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역대기)(강의정리)04-재정리
2009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역대기)(강의정리)04-재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1)
09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역대기 제4강(둘째 날 오전1)
2009,01,14 강의 이근호, 정리 오용익
◈ 역대기 - 다윗가문에만 초점을 !!
지금 빨리 들어와야 되는데, 이제 시작을 하겠습니다. 이 역대기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 역대기를 하나의 산이라고 할 때 다윗가문, 즉 다윗과 솔로몬을 산봉우리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산봉우리까지 아담부터 시작해서 올라가고, 그 봉우리를 올라간 뒤에는 다시 내리막길로 하산하는, 그런 형태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야베스의 기도가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핵심에 위치해있고 말입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 역대상하 전체를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역대상의 중심점은 여기 산 정상에 있는 다윗, 그리고 그 다윗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 솔로몬인데, 그렇게 다윗과 솔로몬의 다윗가문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다윗가문을 겨냥해서 다루어지는 내용인데, 그러니 역대하는 거기서 빠져 나왔기에 내리막길로 치달으면서, 그래서 멸망을 당했다는 내용이란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출애굽을 해서 생겨난 그들의 거주지, 즉 땅의 경우에는, 개인의 땅이 없고 모두가 지파의 땅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12지파인데, 물론 엄밀히 말하면 전부 13지파인데, 그런데 그 중의 한 지파인 레위지파만 유독 땅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레위지파는 어떻게 사는고 하니, 각 지파들이 가지고 있는 총 48개의 성읍에, 그 가운데는 6개의 도피성도 포함이 되어있는데, 그러한 성읍들에 배당을 받아서 모두 흩어져서 임시적으로 거주했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성읍들에 말입니다.
◈ 아, 가련한 레위지파 !!
그러니 땅이 없는 이 레위지파의 경우에는, 각각의 지파들이 십일조를 제대로 내주지 않으면 살아갈 길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떠돌아다니면서 개인의 산당을 차리곤 했는데, 굳이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명당 자리에다 점 집을 차려놓고는 점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았다는 겁니다. 각 지파들에게서 십일조가 제대로 걷히지 않아서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당시의 성직자들은 종교시세가 좋지 않으면 그들의 인생도 따라서 그만 망가졌다는 겁니다. 그렇게 마구 떠돌아다니다가, 그래도 운이 좀 좋아서 돈이 많고 유력한 부잣집으로 들어가게 되면, 개인적으로 그 집안의 복을 빌어주는 사적인 점쟁이로 전락할 수밖에는 없었다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일들이 이스라엘과 유다 온 나라에 가득했다는 말입니다.
◈ 요시아 왕 - 레위지파의 구조조정을 !!
거기에 대해서 요시아 왕 때에 총괄적으로 행정적인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즉 지방에서 레위인들이 점을 쳐주고 재판까지도 했었는데, 그런데 이 요시아 왕 때부터는 그런 일들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한 곳으로 모두 집결을 시키고, 그 외에는 모두 다 철폐시켜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여기에 대해서 반발이 일어나게 되는데, 소위 서울의 중앙에서 노는 고위 제사장들과 지방에 거주하는 하급 제사장들 사이에는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게 되고, 그래서 지방에 있는 제사장들은 생활의 궁핍함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요시아 왕이 이 레위지파에 대해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는 겁니다. 물론 그 구조조정의 명분은 다음과 같은데, 즉 "오직 하나님께서 인정한 제사장소는 여기 예루살렘 한 곳 뿐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 나머지는 어떻게 됩니까? 모두가 다 가라이고 사기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모든 백성들은 일 년에 세 번씩 중앙본부에 다녀가야만 되는데, 즉 유월절, 수장절, 맥추절의 세 가지 절기의 경우에는, 모든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의 성소에 모여서 절기를 지켜야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곧 요시아 왕이 강제로 단행한 종교개혁인데 말입니다.
◈ 하지만 민중들은 짜증을 내었는데 !!
그런데 그렇게 했을 때, 일반 민중들이 좋아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들과 가까이 있는 지방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율법과 상관없이 민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즉 그들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즉 민중들에게 그런 희망을 팔아먹는 대가로서 커미션을 챙기는 일을 해왔다는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것이 대중들에게는 더 편하고 좋았다는 말입니다.
일반 민중들에게 '율법' 이라는 것은 피곤하고 골치가 아픈 것인데, 지금 자기들이 먹고살기도 힘든데, 즉 자기들 생존이 우선인 마당에, 거기에다가 법까지 지키려고 든다면, 즉 그런 시어머니의 잔소리와 같은 것이 무엇이 듣기에 좋겠느냐는 말입니다. 사람에게 법은 멀고 희망이 우선이란 겁니다. 그래서 "새해 복 받으세요" 라는 말은, "새해 희망을 받으세요." 라는 말과 똑같다는 말입니다.
◈ 산당에서, 제사장들이 민중들에게 희망을 !!
그래서 제사장들은 각 지방마다 산당(山堂)에서, 즉 각 지방마다 명당 자리들이 모두 있는데, 거기는 옛날에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던 장소로서, 베델, 세겜, 실로와 같은 장소들이 모두가 명당 자리라는 겁니다. 거기에는 계시가 임했고, 언약궤가 한 번씩은 다 거쳐갔던 곳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그런 명당 자리에서 제사장들이 대중들에게 희망을 팔았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당신에게 축복이 있을 겁니다. 올 한해동안 내내 평안할 것입니다. 작년에는 집안에 재앙이 있어서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았지만, 올해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당신의 하루하루가 모두 복될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많이 해본 솜씨? ㅋㅋ)
여러분은 오늘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보셨습니까? 오늘 해 뜬 시각이 7시 40분이었는데(ㅋㅋ), 그런 태양이 오르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희망도 함께 뜨는 것을 느낀다는 겁니다. 바로 그런 것에 마음에 다가오고 더 편안한 것이지, 무슨 율법이 어쩌고, 단면족보가 어쩌고, 선형족보가 어쩌고 하는, 그런 것은 피곤하고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이 나오면, 물론 제가 미안해 할 일은 아닌데 그래도 좀 미안스러워지는데 말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딱딱한 족보가 나오면, 그 어려운 내용을 쉽게 못해주는 약간의 죄스러움(?)이나 미안스러움이 있다는 겁니다. (녹취자 - 그러면 게시판의 질문은 왜 그렇게 어렵게 답변을 하시는지요?)
◈ 다시, 역대기는 다윗을 중심으로 !!
아무튼 역대기에는 다윗을 중심으로 해서 내리막길로 치닫는 왕들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것은 주된 내용이 아니라는 겁니다. 역대기의 중심은 무엇인고 하니, 다윗가문을 구축하기 위해서 군대가 얼마나 동원이 되었으며, 찬양대는 어떠하며, 또한 제사장들은 어떻게 했는지, 그런 이야기들이라는 말입니다. 중앙의 제사장들만으로는 숫자가 모자라서, 지방 제사장들이 순번제로 파견근무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출애굽을 할 때 12지파가, 땅이 없는 레위지파 제외한 말입니다. 그 12지파가 레위지파를 중심으로 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지킨다는 조건하에 하나님의 주시는 약속의 땅을 받아서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어느 누구라도 개인 소유의 땅은 없었다는 말입니다.
사실은 이런 것이 어려운데, 만일 백성들이 왕을 구해서 왕이 있게 된다면, 그 왕은 개인 소유의 땅을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바로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에 그것이 나오는데 말입니다. 즉 아합 왕이 보니까, 나봇의 포도원이 농사도 잘되고 해서 그만 탐났는데, 그래서 "어이, 그 땅을 나에게 팔아라. 그 땅보다 더 넓은 땅을 가지게 해 줄게"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자 나봇의 하는 말이 무엇인고 하니, "제가 그 땅을 사고 팔고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합니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왕이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하니까, 나봇이 대답하기를 "모세율법에 보면, 하나님이 주신 땅은 개인적인 용도로 팔지 못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 기업 - 누구누구가 주시더라 !!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것을 신약과 구약에서 그것을 '기업', 혹은 '유업' 이라고 하는데, 성경을 처음 보는 사람은 '기업' 이라고 하니까 '사업체' 라고 여기기도 하는데(ㅋㅋ), 그러나 성경에서 기업은 상속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참고, 한자로 성경의 '기업(基業)'이고, 사업체는 '기업(企業)'임)
그런데 여기 기업의 특징인 '상속'에서, 중요한 것은 상속 그 자체가 아니고, "누구누구가 주시더라" 라는, 바로 그 '누구'에 해당되는 분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즉 누구누구로부터 분배를, 즉 분양을 받은 상속분이기 때문에, 그 상속분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 누구와의 관계가 끊어지지가 않는다는, 바로 그 '관계성'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 갈라디아서 4장 - 종의 기업이 아닌, 아들의 기업 !!
그것을 갈라디아서 4장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아들의 기업을 받았다" 라고 하는 겁니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옷으로 덧입혀진 사람은,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가 관계없이 예수로 옷 입은 사람은 주님의 아들이 되고,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종의 기업이 아니고, 아들의 기업, 즉 아들의 상속분을 받는다" 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
(갈 4: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 땅 - '나는 하나님과 이렇게 사이가 좋아' !!
다시 말해서, 땅이, 즉 기업이 좋아서 쥐고 있는 게 아니라, "그 땅을 어떤 분이 주셨다" 라고 하는데, 물론 그 어떤 분이 하나님인데, 즉 그만큼 하나님과 자기의 사이가 돈독하다는 것을 그 땅을 보고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 땅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 기업 - 약속의 땅이 성령으로 !!
사실 이런 상속권 신학이 어려운데, 그 상속권을 구약에서는 야베스의 기도에 나오듯이 땅으로 보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땅을 줄 때는 그냥 주는 것이 아니고 전쟁을 통해서 주시기 때문에, 야베스의 기도 이후에는 "군대가 몇 명이고, 몇 명이고" 라는 것이 족보에 따라붙는다는 말입니다.
아무튼 구약에서는 기업이 약속의 땅인데, 신약의 갈라디아서에서는 그것을 '성령' 이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신약성경의 시대에 살면서, 기도해서 부동산을 가지고 장사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신약성경의 의미를 모독하는 사람인데, 즉 "예수가 왔냐?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라는 식이 된다는 겁니다. (오히려 구약에서 더욱 모독이지 않습니까?)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예를 들어서, 안상홍 집단이 그와 같은 경우인데, 즉 그들은 "당신이 저주받는 것은 유월절을 지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면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유월절을 지키려면 돈을 내야 합니다" 라고 주장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유월절을 지키면 복 받으니까, 돈을 내놔라"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나는 인정할 수 없다" 라는 것에 다름이 아니란 말입니다.
◈ 이단들은 공통적으로 돈을 !!
안상홍 집단이나 대순진리회를 비롯해서, 그 어느 이단들 치고, 돈과 결부가 되지 않는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대학생들이 그런 구라에 그냥 넘어가서 공납금을 몽땅 다 바치고 하는데, 그것은 티벳의 달라이라마도 마찬가지이고, 심지어 수녀원까지도 그렇다는 겁니다.
천주교의 수녀원에 들어갈 때 시험만 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들어갈 때는 여자가 시집갈 때 혼수를 챙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가야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일종의 공동체인데, 그러니 빈 손들고 와도 받아주는, 그런 공동체는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튼 뭔가를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밑천이 되어서, 그것을 가지고 장사를 한다는 겁니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저임금의 노동으로 만든 단가를 낮춘 상품들을, 즉 아주 저렴한 참기름이나 된장과 같은 것을 시장에 팔아서, 그것으로 공동체 운동을 벌이면서 그 공동체를 유지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된장이나 참기름을 만들어서 파는 일은 '신앙촌' 이라는 박태선 집단에서만 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수녀원에서도 다 하고 있던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최초의 자본주의가 이미 서양에서 5세기나 6세기 즈음에 수도원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는 말입니다.
◈ 잠시 '자본주의'에 대해서!!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이 자본주의가 무엇인고 하니,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조금 하겠는데 말입니다. 자꾸만 곁가지로 나가는 기분인데, 깊이족보가 아닌 넓이족보로 말입니다(ㅋㅋ). 어떤 분이 "목사님, 자본주의가 멸망합니까?" 라고 질문을 하는데, 자본주의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보통 말하는 경제는 사물과 생산품이 있어서, 그것을 서로 주고받고 하는 것인데, 그런데 자본주의는 그런 경제개념을 뛰어넘는, 즉 '초사물적' 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잉여'로 설명할 수가 있는데, 즉 남아도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물론 이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자꾸만 들어야 이해가 되니 말입니다.
◈ 하루에, 물고기 두 마리면 끝 !!
예를 들어서, 폴리네시아의 파푸아뉴기니에서 사는 원주민들이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는, 그들은 하루에 한 사람이 물고기 두 마리 분량의 양식만 있으면 되는데, 즉 그냥 하루에 두 마리만 잡으면 그것으로 하루 일과는 끝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호주에서 커다란 원양어선이 와서, 그만 그 주변의 고등어를 모두 싹쓸이를 해서 잡아가 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 원주민들이 보기에 그 호주의 선원들은 참으로 불쌍한데, 왜냐하면 그 원양어선의 선원들이 하루에 고기를 몇 마리나 먹겠습니까? 한 사람이 서너 마리면 그것으로 그냥 끝인데, 그런데 왜 수십만 마리를 잡느냐는 겁니다. 도대체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정상입니까? 하루 두 마리만 필요하면 두 마리만 잡으면 되고, 또 내일이 되면 두 마리를 또 잡으면 되고, 그렇게 살다가 늙어 죽으면 되는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냐는 겁니까? 내추럴한 말입니다. 즉 두 마리만 잡으면 될 것을 가지고 왜 수십만 마리를 잡느냐는 것인데, 원주민들이 보기에 그게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왜 전쟁을 일어나는가?
사람들이 왜 전쟁을 일으킵니까? 그것이 곧 '잉여' 인데, 이것이 '피' 라는 책에도 나오지만 말입니다. 이 잉여가 어디서 생겼는가를 조사해 보니까, 즉 사람의 '웃음' 이라는 것은 예상 밖의 어떤 돌발적인 사태가 벌어질 때, 사람은 거기에서 자기 존재가치를, 즉 신선함을 느낀다는 겁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어떤 파격적 일이 돌출될 때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정장을 입은 신사가 바나나 껍질을 밟아서 '철퍼덕' 하고 넘어질 때 사람들이 마구 웃는데, 왜 그렇습니까? 술에 마구 쩔어서 사는 노숙자가 넘어지는 것은 늘 일어나는 일이니,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웃지 않는데, 그러나 저와 같은 말끔한 신사가 넘어질 때는 웃는다는 겁니다. 지금처럼 말입니다(ㅋㅋ).
------------------------
** "… 자본주의에서 가치의 증식은 표상의 트릭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교환가치는 그때그때의 물가나 경기에 맞추어 정할 수가 있다. 그에 비해서 노동력의 사용가치는 정체파악이 어려운 변화를 지니고 있다. 교환의 가치를 전혀 어기지 않고서도 노동의 과정으로부터 가치의 증식이 그야말로 합법적으로 발생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이루어지는 가치증식은 '웃음'의 생리작용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신사가 혼자서 흠잡을 데 없는 말쑥한 차림으로 거리를 걷고 있는데, 땅바닥에 버려져 있는 바나나 껍질을 보지 못해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고,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한다. 이러한 한가로운 장면을 생각해 보자. 즉 웃음이란 처음 상태와 마지막 상태에서 일어나는 잉여 에너지로 인해 발생되는 것이다. 이 잉여 에너지가 떠다니는 상태인 것이다. 자본 증식의 과정에서도 이와 매우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다. 잉여가치는 사용가치가 교환가치에 의해 대신 발생하는 것이다. 교환의 사이클로부터 넘쳐흐르는 여분의 가치가 창출된다. …”(이근호, 피, 대장간, 2008, 61쪽)
------------------------
◈ 자본주의는, '여분의 돈' 때문에 돌아가 !!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 거기에서 파격적인 잉여를 생산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잉여는 욕망에서 나오는데, 즉 욕망은 창조성을 가지고 있어서, 계속해서 욕망을 불질러서 잉여를 나타낼 때, 그럴 때 자본주의는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자본주의는 단순히 돈 때문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여분의 돈' 때문에 돌아간다는 겁니다. 왜 그런지 몰라도, 아무튼 여분의 돈을 그냥 갖고 싶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 욕망이 그것을 원하니 말입니다. 그런 인간이 있는 한 자본주의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적으로 살다가 자연적으로 가는 것이 권태로운 것인데, 그런 권태를 벗으려면 자기 내부에 들어가 봐야 되는데, 그런데 그 내부에 들어가 보니까 끝없는 마그마와 같이 분출하는 욕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욕망을 경제구조의 그 바깥에 끄집어내니, 아무 이유도 없이 무조건 많아야 된다는 식으로,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 사람은 죽으면 과연 없어지는가?
그런데 자본주의가 아닌 시대의 동양사상의 경우에는 어떠한고 하니까, 즉 불교나 유교의 경우에는 사람이 자기 욕망을 스스로 잠재울 수 있다고 보았다는 말입니다. 특히 제가 불교의 중들을 만나면 토론을 벌이고 싶은 주제가 하나 있는데, 즉 "사람은 죽으면 과연 없어지는가?" 라는 것입니다. 물론 머리만 깍은 사이비 중들은 빼고 말입니다.
조금 잔인한 표현이지만, 사람이 죽어서 그 죽은 사람의 몸을 고깃집에서 고기를 칼로 다지고, 또한 뼈는 일일이 다 쪼개고 해서 다 산산조각 내면, 그렇게 하면 결국은 산산이 흩어져서 없어지느냐는 것인데, 바로 그렇게 없어진다고 보는 것이 불교라는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오온(五蘊)'으로, 즉 기(氣)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흩어지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바로 그것을 반박하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인데, 즉 예수님은 죽고 난 다음에 그렇게 산산이 흩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자기 몸, 즉 '자아' 때문에 힘드니까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이 자아만 날라 가버리면, 이 모든 것도 함께 날라 가버린다" 라는 것인데, 그것이 불교사상이고, 동양철학이고, 또 노자사상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즉 사람을 현상학적으로 살펴보면, 죽으면 사라진 것으로 본다는 말입니다.
◈ '사라짐'에서 '잊혀짐'으로 !!
그러니 사람이 죽게 되면 안타까운 것은 무엇인고 하니, 그동안 함께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괴롭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라짐은 시간이 지나면 그만 잊혀져 버리는데, 즉 '사라짐'에서 '잊혀짐'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는 그렇게 "사라졌구나. 참 안타깝다. 이제 그만 잊자" 라고, 그렇게 되는데, 그런데 정작 죽는 본인은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죽는 것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여기고, 자기도 사라지고 싶은데, 그런데 정작 문제는 사라지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죽을 때,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 없는 자기만의 순수한 현실로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친한 친구가 죽어서 그만 땅에 묻었는데, 그래서 "나중에 무덤을 파보면 흙이 되었겠지. 아까운 친구가 죽었구나" 라고, 그렇게 본인도 사라지고 흩어지기를 원했는데, 즉 불교식으로 말하면 흩어지고 사라지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물론 다시 모아지면 환생하겠지만, 어쨌든 흩어지면 끝이라는 말입니다.
◈ 난, 목말라 죽을 지경일 뿐이고 !!
그런데 성경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죽은 부자 나사로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막상 죽어 보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기서 지옥으로 취재를 간 안상태 기자를 잠깐 불러 보겠습니다(ㅋㅋ).
* A : 안상태 기자 나오세요.
* B : 예, 여기는 안상태 기자입니다.
* A : 지금 지옥의 상태가 어떤가요?
* B : 난 지옥에 왔을 뿐이고, 난 불덩이 속에 있을 뿐이고, 난 목말라 죽을 지경일 뿐이고….
그러니 죽음이 제일로 괴로운 것은, 죽으면 죽을 지경이라는 것, 바로 그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잊기 위해서 죽는데, 그건 자기 생각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면, 사람이 한 번 죽고 난 뒤에는 그 몸이 선한 부활이든, 악한 부활이든, 다시금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 인간의 실수가 무엇인고 하면,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실수라는 겁니다(ㅋㅋ). 그렇게 한 번 사람의 몸이 되어버리면, 그것이 지옥으로 갈 몸이든지, 아니면 천당으로 갈 몸이든지, 아무리 그 몸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전혀 빼도 박도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인데, 그러니 새로운 몸인 영원한 장막을 입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옷은 문화인데, 문화는 이 지상에서 만들어낸 껍데기인데, 결국 그 껍데기는 벗겨지고 알몸으로 가는데, 그러니 그 알몸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알몸이 바로 안상태 기자가 "나는 …!" 라고 하는, 바로 그것이라는 말입니다.
◈ 하나님과 함께 사는 땅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잉여를,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가 '개콘'까지 갔는지 모르겠는데(ㅋㅋ), 그렇지요. 지금 우리가 구약의 기업, 즉 '땅'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땅이 없는 레위지파에 있어서, 그런 레위지파를 중심으로 12지파가 있는데, 그런 땅이 없는 이 레위지파가 하는 일이 바로 '제사' 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12지파가 전부 하나가 되어서 제사업무를 보호하고 지켜냄으로 말미암아서, 이 지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땅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명기 12장에 보면 나오는데, 즉 "내가 지시하는 그 땅에 내 이름을 두겠다" 라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말입니다.
(신 12:5)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
(신 12:11)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 곳으로 나의 명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그런데 이것이 신약에 오면 어떻게 됩니까?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는데, 즉 "성령 안에서 너희가 나와 하나가 된다" 라고 하는 겁니다. 즉 그러니 이제는 새로운 기업을 유산으로 상속받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기업을 말입니다.
(요 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다시,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를 !!
이제 생각이 나는데, 아까 하다가 말았는데, 왕이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나서 집적거리는 대목을 말입니다. 왕은 개인소유로 땅을 가질 수가 있는데, 그래서 아합 왕이 나봇에게 그 포도원을 자기에게 팔라고 하니까, 나봇이 뭐라고 합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기 때문에 절대 팔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아합의 왕비가 나서는데, 그 왕비의 이름이 '이세벨' 인데, 그 이름이 얼마나 예쁩니까? 뒷모습만 봐도 '이세벨' 이라고 하면 남자들은 다 끌린다는 겁니다. 물론 앞모습이 중요하지만, 그건 배제하고도 말입니다. 그래서 뒤에서 "저 앞에 계신 분이 누구십니까?" 라고 하면, "김 이세벨입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어머나!"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ㅋㅋ).
◈ 이세벨 - 여보, 당신은 왕이잖아요 !!
그러니 누가 함부로 이름을 짓겠느냐는 것인데, 그것을 음파로 조정해서 장사를 해먹는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또 이렇게 되었지요? 영 분위기가 좀 그러한데(ㅋㅋ), 그렇지요.나봇의 포도원을 이야기하는 중인데 말입니다.
아무튼 이 이세벨이 하는 소리가 "여보, 우리나라에서는 왕이 가지겠다면 그냥 갖는 것이고, 그것이 곧 법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바로 그 왕이잖아요. 왕이 되어서, 어떻게 그런 것을 가지고 고민을 하고 주저를 합니까? 어디 제 말이 틀렸습니까?"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자 아합 왕이 "아하, 그렇구나. 내가 왕이었지"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 그런데 사람이 왕이 되어버리면 !!
하지만 하나님의 '왕 되심' 이라는 것은, 그냥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레위지파가, 즉 모세율법에 의해서 기업이 이미 확정된 상태에 놓여있는데,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사람이 그만 왕이 되어버리면, 그 사람은 당연히 자기 개인적인 소유를 갖기 위해서 나서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충돌이 일어나게 되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의 법은 무엇인고 하니,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아무도 손을 못 댄다. 그러니 각자의 농사는 각자 지파에서 알아서 지어먹어라. 결코 다른 지파의 것을 탐을 내어서 빼앗으면 안 된다" 라는 것이란 말입니다.
◈ 예루살렘 - '다윗의 성' !!
그것이 곧 출애굽 당시의 법인데, 그런데 그것이 다윗왕 대에 와서는 그만 깨어져 버린다는 말입니다. 즉 다윗 왕에게 와서는 그만, 이 다윗만은 예외가 되어서 예루살렘성이 다윗의 개인소유의 부동산이 되어버리는데, 그래서 예루살렘을 두고서 '다윗의 성' 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윗 위에는 누가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왕이 되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다윗이라는 왕을 세워놓고는, 거기에 마구 구멍을 뚫어버린다 겁니다. 드릴을 가지고서 말입니다. 그렇게 되니, 다윗은 왕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해야되는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될 왕으로서 등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뭐냐 하면, 그냥 들러리라는 겁니다. 그것을 누가 압니까? 다윗이 아는데, 물론 다윗도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 저도 명색이 왕입니다. 왕이기에 왕답게 절대적 권력을 행사해 보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물론 그렇게 하다가 갓이나 나단 선지자에게 호되게 당한다는 말입니다.
◈ 다윗 - 하나님의 왕 되심이 나의 왕 됨을 후벼파는 !!
다윗이 혼자 다윗 성에 있을 때 우리야의 아내를 탐해서 범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윗이 자기가 왕으로서 할 수 있다고 여겼다는 겁니다. 하지만 나중 시편 51편에서 다윗이 뭐라고 합니까?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왕의 자리가 맞기는 맞는데, 그 자리는 하나님의 왕 되심이 나의 왕 됨을 마구 후비고 파는, 나는 그런 입장에 놓인 왕이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시 51: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 야, 내 백성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보자 !!
그리고 열왕기나 역대기에 나오듯이, 다윗이 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를 세는데, 즉 "야, 내가 목회를 잘해서 우리 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보자"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역대기 21장에 보면, 그것은 악마의 역사로 인해서 숫자를 세었다고 한다는 겁니다.
(대상 21:1)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대상 21:2)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두목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서 내게 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그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갓'을 보내서 큰 재앙을 내려서,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무려 칠만 명이 사흘만 죽고 말았는데, 그때 다윗이 자기 큰 죄를 범했다고 하면서,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리게 되는데, 그 장소가 곧 나중에 성전이 세워지는 장소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결론이 무엇인고 하니, 다윗은 자기의 죄를 알고, 그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구심점으로서의 왕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용서를 하든 하지 않든, 다윗을 사랑하는 진짜 왕인 하나님께서, 즉 하나님께서 다윗을 용서하면 그 다음에 일어나는 현상은 무엇인고 하니, 이것이 지금까지 강의한 것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인데 말입니다.
◈◈ 왕과 함께, 더불어 용서를 받는 혜택이 !!
그것은 바로, 왕의 수하에 있는, 왕의 사랑을 받는 모든 백성에게 더불어서 함께 용서를 받는 혜택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시간에도 이야기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개개인으로 보지 않고, 이스라엘 집합체를 하나의 인간으로 봐서, 그 인간의 대표자로서 왕을 세워서, 그 왕이 하나님과 일대일 대면을 하고, 그 나머지는 그 왕의 운명대로, 즉 그 결과에 그대로 결정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언약'의 핵심 포인트?)
여러분, 이것이 편리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러한데, 그래서 만약 왕이 정치를 잘못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어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스라엘의 아하스 왕이 악을 행하니, 하나님께서 12만 명이나 죽고, 20만 명씩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고, 그 포로로 잡혀갔던 곳이 사마리아인데, 거기서 '오뎃' 이란 선지자가 나타나서 "다시 돌려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은 죽는다" 라는 일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대하 28:9) 그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저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를 진노하신고로 너희 손에 붙이셨거늘 너희 노기가 충천하여 살륙하고
◈ 주(主) - 내 인생을 쥐고 있는 분 !!
다시 말해서, 백성들은 자기 운명을 자기가 결정할 입장이 못 된다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특징이란 겁니다. 바로 그것을 즐거워하고 고마워하는 자들이 곧 오늘날의 성도이고 말입니다. 즉 자기 인생의 운명을 자기가 쥐고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분이 쥐고 있다는 것을 감지덕지 고마워하는 것이 바로 성도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의 인생을 쥐고 있는 분을 '주(主)' 라고 하는데, 더 구체화를 한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주여!" 라고 한다는 말은, "내 운명은 내 행함과 관계가 없습니다" 라는 뜻인데, 그런데 말로만 "주여!" 라고 해놓고, "아이쿠, 오늘도 성경을 못 읽었네. 오늘도 교회를 못 나갔네" 라고, 그런 것 때문에 초초 불안해한다면, 그런 사람은 자기가 자기에게 "주여!" 라고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 꼴아 박는 왕들의 특징 - 여기는 내 나라야 !!
다윗 이후에 내리막길로 그냥 꼴아 박는 왕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면, 분명하게 이스라엘과 유다는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래서 왕들은 백성들을 위하여 자기 죄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는 일만을 하면 되는데, 그것이 곧 다윗언약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남쪽과 북쪽의 왕들은 무엇이 잘못인고 하니, 그 나라가 자기의 나라인양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 르호보암 왕의 경우에 !!
특히 남쪽의 르호보암 왕의 경우에는, 발음도 어려운데 말입니다. 솔로몬 이후에 북쪽에는 여로보암이, 그리고 남쪽에는 르호보암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두 명의 왕이 말입니다(ㅋㅋ). 아마 조금은 헛갈리지 싶은데 말입니다.
(대하 9:30)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사십 년이라
(대하 9:31) 솔로몬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부친 다윗의 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그래도 이 르호보함 왕의 경우에는, 그래도 바짝 처음 3년 동안은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야베스의 기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하니,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땅도 넓혀지고 나라도 부강해졌다는 말입니다. 물론 적들도 굴복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되니, 그 다음부터는 그만 마음이 교만해져서 나라를 자기에게로 돌리려는 심산으로 자기의 선대왕인 솔로몬의 늙은 신하들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즉 "여러분, 정치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신하들이 현명한 대답을 해주었는데, 즉 "당신이 왕이라고 해서, 백성들 위에 군림하려고 들지 마시고, 설치지도 마시고, 그냥 백성들의 쫄따구가 되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입니다.
◈ 백성들 - 다윗처럼, 솔로몬처럼 !!
무슨 말인고 하니, 정치를 잘한다는 것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다는 의미인데, 그러한 존경은 억지로 한다고 되지를 않고, 자발적으로 우러난다는 겁니다. 그러니 왕은 우선 백성들의 마음을 잘 알아야만 하는데, 그 백성들은 자기들의 왕을 다윗과 솔로몬을 모델로 해서 비교를 하는데, 즉 "과연 다윗처럼 하는지, 솔로몬처럼 하는지 어디 한번 보자"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을 늙은 신하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미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이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지금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다윗과 솔로몬처럼 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당신을 왕으로서 취급하지 않으니, 당신은 그냥 백성들의 쫄따구 노릇만 잘하면 됩니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 친구들 - 모두 잊어라 !!
그런데 그 다음에 르호보암 왕이 자기와 함께 자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그 친구들이 한다는 말이 "솔로몬 왕은 회초리로 때렸지만, 당신은 아예 전갈로 내리쳐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말입니까? 아주 무자비하게 백성들을 다루라는 소리인데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집집마다 국가에서 택배로 전갈을 하나씩 보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이들이 무서워서 벌벌 떤다는 겁니다. 물론 어른들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러니 그 정도로 공포정치를 감행하라는 것인데, 그 말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까, 한 마디로 '잊어라!' 라는 겁니다. 즉 "다윗도 잊고, 솔로몬도 잊고, 모두 다 잊어라. 지금은 왕의 시대이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백성들은 입장은 무엇입니까? 만약에 왕이 그렇게 나온다면, "너의 시대는 없어. 이 나라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왕이니, 이제 너의 시대는 지나갔어. 너의 것은 전혀 없으니, 그만 왕 자리에서 내려와" 라는 겁니다. 바로 그러한 것이 '과거완료' 라는 말입니다.
◈ '과거완료'에 대해서 !!
여기에서 우리가 어려워도 하나만 더 배우고 지나가야 하는데,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ㅋㅋ). 이렇게 "과거-현재-미래"로 나아갈 때, 그 주인공이 누구인고 하니까, 즉 이것이 어떻게 움직이는고 하니까, 그것은 시간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현재에 와 있으면 과거는 과거가 되고, '내'가 다시 미래에 와 있으면 현재도 다시 과거가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주인공이 누구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내'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판단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말입니다.
칸트는 이것을 바로 두고 '폭력' 이라고 했는데, 즉 인간은 자기가 하는 행동을 가지고 강제로 시간을 자른다는 겁니다. 바로 그런 행위가 곧 폭력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인간은 시간을 자르는 폭력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마음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이제 내일이 되면 또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라고 하면서, 그렇게 자기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미 다 잘라서 정해놓고는, 즉 그렇게 폭력을 행사하고서, 또한 걱정은 혼자서 다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 평생 '바이브레이션' 인생을 !!
지난 시간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늦게 오신 분들을 위해서 다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기 속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생긴다고 했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뭐라고 했습니까? '진동' 이라고, 즉 '바이브레이션(vibration)' 이라는 말입니다.
성도의 경우에도, 십자가에 못 박힌 채로 진동, 즉 벌벌 떨면서 70, 80평생을 사는데, 그러면 구원은 어떻게 받습니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못자국 때문에 받는 것이지, 진동으로, 즉 자기가 하는 일로 구원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는 두려움을 없애겠다" 라는 짓도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 두려움으로 인해서 진동이 되면, 운동도 되고 살도 빠지고 좋지 않습니까?(ㅋㅋ)
◈ 근심도, 기분 좋게 '차차차' !!
그러니 그냥 벌벌 떨라는 것인데, 걱정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우리 사람이 걱정거리가 없으면 무엇이 걱정되는 줄 아십니까? 걱정 없는 그것이 곧 걱정거리가 된다는 겁니다. "어? 분명히 이 시간에 걱정이 있어야 되는데"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니 걱정을 맘껏 하는 것이 곧 행복이란 겁니다. 여유 만만하게 걱정하시고, 물론 하고 보니 말이 조금 이상합니다만, 아무튼 기분 좋게 근심하라는 말입니다.
◈ 우리 몸이 아닌, 멜기세덱의 반차 !!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몸이 움직여서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몸 말고 '멜기세덱의 반차' 라는, 하늘에 속한 특수한 몸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를 과거완료에다 그만 집어넣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과거완료에 집어넣으면, 그 모든 결정은 이제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예수님에게만 있기 때문에, 우리가 30살을 살든, 40살을 살든, 80살을 살든 간에, 이미 모든 것이 이루어진 상황 속에서, 즉 이미 결정된 상황 속에서 우리가 그 입장의 은혜와 혜택을 입고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에도 보면 "하늘에 앉히시니" 라고 과거완료로서 되어있고, 또한 로마서 8장에도 보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이미 과거완료라는 체육관 안에 놓여져 있으면서, 우리는 몸이 따라가면서 이미 주님이 이룬 것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살아갈 뿐이란 겁니다. 즉 "아하, 이래서 내가 천국에 가는구나" 라는 것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과거완료(부정사)- 이미 그렇게 되었음 !!
바로 그 과거완료를 성경에서 표현하는 방법이 곧 '부정사' 인데, 영어로 하면 'to부정사' 라는 것인데, 이 'to부정사'는 동사를 명사나 형용사로 바꾼다는 겁니다. 즉 시간과 공간을, 묵시적으로 이미 그렇게 되었음을 표현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do 한다" 라는 것이 "to do 했음" 이라고 된다는 겁니다. 즉 이미 확정된 상황 속에서, 그 상황은 변하지 않는데, 물론 우리는 매일 매일 변하고 말입니다. "어제는 이러한데, 오늘은 어떻고" 라고 하는데, 하지만 걱정을 늘어지게 하면서 우리는 허구헌날 변해도, 그것은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 칸트 - 인간이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 !!
칸트가 바로 그것을 발견했는데, 물론 과거완료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즉 "인간은 왜 고민하는가?" 라는 것을 철학적으로 따져보니까, 인간이 자기 맘대로 시간을 조정하기 때문임을 발견했다는 겁니다. 즉 시간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어제 강의시간이 어떠했어요?" 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난 짧더라" 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니야. 나는 길던데" 라고 하는데, 왜 그런고 하면, 전부가 각자 각자 폭력적으로 행사하는 시간관 때문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즉 몸이 아플 때는 길게 느껴지고, 몸의 컨디션이 좋을 때는 짧게 느껴지는 식으로, 그렇게 다들 다르다는 겁니다.
◈ 오직 확정된 '다윗언약'에 의해서 !!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거완료 속에서 그분의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르호보함 시대부터 왕들은 "내가 왕이다. 그러니 너희들의 과거를 잊어버려라" 라고 하고, 여기기 반해서 백성들은 "너는 다윗언약에 의해서 왕이 되었을 뿐이야"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 르호보암 : 역시 내가 잘났어.
* 백 성 들 : 당신이 잘난 것이 아니야.
* 르호보암 : 아니야, 내가 잘났다니까.
* 백 성 들 : 이미 죽은 입고 있는 거야.
◈ 아마샤, 요아스, 웃시야, 요담, 아하스, 므낫세, 아몬, 요시아 등등 !!
이렇게 "다윗이 잘나서 그 혜택을 입는다" 라는 것이 곧 다윗언약인데, 그러니 선지자들이 계속해서 지적하는 게 무엇인고 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왜 이탈하는가?" 라는 것인데, 그러니 여기에 대해서 아마샤 왕은 선지자를 보고 "너, 맞을래? 너, 죽는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심지어 '요아스' 라는 왕은, '여호야다' 라는 제사장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7살 밖에 먹지 않았을 때에 세워진 왕인데, 왜 쿠데타가 일어났는고 하니, '아달랴' 라는 이세벨의 딸로 인해서 온 나라가 엉망이 되었을 때, 그것을 다시 원상복구를 시키려고 그렇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초창기에 좋았는데, 그런데 이 요아스 왕이 성인이 되고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그런 유전자를 이어받은 탓인지는 몰라도,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버리고 마구 우상을 섬겼다는 겁니다. 그때 여호야다의 아들인 스가랴 선지자가 요아스를 말렸는데, 즉 "임금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과거를 생각하세요" 라고 하니, "이게 어디서 까부는가?" 라고 하면서 죽여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때 스가랴가 죽으면서 기도를 했는데, 즉 "하나님, 이 억울함을 갚아 주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일 년만에 갚아주셨는데, 아람군대가 쳐들어가게 하는 식으로 징벌하니, 그런 전쟁 중에 요아스는 부상을 당하고, 침상에서 부하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는 겁니다. 지금 이야기한 내용이 역대하 22장에서 24장에 나오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다음 왕인 아마샤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므낫세, 아몬, 요시아 등등, 다른 왕들도 모두가 다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자세한 것은 여기 교재에 나와있는 도표를 참고하시면 되고 말입니다.
◈ 왕들은, 왜 자꾸만 이탈하는가?
그런데 이 역대기에서는 그런 왕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왕들이 왜 자꾸만 여기서 이탈을 하는가?" 라는, 바로 그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부터 바로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하는데, 그래서 역대상 10장을 보기 전에 먼저 9장을 살펴보자는 말입니다.
여기 9장에 나오는 족보의 명단들은, 이미 포로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돌아올 때는 꼭 유다지파와 제사장이 짝짝꿍이 되어서 돌아왔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뒤에는, 바벨론 시대가 지나가고 메대와 바사의 시대가 되는데, 그래서 드디어 고레스의 특명에 의해서, 성전을 짓기 위해서 백성들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돌아온 사람들은 반드시 유다지파와 레위지파가 짝을 이루어서 돌아오고, 그리고 돌아온 이 유다지파 사람들은, 자기들은 어찌되었든 간에 이 레위지파가 하는 일이 중단되지 않도록, 그렇게 성전을 짓는 일에 온 힘을 다 쏟아 붓는다는 말입니다.
◈ 역대기 - '역대상 9장이 표준이다' !!
그 명단이 9장에 보면 계속해서 나오는데, 그런데 지금 여기 역대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이 역대상 9장에 나오는 것, 즉 "바로 이 9장이 표준이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래서 이 역대기를 기록했다는 말입니다.
(대상 9:3)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 중에서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
(대상 9:4) 유다의 아들 베레스 자손 중에 우대니 저는 암미훗의 아들이요 오므리의 손자요 이므리의 증손이요 바니의 현손이며
◈ 족보의 숲을 벗어나서, '왜 유다지파어야 하는가?'
그래서 이 역대상 9장 3절 이하를 보면,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 자손과 므낫세 자손이, 즉 유다를 대표하는 4개의 지파가 레위지파 하나를 모시기 해서, 즉 그들은 제사장을 모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왔다는 말입니다. 제 말이 맞지요? 그렇게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온 것은 분명 맞는데, 그런데 그 하나님의 뜻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니 그만 문제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10장에 들어가면, 지긋지긋하던 그 족보의 숲에서 벗어나서 이제부터 사건위주로 기록이 된다는 말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모든 족보는 다윗과 레위지파를 위해서, 즉 레위지파의 제사가능과 그것을 다윗이 보좌해야 된다는 것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그 뒤로부터는 사건을 배열할 때는 "왜 다윗이어야만 하는가?" 라는, 혹은 "왜 유다지파어야만 하는가?" 라는 것을 증거하는 쪽으로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 히브리서 7장을 다시 !!
어제 강의한 히브리서 7장이 좀 어려웠기 때문에 다시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은데, 즉 히브리서 7장에 보면 레위지파를 중심으로 한 모세언약(율법)이 왔다가, 즉 레위지파가 맞기는 맞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다음 신약시대에는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이제는 레위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를, 즉 유다지파를 내세워서,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쉬어라!" 라고 스톱을 시켜놓았다는 것입니다.
◈ 돌발적인 '유다지파'의 등장 !!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면, 레위지파는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속했지만, 그런데 실제로 유다지파는 어떠합니까? 물론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나온 것 같지만, 그러나 사실 그게 아니고,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는, 즉 이 땅에는 그러한 족보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즉 육적인 족보가 아닌 영적 족보인 멜기세덱의 족보를 따라서, 그야말로 이 땅에 '툭' 하면서 돌발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유다지파' 라는 말입니다.
◈ 다윗의 땅만 있으면 !!
그것을 다시금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렇게 다윗은 자기 이름의 고유의 성(城)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파들의 땅은 모압, 암몬, 에돔 등으로부터 아무리 침략을 당하고 빼앗겨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땅만 존재해서 이것이 다시 확장되면, 새로운 이스라엘을 다시 구성할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다윗의 땅만 있으면 말입니다.
그런데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는데, 그냥 다른 지파들의 일반적인 땅은, "이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내 땅이다" 라고 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다윗이 땅을 분배받아 버리면, 더 이상 "이것은 내 땅이다" 라는 것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전부가 다 다윗의 땅이 되어버리니 말입니다.
◈ 신약 - 다윗 자손의 땅이 곧 천국 !!
이러한 다윗의 땅을 두고, 신약에서는 그냥 다윗이 아니고 "다윗 자손의 땅" 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땅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아들의 나라인데, 즉 아들, 그 개인 소유의 나라라는 겁니다. 이런 개인 소유의 나라에 남의 나라 족속인 이방인들이 들어가서 사는 것, 그것이 곧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아들, 즉 어린양의 공로만 높이게 되는데, 개인적인 부동산을 거래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끝까지 개인적인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데, 그래서 면류관은 반납해야만 되는데, 물론 한번 정도 쓰는 것은 허용이 되는데, 한번 쓰고는 다시 돌려주는 반납용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반납을 늦게 하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데, 제 때에 한번 쓰고 나서 바로 벗어서 반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바로 벗어서 던지면 삐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반납할 때는 멘트를 하나 해줘야 하는데, 즉 "주님, 이 면류관은 제가 쓰기에 합당치 않고, 오직 주님만이 쓰시기에 합당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면류관조차도 벗어서 고백하는, 그것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 천국 - 과거완료 속에서 바뀔 수 있는가?
그렇다면 천국이란 무엇입니까? 천국이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과연 이 땅에서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즉 지금 이 세상에서, 즉 "과거완료 속에서 바뀔 수 있는가?" 라고 하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바뀌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데, 하지만 우리 인간이 인간을 바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자기 고통을 피하기에 급급한 것이지, 스스로 자기를 바꿀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성령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말씀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죄인에서, 그렇게 바꾸어버린다는 것입니다.
◈ 성도에게는 마일리지가 없어 !!
그러니 죄인이 의인되는 것은 전혀 우리의 소관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냥 죄인으로서 계속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로 살기가 참 편한데, 그런데 왜 성도가 되어서 신앙생활을 하기가 힘이 드는고 하면, 그냥 죄인으로 '쭈욱' 나가주면 참 편한데 말입니다.
그런데 죄인에서 의인인척을 하려고 드니까, 그것이 힘들다는 겁니다. 즉 마일리지를 쌓으려고 하니까 힘이 든다는 말입니다. 항공사 마일리지도, 그 항공사가 그만 파산을 해버리면 소용이 없다고 하는데, 그러니 마일리지를 쌓지 말고 그냥 죄인으로 살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의인이 되도록 알아서 다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 대신 용서를 구하는 분이 계시기에 !!
왜 그런고 하니, 우리가 '주'가 아니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라는 분이 따로 계셔서, 그분이 언약대로 우리를 용서해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대신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데, 즉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분명히 대신 용서해 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는 받지 않아도 예수님의 기도는 받으시는데,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예수님 기도의 효력을 톡톡히 본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관계를 무엇으로 보는고 하니,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본다는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말입니다.
자기 마누라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요즘 남편들이나 하는 짓거리이지,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 신부에게 전혀 그런 소리를 일체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뭐라고 하십니까? 그냥 "너는 내 사랑만 받아라" 라고 하신다는 말입니다.
◈ 니, 오늘도 집구석에 있을 끼가?
그러면 그런 이상적인 남편이 이 세상에 있습니까? 물론 그런 남편은 없는데, 우리는 아담에 속했기 때문에, 아예 그런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그래서 틈만 나면 돈을 벌어 오라고 하고, 조금이라도 집에서 놀면 구박을 하는데, 즉 "왜 전에는 좀 벌더니만, 요새는 뭐꼬?"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특히 십자가 마을에, 여기에 찔리는 사람들이 많지 싶은데 말입니다(ㅋㅋ).
아무튼 우리가 그냥 죄인으로 살면 얼마나 편안하냐는 겁니다. 배운 재주가 죄기 때문에, 그냥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면 되는데, 누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특별히 지옥에 보냅니까? 어차피 지옥이고, 또한 어차피 진동(vibration)인데 말입니다.
그렇게 죄를 지으면서 살다가 보면, 군데군데에서 "아하, 이것이 바로 죄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러면 용서해 달라고 하는 그 대상자가, 우리 자신보다 더 크게 보이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돈이 영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 복음에 삐친다는 것은?
한 부자청년이 마일리지를 쌓아놓고, 즉 어렸을 때부터 십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면서 까불고 있으니, 주님께서 "니가 가진 것을 다 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어서 나를 따라오너라" 라고 하시는데, 그때부터 부자청년이 근심이 되어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눅 18: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눅 18:23) 그 사람이 큰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이렇게 복음을 이야기하는데 뭔가 삐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분명히 말로는 "십자가, 십자가!" 라고 하지만, 분명히 뭔가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겁니다. 즉 그런 사람에게는 십자가 복음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있다는 말입니다.
◈ 역대기의 내리막길 코스를 !!
그래서 제가 설교 도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즉 "신학생이 신학교에 다닐 때는 예수님을 믿지만, 그러나 신학교 졸업한 뒤부터는 예수님이 아닌 교회를 믿습니다. 그리고는 그 교회를 소유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곧 내리막길인데, 그와 동일한 근성이 남쪽과 북쪽을 보면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 남쪽 내리막길 - 르호보암 - 아비얌 - 아사 - 여호사밧 - 여호람 - 아하시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