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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9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역대기)(강의정리)06-재정리자유게시판스가랴

2009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역대기)(강의정리)06-재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1)

09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역대기 제6강(둘째 날 오후1)

2009,01,14 강의 이근호, 정리 오용익

◈ 오잉, 유훈(遺訓)정치 ??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여기 칠판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물론 뒤에 있는 분들은 그림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할지도 모르겠는데, 이것은 교재에 있는 도표를, 즉 열왕과 선지자들을 그대로 옮겨서 그려놓았다는 겁니다. 다만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칠판의 그림에는 빨강과 파랑의 색깔로서 구분이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선지자들을 빨간색으로, 또한 왕들을 파란색으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선지자들을 빨간색으로, 또한 왕들을 파란색으로 색깔을 칠해놓았는고 하니, 현재 북한의 정치를 두고서 '유훈정치', 혹은 '유훈통치' 라고 하는데, 즉 사람이 아닌 죽은 귀신이 하는 정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역대기도 역시 '유훈정치' 라고 할 수가 있는데, 왜냐하면 다윗과 솔로몬도 이미 죽은 상태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계속해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나와라, 로봇태권V !!

지난 시간에 열왕들의 이야기를 일일이 하나씩 끄집어내니까, 아마도 여러분에게는 많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 물론 저도 힘들었고 말입니다. 여기 칠판의 그림에서, 이 전체를 모두 '로봇태권V' 라고 할 때, 즉 머리는 다윗과 솔로몬이고, 그리고 남쪽 왕들은 오른쪽 어깨에서 줄줄 내려오고, 또한 북쪽 왕들은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겁니다.

◈ 어깨와 배와 다리 !!

그러면 여기서 남쪽의 아달랴와 북쪽의 요람까지를 어깨부분으로 잡고, 그 다음에 남쪽의 요아스와 북쪽의 예후부터 남쪽의 웃시야와 북쪽의 여로보암 2세까지를, 이렇게 배꼽부위 정도로 한번 잡아보자는 겁니다. 왜냐하면, 남쪽 유다에서는 웃시야가, 그리고 북쪽 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 2세 때가 가장 번창했던 시기이니 말입니다.

여기서 '여로보암 2세' 라고 하는 것은, 이미 앞선 시대에 여로보암이 이미 있었기에 말입니다. 나라가 갈라진 이후에 북쪽 나라의 초대왕(?)인데 말입니다. 물론 '1세'와 '2세' 라는 것은 따로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고, 후대의 사람들이 헷갈리니까 그냥 그렇게 구분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로보암 2세 때는 앗수르가 침공하기 전까지는 나라가 상당히 부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북쪽은, 사실상 여기 배꼽 아래로 내려오게 되면 그냥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라는 겁니다. 남쪽의 경우에는 그나마 다리처럼 해서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는데, 물론 숏다리지만 말입니다. 그러니 여기 어깨부분은 무엇이고, 배 부분은 무엇이고, 또한 다리부분은 무엇인지, 그것을 알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 그 중심부에는 선지자들이 !!

아무튼 '로봇태권V'에 어깨와 배와 다리가 있는데, 그러면 여기서 색깔은 무엇인고 하니까, 여기에서 심장, 허파, 간과 같은, 즉 몸의 중요한 중심부위는 어디 있는고 하니, 선지자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파란색으로 왕들을 표시했고, 빨간색으로 선지자들을 표시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 '유훈정치' 라고 해서, 제 아무리 왕들이 그 나라를 자기들 나라라고 우기면서, 즉 "너만 왕이냐? 나도 왕이다" 라고 하면서, 북쪽과 남쪽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왕이라고 우겨도, 실제로 하나님께서 다윗언약을 성취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런 파란 색의 왕들이 아니라, 빨간색으로 표시되어있는 선지자들에 의해서, "결국 마지막에 포로로 잡혀갔음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만에 다시 돌아와서, 옛날 다윗성전을 회복하는 일에 성공했잖아"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위 '왕' 이라고 하는 인간들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많이 있어도 전부가 다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마치 북한에는 김정일이 제 아무리 살아있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껍데기이자 폼이고, 북한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죽은 김일성이 최고이듯이 말입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자유주의자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은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고, 그 민중이 주체가 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라고 한다고 했는데, 물론 엉터리라는 겁니다. 역사의 주체는 분명 하나님이고, 그 역사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죽은 귀신을, 여기서는 김일성이 아닌 다윗인데 말입니다(ㅋㅋ).

물론 죽은 귀신이라기보다는 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다윗언약'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고 하니, 선지자들이 반드시 다음과 같은 소리를 하는데, 즉 "………" 이라고 해놓고, 그 다음에 반드시 "말씀대로 응하였느니라"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 다윗언약은, 고난받는 선지자에 의해서 !!

예레미야도 그렇고 또한 이사야도 그렇고, 이 도표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선지자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무엇인고 하니, 즉 "왕들이 아무리 패역하고 타락해도 그런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진짜 알맹이에 해당되는 다윗언약은 묵묵히 선지자, 그것도 고난받는 선지자들에 의해서 도도한 강물처럼 기어이 흘러왔다" 라는 것을, 바로 그것을 역대기와 열왕기를 비롯한 성경전체가 증명한다는 겁니다.

북쪽의 여호보암 2세 다음에 '스가랴' 라는 왕이 있는데, 그의 행적이 성경에 별로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모스 7장에 보면, '로봇태권V'의 중심부인 빨간색의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을 하니 스가랴가 뭐라고 합니까? "정말 웃기네" 라는 식으로 놀리는 겁니다.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

(암 7: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줄 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여러분은 이 '로봇태권V'를 보니 에베소서 4장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너희는 몸의 지체이다" 라는 말씀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빨간색과 파란색이 마구 섞여있다는 것인데, 즉 빨간색의 알맹이들은 따로 있는데, 그런데 파란 껍데기들이 자꾸 설쳐대니, 누가 고난을 받습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교회에서 핍박을 받는 형국이 그대로 재현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역대기와 열왕기에서의 다윗언약이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고 하니, 파란색에 해당되는 왕들은 가해자가 되고 빨간색의 선지자들은 피해자가 되는데,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여기 가해자 속에는 왕들의 궁중 선지자, 즉 거짓 선지자들도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다윗의 정신을 빼고, 그 형식과 제도만 !!

왜 그렇게 되었는고 하니, 왕들이 거짓 선지자과 제사장들을 양성해서 자기편을 만드는 것은, 그것은 바로 다윗이 자기 아래에 제사장과 선지자들을 두었던 외형적 형식만을 가져오고, 다윗이 끌어안고 있던 정신은 쏙 빼놓았다는 겁니다. 즉 "아하, 그렇게 하니 정치가 먹히는구나. 그러면 내 수하에 제사장과 선지자를 양성해서 나라를 다스리면 되겠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거짓 선지자들을 양성하는데, 그런 왕들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고 하니, "바로 우리가 정통적 다윗언약의 계보를 잇기 때문에, 다윗을 섬긴 것처럼 나를 좀 섬겨다오" 라고, 그렇게 자기의 나라로 만드는데 정당화를 시킨다는 겁니다. 그것은 남쪽이나 북쪽도 모두 마찬가지이고 말입니다.

◈ 그것이 곧,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

북쪽의 아합 왕 때는 '이세벨' 이란 이방여자가 왕비로 들어와서, 제사장들을 왕궁에서 숙식까지 제공하면서 양성했다는 겁니다. 그들이 바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인데, 무려 850명이나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몇 명입니까? 달랑 자기 혼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갈멜산에서 '850:1'로 맞짱을 떴다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정석대로 나갔지만, 나중에는 안 되니 자기들 몸을 마구 찔러서 피를 흘려가면서, "이래도 기적을 내리지 않습니까?" 라고 부르짖었다는 겁니다. 그때 엘리야가 조롱하기를, "너희 신은 지금 주무신다. 흔들어서 깨워야지. 그렇게 해서 일어나겠는가?" 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바로, 엘리야는 빨간색 계통, 즉 진짜 하나님의 다윗언약 계통을 입었기 때문에, 그런 자들을 향해서 "너희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라고 고발을 했다는 겁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아합 왕이 엘리야를 만나서 한 유명한 말이 있는데, 즉 "엘리야야, 네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로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오히려 당신이 괴롭힙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이스라엘' 이란 나라를 두고 서로 소통되지 안 된다는 겁니다. 즉 아합이 보기에 자기 밑에 있는 나라가 곧 이스라엘인데, 하지만 엘리야는 "지금 당신이 주장하는 그 나라는, 다윗언약에서 말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왕은 지금 착각하고 있소" 라고 한다는 겁니다.

(왕상 18:17)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이 이스라엘도 나중에 '온 이스라엘'로 해서 만나기 위해서는, 비록 지금은 이스라엘이 엉망이지만, 그래도 그 나라를 유지해야 되는 겁니다. 그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인고 하니, 엘리야가 기도하니까 무려 3년 6개월만에 비가 내렸다는 겁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즉 "비록 저 껍데기와 같은 왕에 의해서 훼손 훼방이 되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은 이 약속의 땅을 지켜낸다" 라는 것입니다.

◈ 70년 포로기간은 청소시간 !!

그러면 그것이 언제까지입니까? 선지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여기 이 땅에서 추방될 때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북쪽은 B.C 722년에 망하고, 또 남쪽은 B.C 586년에 망하는데,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이렇게 떠나고 난 다음에, 그 땅은 왜 남아있느냐는 것입니다. 완전히 박살이 나지 않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묵고 있는 이 호텔의 청소시간이 12시에서 2시 사이로 알고 있는데,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아는고 하니, 지난 여름철에 보니 그 시간에 투숙객들을 밖으로 나가게 하고 청소를 했다는 겁니다. 물론 매일 청소를 하는 것은 아닌데, 그래서 오늘은 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땅은 어디까지나 다윗언약에 의한, 즉 하나님 개인소유의 땅이기 때문에 청소를 해야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청소하는 그 기간이 몇 년이라는 말입니까? 하나님은 70년 동안 청소를 하겠다는 겁니다. 마치 호텔 청소를 하는 분들이 방마다 다니면서 청소를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고통을 받는 선지자의 입장에서, 물론 개인적으로는 "하나님, 너무 분하고 원통합니다. 왜 저입니까? 왜 저가 이렇게 고난을 받아야 합니까?"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은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모품이니 말입니다.

* 하나님 : 선지자야, 이번에 니가 한번 가봐라.
* 선지자 : 저가 말입니까? 왜요?
* 하나님 : 욕을 좀 얻어먹어야지.
* 선지자 : 저, 그동안 욕을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억울합니다.
* 하나님 : 알았어. 이번만 가봐라. 이번만 하고 너는 꺼져.
* 선지자 : 예, 알겠습니다. 휴, 살았다.
* 하나님 : 다음에는 누구를 보내서 욕을 먹게 하지? 옳지, 저기 스데반이 있구나.
* 스데반 : 어찌 기분이 좀 이상한데?
* 하나님 : 스데반씨, 이리 오세요.
* 스데반 :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 하나님 : 그래, 니가 할 일이 좀 있다. 돌에 좀 맞아줘야겠다. 괜찮지?
* 스데반 : 그냥 돌에 맞아서 자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 하나님 : 그래, 그 정도면 오케이.
* 스데반 : 예, 알겠습니다. 조금 부담스러운데?
* 하나님 : 아니, 방금 무슨 말했나? 파스라도 하나 줄까?
* 스데반 :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선지자가 고난을 받고 수난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이 취소되는 법은 없다는 겁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응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북쪽도 내보내고 남쪽도 내보내고, 그렇게 모두 다 보내고 난 뒤에, 그곳을 청소하고 난 그 다음에 다시 들어오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낙관적입니까? 이 세상에서 복음을 믿는 사람처럼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사람들은 없다는 겁니다. 단지, 자기만 넣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 남쪽 요시아 왕과 유월절 !!

역대하 34장과 35장에 보면, 남쪽에 '요시아' 라는 왕이 나오는데, 이 왕만큼 훌륭하게 개혁도 잘하고 유월절을 성대하게 지킨 왕도 없다는 겁니다. 이 요시아 왕이 어느 정도인고 하면, 이미 잘려서 다리도 없는 북쪽의 지파들까지 초청해서 전 이스라엘이 모여서 유월절을 지켰다는 말입니다.

(대하 35:17) 그 때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유월절을 지키고 연하여 무교절을 칠 일 동안 지켰으니
(대하 35:18)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열왕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거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
(대하 35:19) 요시야의 위에 있은지 십팔년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이미 남쪽의 아사 왕 시절부터, 북쪽의 에브라임, 므낫세, 시므온 지파와 같은 곳에서는 "나는 신앙이 없는 곳에서 살지 못하겠다" 라고 하면서 많이 건너오고 했는데, 그래도 백성들은 하나님의 정신이 살아있는 쪽으로 많이 움직였다는 말입니다.

(대하 15:9) 또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를 모으고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가운데서 나와서 저희 중에 우거하는 자를 모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 아사에게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음이더라

그리고 당시 남쪽에서는 스마야, 아사랴, 하나니와 같은 선지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이야기를 할 때, 왕들이 곧잘 듣곤 했다는 겁니다. 즉 선지자가 "이번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당신은 끼어 들지 말고 찬양대로 하여금 찬송을 부르게 하세요" 라고 하면, 왕은 "예, 알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그대로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남쪽에서는 선지자들의 말이 통했는데, 그런데 북쪽의 아합 왕과 같은 자들은 선지자에 대해서 아주 반발이 심했다는 겁니다. 엘리야에게 시비를 걸고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 북쪽의 선지자들이 수난을 엄청 많이 받았는데, 남쪽 선지자들의 경우는 그들에 비해서 피해를 덜 받았고 말입니다.

◈ 남쪽도 점점 타락의 길로 !!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여호사밧이 아합과의 혼인정책을 통해서 싸우는 것을 중지함으로 말미암아서, 즉 인위적인 조작을 가해서, 마치 다윗의 평화나 솔로몬의 평화를 이루겠다고 할 때, 그때에 예후, 하나니, 엘리에셀과 같은 선지자들이 강력하게 저지하고 반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남쪽도 처음에는 말을 좀 듣더니만,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말을 안 듣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의 다음 왕인 여호람 왕은, 아예 대놓고 아합이 끌어들인 그 모든 이방문화를 다 수입해버렸다는 겁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부인, 즉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 낳은 딸인 아달랴가 시켜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주장들이 많은데 말입니다. 그리고 이 여호람 다음 왕인 아하시야는 괜히 남의 전쟁을 구경하다가 맞아죽었다는 것입니다.

◈ 난장판으로 내달리는 북쪽 이스라엘 !!

그리고 여기 북쪽의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 사건으로 유명한데, 이 아합 왕 뒤로는 아하시야 왕과 요람 왕으로 이어지는데, 이 북쪽은 그야말로 정말 개판이라는 겁니다. 아하시야 왕의 경우에는, 그가 그만 난간에서 떨어져서 병이 들게 되자, 그것을 여호와께 묻지 않고 에그론의 신인 바알세붑을 찾아갔다는 겁니다. 그때 엘리야가 "당신은 반드시 죽는다" 라고 했는데, 그 말을 했다고 엘리야를 잡아죽이기 위해서 무려 50명의 군사를 보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언론노조가 집회를 한다고 전투경찰 2천명을 보내는 것과 같은데, 하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 50명을 불살라 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왕이 약이 오르니까 50명을 또 보내는데, 그러자 하늘에서 또 불이 내려와서 태워버렸다는 말입니다.

◈ 아하시야 왕의 객기로, 젊은 군인 100명이 그만 !!

저는 열왕기하 1장에 나오는 이 대목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는고 하면, 왕이 객기 부리느라고 보내는 그 군사들이, 그래도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는 다 귀한 집의 자식들이 아닙니까? 나중에 제대를 하고 나면, 모두가 국가의 훌륭한 일군이 될 사람들인데, 그런데 왕이 그만 오기를 부려서 무려 100명이나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하시야 왕이 그만 독이 올라서 또 세 번째로 50명을 또 보냈는데, 그때는 거기 오십부장이 처음부터 빌면서 들어갔는데, 즉 "선지자님, 제발 살려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아무튼 그런 자기 객기로 사건을 일으킨 왕이 아하시야인데,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요람' 이란 왕은 앞의 왕들과 좀 달랐다는 겁니다 이 요람, 혹은 '여호람' 이라도 하는데, 이 왕은 엘리사를 먼저 찾았는데, 말씀대로 인도해달라고 말입니다. 엘리야의 시대가 지나면 엘리사가 등장하는 것은 아시지요?

여기 교재 4페이지를 보면 '하사엘'의 아람나라가 나오는데, 우리가 그 위치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 당시 북쪽 이스라엘에서는 수도를 변경하곤 했는데, 여로보암 왕은 '세겜'에서 시작해서 '부느엘'로 옮기고, 그리고 오므리 왕도 수도를 '사마리아'로 바꾼다든지 해서, 그렇게 자기들 정권의 정통성을 지키려고. 즉 자기들 역사를 새로 쓰려는 시도를 했다는 말입니다.

◈ 요람 왕이여, 아이를 내놓지 않습니다 ??

그런데 요람 왕 때, 북쪽 변방에 있던 벤하닷(하사엘?) 왕의 아람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서는 매우 심하게 압박을 가하고 있었는데, 그 포위로 인해서 얼마나 백성들의 형편이 심각했던지, 그들이 지나가는 왕에게 백성들이 즉석재판을 요청했다는 겁니다.

그 재판의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오늘은 우리 아이를 삶아서 나눠먹고, 내일은 자기 아이를 삶아먹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약속대로 먼저 우리 집 아이를 삶아먹고, 그 다음날에는 자기 아이를 삶아먹으려고 하는데, 그만 자기 아이를 숨기고 내놓지를 않습니다" 라는 겁니다. 백성들의 그 청원을 이 요람 왕이 듣고 너무나 화가 나서, 이런 사태를 야기시켰다고 여기는 엘리사에게 화살을 돌리는데, 즉 "너, 이제 죽었어" 라고, 그렇게 작심을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요람 왕 때의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 낫는 사건인데, 즉 아람나라에 포로로 잡혀있던 이스라엘 소녀의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이 이스라엘에 와서는 엘리사가 시키는 대로 요단강에 몸을 7번 담그고서 병이 나았다고 하는, 그 사건도 역시 요람 왕의 시대라는 겁니다.

◈ 그렇지만, 선지자에 의해서 다윗언약대로 !!

이러한 사건들을 보면,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은 왕들의 객기가 아니라, 엘리야와 엘리사 같이 수난을 받고 욕을 얻어먹는 선지자에 의해서, 그렇게 다윗언약대로 이스라엘 나라가 계획대로 전혀 차질이 없이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나 집사와 장로 등에게 아무리 문제가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성도라고 하면 무엇을 알아야 되는고 하니, 교회에 별별 문제가 다 있고, 비록 누군가에게 당하고, 혹은 욕을 아무리 얻어먹는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드시 응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하등 중요하지도 않고, 그냥 하나의 웃기는 '개콘'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아니 그보다 더 못한데, 그러니 "나는 누구누구 때문에 교회에 안 나간다" 라는 분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이야기가 제가 봐도 웃기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기가 차겠느냐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이 그대로 응하고 이루어지는데 있어서, 객기를 부리는 왕이나, 또한 피해를 보는 선지자들이나, 모두가 다 일종의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즉 연극대본은 따로 있고, 그들은 그 대본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연기자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의 엄청난 몽둥이 - '앗수르' !!

이스라엘이 자기들 주변에 진치고 있는 소소한 나라들, 즉 암몬, 모압, 에돔 등을 바라보면서, 자기들 딴에는 "이 정도쯤이야 우리가 물리칠 수가 있겠지" 라고 하면서, 선지자의 말도 곧잘 듣곤 했지만, 그런데 정작 하나님께서는 어떤 결과를 가지고 계시는고 하면, 아예 그들이 감당도 못할 아주 엄청난 몽둥이를 준비하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앗수르' 라는 나라인데, 이 나라는 아람보다도 더 북쪽에 있는데, 이 나라가 쳐들어오게 되면, 북쪽으로 해서 남쪽까지 가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남과 북에 있는 그 어떤 왕도, 심지어 요시아 왕도 전혀 감당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교재 '그림1'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경로를 보면, 여기에 아브라함의 이동경로가 잘 나와 있는데, 그것이 곧 "갈대아 우르(이라크) - 바벨론(이라크) - 마리 - 하란(터키남쪽) - 다메섹(레바논) - 세겜(이스라엘) - 브엘세바(이스라엘) - 소안(이집트) - 브엘세바", 그렇게 아브라함은 다시 되돌아오는 여정을 겪는데, 여기서 앗수르는 이 우르와 바벨론, 그 넓은 지역일대를 모두 점령했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의 일은, 인간들의 예상을 벗어나 !!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적들을 동원시킬 때, 넓은 범위에서 하시는데, 그런데 이스라엘과 유다는 그런 넓은 범위의 적들은 모르고 자기들 코앞에 있는, 즉 아람, 암몬, 모암, 에돔, 블레셋, 뵈니게 등만 상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그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그 이상의 엄청난 폭풍인 앗수르를 동원시켜서 아예 잿더미를 만들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레미야나 이사야 같은 선지자들은 이미 큰 폭풍이 온다는 것을 예언했는데, 이사야 10장에 보면, 앗수르를 진노의 막대기라고 하고, 또한 45장에서는 "고레스라는 사람이 다시 회복할 것이다. 그가 곧 메시야다" 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수백 년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사 10:5)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
(사 45:1)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그리고 북쪽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시대의 어떤 선지자는 말하기를, "왕이여, 당신이 세운 이 산당의 모든 제사는 요시아 왕 때 모두 다 뭉개질 것이다" 라고, 그렇게 300년 전에 예언을 했다는 겁니다. 그게 열왕기상 13장에 나오는데 말입니다.

(왕상 13:2)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물론 우리는 그것을 보고는 "와, 세다" 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것은 300년이나 30년이나 말입니다. 천년이 하루 같은데, 그러니 무엇이 어려우냐는 겁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알려주니, 자기는 알릴 도리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그만큼 선지자의 시야는 넓다는 말인데, 사실 하나님의 시야가 넓은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아무리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래도 좀 한다고 하는 아하스나 히스기야와 같은 왕들은 그러한 것을 모르는데, 오히려 그저 자기가 사는 것, 자기 나라를 보존하는 것, 그런 것 말고 다른 것은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요즘도 마찬가지인데, 소위 신앙이 있다는 인간들도 세상을 넓게 볼 줄을 모르고, 그냥 자기 중심으로 좁게 본다는 겁니다. 큰 것이 몰려오는 줄도 모르고, 그냥 아무 것도 아닌 작은 것에 매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다음과 같은 설교를 했는데,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 그래서 나는 죄인입니다 ??

* A : 당신은 죄인입니다. 그렇지요?
* B : 예, 그렇습니다. 죄인이 맞지요.
* A : 어째서 죄인입니까?
* B : 함부로 방귀를 끼고, 오줌도 아무 곳에도 눕니다.
* A : 예잉?
* B : 그래서 나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 방에서 방귀를 뀌는 것은 전혀 죄 축에도 들어가지 못하는데, 물론 냄새는 좀 나겠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지옥불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진짜 죄인데, 그러니 살아가면서 소소하게 실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 왕들을 큰 덩어리가 온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데, 즉 선지자 시선에는 근처도 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 요시아 왕의 죽음 !!

우리가 유다의 요시아 왕이 믿음이 좋은 것은 아는데, 하지만 애굽 군대가 바벨론과 싸우기 위해서 유브라데 강가로 올라오니까, 자기가 그 애굽 군대를 막겠다고, 그렇게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다가 그만 죽었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역대가 뭐라고 합니까? "훌륭한 요시아 왕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전쟁을 하다가 죽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대하 35:20)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온고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대하 35:21)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뇨 내가 오늘날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대하 35:22)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대하 35:23)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하였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대하 35:24) 그 신복이 저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저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저가 죽으니 그 열조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그런데 그것을 보고 보수주의의 어느 학자는 "오히려 요시아 왕이 잘 죽은 게 아닌가? 그 뒤에 다가올 험난한 꼴을 안 보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다" 라고, 그렇게 요시아 왕의 죽음을 좋은 쪽으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변명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변명을 하지 말고, 어차피 이스라엘이나 유다는 유훈정치, 즉 귀신정치가 아니냐는 겁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까, 다윗언약이 살아있는 한, 즉 선지자가 있으면 그것으로 'OK!' 라는 말입니다.

◈ 앗수르 다음에는 바벨론이 !!

이 앗수르 다음에 '바벨론' 이라는 나라가 등장하는데, 이미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사르곤 3세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는데, 그게 남쪽의 요시아 시대이고 말입니다. 그 뒤에 이 남쪽 유다는 바벨론이 와서 친다는 말입니다. 시그기야 왕 때 말입니다. 그것을 이사야도 예언했고, 또 예레미야도 여러 번 예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렘 21:1)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보내어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 모든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던 그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 망한 것이 아니라, 가짜가 제거되는 과정 !!

그런데 그것을 듣는 백성들은, 자기들 입장만을 생각해서 "아, 망했다. 망했어. 이제 우리는 망했다" 라고 여기는데, 하지만 그것은 전혀 망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짜가 제거되는 과정이지 말입니다.

여기에서 '가짜' 라는 것은, 그야말로 '자아 이미지' 인데, 그런데 가짜인 자아 이미지가 자꾸만 자기 눈앞에 보이니까, 즉 "내가 사는 시대에, 내가 원하는 국가 이미지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라는 것이, 물론 그게 소박한 포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그런 자기의 소박한 포부가 바로 자아와 합쳐져서 생겨난, 그야말로 엉뚱하고도 일방적인 자아의 세계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그것이 그러한가?" 라고 하면서,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과 서로 대조를 해봐야 된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 저는 소박하게 이것만 있으면 만족합니다" 라고 할 때, 그것이 정말로 그러한지, 그것을 언제나 성경말씀을 살펴봐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 판단을 해버리면 안 되고 말입니다.

◈ 그저 50명만 주옵소서 ??

신학교를 다닐 때는, 그래도 조금은 믿음이 있는 신학교 교수들로부터 "큰 교회가 복음적으로 문제점이 많고, 큰 교회에 있다가 보면 물든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면, 물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하면, 그래서 졸업을 하고 난 뒤에 하는 소리가 "하나님, 저는 큰 교회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50명만 주옵소서" 라고 하는데, 물론 자기 딴에는 나름대로 소박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 딴에는 낮춘다고 낮춘 것인데, 즉 "하나님, 남들은 3000명이나 구한다고 하는데, 세상에 그런 이단들이 다 어디 있습니까? 3000명씩이나 구하는 욕심이 다 뭡니까? 교회가 무슨 장터입니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딱 50명만 구합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50명을 원하는 것은 이단이 아닙니까? 물론 자기 딴에는 그것이 소박한데, 하지만 그것을 성경말씀과 대조해보았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이 어떻게 살았으며, 스데반 집사는 어떻게 살았으며, 또 베드로는 어떻게 살았으며, 그리고 야고보 사도는 어떻게 살았는지, 그렇게 실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즉 성령을 받는 분들과, 자기가 소박하다고 여기는, 그런 자기 자신의 정신상태와 서로 대조를 해보았느냐는 말입니다.

◈ 말씀이 응하게 하려 함이라 !!

그러니 성경 속에서 성령을 받은 분들과 대조하는 것이 아니고, 기껏 대조하는 인간들이 만날 홍정길, 옥한음, 하용조, 이동원, 박영선 등등, 그리고 성경에 전혀 나오지도 않는 이근호(?), 그런 사람들과 왜 대조를 합니까? 그런 인간들은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도 아닌데, 그러니 "말씀이 응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하는, 그 소리를 지금 장난처럼 여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이나 요한복음을 보면, 물론 다른 복음서도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일을 한 번씩 벌일 때마다 그 뒤에 그림자처럼 뒤따라오는 것이 있는데, 즉 "말씀이 응하게 하려 함이라", 혹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마 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요 18: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그런데 이것을 사람들이 농담으로 듣는데, 마치 롯의 사위들처럼 말입니다. 즉 "하나님, 제가 원하는 소박한 그것을 성경에서 보고 싶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결코 보여주지 않는데, 오히려 "차리리 니가 성경을 아예 새로 다시 써라. 계시를 니가 써!" 라고, 그렇게 책망을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사도바울에게 절망은 없어 !!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도 "희망의 2009년도!" 라고, 그렇게들 이야기하고 외치는데, 하지만 사도행전 28장인 마지막에는 뭡니까? 그게 희망입니까? 그냥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라고 하면서 그냥 끝나버린다는 겁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에게는 절망이 없는데, 왜 그런가요? 그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말입니다.

(행 28: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행 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아무튼 지금 구약에서는 땅을 청소하는 것인데, 즉 마지막 때에 새 하늘과 새 땅만을 남기기 위해서 헌 하늘과 헌 땅을 불에 전부 태운다는 겁니다. 그렇게 불에 탈 때, 그러한 광경을 보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해서 탈것은 타야 된다고 믿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 그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님, 나중에 불에 탈 때, 그때 알겠습니다" 라고 하지 말고, 지금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말입니다. 지금 멀쩡하게 푸른 하늘과 보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즉 산과 들이 멀쩡하게 있을 때, "야, 이것들 다 불에 타서 없어진다. 왜? 말씀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라고 믿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즉 예수님께서 "내가 구름을 타고 오리라" 라고 하면, 물리학자들은 무슨 짓들을 합니까? 그 구름의 밀도가 얼마이며, 예수님의 몸무게는 얼마인지, 그런 것을 따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당나귀가 말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라는 말입니다. 그런 것을 하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 달인을 만나다 ??

제가 지난 크리스마스 연극할 때 대본을 5번이나 바꾸었는데, 그 중에서 "달인을 만나다" 라는 것이 있는데 말입니다. 즉 "16년 동안 기적만 행해왔던 김달인 씨를 모셨습니다" 라고 하면서 사회자가 그 달인에게 묻는데, "어떤 기적을 행했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달인이 하는 말이 "예, 이런 이런 기적을 행했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이죠?(ㅋㅋ)

그런데 그렇게 기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가운데, 정말로 당나귀가 말을 하는 기적, 그런 기적 앞에서 자기의 기적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는 겁니다. 집에 가서 개를 한 마리 사놓고 말을 한번 시켜보라는 겁니다. 정말 말을 하는지 말입니다. 전혀 그것이 안 되는데, 그러니 당나귀가 말을 하는 것도 결코 안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알고 있는 과학이라는 것은, 수동적이라서 자기 편리한 대로 실용성만 따지지, 그 모든 전체를 부수고 달려드는, 그러한 말씀의 선지자적인 안목은, 제 아무리 인간들이 과학적으로 규명을 하려고 해도, 전혀 과학적인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 오늘날의 구약해석은?

그런데 오늘날 구약학계의 구약해석은 무엇입니까? 사실 성경해석이 아니고 일종의 고고학인데, 물론 처음에는 주춤주춤하면서 "역시 성경이 최고이고, 고고학은 나중이다" 라고, 그렇게 나갔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는고 하니, 즉 "강아지를 안방에서 키우면 결국에는 강아지가 안방을 차지한다" 라는 이야기처럼, 그야말로 성경말씀은 뒷전이고 고고학이 다 차지하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현재 구약학은 성경을 공부하는 게 아니고, 고고학을 연구하면서 "성경은 이래서 틀렸고, 또한 성경은 이래서 틀리고…" 라는 식으로, 그렇게 틀린 것만 이야기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신학자인지, 고고학자인지 전혀 구별이 안 된다는 겁니다. (성서 고고학자? ㅋㅋ)

예를 들어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건넌 그 홍해의 경우에, "홍해바다는 실제로 바다가 아니고 갯벌, 즉 갈대바다입니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창조 과학회' 라는 곳에서는 또 성경을 방어한다고 하면서 또 난리를 피운다는 겁니다.

◈ 창조 과학회가 더 미워 !!

그런데 속담에도 있지만, 즉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듯 사실상 저는 이런 창조 과학회가 하는 짓거리가 더욱 밉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전혀 고난을 받지 않겠다는 비겁한 태도이니 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고린도전서에 의하면. 성령을 받은 사람은 '어리석다' 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즉 "세상 사람에게 어리석게 보이는 것이, 성도에겐 구원의 능력이고 지혜가 된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창조 과학회의 인간들은, 저기들을 똑똑하니 그런 소리가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 자존심이나 챙겨서 어리석지 않게 하려고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떤 인물이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말씀이 작용하면 구원을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말씀과 더불어서 성도는 고난을 받아야 되고 말입니다.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그런 고난을 에스겔 선지자가 이야기하는데, 이 에스겔은 남쪽 유다의 여호야김 왕 시대인데, 이 왕은 바로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달려든 인간이라는 겁니다. 유다의 거의 마지막 시대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에스겔과 예레미야의 활동시기가 겹친다는 겁니다.

◈ 요시야 왕의 슬픈 가족사(?) !!

그 앞의 요시야 왕에게는 세 아들이 있는데, 즉 '엘리야김(여호야김)', '여호아하스', 그리고 '시드기야' 라는 겁니다. 여기서 둘째 아들인 여호아하스가 먼저 왕이 되었는데, 물론 3달만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 여호아하스는 애굽 왕인 느고에게 폐위를 당한 뒤에 애굽으로 볼모잡혀가고, 그 애굽 왕의 손에 의해서 그의 형인 여호야김이 왕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겁니다.

이 여호야김 뒤에 그 아들인 '여호야긴'이 왕위를 잇는데, 그는 바벨론 왕인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바벨론 왕에 의해서 요시아의 막내 아들인 시드기야가 유다의 마지막 왕이 되는데, 그러니 이 시드기야를 끝으로 유다 나라는 멸망을 당한다는 겁니다. 그게 B.C 586년인데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요시아의 두 아들인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은 애굽의 똘마니가 되어버렸고, 시드기야는 그만 두 눈이 뽑히는 처참함 가운데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이 유다 나라는 끝내 망해버렸다는 겁니다. 이것이 곧 역대하 마지막 36장에 나오는 내용인데, 물론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한 내용이고 말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요시야 왕이 믿음이 좋다고 해도, 앗수르가 몰려오고, 또한 바벨론이 몰려오면 잘리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요시야 왕은 참 아깝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이 먼저 태어나서 통치했으면 이스라엘이 크게 부흥되었을 것이 아닌가?" 라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성경해석을 잘못한 것인데,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반드시 망하도록 되어있기에 말입니다.

(대하 36:1) 국민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세워 그 부친을 대신하여 예루살렘에서 왕을 삼으니
(대하 36:2) 여호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삼 세더라 저가 예루살렘에서 치리한지 석 달에
(대하 36:3) 애굽 왕이 예루살렘에서 그 위를 폐하고 또 그 나라로 은 일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며
(대하 36:4) 애굽 왕 느고가 또 그 형제 엘리아김을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그 형제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잡아갔더라
(대하 36:5) 여호야김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을 치리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대하 36:6)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올라와서 치고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대하 36:7) 느브갓네살이 또 여호와의 전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가져다가 바벨론에 있는 자기 신당에 두었더라
(대하 36:8)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그 행한 모든 가증한 일과 그 심술이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그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어리석어 보이는 '언약'으로만 !!

그러니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귀신정치, 유훈정치를, 즉 보이지 않는 언약정치를 해야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참 중요한 대목인데, 여기서 '언약' 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어리석어 보이는 그 지혜, 곧 말씀이 응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흉내내고 모방해서 '교회' 라는 이름으로, 즉 껍데기뿐인 인간적인 행태뿐인 지도자로 행세하면서 설치는 것들이, 과연 그런 인간들이 주의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 천만의 말씀인데, 그들은 마치 개가 오줌을 누듯이 자기 영역만 넓히는 놈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즉 "우리교회 근처에 교회를 세우지 말라" 라고 하는 것은, 마치 개들이 다니면서 오줌 찍찍 갈기면서 자기 영역을 표시하듯이, 그렇게 자기 영역만 표시하고 넓히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 십자가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고, 교인들이 자기교회에 나왔다가 옆에 교회로 가는 것 때문에 울고불고 난리를 피운다는 겁니다. 제가 설교시간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참 설교시간이 아니고 강의 첫날 시간에 했지 싶은데, 교회에도 카스트 제도, 즉 계급이 있다고 말입니다. 즉 교회에도 귀족층과 서민층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일 귀족층은 십일조를 하는 사람이고, 그 뒤로는 5퍼센트만 헌금하는 사람, 그 다음은 보통 때는 만 원을 내다가, 가끔씩 감사헌금을 십만 원을 하는 사람,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는 주야장창 천 원만 내는, 즉 점심 값도 제대로 내지 않는 사람으로, 그렇게 서열화가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 눈에 보이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올시다 !!

그러니 진짜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라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교회는, 절대로 여러분들의 눈에 보이고 소망하는 교회가 아니올시다" 라고 외쳐야 한다는 겁니다. 즉 그렇게 자기 교회를 부술 수가 있어야만, 그게 곧 진짜 설교자라는 말입니다.

누군가가 "목사님, 그러다가 진짜 부서지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한다면, 하지만 그렇게 해서 부서질 것 같으면 그것은 진짜 교회가 아니라는 겁니다. 어줍잖은 인간 목사가 깬다고 해서 깨어질 교회라고 하면, 그것은 처음부터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전혀 '아멘' 소리도 없고, 강의할 맛이 나지 않는데 말입니다(ㅋㅋ).

◈ 남쪽 아마샤 왕의 경우에 !!

왜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고 하니, 남쪽의 '아마샤' 왕의 경우에는 참 못된 인간인데, 개인적으로 에돔 나라에 한이 맺혀서 군대를 모으고, 또 북쪽 이스라엘에서 돈을 주고 용병까지 모았다는 겁니다. 그때 어떤 이름도 없는 선지자가 와서 하는 말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니 용병을 돌려보내세요" 라고 하면서 말렸다는 말입니다.

(대하 25:7)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로 왕과 함께 가게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러니까 아마샤는 생각하기를, "아하, 개인적인 보복으로 에돔을 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말은, 에돔을 치는 일에 실패한다는 뜻이구나. 그러면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나의 뜻을 이룰 것이다" 라고 여겼다는 겁니다. 왕이 그렇게 나름대로 계산을 해서, 이스라엘 용병을 다시 자기 나라로 돌려보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니까, 기껏 취직이 된 줄로만 알고 왔던 북쪽의 용병들이, 자기들이 비정규직이라서 회사에서 잘랐다고 여기고는, 그만 돌아가면서 분한 김에 유다의 성읍들을 초토화시켜버렸다는 겁니다. "에이, 잘먹고 잘살아라. 부를 때는 언제고 지금은 이게 뭐꼬?" 라고 하면서, 그렇게 화풀이를 했다는 말입니다. 그냥 조용히 촛불집회나 하지 말입니다.

그러자 아마샤가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에게 시비를 걸었는데, "야, 한판 붙자" 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요아스 왕이 비웃으면서 하는 말이 "어디 레바논의 가시나무가 백향나무에게 딸을 며느리로 달라 하는가?"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전쟁이 붙었는데,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붙이시매 전쟁을 실시하니, 어설픈 북쪽이 그만 정통 남쪽의 아마샤 군대를 대패시켜서, 아마샤는 겨우 살아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아마샤는 백성들에게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말입니다.

(대하 25:18)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으니라
(대하 25:19) 네가 에돔 사람을 쳤다 하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편히 거하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대하 25:20)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저희가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붙이려 하심이더라
(대하 25:21)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로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대하 25:22)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남쪽의 '요담' 이라는 왕은 에돔도 이겼던 괜찮은 왕인데, 그런데 그 다음 왕인 '아하스'는 아예 막가는 인간이었는데, 그 다음이 '히스기야' 왕이고 말입니다. 이 아하스 시대에 그 유명한 예언이 나왔는데, 선지자 이사야가 한 예언으로, 즉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으리라" 라고 말입니다.

◈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 때는 !!

남쪽의 웃시야나 북쪽의 여로보암 2세 때는 그래도 먹고사는 것이 제법 괜찮았을 시절이었는데, 바로 이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했던 선지자가 '아모스' 라는 겁니다. 남쪽은 '요나' 이고 말입니다. 그들이 빈부의 격차에 대해서 아주 심하게 고발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물론 이사야도 마찬가지이고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부유한 사람들은 땅에 땅을 더했다는 겁니다.

왜 그런 이야기나 나오는고 하니, 웃시야와 여로보암 2세 때는, 특히 여기 북쪽에는 항구를 중심으로 해서 무역업이 발달하면서 나라살림이 윤택해졌다는 겁니다. 커미션을 받아 챙기면서 말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는 양쪽 나라의 경제가 농사를 바탕으로 한 자급자족 경제가 대세이었다가, 갑자기 수출을 위한 집약산업으로 국가정책이 바뀌게 되었다는 겁니다. 물론 그 앞의 오므리 왕과 아합 왕 시대에는 사마리아와 아람의 다메섹에 경제특구를 조성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 강력한 수출 드라이버 정책을 !!

그러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유다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농사만 지어서는 나라가 부강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그것을 이방나라에게 배웠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출 드라이버 정책을 썼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이 밥을 먹고살기 위해서, 즉 자급자족을 하기 위해서는, 참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국가' 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그냥 같은 집안끼리 모여서, 자기가 먹을 것을 자기가 생산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겁니다. 즉 아까 이야기한, 그런 '잉여'나 '여분'을 추구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급자족의 농경체제가 유지되려면, 가족이 서로 흩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그래서 사촌끼리도 결혼을 해서 한 가족을 이루고, 또한 부족을 이루는데, 그런 부족이 모여서 지파를 이루었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울 왕의 경우에도, 그는 베냐민 지파이기 때문에, 자기 지파에 소속이 되어서 그냥 농사를 짓는다는 겁니다. 즉 왕이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전쟁과 같이 위급한 일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각 지파마다 인원을 차출해서 모였다가, 그 전쟁이 끝나면 다시 흩어지는 식이었다는 말입니다.

◈ 전문적 킬러군대의 필요성이 !!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그렇게 해서는 전문적인 킬러군대가 양성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아니, 농사만 짓던 사람이 갑자기 태권도가 됩니까? 그런 것을 하려고 하면, 즉 전문적인 군대를 키우려면 먼저 군사 고문관이 있어야 되고, 그렇게 되려면 국가가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군자금이 많이 있어야만 된다는 겁니다. 여유자금이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 사람이 한사람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전문 전투병력이 되려면, 집체 훈련과 집중 훈련이 필요한데, 그렇게 하려면 거기에 지도자가 필요한데, 그 최종 우두머리가 곧 왕이라는 말입니다. 최고 사령관으로 말입니다.

그것을 이미 이방나라들이 다 가지고 있던 것인데, 그러니 그런 전문적인 군대를 보유하려고 한다면, 거기에 대한 막대한 비용이 소요가 되는데, 거기에 대한 비용은 어디서 나옵니까? 무역과 같은 것을 통해서 이윤을 얻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 봉건제도에서 민주주의로 !!

과거 프랑크 왕국을 비롯한 중세 때의 모든 유럽 국가들의 경우에 원래 왕이 없었는데, 다만 전쟁이 터져서 매우 위급할 경우에 돌아가면서 왕을 뽑아서,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권한과 치안을 담당하는 권한을 그에게 주어서 전쟁을 치르고, 그 전쟁이 끝나고 나면 원래의 모습대로 각자 영주의 권한 밑으로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과거에는 그런 계약으로 된 봉건제도 아래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평소에는 왕은 필요가 없었는데, 그런데 자꾸만 전쟁이 빈번해지다가 보니, 그만 계속해서 왕이 필요하게 되고, 그 왕은 절대군주가 되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게 곧 '루이13세' 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것이 그만 뒤집어져서 "너만 좋은 것을 먹나? 우리도 좀 먹어야겠다" 라는 식으로 소위 '부르조아' 라고 불리는 '시민 상공업체'가 하나의 세력화가 되어서 의회를 만들게 되었는데, 즉 이제는 국가가 신분이 아닌 법에 의해서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그런 사람이 대우를 받는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바로 그 민주주의 바이러스가, 지금은 콜라 병을 보고 신기해하던 아프리카의 부시맨들에게까지도 다 전파되어서 물들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시맨들이 처음에는 달랑 팬티 하나만 입고 사냥이나 했는데, 그런데 이제는 자본주의에 의해서 그만 전염이 되니까, 저녁시간에는 TV를 통해서 전 세계의 모든 드라마를 다 보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한국의 '대장금'도 보고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름 값이 오르고 원자재 값이 오르니까, 모두가 굶어죽게 생겼다는 겁니다. 자본주의를 모르던 과거에는 서로 도와주면서 살았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기름 값이 오르고 원자재 값이 뛰니, 아프리카의 오지까지 모두가 다 굶어죽게 생겼다는 겁니다. 그래도 미국은 밥이라도 먹고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 소박하던 소말리아 사람들이 총을 들고 해적질을 마구 하고 있다는 겁니다.

◈ 나, 유황불 속에 와 있을 뿐이고 !!

그러니 그들에게 있어서 이제는 종교나 정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겁니다. 소 떼를 몰고 가는 '오스트레일리아' 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소를 키우는 것이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일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이 곧 기업이고 기업은 게임인데, 즉 상대방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겨야만 군대에 납품이라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외부에서 보면, 소 농장이 아름답고 목가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지만 그 기업을 한번 맡아보라는 말입니다. 과연 그게 아름다운지 말입니다. 매일 매일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소 가격의 국제시세 변동을 살펴야만 되고, 또 사료 값이 얼마나 뛰는지, 그것을 쳐다보고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제는 얼마나 살아가는 것이 그 어마나 힘이 드는지, 그래서 현대인들은 자기가 살아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 유황불 속에 와 있을 뿐이고!" 라고 된다는 말입니다(ㅋㅋ).

◈ 수출산업 때문에 병드는 이스라엘 !!

아무튼 유다나 이스라엘의 경우에, 가장 나라가 융성할 때 왕들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데, 그러니 호세아나 아모스가 빈부의 차이를 심하게 꾸짖게 된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소위 특화산업 때문에 자기의 직업을 모두 버리고,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매진했던 사람들이,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제때에 상품을 만들지를 못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되면, 벌금을 물면서 물건을 차압을 당하게 되고, 급기야는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호세아와 아모스 선지자는 뭐라고 합니까? "옛날 출애굽 때 하나님이 주신 그 상태로 돌아가라. 그 상태를 유지하고, 결코 이방나라를 본받지 말라" 라고, 그렇게 목이 터지라고 외쳤지만, 하지만 오히려 왕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만 그들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고 죽이려고 달려들었다는 말입니다.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

그리고 이 '아하스' 라는 양반은, 신이란 신은 뷔페식으로 모두 다 섬긴 왕인데, 자기 자녀를 불살라서 제사하는 짓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하는 말이 "아하스 왕이여, 하나님의 징조가 떨어질 것이다" 라고 하니, 왕이 하는 말이 "나는 하나님의 징조와 같은 것은 구하지 않겠다. 내가 괜히 하나님을 괴롭게 할 것이 뭐가 있는가?" 라고 한다는 겁니다.

* 이사야 : 왕이여, 하나님의 징조가 떨어질 것이다.
* 아하스 : 나는 하나님의 징조와 같은 것은 구하지 않겠다.
* 이사야 : 그게 아니고?
* 아하스 : 내가 하나님을 성가시게 할 것이 뭐가 있는가?
* 이사야 : 그게 아니라, 당신은 이제 잘렸어.
* 아하스 : 그러면 남은 자는 누구이지?
* 이사야 : 여기 있다. 임마누엘!
* 아하스 : 그게 누구 집인데?
* 이사야 : 집이 아니고, 처녀가 애를 낳는데, 그 이름이 곧 임마누엘이다.
* 아하스 : 그게 뭔 말?
* 이사야 : 비로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다.
* 아하스 : ? ? ?

보통 아이를 낳으면 "누구누구의 아버지" 라고, 그렇게 하는데, 그런데 처녀가 애를 낳으니 아버지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처녀가 아버지가 없는 애를 낳아서, 하나님의 열심으로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일으킬 것이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여기에 대해서 어디까지 예언을 하는고 하니,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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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8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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