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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9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역대기)(강의정리)05-재정리자유게시판로마서

2009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역대기)(강의정리)05-재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1)

09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역대기 제5강(둘째 날 오전2)

2009,01,14 강의 이근호, 정리 오용익

◈ 다윗은 늘 여호와께 물었다 !!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것이 역대상 10장과 11장 부분인데, 지난 시간 마지막에 살펴본 10장 14절을 다시 보면, 제가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대상 10: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이 말씀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고 하면, 즉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므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다윗에게 나라를 돌리셨다" 라고 하는 것은, "다윗은 늘 여호와께 물었다" 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윗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다윗은 완벽했다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요즘 말로 표현하면, "나는 주가 아닙니다. 나는 나의 구원주가 아니고,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하시는 주입니다. 예수를 믿는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아가, 나의 자아를 건지는 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라고 하는, 그런 뜻이란 말입니다.

말이 조금 복잡한데, 그렇게 복잡하게 해야 되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때는, 예수를 믿는 척하기 위해서 예수를 잠시 이용하다가, 이제 "나, 예수를 믿었다" 라는 소리를 듣고 나서부터는 예수는 그만 차버리고, 그때부터는 예수를 믿는 그 자아가 예수를 대신해서 모든 절대자의 자리에 올라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 옳으니이까 ??

바로 그것이 지난 시간에 말한 "옳으니이까?" 라는 것인데, 우리 인간들이 매일같이 하는 말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옳고 그름을 이제는 우리 차원에서 따지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즉 "네가 뭔가를 옳게 해도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고, 네가 나쁜 짓을 했다 해도 그것은 원래부터 옳은 것이 아니었고, 즉 옳고 그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 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의미인데,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다" 라고 했는데, 즉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라는, 바로 그것이란 말입니다.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왔는데, 그런데도 "내가 옳게 행동을 했습니까? 나쁘게 행동을 했습니까?" 라고 신경을 쓰는 것, 그것 자체가 바로 사울처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다윗은 선지자가 찾아와서 !!

그렇다고 하면, 즉 여호와께 묻지 아니함으로 사울이 멸망했다고 하면, 앞으로 다윗과 사울의 차이점을 살펴보자는 말입니다. 사울은 여호와께 묻지 않았는데, 즉 그 나라를 자기 것으로 여겼는데, 그런 나라를 인수인계를 받은 다윗은 "야, 잘했다" 라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여호와께 나아가게 되고, 또한 여호와 쪽에서는 누군가 오게 되고 말입니다. 바로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누군가가 온다" 라는 그 누군가는 바로 선지자인데, 즉 선지자가 끊임없이 찾아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선지자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까, 하나님의 신이 임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의 특징이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한 사람이 찾아올 때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되는데, 그것이 곧 구약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신약에서는 누가 찾아오십니까? 선지자가 아닌, 성령이 직접 그 사람의 마음속에 오시게 되는데, 그러면 신약에서는 성령이 찾아오시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 신약은, 직접 성령께서 오셔서 !!

요한일서 2장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구약처럼 선지자가 와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직접 그 사람 속에 계시는데, 그러니 네가 그래서야 되겠느냐?" 라고, 말씀을 가지고 따지시고 묻는다는 겁니다. 그것은 결코 지옥에 보내겠다는 것이 아닌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기 때문에,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한다는 말입니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 성도는, 오직 말씀에 관심이 있어 !!

그러면 성도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 말씀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꾸 이 점에 대해서 오해하는데, 이것은 전혀 "말씀대로 산다" 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즉 "에베소서는 어떻고? 로마서는 어떻고?" 라는 식으로 말씀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예 말씀에 관심이 없으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사울처럼 "나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지 마세요" 라고 하는데, 그것이 곧 하나님을 밀치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렇게 밀치더라도, 밀리면서 말씀으로 또 다시 몰려오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까 살펴본 그 그림, 즉 다윗을 정상으로 보고 아담에서 다윗까지 올라가는데, 그리고 다시 다윗과 솔로몬을 경유해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는 겁니다. 북쪽과 남쪽의 왕들이 서로 말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과정을 산 모양으로 그려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역대기 전체를 보면 분량이 제법 많은데, 그런데 "아담에서 다윗까지", 바로 거기에 할당되는 분량이 불과 10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11장부터는 곧 바로 다윗으로 넘어가서, 계속해서 진행이 되고 말입니다.

◈ 역대기 '내리막길'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그래서 지금부터 강의진행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고 하니, 오늘 낮 시간에는 10장에서 잠시 멈추어서, 속도는 밤에 야간운전을 하면서 내도록 하고, 일단 지금 낮에는 다윗에서부터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자들을 통해서, 즉 여로보암을 비롯해서 멸망으로 가는 부정적인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정적인 것들을 통해서, 여기 중앙의 산봉우리를 대체하는(?), 즉 여기 중앙의 산봉우리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여기 부정적인, 즉 그들이 벌받는 것을 통해서 알아보려고 한다는 겁니다. 사실상 이 내리막길은 짧고 경사도가 아주 급하게 되어있는데, 그래서 마지막 세 명의 왕들에 대한 기록은 겨우 몇 줄이 되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 어느 묘실에 묻혔는가?

여기 역대하 9장의 끝 부분인 31절에 보면, "그 부친 다윗의 성에 장사되고" 라고 하는데, 역대기가 참 재미있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 사람이 평생을 어떻게 살았는가?" 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사람이 죽어서 어느 묘실에 묻혔는가?" 라는, 그것이 따지고 있다는 겁니다. 즉 그것이 그 사람의 운명을 확정짓는다는 말입니다.

(대하 9:30)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사십 년이라
(대하 9:31) 솔로몬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부친 다윗의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죽음이 주도권을 쥐고 있어 !!

다시 말해서, 죽음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데, 즉 그 사람이 살아서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그 사람이 어떠한 죽음 속에 편입이 되는지, 즉 어떤 죽음 속에 합류가 되는지,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마치 십자가에 합류하게 되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던 간에 예수님과 함께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데, 하지만 아무리 잘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합류된 적이 없는 사람은, 그냥 겉돌면서 일 평생을 산 사람인데, 즉 톱니바퀴가 맞물리지 않아서 그냥 헛돌듯이 살아간 셈이 된다는 겁니다. 제 아무리 겉모습이 화려하고 멋있게 보여도 말입니다.

◈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역대기 !!

이제 여기 10장부터 보게 되면 그것이 나오는데, 그런데 이 역대기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역대기는 이미 열왕기서를 다 아는 상태에서 재편집을 하거나 가필했다" 라고 하는데, 물론 거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고 말입니다. 자유주의 신학 쪽에서 그런 소리들을 많이 한다는 겁니다.

그들은 성경을 아예 역사책으로 바꾸려고 드는데, 지금부터 그 점에 대해서 잠시 언급해 보겠습니다. 이들은 "역대기나 열왕기는 역사책이다" 라는 주장을 하는데, 하지만 저는 단호하게 "그것은 아니다" 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 이근호 - 역사책이 아닌, 언약책 !!

역대기나 열왕기가 그들의 주장처럼 역사책이 아닌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역대기와 열왕기가 모두 하나님의 언약인데, 물론 '언약' 이라는 말이 어려우면 '약속' 이라고 하면 되고 말입니다. 즉 서로가 새끼손가락을 걸고 인장을 찍고 하는, 바로 그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일반 민중들은, 즉 백성들은 구경만 하면서 그냥 빠지게 되고, 그 백성들의 대표가 되는 왕과, 그리고 이스라엘의 진짜 왕이신 하나님과 맺은, 즉 '왕'과 '왕' 사이에 체결된, 그것이 바로 '언약' 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언약을 체결할 때, 이 세상 왕은 어떤 자격을 가지는고 하니까, 죄인의 자격이란 겁니다. 그러니 죄인이라고 하면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그런데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서 언약을 맺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결국 죄인이 되는 것으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러한 죄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진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드러낼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라는 겁니다. 모두가 다 같은 말인데, 바로 그러한 것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죄인만큼 적절한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 아버지의 가락지는, 탕자에게 가장 적합해 !!

그러니 아버지가 가락지를 끼워줄 가장 적합한 아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짓던 말을 잘 듣던 큰아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가락지의 가치가 계속해서 남아있으려면, 모든 것을 다 털어먹고 집에 들어온 둘째 아들인 탕자가 오히려 적합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탕자가 집에 들어온 모습은, 이렇게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들어온 게 아니라, 그야말로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들어왔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와서는 와락 끌어안는데, 물론 아들은 "저는 아들이 아닙니다. 그냥 종으로나 사용해주세요" 라고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탕자 생각이고, 아버지는 탕자에게 가락지를 끼우고, 새 옷으로 입히고, 순수 국내산 한우를 잡아서 잔치를 벌이고, 그야말로 동네방네 다 알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것보다 더 아버지의 자비와 용서가 드러날 수는 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평소에 말을 잘 듣고 농사를 잘 짓던 큰아들보다는, 가출을 했다가 돌아온 탕자가 아주 적절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부터 탕자를 하겠다고 교회 대신에 한국 나이트 클럽에 간다든지, 그런 식으로 하지는 말라는 겁니다.

◈ 성도는, 이미 탕자로서 살고 있어 !!

왜냐하면, 우리는 집에 그냥 가만히 있어도 죄인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집에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을 부담스러워하는데, 그러니 그것보다 더 큰 탕자가 어디에 있느냐는 겁니다. 꼭 재산을 다 날려야 탕자입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도, 주님의 돈도 자기 돈이라고 우기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탕자로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 성경은, 명령이 아닌 규범 !!

그러니 다윗의 경우에 있어서,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명령이 아니고 규범이라는 겁니다. 즉 신분적이라는 말입니다. 즉 "네가 명령을 잘 지킬 때만 구원을 하겠다" 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되기로 작정이 되었기에, 그런 명령들이 차후적으로 주어진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들어라, 이스라엘아!" 라는 말은, 아무에게나 해주는 게 아니고, 이미 남의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즉 이스라엘에게만 하는 소리라는 말입니다.

◈ 백성들은 배제가 되는데 !!

여기에서 민중들은, 즉 "백성들은 배제된다" 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백성들은 이미 왕을 원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의 운명은 왕에게 다 맡겨져 있고, 즉 왕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혜택만 입을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왕은 어떻게 됩니까?

왕은 어디까지나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혜택을 입기 때문에, 왕이 만약 제대로 약속 안에 있다고 하면, 그 왕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런 사랑을 받으면 야베스의 기도대로 축복을 받는다는 겁니다. 복을 그야말로, 곱빼기의 복을 받게 되는데, 그리고 그 복은 고스란히 왕의 백성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말입니다.

◈ 죄인은 많지만, 그 죄를 보여줄 대표자는 따로 있어 !!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다윗언약' 인데, 그런데 이 다윗언약에서 중요한 것은, 다윗처럼 온전한 죄인이 될 죄인이 우리 인간들 속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분명히 죄인이 맞는데, 그런데 그런 죄인들을 대표해서 제대로 죄를 보여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 가서 무엇을 받습니까? 저주가 무엇인지, 즉 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그래서 오히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다는 겁니다. 바로 그 받은 세례에 의해서, 즉 불세례에 의해서 아버지께 버림을 받게 되고 말입니다.

◈ WHY ME?

보통 일반인들이 십자가를 지게 되면, 그런 십자가를 지면서 투덜투덜한다는 말입니다. "WHY ME?"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즉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 내가 저 사람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 있는데, 내가 왜 그 고생을 해야 합니까?"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어렵게 목회를 하는 분들이 주로 "WHY ME?"를 자주 하는데, 그리고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이라는 가수가 목소리를 저음으로 깔아서 부르는 노래도 이런 제목이 있는데, 40년 가까이 된 노래인데 말입니다. 아무튼 "하필이면 왜?"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건 부잣집 마님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왜 나는 화장발이 안 받습니까?"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ㅋㅋ).

그러니 예수님을 빼놓고 모든 인간들은, 설령 아무리 "제가 순교를 하겠습니다" 라고 하더라도, 항상 "왜 하필이면 저입니까? 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필이면 제가 고난을 받아야만 됩니까? 너무나 억울합니다"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 크리스마스의 잔혹사 !!

지금부터 약 2010년 전에 베들레헴에서는, 예수님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그만 쏙 빠지고 두 살 아래의 아이들을 다 죽는 사태가 일어났는데, 그게 바로 크리스마스라는 말입니다. 너무나 잔혹한 크리스마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메리 크리스마스" 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결코 흥겨운 크리스마스가 아니고, 오히려 너무나 위험한 크리스마스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폭력이 판을 치는, 물론 술을 먹고 난장판을 벌이는 그러한 폭력이 아니고, 예수 이름으로 말미암아서 폭력이 발생하고, 핍박을 받는 크리스마스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주어진 길을 순종하셨는데, 그래서 "주여, 이 쓴잔을 제가 마시겠습니다. 물론 할 수만 있으면 그냥 지나가면 좋겠는데,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제가 이 쓴잔을 마시겠습니다"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 지옥의 저주 잔을 말입니다.

◈ 쓴잔을 마실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어 !!

바로 그 쓴잔을 마신 분이 유일하게 오직 예수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있던 그 자리에, 죄인의 입장에서 들어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죄의 결과는 저주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것은 하나님께 묻는 것이 아니고, 다윗언약 안에 들어 있는 절규인데, 즉 시편 22편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인용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다윗이 왕이 되었다고 좋아했을 것이라고 여길지 몰라도, 그러나 시편 22편에 보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그렇게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 다윗언약대로, 다윗언약대로 !!

이렇게 지금 우리는 다 알지만, 아무튼 그 당시 다윗은 영문도 모르고 이유도 모르고, 그렇게 자꾸만 사울에게 쫓긴다는 겁니다. 분명히 자기는 그냥 바른 말을 했고 옳은 일을 했을 뿐인데, 그런데 마구 창이 날아든다는 겁니다. 피하지 못했으면 그냥 꽂혀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더 약을 올리는 것은, 사울이 하는 말이 "나는 네가 밉다. 그래서 죽이고 싶다" 라고 한다면, 그러면 차라리 괜찮은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다윗아, 다윗아, 네가 장차 이 나라를 이룰 것이다. 나도 너같이 훌륭한 임금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잘못했다. 정말 미안하이!" 라고, 그러한 말을 어디 한 두 번을 한 것이 아닌데, 그러니 환장을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사울이 왜 그렇게 하는고 하면, 악신이 들려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악신이 들리게 되면, 자기 몸이라도 자기 마름대로 하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악신이 들리면, 순간적으로 창을 들고 눈에 보이는 대로 그냥 바로 찍어야 되니 말입니다.

◈ 부부생활에 있어서도 !!

부부생활에 있어서도, 물론 저의 경험은 전혀 아니지만(ㅋㅋ), 30년을 잘 지내다가도 한 순간에 말을 한마디라도 삐딱하게 잘못 해버리면, 그것을 푸는데 2년은 족히 걸린다는 겁니다. 아무튼 그렇게 되면, 여자는 "그게 바로 너의 본심이지. 나를 갖고 놀았지. 나를 이용했지" 라고 하는데, 그러면 오해라고 아무리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한 순간에 삐치는데, 그것은 그 순간에 악신이 들려서 그렇다는 말입니다(ㅋㅋ).

그렇게 수십 년간 잘 살다가도 한 순간에 오해가 들어와 버리면, 그 동안 살아온 것이 모두 무효가 되어버리는데, 따라서 아무리 인간이 "저는 하나님 뜻대로 살았습니다" 라고 하더라도, 막상 십자가에 올라가서 주님 앞에서 항변해버리면, 그것으로 끝난다는 말입니다(??).

◈ 영화 '다빈치 코드' !!

그래서 '다빈치 코드' 라는 영화를 보면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은데, 원래 이게 유명한(?) 소설인데 말입니다. 내용인즉, 막상 예수님이 십자가에 올라가 보니까 겁이 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살려달라고 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막달라 마리아를 데리고 프랑스의 '리용' 지방으로 도망을 가서, 거기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서 마리아와 살면서 낳은 자식들 속에 예수의 DNA가 들어있고, 그 DNA 속에는 바로 예수님의 피가 있는데, 그것이 곧 성배이고, 그 성배를 찾는다는 것이 '다빈치 코드'의 내용이란 말입니다. 그런 스타일의 영화가 이 '다빈치 코드' 말고도 꽤 있다고 말입니다.

◈ 근대주체사상에 언약은 어울리지 않아 !!

그 다빈치 코드 이야기가 바로, 사람들이 언약을 역사로 바꾸는 것과도 같다는 겁니다. 역대기가 바로 언약인데, 그런데 사람들이 이 언약을 역사로 바꾸는 이유가 다 있다는 말입니다. 만약 역대기를 언약으로 봐버리면 민중들이 그만 소외가 되는데, 즉 왕과 하나님, 혹은 선지자와 하나님이 이야기를 하지, 백성들의 권리와 같은 것은 다 소외가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민중들의 소원과 권리를 모두 다 빼버리니까, 근대주체사상에 의해서 각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고 우선시하는 요즘과 같은 시대에, 이 성경말씀이 그만 설득력을 잃어버린다고 하는 것이 현대의 성경신학자들의 고민거리라는 겁니다. 민중에 소외되는 언약이라고 하면 말입니다.

◈ 언약책을 해체시켜서 역사책으로 !!

그래서 이 언약책을 해체시켜서 역사책으로 보게 되면, 즉 "옛날에 하나님의 신이 임한 선지자들이 민중들의 애환과 고통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봉사한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우리 성도들이,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에 있어서 눌린 자, 억울한 자, 고아와 과부 등, 이런 자들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것이, 진정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을 하나님의 책에서 해체시켜서 경제적, 사회적, 정치인 재해석을 가해야 된다" 라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되니 여기서 정복설, 침략설, 쿠데타설 등등, 온갖 이론들이 나오고 난리를 피운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기존 가나안 땅에 있는 민중들이, 홍해를 건너오는 그 합비루들의 기를 받아서, 그래서 도시민에게 억눌렸던 노예들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야, 여호와가 그렇구나. 억눌린 자, 약한 자를 돕는 하나님이구나. 저기에 붙자. 저기 붙어서 도시의 귀족들을 쳐부수고 이제는 왕도 필요 없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자" 라고 해서, 그래서 생겨난 것이 이스라엘의 '12지파' 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 신학교에 있는 모든 구약학 교수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라는 겁니다. 물론 과거에도 그렇게 가르쳤고 말입니다. 물론 그런 식으로 학문을 하지 않으면 박사학위는 어림도 없고 말입니다. 지금 분위기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 신명기 역사인식, 역대기 역사인식 ??

그들은 주장하기를, "이스라엘에게는 두 가지 역사 인식이 나오는데, 하나는 신명기 역사인식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역대기 역사인식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서로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르다" 라는 겁니다. 물론 같다고 여겼으면 그들이 굳이 나누지도 않겠지만 말입니다.

먼저 이 '신명기 역사' 라는 것은, 신명기를 시작으로 해서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등등, 그렇게 계속해서 나온다는 겁니다. 그것은 민중들을 위한 것이고, 그런데 여기에 반해서 '역대기 역사' 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다윗, 즉 유다가문의 정체성을 위해서 새롭게 편집한 것이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설명을 하니, 믿음이 없는 신학생들이 혹할 수밖에 없는데, "아하, 그렇구나. 이것은 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 못 듣던 것이고, 기도원에서 기도할 때 원장님에게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인데, 이런 것을 몰랐으면 큰일이 날 뻔했다"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 그러나 이스라엘은 특수한 집단 !!

하지만 그런 것은 다 엉터리인데,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완전히 특수한 단체이기 때문에, 그래서 민중들의 각 개인의 주체의식이 필요 없다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들은 기껏해야 구한 것이 인간적 왕이었고, 그 왕은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있을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와 사랑에 대해서 감사하게 될 때,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이스라엘이나 유다 나라가 자기들의 나라가 아닌 언약의 나라, 즉 다윗의 나라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곧 천국으로 이어지고 말입니다.

◈ 열왕들의 역사 만들기 !!

하지만 만약에 역대기를 인간의 역사책으로 봐버리면, 이 '이스라엘' 이란 나라는 민중의 나라가 되어버리고, 여기에는 하나님이 필요가 없는 자기들만의 나라가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역사' 라는 것은, 그 역사를 바라보는 주체가 곧 인간인데, 즉 인간이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까, 자유주의 신학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러한 흐름으로 르호보암 시대부터 계속해서 진행이 된다는 겁니다. 물론 이스라엘 역사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왕들이 언약의 정신에 입각해서 다스리지 않고, 곧 자기들의 죄인 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역사 만들기'를 시도한다는 말입니다.

◈ 인간은, 타인을 통해서 자아를 !!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점은, 사람이 자기 혼자 있을 때는, 상상으로라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모두 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데 막상 한 사람이 더 생겨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즉 두 명이 된다면, 여기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생겨나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즉 타인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타인이 없고 혼자만 있을 때는 자기가 상상한 이미지, 즉 자아 이미지를 가지고 "나는 아마 이런 인간일 것이다" 라고 했는데, 그런데 막상 타인이 하나 등장을 해버리면, "나는 저 인간과 같지 아니한 것을 감사합니다" 라고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방향이 하나 더 생기는데, "나는 저 사람처럼 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깁니다" 라고 하든지, 아니면 "왜 나는 저 사람처럼, 그런 멋있는 인생이 되지를 못합니까? 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조실부모하고, 왜 제 인생이 이 모양입니까?"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 부자와 가난한 자 !!

지난 중고등부 시간에 잠언을 설교를 할 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잠언 22장에 보면, 부자와 가난한 자를 양쪽 다 지으신 분이 누구인고 하니, 바로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부자는 뭐라고 기도하는고 하면, "하나님, 제가 이렇게 부자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지요? 그것이 잠언서에 나오는데, 그래서 제가 부자가 된 것이 그 말씀대로 된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지요? 그렇지요? 참 감사합니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잠 22: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잠 22:2)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런데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그런 기도를 결코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 제가 가난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지요? 그렇지요? 참 감사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이렇게 한 단계를 거쳐서 하나님께 따지는 식으로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가난한 자들 치고 "하나님, 제가 가난하게 된 것이 주님의 뜻이 맞지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빌어먹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는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면, 자기가 가난하게 된 것에 대해서, 이렇게 구원의 단계를 하나 더 거쳐서 하나님 앞에서 따지는 식인데, 물론 분통이 터져서 씩씩거리면서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성경대로 제가 가난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습니다. 제가 지금 인간성이 좋아서 성경말씀을 믿어주지, 다른 사람 같으면 안 믿어줍니다. 제가 너무나 믿음이 좋기에 하나님의 뜻인 줄로 믿습니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도 계속 씩씩거리는데, 그렇게 이미 한 단계를 더 거쳤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억지로 감사하는 척을 할 수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자가 기도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주여, 제가 저 가난한 자와 같이 되지를 않고, 부자가 된 것이 주님의 뜻 맞지요?" 라고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런 부자에게는 어떤 두려움이 있는고 하면, 만약에 이 부자가 졸지에 가난한 자가 된다면, "하나님, 저는 제가 가난하게 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난 지금 가난할 뿐이고!" 라고, 그렇게 나올 거라는 말입니다.

◈ 잠언서를 지킬 인간은 아무도 없어 !!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잠언서를 지킬 인간은 아무도 없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다기보다는, "나는 가난하게 되면 안 된다" 라고 하는, 그런 두려움이 수시로 올라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은 교인이 한 사람이 와도 걱정이고, 물론 전혀 오지 않아도 걱정인데, 왜냐하면 교인들이 하나도 없으면 자기가 가난하게 되니까, 그러면 감사가 되지 않으니 걱정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오게 되더라도, 그 교인이 교회에 한 두 번쯤만 나오고 그 뒤로는 더 이상 오지 않을까 싶어서, 또 걱정이란 말입니다.

◈ 열왕님들아, '반갑다. 친구야' !!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이제부터 역대하 10장부터 할텐데, 여기에 나오는 여로보암 왕을 비롯한 많은 왕들에 대해서 욕하지 마시고, 오히려 "반갑다. 친구야!" 라고 하면서 악수나 땡기라는 겁니다. 우리나 그들이나 도토리 키 재기이니 말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하는 일들이 어쩌면 우리들보다도 훨씬 더 솔직하고 순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교재의 제일 마지막에 보면, 사람의 몸통처럼 생긴 도표가 나오는데, 열왕과 선지자들에 관한 것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거기에 보면, 북쪽 여로보암과 남쪽 르호보암이 나오는데, 그런데 열왕기서는 무엇인고 하니, 자꾸만 이 두 나라 사이에, 즉 "르호보암 시대에 여로보암 이렇게 했다", 혹은 "여로보암 시대에 르호보암 이렇게 했다" 라는 식으로, 그렇게 자꾸만 유다와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왔다갔다하면서, 열왕기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나게 한다는 겁니다.

◈ 열왕기 - 선지자의 양발차기 !!

그런데 열왕기의 주제가 무엇인고 하니, "선지자가 양쪽의 왕들에게 어떻게 양발차기 하고 있는가?" 라는 것에 있기 때문에, 물론 이 왕들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자기들의 나라라고 하지만, 하지만 그런 자기들의 나라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일방적으로 자기들의 나라라고 우기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 르호보암 왕 !!

남쪽 유다의 르호보암 왕은, 알다시피 여호와의 존재감을 3년만에 상실했는데, 그래서 그때부터 자기 세력을 더 넓히기 위해서 누구와 싸우는고 하니, "하나님이여, 이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졌기 때문에, 제가 무력으로 저 북쪽을 치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것을 '스마야' 선지자가 말렸다는 겁니다.

그에 반해서 여로보암 왕은 북쪽의 왕인데, 여기 북쪽이라고 하니 감이 잘 잡히지 않지 싶은데, 교재 '그림4'의 지도와 열왕과 선지자들이 나오는 도표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림이 좀 엉망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여기 '그림4'에서 유다, 베냐민으로 표시된 지역만 남쪽으로 보고, 그 나머지는 모두 북쪽이라고 보면 된다는 겁니다. 시므이는 서쪽이지만 북쪽으로 보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북쪽 '10지파'와 남쪽 '2지파'로 나라가 갈라졌다는 겁니다. '10:2'니까, 사실 게임자체가 되지 않는데, 만약에 민주주의 제도 아래라고 하면 이 유다가 야당이 된다는 겁니다. 그것도 숫자적으로도 엄청 열세에 놓인 말입니다. 그런 판국에 유다가 자기 나라가 본토라고 주장하니, 북쪽에서 보기에는 참으로 웃기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때 북쪽의 여로보암 왕은, 이스라엘의 북쪽경계인 '단'과 남쪽경계인 '벧엘'에다 제단을 쌓아서 자기 백성들을 관리를 했는데, 남쪽으로 넘어가지를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그때 제사장 자격도 없는, 즉 레위인이 아닌 일반인들을 제사장으로 세워서, 그런 식으로 민중들의 종교적 욕망을 해소시키는 일들을 많이 했다는 말입니다.

◈ 여로보암 왕 !!

이 여로보암이 누구와 전쟁을 했는고 하니, 르호보암과 직접 전쟁은 하지 못하고, 그 아들인 아비야와 붙었는데, 그 아비야의 군대 40만과 여로보암의 80만 군대가 맞붙었다는 겁니다. 그게 역대하 13장에 나오는데, 누가 이겼겠습니까? 아비야의 40만이 여로보암의 80만 군대를 이겼는데, 그때 무려 전사자들만 50만이라는 말입니다.

요즘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하는데, 이스라엘의 병사가 한 명만 전사해고 뉴스거리가 되는데, 왜냐하면 이스라엘 병사는 최첨단 장비로 보호되어 있기 때문에 잘 죽지를 않고, 반면에 하마스의 병사는 맨몸으로 전쟁을 하니까 엄청 잘 죽고 말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죽는 것은 그다지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무튼 지금 그렇게 한 두 명이 죽어도 난리가 나는데, 그런데 여기서는 무려 50만 명이나 죽었다는 겁니다. 경남 창원시의 인구가 53만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그러니 창원에 사시는 이장우 목사님 내외분과 그 교회 교인들을 빼놓고는 모두 다 죽었다는 겁니다.

너무 속이 훤히 보입니까? 아무튼 그야말로 아비야가 싹쓸이 승리를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승리할 때 선지자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 그때는 선지자가 가만히 있었습니까? 아무튼 그렇게 엄청난 승리를 했다는 것입니다(ㅋㅋ).

◈ 아사 왕 !!

그리고 그 다음 왕이 '아사' 인데, 이 아사는 아주 개혁적인 왕으로서, 58만 명으로 구스의 100만 대군과 전쟁을 했다는 겁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이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군사를 모을 수 있었냐고, 그렇게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까라면 까는 것이지, 뭔 말이 그렇지 않은지 모르겠다는 말입니다(ㅋㅋ).

아무튼 아사 왕이 그 싸움에서 어떻게 이겼느냐 하면, 주의 이름만 의지하는 기도를 해서 58만으로 구스의 100만을 이겼다는 말입니다. 이 구스는 요즘말로 에디오피아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이 전쟁은 무슨 전쟁입니까? '주의 이름'이 개입하는 전쟁이었다는 겁니다. 주의 이름이 말입니다.

(대하 14:10) 아사가 마주 나아가서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에 진치고
(대하 14:11)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때 선지자 오뎃의 아들인 '아사랴'가 예언하기를,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 라고 했는데, 그래서 왕은 항상 전쟁시 무엇을 생각해야하는고 하면, "이 전쟁은 결코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 여호사밧 왕 !!

그 말씀이 아사 다음의 왕인 여호사밧에 나오는데, 즉 모압과 암몬 연합군이 쳐들어 왔을 때, 그때의 선지자가 '야하시엘' 인데, 그가 하는 말이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여호와께서 구원하시는 것을 보세요"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선지자가 하는 일이 뭡니까? "왕이여, 제발 나대지 마세요. 이 나라는 당신 나라가 아닙니다" 라고, 그렇게 선지자가 중심점을, 즉 중심추를 잡아준다는 말입니다.

(대하 20:15)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 왜 적들이 계속해서 쳐들어와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생각할 점은, 즉 현대인들의 사고방식대로라면, 처음부터 하나님의 나라이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면, 아예 적들이 쳐들어오지 않아야 된다는 겁니다. 즉 병 주고 약 주고 하느니, 아예 병이 안 생기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겐 어려움이 닥치지 아니하면 다윗의 자리에 갈 수 없는데, 즉 죄인의 자리를 모르고, "주여, 이만하면 되었습니다" 라고, 자꾸 자기 편한 쪽으로만 생각하기에, 그래서 "내 몸은 주의 몸입니다. 주께서 알아서 하세요" 라는 고백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항상 죄짓는 것과 자기 편한 것밖에 모르기 때문에, 뭔가 사건이 일어나야 거기서 자기 본색이 나와서 설치다가, 그 순간 말씀이 부닥쳐 오게 되니, "아, 나는 이 전쟁을 내 인생의 일부라고 여겼는데, 그런데 이번 전쟁은 내가 아닌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는, 그런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주어졌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중심잡기를 해나가는데, 즉 지금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 곧 다윗의 나라인데, 물론 우리는 다윗이 죽었다고 시시하게 여기지만, 그러나 다윗은 무덤 속에서 살아있다는 겁니다. 즉 무덤 속에서 죽은 채로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북쪽과 남쪽나라가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가를 똑똑히 보라는 것입니다.

◈ 나답, 시므리, 오므리, 디브니 왕 !!

여로보암 왕 다음에는 '나답' 이라는 자가 왕이 되었데, 이 나답은 2년만에 바아사에 의해서 쿠데타로 그만 살해를 당하고 만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뒤에 "바아사 - 엘라 - 시므리 - 오므리 - 디브니 등등", 그렇게 왕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여기 '시므리'는 엘라 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는데, 그러나 오므리가 쳐들어와서 왕궁을 포위하자 불을 질러서 자살한 인물로서, 불과 7일 동안 정권을 잡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오므리와 디브니는 그 당시야전사령관인데, 그 두 사람이 서로 왕이 되겠다고 다투었는데, 결국은 오므리가 승리했고 말입니다.

어쨌든 여기 북쪽 나라에서는 힘있는 자가 그야말로 최고인데, 당연히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도 전혀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 북쪽은 선지자도 제대로 나타나지도 않고, 그냥 힘만 있으면 무조건 왕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 비트켄슈타인 - 인생은 게임이다 !!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여기 '나' 라는 것은 타인이 있을 때, 즉 그 타인을 통해서 자기가 어느 정도가 되는 사람인지를 본다는 겁니다. 그런데 만일 자기보다 타인의 힘이 월등하면, 그러면 "앞으로 힘을 키워서 점령하면 저 사람보다 내가 더욱 위대해지겠지" 라고 하는데, 반면에 자기보다 더 힘이 모자라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종으로 부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 이근호 - 게임인가? 예정인가?

그렇게 인간은 항상 "내가 누구인가?" 라는 것을, 그것을 타인이 자기 앞에 얼쩡거리는 것을 통해서, 그렇게 해서 서로가 관계를 맺으면서 자아의 이미지를 형성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비트켄슈타인' 이라는 철학자는 '게임' 이라고 했는데, 즉 "인생은 게임이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이것이 '피' 라는 책에도 나오는데, "게임인가? 예정인가?" 라고 했고 말입니다.

아무튼 비트켄슈타인은 "인생은 게임이다. 게임이 아닌 것이 어디에 있는가?" 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적과 동지'의 동지의 관계인데, 즉 "잘해주면 동지이고, 못해주면 적이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제까지는 적이었다고 할지라도 지금 잘해주면 다시 동지가 되고, 또한 어제까지 동지였지만 지금 못해주게 되면 당장에 적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것이 바로 '나'를 절대화시키기 위해서, 그래서 타인을 측정하고 점검하는 것인데, 그것이 곧 인생이고 말입니다. 바로 그것을 북쪽 나라를 통해서 모두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말입니다. 물론 남쪽 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사실은 모두가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도 포함이 되어야 하고 말입니다.

◈ 북쪽 나라는, 남쪽 나라의 자화상 !!

그러니 북쪽 나라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육적인, 즉 비언약적인 나라가 이 남쪽 나라 앞에서 얼쩡거릴 때, 그러면 아비야와 같은 남쪽의 왕들도 역시 인간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러니 남쪽에서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우리가 정통인데, 저 이단들에게 정통의 맛을 한번 보여줄까?" 라고 그들을 치려고 하는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저들을 칠 생각하지 말고, 너거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보라" 라고 하신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눈에 보이는 적들이 적이 아니라, 진짜 적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항상 적은 자기 내부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자기가 죄인이면서도, "주여, 옳으니이까?" 라고 하면서, 즉 "내가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 내 인생이 이게 뭡니까? 꼴랑 한 달 수입이 80만원이 뭡니까?" 라는 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날 자기 분수도 모르고, 그 80만원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도 모르고, 뭔가 남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욕망에 미흡하다고 화를 내는 상태, 바로 그러한 상태를 왕들이 내보이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중심을 잡는다는 겁니다. 물론 처음에는 선지자가 충고를 하면 왕들이 말을 제법 잘 듣고 했는데, 하지만 나중에는 선지자가 제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라는 말입니다.

◈ '아사' 왕과 선지자 '하나니' !!

예를 들어서, '아사' 라는 왕이 58만 군대를 가지고 구스의 100만 대군을 이겼는데, 그러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 이후에 북쪽 바아사 왕이 남쪽의 아사 왕을 치려고 할 때, 그때도 아사 왕은 하나님을 의지하면 될 텐데, 그런데 하나님이 아니고 아람군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겁니다. 아람이 어디에 있는고 하면, 교재 4페이지에 이스라엘 지도가 나오는데, 거기 제일 위쪽에 '다메섹' 이라고 있는데, 그것이 곧 아람의 수도라는 말입니다.

아무튼 이 아람나라에 군대를 요청해서 북쪽을 대신 쳐달라고 부탁하는데, 그래서 이 아람의 군대가 개입해서 북쪽 성읍들을 몇 개를 건드리니 북쪽 나라가 군대를 철수시켰다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하나니' 라는 선지자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이 선지자도 여기 도표에 보면 다 나오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그 선지자가 하는 말이, "아사 왕이여, 하나님을 의지하면 될 텐데, 왜 아람나라에 도움을 요청합니까? 이제 당신 때문에 조졌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까, 다윗 때는 그 아람군대와 싸워서 점령을 했는데, 그러니 이 유다의 경우에 다윗이 모델이고, 그러니 다윗 때의 영토를 유지해야만 하나님이 복에 복을 더하는 야베스의 기도가 응답된다는 말입니다. 솔로몬 왕 때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 그만 이 아람군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니, 그때부터는 아람이 유다 밑에 있는 게 아니고, 서로 같이 맞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원래 모델, 즉 다윗언약에서 이탈한 게 되는데, 다윗언약은 서로 맞먹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하나니를 보내서 뭐라고 합니까? "왕이여, 당신 때문에 지금 이 나라가 다윗의 노선에서 그만 벗어났는데, 당신이 지금 사태를 책임질 수 있습니까?"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사 왕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하나니야,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잠시 생각을 잘못했구나" 라고 할 줄 알았지롱? "여봐라, 저 놈을 당장에 하옥하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이 아사 왕이 발에 병이 심하게 들었는데, 그런데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이름 난 피부과 전문의를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대하 16장에 나오는데 내용인데 말입니다.

(대하 16:7)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
(대하 16:10)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 …
(대하 16:12) 아사가 왕이 된지 삼십구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그러니 사람들이 이 역대기나 열왕기를 봐도 문제이지만, 물론 그렇다고 보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도 역시 문제이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역대기의 이러한 장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고 하니, 그게 바로 다음과 경우인데 말입니다.

◈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을 경우에 !!

예를 들어서, 자기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을 경우에, 그러면 작가 병원 문을 열기 전에, 간호사가 의료보험증을 달라고 하기도 전에, 거기에 앞서서 먼저 "하나님, 제가 먼저 찾은 것은 병원이 아니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라고, 그렇게 기도하는 절차를 밟아서 병원에 가야 할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곧바로 병원으로 가야하는지, 또 그렇게 하면 병이 더 악화가 되는지 말입니다. 사람들은 의외로(?) 이런 것 때문에 고심을 하면서 난리를 떤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을 몇 번씩 이야기해줘도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는데, 그래서 다시 말씀을 드리겠는데, 신약에서는 성도라고 해도, 즉 예수 안에서 의인이라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발에 병이 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러니 병에 걸려도 무조건 감사하면 될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지킨다고 하면서, 즉 "하나님, 제가 병원에 오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역대기에 나오는 선지자 하나니의 말처럼, 제가 기도하고 병원에는 아예 안 오려고 했는데, 그래서 병이 이렇게 도졌는데(악화?), 그래서 목사님도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이렇게 병원에 온 겁니다" 라고 하는 식으로, 그렇게 자꾸만 핑계를 대지 마시고, 그냥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여,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으니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 그러면 된다는 말입니다.

설령 병원이 20km나 되는 거리에 있든, 50km나 되는 거리에 있든, "주님, 이런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다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니, 신약에서는 우리가 그 무엇을 해도 죄인이니까, 그러한 죄인의 입장에서 추가적으로 주어지는 모든 것은, "감사, 감사, 감사"로 이어지면 된다는 말입니다.

이제 여호사밧 왕을 하고 마치겠는데, 하기 이전에 먼저 아사 왕은 자기 어머니가 우상을 섬긴다는 이유로 그만 태후자리에서 쫓아내어 버렸는데, 그러니 아사도 처음에는 신앙적으로 잘 했다는 겁니다. 물론 선지자 아사랴의 말도 고분고분 잘 들었고 말입니다. 또한 소 700마리와 양 7,000마리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리고 구스 군대에게도 승리하고, 또한 바아사 왕에게도 승리했지만,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만 자기 마음대로 막나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 여호사밧 왕 !!

그것은 아사의 다음 왕인 여호사밧도 마찬가지인데, 그도 아사 왕처럼 처음에는 개혁운동을 했는데, 거기에다가 순회를 하면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도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모압, 암몬, 에돔의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어떻게 했는고 하니, 이들 나라는 교재 '그림4'의 지파경계를 참고하면 되는데, 여기 이스라엘 동쪽에서 위로부터 암몬이 있고, 그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모압, 그리고 그 밑에 에돔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역대기를 공부하고 나면, 이런 그림이라도 몇 개 여러분의 머릿속에 남아야 있어야만 하는데, 그래서 자꾸만 보라고 하는 겁니다. 아무튼 이렇게 모압, 암몬, 에돔의 연합군이 힘을 모아서 유다를 쳐들어오는데, 그때 유명한 선지자 '야하시엘'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전쟁입니다. 그 여호와께서 구원하는 것을 지켜보세요"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대하 20:15)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
(대하 20: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 '찬양대'를 동원하는 여호사밧 !!

여기가 중요한데, 이때 여호사밧이 그 소리를 듣고는 찬양대를 동원해서 여호와를 찬송하니까, 그래서 그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찬양대를 동원하는 것이 왜 중요한고 하니, 우리가 지금 역대상에서 다윗과 솔로몬을 뺐는데, 그런데 그 다윗과 솔로몬을 보게 되면, 다윗이 자기 밑에 배치한 레위인들 가운데 전문적으로 찬양하는 사람들의 족보가 배열되어 있다는 겁니다. 물론 문지기도 나오지만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찬양대도 역시 다윗이 원형이고 모델이란 겁니다. 즉 레위인들의 찬양이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데 한 몫을 할 수 있다는, 바로 그런 정신을 이어받아서 여호사밧이 다윗이 했던 대로 찬양을 했더니만 대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브라가' 라고, 즉 축복의 골짜기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대하 20:21)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대하 20: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
(대하 20:26) 제사일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 그런데,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가 웬 말?

거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인데, 이 북쪽 이스라엘이 자꾸만 치근대니까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그만 그들이 추천하는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녀가 바로 그 유명한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 다음은 우리가 얼마든지 짐작이 가능한데 말입니다.

(대하 18:1)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고 아합으로 더불어 연혼하였더라

하지만 이렇게 여호사밧이 북쪽의 며느리로 말미암아서 전쟁이 없이도 이스라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정책에 대해서, 거기에 대해서 하나니의 아들인 선지자 예후가 나타나서 충고를 하는데, 즉 "왕은 악한 사람을 왜 도와줍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원수취급을 하는 사람을 왜 사랑합니까? 그것은 안됩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아람과 전쟁을 할 때도 나오는데 말입니다.

(대하 19: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가로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 아합 왕과 그의 마누라 이세벨 !!

지금 남쪽 유다의 여호사밧 왕의 시대가, 곧 북쪽에서는 아합 왕의 시대인데, 이 아합의 부인이 바로 이방여인 '이세벨' 이라는 겁니다. 이 이세벨은 '뵈니게' 출신인데, 요즘은 '페니키아' 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그런 여자를 왕비로 들였는데, 그런데 그 여자가 들어올 때 몸만 들어온 게 아니라, 뵈니게의 신이, 즉 바알 신이 함께 수입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이렇게 신(神)이 수입될 때는, 신만 달랑 수입되는 것이 아니고 캘린더(calendar)도 같이 들어오는데, 그것은 요즘과 같이 그냥 날짜와 요일을 알기 위한 용도가 아니고, 농사를 지을 때 필요한 캘린더인데, 즉 달과 해의 운행을 알 수 있는 말입니다. 적기에 밭을 갈고, 파종을 하고, 또한 추수할 수 있게 알려주는 달력이란 것입니다.

◈ 드디어 '바알' 신이 등장 !!

그러니까 이 바알 신은, 농사꾼들이 농사를 지을 때 적기에 필요한 일을 하도록 도움을 주는 하늘의 신인데, 그것을 '폭풍의 신' 이라고 하는데, 서열상 '엘' 바로 밑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 바알 신은 남자 신인데, 즉 남자 신이 들어올 때 여자 신도 같이 들어오는데, 그게 곧 '아세라' 라는 겁니다. 그러니 바알과 아세라는 부부사이고, 이 부부 신이 다같이 이스라엘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은 이미 유목생활이 아니고 전문적인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러니 농사를 지으려면 농사 전문가가 필요한데, 즉 절기에 따라서, 적기에 파종을 하고, 추수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자들을 '전문가'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전문가가 되려면, 선진 농업문화에 익숙해져야 되고, 그래야 농사를 짓는 전문 테크닉을 배울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농촌교회에서, 자기들도 모르게 옛날부터 할머니들이 믿는 풍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과 똑같은 것인데, 그것을 '혼합주의' 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면서도 "너희들이 사귀는 것은 좋지만, 궁합은 봐야 된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노동력 확보를 위해서 며느리를 볼 때, 그때 며느리와 함께 풍습이나 사주팔자 등등, 그런 습관들이 함께 들어와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유목민의 신은 이제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겁니다. 농사를 짓는 전문기술자들이 필요하지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오게 되면, 농사짓는 기술만 달랑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신도 함께 수입이 된다는 것입니다.

◈ 이제 대세는 목축이 아닌, 농사 !!

그 당시의 제사장들은 무엇인고 하니, 단지 신만 섬기는 역할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전문적인 기술까지도 전수하는 당대의 엘리트들이었는데, 그들이 뭐라고 합니까? "농사가 잘 되도록, 그래서 돈도 잘 벌고 배부르게 해주는, 그런 신이 최고의 신이다. 그런데 여호와가 우리에게 해준 게 무엇이 있는가?"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바알 쪽으로 마음이 끌린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시금치와 고구마는 함께 심으면 안 됩니다. 이 시기에는 이런 작물을 심어야 좋습니다. 이런 것은 농사를 주관하는 바알 신께서 모두 일러주신 것입니다" 라고, 그렇게 어떤 테크닉이든지 간에 전부가 바알 신이 가르쳐준 것이라고 관련을 짓는다는 말입니다.

◈ 바알 신에 밀려난 여호와 !!

또한 그렇게 시키는 대로 해보면 되는데, 노하우가 쌓여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론 겉으로 자기들의 이름을 짓는 것은 여호와 쪽인데, '80:20'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모두 바알 종교의 테크닉 쪽으로 모두 넘어간다는 말입니다. 즉 껍데기만 여호와이고, 그 알맹이는 모두 바알이라는 것입니다.

요즘도 보면, 교회에 다녀도 막상 영화를 만들 때는 고사를 지내면서 돼지 코에다 만원 짜리를 팍팍 꽂아놓고는 술을 붓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교회건물을 지으면서 서까래를 올릴 때 상장식을 한다고 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말입니다. 그게 고사를 지내는 것과 다를 바가 뭐가 있습니까? 단지 막걸리를 뿌리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러면 막걸리 대신에 예수님의 피라고 하면서 포도주라도 뿌릴까요?(ㅋㅋ)

아무튼 어느 사회이든지 간에, 그 사회에서 왕따가 되지 않고 적응해서 살아가려면, 그 사회의 문화를 존중해줄 때, 그 사회의 문화 속에서 소통이 성사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소통이 될 때, 인간의 욕망 중에서 소속의 욕망, 즉 어디에 소속이 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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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8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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