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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9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역대기)(강의정리)03-재정리자유게시판히브리서

2009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역대기)(강의정리)03-재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1)

09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역대기 제3강(첫째 날 저녁2)

2009,01,13 강의 이근호, 정리 한윤범

◈ 다윗에게 집중하라 !!

이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다윗에게 하나님이 약속하기를 "너를 영원히 축복하겠다" 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지금 다윗은 전쟁을 너무 많이 해서, 물론 레위지파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데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과 하나님과 사이는 점선으로 이어지는데, 여기 중간에는 레위지파가 들어가고 말입니다. 땅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겠는데, 야베스의 기도와도 연결되고 말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전은 솔로몬이 지었는데, 하지만 다윗이 지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성전을 솔로몬 언약이라 하지 않고, 물론 솔로몬이 지어도 그것을 '다윗언약' 이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 방향이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가는 게 아니고, 오히려 솔로몬이 다윗에로 모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방향은 계속 진행이 되는데, 즉 바로 밑에 있는 르호보함의 경우도 다윗에 모아지고, 아비야도 다윗에게 모아지고, 그 다음 아사도 모아지고, 여호사밧도 모아진다는 겁니다. 또 여호람, 여호아하스, 아달랴 밑의 요아스, 므낫세, 그리고 히스기야 등등, 그렇게 쭉쭉 나온다는 말입니다.

물론 역사는 이렇게 아래로 흘러 내려가지만, 그러나 여기서는 그 방향은 거꾸로 다윗을 향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기존 방향의 역순을 지시하는 자를 '선지자' 라고 하는데, 그런데 이 다윗에 올라갈 때 레위지파가 여기에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지파를 보존하기 위해서 다른 지파가 수종을 드는 식으로 말입니다.

사실은 유다지파만이 아니고 모든 지파가 이 레위지파를 지키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레위지파는 영원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이 레위지파의 영원함은 결국 무엇인고 하니까, 결국에는 '모세언약' 인데, 즉 모세언약의 완성을 내다보겠다는 것입니다.

◈ 히브리서 7장 - 레위지파가 아닌 다윗지파 !!

그런데 히브리서 7장에서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레위지파 말고 다윗지파를 주셨는데, 그런데 이 다윗지파, 혹은 유다지파는 밑에서 올라온, 즉 아담부터 연결된 기존의 유다지파가 아니라는 겁니다. 여기 히브리서 7장에 보면, 이 유다지파는 바로 하늘에 있는 멜기세덱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히 7: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히 7:14)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 멜기세덱의 등장으로 !!

그런데 이 '멜기세덱' 이란 분은 어떤 분인고 하면, 그야말로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으니까, 즉 지상과 끈이 닿은 채로 계시는 분은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들이 사는 지상세계, 즉 육의 세계와 관련된 분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육의 세계와 관련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여긴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아담이 누구를 낳고, 누구를 낳고" 라는 식으로, 그렇게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런 아담이 없는 상태에서 누가 등장하게 되면, 그것은 귀신이지 인간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부모가 없는 자식이 어디 있느냐는 말입니다.

만약에 마리아가 낳은 예수님을 보고, 누군가가 "실례지만 당신의 아버지는 무엇을 하십니까?" 라고 한다면, "아버지는 하늘에 있어요" 라고 하면, 그것은 정말 곤란하다는 겁니다. 물론 요셉은 아버지가 아닌데,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야만 유일한 아들로서, 그렇게 본다는 겁니다. 그러니 다른 것은 모두 다 인간의 아들인데, 육의 아들이고 말입니다. 하지만 하늘의 아들, 즉 약속의 아들은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히브리서 - '레위지파에서 다윗에게로' !!

아무튼 여기 히브리서에는 '멜기세덱' 이라는 독특한 분이 계셔서, 이 분은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라서 유다지파에서, 즉 다윗에게서 태어났다고, 그렇게 본다는 겁니다. 보통 여기 유다지파는 아까 살펴본 것처럼 노아부터 셈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봤는데,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게 보지를 않고, 유다지파는 멜기세덱에 반열에 따라서 독특하게 등장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것이 이 지상이라고 하면, 즉 지금까지 역사에서는 뭐냐 하면, 유다지파는 레위지파, 즉 모세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을 수용하기 위해서 전쟁도 해야만 되고, 그렇게 선봉장이 되어서 지켰다는 겁니다. 그래서 유다지파에서 하나님으로 가는 그 가운데 레위지파가 이렇게 있다는 겁니다. 즉 방향이 다윗에게서 레위지파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늘의 멜기세덱이 등장하게 되어버리면, 그 방향이 어떻게 되는고 하면, 레위지파를 통해서 다윗에게로 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멜기세덱에 의해서 등장한 다윗의 경우에는, 이미 그 안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레위지파가 이루어야 될 모든 피의 제사가 완성된 채로, 그렇게 해서 이 땅에 태어난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곧 '히브리서'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방향이 땅에서부터, 즉 인간 쪽에서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면, 그것이 맞다고 하면 십일조도 받아 챙겨야 하고, 제물도 당연히 받아야만 된다는 겁니다. 그러한 자들이 곧 '안산홍 집단' 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월절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하는데, 아무튼 뭔가가 있어야만 된다는 말입니다.

◈ 예수님의 피 - 이스라엘의 멸망을 극복한 피 !!

만약 예수님이 레위지파를 완성하면, 그게 곧 율법의 폐지인데, 그렇게 완성된 채로 예수님이 등장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 예수님을 쪼개보면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피가 있는데, 그러면 이 피는 무슨 피입니까? 'RH+A'형입니까?

바로 그 피 안에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던, 즉 모든 인간의 부족하고, 모자라고, 못난 것을 모두 이루는 것이 들어있는, 바로 그 '피' 라는 말입니다. 바로 이 피를 두고서 역대하에서 아비야는 '소금언약' 이라고 하는데, 즉 소금언약이 피를 보호하고 지켜낸다는 것입니다.

이 소금언약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원성' 인데, 물론 '영원성' 이라고 해서 단순히 오래간다고 하는 의미가 아니고, 그것은 바로 "그 출처가 어디인가? 아하, 하늘에 있구나" 라는, 그런 하늘의 영원함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 잠시, '소금언약'의 내막을 !!

그 소금언약의 내막을 다음시간에 이야기할 건데, 아니 지금 하겠습니다. 뭔가 다음으로 미루는 것은 싫은데, 찜찜해서 말입니다. 듣는 사람도 역시 그렇고, 즉 뭔가 다른 것이 있는데, 그것을 제쳐놓으면 좀 그렇다는 겁니다. 진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여기에서 레위기 찾아보겠는데, 이 레위기는 율법에 관한 이야기란 겁니다. 그런데 성경 신학자들이나 조직 신학자들이 율법의 문제를, 즉 "율법은 폐기가 되었는가? 아니면 아직도 존속하는가?" 라고 하는 문제를 매일같이 수평적으로 따지니, 즉 "인간이 아직 율법을 지켜야만 되는가?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율법 폐기론자인가?" 라고 논쟁을 하는데, 하지만 이것을 수직적으로 보게 되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것입니다.

◈ 복음 - 다윗언약으로 오신 분 !!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율법은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행해서 이룰 수 있는 율법은 없다는 겁니다. 율법의 목적인 의를 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 즉 죄인인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는 것뿐이란 겁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두 글자로 '복음' 이라고 하는데, 즉 "드디어 다윗언약에 의해서 약속대로 오셨으니까, 그분이 곧 복음이다"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그 안을 들여다보니,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의(義)' 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의(義)'가 왜 기쁜 소식이 되는고 하니, 그것은 전혀 우리의 행함이 아니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라고 하는 말씀에 의해서, "어, 나타났네" 라고,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즉 열심히 행한 자가 아니라 "어, 나타났구나. 멜기세덱이 하늘에 속한 족보로서 나타나버렸네" 라고 하는, 그것을 인정하는 자가 곧 의인이라는 말입니다.

일이 그렇게 진행되어서, 그야말로 개 같은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는데, 그러니 유대인들은 그 소리를 듣고 환장을 한다는 겁니다. 그동안 자기들이 쏟아 부은 십일조는 얼마이며, 또한 자기들이 안식일과 법 지키기에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는데 말입니다.

◈ 사도바울 - 나는 '똥·덩·어·리' !!

그 중에서도 제일 큰 수고한 사람이 곧 '사울' 이란 작자인데, 그런데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과거 자기의 그 모든 것을 무엇으로 봤습니까? 지난 시간에 4글자로 이야기했는데, '똥덩어리' 라고 말입니다. 즉 자기 자신을 쓰레기로, 배설물로 여겼다는 겁니다. 배설물이 거기처음으로 나오는데, 강마애보다 사울이 먼저 이야기했다는 말입니다(ㅋㅋ).

다시 말해서, 자기는 그런 모든 의미를 똥덩어리, 즉 배설물로 여긴다는 겁니다. 똥오줌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아니, 무엇을 자랑할 게 없어서 그런 것을 자랑하나?" 라고 이야기한다는 겁니다. 즉 "그래, 너거들은 그거나 자랑해라. 나는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할게"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 우리에게 자랑거리가 하나 있으니 !!

그것이 고린도전서 2장에 나오는데, 즉 "세상에서 우리들을 봐라. 우리들에게 잘난 사람이 누가 있나. 하지만 우리 가운데 자랑거리가 있다. 그것이 뭔고 하니, 우리의 행함이 아니고, 즉 나에게 돈 많은 것을 자랑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자랑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여기서 레위기 2장 13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레 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 제물에 왜 소금을 치는가?

여기에 보면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라고 하는데, 그러면 왜 이렇게 소금을 치라고 합니까? "① 방부제 역할을 한다. ② 짠맛을 내기 위해서" 라는 것 중에서, 어느 것입니까? 주님께서 짭쪼름한 것을 좋아하십니까? 잡은 제물에다 무슨 방부제를 칩니까? 오래 묵혀서, 마치 삭힌 홍어처럼 요리를 하려는 겁니까?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모르는데, 물론 맛은 끝내주지만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함'을 삽입시키는 하나의 마크라는 겁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께 바칠 거다. 그리고 이 제물은 하늘에서 와야 된다" 라는 것을, 그것을 소금을 침으로 말미암아서, 그렇게 해서 '영원성'의 속성을 소금이란 것으로 표시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소금을 침으로 말미암아서, 영원함이 담기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관한 이야기인데, 그냥 인간의 음식물이 아니고 말입니다.

바로 그 소금언약을 역대하에서는 '아비야' 라는 사람이 '여로보함'과 전쟁을 하면서 그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역대하 13장에 나오는데, 13장 5절 말씀을 누가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대하 13: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

여기 '아비야' 라는 사람은 남쪽나라의 두 번째 왕인데, 도대체 무엇에 근거해서 이렇게 소금언약의 영원함을 이야기하느냐 하면, 여기서 민수기 18절 19절을 보겠습니다. 다같이 읽어보겠는데, 역대상은 족보이기 때문에 재미가 없는데, 레위기는 거기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겁니다(ㅋㅋ).

(민 18: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 영영한 응식으로 !!

이렇게 영원히 보이기 위해서 걸어놓는 제사, 즉 영원한 거제, 그게 바로 소금언약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응식인데, 여기서 '응식(應食)' 이란 것은, 말 그대로 응답된 음식, 즉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소금언약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이 '소금언약' 이라는 것이, 그 당시 구약의 사람들은 자기 지파들 중에서 레위지파가 있으니, 이 레위지파가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서, 즉 자기들 속에 있는 레위지파가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인해서, 자기들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로서,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그렇게 영적으로 해석을 한 것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해석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그만 진짜 아들이 나타나고 말았다는 겁니다. 즉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예수님께서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서, 이제는 해석의 모든 방향이 밑에서부터 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위에서부터 아래로, 그 모든 방향을 완전히 바뀌어놓고 말았다는 겁니다.

◈ 왜 인간은 밑에서부터 위로 갈 수밖에 없는가?

바로 여기서 무엇이 튀어나와야 되는고 하니까, 왜 인간은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지를, 즉 그 어떤 명령과 규범을 줘도, 즉 이 구약성경을 주어도 우리 인간은 항상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느냐는 말입니다. 즉 "인간에게 왜 그런 속성이 들어있는가?" 라는 것이 비로소 밝혀진다는 것입니다.

◈ 바로 그 메커니즘이 곧 '십자가 사건' !!

그것은 단순히 "너희들은 성경해석을 잘못했다" 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잘못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원천까지 파고 들어가는, 바로 그 메커니즘, 그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냥 쉽게 말하자면 "너희들 속에 악마가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바로, "단순히 너희들이 지식과 지혜가 모자라서, 그래서 성경을 영적으로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뭔가 영적인 해석을 가로막고 있는 악신의 지배를 너희들이 받고 있다" 라는 의미라는 겁니다.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말입니다.

그것이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나오는데, 즉 "너희들은 지금까지 어두운 세상의 공중권세를 잡은 자에게 속했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그 특징이 뭐냐 하면, 항상 자기 의를 위한 자기 행위인데, 즉 자기 정당성을 위한 자기 행위을 주장한다는 말입니다.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옳으니이까 ??

어제 제가 설교한 것이 바로 그것인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묻기를 "남자가 자기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라고 말입니다. 뒤에 뭐가 붙느냐 하면, "옳으니이까?" 라고 하는데, 마치 마누라를 버리려고 작정한 것 같은데, 그래도 바리새인들은 솔직히 "옳으니이까?" 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마 19: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사실 우리는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우리도 역시 무슨 일이든 해놓고 그 뒤에는 "옳으니이까?" 라고 붙인다는 겁니다. "주여,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옳으니이까?", "회사가 바빠서 교회에 못 나와도 옳으니이까?" 라고 말입니다. 너무 바빠서 교회에 못 나오면 그냥 못 나온다고 하면 되는데, 그런데 우리 인간의 본성이 항상 뒤에 "옳으니이까?" 라는 것을 붙인다는 것입니다.

자기 행동을 하면 되는데, 누가 뭐라고 했느냐는 겁니다. 그런 말만 붙이지 않으면 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옳으니이까?"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일요일에 손님 때문에 가게문을 열고 싶으면 열면 되는데, 그런데 "열어도 됩니까?" 라고 왜 묻느냐는 말입니다. 물론 가게문을 연다고 해서 잘한 것도 아니고, 또한 열지 않는다고 못한 것도 아니고, 아무튼 잘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상담하기를, 즉 "목사님, 오늘 제가 남편을 꼬드겨서 교회로 데리고 왔습니다. 산에 가지 않고 말입니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저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그것이 바로 "옳으니이까?" 라는 것인데, 하지만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 주께서 오게 하셨습니다 !!

진짜 옳은 것이 뭐냐 하면, "주께서 허락하셔서 왔습니다. 주께서 오게 했습니다" 라고 하는, 그것이 옳은 것이지, 그러니 항상 출발을 주님이 아니고, 항상 자기가 어떻게 꼬드기든지 해서 왔다는 겁니다. 그렇게 꼭 자기를 집어넣고, 그리고 한 세트처럼 "옳으니이까?" 라고 하는 것을 붙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창기가 너희들보다 먼저 천당에 간다" 라고 하는 말을 제대로 들으면, "아하, 주님의 의로 구원을 받는구나" 라고 하는데, 그런데 그것을 어떤 창녀가 듣고, "창녀도 옳으니이까?" 라고 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모든 성령이 없는 사람은 항상 출발을 주님으로부터 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자기의 정당성을 그 밑에 깔고 이야기한다는 말입니다.

◈ 스가랴서 - '하나님의 신'으로 !!

구약에 있는 이러한 구조, 즉 지금 칠판에 그려져 있는 역대상 모든 족보의 구조가 무엇인고 하니까, 물론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열심히, 그게 하나님의 뜻이 맞다는 겁니다. 분명히 맞는데,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오해했습니까? 학개와 스가랴가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님의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고 무엇입니까? 스가랴서에 보면 '하나님의 신'으로 짓는다고 했다는 말입니다.

(슥 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그런데 하나님의 신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오려면 성령을 보내줄 분이 먼저 와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사마리아 여인이 알고 있었던 것인데, 즉 메시야가 먼저 와야만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메시야가 와서 성령을 줘야만 그 다음에 영적예배가 되는데, 이것이 곧 다윗언약에서 말하는 성전중심의 예배가 완성된 모습이란 말입니다.

◈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메시야다" 라는 이야기부터 먼저 하신 것이 아니고, "내가 목마르지 않은 물을 줄게" 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 여자는 예수님이 "물을 줄게" 라고 하니까, 그것이 'H2O'라고 여겼는데, 즉 수소 둘에 산소 하나, 그게 곧 물이라는 겁니다. 즉 "야, 그러면 두 번 다시 물을 뜨려고 오지 않고도 이 물동이를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그 여자에게 메시야인 주님께서 성령을 줄 때, 인간의 문자적 사고방식 속에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먼저 확 파내고 주신다는 겁니다. "너, 지금 다섯 명을 사귀었나? 지금은 여섯 번째이지?" 라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참 기술도 좋은데, 어떤 사람은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시집장가도 못 가고 있는데 말입니다(ㅋㅋ). 그러니 완전히 엘리자베스 테일러인데, 일곱 번이나 결혼한 미국의 여배우 말입니다.

그렇게 확 파내고 난 뒤에, 그 다음에 메시야로 성령을 주니까, 이 여자가 물동이를 채울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무엇을 버렸습니까? 물동이 자체를 그냥 갖다 버렸다는 겁니다. 물을 길으려고 왔다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그야말로 미쳤다는 말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이야기가 이 정도로 진행되면, "야, 물동이가 비워져도 또 채워지고, 또 채워지네. 정말 좋은 물이다" 라고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한국교회가 원하는 것인데, 즉 "주여, 통장에 돈이 나가도 또 채워지고 나가도 또 채워지게 하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그야말로 사렙다 과부인데, 기름병마다 채우고 또 채운다는 겁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채워주는 대신에 망치를 들고 참 기름병을 다 부셔버린다는 겁니다. 다시는 자기에게 그 따위를 소리를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모두 다 박살을 내버린다는 말입니다.

구약의 축복은 소와 양떼가 늘어나는 것인데, 하지만 신약의 축복은 뭐냐 하면, "이미 우리는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 있다" 라는 것을, 바로 그것을 아는 것이 축복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골로새서 3장에 나와있는데 말입니다.

(골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 부셔질 성전을 왜 만들게 하셨는가?

아무튼 레위지파를 옹위하는 것, 이 모든 관계성 속에서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는가?" 라고 하는데, 즉 "부셔지게 하는 성전을 왜 만드셨는가?" 라는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미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입장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쫓겨난 입장인데, 그런데 자기는 쫓겨나지 않았다고 여기니까, 벌써 문제가 시작된 것이란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이 정도면 살만하다" 라고 나오는 게 문제인데, 돌아갈 본향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뭐, 그냥 쫓겨난 채로 살지" 라고 하는데, 그것이 곧 가인의 후예들이라는 겁니다. 아벨은 죽어도 천국에 가는데, 그런데 가인의 족속은 매일같이 땅에 살려는 궁리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들은 매일 한다는 소리가 "너거 엄마는 몇 년을 살았노?" 라고 하면, "구십인데, 왜?"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참 좋겠다. 우리 엄마는 팔십도 못되어서 죽었다" 라고 하는데, 그런 것을 가지고 기가 죽고 산다는 말입니다. 즉 "음매, 기죽어. 음매, 기살어" 라고 말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생명나무인데 말입니다.

◈ 중요한 것은, 생명나무 !!

주님께서는 생명나무를 주시는데,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선악과를 따먹고 "너는 얼마나 착하노? 나는 서른 개인데, 너는 스무 개? 음매, 기살아" 라고 하면서, 즉 "나는 얼마나 훌륭한가?" 라는 것을 가지고 기 싸움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창기와 세리가 너희들보다 천당에 먼저 간다" 라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거지 나사로의 경우에, 그는 착한 일을 할 수도 없고, 하지도 못한 사람이란 겁니다. 거지 나사로가 노동한 것은 뭐냐 하면, 기껏 자기 다리를 긁은 것밖에 없다는 겁니다. 물론 그것도 훌륭한 노동이라면 노동인데, 사실은 그것은 노동한 게 아니고 자기가 아프니까 긁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가려워서 긁었고, 그렇게 긁으니 옆에 있는 개들이 와서 핥았다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개 같은 팔자인데, 그러니 만약에 개가 없었으면 얼마나 섭섭했겠느냐는 겁니다. 서로가 짝이 맞는데, 그러니 나사로는 그야말로 전혀 자기가 구원받을 짓을 한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는데, 몸이 아파서 치매에 걸렸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겠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간단한데, 그 사람이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상관없이 언제나 동일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우리에게서 나온 능력이 아니라, 성령이 주신 능력으로 인해서, 그렇게 선물로서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반드시 "우리의 행함이 아니요!" 라는 고백이 달라붙게 되어있고, 그런 믿음은 "주께서 주셔서, 그냥 박혀서 구원을 받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야베스의 기도'에 대해서 !!

그렇다면 하면, 왜 레위지파가 그렇게 우대를 받아야 되고, 왜 다른 지파들은 레위지파를 받들어 모시면서 옹위를 해야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유명한 야베스 기도에 나오는데, 역대상 4장 10절에 나오는 말씀인데 말입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 야베스는 유다지파에 속한 인물인데, 물론 야베스 이전에 보면 "누굴 낳고, 누굴 낳고, 누굴 낳고" 라고 하면서 그렇게 족보가 나오다가, 물론 그 뒤에도 마찬가지이고 말입니다. 아무튼 4장 1절에 보면 "유다의 아들들은 베레스와 헤스론과 갈미와 훌과 소발이라" 라고 하면서, 족보가 나온다는 겁니다. 제가 아까 말했듯이, '유다B'의 선형지파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나오다가 갑자기 8절에 보면, "고스는 아눕과 소베바와 하룸의 아들 아하헬 족속들을 낳았으며" 라고 한다는 겁니다.

(대상 4:1) 유다의 아들들은 베레스와 헤스론과 갈미와 훌과 소발이라 …
(대상 4:8) 고스는 아눕과 소베바와 하룸의 아들 아하헬 족속들을 낳았으며
(대상 4:9)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신학생들 가운데는 시건(철?)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게 뭐냐 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니 성도는 이 말씀을 먹고살아야 된다" 라고 하는데,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성경을 다 외워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렇다면 자기가 이 역대상을 한번 다 외워보라는 말입니다.

물론 죽기 살기로 작정을 하면 한 시간 정도면 다 외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한 시간만 지나가면 깡그리 다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리고 치매에 걸리게 되면 모두 다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즉 "예수님이 누구시더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물론 육수깐도 등장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성경을 달달 외워서 지키는 것은 극히 유대교적 사고방식이란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면 성경을 안 읽어도 된다는 말씀입니까?" 라고 한다면, 그것은 제가 아까 이야기했는데, 우리는 "성경을 안 잃어도 됩니까?" 라는 다음에는, 반드시 "옳으니이까?" 라는 것이 붙는다고 말입니다.

◈ 주께서,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기에 !!

그러니 그것이 아니라, 주께서 성경을 알게 하신다는 겁니다. 평소에 성경을 못 읽다가도 실직을 하고 난 뒤에 성경을 본다든지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도 주님께서 기도에 응답을 하신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기도가 무슨 기도라고 했습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라는, 오직 그런 기도에만 해당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뜻은 무엇인고 하면, 직장생활을 오래하는 것인데, 물론 아버지의 뜻은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성경말씀을 보라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겁니다. 물론 아버지의 뜻대로, 실직해서 성경말씀을 보도록 말입니다.

◈ 거지 나사로의 위력 !!

그런 가장 선한 모습이 거지 나사로인데, 그는 아주 멋지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데 사용이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봐라. 거지라도 천당에 가잖아" 라고 할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이처럼 양극화가 된 모습을 통해서, 복음의 위력이 생생하게 드러난 것이 별로 없지 싶은데 말입니다. 거지 나사로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 거지 나사로 이야기 앞에 예수님께서 먼저 언급하신 말씀이 있는데, 즉 "너희들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좋아한다" 라고 말입니다. 재물을 더 좋아하는 인간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 사실상 그것은 참 웃기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눅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

그래도 우리가 재물을 좋아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는 전해야 하는데, 그러면 그 전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나사로와 같이 재물이 하나도 없는 인간이 천당에 갑니다" 라고 하는 것, 그것보다 더 재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없다는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아주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목사님, 제가 어떻게 해야지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하면, 그것은 간단하다는 겁니다. "나사로는 몸이 아파서 아무 것도 못했는데도 천당에 갔습니다" 라고 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개척교회는 하는데, 교인수가 없어서 고민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무엇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달리 찾을 필요가 없는데, 여기 다 모아놓았으니 말입니다(ㅋㅋ). "여러분, 교인수가 늘어나지 않아서 고민하십니까? 그러면 제가 복음을 전하겠는데, 마지막 교인인 자기 마누라마저도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그 목회자는 굶어죽어서 천국으로 갔습니다" 라고 하는 것, 그것처럼 기막힌 복음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인간 내부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

저의 어느 글에도 있지만, "우리 인간은 항상 자기 속에 뭔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알 수 없는 두려움이다" 라는 겁니다. 아무튼 그것이 마구 마구 솟아 올라온다는 겁니다. 물론 그런 두려움의 실체를 본인은 전혀 모르는데, 아무런 이유도 없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데, 아무튼 아무 것도 없다는 겁니다. 꼭 멜기세덱 같은데 말입니다(ㅋㅋ).

그렇게 뭔가 아무 것도 잡히지 않은 두려움, 표현되지 않은 두려움, 즉 알 수 없는 공포라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 십자가 마을의 경우도 역시나 마찬가지인데, 즉 이렇게 말씀을 사모해서 수련회에 참석하면서도, "혹시 집에 가스를 안 끄고 오지나 않았는가?" 라고 하는, 즉 자기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있다는 말입니다.

◈ 성화론 -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육으로 극복하려는 시도 !!

그런데 그것을 만약에 육으로 해결하려 하면 무엇이 됩니까? 즉 자기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성화론' 이라는 말입니다. 즉 두려움을 착함으로 메우려고 하는, 그런 전형적인 선악적 사고방식이란 것입니다.

◈ 복음 - 아하, 저 놈은 못 박혀서도 떠는구나 !!

거기에 비해서 복음적 사고방식은 무엇입니까?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그 인간은 죽었단다" 라고 하는, 즉 십자가로서 그냥 못 박아버리는 겁니다. 우리는 두려워서 벌벌 떠는 진동 가운데 있는데, 그러한 우리 자신을 못 박아버린다는 겁니다. 물론 여전히 못을 박혀서도 떨고 있는데,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구경만 하면 되는데, "아하, 저 놈은 못 박혀서도 떠는구나" 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성도의 삶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평생 동안 못이 박혀서 떤다는 겁니다. 하지만 구원을 받는 것은, 결코 그렇게 떠는 것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때문에 구원을 받고, 또한 자기는 혼자 계속해서 떨고 있고 말입니다.

◈ 어느 늙은 모친의 두려움 !!

우리 어머니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즉 "야야, 내가 죽어서 너거들이 모르면 우야겠노?" 라고 말입니다. 자기가 죽고 난 뒤에 일주일 안에 자식들이 자기를 발견하지 못할까봐서 두려워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15살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때는 "내 얼굴이 예쁘냐?" 라는, 그런 생각을 했지, "내가 죽고 난 뒤에 발견될까? 안 될까?" 라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은 수시로 전화를 하는데, 즉 자기는 살아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저는 마음속으로 "어머니, 도대체 어쩌라고요?" 라고 하는데(ㅋㅋ), 물론 어머니의 마음은 "아직까지 내가 살아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라는 것인데, 물론 한번 다녀가라는 압박도 되고 말입니다. 아무튼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 야베스의 기도 - 현재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

이제 야베스의 기도를 살펴보면,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말입니다. 야베스는 땅에 관한 기도를 했는데, 즉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못 더해버리면 복불복이 되어버리는데, 즉 그만 복수하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이 야베스의 기도가 무슨 뜻인고 하면, 바로 '없음' 이라고 하는, 즉 "현재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라는 고백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만약에 문자적으로 이용하면, 그만 강남의 부동산 중개사들의 기도가 되고 마는데, 즉 "땅값이 오르게 하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특히 여기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라는 대목이 그야말로 기막히게 들어맞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 야베스의 기도가 한 동안 한국교회에서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는 교육관도 지어야 되고, 또한 주차장도 더 넓혀야만 하는데, 그때 동원된 것이 바로 이 야베스의 기도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같이 기도하자고 하면서 통성기도도 하고 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그랬다는 말입니다.

◈ 하지만, 주님은 일단 후벼파고 !!

하지만 제가 아까 이야기했는데, 하나님이 성령을 줄 때는, 즉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줄 때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물을 주게 되면, 그 사람은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일일이 후벼서 파내고 난 뒤에, 즉 "더 이상 내는 메시야를 만날 자격도 없고, 그런데 나 같은 여자가 메시야를 만나서 구원받으면 그야말로 횡재이다" 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데, 그러한 작업, 그게 곧 '다윗언약' 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작업만을 위한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인데, 그러니 모든 것이 감사제목이 되는데, 즉 자기가 불평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단 0.5초라도 깨닫도록 하는, 오직 그러한 일만이 주의 일이고, 나머지는 전혀 주의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

야고보서 4장에 보면, "어떤 도시에 일년을 살면서 이익을 보겠다고 하는 자들아" 라고 하는데, 그게 악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도 한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완전히 자기를 무엇으로 봅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라는 의미라는 말입니다.

(약 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명저 '피' 라는 책에 보면, 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는데, 즉 기도는 어떤 상태에서 하는고 하니, 하나님께서 기도를 시킬 때, 즉 성령께서 할 때는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무능과 무소유로, 즉 아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물론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것은 이순재고 말입니다(ㅋㅋ), 아무튼 전혀 아무 것도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쉽게 그냥 '치매' 라는 말입니다.

◈ 주기도문 - 내 뜻대로 마옵시고 !!

다시 말해서, "저는 아무 것도 못하니까, 주께서 거지로 사용을 하든지, 창녀로 사용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마음껏 사용해주소서" 라고, 그렇게 기도하게 하는데, 그게 곧 '주기도문' 이라는 겁니다. 즉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그러므로 예수님도 자기의 뜻이 아닌, 오직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이 오게 되면, 물론 우리는 못한다고 버티는데, 하게끔 만들어 버린다는 겁니다. 즉 마태복음 6장의 주기도문이 이뤄지게 한다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가짜 기도 다 퍼내게 되는데, 물론 그것이 몇 초나 갈지 모르지만, 2초 정도 그런 상태가 유지되면 대단한 사람이란 겁니다. 일주일에 2초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입니다(ㅋㅋ).

◈ 기도하지 않는 왕들 !!

역대상하를 쭉 보게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런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남쪽 유다도 마찬가지이고, 물론 왕들도 기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언제 왕들이 기도를 하느냐 하면, 꼭 아람, 암몬, 모압, 에돔, 앗수르 등등, 이런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쳐들어올 때, 그때는 솔선수범해서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남쪽의 유다 왕인 므낫세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왕이라고 그렇게 설치고 까불다가, 그만 앗수르에게 쫓겨서 호되게 혼줄이 나고 난 다음에는, 그만 겸손해져서 그때부터는 부셔졌던 성전을 자기 손으로 다시 수축한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빼꼼이 야베스의 기도를 !!

바로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빼꼼이(?) 야베스의 기도를 이뤄주셨는데, 그 야베스의 기도를 제가 다시 한번 더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라고 하는데, 어떻게 목소리가 괜찮습니까?

지금 이 말은 곧, 지금 야베스에게 무엇이 있다는 겁니까? 반드시 근심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근심이 있어야 되고, 그런 근심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근심은 누가 유발합니까? 남의 나라 백성들 같으면 근심을 하지 않는데, 오히려 근심하라고 그냥 놔두는 겁니다.

그런데 주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냥 놔두지를 않는데, 물론 본인은 근심을 하지 않을 줄로 알았지만, 그러나 막상 모압, 암몬, 앗수르와 같은 이방나라들이 쳐들어오니까, 갑자기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 성도의 삶 -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어 !!

그러니 '성도의 삶' 이라고 하는 것은, "뭐, 이만하면 걱정과 근심이 없다" 라고 하면서, 그 돌아서는 순간에 또 다시 걱정과 근심이 다가오고, 또한 "이 정도로 해결을 했으면 이제는 걱정이 없다" 라고 하면 또 다른 사건이 터진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가 셋이 있는 집이라면, 첫째가 문제가 없으면 둘째에게서 터지고, 둘째가 괜찮으면 셋째에게서 생기고, 셋째가 아니면 첫째나 둘째가 생기는데, 마구 순환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 라는 말이 바로 그런 의미하는 겁니다. 즉 항상 흔들리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자식이 많을 경우에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면 자식을 적게 낳으면, 그게 옳으니이까?" 라고 하면 참으로 곤란하다는 겁니다. 그것이 옳은 것이 아니고, 그런 자식을 줘도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감사히 받으면 된다는 겁니다. 물론 받는 방법에 인위적인 것이 있어서 문제지만(ㅋㅋ), 하지만 인위적이든 뭐든 간에 주의 백성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위적인 것도 주께서 허락하셔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니 말입니다.

◈ 역대기와 열왕기 - 중심점인가? 주체의식인가?

제가 첫째 시간에 사람의 골격 모습으로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을, 그리고 오른쪽에는 유다, 왼쪽에는 이스라엘 족보를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그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중심점'을 찾자고 했다는 겁니다. 바로 그 중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 선지자이고 말입니다.

여기 역대상하와, 그리고 열왕기상하를 보면서, 일반 교인들이 무엇을 오해하는고 하면, 물론 목사도 마찬가지지만 말입니다. 즉 현대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성경말씀을 본다는 겁니다. 여기서 현대적 사고방식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어렵게 말해서 '주체의식' 인데 말입니다.

이 '주체의식' 이란 것은, 먼저 '내'가 제일로 중요하고, 그 다음에 '내' 가족, 그 다음에는 '내' 애인(?), 아무튼 그런 식으로 동심원을 그려가면서 점점 중하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국가가 중요하지만, 그런데 국가는 세금을 너무 때리니, 그만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수가 있다는 겁니다. 아무튼 '내'가 제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남편이 사랑스럽지만, 하지만 그 남편이 애를 먹이면 도망을 갈 수밖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사실은 자기 자신이 애를 제일 많이 먹이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가 제일 중요해!" 라고 하는 의식을 가지고, 이 역대상하와 열왕기상하를 바라보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이 역대상하와 열왕기상하에서는, 백성들은 그냥 가만있다가 마구 얻어맞는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요?

예를 들어서, 아하스 같은 경우에, 그가 악행을 일삼으니, '베가' 라는 북쪽 이스라엘과 '르신' 이라는 아람 왕이 와서, 무려 12만 명을 죽이고, 20만 명을 포로로 잡아갔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인데, 자카르타에서 이번에 쓰나미로 12만 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현대의식을 가지고 바라보면 어떻게 됩니까? "아니, 잘못은 '아하스' 라는 왕이 했는데, 죄도 없는 백성들이 죽고 포로가 되는가?"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 ??

사실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는데,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뭐가 나옵니까? 마태복음 2장을 보면,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이 있다는 겁니다. 저는 강호동의 '스타킹'에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나는데, "참, 스타킹 때문에 애들을 많이 버려놨다" 라고 말입니다. '스타킹' 이란 TV프로를 여러분은 거의 안 보지 싶은데, 물론 저도 그렇고 말입니다(ㅋㅋ). 그런데 가끔 보면, 애들이 나와서 트로트를 부르고 한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을 천사들이 빼돌리고 나서, 뒤늦게 헤롯군대가 와서는 그만 예수님 또래의 두 살 밑의 사내아이들을 그만 다 죽였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아이의 엄마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거기에도 분명히 5대 독자, 6대 독자도 있었을 것인데, 하지만 성경은 거기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가 없다는 말입니다.

◈ 너무나 폭력적인 하나님 !!

그러므로 현대적 사고에서 성경을 보고 싶은 마음이 도대체 들지가 않는다는 겁니다. 자기에게 어떤 이득이 와야 되는데, 그런데 이 하나님이 하는 일이, 아무리 말로는 자비의 하나님이고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은 오로지 폭력으로 시작해서 폭력으로 끝내는, 그런 폭력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왜 폭력입니까? 인간은 매를 맞아도 당연하다는 겁니다. 매를 맞아도 싸다는 말입니다. 지옥을 한번 보면, 지옥만큼 폭력적인 곳이 있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폭력의 하나님이라고 외치는 그들도, 역시 이 세상을 폭력으로 다스리고 있다는 겁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너무나 폭력적이라는 말입니다.

◈ 크리스마스에만 오시는 메시야 ??

그래서 아까 이야기한 그런 메시야는 사라지고, 폭력이 없는 메시야, 즉 크리스마스에만 오시는 분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울지 않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양반인데, 누구입니까? 산타클로스인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가운데서 폭력적인 할아버지가 있으면 나와보라는 겁니다. 없다는 겁니다. 물론 음주운전으로 비틀거리는 산타클로스는 있다고 하는데 말입니다(ㅋㅋ).

도대체 무슨 조폭이 빨간 모자를 덮어쓰고서 선물을 주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조폭은 없는데, 그러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항상 그 어떤 경우에도 인자하고 얼굴에는 웃음이 만면하다는 겁니다. 물론 말로는 울면 선물을 안 준다고 하지만, 사실은 울어도 준다는 겁니다.

하지만 진짜 메시야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너무나도 폭력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도저히 거절할 수밖에 없는, 즉 "난, 너하고 안 놀아" 라는 말이 서슴없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 키 큰놈은 다 나와 !!

그런 폭력 중의 폭력이 무엇인고 하면, '모압' 이란 나라를 다윗이 점령했을 때 어떻게 했는고 하니까, 두 줄 길이 안에 있는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 안에 있는 사람은 살려주었다는 겁니다. 즉 키가 큰 사람은 죽이고, 키가 작은 살려주었다는 말입니다. 그냥 줄을 그어놓고 ⅔는 죽이고 ⅓은 살려줬다는 겁니다. 즉 키가 큰놈은 목이 그냥 다 날아가는데, 그러니 인정사정 봐주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삼하 8:2)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저희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 성군(聖君) 다윗 ??

그런데도 사람들이 다윗 앞에 붙이는 게 있는데, 그게 두 글자인데, 흔히 무슨 다윗이라고 합니까? '성군 다윗' 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무슨 성군이 그런 성군이 다 있는지 모르겠는데, 너무나 잔인하지 않습니까? 사람을 죽이려면 그냥 죽이든지, 왜 사람을 죽일 때 마치 개미를 죽이듯이 어떻게 그렇게 죽이냐는 겁니다. 그래도 '성군' 이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하면 '성군 세종대왕'으로,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지, 어떻게 다윗에 붙이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입니까? 저나 여러분은 여기게 대해서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겨야 되는데, 그런 무서운 분에게서 사랑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귀싸대기를 얻어맞아도 전혀 괜찮을 우리가, 오히려 '피' 라는 이름으로 그분에게서 생명을 얻어먹었다는 말입니다.

◈ 우리의 꿈이, 폭력적인 하나님이기를 소원합니다 !!

여러분은 그래도 주님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랑이 얼마나 귀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아주 극도의 폭력을 사용함으로 말미암아서, 그 폭력이 어떻게 사랑으로 변했는지를, 그 놀라운 기적을 직접 체험하라는 겁니다. 성령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저와 여러분의 꿈은, 바로 폭력적인 하나님이 나타나기를 소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야베스의 기도가 바로 "하나님이여, 땅을 넓히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땅을 넓히는 것이 복이 되게 하옵시고, 우리로 하여금 근심과 모든 환난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유다지파 속에 포함이 되어있는 야베스의 기도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번 숨을 쉬어가면서 "뭘 낳고, 뭘 낳고, 뭘 낳고" 라고 하다가, 또 "휴, 주여!" 라고 하면서 야베스의 기도가 나오고, 그런데 그러고 난 뒤에 또 어떻게 됩니까? "수하의 형 글룹이 어떻고" 라고 하는데, 즉 또 다시 "뭘 낳고, 뭘 낳고"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대상 4:11) 수하의 형 글룹이 므힐을 낳았으니 므힐은 에스돈의 아비요

그렇게 뒤에 '낳고' 라는 것이 나오는데, 그렇게 계속해서 나오다가 그 뒤 23절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대상 4:23) 이 모든 사람은 옹기장이가 되어 수풀과 산울 가운데 거하는 자로서 거기서 왕과 함께 거하여 왕의 일을 하였더라

◈ 야베스의 기도응답으로 '땅이 주어진다' 라는 의미는?

여기에 역대기를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취지가 나온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야베스가 기도함으로 말미암아서, 야베스의 기도 이전에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있는고 하면, 사람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야베스의 기도응답이 이루어지면 무엇이 주어진다는 겁니까? 지경(地境), 즉 땅이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고, 이 사람들로 하여금 환난과 근심에 잠기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환난과 근심에 잠긴다" 라는 말은, 자기가 할 도리를 모두 해봤는데, 그런 것을 백 날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래서 환난과 근심에 잠긴다는 겁니다. 아무 것도 해보지 않았으면, 아직은 해볼 희망이 남아있으니 말입니다.

◈ 백성들이 야베스의 기도에 동참함으로서 !!

그러면 그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이 야베스의 기도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러면 이 야베스의 기도는 어디에 포함이 되는고 하면, 다윗언약 속에 포함된 기도가 된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어떤 다윗 언약도 무슨 바로 이 야베스의 기도대로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것에 사람들이 미리 참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땅 !!

그렇게 환난과 근심으로 미리 참여해서, 그렇게 해서 땅이 주어지게 된다면, 그 땅은 어떻게 주어진 것입니까? 자기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일구어낸 땅입니까?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땅이고, 거기에 자기들이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그냥 주신 땅에 그저 살아감으로 말미암아서, 그렇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땅이기 때문에, 백성들 자신은 어떤 결과가 됩니까? 하나님이 거저 주신 자들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진짜로 원했던 참된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교회를 누가 부흥시켰는가? 이 교회는 누가 세웠는가?" 라고 하면서 만날 자기 자랑만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야베스의 기도에 들어가 보면 뭡니까? 교회도 역시 주님이 주신 것이고, 또한 자식이 세 명이 있으면 그들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를 잃으면, 그것도 하나님이 욥의 자녀처럼 데려간 것이고, 또 다시 주시면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뜻이니, 고맙게 여기고 말입니다.

◈ 제사장이 피의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서 !!

그러므로 항상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이 다 거저 주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 이렇게 거저 주시는 그 '거저 주심'의 그 바탕이 무엇인고 하면, 그 뒤에 나오는데, 즉 6장에 보면, 무슨 족보가 나옵니까? 지난 시간에 보았는데, 레위지파, 또는 누구입니까?

바로 아론의 제사장 직분인데, 그런데 이 제사장에게는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다른 지파들에게는 모두 땅을 주는데, 그러나 이 레위지파에게는 땅을 주시는 대신에, 그 땅이 주어질 수 있도록 하는, 즉 '피'의 제사를 드리는 작업을 그들이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땅이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 다른 지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 죽으나 사나 레위지파를 !!

그것은 바로 "앞으로 우리는 죽으나 사나 이 레위지파를 지켜야 되는데, 그러니 이 레위지파가 하는 일을 무시하지 말고, 이 레위지파는 모세언약이니, 마지막까지 그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윗과 같은 분이 오셔서, 이 레위지파가 영원토록 안정되게 보장될 수 있는,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을 우리들이 해야만 된다" 라는 것인데, 그런 흐름으로 여기에 족보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지난 시간에 동서남북으로 살펴보았고 말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서, 처음으로 다시금 돌아가서 역대상 1장부터 훑어보게 되면, 이제는 그냥 성경책을 넘기면 된다는 겁니다. 모두가 사람 이름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못 본 척하고(?) 훑어보면, 그것이 어디까지 이어지는고 하니, 여기 베냐민 지파가 나오고 하는데, 그것을 지난 시간에 이미 다 했는데 말입니다.

드디어 이제 역대상 9장에 들어가겠는데, 그런데 9장으로 넘어가게 되면 진도가 갑자기 빨라진다는 말입니다. 9장 14절부터 무엇이 나옵니까? 레위지파가 나오는데, 지금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고 하니, 여기에 포로로 잡히고 난 뒤까지의 족보가 나온다는 겁니다.

(대상 9:14) 레위 사람 중에서는 므라리 자손 스마야니 저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며

아무튼 역대상 9장에는 그러한 레위지파의 족보가 계속해서 나오는데, 그렇게 해서 9장을 넘어가고, 그 다음 10장으로 들어가면, 드디어 본격적으로 누구의 이야기가 나옵니까? 드디어 사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족보전체가 레위지파로 끝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언약을 이루는 그 목적을 모든 것을 재배치를 함으로서 이어지는데, 그렇게 레위지파를 계속해서 연결이 되고 이루게 작업이 성전에서 이루어지고, 그 성전이 현재에 유지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고, 함께 계신다고 하는 증거가 확보된다는 말입니다.

◈ 역대상 10장 - 왜 '다윗'이란 인물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가?

그렇다면 10장부터는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그 성전을 짓기 위해서 어떻게 다윗이란 인물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지, 즉 어떻게 유다지파에서 다윗 한 사람밖에 없는지, 바로 그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그 다음에 무엇이 나오는고 하면, 다윗이 왕이 되고 난 뒤에 레위지파를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행정체제를 바꾸게 되는지,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족보 이야기보다 분량이 더 많다는 겁니다. 그러니 솔로몬과 다윗 이야기가 역대기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소소한 것이라는 말인데, 즉 다윗에 관한 것이 산의 정상이고,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정상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경사면이라는 말입니다. 즉 저기 눈 덮인 산 정상에는 다윗이 있고, 그 밑에 솔로몬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솔로몬-다윗', '다윗-솔로몬'으로, 그렇게 이 둘만 주인공이라는 겁니다. 즉 그들은 바로 성전을 통해서 레위지파가 하는 일을 돕는 자들로서, 그렇게 둘만이 우뚝 솟아나 있는 형국이 바로 역대기 전체의 내막이라는 말입니다.

◈ 역대하 - 어떻게 해서 왕들이 내려가게 되었는가?

그러면 역대하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고 하면, 이제 내리막길로 치닫게 되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어떻게 해서 왕들이 내려가게 되었는가?" 라는 것인데,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 점인데 말입니다. 지난 시간에 남쪽과 북쪽 나라의 중간에 누가 있다고 했습니까? 선지자들이 있는데, 바로 그 선지자들이 중심점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백성들이 참 억울하게 죽는데, 특히 앗수르의 '산헤립' 이라는 사람이, 이 사람이 히스기야 때 쳐들어와서 하루에 185,000명이 그만 전사했다는 겁니다. 그것을 보면서 제가 느낀 점이 뭔고 하면,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그놈들, 참 잘 죽었다" 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185,000명이 죽은 가운데서, 그 젊은 아이들을 군대에 보냈다고 위문편지를 보내던 누이동생들, 또한 그 부모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 젊디젊은 185,000명을 한꺼번에 다 죽여버렸다는 것입니다.

◈ 왕들이, 과연 다윗처럼 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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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8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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