 않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아 이미지, 바로 그것의 망가짐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평소에 자아 이미지를 가지고 설쳤던 놈들인데, 즉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즉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임에서 승자가 되었다고 으스대고 자랑하기 위한, 그렇게 남을 위한 자아 이미지를 형성하다가, 그만 남에게 보여줄 것이 없게 되니까 자기 파괴에 나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오직 "나와 너" 라는 것뿐인데, 즉 "당신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라고 하면, "그런 것은 묻지 마세요" 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그런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이런 자기 밖에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말씀이 응하게 하려 함이라" 라는 것이 선포된다는 것입니다.
◈ 그만, 이방인들에게 말씀이 응해버리는데 !!
그것이 요엘서, 그리고 이사야 65장에도 나오는데, 여호와를 모르는 놈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부르게 하겠다고 하시는데, 그런 하나님의 말씀이 응해버리면, 여호와도 모르고, 예수님도 누구인지도 전혀 사람들이, 여호와의 노선에, 즉 말씀노선에 합류가 되면서, 이방인들이 그만 여호와를 찾게 되고, 예수를 구세주라고 외치는 놀라운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 65: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 사도행전 - 예수님은 주(主)시다 !!
그것이 곧 사도행전이고, 또한 초대교회의 모습인데, 이 초대교회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면 "예수님은 주(主)시다" 라는 것인데, 그런데 그것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살아있을 때는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막상 예수님이 보이지 않을 때 아주 열렬하게 외쳤다는 겁니다. 즉 예수님이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올라가서 보이지 않을 때, 그때에 "예수님은 주시다" 라고, 비로소 외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눈에 보일 때는 교회는 없다는 겁니다. 즉 교회는 남들이 보기에, 일단 보고 들어오면 교회가 아니라는 겁니다. 즉 교회에 와서 "어, 사람만 있네" 라고 하면, 그것은 성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 인간들이 미쳤구나. 왜 미쳤지? 아하, 주님의 사랑 때문에 미쳤네" 라고 될 때, 그것이 곧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보이지 않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쓸데없이 보이는 것을 가지고, 즉 그것을 매개체로 사용하려고 시도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그냥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희생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희생하면 말입니다.
◈ 자진해서 봉사하세요 !!
많은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듣고 오해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앞의 부분인, 즉 "모든 법적인 것은 다 치워라" 라는 말은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런데 진짜로 제가 강조하는 부분은 귀마개를 하고 듣지 않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즉 "자진해서 희생하고, 자진해서 헌금하고, 자진해서 봉사하세요" 라고 하는 부분은 못 들은 척을 한다는 말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초대교회는 환난 중에 기뻐하고 즐거워했는데, 이런 것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구약 선지자들의 말씀이 응한다는 그 맥락이 이방인까지 모두 포섭해서, 그렇게 해서 '온 이스라엘'이 함께 구원을 받는, 즉 로마서 11장 26절에 나오는 그 말씀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롬 11: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보면, 구약의 말씀이 많이 인용되어 있는데, 즉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러한 선지자의 말씀 가운데 무엇이 있는고 하니까, "이스라엘아, 너희들은 이제 그만 나가 놀아라. 너희들이 아무리 내 이름을 불러도 내 백성이 아니다. 오히려 여호와를 모르는 자들에게 내가 미리 손을 내밀었다" 라고 나온다는 말입니다.
◈ 이제 역대상 11장을 통해서, 그 안으로 !!
그렇다면 과연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을 이 역대기를 통해서 살펴보려고 한다는 겁니다. 바로 그것을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하지를 않고 빼놓았던 역대상 11장을 살펴보면서 말입니다.
늦게 오신 분들을 위해서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리겠는데, "역사는 곧 시간의 연결이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연결을 역사로 보면 잘못이란 겁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면적이 없는데, 그냥 선(線)으로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렇게 'A' 지점, 'B' 지점, 'C' 지점이 있다면, 'A'에서 'B'로 가면, 'A'는 없어지고 'B'는 'A'가 되고 'C'는 'B'가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항상 선으로만 언급되는 것이 역사인데, 그러니 이것을 면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 역대기 - 시간의 면적화 !!
그런데 역대기는 이것을 그만 면적화를 시켜버리는데, 그렇게 되면 이 전체가 곧 '언약구조'가 되면서, 물론 여기 거의 대부분은 다윗과 솔로몬의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먼저 다 읽어보면서 해야 되는데, 여러분들이 이미 읽어오셨다고 여기고 하겠다는 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6시간을 강의했는데, 그 강의내용이 무엇이었는고 하면, 산 정상에 있는 다윗과 솔로몬 이야기는 거의 하지를 않고, 여기 앞에 있는 오르막길의 시작 부분과 내리막 부분을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윗과 여기 솔로몬 쪽에서 나온 것이, 어떻게 여기 내리막으로 가는 왕들에게 파급이 되어서 부정적으로 역사를 했는지, 바로 그러한 점에 대해서 했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역대상 11장부터는 무엇인고 하면, 바로 여기 정상 안으로 들어간다는 겁니다. 물론 여기서 '들어간다' 라는 말은, 역사에서 떠나서, 역사는 흐름이고 흐름은 항상 미완료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솔로몬 언약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이 미완료가 완료로 바뀌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여기 안에서는 흐름이 아닌 정지라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안식'이고 말입니다.
그렇게 '스톱'이 되어버리면, 제 아무리 세월이 지나고 흘러도 여전히 동일한 과거완료로서, 이 시간이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이 언약에 의해서 이미 규정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즉 2010년, 2020년이 되면 화성이 사람이 산다고 해도, 그런 모든 것은 이미 언약에 의해서 고정화가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완성이 되었기에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 전쟁 - 시간과 공간의 정지화 !!
우리가 다윗을 살펴보기 이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 모든 시간과 공간을 정지화, 즉 스톱을 시키는 작업을 어떤 식으로 배치했고, 만들어내었는가?" 라는, 그것을 눈여겨보면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 바로 '전쟁' 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에 전쟁이 일어나는데, 제가 야베스의 기도를 설명하면서 말씀을 드렸지 싶은데, 즉 하나님께서 땅을 주시는데, 그 땅을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고, 전쟁을 통해서 땅을 차지하게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고 하면, 전쟁을 통해서 이 묵시적 땅, 즉 완성의 땅은 지상의 인간들이 생각하는 그 전쟁개념으로서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존의 인간들이 벌이는 전쟁 가운데, 그만 하나님의 '이름'이 개입되면, 그것은 기존 전쟁과는 전혀 판이하게 다른, 즉 아무런 무기도 없고 전략도 없는데, 그런데도 승리가 연속이 된다는 겁니다. (그때 콜록 콜록 기침 소리가 나는데) 지금 기침이 자꾸 나오는데, 가끔 이런 모습도 있어야 고난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냥 추임새라고 가볍게 생각해주시기를 바랍니다(ㅋㅋ).
아무튼 이렇게 전쟁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 이 전쟁을 인간들이 자기들의 무기로 하는 전쟁이 아니라, 완전히 질적으로 전혀 다른, 그야말로 하늘에서 동원된 무기를 가지고 땅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건져 올리는 전쟁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해서 건짐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고 하면, 그건 '다윗' 혼자뿐이라는 겁니다.
◈ 다윗이 혼자 건짐을 받아 !!
알다시피 다윗은 10대의 어린 시절에 그런 경험을 했는데, 즉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서 싸우는 말입니다. 소년이면 소년답게 집에서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놀면 되는데, 그런데 어른들이 전쟁을 하는데 나가서, 그것도 어른들도 이기지 못하는 적장 골리앗을 물맷돌로 이겼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최영만보다도 더 큰 거인을, 더욱이 자기는 칼이 없어서 골리앗의 칼을 가지고 단칼에 베고 말았다는 겁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윗이 그렇게 골리앗의 목을 베어서 이긴다는 것은, 모든 기성 세대들이 하는 전쟁의 방식은 하나님의 이름이 개입된 것이 아니고, 그것은 인간의 이름이 개입된 지극히 이방적인, 즉 비언약적인 방식이란 것이 만천하에 공개하는 셈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
그럴 때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라고 했는데, 완전히 10배인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참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쓸쓸한 사울의 입장을 한번 감안해 보라는 겁니다. 그래도 명색이 왕인데, 얼마나 쪽 팔리고 열을 받겠느냐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근호는 100인데 이장우는 10이다" 라고 하면, 듣는 이장우 목사님은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흰 머리카락이? ㅋㅋ)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그러나 실제로 말씀이 우리에게 적용되면, 아마 내일은 이근호를 다시 만나기 힘들지 싶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가인이 아벨을 죽여야 가인 값을 하고, 또한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야 하니 말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일을 이렇게 벌리시니까, 그래서 사울은 킬러들을 보내서 다윗을 죽이려 했는데, 때로는 자기가 직접 가서 다윗을 죽이려고 하고 말입니다. 그때 다윗이 하는 말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하는데, 사실은 이런 고백이 있어야 성도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이렇게 수모를 당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 때문입니다. 내가 언제 골리앗을 이기고 싶었습니까? 그냥 놀러 갔다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물리쳤는데,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환영할 줄 알았는데, 그런데 모두가 다 나를 피하고, 정말이지 억울합니다" 라는 것이 다윗의 솔직한 심정인데 말입니다.
◈ 바로 다윗이 당하는 그 억울함이 !!
바로 그렇게 다윗이 당하는 그 억울함이, 그것이 그대로 '대속물' 이라는 개념으로 예수님의 인생에 덤탱이로 씌워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민중들이 원하는 그런 엘리트 스타 메시야와는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살수록, 점점 더 주위의 적들을 더 많이 양산하는, 즉 의도적으로 원수들을 더 많이 배출하는 셈이 되어버려서, 결국은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는데, 즉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이 말씀의 노선에 합류를 하려면, 그 길이 무슨 길인고 하면, 바로 예수님 말씀처럼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라" 라는 겁니다. 즉 우리 인간 노선에서 말씀 노선으로 옮기려면, 그 중간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고 하면, 반드시 십자가를 지고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인고 하면, 나쁜 짓을 해서 벌받는 십자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고 말입니다. 지금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십자가는, 너무나 의롭기 짝이 없는, 즉 하나님 때문에 사는데 그것마저도 이 세상에서 서러움 당하는, 정말이지 어디 하소연을 할 데가 없는 말입니다.
◈ 내가 또 한 생명을 건졌다 !!
다시 말해서,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라도 위로할 자가 없는, 즉 시편 65편에 나오는 경험을 하면서 합류가 될 때, 비로소 그 사람은 자기가 만든 인생이 아니고, 하나님이 친히 만들어낸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될 때 주님께서는 "내가 또 한 생명을 건졌다"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목사가 제일 서러울 때가 어떤 경우인가 하면, 자기가 생각해도 설교가 엉망진창이라서 그만 힘이 쭉 빠져있는데, 그런데 교인들이 몰려와서 "목사님, 오늘 설교말씀이 너무나 은혜로웠습니다" 라고 할 때, 그러면서 다른 교회 교인들도 와서 자기 교회에 등록을 할 때, 그때는 사실 정말 미안하다는 겁니다.
물론 그것은 서럽지는 않고 고마운데, 그런데 그와 반대로 자기는 정말 설교를 잘해서 흐뭇한 마음을 가지고 목사로서 자부심도 느끼는데, 예수님도 칭찬을 했을 것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만 그 설교를 듣고 교인들이 10명이나 교회를 떠나고 말았을 때, 그때는 정말이지 도무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면 앞으로 설교준비를 하지 말까?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 아,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어쩌란 말인가?" 라고 하는 순간에, 자기의 무능함을 느끼는데, 바로 그 무능함을 느끼는 것, 그것이이 바로 십자가의 영이, 즉 성령이 자기 머리 위에 있는 순간이란 겁니다. 자기로서는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을 때, 즉 자기는 할 도리를 다 했는데 그것마저도 벽에 부딪칠 때, 그렇게 해서 전혀 출입구가 보이지 않을 때, 마치 반석 앞에 서있는 것 같은 말입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는 물이 전혀 없어 보이는 그 반석 앞에 '나'를 데리고 세우시는데, 그런데 그만 그 반석에서 물이 콸콸 흘러나와서, 그래서 나중에 보니까 "나, 물을 뒤집어썼을 뿐이고, 물을 마셨을 뿐이고!" 라고 된다는 것입니다. 개콘의 안상태 기자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말입니다(ㅋㅋ).
아무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이렇게 우리가 예상치 못하는 일을 하시는데,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경험을 여러 번 하고는, 또 다시 재미 삼아서(?) 그렇게 미리 예상하지 못할 일을 뽑아본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뽑아놓은 10개는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데, 저의 경험상 장담을 하는데 말입니다(ㅋㅋ). 하나님은 그 리스트에 없는 것을 골라서, 또 다른 식으로 또 일을 하시는데, 반드시 그렇다는 겁니다.
◈ 야, 다시 조카를 불러라 !!
예를 들어서, TV가 고장이 나서 아무리 고쳐도 나오지 않았는데, 그래서 이제는 포기를 하고 새 것을 구입하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어린 조카 놈이 집에 놀러와서 장난을 치다가 그만 TV를 건드려서, 그 TV가 나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 또 다시 TV가 나오지 않아서, 그래서 다시 조카를 불러서 장난을 치도록 해서 그 TV를 고쳐보려고 하다가, 그 TV가 그야말로 완전히 다 망가졌을 때, 바로 그때와 같다는 말입니다. (이것도 경험담?)
마찬가지로, 분명히 "이번 감기는 병원에 가야 돼" 라고 생각해서 병원에 가다가, 그만 급하게 심방을 할 일이 생겨서 병원을 못 갔는데, 그런데 병이 나았을 때는 정말 감사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앞으로 감기에 걸려도 병원에 안 가야지" 라고 했는데, 그러다가 그만 감기가 폐렴이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병원에 가지 않아도 열심히 심방을 하면 병이 나을 것이다" 라는 예상 리스트를 하나님이 피해버리신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환장을 하는데, 그러니 성도의 생활은 그야말로 '바이브레이션' 인데, 물론 그런 재미가 얼마나 스릴이 있는지 모르는데 말입니다. 즉 사람이 뭔가를 예상을 한다는 것은 곧 자기 계시인데, 이런 자기 계시와 선지자의 말씀 계시가 자꾸만 충돌이 일어나니까, 그만 한쪽은 깨어진다는 겁니다. 즉 자기 계시 때문에 참된 주님의 계시가 가려지니까,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참된 계시를 알려주기 위해서, 우리의 계시는 깨어지게 한다는 말입니다.
◈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성도의 행색은?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성도들의 행색을 보면 어떠한고 하니,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미리 알았던 것이 아닌데, 그러니 그때 동네 사람들은 다 비웃었다는 겁니다. 분명히 노아가 배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지붕도 있고, 또한 통통하고 거대한 너구리처럼 생겼다는 말입니다. 즉 배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이상하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주님이 시키는 일은 이와 같이 항상 우리를 바보로 만들어버리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결코 우리의 현란한 어떤 솜씨나 종교적인 테크닉, 노하우, 신학지식 등등, 그런 것들이 일체 섞이지 않는 방향으로 우리를 사용하셔서, 그렇게 해서 남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식을 주님께서는 언제나 고수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어떻게 합니까? 주님은 일체 '내' 것을 사용하지 않음을 경험한 후에, 우리는 또한 일체 책을 덮고 공부도 안 하고 설교를 하게 되는데, 하지만 그것도 역시 주님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건 이미 예상 리스트에 들어있기에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 어쩌란 말입니까?" 라고 하는데, 그러면 주님은 또한 뭐라고 하십니까? "니는 니 것이 아니야.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여기서 "어쩌란 말입니까?" 라고 하는 것은 항상 미완료를 내다보는 것이고 말입니다.
아무튼 다윗의 전쟁에서는 어떻게 되는고 하니, 여기서 역대상 11장 10절을 보겠습니다.
(대상 11:10)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두목은 이러하니라 이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다윗의 힘을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세워 왕을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 강사문 교수가 말하는 '여호와 전쟁' !!
이 대목에서 잠시 장신대의 '강사문' 이라는 교수의 '여호와 전쟁' 이라는 논문을 언급해야 되겠는데, 물론 학계에서는 똑똑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양반인데 말입니다. 그가 여호와 전쟁의 변천사에 대해서 박사학위 논문을 썼는데, 제가 그것을 보면서 느낀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이 사람은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을 그만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고 하면, "옛날에는 여호와 전쟁을 이렇게 이렇게 했고" 라고 하면서, 그것을 기술하는데, 즉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는 칼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돌기만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궁금한 게 무엇인고 하면, 옛날 홍해가 갈라질 때 사람들이 그냥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지, 즉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물을 첨벙 때린 것이 아니고, 그냥 지팡이를 뻗었더니만 홍해가 갈라졌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 전쟁의 방식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왜 그 다음에는 똑같은 방식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지, 그것을 성경적으로 설명을 해야된다는 겁니다. 출애굽기 14장 14절에서 모세가 하는 말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출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그러니 그 말씀대로 가만히 있으면 얼마나 편합니까? 그러면 그 뒤에도 그대로 가만히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역대상 11장의 말씀을 보니, 다윗이 군대를 조직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만히 있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신병 훈련소를 만들어서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지, 그건 전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논문을 쓰는 학자라고 한다면, 이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가만히 있음" 이라는 것이, 그 안에 어떤 핵심적인 내용이 들어있어서, 그 다음에 아무리 군대를 조직하고 열심을 내고 하더라도, 그것도 역시 "가만히 있음"에 해당되는, 즉 질적으로 그것이 서로 동일하다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논리를 끄집어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신약성경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즉 신약성경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정말로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인데, 왜냐하면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서 죄 사함을 받는 것을, 그것은 결코 우리의 행함이 아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구원을 받으니 말입니다.
◈ 행함이라는 행함과, 믿음이라는 행함 !!
그렇다고 하면, 이것을 설명할 때는 반드시 무엇을 밝혀야 되는고 하니, "행함이라는 행함"과 "믿음이라는 행함", 이 둘의 차이점을, 즉 같은 행함 속에서 어떤 차이가 나는가를 설명해야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믿음' 이라는 행함에서, 비록 행함이 보이더라도 그것은 출애굽기 14장의 "가만히 있을지어다" 라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설명도 함께 해야주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사실상 거기에 대한 설명은 간단한데, 그렇다고 해서 "믿음이란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라고 하면 안 되고, 그렇게 되면 구약에서 다윗이 군대를 조직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겁니다. 물론 "행함은 움직이는 것이 행함이다" 라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 사도바울 - 십자가를 지신 분이 누구인가?
그것을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즉 이 믿음은 어디에서 나오는고 하니, 선물로 받은 것인데, 이 선물의 출처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즉 이미 완성된 십자가의 문에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지신 분이 누구입니까? 그러니 결국 예수님에게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의 '행함'은 뭐냐 하면, 즉 어떤 것이 믿음의 행함이냐 하면,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라는 것이 고백되는 행함은 열심히 해도 믿음에서 나온 행함이 되는 것이고, "내가 열심히 했습니다" 라는 것은, 제 아무리 전도를 하고, 구제를 하고, 성경을 읽고, 그 무엇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전혀 믿음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이 거부하시는 행함이란 말입니다.
◈ 십자가를 믿으세요 ??
그러니 십자가를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이 양쪽을 다 설명해야 되는데, 즉 그냥 "십자가를 믿으세요" 라고 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고 하면, "내가 십자가를 믿어야겠다" 라고 하는, 즉 자기 자신의 행함을 총동원해서 십자가를 붙들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가 붙들려고 하다보니까, 어떤 의문점이 생기는고 하면 "목사님, 아침에는 십자가를 믿었는데, 그런데 저녁때는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아침에도 믿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완성된 것에서 나오는 믿음이라 하면, 자기 속에서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자기 행함에서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 스스로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려야만해" 라는 식으로, 그렇게 자기에게 최면을 거는데, 즉 군중심리를 이용해서 통성기도를 하고, 또 할렐루야를 줄기차게 외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다 어떻게 됩니까? 물론 자기 몸의 컨디션 좋을 때는 믿어지지만, 그러나 나중에 나이가 들고 나중에 치매가 오게 되면, 그만 새벽에 "육수깐, 문 열었습니까?" 라고 하는 할머니처럼, 그런 엉뚱한 소리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 진짜 믿음은, 행함과 행함을 깨면서 !!
그러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가 있는데, 즉 "십자가에서 선물로 나온 믿음이라고 한다면, '오후 2시도 믿습니다. 오후 3시도 믿습니다' 라고, 항상 그래야만 됩니까?" 라고 말입니다. 과연 그렇다고 하면 연속성이 있는 것입니까?
물론 그것은 아니고, 십자가에서 나온 선물이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면, 행함과 행함으로 점철되는 것이 아니고, 그 행함과 행함을 깨면서, 거기서 튀어나오는 고백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겁니다. 즉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라고 말입니다.
내용이 어렵습니까? 다시 하겠는데, 오후 2시에 "나는 십자가를 믿습니다" 라고 했는데, 그리고 오후 3시에 "나는 역시 십자가의 복음을 믿습니다" 라고 했다면, 그 뒤에 "나는 믿습니다" 라는 것은 앞의 "나는 믿습니다" 라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에, 즉 복음의 선물이 아니고 자기의 행함을 의식해서 나온 행함이기에, 그것은 둘 다 행함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오후 3시쯤에 "아이쿠, 나는 이제 십자가를 그만 믿을래" 라고 했는데, 그런데 그 뒤에 곧 바로 "아하, 내가 십자가를 믿지 않아도 말씀은 그대로 이뤄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되고, 그렇게 해서 자기 행함을 포기할 때, 바로 그 무렵에 자기의 의지가 아닌 뭔가가 톡 튀어나오는 것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 주여, 제가 죄인입니다 !!
다시 말해서, "주여, 내가 죄인이군요. 나는 내 믿음도 간직하지 못하는 죄인이군요" 라고 하는, 그런 자기 자신만이 아는 것이 나온다는 겁니다. 물론 우발적이고 일시적인 사건으로 끝이 나겠지만, 바로 그런 것이 튀어나올 때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튀어나왔단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마음대로 믿었다가 말았다가 했는데, 그러한 나를 가만 두지 않고 주께서 지금도 말씀으로 쿡쿡 쑤시고 계시는구나. 아, 나는 죄인이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하나 더 붙이면 "주여, 나를 떠나소서" 라고 하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주님은 우리가 그런 말을 한다고 떠날 분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비록 지옥에 간다고 할지라도, 너희들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렇게 가겠다" 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물론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사도바울이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 얼마나 자신만만하면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즉 사도바울은 주님께서 자기를 항상 말씀으로 쿡쿡 쑤시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는 말입니다.
◈ 성도의 삶은, 언제나 '진동' !!
그러니 사람이라는 것은, 아무리 성도라고 해서 믿음을 선물을 받아도, 그 표면으로 나오는 것은 자아 이미지를, 즉 자기가 과거에 했던 것을 수집하고, 그런 기억을 모아서, 언제나 지금의 자아 이미지를 갖추기 때문에, 그것은 항상 자기의 내면에 있는 성령이 하시는 일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그래서 죽을 때까지 벌벌 떨면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하면서 살아가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소위 '진동'의 삶을 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도란 무엇인고 하면, 자기가 예상치도 못하고 의도하지 않은 고백이 정말 온 몸에서 전율을 일으키면서 튀어나올 때, 비로소 "아하,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구나" 라고 여기게 된다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에 따라서 0.5초, 또는 2초 정도가 유지된다고 했는데,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곧 사라지기 때문에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야, 나는 신자가 맞구나" 라고 하면서 까불거리다가도, 그 이후에는 당장 그것을 다시 자기의 자아 이미지로 굳히려고 하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아니라 또 다시 자기 행함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래도 괜찮은데, 왜냐하면 주님이 또 다른 방법으로 쿡쿡 쑤시니 말입니다. 물론 주님이 쑤시는 무기에 대해서는 정작 우리는 모르는데, 다만 말씀에서 나온다는 것만은 알지만 그 방법은 모른다는 겁니다. 만약에 안다고 하면, 주님은 또 그것을 피해서 일하시고 말입니다.
◈ 주께서 불러모아 주신 자들 !!
어쨌든 다윗이 군대를 조직하게 되는데, 여기 역대상 11장을 보면 여러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겁니다. 그 명단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다윗이 군대를 모집을 해도, 그것은 바로 주께서 불러모아 주신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대상 11:11)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수효가 이러하니라 학몬 사람의 아들 야소브암은 삼십 인의 두목이라 저가 창을 들어 한 때에 삼백 인을 죽였고
(대상 11:12)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세 용사 중 하나이라
여기서 우리 목사님들이 항상 생각해야하는 것은, 누가 왔던 간에 주께서 오게 하셔서 오늘 교회에 나왔고, 그러니 그 사람을 붙잡는다고 해서 다음 주일에 또 온다는 보장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배시간에 몇 명이 빠졌다는 것이 섭섭한 것이 아니라, 오늘 단 2명이라도 나왔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져야만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2명이 나온 것도, 그 사람도 역시 예배에서 빠져나갈 사람인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서 그나마 2명이라도 붙여주셨다는 겁니다. 복음을 전하라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2명도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냥 자기 혼자서 전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어쨌든 이들을 하나님께서 붙여주셨다는 말입니다.
◈ 역대기 - 다윗언약을 어떻게 완성시키는가?
이제 11장을 넘어가고 12장을 보겠는데, 물론 여러분이 다 알아서 넘어가는 게 아니고, 넘겨도 괜찮지 싶어서 넘어간다는 겁니다(ㅋㅋ). 이제 12장 18절 말씀을 살펴보겠는데, 다같이 읽겠습니다.
(대상 12:18) 때에 성신이 삼십 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니 가로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하리니 원컨대 평강하소서 당신도 평강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강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드디어 접대하여 세워 군대장관을 삼았더라
여기 보면 "때에 성신이 삼십 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니" 라고 하는데, 그러니 성신이 모두 다 알아서 감동시켜서 붙여주신다는 겁니다. 또한 역대기에는,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미완료에 관한, 즉 다윗의 개인적인 부분으로 보기 때문에 말입니다. 즉 역대기는 다윗자리에서, "다윗언약을 어떻게 완성시키는가?" 라는 것에 관한 말씀이란 것입니다.
◈ 모세의 지팡이 안에도 하나님의 군대가 !!
아무튼 하나님께서 군대를 붙여주시는데, 하나님에 의해서 모인 군대가 바로 모세가 들었던 지팡이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백성들이 지켜보는데 가운데 홍해 앞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드니까, 이 지팡이만 눈에 보여서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붙여주실 수많은 군대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모세가 지팡이를 들었을 때 아말렉 군대가 그만 물러갔는데, 그러면 그 지팡이를 국립수사연구소에 가지고 가서 한번 조사를 해보라는 겁니다. 과연 그 모세의 지팡이를 쪼개면 그 안에 엄청난 숫자의 천사들이 들어있었는지 말입니다.
◈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의 경우에 !!
그것이 엘리사 시대에 있었는데, 즉 엘리사가 있는 지경을 아람 군대가 완전히 포위했는데, 그러니까 그의 종 게하시가 놀라서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때 엘리사가 기도했는데,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아람 군대보다도 더 많은 여호와의 군대가 엘리사를 돕기 위해서 지키고 있음을 이 게하시는 볼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방법은 모두가 다 이런 식이란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된 사환 게하시는 또 얼마나 우쭐거리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믿음이 아닌 행함이 또 다시 나올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다고 하셨는데, 즉 보지 않고 말씀 자체가 믿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이란 겁니다. 하지만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일일이 돌을 뒤집어서 보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식으로, 그렇게 복음서에 나오는 기적들을 확인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을 확인한다고 해서 만약 아침에 수영장에 가서 물위를 걸어본다면, 물론 그렇게 하면 제가 장담을 하지만 반드시 물에 빠진다는 겁니다(ㅋㅋ). 또 예수님이 광야에서 금식했다고 해서 자기도 흐름한 기도원에 가서 금식을 하고, 물론 그러면 마귀가 달려드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가르쳐준 대로 "여러분, 저는 40일이 아닌 39일을 금식했습니다. 어떻게 감히 예수님처럼 금식을 하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겸손을 떨도록 말입니다.
그러면 40일 금식은 따라하면서도 왜 예배당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빼는지 모르겠는데(ㅋㅋ), 또 병을 고치는 것은 흉내를 내면서도 자기 집에 키우는 강아지가 말을 하는 기적은 왜 하지 않는지 말입니다. 감옥에 가서 옥문이 열리는 것도 하지 않고, 꼭 만만한 것만 골라잡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 중요한 것은, '중심점'이 누구인가?
다시 말해서, 모세의 지팡이 안에는 이미 하나님의 군대가 들어있는데, 그것은 곧 창세기 32장에 나오는데 말입니다. 거기에 '마하나임' 이라고 나오는데, 즉 야곱이 얍복강으로 갈 때 천사가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면서 야곱을 지켰다는 겁니다. 그러니 야곱은 홀몸이 아닌데, 천사가 몰려다니며 지킨다는 말입니다. 즉 중심점이 바로 야곱인데, 그것이 곧 '야곱언약'이고 말입니다.
(창 32:1)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창 32: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이와 같이 역대기에서는 다윗이 중심점이 되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감동해서 다윗에게로 와르르 모인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모인 것이 곧 하나님의 군대이고 말입니다. 그것이 '다윗언약' 이란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역대기에서 그냥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출애굽기 14장에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 5명이라도 수만 명과 전혀 다르지 않아 !!
우리 십자가 마을의 목사님들은 가만히 있어서 교인 수가 5명쯤 되는데, 다만 다윗은 그 모인 수가 수만 명이 된다는, 바로 그 차이점뿐이지 그 질은 같다는 말입니다. 즉 "다섯 명인가? 수만 명인가?" 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주께서 붙여주신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게 같다는 겁니다. 즉 교인이 5명이라도 구원을 받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겁니다. 단지 살아가는데는 조금 많이 지장이 있겠지만 말입니다(ㅋㅋ).
여기서 역대상 13장 22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지금 읽다가 보니 저 혼자서 읽고 있는데, 다시 읽겠습니다. (또 목사님 혼자서 읽고 청중들은 반응이 없음) 아하, 죄송합니다. 또 육수깐 현상이(ㅋㅋ), 13장이 아니고 12장 22절 말씀입니다.
(대상 12:22) 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 다윗이 모은 것이 아니고 !!
이것을 보고 "다윗님, 어떻게 해서 이렇게 수많은 군대를 모았습니까?" 라고 나오면 잘못이란 겁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모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이셨기에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도 나중에는 그런 잘못에 빠져서 매를 맞는데, 그래서 이 역대상 21장에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다 무려 7만 명이나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아서 죽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네가 대신 백성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려라. 이제 네가 할 일이 무엇인고 하니, 이 백성들이 너의 부하직원이 아니라,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네가 대신해서 대속물로 제사를 드려야만 할 죄인의 입장에서 봉사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다윗의 마지막 대목이란 말입니다.
(대상 21:21) 다윗이 오르난에게 나아가매 오르난이 내어다보다가 다윗을 보고 타작 마당에서 나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매
(대상 21:22)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붙이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붙이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온역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 교인수가 많은 것도 귀찮아 !!
사실상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교인수가 많은 것도 귀찮은데, 아무리 많아도 자기 교인이 아니니 말입니다. 주님의 교인인데, 자기가 아이의 돌이라고 불러내고, 또 자기가 잘못해서 병원에 입원을 해도 가봐야 하고, 그런 일들이 생기면 설교준비를 할 시간이나 있겠습니까?
그리고 교인이 한 두 명이면 대충해서 설교를 때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물론 교인도 별로 없지만, 이렇게 녹음기로 녹음하고,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고 하니까, 설교도 대충 대충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바다건너에서도 본다는데 말입니다. 그런 양반들이 교인수가 얼마나 되는지 고려해서 어여쁘게 봐주겠습니까? 그런 것은 없다는 겁니다.
차라리 교인들이 없으면, 그냥 난이나 슬슬 치면서, 시조나 읊으면서, 바둑이나 두면 되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굶어죽으면, 그래도 오늘밤에 낙원에 간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복은 또 따로 받을 사람이 받는 것이고, 지금은 지금대로 또 누릴 복이 있고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소모품인데,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관계로서, 즉 "무엇을 기업으로 상속을 받았는가?" 라는 것입니다.
◈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
조금만 더 하겠는데, 이제 12장 23절을 보겠는데, 진도가 잘 나가지요? 아무튼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붙어주셨다는 것만 알면 된다는 겁니다. 물론 붙여준 것이 많다고 해서 그만큼 다윗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아닌데, 즉 다윗은 많을 때도 있었지만, 홀로 있을 때도 있었다는 겁니다. 물론 그때도 여전히 하나님이 함께 계셨고, 또한 많을 때도 함께 계셨는데, 바로 이러한 점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대상 12:23) 싸움을 예비한 군대장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저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 그 수효가 이러하였더라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했는데, 이것이 언제 나온 신앙고백입니까? 지금처럼 사람들이 많을 때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아무도 자기편이 없을 때, 이러한 고백이 나왔다는 겁니다. 즉 "지금 저에게 아무도 없어도, 오직 여호와께서 목자로 계신다면, 저는 얼마든지 감사하겠나이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편 23편을 보면서, 우리 주위에 여러 사람이 있더라도 혼자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외롭다고 생각하고 목자만을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시편 23편의 말씀이 들어있는 액자를 이사할 때만 선물하지 말고, 사고를 쳐서 교도소에 갈 때, 교회에 불났을 때, 그리고 교인들이 아무도 없고 다 떠나갔을 때, 그럴 때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혹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는 성경 구절들은, 교인들이 한 사람도 없고, 그래서 헌금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을 때, 그때 아주 적절하다는 말입니다. 전혀 동의를 하는 표정들이 아닌데, 그렇지 않습니까?(ㅋㅋ)
◈ 13장 - 여호와의 궤를 옮겨라 !!
이제 13장으로 넘어가겠는데, 지금 진도가 아주 잘 나가는데 말입니다. 여기에 보면, 다윗이 군대를 모았는데, 그 군대는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즉 "나는 이만큼 훌륭한 장군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궤를 옮겨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궤는 왜 옮겨야 합니까? 여호와의 궤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궤를 함부로 두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동안 왜 여호와의 궤가 '기럇여아림'에서 올라와서는 '오벳에돔'의 집에 머물러 있었는고 하면, 그 궤는 아무나 옮기는 것이 아니라 특수 지파에 해당되는 사람만이 옮겨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 지파가 곧 레위지파인데,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들다가는 그만 죽는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은 레위지파를 상대한다는 말입니다.
◈ 레위지파가 법궤를 둘러싸서 지키는데 !!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하나님과 다윗 사이가 멀리서 보면 가까운 것 같지만, 막상 가까이 가서 보면 약간 떨어져 있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는 것 같지만, 인간에게 직접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들라고 지시한 법궤에 오시는데, 그런데 사람들이 그 법궤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접근금지라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오지 못하도록 누가 막습니까? 레위지파가 법궤를 둘러싸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말입니다.
남쪽 유다에 '히스기야' 라는 왕이 있는데, 그래도 자기가 조금 잘나간다고 건방지게 까불다가 그만 문둥병에 걸렸다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니까, 청결하지 못해서 걸린 것이 아니고,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성전에 자기가 함부로 들어갔는데, 제사장이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문둥병에 걸렸는데, 그것은 바로 다윗언약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 법궤 - 하나님과 다윗 사이는 모세언약에 의해서 !!
아무튼 다윗언약이 살아있는 그 법궤는 레위지파가 드는데, 물론 멀리서 바라보면 레위지파의 역할이 드러나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윗을 이렇게 레위지파가 법궤를 지키도록 배려를 해서, 하나님과 다윗 사이는 모세언약에 의해서만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기도하면 주께서 모든 죄를 사해주시는데, 왜 그런고 하니, 여기에서 피가 흐르니까 말입니다. 바로 그런 하나님의 피가 있는 곳에는, 피를 내는 작업을 해야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게 그들의 피를 내는 작업으로 인해서 백성들이 땅을 가졌지만, 그러나 그들이 가진 모든 땅과 군대는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 이뤄질 때, 그러한 효과로서 이런 완성된 나라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다윗언약에서의 법궤가 있는 취지가 된다는 말입니다.
제가 힘이 없어서 더 못하겠는데, 저녁을 먹고 하겠습니다.
2010,05,28 오후 11시 20분에 마침. - 녹취 '구'
미드 'V'도 봐야되고, 녹취정리도 해야되고, 바쁘다 바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