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역대기)(강의정리)01-재정리
2009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역대기)(강의정리)01-재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1)
09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 역대기 제1강(첫째 날 오후)
2009,01,13 강의 이근호, 정리 한윤범
◈ 아담, 셋, 에노스, 게난 ??
먼저 역대상 1장을 보겠습니다. 역대상 1장부터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등등, 이렇게 사람이 이름이 나와있는데, 그렇게 사람 이름이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으로 계속해서 나간다는 겁니다. 그러니 편집증을 갖고 있는 정신 질환자가 아닌 이상, 이것을 하나하나 모두 볼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별로 내용이 없으니 말입니다. 사람들 이름만 계속해서 나열이 되어있지, 그래서 읽어나가다가 "무슨 이야기 거리가 없는가?" 라고 하면서 찾게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역대상 앞부분을 보면서, 아나운서들이 발음연습을 할 때, 이것을 교재로 삼으면 적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름들이 간단한 듯하면서도 상당히 어려우니 말입니다. 그렇게 나가다가 드디어 역대상 12장에 들어가서 흥미를 끄는 사건들이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당연히 "1장부터 11장까지의 이야기는 왜 있는가?" 라고 질문이 되어야 하는데, 즉 "성경이 이런 이름들은 다 빼고 그냥 이야기만 하면 될 텐데, 그런데 왜 이름들이 이렇게 있는가?" 라는 의문점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는, '다윗언약'이 !!
성경이 이렇게 문자로 되어있으니까 상당히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그것을 제가 수직적으로 그림으로 그려보겠다는 겁니다. 즉 '다윗' 이란 사람이 여기에 있다면, 다윗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 '다윗언약' 이라는 것이 수립된다는 말입니다.
역대상 1장 1절부터, 즉 아담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아담을 시작으로 해서 족보들이 어디로 치고 올라가느냐 하면, 이것이 하나의 거대한 산을 이루는데, 그런데 이것이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점점 치고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수직적으로 말입니다.
◈ 그런데, 왜 유다지파만?
그런데 그 올라가는 것이, 처음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대상 족보를 공부하다보면, 길이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 다윗의 족보이니까 '유다 지파'의 계열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 족속을 통해서 다윗이 될 때, 즉 아담부터 시작해서 계속 나오다가 이 유다 지파로 해서 뭔가가 합세를 하게 되는데, 그렇게 유다 지파에서 나온 다윗을 설명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데, 즉 단절이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 '다윗'을 남기면서 !!
무슨 말인고 하니까, 아담에서 유다지파로 가는데, 거기 중간에 여러 가지 지파들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열두 갈래, 즉 열두 지파라는 겁니다. 그런 열두 지파 가운데, 유다 지파로만 모이면서, 이 유다 지파를 통해서 가다보면 어떤 인물을 남기게 되는데, 즉 '다윗' 이란 인물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다윗 다음에는 어디로 가는고 하니까, 그 다음은 솔로몬인데, 그런데 이 솔로몬은 위쪽으로 더 올라가는 게 아니라, 솔로몬은 내리막길이라는 겁니다. 다윗에서 그 위로는 안 보이니까 점선으로 표시하면 되는데, 즉 하나님과의 유일한 관계가 성립된다는 겁니다. 바로 그것을 '다윗언약' 이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윗언약이 나올 때, 지금 여기에서 처음 시작하는, 즉 아담부터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전부가 다 '죽은 사람' 이라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나이가 구십도 못 되어서 죽으니까, 그래서 모두가 죽은 사람이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을 만약에 이런 노선으로 뽑아내려면, 즉 이런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하면, 즉 베냐민 지파, 스블론 지파 등등, 여러 지파가 있는데, 그런데 그들을 다 제쳐두고서 유다지파로만 몰아온다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느냐는 겁니다.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는 말입니다.
◈ 떴다, 김해 김씨 '김대식' !!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이렇게 십자가 마을로 모였는데, 다같이 자존심도 있고, 긍지도 있는데, 즉 "너만 복음을 아냐? 나도 안다" 라고 하고 있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김대식' 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아까 다윗처럼 그렇게 사용해서 우리를 몰아넣을 때, 그러면 우리는 뭐가 됩니까?
모두 같은 인간이고, 같은 복음을 안다고 하는데, 우리가 무슨 외계인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런데 왜 한쪽으로만, 즉 김씨 집안으로만 몰아넣느냐는 말입니다. 김대식 씨가 김해 김씨이지 싶은데, 즉 그가 나오기 전에 김해 김씨로 몰아넣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씨는 뭐고, 최씨는 뭐냐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은 다 죽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즉 다윗을 빼놓고 다 죽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다윗을 빼놓고 모두 다 죽었다" 라는 말을 달리 설명하면, 즉 "언약이 없거든 산 사람으로 취급받을 생각하지 마라" 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죽을 인간을 왜 태어나게 하셨는가?
◈ 그런데 '중심점'이 있어서 !!
바로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윗만 인간이고 나머지는 인간이 아니라면, 그러면 아담부터 해서 그런 인간들은 왜 있느냐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단절되지 않은 모든 인류전체에 뭐가 있는고 하면, '중심점'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중심점을 모르면 전혀 구원은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중심점으로 되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중심점은, 구원될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구원되기 이전부터, 즉 우리가 사업을 한다든지, 농사를 짓는다든지, 편하게(?) 교사로 일한다든지, 그렇게 우리가 일상적인 자기만의 일, 즉 자기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매진할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중심점은 따로 논다는 말입니다. 따로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40년을 살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나이가 사십이니까 몇 년 생입니까? 즉 1969년에 태어나서, 어느 학교를 나왔고, 그리고 졸업해서는 회사에 취직해서 잘 다니다가 그만 출근길에 차에 치어서 죽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인데 말입니다.
◈ 아니, 다윗하고는 무슨 관계가 있지?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라고 하면, 그러면 이 역대기는 그것을 무엇으로 보느냐 하면, "야, 이 인간이 죽은 것이 다윗하고는 무슨 관계가 있지?" 라고, 그렇게 죽은 인간 뽑아내서 재배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역대상하' 라는 겁니다. 이것으로 강의를 끝내도 되는데, 아니 끝났다는 겁니다.
지금 그 사람이 죽고 없다고 하고 우리끼리 이렇게 모여있으니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데, 하지만 그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있을 때 그런 소리를 하게 된다면, 아마 듣고 있던 그 사람은 상당히 기분이 나빴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마치 이렇게 오늘처럼 모여 있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김대식 성도 중심으로 몰아가 버리고, 그러면 다른 사람은 존재가치가 뭐냐 하면, "그 사람이 농사를 지었다" 라는 것은 가치가 없고, "너는 김대식 성도에게 어떤 족보가 되느냐?" 라고 하는, 그것을 따진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목사든 집사든, 그런 것은 소용이 없고, 하나님께서 지적한 사람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오직 그것만을 따진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 저는 왜 중심이 안 됩니까?
하지만 우리가 살아있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나님께서 툭 던져버리면, 우리는 대번에 입에서 자존심 섞인 말이 나오는데, 즉 "하나님, 저는 왜 중심이 안 됩니까?" 라고 말입니다. 분명히 그렇게 나올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도 하나님께서 다 성경에 담아놓았다는 것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서, 자꾸 특정인을 이야기하는 것을 용납해주셔야 하는데, 이왕 버린 몸, 계속 나가보자는 겁니다(ㅋㅋ). 즉 "왜 김해 김씨 김대식인가?" 라는 것에 대해서 반발하게 될 때, 그렇게 반발하는 것도 하나님은 잊지 않고 기록해놓았다는 말입니다. 즉 "그들은 악의 길을 갔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전혀 악의 길을 간 것이 아니고, "왜 하나님께서는 한쪽만 편애하고, 나는 그쪽에 엮여져야 구원되는가?" 라고, 자기는 몰라서 따지는데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는 여로보암의 길을 갔다" 라고, 즉 "그는 악한 길을 갔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뒤이어서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악한 인간을 숲을 헤치고, 기어이 김해 김씨를 통해서 김대식 언약으로 만들었다" 라고, 그렇게 나오더라는 말입니다. 물론 죽고 난 뒤에 말입니다. 아담은 이미 죽었는데, 그렇게 죽고 난 뒤에 마음대로 주무른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오징어 회를 먹으러 가보면, 일단 오징어를 몸통은 회로 처먹고, 그 다음에 다리는 삶아먹든지 볶아먹든지 마음대로 골라서 먹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오징어를 건드리면 그만 화를 내는데, 그런데 죽여서 산산조각 내놓고 먹으니까, 오징어가 아무런 끽 소리도 못한다는 말입니다.
◈ 다윗 빼고는 '중심점'이 안 돼 !!
그러니 문제는 무엇인고 하면, '중심점' 인데, 한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중심점' 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중심점만 찾아내면 그만인데, 모든 인류의 존재에 대한 중심점을 말입니다. 바로 그 중심점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면, 다윗을 빼놓고는 중심점이라고 껍죽대며 나서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부러운 것이 무엇인고 하니, "다윗은 중심점이 되어서 참 좋겠다" 라고 하는데, 여러분도 알다시피 다윗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죽은 자' 라는 겁니다. 그러니 중심점이 되는 다윗이 죽은 자인데, 제가 아까 다윗을 빼놓고 다 죽은 자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이어보면, "모든 인간은 다윗처럼 죽은 자이다" 라는, 그런 간단한 논리가 된다는 겁니다. 머리가 나쁜 사람은 지금 이해를 못하지 싶은데 말입니다(ㅋㅋ).
◈ 모든 인간은 다윗처럼 죽은 자 !!
다시 이야기를 하면, 다윗은 죽은 자인데, 즉 하나님으로부터 죽은 자라는 겁니다. 부활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데, 즉 다윗이 죽어서 무덤에 그대로 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죽은 자인데, 그런데 제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역대기에서는 모든 사람은 다윗중심으로 모아진다고 했는데, 즉 다윗은 죽은 자이고, 다른 인간은 다윗에게 모아지고,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다 죽은 자이다" 라는 것입니다.
(행 2: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
그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고 하니, 이렇게 밑으로 내려오면서, 이것을 '다윗의 묘실' 이라고 하는데, 즉 하나의 개인적 선영인데, 그런 개인 무덤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역대기뿐이라는 겁니다. 물론 열왕기도 그러한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말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역사는 산 자의 역사가 아닌데, 그러면 무엇인고 하니까, "소위 살았다고 우기는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어떤 조치가 가해졌기에 죽으면서도 다윗과 관련을 맺으면서 하나 둘씩 죽어 가는가?" 라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그렇게 다윗과 관련이 맺어질 때, 하나님께서 죽은 다윗을 언약으로 살려낸다면, 다윗과 함께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다윗의 언약과 더불어서 함께 폭발하듯이, 그렇게 다윗과 관련이 된 사람들은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부활에 말입니다.
◈ 역대기는, 구약의 신약성경 !!
그래서 역대기는 뭐냐 하면, 구약에 있어서 미리 당겨온 신약성경이란 겁니다. 구약에 있는 신약성경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방금 설명한 것을 문자적으로 수평적으로 깔아버리니까,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만 다음과 같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대상을 보면서, 그 앞에 열왕기상하가 나오는데, 그러니 이 열왕기상하의 의미나 역대상하의 의미나, 물론 조금 틀린 것 같이 보이기는 하는데, 그래서 읽어보니 앞에는 시시한(?) 사람들의 명단이나, 그런 리스트가 나오고, 그 리스트를 지나가고 나니, 결국 역대기는 열왕기를 되풀이 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그냥 넘어가자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하루에 몇 장을 정해서 차근차근 읽는 사람은 역대상을 만나면 반가운데, 즉 후다닥 다 읽어버리고는, 그것으로 하루 숙제는 다 끝났다고 하는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지요? ㅋㅋ) 그렇게 후다닥 읽어버리는 역대상, 역대하를 이번 십자가 마을 수련회를 통해서, 삼일 동안, 열 시간 강의를 통해서 낱낱이 그 담긴 의미를 우리가 한번 해부해보자는 말입니다.
◈ 도표는 여러분의 상상으로 ??
그렇다면 방금 제가 이렇게 칠판에 그림을 그려놨는데, 이렇게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되어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이게 오르막길인데, 다윗을 향해서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내리막길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을 도표를 보면 되는데 말입니다.
여기 교재를 보면, 이 교재의 제일 마지막에 도표가 나와있다는 겁니다. 사울, 다윗, 솔로몬부터 해서, 이것은 머리 부분이고, 솔로몬 이후 밑에는 가슴팍 부분, 팔, 다리가 있는데, 마치 사람모양과 같다는 겁니다. 그렇게 두 개가 남북으로 갈라진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그림을 그려주어야, 르호보암 시대는 여로보암과 같은 동네고, 또한 아비야는 누구와 같으며, 그리고 아사는 바아사와 같이 연결이 되고 말입니다. 그렇게 두 나라가 헤어지고 깨어지면서도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뭔가 몸체에 붙어있는 사람의 모양과 같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이란 한 몸통 안에서 팔, 다리로, 양쪽에는 오른 편, 왼 편으로 갈라지는 겁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드디어 북쪽나라부터 망하고 남쪽은 목숨이 조금 긴데, 즉 한쪽 팔은 짧고, 다른 쪽은 길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발판이 나오는데, 그 발판이 회복기라는 말입니다.
◈ 이스라엘은, 멸망하기 위해서 !!
그렇게 그림을 처음과 끝을 보니, 여러분은 무엇이 느껴집니까? "아하, 이스라엘은 멸망하기 위해서 있는 나라구나" 라는 것이 느껴져야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선택을 받았는데, 그러니 선택을 받은 사람들, 즉 선택을 받은 나라가 이 지상에서 마음껏 다른 우주에 보여줄 수 있는 그 특별한 임무가 무엇인고 하니, "나, 멸망한데이" 라는 겁니다.
◈ 성도의 임무 - 나, 죽는데이 !!
이것은 바로 오늘날 성도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데, 즉 성도가 평생토록 다른 사람에게 증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데, 즉 "나, 죽는데이" 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 어느 인간이 "나는 죽는다" 라는 것을,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만약에 자기가 죽는다는 것이 하나님 뜻임을 깨닫는다고 하면, 즉 죽음을 아주 순하게 현실로 받아들일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나, 죽는다" 라는 것이, 아침에 일어날 때 비타민 한 알을 먹듯이, 그렇게 죽는다는 약을 늘 먹어보면, 마치 비타민 씨를 아침에 먹으면 활기가 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처럼(ㅋㅋ), 그렇게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것을 늘 약을 먹듯이 털어먹고 하루를 사는 사람들은 오직 성도들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 목사도, 약을 털어먹고 설교를 !!
그렇다면 교인들은 아닙니까? 물론 아닌데, 교인들은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즉 불신자라는 겁니다. 그러니 말을 조심해야 되는데, 중요한 것은 교인들이 아니고 성도들이라는 말입니다. 아무튼 목사가 설교할 때는 약을 털어먹어야 되는데, 왜냐하면 "나, 설교하다가 죽습니다" 라고 하면서 약을 먹어야 죽음의 설교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이 설교를 하고 밥을 먹고서 살려고 합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쥐약을 먹은 것인데, 약을 먹기는 먹었는데 잘못 먹었다는 겁니다. 약은 신약과 구약을 먹어야만 하는데 말입니다(ㅋㅋ). 그래서 이상하게 딴 소리가 나오는데, 그런 사람은 구약을 전혀 모르는, 방금 봤던 이런 사람의 형체와도 같은 도표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그야말로 하나님 백성이었는데,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 아들이라고 칭함을 받았던 자들이라는 겁니다. 출애굽기 4장에서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백성, 그야말로 대단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냐, 훌륭하다. 오냐, 대단하다. 이제 니 할 일을 해라" 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들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멸망을 당하는 것인데, 모두가 다 말입니다. 그것이 곧 성도의 임무라는 말입니다.
* A : 그러면, 다 멸망을 당합니까?
* B : 물론 다 당합니다.
* A : 예레미야도 그렇습니까?
* B :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그리고 이사야도 모두 멸망을 당합니다.
* A : 그러면 성도는 없습니까?
* B : 멸망을 당하는 자가 성도입니다.
* A : 성도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 B : 멸망을 당함을 외치는 것이 기쁨입니다.
* A : 그러면 그들이 선지자입니까?
* B : 물론 그렇습니다. 선지자는 눈에 뵈는 게 없는 자들입니다.
◈ 선지자는, 자기와 다윗언약의 연관성을 알기에 !!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톱으로 켜는 것과 광야에 유리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리고 바로의 공주 아들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고난받기를 즐겨했던 사람이 과연 누구입니까? 그게 바로 모세이고, 또한 선지자였다는 겁니다.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러니 선지자는 무엇인고 하면, 자기 처지를 생각한 것이 아니고, 다윗을 통한 언약과 자기 출생의 의미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확실히 알기 때문에,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기쁘게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언약나라는 다윗을 통해서, 새로운 나라가 이미 만반의 준비가 되었음을, 그것을 선지자들이 이 지상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면서 증거한다는 말입니다.
◈ 못 온다. 오지 마라 !!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는데, 그렇게 쫓겨나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는 두 번 다시 근처에도 오지 말라고 아예 파수꾼을 세워버렸는데, 그런데 성경의 그 구절을 살펴보면, 그들은 에덴동산을 지키기보다는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킨다는 겁니다. 즉 생명나무의 가치가 타락한 인간에 의해서 피해를 받지 않게 말입니다.
(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다시 말해서, 생명나무의 가치를 영원히 유지하기 위한 조치가 곧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의 역할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생명나무에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냐하면 "너희들은 처음 만든 그때 그 인간이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제는 두 번 다시 오지 말라는 겁니다. 즉 생명나무와는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놓고 하나님께선 계속해서 사람을 이 땅에 번성하게 했는데, 그러면 그렇게 번성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무엇입니까? 그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뒤에 붙이는 것이 있는데, 즉 "생명나무 근처는 오지도 마라" 라고 말입니다. 아담에게 그런 이야기했다는 말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래서 아담에게 주어진 운명은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주어지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즉 "못 온다. 오지 마라. 못 온다. 오지 마라" 라고 말입니다.
◈ 들어라, 이스라엘아 !!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특별하게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 이라는 자들을 만들어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뭐라고 하는고 하면, "들어라, 이스라엘아!" 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그런(?) 소식을 전해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면, '들어라' 라고 하는 것을, 어떤 사람은 명령으로 보는데, 하지만 성경에는 명령이란 것이 없다는 겁니다. 성경은 그것을 명령이라고 하지 않고, '규범'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을 어제 오후시간에 설교했는데, 그 설교를 들은 사람은 알지 싶은데 말입니다.
◈ 명령이 아닌, '규범' !!
먼저 '명령' 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를 중립 위치에 놓고, 아직까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확정을 짓지 않는 미확정 상태라고 간주해서, "니가 명령대로 순종하면 복을 받고,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 라고 할 경우에 명령이고, 반면에 '규범' 이라는 것은, 이미 어떤 말을 줄 때에 "너는 이러한 인간이야" 라는 것을 확정지은 채로 알려주는 방식의 말을 할 때, 그것을 규범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만약에 자기가 서울대학교 학생이라고 하면, 규범은 서울대학교 뺏지와 같다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그런 뺏지가 있었는데, 즉 그것을 보고 "이거 뭐예요?" 라고 하면, "니 신분이야" 라고 하는 겁니다. 신분을 나타내주는 그 뺏지가 뭐냐 하면, 바로 "들어라, 이스라엘아!"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전체는 이렇게 "들어라!" 라고 했으니까, 처음도 그렇고 마지막 요한계시록까지 오로지 "들을 귀 있는 자"를 골라내는,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살아있는 말씀이 성경책이란 말입니다. 만약 같은 문자로 활자화되어도, 이것을 명령으로 듣는 사람은 애초부터 이스라엘이 아닌 사람이고, 그런데 이것을 규범적으로 듣는 사람은, 처음부터 그 사람은 택한 백성, 즉 성도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아하, 그게 바로 나구나" 라고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나보고 새삼스럽게 어쩌란 말입니까?" 라고, 그런 쪽으로 가버리면, 그것은 규범이 아니라 하나의 명령이라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자들을 두고서, 자기 주제파악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 목사님은 왜 중을 만납니까?
여기에 대해서 불교라든지 이슬람교에서는 많은 오해를 하는데, 심지어 중세 신학자들도 오해를 하는 판에 불교는 말할 것도 없지만 말입니다. 이 불교의 중들은 자기를 인간인 줄로만 알고 있는데, 아까 사우나에서 바로 그 중을 만났는데, 머리를 제대로 깎은 사람을 말입니다.
저를 보고 "목사님은 왜 중을 만납니까?" 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사실은 여러분이 저보다도 더 자주 만나지만, 하지만 여러분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어? 그냥 뭔가가 스쳐지나갔네" 라고 여기고 만다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믿음이 좋아서 그런지는 몰라도(ㅋㅋ), 항상 구별을 하는데, 즉 "저 인간이 과연 이스라엘 사람일까?" 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제가 "저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일까?" 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들어라, 이스라엘아!" 라는 말을 저들에게 전해보면, 그들이 "뭐야? 뭔데? 어쩌라고?" 라고 한다면, 즉 "들어라, 단군의 자손이여!" 라는 이야기를 해달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러한 자들은 당연히 "여기서 이스라엘이 왜 등장하는데? 엉뚱한 소리하고 있네. 지금 경제가 어려운데, 듣기는 이스라엘이 뭘 듣는다는 말인가? 그것이 경제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데?"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 이스라엘 나라는 이 세상에 없어 !!
그런데 하나님께서 "들어라, 이스라엘아!" 할 때, 이 이스라엘은 어떤 나라인고 하면, 이스라엘이 없는 나라라는 겁니다. 즉 이스라엘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없는 나라에서 새로 생긴 나라가 곧 이스라엘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들어라, 이스라엘아!" 라고 할 때, 이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아니, 야곱의 후손인 열두 지파가 이스라엘이지 않습니까?" 라고 한다면, 물론 우리 눈으로 보기에 이스라엘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만약에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열두 지파인 이스라엘 만들고 난 뒤에, 즉 홍해를 건너고 난 뒤에 역사는 끝이라는 겁니다. 세례요한이든, 예수님이든 올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어이, 천당으로 가자" 라고 해서, 가면 된다는 겁니다.
◈ 수평적 족보와 수직적 족보 !!
아무튼 여기 열두 지파에서 이스라엘이 형성되는데, 이렇게 아담에서 열두 지파가 형성될 때, 이것을 '수평적 족보' 라고 하고, 그 앞에 나오는 것을 '단편 족보' 라고 하는데, 사실은 수평적 족보와 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다지파로 올라가는 것을 '수직적 족보'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LINER' 라고, 즉 라이너니까 '직선적 족보', 혹은 '깊이 족보'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 '깊이 족보'는 제가 방금 만든 말인데 말입니다. 즉 이 쪽을 '깊이 족보' 라고 한다면, 저쪽은 '넓이 족보' 라는 겁니다. 아무튼 족보를 보면 그렇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큰 강의 하구에 보면 삼각주가 있는데, 즉 계속해서 쭉 모아서 하나로 모아진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모든 인간은 연관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즉 그렇게 넓게 보여주다가, 갑자기 속도를 내면서 마치 하수구에서 물이 시원하게 쫙 빠지는 것처럼, 그렇게 하면서 중간에 다윗 쪽으로 그만 몰아가 버린다는 겁니다. 족보에 그 증거가 나오는데, 미리 좀 볼까요? 미리 보면 안 되는데, 중요한 것이니 나중에 보도록 하겠습니다(ㅋㅋ).
어쨌든 지금 여기서 이스라엘 나라가 성립이 되었으면, 즉 "들어라, 이스라엘아!" 라는 것에서, 이들이 그냥 여기에서 "어이, 천당으로 가자" 라고 해서 가면 되는데, 그런데 이 이스라엘이 이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유다입니까? 그것도 아니고, 그러면 다윗인가요? 아닌데, 그럼 이스라엘은 뭡니까?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위에서 내려가야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두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 멸망을 당하는 이스라엘이, 곧 아들의 운명 !!
그런데 이 아들은 무슨 아들이냐 하면, 즉 이 땅에서 어떤 아들의 모습이냐는 겁니다. 제가 조금 전에 이스라엘의 운명이 뭐라고 했습니까? 즉 이스라엘은 무엇을 할 것이란 말입니까? 멸망을 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제 첫 시간인데 벌써 다 잊어버린 것 같아서 큰 일인데, 이번 강의가 엄청 힘들게 생겼는데 말입니다(ㅋㅋ).
아무튼 이스라엘은 멸망인데, 그래서 마태복음 3장에서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주는데, 하늘에서 뭐라고 합니까?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요" 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아들이 따로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아들이 따로 나오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어떤 이스라엘이냐 하면, 이것은 집단이면서도 집단이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들로 보니 말입니다. '아들들'이 아니고 '아들'로 말입니다.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현경 - 왜 딸이 아니고 아들이지?
이것도 모르고 '현경' 이라는 유니온 신학교의 여자 교수는 "왜 하나님은 자꾸 아들이라 하느냐? 딸은 인간이 아니냐?" 라고 하는데, 물론 지금 이스라엘에 여자와 남자가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런 남녀를 묻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통째로 장차 오실 분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 망하는 역할을 함으로서, 즉 "우리는 애초부터 죽어야만 되고, 진짜 산 아들은 하늘에서 내려와야 된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그림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있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여기에 있는 이런 인간들이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 여성 신학자에게 "교수님,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실 때 아브라함이 왜 예수님이 아닙니까?" 라고 한번 해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이 오고 난 뒤에 예수님이 곧 바로 오시면 되는데,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니다. 이삭도 아니다" 라고 하면서, 왜 자꾸 질질 끄느냐는 겁니다. 즉 한꺼번에 해치워버리고 택한 백성을 끌고 가면 되는데,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하시냐는 말입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에게 의미를 두는, 즉 아브라함의 선행, 이삭의 공로, 야곱의 충성 등등, 거기에 의미를 둔다면 답변을 못한다는 말입니다.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각자의 역할이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역할이 있는데, 즉 "사람은 원래 죽어야 마땅하다" 라는 겁니다. 그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죽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고 하면, 최초 인간인 아담과 하와의 죽음의 정보가 섞여서 내려온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섞여서 내려오기 때문에, 성도는 뭐냐 하면, 죽는 이유를 아는 사람이 곧 성도라는 겁니다. 그러면 불신자는 뭡니까? 자기가 죽어가면서도, 왜 죽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 성도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포함된 '똥 덩어리' !!
그러므로 성도는 죽으면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을 모두 다 내뱉으면서 죽어간다는 겁니다. 성도는 똥 덩어리인데, 즉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포함된 똥 덩어리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개인데, 그러니 예수님이 곧 지휘자인데, 즉 "첼로든 바이올린이든 전부가 다 개다. 그냥 짖으면 돼!" 라는 겁니다. 강마애가 그런 소리를 했지 싶은데 말입니다(ㅋㅋ).
그러니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머리를 증거한다는 겁니다. 만약에 머리가 없는 지체라고 하면 전혀 소용이 없는데, 즉 지체만 덜렁 있으면, 그 지체를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는 머리가 있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지체가 있는 것이지, "나는 지체가 있다" 라고 하기 위해서 지체가 있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 교회 - 죽어도 괜찮데이 !!
그런 의미에서 교회라고 하는 것은 간단한데, 즉 "우리는 죽어도 괜찮데이" 라고, 그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교회라는 겁니다.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말입니다. 즉 "우리는 구태여 살 필요가 없어" 라고 이야기하는 곳이 곧 교회라는 겁니다.
스데반 집사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가 설교를 하고 나서 강사 사례비가 어디에 있느냐는 겁니다. 짱돌이 그냥 날아왔는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주여, 저들이 하는 짓을 모릅니다. 저들을 용서해주세요"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된 이스라엘은 무엇인고 하니, 바로 신약에 와서, 그 신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는, 즉 신약에서의 모델 케이스 역할을 감당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다윗언약의다윗이 예수님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 역대기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 "그러면 목사님, 아담부터 시작에서 다윗이 정상이라고 하면, 여기에 있는 이 뒷부분을, 즉 정상에서 내려오는, 그렇게 하산하는 것까지 다 알아야 역대기가 쉬워질 것 아니겠습니까?" 라고 물으신다면. 당연히 "딩동댕!" 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역대기는 무엇이냐 하면, 역대기 제일 마지막에 보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이왕 이렇게 된 것, 첫 시간부터 다 그냥 해버립시다. 그래야 마음 든든한 것이라도 있지, 그렇지 않으면 감질나고, 약만 살살 오르니 말입니다(ㅋㅋ).
우리가 역대상 1장 1절을 했는데, 이젠 마지막인 역대하 36장 21절과 22절을 보겠습니다.
(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대하 36:22)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방금 읽었던 36장 22절을 기억하면서 에스라 1장 1절 보겠는데, 제가 읽겠습니다.
(스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그러니까 우리는 역대하가 역대하로서 모두 끝난 줄 알았더니만, 그런데 이 역대하가 에스라서까지 계속해서 이어져간다는 겁니다. 여기 에스라서 1장 1절을 보면, 놀랍게도 글자도 하나 틀리지를 않고 똑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에스라서의 경우에도, 1장이 끝나면 2장, 2장이 끝나면 3장으로,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져간다는 겁니다.
◈ 역대기 - 역사가 끝나고, 다시 아담부터 추억 !!
그리고 이 에스라서가 끝이 나니, 그 뒤에는 느헤미야서까지도 나오는데, 그러니 이것이 결국은 무슨 의미인고 하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가 끝난 입장에서, 바로 거기에서부터 처음의 아담을 다시 한번 생각한 책이 바로 이 역대기가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역사를 다 지켜보고, 즉 멸망할 것은 모두 다 멸망을 하고, 그리고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 나오는 에스라의 부흥운동, 또한 느헤미야 성전신축운동 등등으로 인해서,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이 신앙적으로 부흥도 많이 했다는 겁니다.
◈ 망하면 망할수록, 다윗의 존재가치가 더욱 더 !!
여기에서 제가 하나 물어보겠는데, 그렇게 부흥운동을 벌이고 나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망하지 않고 부흥을 했습니까? 그래도 역시 망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하면, "아하, 역시 망하는구나!" 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이스라엘이 점점 더 망하면 망해 갈수록, 다윗이란 존재가치는 더욱 더 또렷하게 부각이 된다는 겁니다. 다윗의 존재가치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는 아주 즐거운 점이라는 것입니다.
◈ 건강할 때 주님의 일을 ??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나는 건강할 때 주의 일을 합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런 사람은 진짜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 해당되는 겁니다. 왜 그런가요? 여러분, 아플 때 주의 일이 되던가요? 우리 권사님 만날 아픈데, 아플 때는 아무리 봉사하고 싶어도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얼마나 괴롭습니까?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아플 때 주의 일을 못할 때 구원은 누가 시킵니까? 주님이 하신다는 겁니다. 자기 솜씨께나 부리지 않을 때, 즉 교회에서 하는 것도 전혀 없을 때 말입니다. 그때는 공짜가 더욱 더 공짜로써 기분 좋게 와닿는다는 겁니다. 물론 이런 것이 교회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ㅋㅋ).
사람들이 건강할 때 주의 일을 한다고 자꾸 오해를 하는데, 하지만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결국에는 늙는다는 겁니다. 이 '늙는다' 라는 것이 결국은 아프다는 뜻인데, 그렇게 아플 때 옛날처럼 주의 일을 못하면, 그러면 그 사람은 지옥에 가야되는 겁니까?
◈ 나라도 없고, 성전도 깨지고 !!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까,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즉 역대기를 쓰는 사람과 보는 사람들이 모두 어떠합니까?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주의 일을 하고 싶어도, 그러나 정작 나라도 없고, 또한 성전도 깨지고, 무엇이라도 될만한 게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도대체 왜 그들이 구원을 받느냐는 말입니다. 그들은 지금 하는 것이 전혀 없는데, 물론 그런 능력도 없고 말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헌금을 해도 그렇고, 전도를 해도 그렇고, 또한 예배에 참석해도 그렇고, 우리는 그렇게 다 엉터리인데, 우리는 그냥 쭈그려 앉아서 경제가 어려운 것만 탄식하는 마당이라는 겁니다.
◈ 그것이 곧 우리의 본래 모습 !!
바로 그러한 마당에, 즉 무엇을 하고 싶어도 몸이 아파서 못하고, 돈이 없어서 못하고, 직장에 매여서 못하고, 또한 주일이 되었는데 사람들이 없어서 못하고, 그리고 십자가마을 수련회에 참석하고 싶어서 겨우 휴가를 냈는데 그만 사고가 나서 참석하지 못하고, 그렇게 우리가 아무 것도 못할 때, 아무 것도 못하는 그것이 곧 우리의 본래 모습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우선 찡그리게 되고, 그러니 이웃 사랑도 컨디션이 좋을 때의 말이라는 겁니다. 지금 기침이 마구 나서 용각산을 달고 사는데 무슨 이웃사랑이냐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웃사랑도 자기 얼굴에 미소께나 띄울 때 이웃사랑이라는 겁니다. 온유와 화평과 자비와 양선, 그런 것들도 모두 컨디션이 좋을 때의 이야기이고 말입니다.
◈ 나는 나훈아가 너무 좋아 ??
나이가 팔십이 넘어 구십이 가까이 된 권서님이 치매가 걸리면 어떻게 됩니까? 제가 옛날에 시골에서 목회를 할 때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손자들이 마지막으로 보내신다고 찬송가를 불러주니까, 대번에 뭐라고 하는고 하니, "나는 찬송가가 듣기 싫다. 내 앞에서는 예수 소리는 하지 마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게 권사님으로 사십 년 이상 보낸 사람의 고백이란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두뇌가 썩었는데, 치매니까 말입니다. 즉 시냅스와 시냅스가 연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렇게 머리가 돌지 않으니, 남은 것은 육체가 갖고 있던 흔적인데, 즉 육체적인 어떤 관성의 버릇, 그것이 곧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즉 이성이 날아가 버린 상태에서, 즉 머리가 그만 썩어가니 본성이 그대로 유감없이 발휘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 "나는 나훈아가 너무 좋아" 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집에서는 찬송가 대신에 나훈아의 "청춘을 돌려다오"를 틀어놓는다는 겁니다. 그것을 보고 우리가 안타깝게 여길 것이 아니라, "아하, 내가 빨리 저 모습이 되어야, 위선이 벗겨지는데" 라고 하면서, 아주 축하인사를 해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 육서깐, 문 열었습니까 ??
그런데 몸이 아파도 그 정도 수준이 되면 무엇까지도 모르느냐 하면, 자기가 아프다는 것까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지난주일 오전에 그런 예를 들었는데, 수요일입니까? 요새 저도 치매증상이 조금 있어서 기억이 안 나는데(ㅋㅋ), 새벽에 운동을 하는데 어떤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다 물어본다는 겁니다. "육서깐, 문 열었습니까?" 라고 하고 말입니다.
여기서 '육서깐' 이라는 것은, 지금 전라도 사람과 서울사람은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지 싶은데(ㅋㅋ), 옛날에는 경북 의성지방에서 정육점을 '육서깐' 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아무튼 그때가 새벽 4시경인데, 그 할머니가 "육서깐, 문 열었습니까?"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보고 제가 커다란 감동을 받았는데, "야, 저것이 본성이다" 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육서깐, 문 열었습니까" 라고 할 때,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남이 얼마나 욕하겠는가?" 라는, 그러한 자아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아가 없는 상태, 그것이 우리 도달해야 될 성도의 목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진짜 성화가 뭡니까? 저렇게 치매가 와서 완전히 돌아버리는, 바로 그런 상태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진작 돌아버리지 않느냐는 말인데, 자꾸 신앙이 있는 척하고, 좋은 척하고, 괜찮은 척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고 뭔가가 똑똑해져(?) 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야말로 "나 같은 인간을 왜 구원했습니까?" 라고 하는데, 그러면 "너 같은 인간이니까 구원했지" 라는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의 말씀이, 물론 우리가 그 말씀을 믿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이 우리 속에 침투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 다윗의 묘실 - 들어가는 왕과 못 들어가는 왕 !!
지금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조금은 당황스러운데, 강의할 것은 많고 말입니다. 아무튼 다윗의 묘실을 보면, 그것이 여기 그림교재에 보면 있는데, 이쪽의 북쪽의 이스라엘 왕들은, 그것이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지금 헷갈립니다만, 아무튼 북쪽 이스라엘의 왕들은 여기 다윗의 묘실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까, "왕들이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가?" 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너의 죽는 자리가 어디에 합류하는가?" 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쪽에 유다 나라는 어떻습니까? 역시 이들도 사실상 개판 5분전인데, 아니 완전히 개판인데 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쪽 이스라엘이나 저쪽의 유다나 모두가 똑같은 인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 다윗의 등불이 꺼지지 않기에 !!
하지만 다윗의 등불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한 유다 나라의 왕들은 그 묘실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등불이 꺼지지 않기 때문에 말입니다. 단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아하스' 라는 왕은 너무나 악해서 못 들어갔다는 겁니다. 다른 왕들은 다 들어갔는데 말입니다. (목사님, 악하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는 없습니까?)
여기에서 '등불' 이라는 말은, 결국은 "이 땅은 어둡다" 라는 의미인데, 즉 이미 빛의 세계가 여기에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다윗의 기도에서 나오는데, 역대기는 기도가 바로 그것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한번은 광주에 가니까, 지붕이 열리는 나이트클럽이 있다고 선전을 하던데 말입니다. 김을수 집사님, 그 나이트클럽 이름이 뭡니까? '한국나이트클럽' 이라고요? 혹시 단골인가요?(ㅋㅋ)
◈ 야베스의 기도 !!
제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까, 김을수 집사님을 춤을 잘 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역대기에서 지붕이 열리는 것은 기도밖에 없는데, 그래서 이 역대기 족보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야베스의 기도' 라는 겁니다. 이 야베스 기도를 통해서, 앞의 족보와 뒤의 족보가 어떻게 되는고 하니까, 그 내용이 그만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즉 야베스 기도로 인해서 그 기록방법이 달라지는 겁니다.
저녁을 먹고 다음 시간에 이 '야베스 기도'에 대해서 하겠는데, 이 기도를 통해서 비로소 뚜껑이 열려버린다는 말입니다. 마치 나이트클럽의 지붕이 확 열리면서 별이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하늘과 내통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기도라는 겁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기도도 그렇고, 아무튼 기도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 다윗의 묘실 - 죽을 때 어디서 죽었는가?
그런데 이렇게 '다윗의 묘실' 이라고 하는데, 결국은 이게 무엇이냐 하면,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라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 도대체 어디에서 죽었는가?" 라고 하는, 즉 "누구 품에 안겼는가?" 라는 문제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사로가 죽어서 낙원에 갔는데, 누구의 품에 안겼다고 했습니까?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는 겁니다. 즉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누가 그 사람의 죽음을 건사하는지, 즉 그 죽음을 받아서 챙기는 사람에 의해서, 죽는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영역에 합류한다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 역대기는, 구약의 신약성경 !!
그러니까 이 역대기는 무엇인고 하면, 구약의 신약성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 구약은 뭡니까? 구약은 얼른 보면, 전부 다 명령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규범적이란 겁니다. 거기에 반해서 신약성경의 핵심은 "육이냐? 영이냐?" 라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구약에는 "아브라함이 이렇게 하나님의 제단을 쌓더니만 복을 받아서 소와 양떼가 늘어나고, 이삭도 소와 양떼가 많아서 브엘세바에서 우물을 하나 가지고 서로 싸우다가 나중에 계약을 맺어서 어떻게 되고, 또한 야곱도 복을 받는데, 그렇게 축복과 축복이 계속해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잠언서 3장에도 보면 "오른 편에는 부귀이고, 왼 편에는 장수이다"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잠 3:16)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리고 욥의 경우에도 어떠합니까? 고난을 받기 이전보다 그 이후에는 곱빼기의 복을 받아서 재산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는 겁니다. 또한 그의 딸도 얼마나 예쁜지, 그것도 세 명이나 되고 말입니다. 구약은 모두 그런 식이라는 겁니다.
◈ 구약은, '땅의 풍성함'이고, 신약은 '육과 영' !!
그렇게 구약은 전부가 다 그 땅이 어떻게 풍성해지는지, 그런 번성의 문제인데, 즉 얼마나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고, 즉 단절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느냐는 말입니다. 물론 이런 것도 앞으로 하겠지만, 구약은 바로 그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신약에 보면 '육과 영' 이라는 겁니다. 즉 신약에서는 "너의 재산이 얼마인가?" 라는 것을 묻지 않고, "니가 육에 속하느냐? 영에 속하느냐?" 라는 것을 묻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영에 속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요한복음 11장에도 나오듯이, "죽어도 살고, 또한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러니 이미 규범적으로 살았다는 의미인데, 즉 영은, 죽어도 살았고, 또한 살아도 살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약성경에는 "너 죽은 자야? 산 자야?" 라는 것을 따지는 것이고, 반면에 구약에서는 "너는 얼마나 소유했는가?" 라는 것을 따진다는 말입니다.
◈ 역대기 - 즐겁게 멸망을 당하는 기쁨의 역사 !!
그런데 이 역대기에서는 무엇입니까? 이미 그런 역사가 모두 다 끝났다는 것인데, 즉 에스라와 느헤미야까지 다 끝장을 내고, 모두가 다 마감이 되어서, 그렇게 마감한 쪽에서 다시 역사를 아담에서부터 총정리를 해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절망 가운데 있고 멸망을 당해도, 비록 우리는 멸망을 당했지만, 그렇게 멸망케 하시는 그 작업과 손길은, 하나님의 다윗언약에서 나온 착실하고 빈틈없는 약속이기 때문에, 우리는 즐겁게 멸망을 당하고, 즐겁게 망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기쁨의 역사를 우리는 가졌다" 라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역대기라는 말입니다.
이제 50분이 되었습니다.
2010,01,19 오후 6시 50분에 마침. - 녹취 '구'
마누라, 우리 집 전화번호가 몇 번이지?